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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9인승
작가 : 도은송
작품등록일 : 2020.9.19

각기 다른 과거를 숨긴 여덟 명의 인물들이 한 장소에 모인다.
다만 흔적을 묻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이들의 모임에 새로운 회원이 가입을 하게 되며 밝혀지는 각자의 사연들.
그들이 바란 것은 진정 '구원'이었을까.

 
#3 단죄가 아닌 속죄
작성일 : 20-09-19 01:53     조회 : 177     추천 : 0     분량 : 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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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문을 나섬과 동시에 후회가 엄습해왔다.

 사실 오늘 일만 놓고 본다면 경진이 무엇을 그리도

 잘못한 것이 있나 싶었다.

 바깥의 찬 공기가 몸을 식히니 더욱 그랬다.

 정문의 집은 1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척

 누군가 나와줄것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걸음을 질질 끌며 입구의 계단을 밟는데

 어깨를 잡혔다.

 안도감에 주변은 서늘한 와중

 뱃속부터 온기 비슷한 것이 피어올랐다.

 

 “사고 제대로 치네.”

 

 상연은 자신이 말주변이 없는 편이라 했다.

 문영의 생각은 달랐다.

 문장은 짧을지언정 옳은 단어만 골라 썼다.

 그래서 그의 입엔 단칼과도 같은

 단호함이 서려있었다.

 

 “한 방 먹였네. 그럴 때도 됐지 뭐.”

 

 그가 씩 웃어보였다.

 어깨 위 손을 풀지 않은 채.

 

 “급 발진이었어. 오늘은 실상 별 일도 없었는데.”

 

 하얀 증기가 퍼지며 문영의 말을 좇았다.

 이다지도 싸늘할 시기였나.

 

 

 “안은 별 이상 없어.

 신입이 조금 벙 찌긴 했는데,

 신고식 정도로 생각하라지 뭐.”

 

 상연은 선한 사람이었다.

 

 “그만 들어가 봐.”

 

 “지난 번 얘기는, 묻기로 작정한 거야?”

 

 그의 얼굴엔 표정이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모임에 너무 오래 머문 까닭이겠지.

 

 “...다음에. 미안. 진짜로.

 다음에는 꼭, 내가 먼저 꺼낼게.”

 

 어깨가 구부정한 상연의 뒷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그래도 다용도실에서 본 정문의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별 일 없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었다.

 불이 환한 창문에서

 하온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 것도 같았다.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하고

 역에서 삼 분 정도를 걸어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집까지 다섯 정거장 남짓한 거리였지만

 시간과 날씨로 미루어 보아

 걷는 편이 나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밖이 선선한 만큼 옷은 두꺼워졌고

 실내는 에어컨 작동을 멈춘 지 오래다.

 

 ‘악순환이군...’

 

 이마 춤을 훔치려 걸음을 멈췄다.

 실로 이 길은 오래간만이어서

 집을 목전에 둔 오르막을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다.

 되는 일이 없는 날이라 여겼다.

 상상만으로 흡족했던 정문의 집에 실제 방문한 일도,

 일 평 남짓한 공간에서 나눈 그와의 찰나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겨울을 꼭 닮은 상연의 위로도,

 소용이 없는 시점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몸에 들러붙은

 티셔츠를 펄럭였다.

 이제 막 길을 나선 내리막의 노인이

 맞은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슬쩍 혀를 찼다.

 

 정말 그랬던 걸까.

 

 그저 이에 낀 무언가를

 빼내려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젊은 사람이 그래서야 어따 쓰겠어.’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입니다만.

 문영은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 줄로 믿고 사는 중이었다.

 허약한 체질은 실로 많은 것들을 선점한다.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자신을

 불편해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배려의 손길만은 잊지 않던 사람들.

 

 그래서 문영은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 중에도 취재를 하러 왔느냐고.

 미련할지언정 기특한 사람이 되는 편을 택했다.

 

 도어 락을 누를 때쯤 티셔츠는

 검은색이 되어 있었다.

 조심스레 가방을 내려놓은 후

 내용물 정리를 시작한다.

 

 어디다 끼워 놓았더라.

 쓰지도 않는 다이어리 페이지를

 뒤적이는데 책상 구석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

 

 업무용은 사무실 서랍에 처박아 둔 지 오래 였다.

 

 워낙에 연락을 귀찮아하는 탓도 있고

 모임이 있는 날엔

 굴욕적인 제출을 할 바에야

 집에 놓고 가는 편이 속에 편했다.

 그것이 몸에 익어, 간혹 잡힌

 약속을 나서는 날이 아니고서야

 물건을 몸에 지닐 일이 없었다.

 몇 없던 지인들마저 그런 그를 가리켜

 새로운 형태의 ‘관종’ 이라 칭했지만,

 말 그대로 연락이 닿을 구멍이 없었으니

 제 알 바 아니었다.

 대신 굴러다니던 엠피쓰리를 꺼내 들었고

 핸드폰에 쓸 돈을 이어폰에 투자했다.

 그럴 때면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수면 중 보다 온전한 평온함을 느꼈다.

 

 ‘네 의견 듣는 데엔 이골이 났어.’

 

 휴직계를 내게 된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타당했다.

 

 그런 연유로 더 이상 핸드폰이 울리지 않았다.

 

 이제야 막 하루를 마쳐 평온을 누릴 찰나

 누군가 문영을 호출한 것이다.

 

 화장실로 들어가 찬물 샤워를 할 작정이었다.

 다만 핸드폰이 두 번, 세 번을 내리 진동하는 바람에

 이를 악 물어 세 번 만에 비밀번호를 풀었다.

 

 ‘잘 들어가셨나 해서 문자 남깁니다.

 그러고 나가셔서 다들 놀랐어요.’

 

 ‘저는 신입인지라 더더욱 놀랐고요ㅎㅎ

 참, 주영민 입니다.’

 

 ‘여쭙고 싶은 게 많은데, 혹시 따로 뵐 수 있을까요.’

 

 조금 전과는 달리 능글맞은 그가 불편했다.

 무엇보다도 이쪽에서 묻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다.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신입이신지라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그룹 사람들은 번호 서로 모릅니다.’

 

 ‘어라, 모임 일시 문자로 통보받는다

 들었는데 번호를 서로 모르신다고요?’

 

 불편함을 넘어선 불안함이 차올랐다.

 자리를 잡지 못한 채로 책상 모퉁이에 서

 그의 답변만을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하려 말꼬리나 잡는 것인지.

 

 ‘오 선배한테서 들었어요. 문영 씨 학부 선배.

 오연진. 제 회사 동료 분이시거든요.’

 

 머리 위 천장이 급격히 낮아진다.

 오 선배라니. 그의 입에서 나와선 안 될 이름이었다.

 그 짧은 순간 속을 태우는 실타래의 끝은

 배신감에 닿아있었다. 그렇게나 신신당부를 했건만.

 

 ‘제가 오 선배 지인인 건.’

 

 어떻게 알았냐 연타를 치려는 데

 영민이 먼저 답장을 보내왔다.

 

 ‘꽤 친합니다, 저희.

 SNS 구경하다가 문영 씨 이름을 봤습니다.

 브로커 분이 회원 명단 미리 보여주시잖아요,

 이름 정도는 미리 알고 가라고.’

 

 아뿔싸. 제 꾀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룹 내에서도 말이 많은 부분이었다.

 명단 공개의 타당성에 대하여.

 가장 길길이 날뛴 건 어김없이 경진이었다.

 혹 유출이라도 되면 누가 책임 질 거냐고.

 

 “제가 책임집니다. 십 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길바닥에 쓰레기 한 톨 버린 적 없는 분이예요.”

 

 “그거랑 크게 상관이 있나, 유출이 되는 건 말마따나...”

 

 경진의 행색을 기억한다.

 언제 감았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까치집이 진 머리, 본래는 하얀색이었을

 누런 티셔츠 소매 단.

 

 “법 없이도 사실 분이란 얘기지요.

 제가 직접 그 분에게 부탁을 드렸기에,

 보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유지됩니다.

 우리 중 구태여 누군가가 발설하지 않는 한.”

 

 정문과 십 년이 넘는 세월을 공유한

 저 브로커라는 사람은 누굴까.

 저다지도 완연한 신임을 얻어낸,

 결함이라곤 없을 미지의 인물.

 

 “신입에게 명단 공유는 필연적입니다.

 사람은, 특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접근은 대상을 우상화하는 데에 있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는 포함하지 않되,

 화려한 이력을 표지 삼아 혹하게 하는 것이지요.

 나 같은 사람도 저런 곳에 소속될 수 있다면,

 저들과 함께 과거를 지우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런 유혹이 싹트는 순간, 나머지는 몸소 체험하셨듯이

 자연스레 유동하게 됩니다.

 집단을 키우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인 만큼

 타협은 불가합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정문의 말엔 힘이 담겨져 있다.

 경진 같은 이가 아무리 눌러 붙어도

 흠집 하나 남지 않을 잿빛의 갑옷을 두르고서,

 청중을 압도하고 만다.

 

 “...정문 씨는 겁이 없나 봐.

 다들 반 정도는 드러낸 이 시점에,

 입도 벙끗 안 하는 거 보면 보통 사연이 있는 게 아닐 텐데.”

 

 횟수가 초과된 도발.

 경진의 뺨은 붉었고 눈썹은 꼭

 도깨비 같았다.

 

 정문이 폭력을 행사한 건 그 때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굴욕이었다.

 권력을 쥔 자의 짓누름이었다.

 

 “어떤 형태의 단죄도,

 이 모임 내에선 터부입니다.”

 

 경진의 머리 맡 그와는 생경한

 크리스털 잔이 입구를 기울였다.

 

 “속죄.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 지향 지점입니다.

 댁의 그 유창한 머리통 위로 흐르는 이것이,

 회개의 성수가 될지, 지난 과오의 용액이 될 지는

 본인에게 달린 것이지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입이 벌어졌다.

 안으로 스며든 그것을 뱉어내려, 숨을 쉬어 보려,

 동이 나도록 마셔 대던 그 값비싼 샴페인을

 처음으로 거부했다.

 

 마크가 수놓아진 손수건이 건네진다.

 치욕의 울음이 터지자 비로소 나머지가 경진을 위로했다.

 누군가는 어깨에 손만 얹었고,

 하온만이 옷이 젖는 것을 괘념치 않아하며

 그를 꼭 껴안았다.

 

 “과하게 행동한 점, 부디 용서하십시오.

 그래도 당신은 회장님이 아니잖습니까.”

 

 

 

 문자를 치려 회상을 멈춘다.

 정문을 향한 무거운 호감이 오늘과 맞물려

 심기를 어지럽혔다.

 

 ‘다른 멤버들한텐, 얘기하지 마세요.

 장소랑 시간은 제가 정합니다.’

 

 답장을 보내고 반 쯤 마른 옷을 벗어던졌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베개를 얼굴 위에 얹는다.

 

 산소가 옅어져 이대로 잠이 들 수 있기를,

 신입이 단순히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기를,

 상연의 상처가 씻은 듯이 아물어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정문에겐 별 과거가 없기를, 기도하며.

 

 배터리가 나가기 전 마지막 진동이 울린다.

 

 ‘기다릴게요. 참, 오 선배가 보고 싶다고 꼭 전해 달라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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