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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망상 증후군
작가 : 빅터하이드
작품등록일 : 2020.9.5

잘못된 상상은 때로는 진실을 뒤집기도 한다.
여자로 오해 받는 남성.
남자로 오해받는 여성.
알아주지 않는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무서워져 가고
그런 그들 앞에 괴담 '얼굴없는 신데렐라'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네 이상형은
작성일 : 20-09-11 07:45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1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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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학교 근처에 상가로 이루어진 시장이 하나 있었다는 거 알아?”

 나영이 아현에게 묻는다. 아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온 게 며칠 전인데, 알 리가 없잖아.”

 지방에서 올라온 신입생이다. 애초에 소문하고 거리가 먼 아현은 이 학교의 뒤에 있는게 상가인지, 아니면 산이 있든지 알 리가 만무했다.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여기 학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있던 오래된 상가가 있었다 하더라고. 그런데 우리 대학교가 지어지고 난후에, 개발지역이라면서 상인들을 모조리 쫓아내려고 했지뭐야. 어떤 회사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것 때문에 엄청 분쟁이 많이 일어났었대. 막 사람도 죽고 그랬다 하더라고.”

 나영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아현이 흥미가 도는지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되긴……. 사람이 죽었다는 곳에서 개발을 할 수 있겠어? 결국 소문 때문에 흐지부지 돼서 상인들도 다 떠나고, 지금은 유령도시처럼 빈 건물만 있는 곳이 되어버렸대.”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 아현은 등골이 서늘함을 느꼈다. 그리 춥지는 않은 날씨였건만, 나영의 이야기에는 몰입도가 있어 어쩐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영의 이야기를 들은 수빈이가 조심스레 한 마디했다.

 “그거 혹시 [흉가 마을]을 말하는 거야?”

 흉가마을.

 묘하게 가슴에 남는 단어였다. 아현은 어쩐지 서늘해지는 느낌에 가슴을 슬며시 쓸어내렸다.

 “그래, 그래. 맞아. 흉가 마을. 거기 그런 별명이 있었어. ”

 나영이 수빈이 말에 맞장구를 친다. 그러다가 문득 나영의 시선이 가늘어진다.

 “…그런데 너 그거 어떻게 안거야?”

 “어떻게 라니?”

 수빈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거기 나 하숙하는데로 가는 지름길이잖아.”

 음?

 아현의 머릿속에 저번에 몰래 수빈의 뒤를 따라갔던 일이 떠올랐다.

 음침하고도 무서운 건물을 겁 없이 성큼성큼걷던 수빈의 모습. 아현은 그제야 수빈이 하숙집으로 갔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야! 너 왜? 그런 위험한 곳에 살아?! 삼촌이 그러래?”

 나영이 놀란듯이 말한다. 수빈은 그런 나영을 잠시 지켜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냥 거기 방값이 싸서…….”

 부끄러운 걸까? 아현은 그런 수빈의 모습이 어쩐지 귀엽다고 느껴졌다.

 커다란 일이 있었다는 상가 근처. 이름도 무시무시한 [흉가 마을]이다. 그런 음습하고 무서운 곳, 범죄자들이 좋아할 만한 곳 근처가 싸지 않다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싸면 좋긴 한데…….’

 과연 그곳에서 계속해서 살아갈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굳이 귀신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범죄자들이나 위험한 노숙자가 있을 법한 공간에 어느 누가 살고 싶어 할까?

 문득 아현은 엊그제에도 수빈을 습격하던 그림자를 떠올렸다.

 시커먼 그림자가 있는 힘을 다해 수빈을 습격해 넘어뜨렸던 그일. 비록 자신이 그때 나서서 수빈을 구해주긴 했지만, 만약 자신이 직접 그런 일을 당했다면 바로 이사를 감행했을 지도 몰랐다.

 ‘진짜로 무섭지 않나?’

 아현은 수빈을 슬쩍 슬쩍 훔쳐보았다.

 그냥 겁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남자라서 그런걸까?

 그곳에 계속 가는 데도 수빈의 발걸음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 습격을 당했는데도 저렇게 담대하다면,

 어쩐지 아현은 수빈이 부쩍이나 남자답게 보였다.

 부러움과 질시가 한데 어우러져 왠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자박, 자박.

  운동화가 모래와 자갈들을 밟아가는 소리가 조심스레 스며나온다.

  -자박, 자박.

  그것을 뒤따르는 세 사람의 운동화의 발걸음 소리도 귀에 스며들 듯이 다가온다.

 그리고 얼마 뒤,

 세 사람은 상가입구에 서있는 커다란 기둥과 간판에 도착했다.

 “…여기야.”

 수빈의 말이 건조하게 울린다. 하지만 아현과 나영은 그런 수빈의 말에도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있었다.

 아니 할 말을 잃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

 그들을 짓누르는 [흉가 마을]의 거대한 모습에 말 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위압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황혼의 그림자에 덧씌워진 우둘투둘한 상가의 건물들. 질량이 품은 어둠에 잡아먹혀 있는 그 모습은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 오더라도 함부로 들어가기 싫을 정도로 음습하고 혐오스러워 보였다.

 아현이 고개를 올려다보니 엊그제 보았던 간판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뭉개진 글자들을 가리고 있었다.

 “…여기 좀 무섭다아…….”

 왠만하면 약한 소리를 내지 않는 나영의 입에서 신음같은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아현도 그런 나영의 굳어진 얼굴을 풀어주려 재밌을 만한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지만, 너무 긴장해서 인지 생각보다 떠오르는게 몇 없었다.

 “그럼 갈까?”

 수빈이 혼자만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발걸음을 먼저 옳긴다.

 “자, 잠깐만!”

 나영이 비명처럼 수빈의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아현은 그런 나영의 약한 모습이 공감이 갔다.

 여기는 위험하다.

 범죄자라느니, 귀신이 나온다느니 하는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냥 무서웠다.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더욱더 아현의 공포심을 부추겼다.

 “나, 나, 갑자기 잊은 게 있어서…….”

 나영의 발이 뒤로 한걸음 물러선다. 아현은 그런 나영을 보고 제지하려 했지만, 나영의 말이 더 빨랐다.

 “하, 학교에서 오늘 레포트 하기로 했었는데, 까, 깜빡했지 뭐야.”

 그녀의 하얀 얼굴이 더욱더 창백해진다. 나영의 발이 몇걸음 더 물러선다.

 “야… 그걸 이제야 말하면 어떻게 해…….”

 아현이 나영을 어떻게든 말려보려 했지만, 말에 힘이 없었다. 자신도 무척이나 무섭다. 지금 나영이 느끼는 감정도 자신과 똑같을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억지로 설득하거나 끌고 가기엔 아현의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미안, 진짜 미안! 그러니까 우리 주말에 낮에 다시 모여서 가자.”

 나영은 그렇게 말하며 결국 몸을 돌려 대로변으로 나가버렸다.

 아현과 수빈은 그렇게 가버린 나영을 보며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분명 자기가 먼저 가자고 해놓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버리고 가다니……,

 아현은 수빈 몰래 주먹을 꾸욱 쥐었다.

 둘이서 갈 수 있게 됐다.

 그 사실만으로 아현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자연스러운 질문으로 수빈이 기호하는 물건과 식품, 그리고 전반적인 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다가, 잘 하면 그와의 친밀도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기엔 문제가 조금 있었다.

 아현은 수빈을 여러본 본 사이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 만남이야 말로 최초였다. 그것은 수빈에게 있어서도 최초, 즉 말 그대로 처음 본 사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아직도 존댓말을 쓰며 어색하게 구는 데 잘못 대화를 이어나갔다간, 수빈의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관계까지 더욱더 어색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수빈이 기분이 나쁜지 잔뜩 굳어진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다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이대로 가서 잘 대화를 할 수 있으려나…….’

 이미 아현의 머릿속에는 그곳이 수빈이 습격당한, 그리고 ‘얼굴 없는 신데렐라’괴담의 근원지라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바라는 것은 수빈과의 관계의 진전.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오늘은 이만 해산하고 다음에 다시 시간맞춰서 갈까요……?”

 아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어색함도 그렇긴 하지만, 옆에 있던 수빈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냥 아예 마음에 안드는 것 같았다. 불편한 관계로 갈 바에 차라리 다음 기회를 노리는 편이 나을 지도 몰랐다.

 “아뇨. 그냥 가죠.”

 뜻밖에도 수빈의 대답은 ‘NO’였다. 나영이 없어서 기분이 좋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가?

 “그, 그럼 이대로 둘이서 갈까요?”

 아현의 말에 수빈의 얼굴이 한층 더 굳어진다. 바늘 하나 찔러도 피도 나올 것 같지 않는 그 굳은 표정이 아현의 맘에 걸렸지만,

 “네, 이대로 둘.이.서. 가도록 합시다.”

 라는 수빈의 대답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신경쓰이면 그냥 다음에 나영이랑 같이 가도 될건데…….’

 지가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나. 곧장 앞서가는 수빈을 따라 아현을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수빈은,

 ‘어떡하지? 엄청 어색한데, 뭐부터 말을 꺼내야 하지?’

 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에 가득채워져, 자연스레 표정이 굳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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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 안쪽은 여전히 어둡고, 습했다.

 버려진 좌판.

 썩은 냄새가 날것 같은 거대한 검은 색 비닐봉지들.

 가끔 쓰레기봉투랍시고 다홍색의 봉투도 있었지만, 안에 내부가 훤히 보여 오히려 안보니만 못했다.

 비닐에 휩싸인 붉게 물든 어떤 것,

 시커먼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넣은 듯한 형태에 아현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난다.

 아현은 손전등 대신 들고 있던 스마트 폰 라이트를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그러자 드러나는 것은

 검은색 크레용으로 마구잡이로 색칠한 것 처럼 시커먼 벽면이었다. 마치 세 갈래의 높다란 산을 그린 것 마냥 들쭉날쭉으로 이어진 그을음. 왠지 특이보여서 아현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시커멓게 타버렸을까요……?”

 무엇 때문에 저렇게 변해버린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기분나쁜 상상밖에 나오지 않았다. 시커먼 벽면위로 붉은색 페인트로 [공구 철거]라는 단어가 칠해져 있어 한층 더 소름이 돋았다.

 “저긴 옛날에 불이 났던 자리래요.”

 수빈의 말이 갑작스레 들려왔다. 마음속 빈틈에 들어온 한 가닥 쐐기. 순간적으로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그, 그래요?”

 아현이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반문한다. 남자답지 않다라는 비난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수빈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수빈은 이런 아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개발하는 회사와 싸우다가 먹고 살기 힘들었는지, 집에 불을 지르고 일가족이 동반자살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집이 시커멓게 그을렸구요.”

 수빈은 손가락으로 시커매진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연스레 아현의 시선이 수빈이 가리킨 벽쪽으로 향한다.

 높은 산이 셋처럼 보이는 형태가 사람의 형태처럼 바뀐다. 달궈진 벽안에서 일가족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누가 알까. 몸이 녹아내리며 비명을 지르는 가족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끔찍해져 아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때,

 “그래서 이곳을 지나면 어린아이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데요. 뜨거워. 살려줘. 하면서요.”

 “힉!”

 등 바로 뒤에서 속삭이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 순간 상상하고 있던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참고 참았던 신음소리가 그 순간 터져 나왔다.

 공포.

 그 두 개의 단어에 심장이 찢어질듯이 거칠게 움직이며 허파가 꾹 조여댄다. 제대로된 숨을 쉬지 못해 짧은 신음만이 구원의 생명줄인냥 애써 잡아냈다.

 아현은 놀란 가슴을 억지로 부여잡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수빈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으…세요?”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수빈의 말. 아현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안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네. 괜찮아요. 안놀랐어요.”

 깊은 숨을 토해내며 어떻게든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빈은 그래도 걱정되는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이야기에 심취해서 그만…….”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의 말을 쏟아내는 수빈의 모습. 어쩐지 그 모습이 기분이 나빠, 자연스레 퉁명스럽게 말을 올렸다.

 “됐어요. 별로 놀라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남자답지 못하면 우습게 볼 것이다. 그것만은 사양이었다.

 아현은 괜히 툴툴 거리며 일부러 대범한 척했다.

 “이, 일단 습격당한 곳으로 얼른 가보죠.”

 아현은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수빈도 그런 아현을 보다가 어깨를 추욱 내리고 아현의 뒤를 따라갔다.

 어느 정도 더 걸으니, 눈에 익숙한 장소 드러났다.

 수빈을 덮치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 곳.

 아현의 손에 들린 라이트가 이리저리 돌려지며 주변을 비춘다.

 “여기였죠? 그때 그… 범죄자가 나타난 곳이…….”

 수빈은 아현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 저곳을 살피던 그의 손이 한 쪽을 가리켰을 뿐이었다.

 “…아마 이곳에서 바로 나타난 것 같네요.”

 수빈의 손짓에 아현은 그가 가리킨 곳을 슬쩍 훔쳐보았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져 칠흑같은 검은 장막만이 존재하는 골목길. 너무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확실히 그날도 무척이나 어두웠었다.

 이런 골목길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챌 리가 없었다. 아마 습격자는 이 골목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던 수빈을 그대로 덮쳤을 것이었다.

 “저기 아현씨……?”

 “네?”

 문득 수빈이 부르는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현이 고개를 돌리자 어쩐지 한층 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현은 아까보다 더 굳어진 표정을 한 수빈을 보며 긴장했다.

 “저, 저 그러니까…….”

 왠지 모르게 우물쭈물하며 말을 쉽사리 못 꺼내는 수빈. 아현은 그런 수빈을 보며 아까부터 신경쓰였던 것을 먼저 말하기로 했다.

 “저어, 죄송하지만 ‘씨’를 붙이는 것은 좀 빼줄래요?”

 “…네?”

 “아니, 그러니까 어차피 같은 나이이기도 하니까…….”

 낮 간지럽게 이름 끝에다가 ‘씨’라고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단 거리감을 느끼고 싶진 않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친근한 표현이 있을까?

 아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알맞은 단어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현의 머릿속에서 해당 하는 단어는 존재 하지 않았다.

 다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서로 말을 놓는 건 어떨까요?”

 “말을?”

 수빈의 눈동자가 놀란 토끼눈처럼 변한다. 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영이의 친한 사촌지간이면 앞으로 계속 볼 것 같은데, 계속해서 불편하게 존댓말 할 필요는 없잖아요. 학교도 같은 곳에 다니고…….”

 아현에게 있어서 이건 모험이었다. 아무리 같은 나이라 해도 상대는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이다. 맘대로 말을 놓았다가는 상대방에게 크나큰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그런 말이었다.

 “어…그래도 될…까?”

 수빈이 더듬 더듬 말을 놓는다.

 도박은 성공했다.

 아현은 속으로 올라오는 기쁨을 감추고는 최대한 절제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 그래도 되지. 친구”

 입에 붙진 않았지만, 그래도 억지로 말을 뱉어본다. 아현은 친구라는 단어가 이렇게 친근하고도 사교적인 단어인지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아까보다 더 가까워진 느낌. 수빈도 아현이 친구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아까보다 덜 부담스러웠는지, 굳어져 있던 표정이 조금은 이완되었다.

 “그, 그래 친구. 친구 구나…….”

 수빈은 잠시 단어를 곱씹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 아현을 불렀다.

 “아현씨, 아니 아현아. 나 너에게 말할게 있어.”

 “으, 응?”

 수빈은 잠시 숨을 깊게 들이 쉬다가 나직하게 아니, 조금은 쑥스러운 듯이 읆조렸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고맙다……?

 아현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수빈은 그런 아현을 보고 풋 하고 웃더니 이어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엊그제 네가 날 여기서 구해줬잖아. 그래서 널 만나고 나서 계속 고맙다고 말 하고 싶었어.”

 “아아…….”

 그제야 아현은 수빈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쓰러진 수빈을 향해 달려가던 아현. 그리고 다짜고짜 검은 그림자를 발로 차 쓰러뜨렸다는 사실까지 모두 떠올랐다.

 “뭐, 그정도 쯤이야…….”

 아현이 쑥스러운지 콧잔등을 긁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대놓고 고마움을 받는 것이 왠지 익숙치 않았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수빈의 미소를 보니, 더더욱 부끄러워져 시선을 다른 곳에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웃지 마라. 정든다.”

 괜시리 시큰둥하게 말한다. 수빈은 그런 아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일부러 헛기침을 하던 수빈은 볼멘 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들기는….”

 무언가 말을 더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잘 들리진 않는다. 아현은 그런 수빈을 보며 무척이나 귀엽다고 느꼈다.

 ‘저러니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그렇게 홀리는 거겠지.’

 외모도 뛰어나고, 무척 남자다운 매력 또한 가지고 있다. 대학교에서도 이름난 경제학과 학생인데다가, 그러면서도 툭 하고 건드리면 수줍어하는 모습까지 있으니, 자신이 여자라도 한 눈에 반했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미 반해버린 것 같지만…….’

 어쩐지 그런 생각이 싫어져 괜시리 퉁명스럽게 읊조렸다.

 “귀엽네. 여자들이 좋아하겠어.”

 조금은 삐딱선을 타는 말투. 수빈의 얼굴이 금세 굳어진다.

 “귀엽…지않아. 딱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치 말을 고르며 입을 여는 수빈이의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발끈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묘하게 복잡미묘한 얼굴이 어쩐지 낯설었다.

 “그래? 보통 남자라면 그런거 좋아하지 않나? 여자에게 인기많으면 기분좋잖아.”

 아현은 마치 자신은 남자가 아니라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것은 질투이기도 했고, 또는 선망이기도 했다.

 아현은 특유의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여자에게 인기가 거의 없다 시피했으니까. 아마 선망의 대상이나 질투의 대상이 되었을 지언정 연애의 대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렇진 않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어디다 쓰게. 좋아하는 사람만 있으면 되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

 아현의 머릿속에 쿡 박혔다. 어쩐지 기분이 묘해졌다.

  눈앞에서 미묘한 표정으로 아현을 바라보는 수빈의 모습. 늠름하고 듬직한 사내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아현에게는 없는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심감, 또는 자존감의 형태.

 아현은 그것이 무척 부러웠다.

 자신도 저 모습을 가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깨를 펴고 멋진 말투와 행동을 하며 남자답게 말하는 그 모습들이 미치도록 부럽고 가지고 싶었다.

 저런 남자가 좋아하는 이상형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문득 그의 머릿속에 물음표하나가 스쳐지나간다.

 분명 엄청나게 멋지고 예쁜 여성일 것이다. 남자다운 그에게 걸맞는 가녀리고 무척 여성스럽지만, 속으로는 배려와 강단이 곁들어진 매력있는 여자.

  하지만 진짜 그럴까?

  아현이 수빈이 아닌 이상, 그의 머릿속을 궤뚫어볼순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터프하고 털털한 여성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호방하고 시원스레 웃는 여성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빼빼 말랐지만, 남자다운 소년같은 여성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현은 문득 자신의 상상력이 점점 자신의 겉모습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어느사이엔가 머릿속은 ‘어쩌면’이라는 마법의 단어에 힘입어 서서히 상상해선 안될 것 까지 왔다. 자기 멋대로 만들어지는 ‘수빈의 이상형’은 어느 사이엔가 남자로 변해있었다.

 그것도 아현, 자신에 대한 이미지로…….

 숨은 용기가 ‘어쩌면’이라는 마법에 의해 꺼내어진다. 낙관적인 자신감이 쓸데없이 용기에 힘을 불어넣었다.

 아현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었다.

  “너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있어?”

  “여자애?”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는 것처럼 느껴지는 수빈의 목소리.

 ‘이크, 너무 뜬금 없었나?’

 아현은 자신이 한 질문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끔, 최대한으로 머리를 굴려 얼버무렸다.

  “아니, 아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서 그냥 한 번 물어본거야. 뭐 이상형이나 그런게 있을 거잖아.”

 대화가 어색해진다. 쓸데없는 아무말 대잔치가 아현의 말에 어색함을 높여 준다.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상형이라면 있어.”

  하지만 수빈은 이런 어색한 아현의 변명에도 착실히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이쪽을 힐끗 힐끗 보는 시선이 조금 어색했지만, 아현은 자신의 변명거리가 통했다는 생각에 그 모습을 흘려넘겼다.

  “그래? 어떤데?”

  수빈은 고민하는 듯 잠깐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듯 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지. 음, 머리가 길었으면 좋겠어. 생 머리처럼 등이 어깨까지 오는 그런 머리말이야. 물론 연예인이나 TV에 나오는 아이돌처럼 예쁘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그래도 가슴은 좀 컸으면 좋겠어. 왠지 다정해 보일것 같잖아. 그리고 또…….”

 수빈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상형의 대한 이야기.

 그가 하고 있는 묘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남학생이 상상 할 수 있을 법한 이상형에 대한 이야기였다.

 외모, 스타일 등을 따지고,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이어나가는 수빈의 말.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아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말 그대로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현의 가슴이 시큰하게 가라앉았다.

 자신으로서는 수빈의 이상형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긴 생머리도 아니고, 다정해 보일 법한 큰 가슴도 존재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아현는 애초에 여자가 아니란 점이었다.

 성격 같은 것은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외면적인, 아니 생물학적인 요소는 어떻게 죽을만큼 노력한다 해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이 너무나도 절망스러웠다.

 “그러고보니 나만 말하는 것좀 그렇네, 네 이상형은 뭐야?”

 “으, 응?”

 한참을 자기얘기만 하던 수빈이 문득 아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공격. 아현은 의표를 찌르는 한 마디에 입을 열었다.

 “나는…….”

 ‘이대로 입을 열어도 될까?’

 아현은 조용히 자신의 이상형의 완전체인 수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멋지고, 남자답고, 자신이 지금 좋아해 마지않는 그 사람. 지금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전부 표현해서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부르짖고 싶다.

 아현은 머릿속에 든 완벽에 가까운 한 남자의 묘사들을 전부 차곡차곡 정리해서 조용히 입에 담았다.

 “…나도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좋아. 청순해 보이거든. 부드럽고 상냥하고, 그리고 여리여리한 보호해주고 싶은 그런 여성이 이상형이야. 물론 가슴도 크면 좋을것 같아.”

 거짓말.

 아현은 차마 수빈에게 자신의 머릿속이 마구마구 표현하고 있는 수빈의 모습을 도저히 말할 자신이 없었다. 안 그래도 여자를 좋아한다고 선언한 수빈이다. 남자따위가 좋아한다고 하면 분명 자신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혐오하고,

 배척하고,

 어쩌면 다시는 아현의 얼굴을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요? 그렇군요.”

 무뚝뚝한 수빈의 한 마디가 조용한 골목을 떨리게 만든다.

 미안하다.

 나는 아직 네 앞에 당당히 설 용기가 없어.

 아현과 수빈은 그렇게 말을 잇고는 한참 동안이나 말을 나누지 않았다. 서먹서먹한 분위기까진 아니었지만, 아현은 묘하게 자신과 수빈을 가로막는 어떠한 벽을 느꼈다.

  결국 두 사람은 괴담에 대해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한 채,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현의 머릿속에는 이미 괴인이니, 괴담이니 하는 생각들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내 사랑은 아마도 보답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안타깝고도 서글픈 한 문장이었다.

  왜 물었을까.

  잘 알고 있으면서.

 수빈이 나에게 할 말을 알고 있었으면서.

  아현은 그 날 밤늦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끊임없이 뒤척였다.

 ----------

 

 수빈은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가만히 오늘 아현이 한 말들을 찬찬히 곱씹어 보았다.

 ‘아니, 아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서 그냥 한 번 물어본거야. 뭐 이상형이나 그런게 있을 거잖아.’

 이상형.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렇게 남자처럼 굴고 다니는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또 사귈 수 있게 될거라는 것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상형이라니.

 수빈은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아현에게 감히 이상형에 대해 말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지금의 자신이 아현을 좋아한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기겁하고 도망가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래서.

 수빈은 아현에게 말했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형이 아닌, 자신이 되고 싶은 이상형을.

 그것은 어쩌면 꿈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손에 닿을 수 없는 꿈.

 뻗고 싶지만 뻗을 수 도 없는 꿈.

 평범한 여자애가 되고 싶다는 소원.

 그렇게 입에 담다 보니 문득 아현의 이상형에 대해 궁금해졌다.

 ‘만약 남성적이고, 당당하고, 말 잘하는 여성이 이상형이라고 한다면…….’

 그게 아니라도 그에 준하거나 가깝다고 한다면,

 자신은 지금 당장에라도 고백을 할 것이었다.

 하지만 아현의 대답은 뻔하고도 평범했다.

 “…나도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좋아.”

 자신의 머리카락은 길지 않다.

 “부드럽고 상냥하고,”

 자신은 부드럽지도 상냥하지도 않다.

 “그리고 여리여리한 보호해주고 싶은 그런 여성이 이상형이야.”

 수빈의 마음은 거기서 무너졌다.

 도저히 일치되지 않았다. 자신의 닮은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1도 찾아 볼수 없는 아현의 이상형.

 수빈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전신 거울앞에 섰다.

 조금은 예쁘장한 남성이 울 듯 말듯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련된 몸.

 훤칠한 키.

 부드러운 부분이라고는 거의 없는 오밀조밀한 잔근육들이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수빈은 가만히 거울에 손을 뻗었다.

 “예뻐지고 싶다.”

 얼굴 부분을 슬며시 쓰다듬는다.

 “나도 예뻐지고 싶어…….”

 문득 며칠전 축제때 보았던, 마치 선녀처럼 예뻤던 그 여학생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그 여학생처럼 예뻐지고 싶다.

 어떻게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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