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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남자는 신스틸러
작가 : 조윤서
작품등록일 : 2020.9.15

징계 먹은 강력계 여형사 송백설과 영화판의 신스틸러이자 호텔 상속자인 차도현의 수상한 연애.

 
5. 어떻게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있지?
작성일 : 20-09-17 23:04     조회 : 368     추천 : 0     분량 : 7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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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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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시내 고급 리조트 스위트룸. 샤워를 마치고 나온 도현은 캔맥주를 따서 벌컥거리며 마셨다.

 흰색 바스로프 소매로 입을 쓱 닦는 폼이 꽤 긴장해 있다.

 “하, 거기서 송백설 경사를 만나다니, 언빌리버블! 대한민국의 하고 많은 동네에서, 하필 그 시간에, 그 인적 드문 산꼭대기 창고에서 말이야.”

 화도 화지만, 당황스러운 감정이 더욱 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괴한 만남이 주는 우연성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일을 떠올리면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새벽녘 게스트하우스를 나오던 때 온 몸을 감싸던 열기와 자괴감이란…….

 하지만 그에 못잖게 투지도 샘솟았다. 형사답지 않게 뽀얗고 순수한 얼굴을 한 뻔뻔스러운 그 여자한테 말이다.

 “진짜 세상 좁아! 이런 우연이 어떻게 있어? 설악산도 아니고 한라산도 아니고 단양의 양백산이라고.”

 또 다시 한 모금. 그는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가 다시 쫙 폈다.

 ‘그래, 어쩌면 잘 만난 거야. 받은 대로 돌려주겠어, 꼭! 날 짓밟은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그 형사가 지금쯤 자신을 찾느라 혈안이 돼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심술궂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훗. 어디 한 번 날 찾아보라지!”

 그는 입가에 시니컬한 미소를 흘리며 꺼두었던 휴대폰의 전원버튼을 눌렀다. 매니저 정태에게 전화를 걸어 긴히 일러둘 말이 있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되도록 빨리 얘기했다.

 “나야. 다음 촬영 때까지 좀 쉴 거니까 어디서 연락 오면 적당히 알아서 처리해줘. …응, 한 달 정도. 외국 갔다고 둘러대든지. 진짜 하와이에 갈 수도 있고. …그래, 할아버지께는 그렇게 말씀드려줘. 응, 수고.”

 통화를 끝낸 도현은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룸서비스를 부탁했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게 거의 없었다.

 룸 한쪽의 와인바 냉장고에서 레드와인 좋은 걸 찾았기에 곁들여 먹을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비프스테이크와 볶음밥, 핫윙, 연어샐러드, 통밀빵, 리코타치즈, 과일 등이었다.

 “혼자 먹기에 너무 많나?”

 필요한 조치들이 끝나자 휴대폰은 다시 꺼버렸다.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더니 이번엔 자동적으로 양백산 꼭대기 창고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배영도 혼자서 왔을까.”

 눈을 뜬 도현은 아이패드를 꺼냈다. 페이스북을 뒤지던 그의 눈이 일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표정이 심상치 않다.

 “동창회 장소가 바뀌었던 거야! 다들 안 온 게 아니었어. 이거 재미있어 지는데.”

 

 ***

 

 “당연하지! 박수찬 니가 원인 제공을 했잖아. 나왔어? 좋아, 불러 봐. …응, 응. …오케이. 아냐, 신경 꺼. 니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할게. 그래, 수고! 나랑 통화했다고 절대로 발설하지 말고. 알다시피 정직 중이니까.”

 전화를 끊은 백설은 단양병원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피해자 배영도는 좌측 두개골 함몰 및 과다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방금 전 그의 부인인 성북동 의뢰인을 만나고 오는 참이다. 그녀는 단양 아지트에 대기하고 있다가 남편의 소식을 듣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왔었다.

 

 “아셨죠? 절대로 경찰에 알리면 안 돼요! 그냥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요. 산꼭대기 창고에서 습격당하는 게 흔한 일도 아니고…. 분명히 뉴스에 날 거라니까요!”

 “이보세요, 사모님. 그러니까 관할 서에 신고해서 어떤 놈이 그랬는지 범인을 잡아야죠. 남편분이 누구한테 당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해요. 그래도 안돼요, 여기 경찰은! 그냥 송 경사님이 은밀히 조사해주시면 안 될까? 필요한 경비는 제가 다 드릴게요, 네?”

 백설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경비는 필요 없어요. 이미 주시기로 약속한 것 하나로도 과하니까. 하지만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진행하는 사건은 해결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다행히 제가 요즘 좀 시간적 여유가 되긴 하지만……. 큰 사건 하나를 해결한 뒤라…….”

 

 열두 살이나 어린 띠 동갑 남편의 상태가 꽤 좋지 않았는데도 의뢰인은 사건을 경찰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끝까지 신신당부했다.

 정작 그녀가 경찰이었는데도. 정직 중이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는데도. 설마 엄마가 말하진 않았겠지?

 ‘단양에 며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백설은 견인차가 현장에서 실어온 피해자의 차량을 수색한 후 성북동 의뢰인의 측근에게 넘겨주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지금 급선무는 쥐새끼처럼 도망친 차도현을 잡는 것이다.

 코너를 돌며 백설은 새삼 투지에 불타 외쳤다.

 “차도현, 넌 이제 죽었어!”

 고물차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전력으로 단양 시내를 달려주었다.

 규칙을 위반하면서 박수찬에게 알아낸 모종의 장소로, 지금부터 고고!

 

 ***

 

 띵동.

 “룸서비스입니다, 손님!”

 도현이 바스로프 차림 그대로 도어를 열었다. 밀차 위에 뚜껑이 덮인 그릇이 여러 개였다.

 스위트룸 중앙의 기다란 테이블에 그만의 성찬이 차려졌다. 도현은 룸서비스 담당 여직원에게 팁을 주며 핸섬하게 웃었다.

 “주말에 남자친구랑 영화 보세요.”

 “어머, 손님. 정말 감사합니다! 주말까지 남친 만들어야 겠네요!”

 5만 원짜리 지폐를 두 장이나 받은 여직원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룸을 나갔다.

 그런데 도현이 소파에 앉는 것과 동시에 나간 줄 알았던 여직원이 다시 들어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바람처럼 다가와 그의 앞에 딱 버티고 선 사람은 사흘 전 그의 인생에 불쑥 뛰어들어, 약 한 시간 전쯤 다시 요상한 방식으로 산속의 창고에서 랑데부 한 여자였다. 강북경찰서 강력3팀 송백설 경사.

 ‘흥, 발칙한 여자! 이렇게 다시 만난 걸 후회하게 될 거야.’

 그는 들끓는 마음과는 달리 차갑고 나른한 얼굴로 웃었다.

 “이런, 진짜 형사 맞으시군요. 빨리도 찾아오셨어요.”

 백설이 신랄하게 다그쳤다.

 “당신이 지금 여기서 한가하게 스테이크나 썰고 있을 때야? 왜 도망쳤어, 어?”

 도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자르기 시작했다. 포커페이스로 위장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연기 경력 13년 차인데.

 “왜, 여기서 스테이크 썰면 안 됩니까? 난 오늘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었고 이런 데서 밥 사먹을 만큼 돈도 많은데.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좀 드시죠.”

 적당한 크기로 자른 스테이크가 한 점 그의 입으로 들어갔다. 피처럼 붉은 와인이 그 다음 차례였다.

 그는 입안에서 고기를 우물거리며 백설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도망친 거 아닙니다. 시끄러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자리를 뜬 거지.”

 양 손에 든 포크와 나이프가 위협적이었다. 백설이 그런 그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며 점점 다가갔다.

 “배영도 씨를 해친 게 당신이지?”

 고개를 든 도현이 젖은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며 느릿하게 답했다.

 “그건 너무 교과서적인 추측인데. 왜 나라고 생각하죠? 나 아니라고 아까 말했을 텐데. 정말 어이없게도 양백산 창고에서.”

 백설이 도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암만 생각해도 당신이야! 그 시각에 그 흔치 않은 산꼭대기 현장에 있다는 게 흔해? 그리고 피에 물든 당신 손, 그거 말이야. 그냥 목격자라기엔 너무 많이 묻어 있었거든!”

 “아니, 전 목격자도 아닙니다. 사건을 보지 못했어요.”

 스테이크에 이어 와인이 또 한 모금 입으로 들어갔다. 하,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손가락을 우하하게 쓰는 것 좀 봐! 가증스럽긴.

 “현장에 있었다고 다 범인은 아니라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내 손의 피는 피해자를 일으키려다 묻은 겁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피해자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니 내 손에도 많이 묻었을 밖에.”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믿든 안 믿든 경사님 자유지만, 사실입니다. 도착했을 때 그 친구는 이미 쓰러져 있었고 거긴 아무도 없었어요. 와인 한 잔 하시겠습니까?”

 하필 지금 나한테 저 피 같은 와인을 권하는 거? 피칠갑 한 피해자를 병원에서 20분 전까지 보고 왔구만!

 백설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그 친구라니, 당신 피해자랑 무슨 사이야?”

 의외로 답이 쉽게 나왔다.

 “중학교 동창.”

 “동창? 그럼 그쪽도 오늘 파티의 멤버였단 말이야?”

 도현은 피식 웃었다.

 “노우. 굳이 말하자면, 초대받지 못한 동창생이라고나 할까.”

 백설은 실눈을 뜨며 그를 훑었다.

 “그 말인즉슨, 지금 자신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실토하는 거네?”

 “공권력이 날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난 용의자도 아니고 목격자도 아닙니다. 헛다리짚지 마세요. 웬만하면 좀 앉으시고.”

 이 인간이 형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그녀는 허리를 더 꼿꼿이 펴고 섰다.

 “이봐, 초대 받지도 않은 자가 그 밤에 거긴 왜 간 건데? 꼬불꼬불 산길을 자그마치 4킬로미터나 올라가야 하는 곳이라구. 말이 돼, 안 돼?”

 “확인할 게 있었어요.”

 “무슨 확인?”

 이때였다. 쉬이이이익! 척!

 갑자기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서늘한 느낌이 덮쳐왔다.

 뭔가 날아와 백설의 양 다리 사이 카펫에 정확히 꽂혔다. 기함하게도 방금 전까지 저 남자가 우아한 손동작으로 스테이크를 썰던 나이프였다.

 뚜껑은 이럴 때 열리라고 덮어두는 거다.

 “이런, 니미……!”

 발칙한 자를 봤나! 발끈한 백설이 바람처럼 달려들어 도현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통에 두 사람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이봐요! 진정하세요, 송 경…….”

 “아가리 닥쳐! 사이코 사기꾼 주제에, 어디 감히 날 건드려!”

 ‘날 건드려? 누가 누굴 건드렸는데! 진짜 미치겠군!’

 도현의 몸이 테이블 다리에 부딪치면서 위에 있던 각티슈며 물컵, 필기구가 와장창 바닥에 떨어졌다.

 “엇……!”

 태권도 3단, 합기도 1단, 합 4단에 빛나는 그녀의 무술 실력이 빛났다.

 “대한민국 형사를 우습게 알면 이렇게 되는 거야, 멍청한 용의자야!”

 백설의 팔꿈치에 도현의 머리가 끼었으나 그는 의외로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다리와 허리가 부딪치며 엎치락뒤치락 하던 두 사람은 진열장 앞까지 굴러갔다.

 “진정하시라구요!”

 도현은 전력을 다하느라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결국 배 위에 올라탄 형사가 목의 급소를 내리치려 했으나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자신이 간발의 차이로 빨랐다.

 전세가 뒤집혔고 형사가 자신의 밑에 깔렸다.

 “야이씨, 이거 안 놔!”

 “훗, 형사도 용의자 우습게 알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헉, 헉. 눈앞의 형사는 분한 듯 숨을 몰아쉬며 씩씩거렸다. 자신의 단단한 손아귀에 양 손이 붙들려 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이없게도 이건 며칠 전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불처럼 화 난 눈동자로 형사가 말했다.

 “당신 생각 잘 해야 할 거야! 날 건드리면 무사하지 못하다구.”

 음, 근데 이게 형사의 눈빛이던가. 그날 밤은 어두워서 자세히 보지 못했었는데. 만취해서 자신에게 도발하던 이 여자의 제안들이 떠올랐다.

 [앞으로 몇 년간 다른 어떤 재수 없는 새키의 키스도 생각나지 않게, 극도로 야한 버전으로. 오케이?]

 [지금부터 날 갖는 걸, 허락한다!]

 “눈동자가 맑군요. 그땐 인사불성 만취 상태라 몰랐는데.”

 그가 팔을 놓아주곤 일어섰다.

 “이 인간이 뭐래는 거야!”

 이 틈을 노린 백설이 튀어 올라 팔을 쭉 내둘렀으나 닿지 않았다. 자신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도현이 재빨리 피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에게 손목을 또 잡히고 말았다.

 그는 새삼 궁금해졌다. 이 여자는 그날 밤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행동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이 차도현과 같이 보낸 밤을 기억 못할 수가 있지? 그러면서도 자신을 범죄자로 모는 저 눈빛은 정말 사람을 미치게 했다.

 ‘모든 걸 기억하는 데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모른 척 행동하는 걸 수도 있어.’

 도현이 한껏 조롱을 담아 말했다.

 “진정하세요, 다혈질 형사님. 보시다시피 저기 불청객이 들어왔기에.”

 그가 고개로 가리키는 카펫 위 칼끝에 흰 새끼나방 한 마리가 끼어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아니, 저게 웬 나방이야! 아깐 왜 못 봤지? 이게 지방 호텔의 스위트룸 클라스라는 거군.

 백설은 여전히 양 손목을 잡힌 채 물어뜯을 기세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손 놔! 당신이 함부로 잡을 손인 줄 알아?”

 도현은 잡은 손을 놓고 애석하다는 듯 느리게 웃었다.

 “너무하시네. 그날 밤은 그리도 뜨거웠으면서. 아예 모른 척 하기로 작정하신 겁니까?”

 “무슨 말이야! 그날 밤이라니!”

 ‘짜증나! 이 인간이 기어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 밤 일을 발설하겠다 이거지!’

 ‘역시 기억 못하는 것인가.’

 백설도 도현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눈이 호수처럼 깊은 남자였다. 그날 밤엔 이 정도까지 잘 생기지 않았던 것 같은데…….

 “밤을 같이 보낸 남자에 대한 일종의 배려 같은 거였습니까? 일부러 절 놓친 거?”

 백설이 펄쩍 뛰었다. 분명히 속옷은 깨끗했고 방은 정돈되어 있었다.

 “일부러 놓쳐? 밤을 같이 보내? 저 사람이 큰일 날 소리 하네! 물증 있어?”

 말은 그렇게 했어도 백설의 얼굴은 붉게 물들고 당황해서 말이 꼬였다.

 “시종일관 형사의 말투로 날 취조하다가 얼굴은 왜 빨개지시는 걸까. 그 일이 부끄러우십니까, 경사님?”

 그 일? 묘한 여운이 남는 말이었다. 속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른 백설은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쏘아붙였다.

 “내가 이래서 그쪽을 두루두루 믿을 수가 없어! 양백산 창고에서도 그렇고 킹콩맥주에서도 그렇고. 좋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날 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나를 그 게스트하우스로 데려갔지? 하, 아침에 일어나보니 정말……!”

 “정말, 뭘 말입니까?”

 백설은 일말의 동요도 하지 않는 도현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한 대 패주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각 잡아서 접어놓은 속옷 말이다, 인간아!’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돼?”

 “전 모릅니다. 경사님과 아침을 같이 보낸 건 아니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어. 이제 백설의 목소리는 한 풀 꺾였다.

 “좋아요, 사실 그날 내가 과음을 좀 했다고 쳐! 그렇다고 날 여관방, 아니 게스트하우스에 데리고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거야 만취하신 경사님께서 초여름이지만 밤이 무척 춥지 않냐면서 부득불 같이 가자고 권하시기에.”

 “내가 같이 가자 했다고? 레알?”

 도현이 삐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설은 거의 포기한 듯 다소 무기력한 말투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과 엮이기 싫으니까 이것만 말해. 우리 그날 밤 아무 일 없었던 것, 팩트죠? 아,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다 조사해봤어!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구, 이거 왜 이래!”

 도현은 그녀를 짓궂게 쳐다보다가 잔에 와인을 따라 빙그르르 돌렸다. 두 눈은 모처럼 재미있는 놀이를 찾았다는 듯 즐겁게 반짝거렸다.

 “글쎄, 과연 아무 일이 없었을까요? 어디까지 기억하시죠?”

 “키스로 퉁치자까지.”

 “그래서 우리가 키스를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백설은 말문이 막혔다. 그것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길! 그 말을 하고 나서 킹콩맥주를 나왔던 것 같은데….

 골목길에서 전봇대가 맞장 뜨자고 달려든 것 같기도 하고…. 밤고양이가 날 따라오면서 야옹 하길래, 아니 내가 야옹 했던가?

 치밀하고 묘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는 도현이었다. 머리는 잊었다고 해도 몸은 반응할 테지.

 “아무래도 기억나게 해드려야 겠군요.”

 바스로프 차림의 도현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백설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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