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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코 끝이 간지러울 뿐이라서
작가 : 바비수
작품등록일 : 2020.8.19

그 흔한 사랑고백도 없었다. 격렬한 포옹, 격정적인 키스도 없다!
자극적인 대사, 스킨십 한 번 없이 잔잔하고 소소한 순간들만 있었을 뿐!
그저 간지럽기만 했던 그 시절, 지우와 수현.
그 때 우린 뭐였을까? 이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7 we volunteer to be victims.
작성일 : 20-09-12 13:10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8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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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현은 잠자코 있다가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말했다.

 “고양이 보러 왔냐?” 수현도 센을 알고 있었다.

 “응. 근데 언젠가부터 안 보여. 길고양이는 사람 손 타면 학대당할 확률 높대서 멀찍이 지켜만 봤는데.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지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리 과 여자애가 데려가서 키운대.” 수현이 대충 흘리듯 말했다.

 “정말? 어떻게 알아?”

 “그럼~ 내가 인맥왕이잖아~ 다 알고 있지~” 수현이 씨익- 웃었다.

 

 수현의 행동과 표정은 익살스러웠지만 정작 그 속은 텅 비어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모두와 친해서 아무도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적의>를 띈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두와 잘 어울렸고 그는 어딜 가나 호감이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그와 친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론 “내가 친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지우는 그런 그가 싫었다. 왜 저렇게 피곤하게 살지? 네가 아무도 안 좋아하는 거 다 알아. 넌 네 주변 사람 누구한테도 관심 없잖아.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사람. 학교에서의 그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 지우는 자기가 잘못 된 걸지도 모른다고 괜히 배알이 꼴려서 이러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능 영어문제에 이런 지문이 있었다.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유혹이다. 당신은 우리가 그 일에 우리 자신을 등록시킨다는 것을 아는가? 우리는 피해자가 되기를 자청한다. 우리는 삶이 불공평하고 사람들이 믿을 만하지 못하며 우리가 나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믿는다. 삶이 때때로 공평하지 않고 그로 인해 우리가 희생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진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승리자보다 희생자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지우는 자신이 수현을 미워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저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런 수현에게 자신이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그가 잘못한 게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이성간의 관계가 아닌 인간간의 좋은 관계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난 모든 걸 아니꼽게 봐서 어렸을 때도 난 사람 좋기로 소문난 옆집 아줌마를 싫어했거든. 남 걱정하는 척하면서 참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어쩌면 그 아줌마도 그렇고 걔도 나 혼자 오해하고 확대해석하고 과장한 걸지도 몰라. 걔는 그냥 자기답게 행동했을 뿐인데 나도 내 마음을 나도 몰라서, 컨트롤할 수가 없어서 걔가 나쁜 놈이고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해버린 걸지도 모르지. 이 사람이 말했던 대로 좋은 선후배 사이로 지내야겠다고 다짐했어. 그렇게라도 이 사람이랑 잘 지내는 걸로 만족하자고 생각했어.」

 

 지우는 수현의 부르튼 입술이 신경 쓰였다. 그에게 립밤을 주기 위해 세 개나 구매했다.

 “제 거 다 써서 샀는데 세 개가 세트로 들어있어서요. 같이 고생했는데 별 거 아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건네기 위해 온갖 명목들을 갖다 댔다. 다행히 조별 기말과제가 끝나가던 차였다. 그 동안 고마웠고 마지막까지 마무리 잘 하잔 의미로 가볍게 주기 좋았다.

 수현은 “니가 웬일이냐.”라면 의외란 반응이었고 민성은 집에 남는 보조배터리가 있다며 건넸다.

 민성은 지우와 꽤나 닮은 점이 많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남에게 빚지는 걸 싫어한다.

 그에 반해 수현은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지루해서 못 견딜 사람이고 고맙단 말조차 하지 않았다.그런 수현이었지만, 지우는 이 립밤이 수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했다. 귀찮다고 안 바르지 말고 꼭 챙겨 바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곧 기말고사 기간이었고 시험이 끝나면 방학이었다. 지우는 여전히 조기졸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입학할 때부터 생각했던 거라 이미 학점과 기타 자격요건을 채웠지만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수현이었다. 더 이상 수현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회에서 주최하는 학술제에 4학년은 필수참석이었다. 지우는 대강당에 어색하게 들어섰다. 학과 행사는 왠지 불편하고 꺼려졌다. 4학년은 물론 1,2,3학년까지 많은 학생들로 이미 자리는 거의 채워져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 속에서 빈 자리를 찾던 지우에게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수현이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었다. 수현의 양쪽자리는 모두 비워져 있었다. 웬일로 혼자 저렇게 앉아 있나 의아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뒤를 돌아봤다.

 지우가 “왕따야? 왜 혼자 앉아있어?”라고 말하려던 차였다.

 “형들! 여기!”

 그런 지우를 못 본 건지 무시하는 건지 수현이 반가운 얼굴로 지우 바로 뒤쪽에 서있던 사람들에게 외쳤다. 그 ‘형들’이란 사람들은 지우를 지나 수현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혼자 앉아있던 게 아니라 자리를 맡아놓고 있던 거였다.

 

 ‘형들’ 중 한 명이 수현의 옆에 앉으며 ‘왜 이렇게 앞자리를 맡았냐!’라며 가볍게 수현의 배를 때리는 시늉을 하자 수현도 배를 쥐어 잡는 척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수현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수현은 “아, 정우 형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하며 개구쟁이처럼 푸스스- 웃었다. ‘정우’란 남자의 자신감에 찬 얼굴을 보니 누군지 어렴풋하게 기억났다. 지우가 교내 카페에서 일하고 있을 때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카페가 몇 시에 문을 닫냐고 물었던 사람이었다.

 

 지우는 무안하고 창피했다. 지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한 그가 야속했다.

 

 「누가 누굴 챙기나 싶더라. 내가 아싸지, 걔는 핵인싸고.」

 

 나한테는 맨날 ‘야’라고 하면서. 그는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참담한 와중에 정우란 사람이 부러웠다. 수현을 둘러싸고 있는 ‘형들’이란 남자들이 부러웠다. 그가 항상 ‘형~’하며 뽀르르 달려가 예뻐해 달라는 듯 응석을 부리면 ‘형들’은 그를 강아지처럼 귀여워했다. 지우는 ‘정우’란 남자에게 질투까지 느낄 정도였다. 일전에 ‘정우’란 남자랑 대화했을 때 잘 이어나갔다면 ‘정우’를 통해 자신도 수현과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수현의 말처럼 모든 인연을 예쁘게 다뤘더라면, 자신도 수현과 저들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뒷모습만 바라보는 사이는 아니지 않았을까? 이런 자기원망과 후회까지 했다.

 사람들 속에 섞여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창피함, 부끄러움, 참담함, 질투, 후회란 온갖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지우는 나락까지 떨어졌다.

 

 「지난번 대화로 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어. 누구한테 아빠얘기를 한 건 처음이었거든. 그런데 난 전이나 지금이나 걔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이더라고. 좋은 선후배로 잘 지내보려고 했던 것조차 욕심이었던 거야. 그냥 난 걔한테 아무것도 아닌 거야. 그냥 같은 수업을 들었던 애. 같은 조였던 애. 딱 거기까지였던 거야.」

 

 그리고 며칠 후 철학수업이었다.

 지우란 존재를 까맣게 잊은 사람 같았던 수현은 신난 얼굴로 지우의 왼편에 앉았다. 지우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그에게 화날 권한조차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와 자신의 사이엔 ‘관계’랄 것이 없었다. 먹이를 기다리는 물고기처럼 그가 아는 체할 때 마다 덥석덥석 미끼를 무는 제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지우는 그를 대하는 법을 잊었다. 그림자놀이니 뭐니 그를 대하는 방법 따윈 없었던 것이다. 내 반응만큼 그에게 하찮은 것은 없을 것이다. 이제 지우는 그를 바라볼 용기조차 없었다.

 

 이내 정민이 들어와 멈칫하더니 지우의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지우는 다시 한번 정민의 등장이 다행이라고 느꼈다. 지우는 수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그를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 다행인 것은 그도 웬일인지 장난칠 타이밍이 한참 지났음에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다는 점이었다. 그 덕분에 지우는 정말로 그의 존재를 지워내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지우는 온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두 시간짜리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이었다. 지우는 별 생각 없이 핸드크림을 발랐다. 사계절 내내 손이 잘 트는 지우의 필통 속에 기용이 넣어둔 것이었다. 기용은 작은 핸드크림을 여러 개 사서 지우의 필통, 파우치, 가방 등 여기저기 넣어두었다.

 그것을 본 정민이 “지우야. 나도.”라며 손등을 갖다 댔다. 지우는 정민의 손등에 크림을 짜주었다.

 그러자 불쑥 수현이 지우의 앞에 자신의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나도!”

 그 장난스러운 응석은 지우가 정우란 사람에게 부러워했던 수현의 그것이었다. 순간, 지우는 버퍼링 걸린 컴퓨터처럼 고장 났다. 상황판단이 되질 않았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반응이 없는 지우의 앞에 수현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손등을 갖다 대고 있었다.

 

 “왜 귀여운 척이야.” 지우는 가까스로 뱉었다. 그리고 핸드크림을 그의 책상에 던졌다. 수현이 풀 죽은 아이 표정으로 “나는 왜 안 짜줘?”라고 말하며 다시 핸드크림을 지우 쪽으로 밀며 2차 타격을 가했다. 직격타에 지우의 사고가 완전히 정지했다. 아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런 지우 대신 입을 연 것은 전혀 의외의 사람이었다.

 “지우학생 남친 있어!” 철학교수님이었다.

 

 「진짜 당황의 당황의 당황의 연속.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니까.」

 

 「그 남자 표정이 어땠는데요?」

 「그냥 무표정. 속을 알 수 없는 눈빛.」

 그의 얼굴은 놀랍도록 정직한 무표정이었다.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얼굴이라 무표정도 웃는 상일 것이라 생각했다. 무표정이 상상이 안 갔다. 하지만 고독함이 완연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무방비한 본연의 얼굴이었다. 집요한 까만 눈동자는 미동도 없었다.

 「언닌 뭐라고 했어요?」

 

 「아무 말도 못했어. 부정할 수가 없었어. 교수님이 지하철에서 본 모습은 누가 봐도 연인이니까.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걔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란 사실이었어. 해명 하는 게 우습잖아.」

 

 수현은 조별과제 발표날이자 마지막 전공수업에 결석했다. 원래 발표자였던 수현 대신 민성이 발표했다. 당황한 기색 없이 발표를 마친 민성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어젯밤 수현에게 연락이 와선 아파서 수업에 못 갈 것 같다며 대신 발표를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아프다는 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가 결석을 하는 것도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심지어 그는 발표자였다. 책임감 없는 모습이 그답지 않다고 생각했다가도 자기 멋대로 하는 게 수현이니까 놀랄 일이 아닌 건가 싶었다.

 

 수현의 카톡을 못 봤나 싶어 단톡방을 확인해보니 수현은 이미 단톡방에 나가고 없었다. 단톡을 놔두고 민상에게 개인적으로 말했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신나서 만들 땐 언제고 나가는 것도 제일 먼저 나가네. 친한 척은 일등인데 정은 제일 없지. 다른 건 잘만 단톡으로 보내더니. 왜 이런 건? 나한테 개인적인 사정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나도 같은 팀인데 왜?

 

 이내 수현에게 서운해 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아무것도 아니었지. 하지만 그가 아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아픈 거지?

 

 지우는 서운함도 자존심도 잊은 채 수현에게 카톡을 보냈다. 처음 보내는 카톡이었다.

 <아프다면서. 괜찮아?>

 <어ㅋㅋ> 너무도 딱딱한 답변에 할말이 없었다.

 그래도 괜히 뭐라도 더 보내고 싶은 마음에 카톡을 보냈다.

 <그래>

 수현은 답장이 없었다. 지우는 노트북을 닿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수현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일은 없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하는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다.

 

 철학수업은 휴강이 나고 기말고사는 다음주로 미뤄졌다. 수현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기로 결심한 지우에겐 잘된 일이었다. 그를 마주하는 날이 미뤄졌고 그 동안 더욱 수월하게 마음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수현으로 인해 온갖 감정이 널뛰기를 하던 스스로가 낯설고 당황스럽고 두려웠다. 이성적이고 침착한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야 했다. 지우는 기용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편안한 그와 함께 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아갔다. 점차 안정되어가는 마음이 다행스러웠다.

 

 주말 저녁, 기용과 밥을 먹은 뒤 기숙사에 돌아와 사이버강의 기말 리포트 제출을 위해 노트북을 켰다. PC카톡을 열어보니 부재중 보이스톡이 와있었다. 수현이었다.

 보이스톡만 덩그러니 와있을 뿐 어떠한 메시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우는 바로 블랙베리폰에 카카오톡앱을 다운받았다. 그동안은 귀찮기도 하고 폰에 과부하가 걸릴까 봐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우는 수현과 통화하기 위해 급하게 카카오톡을 설치했다. 지우도 그의 번호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을 뒤지고 버벅이면서 앱을 설치하고 나니 벌써 밤 10시였다. 마침내 지우는 수현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그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에 그제야 그와 통화를 한다는 것이 실감나 새삼스럽게 어색함을 느꼈다.

 

 “전화했었네?” 지우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응. 너 철학수업 중간고사 뭐라고 썼었어?”

 뜬금없는 수현의 질문에 멈칫했다가 이내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중간고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중간고사 망쳤다더니 다음 주에 있을 기말고사는 잘 보고 싶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난 문제라 알려줘도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지만 지우는 최대한 성심껏 대답해주었다.

 “존재론 말하는 거지? 난 <숨바꼭질>을 근거로 들어서 서술했어. 숨은 상대를 찾는 게임인데 눈 앞에서 없어져버린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면 아무도 숨어버린 사람을 찾지 않을 거고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게 되는데 그럼 숨바꼭질이란 게임은 있을 수가 없다고.”

 “와, 너 진짜 대단하다. 천재다. 천재.” 잠자코 듣고 있던 수현이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통화 내내 전화기 너머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술 때문에 오바가 더 심해졌나 싶었다.

 “술 마셔?”

 “응. 공모전 같이 준비한 형들이랑”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지우는 공모전을 준비한다던 정우를 떠올렸다. 같이 준비했었나 보네. 같은 팀인가?

 “하여튼 술 진짜 좋아해”

 “아닌데~ 나 술 잘 못 마시는데~”

 대충 좋아한다고 하고 넘어갈 줄 알았던 수현이 응석부리듯 반박했다. 술 취하면 아무한테나 애교 부리나 보네. 지우는 피식 웃었다. 모든 인연은 예쁘게 다뤄야 한다던 그 예찬론이 떠올랐다.

 “아,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지우도 수현의 장단에 맞춰 조금 장난끼를 섞어 말했다.

 ”아닌데… 나 사람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여전히 응석을 부리는 듯했지만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소리가 아주 희미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아무튼 고맙다. 다음주에 보자.” 수현이 지우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대충 말을 던졌다.

 “그래.”

 지우는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했다. 수현과 통화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 생경한 기분이 들면서도 왠지 그가 걱정스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톡을 보냈다.

 

 <공모전 상 받은 거야?>

 <아ㅋㅋㅋ 못 받아ㅆ어ㅋㅋㅋ>

 그래서 속상했던 건가? 지우는 그 동안 그가 공모전을 준비해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아쉽겠네>

 공모전에 나간 줄도 몰랐는데 위로해줄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위로해줘야 할 것 같았다.

 <정우형ㅇ ㅣ 받았어ㅋㅋㅋ>

 툭 튀어나온 이름에 정우에 대해 수현과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당연히 지우도 그 사람을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술에 취해서 별 생각 없이 직설적으로 실명거론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우의 그 자신감에 찬 얼굴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수현을 속상하게 한 그 얼굴이 새삼 얄미워졌다. 같은 팀이 아니라 개인전이었나 보네.

 <내 꺼랑 별로 다른 것도 모르겠는데ㅋㅋ>

 수현이 덧붙인 말이 너무 솔직해서 놀랐다. 형~ 거리면서 잘 따르더니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자기 감정을 돌려 말할 줄 모르는 게 참 애 같이 순수한 면은 확실히 있다 싶었다.

 <다른 공모전은 수상할 수 있을 거야>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는 기분이었다.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

 <이번에만 특별히 열린거야ㅋㅋㅋ>

 답지 않게 집요하게 말꼬리를 잡는 수현을 보니 많이 심통이 났구나 싶었다. 잔뜩 골이 난 아이 같은 모습이 의외였지만 귀여웠다.

 <속상했겠네> 지우는 위로하는 법을 잘 몰랐다. 수현은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한참 지나서야 <아냨ㅋ> 라는 성의 없는 카톡이 왔다.

 

 그를 위로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오직 그를 위해 설치한 카카오톡앱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오타로 가득 찬 카톡은 <카톡 좀 그만 보내. 나 사람들이랑 놀아야 된단 말이야. 너가 해주는 위로 따위는 필요 없어. 너 말고도 위로해줄 친구들 많거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걔는 참 어려운 사람이었어. 나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은 아는데 오히려 걔처럼 다가가기 쉬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은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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