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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진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작가 : 화산호
작품등록일 : 2020.9.11

“나랑 사귀자!”
진심 1도 없는 고백이란 걸 알지만
커플이 되어 살아남아 우승해야만 끝이 나는 유튜브 인기 방송,
<리얼 청춘 낭만 서바이벌 쇼: 하이틴 스캔들>에 출연하게 된 12명의 고등학생들.
서로의 정체를 살피며 아슬아슬한 연애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한다.

뭔가 유치한 프로그램에 쭈뼛쭈뼛 참가하게 된 권재하!
최대한 존재감 없이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첫 번째 탈락자가 되는 것이 원래 목표였다.
그런데!
왜 나보고 웃어 자꾸!
왜 삼겹살 그거 내 밥에 올려주고 난리야!
분명히 날 좋아하는 게 아니란 걸 아는데
이러면 탈락하기 싫어지잖아.
점점 살아남고 싶어진다고!
다음 라운드에서도 너를 계속 보려면
다른 애한테 고백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진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 애에게 그러면 나는 완전 양아치잖아.

 
5. 짠 거, 단 거, 마무리는 사이다
작성일 : 20-09-14 22:30     조회 : 276     추천 : 0     분량 : 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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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시멜로만 사면되지?”

 재하의 말에 최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냥하게 물었다.

 “안 힘들어?”

 “마트 오는 게 뭐 힘든 일이라고. 잠깐 나오니까 좋아.”

 “아니.”

 최지민이 또 리트리버처럼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촬영 말이야. 나는 영 어색하고 그래.”

 재하는 최지민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혼자만 생각했던 것을 줄줄 터뜨렸다.

 “나도 당연히 그렇지. 미치겠어, 정말. 내가 미쳤지. 왜 이거 한다고 했는지 몰라. 난 솔직히 이 방송 잘 보지도 않았어. 완전 오글거리고 주작 심하고. 그런데 내가 출연이라니. 말이 돼? 나 봐봐. 좋게 말해서 평범하다 정도지 이런 방송에 나올 얼굴이 아니잖아. 방송 나가면 완전 욕으로 도배가 될 거야. 이 생각하면 정말 잠도 안 오고, 진짜 눈물 날 거 같아.”

 최지민은 잠깐 뻥하게 있더니 큰 소리로 웃었다.

 “권재하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봐.”

 “뭐?”

 “너 완전 얌전한 범생인 줄 알았어.”

 “내가? 왜?”

 재하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말도 별로 없고. 그냥 조용히 웃기만 하고. 별로 꾸미지도 않고.”

 “이 상황이 너무 낯설어서 쫀 거거든? 그리고 잘 못 꾸미는 거지 안 꾸민 건 아니고! 예쁜 애들 틈에 끼어있으니까 내가 쭈굴해 보였겠지, 뭐.”

 “아! 아니야. 절대 아니야. 재하 너도 정말 예뻐!”

 “그래, 그래. 고마워.”

 재하가 장난스럽게 웃자 최지민이 이마에 나지도 않은 땀을 닦으며 난감해했다.

 “장난이야. 장난. 괜찮아. 사실 첫 회에서 바로 처형당하고 탈락하는 게 내 목표거든. 그래서 그렇게 보였나 봐.”

 마트의 꽉 찬 진열대 사이를 지나면서 재하는 카메라를 피해 살짝 속삭였다.

 “촬영 끝날 때까지 비밀로 해 줘!”

 최지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재하는 살짝 미소 지었다.

 촬영이 아니면 만날 일 없다는 속 좁은 생각으로 출연하는 아이들과 친해 질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이지만 가까워지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 재하는 신기하고 좋았다.

 “재하야!”

 윽!

 갑자기 최지민이 휙 끌어당기는 바람에 재하는 휘청거렸다.

 동시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통조림 캔들이 떨어져 내렸다.

 “아이고!”

 반대편에서 물건을 진열하던 아주머니가 놀래서 얼른 달려왔다.

 “괜찮아요? 아이고, 어린 학생들이 재빨라서 피했지, 큰 일 날 뻔 했어.”

 최지민은 괜찮다고 대답하며 서둘러 재하를 살폈다. 혹시 다친 곳은 없냐고 묻는 최지민을 향해 재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너 오늘 두 번이나 구해줬어! 고마워.”

 재하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최지민에게 인사하자 최지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권재하는?”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 온 김산이 여자애들이 모여 있는 벤치 쪽으로 와서 권재하를 찾았다.

 “넌 3번 이야.”

 이은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시 묻는 김산을 향해 차해인이 대답 대신 저쪽을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우서진과 정은성이 팔짱을 끼고 잔디 위에 앉아 김산을 보고 있었다.

 “권재하 만나려면 정은성 뒤에 서면 돼!”

 이은주가 놀리자 김산은 머쓱한 듯 웃었다.

 “최지민이랑 권재하 둘 다 안 보이는데? 어디 간 거야?”

 보다 못해 김산 대신 김희윤이 나서서 물어봤다.

 “마시멜로 사러 갔대. 곧 올 거야.”

 먼저 와 있던 이승호가 캠핑용 미니 화로에 불을 붙이면서 대답했다.

 “최지민이랑? 둘만?”

 김희윤의 물음에 이규진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둘이 간 건 아니지. VJ 오빠도 같이 있으니까.”

 “근데 최지민 엄청 착한 것 같더라.

 차해인이 미술과 애들을 향해 말했다.

 “왜?”

 문현빈이 물었다.

 “그냥. 내가 지나가는 말로 마시멜로 구우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자기가 사오겠다고 그러더라고.”

 차해인의 말에 강나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걔 중학교 때도 착한 것 같았어.”

 “그래? 내가 들은 거랑 다르네?”

 강나연의 말에 이번엔 이은주가 얼른 나섰다.

 “니가 들은 건 뭔데?”

 정은성이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걔 관심병 이었다던데?”

 이은주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정말?”

 이규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한테 들었는데.”

 이은주가 약간 신난 듯 말을 이었다.

 “중학교 때 최지민이 한 달 넘게 매일 다리 다친 친구를 도와줬대. 등하교 때 가방 들어주고 부축해 주고. 쌤들이랑 애들이 최지민 착하다고 엄청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친구 다친 거 최지민 짓이었다더라? 무섭지?”

 “에이! 말도 안 돼.”

 김희윤이 못 믿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문현빈! 너 최지민이랑 같은 중학교라며. 이 얘기 진짜야?”

 가만히 듣고 있던 우서진이 문현빈에게 물었다.

 “글쎄. 소문은 그랬는데, 모르지 뭐.”

 문현빈의 말에 김산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텐트 칠 때 재하가 넘어질 뻔 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왜 그래?”

 정은성이 김산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김산은 자기가 본 것이 자꾸 걸렸다. 재하가 텐트에 걸려 휘청 일 때 최지민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잘못 본 거라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은주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닌 것 같았다.

 “아. 그냥. 최지민 그렇게 안보여서.”

 하지만 김산은 대충 얼버무렸다. 정확한 것도 아닌데 괜히 떠들어대고 싶지 않았다.

 대신 얼른 재하에게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네 어디 가게?”

 이규진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우서진, 정은성 그리고 김산이 동시에 일어선 것이다.

 “마트 가보게. 얘네 둘이서만 몰래 뭐 사먹는 거 같아.”

 우서진의 유치한 변명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이규진은 웃지 않았다.

 

 “이리 줘!”

 마트를 나오면서 최지민은 재하가 안고 있던 마시멜로 봉지들을 자기가 들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가벼워. 내가 들어도 돼.”

 무게감 없는 마시멜로를 굳이 들어주려는 최지민을 보며 재하는 고개를 저었다.

 최지민은 재하의 거절에 내밀었던 손이 민망했는지 표정을 약간 굳혔다.

 “그냥 주면 되지. 왜 갑자기 철벽이야?”

 “뭐?”

 최지민은 촬영하는 VJ가 한 참 앞서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재하에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좀 전까지는 엄청 살갑게 굴어놓고 지금은 아니잖아.”

 재하는 깜짝 놀라 최지민을 바라봤다.

 “권재하 너 카메라 있을 때만 나랑 친한 척 하는 것 같다?”

 최지민이 말을 마치고 시무룩한 리트리버 얼굴을 하자 재하는 말문이 막혔다.

 눈앞의 최지민은 마치 처음부터 늘 그랬다는 듯 순둥순둥한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재하의 말과 행동 때문에 최지민이 몹시 상처받은 것처럼 보이기 딱 좋았다.

 하지만 최지민의 얼굴에서 굉장히 불쾌한 뭔가가 슬쩍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을 재하는 보았다.

 재하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아니라고 한 마디 해줘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그런 거.......읏!”

 그런데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재하는 순간 뭔가에 발이 걸려 가로수 쪽으로 넘어졌다.

 

 “별일 없겠지?”

 정은성이 초조한 듯 혼잣말인지 묻는 말인지 알 수 없게 말했다.

 “그냥 쓸데없는 걱정일 수 있어.”

 김산이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아무 말도 못하고 또 질질 짜고 있을까봐.”

 정은성의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우서진은 거의 뛰는 속도로 성큼성큼 앞서 걷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세 사람은 교정을 빠져나갔다.

 

 뭐지?

 “재하야!”

 최지민이 큰 소리로 자기의 이름을 부르자 멀리서 촬영하던 VJ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재하의 눈에 들어왔다.

 최지민은 놀란 얼굴로 재하를 일으켜 세우고, 재하가 떨어뜨린 마시멜로 봉지를 자기가 주워들었다. 그리곤 재하에게 넓은 등을 내밀었다.

 업히라고?

 넓은 등을 내밀고 기다리는 최지민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재하는 더 이상 최지민이 까맣고 착하게 생긴 눈동자와 밝은 표정을 가진 커다란 강아지처럼 보이지 않았다.

 분명 발을 건 것 같았는데.

 내가 예민한 건가?

 좀처럼 재하가 업힐 기색이 없자 최지민은 카메라를 등지고 재하를 돌아봤다.

 “어차피 그냥 처형당하고 탈락할 거라며? 그전에 나한테 협조 좀 해줘.”

 아주 작게 속삭였지만 재하는 최지민이 하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최지민은 상냥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다시 등을 내밀었다. 그리고 재하의 키에 맞추어 재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재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진짜 너야?

 재하는 자기와 최지민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봤다.

 손끝이 차가워지면서 숨이 가빠졌다.

 눈이 마주치면 서글서글하게 웃던 표정과 곁에서 든든하게 도움을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전부다 가짜였나?

 “전부 다 니가 그런 거야?”

 최지민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재하가 다시 물었다.

 “뭐 부터야? 텐트 칠 때? 아님 통조림 떨어진 거?”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난 처음부터 쭉 너를.......”

 퍽!

 “야! 권재하!”

 재하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정은성?

 “최지민! 괜찮아?”

 김산이 길바닥에 엎어진 최지민을 일으켰다.

 재하는 멋대로 움직인 자기 다리를 멍하게 내려다 봤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좀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야! 앉아있는 사람을 뒤에서 그렇게 차 버리면 어떡해?”

 정은성이 놀란 눈으로 재하를 탓했다.

 “찬 게 아니고 그냥 뒤꿈치로 내리꽂던데?”

 등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최지민 앞에서 우서진이 감탄한 듯 말했다.

 “짠 거 먹고 나면 단 거. 그리고 마지막엔 탄산이야?”

 우서진은 마치 사이다를 들이킨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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