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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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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3 13:19     조회 : 411     추천 : 2     분량 : 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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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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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와서야 병원에 있는 그는 내가 뭘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든 돈을 구하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든’ 만큼의 불확실성과 비현실성을 믿느니 나라도 방값을 마련해야 했다.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교차로를 폈지만 ‘아가씨’를 구하는 광고가 의외로 많아 건전한 알바를 구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고시원에서 전화기를 빌려 전화만 수십 통 걸다가 처음 면접을 보러 간 곳은 그때 많이 유행했던 비디오방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도록 영화는 영화관에서든 비디오로든 한 번도 못 봤지만 영화 보는 거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조금의 거리낌 없이 “네, 그럼요.” 했더니 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멀쩡한 사복이 없어서 교복을 입고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너무 어려 보이는 건 안 좋을 것 같아서 철 지난 청바지에 목 늘어난 티를 입고 갔다. 비디오방 사장의 첫 말은 “키가 작네.”였다. 난 없는 넉살을 부렸다. “괜찮아요. 높은 데 있는 거 꺼낼 땐 의자를 놓고 꺼내면 되죠.” 껄껄 웃던 사장이 나이를 물었고 난 거짓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열일곱이요.” 했더니 사장이 깜짝 놀라며 여긴 미성년자는 오는 데가 아니라고 나를 쫓아냈다. 그럼 전화했을 때 물어보던가. 미성년자는 비디오도 못 트나?

 

 고시원 근처에서 ‘일할 사람 구함’이라고 적어 놓은 만화방을 발견했을 땐 이미 빵집과 피시방에서 퇴짜를 맞은 뒤였다. 빵집 사장은 내가 알바경험이 전혀 없고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게 맘에 안 들었고, 피시방 사장은 내가 컴퓨터 켜고 끄기부터 버벅대는 걸 보고는 다른 알바를 찾아보라고 했다. 내 돈 주고 빌린 적은 없지만 만화책은 학교에서 돌고 도는 것들을 즐겨 읽어 그나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만화방 사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을 했다. “라면은 잘 끓이냐?” 만화방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턱이 없었지만 거짓 웃음을 지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너무 많이 끓여봐서요.” 면접은 사실상 그게 다였다. 사장은 내가 목소리가 작은 것도, 알바 경험이 없는 고등학생인 것도 개의치 않았다. 돈 이야기는 아예 한마디도 꺼내지 않아 내가 물어봐야 했다. “페이는요?” “한 달에 한 번. 최저임금 쳐 줄게.” 최저임금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큰 호의라도 베푸는 듯한 사장의 말투가 거슬렸다.

 

 돈 버는 일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만화책을 찾고 꼽는 것부터 손님들 대하는 것까지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을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큰 만화방은 아니었지만 죽치고 있는 손님도 많고 대여해가는 사람도 많은 만화방이었다. 특히 내가 알바를 하던 6시부터 12시까지는 중고등학생부터 퇴근하는 성인들까지 손님들이 들이닥치고 라면을 주문해 대는 시간이었다. 가장 쉬운 건 돈 계산이었지만 그건 대부분 사장이 했고 난 다른 잡다한 일들을 해야 했다. 하루 종일 맡는 담배 연기보다 더 짜증 났던 건 가래침을 뱉어댄 재떨이를 청소하는 거였다. 재떨이를 변기에 비우고 대충 헹구기만 하면 되는 일이지만 왠지 그 더러운 가래침이 내 입안에 들어와 꿈꿈한 맛을 내는 것 같아 할 때마다 입을 앙다물고 헛구역질을 삼켰다. 그나마 재떨이에 재를 털면 양반이었다. 바닥이나 책 사이에 재를 떨어트리는 사람이 제일 싫었다. 내가 사장이었으면 바닥은 몰라도 책에 재를 터는 사람은 말렸을 것 같은데 사장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성격이었다.

 

 처음엔 라면 끓이는 게 제일 쉽고 신났는데 점점 그 일도 지겨워졌다. 사실 사장은 나한테 라면을 잘 끓이느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던 게 사장 나름의 비법이 담긴 레시피와 화력 좋은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건더기 수프와 분말 수프를 미리 넣고 물을 끓이다가 물이 팔팔 끓으면 면을 넣고 한 번만 휘저어 준 뒤, 면 먼저 꺼내 그릇에 담고 그 위로 국물을 쭉 부어주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지만 꼬들꼬들하니 맛있는 라면이 만들어졌다. 오백 원을 추가하면 달걀과 파가 들어가는데 달걀은 하나씩 넣는 게 아니라 미리 큰 통에 풀어 놓고 두 숟가락씩만 넣게 했다. 사장은 먹을 것은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난 그래도 사장 몰래 라면을 끓여 먹었고 달걀과 파를 스무 숟가락쯤 넣고 끓였다. 라면은 매일 먹어도 맛있었고, 매일 먹을 때마다 걱정이 됐다. 엄마는 라면 많이 먹으면 배에 구멍 난다고 자주 먹지 못하게 했다. 정말로 구멍이 난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매일 저녁을 라면으로 먹으니 위에서 신물이 올라오고 속이 부대껴왔다. 라면 대신 과자와 빵을 먹어봤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라면을 끓이고 나서가 더 큰 문제였다. 사람 보는 눈썰미가 없는 건지 기억력이 나쁜 건지, 누가 라면을 시켰는지도 헷갈렸고 누가 먼저 시켰는지도 헷갈려 “죄송합니다. 금방 나옵니다.”를 입에 달고 다녔다. 라면을 엄한 사람 앞에 놓고 와 “라면 안 시켰는데요?”하는 소리도 계속 들었다. 그렇게 말을 해주면 그나마 잘못을 알아채지만, 한번은 아무 말 않고 그냥 먹은 손님 때문에 고역을 치렀다. 단골이었던 손님은 내가 서비스를 준줄 알았다며 돈 없다고 길이길이 날뛰며 화를 냈다. 사장은 그 손님이 원래 웃긴 성격이라며 괜찮다고 했지만 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날 저녁은 걸렀다. 그 이후론 라면을 놓기 전에 반드시 “라면 시키셨죠?” 하고 물어봤다.

 

 우리 반 아이들 다섯 명이 야자를 째고 만화방에 왔을 땐 살짝 난감했다. 친한 아이들이 아니라 그냥 가볍게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 사복을 입고 있는 내가 나인지 아닌지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둘은 “어? 쟤 우리 반 김나린 아니야?” 했고 나머지 세 명은 “나린이가 여기 왜 있어?” 하며 수군댔다. 집에서 수험생 대접받으며 공부만 하는 그 친구들 입장에서 같은 반 친구가 만화방에서 바닥이나 쓸고 있는 건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을 거다. 아이들은 내 주위에서 얼쩡거리며 내가 김나린이 아닌지 맞는지 확인하려 했고, 난 괜히 심통이 나서 일부러 얼굴 정면을 안 보여주며 계산도 은근슬쩍 사장에게 미뤘다. 다음날 날 알아봤던 아이 중 한 명이 만화방에서 나 닮은 사람을 봤다고 하며 날 떠볼 때도 그제 와서 그게 나였단 말은 차마 못 하고 “내 얼굴이 흔한 얼굴이지.” 했다.

 

 이 주일이 넘어가자 일이 손에 익고 짬짬이 공부할 여유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나가는 손님과 계속 있을 손님 구분이 가능해져 손님이 잠깐 화장실에 가거나 나갔다 올 때 책을 치우는 일이 덜 생겼다. 사장은 내가 일도 잘하고 예뻐서 내가 온 이후로 남자 손님이 늘었다며 나를 칭찬했다. 내가 보기엔 손님은 크게 는 것 같지 않은데. 내가 예뻐서 늘었을 리는 더더욱 없고. 이 동네 사람들도 눈이 있는데, 얼굴 넙데데하고 눈, 코, 입 작은 사람 보러 만화방에 안 와요. 매출이 올랐으면 그런 말만 하지 말고 월급을 더 줘요. 거기서 그만뒀으면 좋았을 걸, 사장은 나한테 짧은 치마가 잘 어울리겠다는 둥, 머리를 묶지 않고 풀고 다니면 더 예쁠 것 같다는 둥 일과 전혀 관계없는 잔소리가 심했다.

 

 그래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으려 했는데 하루는 단체 수행평가 연습을 하다가 늦어 교복을 입고 출근을 했더니 사장이 지나치게 좋아했다. 중학교 때 키가 엄청 클 줄 알고 샀던 교복이 삼 년 내내 컸던 기억이 있어 고등학교 교복은 몸에 꼭 맞는 것으로 샀더니 몸이 옆으로 점점 불어나 밥을 많이 먹으면 단추 잠그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 교복 사이로 삐져나오는 내 살덩어리들을 바라보는 사장의 눈길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직도 중학교 때 산 주니어 브라를 차고 다니는 몸매였기에 60대의 성인 남자가 내 몸매를 감상하고 있다는 건 내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사장의 눈빛과 행동은 이미 그때부터 나한테 ‘도망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엎드려서 걸레질을 하고 있으면 돌아다닐 공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내 뒤로 스쳐 지나갔다. 일부러 만진 건지, 그냥 우연히 스친 건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고 은근하게. 사장의 날 보는 수상한 시선을 느낀 이후론 날이 더운데도 일부러 티셔츠 위에 남방 하나를 겹쳐 입었다. 더운데 왜 남방을 입고 있느냐고 묻는 사장에게 “추위를 많이 타서요.”하고 둘러대자 사장은 내 건강이라도 걱정하듯 에어컨 설정온도를 잔뜩 높였다. 그러자 손님들이 나한테 덥다고 항의를 했고 난 다시 에어컨 설정온도를 낮췄다.

 

 사장의 행태는 점점 악화했다. 나보고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묻고 내가 없다고 하자 성인 만화를 손에 직접 쥐여주며 “영어 단어만 외우지 말고 이런 걸 봐야 진짜 여자가 되는 거야.” 했다. 며칠 뒤엔 자기가 준 숙제를 했냐면서 실실 웃어댔다. “만화로 읽는 것 보다 실제로 경험하면 더 좋을 텐데.” 그래도 참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달을 채우고 돈을 받아야 했다. 이미 총무에게 이번 달 고시원비는 알바비를 받아 드린다고 사정을 말해놨기 때문에 반드시 알바비를 받아서 고시원비를 내야 했다. 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찌감치 퇴원한 그는 일자리를 구할 능력이 나보다도 더 없었다. 이력이 없는 이력서는 그렇다 쳐도 나라도 그를 보면 고용의사가 뚝 꺾일 것 같았다. 팔다리에 한 깁스는 곧 푼다고 봐줘도 이마와 볼에 깊게 난 상처는 그를 조폭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내가 매일 야자를 하고 오는 줄 알았기 때문에 내가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모르고 걱정하지 말고 계속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 말을 믿느니 만화방 사장을 믿겠다.

 

 만화방 알바 한 달을 꽉 채우기 전부터 난 다른 알바를 찾았다. 독서실 아르바이트가 공부와 병행하기 좋을 것 같아 학교와 고시원 근처 독서실을 일부러 다 찾아갔다. 교복을 입고 갔더니 안양고 학생이라며 몇몇 군데서 관심을 보였지만 당장 총무를 구하는 곳은 없었다. 결국 걸어서 40분은 걸리는 곳에 전화를 넣어보고 면접을 보러 갔다. 깐깐해 보이는 여사장은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독서실이 문을 닫는 두 시까지 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늦은 시각이라 그한테 무슨 변명을 댈지 걱정이었지만 하겠다고 했다. 사장이 여자라서 성희롱을 당하진 않을 것 같은 게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만둔다고 하자 만화방 사장은 날 잡아 두려고 안달이 났다. 돈이 필요해 보여서 써줬더니 돈 필요 없느냐고 자꾸 채근 대서 내가 독서실 총무 알바를 구했다고 말하니까, 여기서도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하면 된다고, 일은 자기가 다 할 테니 넌 와서 공부나 하고 용돈이나 타서 쓰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나중에는 최저임금의 두 배까지 쳐주겠다며 사탕 발린 당근을 흔들어대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내가 계속 시큰둥해 하며 싫다 하자 태도를 확 바꿔 손님들 앞에서 괜히 소리를 치며 무안을 주기도 했다. 그래도 돈을 받아야 했기에 올라오는 욕을 삼키며 조용히 있었다. 후임을 구하고 그만두라고 하길래 그날 바로 만화방에 죽을 치고 있던 한 아저씨를 알바로 구해 주자 나한테는 묻지도 않은 이력서를 가져오라면서 고용을 거부했다. 저처럼 어린 여자 고등학생을 원하시는 거면 그렇다고 말씀을 하시던가요. 화가 나서 고래밥 세 개를 몰래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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