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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꿈결별리
작가 : 화산호
작품등록일 : 2020.9.13

신데렐라 보단 제인에어가 꿈이었던 흙수저 여대생.
기적처럼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호텔 체인을 가진 자산가의 눈에 들어 결혼에 골인?
인줄 알았는데
아빠 결혼 절대 반대를 외치는 약혼자의 초딩 딸이 내린 저주로
다른 시공간으로 강제추방 당하다!
눈을 떠보니 사로국 공주 별리가 된 여대생.
공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잠시.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공주는 개뿔!
풍전등화 위험천만 볼모 생활 시작이었다.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재벌 사모님인데!
공주라 쓰고 볼모라 읽는 이 저주에서 무조건 벗어나야만 해!

 
5. 뉴 페이스
작성일 : 20-09-14 00:57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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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도데체 어떻게 한 거지?

 별리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소달과 건무를 따라 자우공 이라는 사람의 저택까지 따라오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적응보다 혼란이 커졌다.

 진짜 다른 세상이었다. 테마파크도 이렇게까지 잘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거리의 풍경도 풍경이지만 자우공이라는 사람의 저택은 정말 딱 중국 사극에 나오는 고택이었다. 짙은 회색과 먹색 벽돌을 쌓아 올린 저택은 웅장했고, 내부는 복잡했다. 집이 아니라 웬만한 궁궐 같았다.

 별리의 방이라고 안내받은 곳도 가관이었다.

 여기서 지내야 하다니.

 천장이 높아 방이 더 커 보였다. 바닥에 깔린 돌은 하나하나 꽃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반짝이는 비단 이불이 덮인 커다란 침상과 빽빽한 조각으로 장식한 탁자와 의자, 벽에 걸린 분위기 있는 그림과 가구 위에 놓인 커다란 도자기는 박물관 특별 전시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윤다은. 너 정말 어떻게 한 거야? 날 어떻게 한 거냐고?

 쾅!

 움찔!

 바로 앞에 앉은 소달이 미술품 경매에 나올 것 같은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별리는 입을 열었지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소달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는 것이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아까부터 소달은 이것저것 주의사항 같은 것을 이야기해주지만 솔직히 별리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상황 파악도 해야 하고 다시 돌아갈 방법도 알고 싶은데 소달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머리 아프니까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말대꾸할 수도 없어 꾸역꾸역 듣고 있는 척이라도 했던 것인데 귀신같은 자가 눈치도 빨랐다.

 “피곤한 듯 보이니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다.”

 아까부터 계속 한 마디. 한 마디. 천 번째 한 마디라고!

 “몸이 성치 않고 기억도 성치 않으니 절대 함부로 나서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나나 건무의 도움을 받도록 해. 알겠지?”

 나대지 말라는 것이었다. 별리는 그거라면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하아.”

 소달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털팔이다. 보면 볼수록 털팔이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그 잠깐을 집중하지 못하고 연신 두리번거리고, 상대에게 잘 보여 보겠다고 저런 비굴한 표정을 짓다니. 별리의 얼굴로 저런 표정이라니.

 소달의 깊은 한 숨이 이어지자 아무 말 않던 건무가 나섰다.

 “별리야. 곤하지?”

 건무의 말에 별리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그럼 잠깐 눕자. 얼굴이 창백해.”

 상냥한 건무의 촉촉한 눈을 보며 별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쾅!

 하지만 별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달은 문화재 같은 탁자를 다시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존대하지 말랬지!”

 별리뿐만 아니라 이번엔 건무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다. 존대하지 말라고! 너는 사로국의 공주 별리다. 별리는 우리에게 존대하지 않는다!”

 건무는 소달의 다그침에 여인이 울어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지난 밤 오리나무 할멈의 오싹한 주술을 통해 데려온 여인은 별리가 아니었다.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목소리지만 별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소달은 여인을 별리로 이용하자고 했다. 그 순간엔 그것이 최선이라 여겼지만 여인에게 죄를 짓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이 별리인줄 아는 저 여인에게 못 할 짓이었다. 건무는 여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런데 소달은 잠시 쉴 틈도 없이 여인을 데리고 오자마자 달달 볶아댔다. 별리가 아닌 걸 들켜선 안 된다는 소달의 마음이 이해도 됐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건무는 이리두면 안되겠다 싶어 소달을 말리려하는 순간 차분한 별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건무는 깜짝 놀라 여인을 보았다. 소달의 다그침에 눈물은커녕 조용한 미소를 띤 여인의 모습은 건무가 알고 있던 진짜 별리였다.

 “이제 진짜 조심할게.”

 놀란 것은 건무만이 아니었다. 방금까지 호랑이 선생 같던 소달도 놀랐는지 조용해졌다.

 “됐지? 그럼 이제 둘 다 좀 나가줘. 나 피곤해.”

 별리의 차분한 말에 소달과 건무는 목각 인형처럼 삐걱삐걱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저 둘을 치운단 생각에 별리는 다행이다 싶었다.

 존대하지 말라고 했었구나. 몰랐다. 반말로 해도 되면 나야 편하지! 뭐 어려운 일이라고.

 별리는 잘됐다는 생각으로 부담스럽게 화려한 비단 이불을 들췄다.

 좀 누워야겠다. 빈 말이 아니고 진짜 피곤했다. 그리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혹시 원래 세상에서 깰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도 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드디어 그 둘이 나갔구나 하는 순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별리님 일어나셨군요!”

 제길. 일어난 게 아니고 이제 자려고 한다.

 별리는 짜증이 솟구쳐 홱 돌아보았다.

 “실성공과 건무님께서 모시고 오셨습니까?”

 소달과 건무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무심하게 별리를 바라보는 남자는 하늘색 비단 도포 차림으로 굉장히 단정한 느낌이 들었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람 같았다.

 뉴 페이스인가. 그럼 입을 다물어야겠군.

 별리는 아직 나가지 못하고 문가에 엉거주춤 서있는 소달과 건무를 보며 생각했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놀랐는데 역시 부나 할멈에게 가셨던 거군요.”

 그 할머니가 부나 할머니구나. 부나, 부나.

 “열은 다 내리신 겁니까? 쉽게 내릴 열이 아닌 것 같았는데.”

 남자는 무표정하게 다가와 별리의 이마를 짚었다. 남자의 갑작스런 스킨십에 별리는 긴장이 됐다. 건무나 소달과는 달리 굉장히 차가운 손이었다.

 “거의 회복하신 것 같습니다. 홍지를 부르겠습니다.”

 별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세숫물은 따뜻하게 준비시키겠습니다.”

 별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나으셨으니 목욕은 아직 무리시겠지요?”

 끄덕끄덕. 아니 도리도리. 목욕! 하고 싶다. 하지만 해도 되나? 모르겠다.

 “네?”

 남자의 되물음에 별리는 소달을 흘긋 보았다.

 그러자 남자가 미간을 찡그렸다.

 “별리님, 똑바로 대답을 하셔야죠. 왜 자꾸 다른 곳을 흘긋거리십니까? 대화를 할 때는 상대의 눈을 마주하고 기품 있게 하셔야 합니다.”

 남자는 제대로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별리는 소달보다 이 남자에게 더 큰 위압감을 느꼈다.

 “목욕물 준비해줘!”

 별리의 말에 남자는 별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별리는 소달과 건무 쪽을 다시 보았다. 건무가 다급하게 고개를 가로 젓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목욕하면 안 되나?

 “아니, 아니야! 목욕은 역시 무리인 것 같아.”

 별리의 말에 남자의 미간은 더욱 찡그려졌다. 그리고 별리의 손끝에 남자의 시선이 한동안 머물렀다. 별리는 얼른 손끝을 숨겼다.

 망했다. 어쩌지?

 별리는 눈앞의 남자도 신경 쓰이고 나중에 무자비하게 닦달을 할 소달도 신경 쓰여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다.

 “별리님. 이랬다저랬다 하지 마시고 신중히 생각하고 의견을 말씀하십시오. 제게 하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제게 하대를 하시라 말씀드릴 때는 존대가 편하다 하시더니 지금은 또 갑자기 하대를 하시고. 목욕도 어찌하시겠다는 것인지, 쯧!”

 별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쯧 소리가 났다. 혀를 찼다. 공주에게?

 “을단! 내가 별리에게 존대는 그만 되었다고 했다.”

 보다 못한 소달이 나섰다.

 “실성공께서요?”

 을단이란 남자는 별리에게완 달리 소달에겐 깊이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뭐야? 왜 별리를 대할 때와 소달 저 사람을 대할 때 다르냐고? 뭐냐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별리는 자신이 가진 정보가 너무 빈약하다는 속상했다. 이 놈 저 놈 눈치를 보는 것도 귀찮았다.

 “후연까지 와서 보는 눈이 더 많아졌으니 이제 말투를 고쳐보라고 했다. 당분간 별리와 우리 일행 모두 어색하겠지만 적응을 하면 괜찮을 거야.”

 “드디어 그 이상한 말투를 고치시는 겁니까? 예법에 너무 소홀하신 별리님이 늘 걱정이었는데 다행입니다. 그럼 공식적인 자리에서 실성공을 오라베라 부르시는 것부터 고치십시오. 건무님께도 예를 갖추시고 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들 지내신 건 알지만 실성공 말씀처럼 이제 여기저기 보는 눈이 많습니다.”

 오라베? 그건 또 뭐야? 우엑.

 말투를 바꾸겠다고 해야겠다. 아니면 저 소달이란 사람을 이상하게 부르며 친근한 척 해야 한다.

 “그래! 예법대로 할게. 실성공이라 부르고, 건무에게도 예를 지킬게.”

 하지만 을단은 별리의 말에 별 대꾸 없이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공주님이 누구신지 항상 기억하십시오. 아시겠지만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힘든 선택을 했습니다. 도움은 못 되시더라도 절대, 방해는 되지 마셔야 합니다, 공주님!”

 별리는 오싹했다. 방해가 되면 없애버리겠다고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별리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무섭도록 차갑게 빛나는 을단의 검은 눈동자가 천 마디 말보다 더욱 확실한 위협이었다.

 죽는다.

 저 사람, 내가 별리가 아니면서 별리인척 했다는 걸 알면 죽이고 말거야.

 공주에게도 혀를 차는 남자다. 그런데 그 공주조차 아니라면 어떻게 될지 뻔했다.

 들키면 안 돼! 절대로!

 가볍게 생각했던 신분 도용이었다. 하지만 별리는 이제야 그 심각성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러게 설명을 해줄 때 귀 담아 들었으면 좋았잖아.”

 소달은 계속 못마땅한 얼굴로 짜증 섞인 혼잣말을 했다. 별리의 방을 나와서도 소달은 불안한 마음에 멀리 못 가고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래도 대단하지. 기억 하나 없이 불안할 텐데도 저 정도면.”

 대놓고 그 여인의 편을 드는 건무를 보며 소달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잠깐이었지만 완전히 별리였어.”

 여인의 담담한 목소리와 차분한 미소를 떠올리며 건무는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 오라베. 이제 진짜 조심할게.

 따뜻한 별리의 목소리였다. 소달도 잠깐이었지만 여인에게서 별리를 보았다.

 별리야, 너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냐. 무사한 것이지? 내게 다시 돌아올 거지?

 너만 다시 돌아온다면 저 여인에게 한 잘못은 내가 달게 벌 받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렇게 행방을 몰라 본 적 없었다. 별리에게 분명 자신이 모르는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달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별리가 괜찮다 웃으면 그걸로 된 줄 알았고, 별리가 좋다 웃으면 그걸로 충분한 줄 알았다.

 어제 저녁 고열로 사흘 넘게 의식이 없던 별리가 잠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소달에게 이제 괜찮으니 가서 쉬라고 했었다. 소달은 믿었고 별리의 말대로 잠깐 나갔다가 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별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때 괜찮다 해도 계속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소달이 신음하듯 말을 하자 건무는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을단은 모르는 것 같지?”

 을단. 총명하고 냉정한 마립간의 눈과 귀였다. 소달도 그에 대해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궁은 물론 서라벌 어디에도 연고가 없던 자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아찬으로 임명되어 사신단의 총무로 배정되었다. 파격 인사였다. 귀족들이 좋아할 리 없었지만 마립간이 밀어붙였다.

 “별리에게 그리 차게 대하는 사람은 을단 말고는 없지. 안 그런가?”

 건무의 말에 소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을단은 모든 이에게 사무적이었다. 큰 키에 상당히 마른 체구지만 병약해 보이진 않았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쌍꺼풀 없이 긴 눈꼬리는 언제나 무표정했다. 후연에 도착하고 얼마 후 멀쩡하던 별리가 갑자기 고열로 쓰러졌을 때도 을단은 덤덤했다.

 “조사해 보자.”

 소달의 말에 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소달.”

 건무는 머뭇거리며 소달을 불렀다.

 “초조한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그 여인을 너무 다그치진 말자.”

 따뜻한 사내였다. 칼을 쓰는 자가 저리도 따뜻한 것이 신기했었다. 별리와 건무, 둘의 성격이 너무나 닮아서 소달은 가끔 건무와 이야기하면 별리와 이야기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랬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건무의 조심스런 충고가 아니었어도 소달은 자신이 심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별리가 사라진 후부터 평정심을 잃어 마음에 여유라곤 없었다. 그런데 도통 알아먹을 생각이 없는 여인의 모습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렇다하더라도 좀 더 부드럽게 대했어야 했다.

 만일 여인이 울기라도 했었더라면. 그랬다면.

 소달은 그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별리의 얼굴로 여인이 울어버렸다면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소달은 아무 내색하지 않고 냉정한 척 대꾸했다.

 “나는 다그친 적 없네. 을단이라면 몰라도.”

 건무는 소달의 대답과는 다른 그의 깊은 생각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저 웃어주었다.

 “하긴. 오늘은 나도 을단 앞에서 안절부절 하게 되더라. 당장 도망가 버리지 않은 게 신기하지.”

 건무가 소리를 낮춰 말을 하자 소달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다시 별리의 방 앞에 선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별리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을단의 매서운 눈길을 받으면서도 저리 앉아 밥이 넘어가는 걸 보면 진짜 털팔이가 맞긴 하다고 소달은 생각했다. 그리고 안도했다.

 다행이다. 그대가 털팔이라.

 

 하루는 참 길고도 짧았다.

 별리는 이 낯선 세상에서의 첫 날이 어떻게 흘러갔나 싶었다. 홍지라는 어여쁜 궁녀가 별리를 씻기고, 입히고, 먹이면 을단은 곁에서 틈틈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별리의 말과 행동에 트집을 잡았다. 태어나 이런 1:1 전담 케어는 처음이라 고통스러웠지만 티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일단 별리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쓰디쓴 탕약까지 마시고 나서야 겨우 혼자가 된 별리는 자기가 들은 것들을 떠올리며 정리를 했다.

 실성공 소달은 별리의 사촌 오빠였다. 건무는 호위대장이며 별리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을단은 사신단의 실무책임자이며 별리의 보좌라고 했다.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다가 후연의 초청을 받아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처음 을단의 입에서 고구려라는 말이 나왔을 때 별리는 깜짝 놀랐다.

 고구려? 내가 아는 그 고구려야?

 윤다은. 정말 대박이다. 날 고구려가 있는 곳으로 보낸 거니? 어떻게?

 환장할 노릇.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봐도 출구가 없었다.

 지친 눈을 들어 보니 어느새 방안이 어둑어둑했다. 이곳도 해는 지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별리는 무심결에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다가 이내 허탈해졌다.

 스위치가 어디 있겠어?

 웃겼다. 고구려가 있는 세상이다. 잘은 몰라도 아마 에디슨이 태어나려면 천 년도 넘게 남았을 것이다.

 별리는 어두운 것이 싫었다. 그렇다고 겨우 혼자가 되었는데 불 하나 켜자고 사람을 부르긴 더 싫었다.

 차라리 나갈까?

 달빛이며 다른 집 창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바깥이 더 밝을 것 같았다. 별리는 방문 앞에 섰다. 그런데 어쩌면, 방문을 열면 다시 원래의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

 별리는 묘한 설렘을 느끼며 방문을 열었다.

 혹시나. 혹시나. 제발. 제발.

 방문을 열고 꼭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뜨고 앞을 보았다.

 눈부신 남자!

 별리가 기대했던 홍현주의 세상이 아니라 눈부신 남자가 별리의 방에 딸린 아담한 정원에 서있었다. 별리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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