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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꿈결별리
작가 : 화산호
작품등록일 : 2020.9.13

신데렐라 보단 제인에어가 꿈이었던 흙수저 여대생.
기적처럼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호텔 체인을 가진 자산가의 눈에 들어 결혼에 골인?
인줄 알았는데
아빠 결혼 절대 반대를 외치는 약혼자의 초딩 딸이 내린 저주로
다른 시공간으로 강제추방 당하다!
눈을 떠보니 사로국 공주 별리가 된 여대생.
공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잠시.
그러면 그렇지. 내 팔자에 공주는 개뿔!
풍전등화 위험천만 볼모 생활 시작이었다.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재벌 사모님인데!
공주라 쓰고 볼모라 읽는 이 저주에서 무조건 벗어나야만 해!

 
3. 월식의 밤
작성일 : 20-09-13 00:32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7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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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눈을 뜨면 다른 세상이길 바란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이 불만족스러울 때 그런 허망한 바람을 했겠지.

 바람이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우리가 바라는 순간과 이루어지는 순간이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도 말이야.

 평소엔 잘 뵈지 않던 개똥이 새 신을 신었을 땐 한 걸음 옮기기 무섭게 싸질러져 있는 것처럼.

 그러니 함부로 지나가는 생각으로 소원하면 안 된단다.

 나태한 하늘이 뒤늦게 변덕을 부려 우리의 운명이 소용돌이 칠 수 있으니까.

 그래도 간절한 마음에 애끓는다면 눈을 감고 숨을 모아 빌어 보는 수밖에 없겠지.

 해와 땅 그리고 달이 하나로 이어지는 날. 천지신명의 눈이 어두워지는 그 날.

 저승의 사람을 데려올 수도 있다는 그 날.

 혹시 아느냐. 너의 원이 이루어질지.

 

 건무는 어릴 때부터 오리나무 할멈이 무서웠다. 노파의 허옇게 뜬 눈동자도 무서웠고, 쭈글쭈글한 손 등에 새겨진 검은색 문양도 무서웠다. 하지만 건무를 가장 겁먹게 하는 것은 노파가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 떠벌리는 이런 말들이었다.

 수 십, 수백의 왜구도 눈 하나 깜빡 않고 단칼에 배어내는 건무지만 꼭 뭔가가 진짜 일어나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노파의 외침 앞에선 오금이 저렸다.

 그러나 지금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할멈. 할멈! 지금 누구한테 하는 이야기야. 이럴 시간 없어. 내 얘기 듣고 있어? 별리가 사라졌다고!”

 건무의 이야길 들은 건지 만 건지 노파는 그저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뭔가를 본 듯 퉁퉁하게 살이 올라 축 쳐진 노파의 볼이 갑자기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건무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아 들고 있던 칼을 빼들 뻔 했다.

 소달은 그런 건무완 달리 차분하게 노파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리고 노파가 눈앞의 자신들이 아닌 다른 뭔가를 보고 듣고 그것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소달의 기다림과 건무의 인내심이 다해갈 무렵 노파의 허연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미안하구나.”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노파를 기다렸던 자신들에게 하는 사과가 아니라는 것을 건무도 소달도 알 수가 있었다.

 노파는 흘린 눈물에 미련을 털어내 버리듯 서둘러 일어나 움막을 나섰다. 갑자기 휙 나가버리는 노파를 따라 건무와 소달도 허둥지둥 따라 나갔다.

 “어딜 가는 거요?”

 건무는 노파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자우공 댁은 그쪽이 아니잖아.”

 하지만 노파는 주변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기세 좋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할멈!”

 참다 못 한 건무는 허공을 가르며 뛰쳐 올라 노파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제야 노파는 성가시다는 듯 건무를 올려다보았다.

 잘생긴 청년이었다. 비단을 걸치지 않아도 얼굴과 몸의 맵시가 훌륭하게 드러났다. 고집스러운 눈매와 선한 눈빛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청년의 칼은 많은 이를 살릴 것이다. 천기를 읽을 줄 모르는 대신 우직함과 순진함을 지니고 있으니 그 또한 큰 복이리라.

 하지만 지금처럼 한 시가 아쉬운 순간에는 청년의 성실함이 귀찮았다.

 “자우공 댁에서 별리가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나?”

 건무는 노파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소. 그래서 우리가 할멈을 찾은 것이오. 혹 별리가 할멈에게 와있나 해서.”

 노파는 건무 대신 차분하게 입을 여는 소달을 돌아보며 허리를 숙였다.

 “네. 하지만 보셨다시피 별리는 소인을 찾지 않았습니다.”

 건무는 자신에게완 달리 소달에게는 꼬박꼬박 존대를 하는 노파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신열로 몸져누워 사흘간 의식도 없던 아이가 사라졌네. 자네라면 알고 있겠지? 그래서 이리 서두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인가? 그 아이가 있는 곳.”

 소달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자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고 노파의 움막도 인적 드문 곳에 자리했건만 소달은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건무 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소달은 그 큰 키와는 달리 예민하였다. 외모도 사내답게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건무완 달리 소달은 여인처럼 고운 인상을 가졌다. 깊은 눈동자는 지혜로워 보임과 동시에 어딘가 비밀스러워 보였다. 청년의 아름다운 외모와 명민한 머리는 그를 누구나 갖고 싶어 할 사내로 만들 것이다.

 노파는 보름달 아래서 눈이 부신 듯 건무와 소달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을 잘 맞추어 움직이면, 그 아이의 마지막 노력을 허망하게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곤 더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다는 듯 그대로 등을 보이며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노파의 움막은 중산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북쪽 산비탈 그늘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길이 제법 거칠었다. 하지만 노파는 환갑이 다되어 가는 늙은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숨 한 번 흩트리지 않고 산길을 내려갔다.

 건무는 노파를 놓치지 않으려고 따라 붙으면서도 휘영청 달빛 아래 드러난 후연의 웅장한 수도 중산과 그 중심부에 위치한 황궁을 바라보았다. 이 어딘가에 별리가 있어야만 했다.

 

 노파는 산을 내려가 규영지로 향했다. 규영지는 후연의 황족들과 귀족들이 가끔 연회를 여는 커다란 연못이었다. 연못 한 편에는 화려한 이층 누각이 집채만 한 느티나무와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서있었다.

 노파는 규영지 누각이 아닌 연못 반대편 풀숲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하늘을 유심히 살피더니 서둘러 자신의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청동거울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거울에 달빛을 모으듯 정성스러운 움직임으로 달을 향해 거울을 들었다.

 건무와 소달은 두어 걸음 떨어져 노파가 하는 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뒤 건무는 숨이 가쁜 듯 입을 벌렸다.

 “어떻게!”

 방금까지만 해도 금빛 쟁반처럼 번쩍이던 보름달이 노파가 거울을 꺼내들어 비추자 먹구름 뒤에 숨 듯 가장자리부터 빛을 잃어가며 작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월식이군.”

 이번에 건무뿐만 아니라 소달도 적잖이 놀랐다.

 오리나무 할멈이 사로국 최고의 무녀였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월식을 정확히 맞출 정도인지는 몰랐다.

 별리가 사로국을 떠나올 때 건무와 오리나무 할멈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을 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달은 늘 그랬듯이 별리가 또 사람을 과장되게 추켜세운다고 나무랐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월식을 본 소달은 그때 나무랐던 별리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의 보름달은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져갔지만 노파의 손에 들린 거울은 점점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노파는 달빛을 충분히 머금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뭔가 기도 같기도 한 주문을 읊조렸다. 그러자 거울 뒷면에 조각된 꽃잎들이 하늘하늘 기지개 키듯 피어났다.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건무는 마치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멀쩡하던 보름달은 그림자에게 완전히 먹혀 세상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규영지 가득 울려 퍼지던 개구리 울음 소리도 멎었다. 건무와 소달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암흑만이 흘러들어오는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이리들 오십시오.”

 정적을 깨는 노파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노파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빛이 보였다. 노파가 들고 있는 거울이 여린 빛을 내고 있었다. 건무와 소달은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제가 별리를 불러내면 두 분께선 최대한 빨리 별리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셔야 합니다.”

 노파는 두 청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소매에서 새 하얀 비단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손수건은 순식간에 어린 아이 주먹만한 작은 불꽃으로 변하였다. 불꽃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저 혼자 일렁이며 사람 얼굴만한 크기로 몸집을 불렸다. 그리곤 노파를 집어삼킬 듯 아가리를 벌렸다. 하지만 노파는 꿈쩍도 하지 않고 불꽃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거울의 주인을 데려오너라.”

 노파는 불꽃 앞으로 거울을 들이밀었다. 불꽃은 거울을 보더니 미친 듯 일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불꽃은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건무와 소달은 식은땀을 흘리며 알 수 없는 공간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눈앞의 허공에서 여인이 떠올랐다. 마치 커다란 물고기가 물에서 떠오르듯 여인은 건무와 소달 앞에 나타났다. 건무는 온 몸에 오싹한 소름이 쫙 퍼졌지만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여인은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공중에 살짝 떠있었다. 소달은 여인의 얼굴을 보려고 한 발짝 앞으로 나갔지만 정신을 잃은 여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게다가 주변은 어두운데다 여인의 검은 머리카락은 여기저기로 흩날려서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건무는 얼른 여인을 안아들려고 나섰다.

 하지만 소달은 서둘러 건무의 어깨를 잡아챘다.

 둘이었다. 여인이 둘 이었다.

 둘 중에 누구지? 누가 별리지?

 “할멈!”

 건무는 노파를 불렀다.

 하지만 노파는 건무가 부르는 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력을 다 써버렸는지 기진맥진하여 두 청년 뒤에 주저앉아 꼼짝도 않고 있었다.

 누가 별리인지는 자신들이 알아내야만 할 것 같았다.

 앞쪽에 있는 여인은 별리가 즐겨 입던 연분홍 치마에 하얀 저고리 차림이었다.

 그런데 뒤쪽에 있는 여인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차림새였다. 두건이 달린 잿빛의 긴 옷이었다. 비단도 삼베도 아닌 그 긴 옷은 여인의 정강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소달은 두 여인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다 소달의 눈이 뒤쪽 여인의 손끝에서 멈추었다. 여인의 손끝이 마치 눈물방울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라베.”

 소달의 귀에 별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림의 나무들 사이에 숨어 울다가 들킨 어린 별리가 보였다.

 울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눈물을 훔쳐내는 별리는 아홉 살이었다.

 손등에 묻은 눈물을 열 두 살이었던 소달이 내려다보면 아홉 살이었던 별리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다.

 “오라베, 이건 눈물이 아니야. 진주방울이야. 요것을 모았다가 손끝을 물들이면 천상에 신녀님처럼 아주 예쁘겠지?”

 그리고 쨍하게 웃어 보이는 별리.

 소달은 건무가 말릴 새도 없이 서둘러 뒤쪽 여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공중에 떠 있던 여인이 소달의 품으로 툭 떨어졌다.

 건무는 앞쪽 여인도 함께 데려 가기 위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갑자기 눈으로 태양이 들어 온 듯 빛이 터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콰르릉 콰광.

 천둥이 침입자들을 알아채고 경고하듯 격하게 울어댔다.

 소달은 품에 안은 여인을 더욱 단단히 여몄고, 건무는 급히 노파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잠깐의 사이도 없이 몸이 튕겨나가듯 솟구쳐 올랐다가 고꾸라졌다.

 

 귓속에 천 마리쯤 되는 개구리가 이사를 온 것처럼 시끄러웠다.

 여기가 어디지?

 소달은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하늘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간 보름달이 훤했다. 규영지 수풀에 고꾸라진 건무와 그 곁에 쓰러졌던 오리나무 할멈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소달은 자신의 양팔에 안긴 여인의 묵직함을 느껴졌다.

 내가 너를 구했구나, 별리야.

 소달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별리 맞아?”

 건무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소달은 여인의 얼굴을 건무에게 내보였다.

 달빛을 받은 여인의 얼굴은 깊은 잠에 빠져 평화로워 보였다. 깨끗한 이마와 상냥해 보이는 눈썹, 조금 낮지만 반듯한 콧날과 복숭아 빛의 동그란 입술.

 건무는 고개를 갸웃했다.

 “별리가 맞는 것 같아?”

 소달은 여인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눈 밑이 어둡고 볼 살도 조금 빠져 핼쑥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건 며칠 앓아누워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걸 빼고 보면 별리의 얼굴처럼 보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어느 부분이 다르냐고 묻는다면 딱 꼬집어 말 할 수 없었지만 느낌이 그랬다. 여인은 별리와 달랐다.

 “할멈. 할멈이 보기엔 어때?”

 갈라진 목소리로 건무가 다급히 노파에게 물었다.

 노파는 여인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 아이를 데려왔으니 이제부턴 이 아이가 별리입니다.”

 노파의 말에 소달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여인은 별리가 아니다.

 건무는 노파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이야? 이 여인은 별리가 아닌 거지? 그럼 진짜 별리는? 별리는 어딨어?”

 “동이 트기 전에 자우공 댁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건무의 말을 무시하며 노파는 자기 할 말만 했다.

 “진짜 별리는 어디 있느냐?”

 소달은 숨이 찬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노파에게 물었다.

 “무녀 부나! 당장 마립간의 딸 별리가 있는 곳을 말하라!”

 언성이 올라가는 일이 없는 소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 몸으로 고함 치고 있었다. 절규였다.

 “늙은 무녀 부나, 실성공께 아룁니다. 공주께서 어디 계신지 지금 당장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소달 앞에 납작 엎드려 고하는 노파의 목에 건무는 파르스름한 칼날을 들이 대며 물었다..

 “그럼 방금 우리가 갔던 곳은 어디였어? 거기에 남겨 두고 온 여인이 별리야?”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노파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로국을 위해서 그리고 별리를 위해서 소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공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건무의 칼이 소달의 명을 듣고 자신을 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였다.

 소달은 눈을 부릅뜨고 별리와 닮은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안 있으면 하간왕이 올 것이다.

 하간왕은 별리를 원한다.

 소달의 곱상한 얼굴이 잔인하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래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 놈 앞에 별리를 내놓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별리를 닮은 이 여인. 이 여인을 그 짐승 같은 놈에게 던져주면 된다. 그리고 진짜 별리를 찾으면 된다.

 소달은 어려운 난제를 풀어낸 것처럼 머리가 가벼워졌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정신을 좀 차려보시오.”

 건무는 갑자기 여인을 흔들어 깨우는 소달을 보며 노파를 향해 들었던 칼을 거두었다.

 “뭐하는 거야?”

 “이 여인을 별리로 이용해야겠다.”

 소달은 건무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어찌 보면 지금 상황이 나쁘지 않아. 너도 별리를 하간왕 같은 자에게 보내긴 싫었잖아?”

 건무는 소달의 말에 잠시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여인은? 이 여인은 어쩌라고?”

 오늘 처음 본 여인이었지만 평생을 보아 온 별리와 닮아서 낯설지가 않았다. 그런 여인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건무는 내키지 않았다.

 “우리가 지켜주면 돼. 우리가 별리를 지켜주려 했던 것처럼 지켜주자.”

 소달은 건무를 향해 다짐하듯 말했다.

 “별리도 구하고, 사로국도 구할 수 있는 기회야. 건무. 도와주게.”

 건무는 여인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별리를 생각했다.

 마립간의 딸로 태어났지만 한 번도 공주로 산 적 없었던 내 어여쁜 벗.

 약하기만 한 조국의 희생자로 결정되고 나서야 공주로 불리기 시작한 가엾은 여인.

 그래, 너만 생각하자.

 건무는 소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곤 규영지의 차가운 물을 손으로 떠서 여인의 얼굴에 조심스럽게 뿌렸다.

 “이보시오, 정신을 차려보시오.”

 노파는 고개를 들어 여인을 깨우려 하는 두 청년을 바라보았다.

 별리가 아닌 별리가 돌아왔고 알 수 없는 시간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보름달이 서쪽 하늘로 기울었고 별리라 불리게 될 여인은 눈을 떴다.

 노파는 복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기도를 올렸다.

 천지신명이시여, 용서해 주소서. 부디 저희를 굽어 살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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