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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망상 증후군
작가 : 빅터하이드
작품등록일 : 2020.9.5

잘못된 상상은 때로는 진실을 뒤집기도 한다.
여자로 오해 받는 남성.
남자로 오해받는 여성.
알아주지 않는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무서워져 가고
그런 그들 앞에 괴담 '얼굴없는 신데렐라'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심령사진을 찍는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작성일 : 20-09-17 07:05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9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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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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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하고도 조용한 분위기의 방.

 조용하고 적막해서 오히려 답답하고 불편해지는 기묘한 분위기.

 아현은 이런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하는 네 쌍의 시선들

 호기심.

 기대감.

 묘한 호감성.

 이 모든 시선들이 자신을 이성으로서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은 오랜 경험상 잘 알 수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이런 시선들이 아현은 너무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들을 전부 파내버리고 싶었다.

 나영이 아현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너 여기서까지 사고 치면 각오해.’

 간단한 협박에 아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진다.

 ‘무, 물론이지. 내가 아무데서나 사고칠 인간으로 보여?’

 함부로 사고쳤다가는, 그것을 빌미로 무슨 요구를 해올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 마저도 기분이 더러워 미치겠는데, 만약 그 이상의 요구를 해온다면 아마 자신은 멘탈이 바스스 부서질 게 틀림없었다.

 아현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애써 누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나영이 옆에 붙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조금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나영은 그런 아현을 한 번 눈짓하다가 안내 해준 남성에게 눈 웃음지으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고마워요. 선배님. 참 친절하시네요.”

 으엑.

 저런 빠른 태세전환은 언제 익힌걸까. 아현은 여자는 역시 변신의 귀재라는 생각을 하며 남몰래 혀를 내둘렀다.

 “나, 나는 그러니까 여기 동아리를 만든, 어…. 그냥 선배야. 그냥 경철선배라고 불러.”

 무언가 잘못한게 있는 지 이쪽을 똑바로 보지 않고 떠듬떠듬 거리며 말하는 남성. 아현은 겁먹을 걸까? 라고 생각해보았지만, 옆에 나영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쪽에 관심이 있어보인 것 같았다.

 ‘에고에고, 또 잘난 남자 하나 낚으셨구만.’

 하긴 저렇게 밝고 명랑하고, 붙임성있는 여자가 있으면 누구라도 호감이 생길 것이다.

 비록 그것이 겉보기의 모습이라도 말이다.

 “근데 너 이름만 주기로 한거 아녔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에 온거야?”

 유나가 나영에게 다가오면서 묻는다. 그러면서도 아현을 흩겨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짧게 보인 경멸과 증오가 뒤섞인 애매모호한 눈빛. 아현은 괜시리 잘못한게 없음에도 그런 유나의 모습에 몸서리를 칠 수 밖에 없었다.

 “나 사실 사진찍는 것에 엄청 관심이 많았거든. 그래서 가입한건데? 굳이 네가 추천하지 않았어도 여기에 왔을 거야. 안그래?”

 나영이 팔꿈치로 아현의 가슴팍을 치면서 동의를 구한다.

 ‘사진찍는것에 관심은 개뿔. 나를 놀릴 계획이나 구상하는 주제에…….’

 하지만 반항은 금물. 아현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그런 나영의 태도에 도끼눈을 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원이 없어 거의 폐부위기인 이 동아리를 살리기위해 나영이들을 끌어들인게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불만을 표현했다가는 선배들이 이상하게 여길지도 몰랐다

 “어, 어쨌든 우리 ‘오컬트 포토’에 온 것을 환영해.”

 경철 선배 눈이 신입생들에게서 계속해서 떼어내지지 않는 걸보니 질투심이 우후죽순 돋아난다.

 ‘이름만 빌려주면 되는데, 쓸데 없는 짓을…….’

 “일단 자기소개가 우선인 것 같은데?”

 덕수의 말이 유나의 생각을 잘라낸다.

 “넵. 저는 디자인과 18학번 임나영이라고 합니다. 평소 사진 찍는데 관심이 많아서 들어오게 되었어요. 예쁘게 봐주세요.”

 “디자인과 18학번 유아현.

 깜찍하고 발랄한, 나영의 소개에 선배들의 얼굴이 풀어진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툭 내뱉는 아현의 소개에 선배들의 얼굴이 굳는다.

 모양세만 예뻤지, 선배도 우습게 보는 듯한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태도에 광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선배 앞에서 말이 좀 짧네, 예쁘면 선배를 우습게 봐도 된다는 건가?”

 “선배 보고 예쁘게 봐달란적 없습니다.”

 “뭐라고? 이 년이 진짜!!”

 날카로운 아현의 말투에 방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보다 못한 나영이 해명하러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광현아 그만둬라.”

 “선배……?”

 광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경철을 바라본다. 이런 후배의 하극상을 왜 말린다는 건가. 경철은 한 번 침묵 후 어렵사리 입을 뗐다.

 “…그 녀석, 남자다.”

 경철의 강렬한 한마디에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몇 초간의 침묵.

 그 답답했던 분위기가 싫었는지, 누군가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진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확인 사살. 아현은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감탄 섞인 한숨이 새어나온다.

 “어, 음. 그러니까…….”

 광현이 떠듬 떠듬 말을 꺼낸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 태도에, 아현은 고개를 돌리며 말을 툭 내뱉었다.

 “괜찮습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광현은 괜시리 이 상황이 짜증나는지, 뒷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신이 뭔가 실수한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선배에게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아현을 추궁했다간, 아무래도 대 선배인 경철의 태도가 마음에 걸린것도 사실이었다.

 “뭐, 어쨌든 우리 부에 온걸 환영해.”

 덕수가 눈치 껏 광현이 있던 자리를 밀어낸다.

 “그런데 여기 동아리가 뭐하는 동아리인지는 알고 가입거야?”

 “네, 사진을 찍는 동아리잖아요.”

 나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한다. 그 말에 덕수가 난감하다는 듯이 안경을 치켜올렸다.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니?”

 유나가 어이없다는 듯 나영이에게 물었다.

 “오컬트 포토잖아? 당연히 사진 찍는 부 아니겠어?”

 “그거 동아리 명 직접 작명하신 경철선배에게 실례야.”

 즉각 반박하는 유나. 그렇다면 그냥 사진 찍는 부가 아닌가? 나영이의 고개가 좌로 삐뚜름하게 기울어진다.

 “나 참, 기가막혀서. 내가 너 가입신청서 줄 때 설명해줬었잖아.”

 답답했던 모양인지, 유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경철은조용했던 동아리가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아, 손으로 유나를 제지했다.

 “우리 동아리는 사진을 주로 찍긴 하지만, 평범한 사진을 찍는 동아리는 아니야.”

 “평범한 사진이 아니라면, 그럼 코스프레라도 찍는 건가요?”

 장난스레 묻는 나영의 물음에 광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코스프레? 우린 그런 애들 장난같은 건 찍지 않아.”

 진지하면서도 어쩐지 서늘해 보이는 그 표정에 분위기 메이커인 나영의 표정도 잠시 굳는다. 그런 얼굴이 마음에 들었는지, 광현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나영의 물음을 답해주었다.

 “우리는 말이지. 유령이나 초자연 현상을 찍는 그런 특수한 동아리라고.”

 “……네?”

 “……에?”

 어이없음과 당황함이 섞인 물음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우리는 특수한 일을 한다는 광현의 자부심섞인 말. 하지만 나영이와 아현에게서는 그 말이 허황된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세상에 귀신을 찍겠다니……. 90년대 이야기 속으로를 찍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그게 가능하긴 합니까?”

 그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였을까? 퉁명스럽게 툭툭 말을 내뱉던 아현조차도 의구심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너 심령사진 같은 거 한 번도 보지 못했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심령사진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연히 찍을 수 있으니까 있는 거 아니겠어?!”

 대담한 말. 어쩐지 사기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현은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광현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동아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심령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만들어진 동아리야. 여기 계신 초대 동아리 회장님이신 경철선배께서 직접 동아리 명칭을 지으시고, 직접적으로 심령사진을 찍으시고 분석하시는 대단하신분이 만든 동아리가 바로 오컬트 포토인거야.”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알아 듣겠다. 경철도 그런 광현의 찬양에 쑥쓰러운지 열창하는 광현을 은근 슬쩍 외면해버렸다. 그런상황에서도 광현은 눈치가 없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우리 동아리에서는 하나의 전통이 있지.”

 “전통이요?”

 나영이 자기도 모르게 반문한다. 그걸 기다렸는지 광현은 나영에게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들이댔다. 어쩐지 보기가 역겨워져 아현이 광현의 앞을 은근슬쩍 가로막았다.

 “그래. 우리 동아리에서만 내려오는 아주 특별한 전통말이야.”

 “야야, 너 설마…….”

 덕수가 광현의 말에 무언가 낌새를 느꼈는지 서둘러 광현의 말을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광현의 말이 더 빨랐다.

 “그건 바로 신입생들은 귀신 사진을 한 장을 찍어야 한다는 거야.”

 순간적인 침묵이 동아리 방에 흘렀다.

 “야야, 그거 언제적 이야긴데, 아직도 하는거야?”

 “언제적얘기는요. 우리 동아리방 전통이니까 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광현이 경철의 말에 쌍심지를 킨다. 경철이 깨갱하며 말을 흘렸다.

 “아니 뭐, 그렇다기 보다. 굳이 그걸 고수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경철의 눈동자가 아현과 나영쪽으로 굴러간다. 정확하게는 아현의 표정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지만, 아무도 그런 경철의 모습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는.

 “에이 선배. 어차피 시작때부터 지켜온 거니까. 예외를 둘순 없죠. 게다가 요즘에 학교에 떠도는 소문 때문에 유령사진 찍는 것도 쉬울 거 아니에요?”

 동아리방에 존재하는 모두의 눈이 유나를 향한다. 유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나영과 아현에게 짖궂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한 마디 했다.

 “얼굴 없는 신데렐라를 찍어오면 괜찮을 것 같은데……. 선배 생각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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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바람이 분다.

 어두운 공간을 타고 흐르는 가벼운 공기가 이리저리 오가며 밤의 기온을 낮고 무겁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노란 띠가 둘러진 골목을 멍하니 바라보던 경철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좀, 위, 위험하지 않아?”

 “에이 여기까지 준비해놓고 빼기는 좀 그렇잖아요.”

 말없이 둘러보던 유나가 애교스럽게 입을 열며 살포히 경철의 옆구리를 찌른다.

 “어차피 준비도 다되어 있고, 신입들도 의욕이 넘치는 것 같은데 이대로 진행해요 우리.”

 경철의 시선이 살포시 아현이 있는 쪽으로 돌린다.

 “야. 내가 왜 여장을 해야하는건데!!”

 “어쩔 수 없잖아! 귀신이 여자만 좋아하는 변태인데! 그럼 진짜 여자인 내가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리?!”

 “그럼 나는 위험해도 된다는 거야?!”

 “넌 어차피 쌈 잘하잖아! 안되면 도망갈 수 있는 건강한 두 다리도 있는 데, 뭐가 문제야!”

 “이 치맛자락으로 제대로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해?!”

 구불거리는 웨이브진 노랑 머리 여자애와 입씨름 하면서 어떻게든 결사 반대를 외치고 있는, 푸른 여성용 한복을 입은 여성보다 더 예쁜 남자애.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뭘까?

 경철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른 알 수 없는 감정을 내리 누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괜찮…겠어?”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나영이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든다.

 “안가니까 괜찮은 거겠지. 난 안괜찮거든!”

 옆에서 아현이 불만섞인 얼굴로 항의한다. 하지만 나영은 그런 아현의 반응을 깨끗이 무시하곤,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듯 아현의 얼굴을 이모저도 뜯어본다.

 “오늘도 나는 내 실력에 무시무시함을 감출 수가 없구나.”

 재수없을 정도로 자화잔찬하는 나영. 하지만 아현을 제외한 모두는 그런 나영을 감히 재수 없다고 여기진 않았다. 대신 아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단 한가지의 생각만 떠올렸다.

 ‘이거 진짜 남자 맞아?’

 뷰루퉁 하게 화가 난 아현의 얼굴은 정말이지 누가와도 반할 정도로 매력이 흘러 넘쳤다. 아현을 싫어하는 유나도 잠깐 가슴이 두근거렸을 정도인데 남정네들은 오죽할 정도였을까.

 “주, 준비 다 됐으면 일단 출발하는 게 어때?”

 광현이 떠듬떠듬 거리며 아현에게 카메라를 하나 내밀었다. 요즘 나오는 최신식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으로 현상하는 오래된 구식 필름 카메라였다.

 “그냥 폰카로 찍으면 안됩니까?”

 아현이 폰을 복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솔직히 가기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기에, 폰으로 찍으며 나영과 카톡을 하는 편이 분위기 전환에도 좋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광현의 대답은 ‘노’였다.

 “유령이 그런 최신식 카메라에 찍힐거 같아? 이건 우리의 연구와 조사가 만들어낸, 노력의 산물이라고! 그러니까 군말 없이 받아.”

 “저어, 이거 사용법은……?”

 “셋팅은 덕수녀석이 다 했으니까, 셔터만 누르면 돼. 어려울 거 없어.”

 반강제적으로 넘겨지는 카메라. 아현은 카메라를 이모저모 살펴보면서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런 오래된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그것보다 진짜로 혼자서 귀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게 조금 서글퍼졌다.

 아현은 들어가서 그냥 배경만 찍고 곧바로 나오기로 결정했다. 귀신이든 유령이든 뭐가 문제랴. 그냥 먼지라도 하나 크게 찍히면 그게 유령 사진이라고 우길 생각이었다.

 “…진짜 혼자가도 괜찮겠어?”

 나영이 사람들 몰래 따라와 뒤에서 나지막이 묻는다.

 “그냥 아무가나 찍지 뭐, 설마 별일 있겠어?”

 아현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담하게 말했다. 나영은 그런 아현의 모습에 어쩐지 미안해져,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안되면 그냥 가발 풀어헤치고 네 셀카라도 찍어. 사람 같지 않아서 더 유령같아 보이테니까.”

 “그래, 그래.”

 아현은 손전등을 들고 어두운 골목길을 나섰다.

 불빛이 밝은 곳에서 점점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어쩐지 어두운 심해로 들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손전등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마치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것 같았다.

 가벼운 손전등이 약하게나마 불빛을 이리저리 비췄지만, 두꺼운 장막처럼 덮여진 어둠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현은 마치 어둠이 자신을 향해 달라붙어 온다고 느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깊고 어둡고 두꺼운 커튼.

 아현은 약한 손전등 빛으로 어떻게든 용기를 쥐어쨔내 어떻게든 어둠을 걷어내고 좁은 골목을 걸었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지나,

 마지막 불꺼진 가로등을 지나쳤을 때,

 아현은 그곳에 도착했다.

 통칭 ‘흉가 마을’이라고 이름 붙여진 거대한 상가. 아현은 침을 꿀꺽 살피며 손전등을 간판에 가리켰다.

 어슴푸레한 입구 간판이 다 비치지도 못하고 회백색으로 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괴기스럽고 위압적인 위용에 아현은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끼며, 손전등을 거두고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일단 여기서 하나 찍자.’

 -찰칵.

 셔터음과 함께 플래시의 빛이 환하게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는 빠르게 어둠에 먹혔다.

 잘 찍혔을까?

 맨눈으로는 확인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필름 카메라인지라 잘 찍혔는지 알 방법조차 없었다.

 다만,

 입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서 카메라 플래시에 반사된 무언가가 하나 있었다.

 “?”

 갑작스레 호기심이 일었다.

 아현은 상가로 들어가려다 말고, 빛이 반사된 곳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확연하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노란 끈처럼 생긴 것이 그 어두운 주변을 둘러쳐져 있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것은 TV뉴스에서, 또는 스릴러물 드라마에서 볼법한 출입금지 테이프였다.

 선명하게 찍혀 있는 [출입금지-POLICE LINE-수사중]이라는 문장.

 그제야 아현은 아침에 누나에게 들었던 여고생 살해 장소가 이곳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기의 온도가 급속도로 내려갔다.

 아현의 발이 자기도 모르게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사람이 살해된 장소라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존재감이 있었다.

 위압감이든,

 공포심이든,

 거부감이든,

 인간의 본능을 건드릴만한 무언가가, 아현을 위협하듯 그 거대한 존재감을 어슴푸레하나마 드러내고 있었다.

 ‘시체가 이곳에서 발견되었었구나.’

 아현은 가져서는 안될 위험한 호기심을 느끼며, 손전등으로 테이프 끈 안쪽을 휘저어 보았다.

 노란 테이프 끈을 한 쪽 골목을 중심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골목 안쪽 끝까지 끈이 둘러져 있는 걸로 봐서는, 안쪽에서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

 슬그머니 고개를 빼꼼이 내밀어 고목 안쪽을 살펴보았다,

 가로등이 없어서인지, 짙은 어둠이 골목 안쪽까지 깊게 깔려 있었다. 주변에 사는 사람도 없는 모양인지, 어디 얕은 불빛 하나 없어 보여, 마치 끝없는 무저갱과도 같았다.

 ‘확실히 범인이 숨어서 습격하기 딱 좋은 곳이긴 하네.’

 경찰이 한번 휘젓고 간 뒤라, 범인이 있을리 만무하겠지만, 그럼에도 머리끝에서 차오르는 오한은 아현의 가슴을 뒤흔들기엔 충분했다.

 “하아.”

 아현은 나직이 심호흡을 하며, 억지로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켰다. 남자답지 못하게 여기서 꼴사납게 도망가는 것은 옳지 않다. 어차피 범인도 자리에 있지는 않을 것이고, 나타난다 해도 충분히 때려 눕힐 자신이 있었다.

 아현은 카메라를 들어 접근 금지 테이프 안의 어두운 공간을 겨냥했다.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 무시무시한 공간을 찍어가면 굳이 유령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선배들이 봐줄거라는 얄팍한 속셈이 숨어있었다.

 -…….

 “어?”

 셔터가 제대로 눌러지지 않는다. 아현은 당황해서 몇 번이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카메라는 특유의 셔터음을 내지 못하고 버튼만 아무소리없이 들어갈 뿐이었다.

 ‘설마 벌써 고장인건가?’

 아현은 카메라를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아무키나 눌러도 보았지만, 카메라는 요지부동이었다. 하긴 겉보기로도 무척 오래된 카메라였다. 고장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근데 내가 고장냈다고 주장하면 어떡하지?’

 아직 제대로 된 사진하나 못 찍었다. 이런 몰골로 ‘죄송합니다. 카메라가 고장나서 유령을 찍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면 ‘그래 오냐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넘어가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초리던데

 대 선배라는 작자를 묵사발 낸 전적도 있으니 더더욱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리라. 여기까지 생각한 아현은 결국 고장난 카메라를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자박.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자갈을 밟는 나지막한 소음.

 아현의 심장이 그대로 덜어졌다.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자갈을 밟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오로지 발자국 소리만 들려오는 누군가.

 ‘설마 범인?!’

 그럴 일은 일어 날 리 없다. 이미 경찰이 왔다 간 곳인데, 설마 간 크게 여기에 다시 돌아올까.

 하지만 아현의 마음 한 켠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이민다. 대담한 범행을 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온전히 잘 있나 하는 사이코패스적인 심리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와 동시에 경찰의 동행도 살펴볼 결이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아현의 머릿속엔 이미 한권 짜리 분량의 스릴러 소설의 시놉이 하나 완성되어 있었다.

 -자박.

 -자박.

 발자국 소음은 점점 더 커져가고, 아현의 심장 또한 그에 비례하게 점점 더 커져간다.

 막 달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을 지나가려는 일반 행인의 걸음걸이도 아니다.

 그 소리는 마치 아현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듯, 천천히, 또는 극도로 느리게 걷는 그런 소리였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움직임.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아현은 자신의 뒤에 다가오는 녀석이 자신을 노린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여성이라고 판단 것이리라. 그리고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자신을 뒤에서 덮쳐 살인 행위를 할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것이 쾌락본능이든, 아니면 중요한 의미가 있든 간에 말이다.

 아현으 그 방심을 이용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손에 든 것은 손전등과 고장난 카메라 한 대.

 무기로서는 별 도움도 안되겠지만, 적어도 놀라게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머지는 놀란 틈을 타, 기습적으로 턱이나 가슴을 공격하는 것 뿐.

 -자박.

 -자박.

 소리가 매우 가까워졌다. 바로 등 뒤에 있는 것 같은 발자국 소리에 아현의 몸이 절로 긴장으로 경직된다. 마치 숨소리가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자박…….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

 ‘지금 이다!’

 본능이 외침과 동시에 아현의 몸이 움직였다. 허리를 뒤틀며, 손전등을 등 뒤에 있는 놈에게 겨눴다. 그리고 그대로 버튼을 눌렀다.

 -달칵.

 “으윽……?”

 캄캄한 어둠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습격자의 당황한 모습이 아현의 시야에 그대로 잡혔다. 아현은 앞 뒤 생각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무식하게 잡고는, 습격자의 턱을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

 하지만 아현의 계획은 생각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습격자의 몸놀림이 생각보다 괜찮은지, 어느사이엔가 자세를 잡고 휘두른 손목을 붙잡았던 것이었다.

 “칫.”

 하지만 여기서 당황할 아현이 아니었다. 아현은 자연스레 손전등을 잡은 손으로 그대로 습격자의 복부를 후려쳤다.

 아니 후려치려고 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습격자가 만류하며, 아현의 손을 놓는다. 카메라를 든 손이 자유로워졌지만, 아현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중성적인 목소리. 당황해서 목소리가 좀 올라가긴 했지만, 아현은 이 특유의 중성적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단박의 알아챌 수 있었다.

 아현은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을 신음처럼 흘렸다.

 “임수빈……?”

 습격자가 천천히 눈을 가렸던 두 손을 내리며 한 마디 했다.

 “일단 그 손전등부터 치우는 게 어때?”

 
작가의 말
 

 왠지 너무 긴거 같아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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