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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원초적 욕망
작가 : 박소영
작품등록일 : 2016.10.9

“당신을 위해, 당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던 외모로 살아가며 당신이 원하던 일을 이루고, 당신의 이상형과 당신이 원하는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드십시오. 유토피아는 당신이 창조하는 완벽한 현실입니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결국 유토피아를 가능케 했다. 만 30세를 넘긴 사람은 누구나 유토피아에 갈 수 있는 세상. 그러나 실제 유토피아를 조작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그들’의 욕망이다. 이를 깨달은 몇몇 사람들은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선다.

 
한 아이가 인간이 된 과정
작성일 : 16-10-23 01:33     조회 : 446     추천 : 1     분량 : 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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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마당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심각한 표정이었던 아버지가 이내 나를 발견하고 빙긋 웃었다.

 

 그리고 그 옆, 밝은 금발과 하얀 피부 탓에 멀리서도 눈에 띄는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앞으로 나는 저 사람을 죽도록 싫어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저 사람이 우리 아버지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나는 주사위를 던지는 심정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만나서 반가워요,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내가 다가서자 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서 먼저 악수를 청해왔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쉬워 보이지 않는 인상.

 

 “저도 반갑습니다, 이영연입니다.”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그와 달리 나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를 경계하고 있는 속마음을 전부 가릴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나는 내 아내와 바람이 난 남자 앞에서도 충분히 웃어 보일 수 있다.

 

 “집주인이 먼저 와서 손님을 맞아야 하는데…….”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영연 특유의 해사한 미소를 지은 채.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꽤나 미안한 척 했다.

 

 “괜찮아요. 집 구경하고 있었어요.”

 

 이 사람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런 모습이 무심해보이기도 하고 당당해 보이기도 한다. 남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혹시 나이를 여쭤 봐도 되나요?”

 

 “스물일곱, 아 한국에서는 스물아홉이에요.”

 

 나이는 나보다 딱 한 살이 많다. 파프의 한국지부가 문을 여는 내년에 고작 서른 살.

 

 파프(FAHF)는 아버지가 10년을 일궈온 세계적 자선재단으로, 나는 아버지가 소설 집필보다도 파프 사업에 더 큰 애착을 갖는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아버지가 그런 파프의 한 지부를 맡긴다는 건 그만큼 이 사람을 신뢰한다는 증거가 된다.

 

 아버지가 나보다도 이 사람을 더 신뢰하는 듯한 느낌이 매우 불쾌하다. (나는 고작 파프 한국지부의 홍보대사를 맡게 될 예정이다.)

 

 “와, 그렇게 어린 나이에 파프 한국 지사를 맡게 되신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나는 정말로 이수현이 부러웠고.

 

 “대단할 거 없어요, 작가님께서 믿고 맡겨주신 덕분이죠.”

 

 이수현은 별 감흥이 없는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말없이 이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볼 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다정한 얼굴.

 

 -사실 내가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던 녀석이 하나 있었어.

 

 지난 봄 아버지의 고백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작품 집필과 파프 운영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그래서 하나뿐인 친아들조차 뒷전이었던 그가 남의 자식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어우, 나이가 들면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하다니까.”

 

 잠시 후 나와 이수현이 호칭정리를 마칠 때 즈음 아버지가 피곤함을 호소했다.

 

 아버지에게는 약간의 기면증 증세가 있는데, 심할 때는 정말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이 들고 만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나는 지난 봄 그의 첫 사인회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했었다. 내 일정까지 조정해가며 아버지와 함께 세계 9개 도시를 방문했다.)

 

 “우리 아버지가 진짜 잠이 많으셔.”

 

 나는 집으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고, 이수현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면증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눈치였다.

 

 “작가님하고 사이가 좋은가봐. 보기 좋다.”

 

 “응. 아무래도 서로에게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이수현의 말에 나는 가볍게 답했다. 물론 ‘서로에게 하나뿐인’이란 표현을 나름 강조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어쨌든 아버지가 자리를 비켜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수현을 알아볼 시간이었다.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애야. 나는 너희 둘이 형제처럼 지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가 이런 당부를 덧붙인 순간부터, 나는 이수현에 지대한 호기심과 경계심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나를 향한 아버지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적이 될까, 아니면 아버지에 대한 내 은밀한 생각을 들어줄 동지가 되어줄까.

 

 현재까지는 전자에 매우 근접해 있었다.

 

 “혹시 그런 생각해본 적 있어?”

 

 그때, 여태껏 나에 대해 별다른 궁금증이 없던 이수현이 처음으로 질문을 꺼냈다.

 

 “이 사람이 내 진짜 아버지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한 질문이었다.

 

 마치 내 머릿속의 은밀한 비밀을 훔쳐보기라도 한 것처럼.

 

 

 ***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가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인식하는 정보는 무엇일까.

 

 자신의 생김새? 성별? 국적? (설마.)

 

 나는 이 모든 것을 앞서는 정보가 하나 있다고 보는데, 바로 ‘나는 사랑받고 보호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24시간 나를 지켜보며 내가 우는 소리에 맞춰 나를 먹이고 재우는 부모라는 존재.

 

 그들은 내가 까르륵 웃기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고, 내가 누워서 먹고 똥만 싸도 좋다고 웃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를 물고 빨아대는 부모를 보며, 그 어떤 아이가 자신의 특별함에 대해 의심을 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부모의 바닥난 인내력에 서러움을 느끼는 ‘미운 네 살’까지 나름 견고하게 유지된다.

 

 이후 초등학교 받아쓰기에서 빵점을 받아 부모의 걱정을 사거나 사춘기의 감정 변화로 부모와 마찰을 일으키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누워서 똥만 싸도 사랑받던 나’는 끝났음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아이는 사람이 된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 이론을 기준으로, 나는 이미 여섯 살 때부터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그날 나는 무서운 꿈을 꿨었다. 분명 귀여워야할 도널드 덕이 무서운 얼굴을 한 채 내 뒤를 계속 쫓아왔다.

 

 잠에서 깬 나는 이불을 끌어안고 목이 쉴 때까지 아빠를 불렀다.

 

 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울기 시작했는지, 처음의 이유를 잊어갈 때가지도 아빠는 내게 오지 않았다.

 

 나는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아빠의 방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잡고 아무리 돌려도 문을 열 수 없었다.

 

 이게 아버지와 나 사이에 놓인 문에 대한 첫 기억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아빠의 방문이 항상 잠겨있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아빠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보냈는데, 자신이 원할 때가 아니면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건.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의 안정적인 사랑 안에서 미운 네 살답게 살고 있을 때, 나는 겨우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아빠의 사랑에 온 몸을 담그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 앞에서 일부러 넘어지거나 아무 데나 부딪히며 큰 소리로 ‘아야!’ 하고 외치곤 했다.

 

 그러다 진짜 다치더라도 절대 울지 않았다. 그래야 ‘우리 영연이는 정말 씩씩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금방 나를 ‘잘 넘어지는 애’ 정도로 생각했다. 오히려 내가 넘어질 때마다 ‘조심해야지!’라고 근엄하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계속 아빠의 관심과 애정을 이끌어낼 것들을 찾아냈다.

 

 먹기 싫은 반찬을 억지로 먹을 때보다는 밥을 굶는 편이, 유치원에서 별 탈 없이 지내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싸우고 오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영연아 왜 그래? 어디 아프니? 뭐 때문에 그랬어?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아빠가 나를 걱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빠를 내 곁에 붙잡아두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더 큰 사고를 치면 아빠와 나 사이에서 굳게 닫혀 있는 문도 열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날 밤, 나는 뜨겁게 끓인 우유를 내 발에 끼얹었다. 아빠가 나를 보고 놀라서 물으면 ‘코코아를 타먹고 싶었다’고 말할 핑계까지 생각해 두었다.

 

 하지만 아빠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분명 방의 불은 켜져 있었는데도.

 

 어쩌면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도, 나에게 별 관심이 있지도 않을 거란 바보 같은 생각이 그날 처음 들었다.

 

 물론, 나 자신을 학대해서 아버지의 관심을 끌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최악이었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사랑받고 보호받는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든 확인받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 미친 짓은 결과적으로 좋은 시도였다.

 

 우유를 쏟아 빨갛게 짓무른 내 발을 본 유치원 선생님이 내게 엄청난 관심을 보인 것이다.

 

 너무 기뻤다.

 

 아빠와의 통화에 실패한 그녀는 나를 데리고 직접 병원까지 함께 가줬다.

 

 정말 좋았다.

 

 이후 나는 아빠로부터 받고 싶은 관심과 애정을 대신 채워줄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 앞에서든 쉼 없이 웃고 넘어지고 재잘댔다.

 

 사람들은 다행히 나를 좋아했고, 아빠의 부족한 존재감을 어느 정도 채워줬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나는 굳게 잠긴 방문이 나의 아버지가 위대한 작가로서 가져야 하는 괴벽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예술가나 천재는 원래 다 괴상한 법이니까.

 

 괴짜 예술가가, 부인도 없이, 아이를 이정도 키워낸 것도 어쩌면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엔 나를 많이 아껴주었다. 항상 나에 대해 궁금해 했으며 나와 교감하고자 노력했다.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항상 안타까워했고 내가 발에 화상을 입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특히나 마음 아파했다.

 

 그러니까, 방에 처박혀 있는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사실 외에는 좋은 아버지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글을 쓰고 파프의 사업을 키우며 점점 더 훌륭한 인물이 되어갈수록,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한한 관심과 호감을 점점 더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아버지의 부재를 보상받듯이. (세상 일이란 참 재미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괴벽조차 원망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가 나를 방치했던 무수한 날들이 내게 더 큰 사랑을 돌려주기 위한 시간들이었다고 믿기로 했다. 내가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일부러 그의 속을 태웠던 것처럼.

 

 그렇게,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나는 나의 아버지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존경했다.

 

 어린 나를 방치했던 것마저 최대한 이해하고, 그 사실을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만 가둬둘 만큼.

 

 

 ***

 

 

 “혹시 그런 생각해본 적 있어? 이 사람이 내 진짜 아버지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데 이수현의 질문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분명 ‘너는 네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라고 묻고 있었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가 내게 무슨 짓을 했었는지, 그게 나를 어떤 인간으로 만들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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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dream 16-11-0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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