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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천마, 이계로 강림하다
작가 : 휴고네뷸러
작품등록일 : 2020.9.10

선한 자는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되, 악한 자는 반드시 응징한다

 
깨어나다 [3], 허허, 고얀지고
작성일 : 20-09-17 09:12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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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허허, 고얀지고

 

 

 루인의 저택은 백작가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었다.

 

 영롱하게 내리쬐는 햇살 사이로, 초록의 넝쿨이 저택의 전면을 가득 휘감고 있었다. 멀리서 본다면 자연에 자연에 파묻힌 듯하게 여겨지는 그런 저택이었다. 다만 누군가가 관리하고 있는지 창문 위로 피어오르는 넝쿨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이쪽입니다, 공주님.”

 

 에트라체를 루인의 저택까지 안내해준 건 백작가의 수석 집사장인 이오르였다. 금발의 잘 정돈된 헤어, 흰 스카프가 인상적인 그는 백작가에서 자그마치 20년이나 일한 베테랑 집사였다. 그는 백작가의 지리를 모르는 에트라체 공주를 루인의 방까지 편안하게 안내해주었다.

 

 철컥.

 

 이오르가 문을 닫고 나가자 에트라체는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루인의 방 또한 에트라체의 방과 마찬가지로 정리한 짐들이 한켠에 놓여 있었다. 횡하게 느껴지는 방에는 침대만이 우두커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아직도 안깨어났다고?”

 

 에트라체는 오다가 이오르로부터 루인에 관해 들었다. 결혼식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지 수일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저벅저벅.

 

 에트라체는 서서히 루인에게로 다가섰다. 침대는 가까스로 루인을 받치고 있다. 받침대는 루인을 이기지 못하고 불쌍하게도 휘어져 있다. 휘어진 받침대의 옆으로는 그의 옷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었고, 루인의 몸은 이상하게도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이런 역겨운 놈의 아내가 될 뻔 하다니….”

 

 에트라체는 가만히 서서 루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특히나 꾹 감은 루인의 눈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때 그 눈빛은 뭐였지?”

 

 에트라체는 백작가로 오는 내내 루인의 눈빛에 대해 궁금해했었다. 결혼식 도중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듯한… 뭔가 환희에 가득차 영롱하게 빛나던 그 눈빛….

 

 “근데 예정대로 결혼했으면 평생 후회했겠지?”

 

 궁금함으로 물들었던 에트라체의 눈빛이 삽시간에 날카로워졌다. 궁금한 건 궁금한거고 정작 루인을 보자 결혼식에서의 불쾌감이 화르르 피어올랐다.

 

 “한편으론 고맙기도 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줘서. 이 미친 놈아!”

 

 에트라체가 루인을 볼을 찰싹 후려쳤다. 늘어진 루인의 볼이 팅 하고 흔들렸다. 남들이 본다면 비겁하다 손가락질 할만한 행동이었지만 에트라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결혼식에서의 추태가 떠오르는 듯 루인의 면전에 대고 소리쳤다.

 

 “죽어! 그냥 나가 죽으라고!”

 

 에트라체는 루인에게 저주를 퍼붓고선 또다시 볼을 찰싹 때렸다. 마치 지금껏 참아왔던 분노를 혼신을 다해 쏟아내듯 에트라체의 행동에는 가감이 없었다.

 

 찰싹, 찰싹—

 

 하지만 에트라체, 그녀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루인이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해 막말과 손찌검을 하고 있지만 사실 루인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정확히는 루인의 육체를 차지한 천마가 에트라체의 행동을 무의식 중에서 모두 살펴보고 있었다.

 

 ‘허허, 고얀지고. 자고로 유유상종이라 하였거늘. 참으로 어울리는 한쌍이었군. 한 놈은 한심하기 그지없고, 한 년은 이리도 괴팍하니.’

 

 천마는 볼기짝을 사정없이 휘갈기는 에트라체를 참으로 괴팍하다 여겼다. 흡수한 기억에 의하면 에트라체는 왕국을 차지하고도 지겹도록 루인을 괴롭혔다. 나중에는 그것이 일상화가 되어 하루라도 괴롭히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을 정도였다.

 

 “죽어, 나가 죽으라고!”

 

 ‘네 이년! 내 나중에 아주 혼구녕을 내주마! 나 천마를 능멸한 죄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천마는 에트라체가 행하는 행동들을 뼛속 가득 새겼다. 그녀가 볼기짝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것을, 배를 마구 내려치는 것도, 그리고 갑자기 눈을 만져대며 슬픈 표정을 짓는 것도….

 

 “눈 떠봐, 좀 떠보라고! 결혼식에서처럼 또 날 그렇게 쳐다봐보란 말야!”

 

 ‘방금까진 그리도 발광하더니만 이젠 실성했군.’

 

 천마는 갑자기 루인의 몸을 감싸며 울부짖는 에트라체가 의아했다. 그녀는 마치 조울증 병자와 같았다.

 

 “훌쩍.”

 

 한참동안 루인의 눈을 만져대던 에트라체가 눈물을 훔쳤다. 이제 나가려는지 드레스의 주름을 매만졌다.

 

 “그 눈빛이 뭘 의미하는 지 알고 싶었는데….”

 

 에트라체는 한참동안 멍하니 서서 루인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눈빛이 또다시 분노로 이글거렸다.

 

 “네 까짓게 감히 결혼을 거부해? 전에는 날 보고 그렇게 침을 흘려대더니만. 내가 더러움을 참아가며 결혼해줄라고 했는데. 네가 감히, 감히 뭐? 안해? 안한다고? 죽어! 죽어! 그냥 나가 죽으라고!”

 

 천마는 또다시 볼기짝을 휘갈기는 에트라체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때리면 때릴수록 속이 시원해지는지 손찌검에 거침이 없었다.

 

 ‘이번엔 아주 작정하고 발광을 해대는군.’

 

 한참동안 거침없이 루인을 때리던 에트라체의 손길이 점점 잦아들었다. 잠시 후 그녀가 드레스의 주름을 접으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우… 이제 좀 분이 풀리는 거 같네. 더 늦기전에 이만 가봐야겠지? 안녕, 나중에 생각나면 또 올께.”

 

 에트라체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방에서 빠져나갔다.

 

 철컥.

 

 방문이 닫히자 천마는 무의식을 해제했다. 루인의 몸과 합일을 시도했다.

 

 끔뻑.

 

 눈이 서서히 뜨였다. 루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끼이이거리며 침대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퍼졌다.

 

 “음.”

 

 루인이 침대에 반쯤 몸을 기대었다. 자신의 볼을 어루만졌다. 에트라체의 뜨거운 열기는 아직도 볼기짝 가득 남아 있었다.

 

 “또 온다라….”

 

 루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도 무의식 속에서 엿본 에트라체의 비열한 행동이 머릿 속 가득 남아 있었다.

 

 “무의식 상태에서 수련하는 것도 못할 짓이로군.”

 

 루인이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종아리와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손아귀에도 힘을 주었다. 온 몸 가득 힘을 주며.

 

 “이제 깨어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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