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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수학자
작가 : 김선을
작품등록일 : 2020.9.9

수학의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를 밝혀낸 한국의 교수.
전 세계적인 쾌거로 한국의 위상을 높인 사건이 된다.
그리고 그 교수의 수제자가 알수없는 수수께끼를 남긴 채 의문의 시체로 발견된다.
과연 수학의 난제를 푼 수학자는 누구인가?

 
기자회견
작성일 : 20-09-17 16:53     조회 : 73     추천 : 0     분량 : 8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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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민서희 너 도착했어? 안했어? 너 도대체 뭐하는 거야? 너 죽을래?“

 “죄송합니다. 갑자기 사고가 나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김신일 CP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기가 죽은 민서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 말할 시간에 거기로 뛰어가. 빨리.”

 “예. 알겠습니다.”

 민서희도 답답했다. 자꾸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의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빠빠앙

 민서희는 괜히 짜증이 나서 경적을 울렸다. 민서희의 경적소리를 신호로 마치 들짐승들이 서로서로 울부짖듯 이내 여기저기서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씨 진짜 이 방향으로 오는 게 아닌데 아 짱나.”

 민서희는 괜히 핸들을 손바닥으로 쳤다.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아깝고 초조했다. 벌써 기자 회견 시작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가을로 접어드는 9월이었지만 햇살은 여전히 따사로웠다. 기름 값이 아까워 차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면서 민서희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정말이지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야속했다. 그냥 뛰어가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인터넷에서 전에 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주말 부산 만덕터널은 교통 정체로 인해 지옥이라는 것을 말이다. 민서희는 계속 악셀을 밟았다 놨다 하며 앞으로 치고 나갈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그만 틈이 보였다. 옆 차선의 SUV와 중형 세단 사이에 약 50cm 정도 공간이 생겼다. 민서희는 핸들을 돌려 일단 차머리를 밀어 넣었다. 하지만 옆 차선의 SUV도 만만치 않았다. 그 차량은 민서희가 탄 준중형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박을 듯이 다가왔다. 그러나 민서희는 이제 이판사판이었다. 그녀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치고나갔다.

 “야 이 미친년아. 집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해라. 어딜 끼 들어와쌌노?”

 민서희가 탄 차에 밀린 SUV차량 주인이 조수석 차창을 내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욕을 했다. 그녀는 조용히 차창을 내리고는 아무 말도 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여줬다.

 “야이 씨발년아.”

 욕을 하는 그 사람의 차를 뒤로 하고 마침내 그녀의 차가 조금씩 거북이처럼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아씨 와이래 안 오노? 아 완전 늦었는데.”

 부산대학교 본관 건물 대강당에서 시작하는 기자회견장은 벌써부터 꽉 차있었다. 안경식 PD는 그들 사이에 끼여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눈도 작고,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그는 친구들 별명처럼 우럭같이 생긴 사내였다. 코는 납작하고, 입이 약간 튀어나온 모습이 정말 우럭같이 보였다.

 안경식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사내 인물 검색을 통해 보았던 이지적이고 예쁘장한 아가씨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사실 이번 취재에는 평소와 달리 서울여자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우 설레는 마음으로 가지고 임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일찍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디링 디리링

 어쿠스틱 기타 연주소리와 함께 자신의 주머니가 떨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 도착했어요? 여기 앞에서 두 번째 줄에 빨간 조끼 입고 있습니다. 여기요 여기.”

 민서희 전화가 왔다. 그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눈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을 스캔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눈에 살구색 티와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얼굴과 쌍꺼풀 없는 눈, 그리고 너무 높지 않은 코가 그녀가 민서희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실물이 더욱 예뻐 보였다. 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요. 여기.”

 그가 휴대폰을 꺼서 주머니에 다시 넣고는 손을 힘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자마자 꺼진 휴대폰은 의아하게 쳐다보던 민서희는 곧 앞자리에서 손을 힘차게 흔들고 있는 안경식을 발견했다.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바쁜 걸음으로 다가온 민서희는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둘째자리에서 안경식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민서희에요.”

 “안녕하세요. 안경식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민서희가 비집고 들어오자 주변에 있던 기자와 방송국 사람들이 인상을 쓰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중요한 취재인 만큼 취재 경쟁이 치열했다.

 민서희는 자신을 밀치는 카메라맨을 쏘아본 뒤 다시 안경식에게 인사했다.

 “예 늦어서 죄송합니다. 만덕터널인가 거기서 너무 막혀서요.”

 민서희가 미안해하는 표정을 본 경식은 더욱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과도한 몸짓으로 대답했다.

 “아휴 아입니다. 부산 첨 오는 사람들은 다 헤매는데요. 뭐. 우야든동 기사 회견 전에 도착해가 참말로 다행입니다. 그럼 촬영을 시작할께예.”

 “예 바로 시작하시죠.”

 생긋 웃으며 민서희가 대답하자 안경식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쓸데없이 카메라를 자신의 얼굴에 바짝 들이대었다.

 안경식의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 선 민서희는 미리 준비한 원고를 들고 서서 읽기 시작했다. 이미 수백 번을 보고 연습한 원고였다.

 “안녕하십니까? ‘진실을 알고 싶다’ 시청자 여러분. 1,600년대 ‘an+bn=cn 을 만족하는 양의 정수해는 없다’라는 정리로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아십니까? 당시 페르마는 여백이 적어 그 정리에 대한 증명을 적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그 정리에 대한 증명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수많은 공식과 공간을 아우르는 기하학의 원리가 밝혀진 뒤에야 겨우 해결할 수 있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페르마는 자신의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을 남기지 않았지만 지금 오늘 이 자리에는 그 페르마와 같은 수학의 천재가 세계 수학 7대 난제 중 하나인 양-밀스 이론과 질량간극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검증받기 위해 당당하게 그 논문을 공개하였습니다. 그럼 잠시 후 시작될 회견장에서 뵙겠습니다.”

 민서희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멘트를 마쳤다. 안경식의 카메라에서 빨간 불이 꺼졌다.

 그 때였다. 대강당 앞 무대에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안경식의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졌다.

 차카 차카 차카 차카카차착

 가벼운 타자기 같은 기계음이 터지는 가운데 눈이 처지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키가 작은 중년의 사내가 무대 위에 놓인 테이블 제일 중간에 자리했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 하나인 양-밀스 이론과 질량간극 가설을 증명한 부산대 물리학과 박민용 교수님의 기자 회견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새 사회자 자리에 선 말쑥한 차림의 사내가 안내 멘트를 시작하였다.

 박민용이라는 명패가 놓인 자리에 앉은 그 키 작은 사내의 표정은 세계 수학 난제를 푼 사람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이었다.

 “허험 인사하시죠.”

 박민용 교수의 옆에 앉은 멀대 같이 비쩍 마르고 뿔테 안경을 쓴 대학 총장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그의 팔을 치며 재촉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박민용 교수입니다.”

 박민용 교수라는 사람이 가볍게 인사를 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더욱 심하게 터져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 좀 내려주세요.”

 “손 내려주시고요. 이쪽으로 봐주세요.”

 “여기요. 여기.”

 기자들이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웃어주세요. 웃어주세요.”

 박민용 교수가 너무 경직되어 있자, 기자들이 미소 짓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민용 교수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예, 기자 여러분들 시간은 많으니, 나중에 천천히 포토타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박민용 교수님께서 이번에 증명한 양-밀스 이론과 질량간극 가설(Yang-Mills and Mass Gap)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겠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여러 사람이 손을 들었다. 박민용 교수는 잠자코 그 손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기 저 회색 옷을 입은 세 번째 줄에 앉으신 분요.”

 박민용 교수가 가만히 있자 잠시 눈치를 보던 자연대학장인 정영진 교수가 손을 뻗어 질문자를 선택했다.

 “YTN의 김리하 기자입니다. 이번 양-밀스 이론과 질량간극 가설을 증명함으로서 어떠한 것을 밝힌 겁니까?”

 질문을 받은 박민용 교수는 약간 고개를 숙인 채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매우 건조한 목소리로 강의하듯 말했다.

 “그 문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질량을 가진 물질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모든 물질들은 질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물질들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전자와 원자핵입니다. 그러나 전자는 전체 질량 중 0.002% 정도밖에 되지 않죠. 그렇다면 이 우주를 이루는 질량은 모두 원자핵에서 나온다는 건데, 이 원자핵은 쿼크와 글루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양-밀스 이론에 따르면 이 쿼크와 글루온은 질량이 없습니다. 질량이 없는 물질들로 이루어진 원자핵은 왜 질량을 가지는가? 바로 그 차이를 밝혀낸 겁니다.”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 거침없이 그가 대답을 하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다시 터지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박민용 교수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의 표정은 더 이상 말을 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사회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질문을 받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지루한 질의응답 시간이 지나갔다. 수학과 물리학의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전문가들의 자리였다. 민서희는 최대한 집중하여 그들의 말을 이해하려 하였으나,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질문에 대답을 하는 박민용 교수도 지쳐가고 있었다.

 또다시 질문을 하는 순서가 다가왔다.

 민서희는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으나, 김신일 CP가 지시한 대로 질문을 읽기로 하였기 때문에 미리 챙겨둔 쪽지를 꺼내 읽기로 했다. 그녀가 선택받지 못해 준비한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되자 점점 초조해졌다. 그녀는 얼른 손을 번쩍 들고 옆으로 흔들기까지 하였다.

 “이번엔 저기 두 번째 줄에 앉으신 여자분께 마이크를 주시죠.”

 대학총장이라는 대머리 아저씨가 민서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손을 들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민서희는 내심 당황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빨리 주머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 읽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

 없었다.

 분명 있어야할 질문 쪽지가 주머니에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생각해 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종이쪽지에 대한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무엇인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기억났다. 여기 오기 전 김신일 CP는 2주 후 방영될 ‘진실을 알고 싶다’에 이번 수학 난제를 해결한 작업 방식에 대한 이면과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 간의 격렬한 논쟁을 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녀는 수학 난제를 해결한 박민용 교수에 대한 것을 모든 것을 취재해 오기로 했던 것이었다.

 ‘이런 완전 망했다.’

 분명 대학 교수 선배와 방송국 고참 선배들에게 받아왔던 질문지를 차에 놓고 온 것이었다. 마이크가 그녀 앞으로 왔다. 당황한 그녀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에 굴할 민서희가 아니었다.

 에라 모르겠다.

 단순히 자신이 궁금했던 질문을 하였다.

 “어, 어,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그 그러니까 그, 결정적인 핵심 아이디어는 어,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다소 더듬거리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킥킥 웃는 소리도 들렸다. 21세기 최고의 수학 난제를 해결한 자리에서 할 질문은 아닌 것임엔 틀림없었다.

 자리에 앉아 딱딱하게 대답을 하던 박민용 교수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니 빛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안경을 고쳐 쓰며 그녀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누구시죠?”

 “아? 예 예. KCB의 민서희 PD입니다.”

 박민용 교수가 갑자기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고 다급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오? 자란 곳은? 부모님은?”

 박민용 교수의 눈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정영진 자연대학장이 재빨리 그의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았다.

 “아하하. 박민용 교수께 건장한 조카가 있다고 들었는데, 벌써 조카며느리감을 고르고 계신 것 같군요.”

 정영진 자연대학장이 웃으며 말했지만 그도 당황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박민용 교수는 자리에 앉아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민서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황당한 박민용 교수의 행동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왠지 지기 싫었기 때문에 그녀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박민용 교수를 같이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조남준 대학총장이 박민용 교수의 옆구리를 찌르며 마이크에 들리지 않도록 그의 귀에 입을 대고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이것 봐요. 박교수 지금 뭐하는 짓이오.”

 하지만 넋이 나간 박민용 교수는 몸이 굳어있었고, 손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조남준 총장은 정영진 학장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약하게 흔들었다.

 마이크를 들고 대답을 하던 정영진 학장이 이를 눈치 채고 사회자에게 손으로 목을 긋는 신호를 보냈다.

 가만히 이 모습을 보던 사회자는 정신을 차리고 말을 하였다.

 “아 예. 금일 예정되어 있던 기자 회견을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인지라 박민용 교수님께서 많이 피곤하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가는 문에 비치한 책자를 보면서 궁금증을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 궁금한 사항은 추후 진행할 기자회견에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자들이 술렁거리는 동안 조남준 총장과 정영진 학장, 그리고 대학 관계자들이 죄인을 끌고 가듯 박민용 교수를 양쪽에서 팔을 잡고는 총총히 무대에서 퇴장하였다.

 

 “어? 어. 저러면 안 되는데, 개인 인터뷰 시간을 물어봐야 하는데..”

 민서희가 정신을 차리고 혼잣말을 하였다.

 안경식 PD가 말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가져온 질문이 그깁니까? 김신일 CP가 내보고 도와주라고 할 때는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던디.”

 어색한 부산사투리였다.

 “예 맞아요.”

 민서희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자신의 어이없는 질문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천금 같은 기자회견시간을 날려버렸다. 그녀는 이제 기자회견장에 모인 모든 언론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 개인 인터뷰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깨가 축 쳐진 채 힘없이 내뱉는 그녀의 말을 들은 안경식은 어떻게든 그녀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잠시 만요. 서희씨. 저희 아버지 친구 분이 여기 부산대 사무처장으로 계시거든요. 그라니께 지가 한 번 박민용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자리 함 만들어 볼까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민서희의 눈이 빛났다. 갑자기 경식의 손을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박경식씨야 말로 저의 생명의 은인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경식은 당황하였다.

 “어.. 저기 저 잠깐만요. 아직 확정된 게 아닌데요.”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민서희는 얼굴을 바짝 들이댄 채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정말요.”

 그리고 그녀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세요?”

 대강당안의 인파는 어느새 거의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안경식은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배고파요. 빨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시죠. 여기 있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안경식은 갑작스런 그녀의 표정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그녀에는 얼굴은 좀 전까지 보였던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되는기고? 그라고 저 가시내 저거 정체가 뭐꼬’

 “참 그라고 지는 박경식이 아니고 안경식입니다.”

 퍽

 “아야.”

 안경식이 외쳐도 귀를 닫은 채, 대강당을 급히 나가는 민서희가 젊은 사내와 부딪히며 동시에 쓰러졌다. 안경을 고쳐 쓰며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 남자는 그리 덥지도 않은데도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초점을 잃은 것처럼 멍하게 보였다.

 “서희씨 괜찮아요? 학생인 것 같은데 그 쪽도 괘안나?”

 “흐흐흐.”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는 얼굴이 경직된 채 입만 웃고 있었다. 마치 실성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깔끔하게 차려입은 것으로 보아 정말 미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그 사내의 눈이 이상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민서희와 부딪히면서 떨어뜨린 낡은 종이꾸러미와 노트를 허겁지겁 챙기기 시작했다.

 “학생 괘안나?”

 안경식은 그 학생이라고 생각되는 젊은 사내를 걱정스러운 듯이 살펴보며, 같이 종이를 집어주기 시작했다.

 “이거 놔. 내꺼야.”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준수한 외모를 가진 그 사내는 앞머리가 흘러내려도 쓸어올리지 않은 채 안경식이 줍고 있는 종이를 낚아채며 소리를 질렀다. 넘어진 민서희도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서고 있었다.

 그 사내는 종이꾸러미와 노트를 다 챙기자, 힘없이 비틀비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 뭐에요? 이상하네요.”

 “그러게요. 겉으로 보아 돌아삔 건 아닌거 같은데 이상하네요.”

 “어?”

 민서희는 그 젊은 사내가 떨어뜨린 종이가 아직 바닥에 2장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자신이 넘어질 때 자신의 몸에 가려서 그 사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 같았다.

 “이거 안 가져갔네.”

 그 종이는 이상한 기호와 수식이 잔뜩 적혀 있었다.

 “아따 고마 버리삐세요. 그런데 넘어진 데는 괜찮아요?”

 안경식이 부산 사투리로 말하며, 그 종이를 가져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자 자신의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민서희는 팔과 엉덩이를 털면서 대답했다.

 “예 괜찮아요. 얼른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죠. 그리고 인터뷰 장소와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세요.”

 “어? 어.. 그거는 아직 전화도 안 해 봤는...”

 “아 빨리 가요. 배고파요.”

 어느새 민서희는 안경식을 팔을 잡고 끌고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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