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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남자는 신스틸러
작가 : 조윤서
작품등록일 : 2020.9.15

징계 먹은 강력계 여형사 송백설과 영화판의 신스틸러이자 호텔 상속자인 차도현의 수상한 연애.

 
4.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작성일 : 20-09-16 22:58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7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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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이동의 산비탈을 깎아 만든 419로가 거의 끝나는 지점. 오른쪽 골목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북한산 능선을 배경으로 한 아담한 게스트하우스가 시선을 끌었다.

 진회색과 흰색 벽돌이 조화를 이룬 벽에는 커다란 창이 시원스레 나있고, 담쟁이 넝쿨이 창 주변에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는 대형 걸개천은 이 집의 랜드마크. 조명을 받고 있는 걸개천 속의 인물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중년의 남자 얼굴이다.

 독특한 모자와 산악용 고글, 눈 덮인 설산의 모습이 그가 전문 산악인임을 말해주었다.

 반쯤 열린 초록색 출입문 옆으로 창가를 따라 자전거와 화분, 간이 테이블과 의자, 철제 간판이 놓여있다.

 프런트에서 20대 후반의 키 큰 남자가 보고 있던 책에서 눈을 들었다.

 “엄마, 누나 어제 안 들어왔어. 연락 없었죠?”

 두툼한 객실용 수건을 개고 있던 50대 후반의 여성이 한숨을 쉬었다. 백설의 모친 영희다.

 “늬 누나가 집에 연락하고 다니는 위인이냐. 어째 그런 건 지 아빠를 빼다 박았는지, 원.”

 “형사가 그렇지 뭐. 내 매형 될 사람은 다른 건 몰라도 인내심은 갑이어야 할 걸? 부인이 허구한 날 집 나가서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혼자 놀기, 혼밥의 달인이면 더 좋고. 하하.”

 “웃음이 나오냐, 인석아! 나는 늬 누나 저러다 아예 시집도 못 가고 죽을까봐 걱정이 태산이야.”

 “설마 누나 데려갈 남자 없을까봐서요? 그 정도면 괜찮은 캐릭터에요. 가끔 불의를 못 참고 공짜를 좋아해서 그렇지. 걱정 마세요.”

 “에휴, 남자라곤 형사 빼면 죄다 범죄자만 만나니, 어느 세월에!”

 “사실은 빚 갚느라 시집 못 가고 있는 거 엄마도 잘 아시면서.”

 할 말이 없어진 영희가 잦아 들어가는 목소리로 푸념했다.

 “내가 죽기 전에 그 새끼를 꼭 잡아야 하는데. 당체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아서요, 엄마. 보이스피싱 조직을 어디 가서 잡아요. 중국 대륙은 또 좀 넓어요?”

 형사 모친이 중국 연변 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지설은 한껏 기가 죽은 엄마를 향해 방긋 웃었다.

 “오늘 친목계에서 온천 가신댔죠?”

 “응. 좀 있다 출발이야. 오늘 토요일인데 너 혼자 괜찮겠니? 늦어도 밤 8시까지는 돌아올게.”

 “자정에 오셔도 되요. 오랜만에 가시는 건데 재미있게 놀다오세요. 여긴 걱정 마시고.”

 영희가 넙죽 고개를 끄덕이며 3층의 프라이빗룸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갔다.

 “간만에 화장 좀 해야지. 어차피 온천 가면 다 지울 테지만, 호호.”

 그다지 크지 않지만 정성을 꽤 많이 들인 듯한 외관과 그보다 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은 내부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백설게스트하우스’.

 산악인으로 한평생 살다가 히말라야에서 천귀의 객이 된 백설의 아버지가 남긴 전 재산이었다.

 

 ***

 

 아침햇살이 커튼 사이로 무자비하게 들어왔다. 눈 뜨기 싫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던 백설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시선이 오갈 데 없이 흔들렸다.

 “여, 여기가 어디야?”

 문득 조각처럼 잘 생긴 남자의 얼굴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차, 도, 현!”

 때마침 흰 차렵이불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어깨에서 스르륵 미끄러져내려 매끈한 상체가 드러났다. 황망하게 내려다본 시선에 벌거벗은 가슴과 유두가 보이자 화들짝 놀란 백설은 양 다리 사이에 끼어있는 나머지 이불마저 젖혔다.

 “뭐뭐뭐, 뭐야 이건! 나 왜 벗었어? 내 옷!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이 침대 발치에 있는 전신거울에 비쳤다.

 일단 허둥지둥 침대에서 내려와 속옷을 찾았다. 팬티와 브래지어가 협탁 위에 잘 개어진 채 놓여 있었다.

 “우어어, 저것들은 왜, 왜 각이 잡혀 있어! 설마 내가 그랬다고?”

 믿을 수 없는 현장이었다. 속옷이 개어져 있다니!

 그녀는 엄청난 의구심 속에 속옷을 챙겨 입고, 어젯밤까지 입고 있던 청바지와 곤색 라운드 티셔츠, 양말을 옷장 속에서 찾아냈다.

 점퍼까지 입고 나서 모종의 흔적을 찾아 방구석을 이 잡듯이 뒤졌다. 쓰레기통은 물론 화장대 위, 서랍장, 신발장, 냉장고 등등.

 “아씨, 휴지 같은 건 없냐고! 증거물!”

 20분이나 뒤졌는데도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침대 옆 협탁 서랍에서 뜯지 않은 콘돔이 나온 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걸 증거라고 할 수 있나? 이걸 안 쓰는 놈들이 쌔고 쌨는데!”

 현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운동화를 보며 백설은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도대체 어젯밤 여기서 나 뭐 한 거니? 분명 그 작자가 날 여기 데려왔을 텐데. 도통 기억이 안 나네…….”

 당황한 백설은 욕실로 들어갔다. 팬티를 내려 스스로 신체검사까지 했으나 은밀한 부위는 물론 팬티까지도 너무 깨끗했다.

 “이렇게나 흔적이 없다는 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반증인데.”

 그녀는 손목에 걸린 고무줄을 빼 머리를 질끈 묶은 다음 내친 김에 욕실을 조사했다. 욕실에서도 머리카락 한 올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비누를 사용한 흔적도 없었고 칫솔 두 개도 뜯지 않은 채였다.

 입안이 텁텁한 걸 보니, 간밤에 씻지도 않고 잔 건 확실했다.

 “결론은 난 어젯밤, 그 작자랑, ……안 잤어. 그게 팩트야.”

 하지만 치사하게 날 여기 데려다놓고 그냥 이 방을 나갔나 보군. 아니, 그걸 치사하다고 해야 하나? 바라던 바 아니었어?

 백설은 왠지 모를 짜증을 잔뜩 실어 외쳤다.

 “근데 여긴 대체 어디냐고!”

 단번에 커튼을 확 열어 제쳤다가 실소가 터졌다.

 “뭐냐 여기. 나 참 어이없어서.”

 지난 밤 자신이 어디서 잤는지에 대한 의문은 곧 풀렸다. 창문 밖으로 익숙한 골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움직여 몰래 계단을 내려가 현관으로 내뺐다.

 고양이처럼 소리도 없이 골목을 돌아서 자신의 집, 아니 엄마의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한달음에 왔다.

 그리곤 ‘백설게스트하우스’라고 써진 추녀 밑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아니, 우리 집 놔두고 왜 옆집에서 잔 거야? 그것도 평소 엄마랑 웬수지간인 라이벌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만치에 방금 그녀가 나온 게스트하우스의 간판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백운대게스트하우스.

 어젯밤 저기서 대체 그 작자랑 무슨 짓을 했는지 꼭 밝혀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치매환자처럼 필름이 뚝, 끊겼다는 사실이었다.

 “키스로 퉁치자고 말한 건 기억나는데……. 그 다음이 참, 껄적지근하네.”

 제 발 저린 범죄자의 몸짓으로 현관을 지나 3층 자기 방으로 가는 계단까지 살금살금 걸었다.

 “누나 왔네? 어젠 어디서 잤어?”

 뒤통수로 날아든 목소리에 백설은 멈칫했다. 동생 지설이었다.

 “겨, 경찰이 자긴 어디서 자? 차에서 잤지. …잠복.”

 “나쁜 놈들이 설쳐대니까 우리 누나가 고생하네. 2층 다이닝룸에 먹을 거 있고 엄만 오늘 친목계에서 온양온천 가셨어.”

 “어, 알았어. 난 오늘 오프야. 잘 테니 깨우지 마.”

 “진짜? 웬일로 오프야? 그럼 저녁에 삼겹살 구울까?”

 “그러던지.”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 백설은 방에 딸린 작은 욕실로 먼저 들어갔다. 옷을 모두 벗고 샤워기 아래 서서 코를 킁킁거렸다. 여전히 미심쩍었다.

 “몸에서 냄새는 안 나. 내 몸에 손 댄 건 아닌 것 같아. 라고 말 할 수 있나? 놈이 야비하게시리 거사 후 감쪽같이 흔적을 지웠다면?”

 제발 좀 형사의 촉을 발동시켜야 한다. 이게 어디 보통 사건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송백설이 연루된 남녀상열지사 아닌가!

 샤워기의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백설은 곰곰이 추리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협탁 위에 잘 개어진 속옷, 옷장에 걸려있는 겉옷들, 줄 맞춰 정돈된 운동화, 깨끗한 쓰레기통과 서랍장, 사용하지 않은 욕실비품. 그리고 콘돔.’

 이런 정황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백설은 머리에서 비누거품을 줄줄 흘리며 소리쳤다.

 “놈이 벗긴 거야! 난 평소에 알몸으로 자는 버릇이 없어. 그 자식이 내 껄 다 본 거라구! 내 가슴, 내 거기…….”

 설령 남녀 간의 그렇고 그런 야한 짓이 없었더라도 그 놈이 내 옷을 벗기고 벗은 몸을 봤다는 건 자명했다.

 술 취한 여자를 숙소에 데려다주었으면 그냥 갈 일이지 왜 굳이 벗겨주고 갔던 것일까.

 “난 절대로 속옷 따위 각 잡아 접어놓지 않는다구. 그게 제일 수상해! 사이코 새끼! 잡아서 족쳐야해.”

 박수찬에게 놈의 전화번호를 물어봐야 했다. 아니다, 휴대폰에 번호가 남아 있던가? 놈을 어떻게 찾아 조질까 궁리하다 보니 그녀는 샴푸 대신 바디워시로 머리를 감아버렸다.

 

 ***

 

 온양온천 타운의 가장 핫한 리조트 내 유황 사우나.

 찜질복을 입은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중앙홀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삶은 달걀을 까먹고 있었다. 그중 대장인 듯한 여자가 바닥에 달걀을 내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어, 사모님 어쩐 일이세요? 잘 지내시죠? …아니, 저런! …그럼요, 알다마다요. 지금 마침 온천에 같이 있어요. …비밀리에? 부탁은 해볼 테지만 워낙 강직한 형사라….”

 계란을 입에 넣던 백설의 엄마 영희가 통화 내용을 듣다가 어림도 없다는 듯 으름장을 놓았다.

 “아니, 대체 누군데 그래? 그거 직권 남용이야! 우리 딸이 그렇게 쉬운 형사인줄 알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하지만 10분 후, 그녀는 몰래 화장실로 가서 백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다음 날 성북동 고급 주택가 골목.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르네상스 풍의 커다란 대문 앞에 낡아빠진 파란색 해치백 차량 한 대가 섰다.

 백설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갈색 점퍼에 흰 반소매 티셔츠, 청바지가 탄탄한 몸 선을 그대로 드러내주었다.

 “이 집이 맞나?”

 문패를 확인한 그녀는 망설이지도 않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송백설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대문이 열리자 백설은 정원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단숨에 뛰어올랐다. 현관문 앞에 기다리고 서있던 주인 여자가 무척 초조한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나이는 40대 후반쯤. 번뜩이는 금테안경을 밀어 올리며 의뢰인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백설게스트하우스 따님, 맞으시죠? 강북서 형사님.”

 “네, 송백설 경삽니다.”

 이번에도 역시 자신이 정직 중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응접실의 호화로운 소파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이번 한 번뿐이야. 진짜 이번만이라고.’

 백설은 정직하게 살라고 했더니 또 정직이냐며 어젯밤부터 내내 신세 한탄을 하는 엄마의 요구를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성북동 부자 사모님은 그녀에게 은밀한 미션을 주었고, 피차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절대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공증 각서에 나란히 서명했다. 얘기가 끝난 후 두 사람은 차고로 갔고, 거기서 백설은 딱 석 달 타서 새 거나 다름없는 짙은 파란색 SUV 차량을 보았다.

 “색깔 쥑이네!”

 

 ***

 

 그리고 지금 눈앞에, 의뢰인이 말했던 바로 그 은밀한 장소에, 사흘 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그 문제적 남자가 있었다. 피 묻은 손을 번쩍 치켜든 채로.

 차도현. 그는 꽤 값나갈 것 같은 검정색 점퍼에 검정 진, 검정 모자 일색이었다. 잘 생긴 얼굴에서 위험한 매력이 철철 흘러넘쳤다.

 “내 말 안 들려? 손 들라구!”

 이 남자가 어떻게 여기 있어! 더구나 이런 피비린내 나는 범죄의 현장에서. 그녀의 눈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형사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너 잘 만났어, 이 변태 같은 놈! 그날 밤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바닥에 엎드려있는 남자를 눈으로 가리키며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당신 짓이야?”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그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자신을 쏘아보는 시선엔 어쩐지 원망이 가득했다. 싸늘한 표정으로만 보면 오히려 자신보다 더 형사처럼 보일 정도였다. 뭔가를 꾹꾹 눌러 참고 있는 듯 턱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하, 주객이 전도된 저 표정은 뭐냐고!

 “그 말을 믿으라고?”

 “사실이니까. 내가 한 짓이라면 왜 아직 여기 있겠습니까? 이렇게 손에 피를 묻히고서.”

 그러고 보니 주변엔 흉기도 없고 싸운 흔적도 없었다.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그의 깨끗한 얼굴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무심했다. 오로지 손바닥에만 피가 묻어 있었다.

 이상하네. 형사의 직감과 정황 증거로 봤을 때 이 남자는 범인이 아니란 건데.

 더구나 자신을 노려보기만 할 뿐 위해를 가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백설은 그제야 가스총을 내렸다. 쓰러진 남자의 코에 손을 갖다 대니 호흡이 남아 있었기에 도현을 올려다보며 명령했다.

 “뭐해요? 빨리 구급차 불러요!”

 그는 여전히 그녀를 쏘아보았으나 전화를 걸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 듯 몸을 돌렸다. 순간 잽싸게 일어선 백설이 그를 제지했다.

 “잠깐! 그대로 있어요, 내가 전화할 테니까.”

 이 남자가 범인은 아니어도 목격자일 가능성이 현재로선 90프로 이상이다. 백설은 입구를 몸으로 막고 전화를 걸었다.

 “…네, 여기 양백산 정상 부근입니다. 정상 아래 약 2킬로미터 지점이요. 오른쪽으로 민가가 하나 있고 거기서 약 300미터 올라오면 오른쪽에 송전탑이 보일 거에요. …네, 빨리 오십쇼. 왼쪽 측두엽에서 출혈이 심합니다. …네, 그럼.”

 이번엔 단양 시내 모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신호가 한참 간 후에야 취한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송 경사님?

 “네, 접니다.”

 -그 인간 분명히 여자랑 같이 있었죠? 증거는 잡았어요?

 백설은 되도록 침착한 어조로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뇨, 여자는 없었습니다. 근데 말씀하신 곳에서 파티가 열린 흔적도 없어요. 남편분이 많이 다치셨습니다. …그건 아니니 진정하세요. 구급차가 오고 있으니까 일단 단양 시내 병원으로 옮기겠습니다. 차량은 견인차로 이동 조치하고, 단양경찰서에 협조요청…, 네? 신고하지 말라구요? 왜죠?”

 경찰에는 절대 신고하지 말아달라는 의뢰인의 다급한 부탁이 이어졌다. 남편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고향인 단양에서 출마할 예정인데, 갑자기 고향 동창회에서 사고가 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선거에 좋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여자 문제가 얽혀있다면 낙마가 분명하다고 했다.

 백설이 짧게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죠. 목격자가 한 명 있으니 조사를 하면 뭔가 나오겠죠. …네, 일단 병원으로 가 계세요.”

 과연 차도현은 목격자인 것일까. 아니면 피 묻은 손이 말해주듯 범인인 것일까. 나한테 한 짓만 봐도 그렇고 여러 모로 아리까리하고 캐낼 게 무궁무진한 놈이다.

 휴대폰을 점퍼 주머니에 넣자마자 저 산 아래쪽에서 구급차의 요란한 사이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청 빠르네. 나 성질 급한 거 어떻게 알고.”

 백설은 통나무 벽으로 된 작은 창고 건물로 들어섰다. 희미하게 피해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으나, 차도현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이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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