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또 어떻게 보내지?"
마이클 선생님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선생님의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지?'라는 메세지는
"안녕 나 잘 있다. 너도 잘있지?" 라는 말이라는 걸 자가격리 3일째 되는 날 알게 되었다.
"네 엄청 잘 먹고 잘 자고 신나게 살고 있답니다"
나는 이 말 대신 봄이와 나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선생님께 보내 드렸다.
"살쪘다!!! 나는 말라가는데 넌 쪘구나!! 부었나?"
선생님의 답이 왔다.
그런가? 거울을 봤다. 통통 살이 오른 불그스름한 뺨이 건드리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이틀에 한번씩 문앞에 놓고 가는 코로나 구호품을 봄이와 나는 싹쓸이 했다.
안돼! 살찌면 주인공 할 수 없는데?
곧 있을 뮤지컬 오디션에서 주인공 역할을 따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그 오디션에 대비해서 양악수술을 한 가을이의 우스꽝스런 모습도 떠올랐다.
"실력은 다 거기서 거기야. 여주인공은 얼굴이 이뻐야 해"
가을이 엄마 그러니까 나한테는 새엄마라고 하는 가을이 아줌마는 단언했다.
여주인공은 이뻐야 한다고!!!
실력은 기본이라고!
"가순 노래만 잘부르면 돼"
마이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기본이 갖춰져야 한다고!
그래 나는 얼굴이 안되니까 기본이라도 갖춰야지.
거울을 보면서 나는 얼굴을 내려 놓았다.
하나를 내려놓고나니 또 하나의 자신없음이 올라왔다.
이 오디션장 저 오디션장 픽업해 주는 엄마도 내겐 없잖아.
방안에 커다랗게 걸린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히말라야 어딘가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자기를 귀찮게 하는 가족들을 떠나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겠다고 떠난 엄마!
그곳에서 바람처럼 자유로운가요?
내가 엄마한테 그렇게 귀찮은 존재였나요?
서러움이 슬금슬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냐옹!"
봄이가 손을 뻗어 왔다.
토닥토닥!
"여름이 외롭구나! 이럴 땐 노래를 불러봐!"
봄이가 말했다.
봄이는 단지 "냐옹!"이라고 했을 뿐인데 그 표정 몸짓에서 나는 봄이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얼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상했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팍팍 기운이 솟구쳤다.
"너 왜이렇게 목소리가 파워풀해졌니? 사슴피라도 먹은 거야?"
"사슴피 먹으면 목소리가 좋아지나요?"
나는 궁금해서 물어봤고
"농담이야 임마!"
선생님은 껄껄 웃으셨다.
"사슴피는 안먹구요? 코로나 구호품 곰탕 먹었는데 마약곰탕인가봐요"
"뭐어? 마약이 들어있다고!"
화들짝 놀라는 선생님에게 "농담이예요. 마약 김밥 마약 옥수수 안들어보셨어요?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예요"
"난 맛 없던데! 젊어서 그런가? 여름이 너 목소리가 퍼펙트 하다. 원래 가능성이 있는 얘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다니! 도대체 뭘 한거니?"
야호!!!!!
막말대왕에 칭찬이라는 말은 선생님 사전에 없는 단어라고 큰소리 치던 분이 내 목소리가 퍼펙트 하다고
칭찬하셨다. 꿈인가? 내볼을 꼬집어 봤더니 아프기만 했다. 그럼 꿈은 아닌데 선생님이 혹시 아프신가?
하루종일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앉아서도 서서도 누워서도 선생님이 하신 말씀만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 미쳤나봐 봄이야! 웃음을 못참겠어"
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웃었다.
봄이도 따라 웃는 것 같았다.
"이여름님,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었다는 문자를 받던날 나는 봄이와 함께 뛰쳐 나왔다.
달리고 달려 온 곳은 학교 운동장 잔디밭. 왜 여길 왔을까? 학교가 그리웠나?
텅빈 학교엔 아이들의 흔적이 없었다. 적막한 학교 건물을 바라보던 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뭔가가 달라졌어. 내안에 무언가 이젠 의미없어
남들이 정한 규칙들 난 깨어나 버렸어.
남들이 정한 규칙들 .....
날아올라 중력을 벗어난 규칙들
하늘 높이 날개를 펼거야 ...
.... 이 오즈에 누구도 어떤 마법사도
나를 끌어내릴 순 없어.
이젠 그 누구도 워어어~
이번 오디션에서 부를 뮤지컬 ‘위키드’ 중에서 ‘디파잉 그레비티(defying gravity)’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주를 받고 태어난 초록 마녀 엘파바가 절규하듯 부르는 그 노래.
나도 무중력 상태에서 날아가 버리고 싶었다. 그곳은 히말라야도 아니고 세상 끝에서의
고독을 노래하는 극지방도 아니었다. 우주로 날아갈까? 그래 날아보는 거야. 무중력 상태인
우주로 날아보자!
내 목소리는 이미 이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날아가고 있었다.
- 양동이 이야기 -
나는 외국어 고등학교 학생이다. 우리 학교는 같은 재단의 예술고등학교와 이웃해 있다.
친구 현도는 예술고등학교에 이쁜 여자 아이들이 많다고 헌팅하러 가자고 가끔 나를 유혹해 왔다.
나는 한번도 넘어가 본적이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목석 같은 자식!"
현도는 그런 나를 그렇게 불렀다. 정말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목석인가?
아니다. 어쩌면 나무나도 열정이 넘쳐 끓어 올라 활활 타버릴까봐 애써 모른척 할 뿐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아무도 없는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는 예술고등학교 쪽으로 가봤다.
내 자전거 앞 바구니에는 고양이 로마가 타고 있다. 하루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로마
바람도 쏘일겸 데리고 나오길 잘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로마
싱그러운 바람이 시원했다. 솔솔 부는 바람을 타고 노래소리가 들렸다.
그 노래 소리는 몹시도 힘이 넘치고 아름다웠다.
누구지? 나는 노래소리에 이끌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갔다.
커다란 느티나무 밑 벤치에 한 여학생이 앉아서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따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었다.
처음 듣는 노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은 듯한 친숙함이 있었다.
친숙함과 함께 에너지도 넘쳐났다. 듣는 나조차 힘이 생겼다.
가사도 뭔가 억압을 뚫고 나오는 내용같았다.
.....나를 끌어 내릴 수 없어
그누구도 워어어~~~~~
마지막 소절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멋졌다. 멋지다는 말 밖에 더 할말이 없었다.
나는 노래에 홀려 멍충이가 되어서 멍! 하니 자전거를 멈추고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갸르릉"
여학생 무릎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로마를 보고 소리를 냈다.
"갸르릉"
로마도 그 고양이가 좋은지 소리를 냈다.
로마와 그 고양이 눈이 마주 쳤다.
로마가 펄쩍 자전거에서 뛰어 내렸다.
“로마!”
나는 그 고양이를 향해 달려가는 로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여학생이 고개를 돌려 내쪽을 보았다.
그 여학생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차 한 대가 로마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