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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의 아이 따윈 개나 줘 버려!
작가 : 솔커
작품등록일 : 2020.8.3

#본격_여주인공이_다_해_먹는_동양_판타지!

"아이야, 너는 용의 아이란다."

아니, 용의 아이면 축복이나 내려줄 것이지 제물이 웬 말이람?
제물이 될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희진의 이세계 고군분투 생존기!

나는 지금이 왜 고구려인지도 모르겠고, 왜 황태손이 황궁 대신 산골짜기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신관인 주제에 신을 죽이러 가자는 소리나 하는 신관이 옆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야, 너네 진짜 나한테 왜 그러냐?"

과연 희진은 용의 아이라는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16. 그림자 박선달 (1)
작성일 : 20-09-07 22:43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6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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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심이 가득하던 왕 영감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밝아지기 시작한 것은 밤 깊은 시각이 넘고 난 이후였다.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개복이와 그 곁에 함께 나타난 남자의 존재 덕분이었다.

 

 

 “어르신, 선달님을 모셔왔습니다.”

 

 

 개복이의 목소리에 왕 영감은 체통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까만 차림을 한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수상한 기색이 풀풀 나는 남자였다. 그는 왕 영감을 보자마자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왕 영감님을 뵙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들고 복면을 턱 아래로 잡아 내렸다. 왕 영감은 눈앞의 남자를 유심히 바라봤다.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남자는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왕 영감을 향해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영감님. 지난밤 거북이와의 산책은 즐거우셨는지요.”

 

 “네놈!”

 

 

 왕 영감이 고함을 치며 남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얼마나 노했던지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 금거북이! 그날 밤 거북이를 들고 담장을 넘던 놈이 네놈이 분명하렷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거북이는 본디 주인을 찾아갔을 따름입니다.”

 

 “허튼 소리! 내 것을 앗아가 놓고 어찌 다른 주인을 논한단 말이더냐!”

 

 

 노기 가득한 왕 영감의 말에 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왕 영감보다 반 뼘 정도 커다란 키였다. 그는 마루 위에 선 왕 영감을 올려다보며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영감께서 가지신 모든 것들이, 이 왕씨 가문이 가진 모든 것들이 댁들이 잘하여 가졌다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참으로 순진하고 어린 생각이로군요.”

 

 곁에서 안절부절못하여 왕 영감과 남자의 설전을 바라보던 개복이가 황급히 남자의 팔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네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리 함부로 주둥이를 놀려대느냐!”

 

 

 남자는 순순히 개복이의 손에 끌려가며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제 도움이 필요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시덥니까? 저깟 놈이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어찌할 수 없으시겠지요. 예까지 찾아오신 걸 보면 다른 길은 이미 막히신 게 분명하잖습니까.”

 

 

 놀리는 투가 다분한 그 말투에 왕 영감의 주먹이 떨려왔다. 남자는 개복이의 손을 가볍게 떨쳐내고 왕 영감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좁아진 간격의 끝은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십니까?”

 

 왕 영감은 분노를 삭이기 위해 이를 꽉 깨물며 간신히 대답했다.

 

 

 “네 놈, 뱉은 말에 분명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돌아서려던 왕 영감을 붙잡은 건 마당패라도 벌이는 듯 늘어지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허어, 기구하고 또 기구하도다.”

 

 

 왕 영감은 반쯤 돌아섰던 몸을 다시 돌린 채 남자를 노려봤다. 무슨 수작을 부릴 작정인지 어디 한 번 보자는 심리에서였다. 남자는 딱하다는 얼굴을 하며 왕 영감을 똑바로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영감께서는 무엇에, 얼마나 책임을 지고 계시기에 남에게 책임을 논하신단 말입니까?”

 

 “뭬야?”

 

 

 왕 영감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남자는 어깨를 붕붕 돌리며 팔을 풀고는 손을 내저었다.

 

 

 “관둡시다. 오늘 밤은 가르침을 드리러 온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무어라?”

 

 

 듣자하니 점차 가관인 남자의 말에 왕 영감은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기분을 받았다. 등부터 목까지 모든 살갗이 꽉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놈이 하는 말에 마땅히 화를 내어야 하건만 쉽사리 화를 낼 수 없었다. 정도를 지나친 말들일지언정 남자의 말은 왕 영감이 오래도록 고민했던 부분들을 건드리는 말이었으니까.

 

 

 “네 이놈! 감히 왕 영감님께 그 무슨 말버릇이란 말이야!”

 

 

 굳은 왕 영감을 대신해 개복이가 성화를 냈다. 남자는 개복이의 말 같은 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오로지 왕 영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자, 그럼 시간이 얼마 없으니 이쯤 하고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영감님?”

 

 

 실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패배감이었다. 최 영감과 담화를 나누던 시절에나 느껴본 감각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그 기분. 저자를 부른 것은 분명 자신이었건만 주도권은 순식간에 저자에게로 넘어간 뒤었다. 왕 영감이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땐 이미 남자가 코앞까지 다가온 뒤였다.

 

 

 “인사 올립니다. 박선달이라 합니다.”

 

 

 남자는 오른팔을 허리 쪽으로 휘감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왕 영감은 그의 인사를 무시한 채 뒤로 돌아 방으로 들어섰다. 남자, 선달은 여전한 미소를 지은 채 신을 벗고 왕 영감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개복이는 닫힌 문 앞에서 멍하니 지금껏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봤다.

 

 도대체가 어찌 된 영문인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소리를 높일 땐 언제고 저리 방으로 들어간단 말이야. 개복이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무슨 영문인진 알 수 없었으나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재빨리 짐작하는 그였다.

 

 

 “네놈, 원래 그리 방자한 태도를 일삼고 다니는 것이더냐?”

 

 

 선달은 왕 영감이 자리를 권하기도 전에 털푸덕 앉은 채 주위를 둘러보며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누울 자리 정도는 보고 발을 뻗습니다.”

 

 

 왕 영감은 자줏빛 도포를 거칠게 휘날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허면, 내 만만해 보였다 이 말이더냐?”

 

 

 선달은 방에 놓인 값비싸 보이는 물건들을 눈으로 훑으며 중얼대듯 말했다.

 

 

 “성군은 덕으로 움직이며 폭군은 화로 움직인다. 영감께서는 어느 쪽이시렵니까?”

 

 

 왕 영감의 낯빛이 단번에 변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그의 목소리에서는 조바심마저 묻어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말은 저와 최 영감이 주고받던 논쟁에서 나왔던 말이자 최 영감이 제게 던진 말이었으니.

 

 

 “아는 분께서 주신 가르침입니다. 화를 참을 줄 아는 이와 함께 일을 하라 하시곤 가버리셨지요.”

 

 

 도대체가 이 녀석은 무얼 하는 놈이란 말이야. 왕 영감은 선달을 얕잡아봤던 것을 후회했다. 개복이 녀석이 말하던 것과 달리 마냥 도둑질에만 능한 놈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건 되었다 치고, 그래서 내 물건은 어찌했단 말이냐.”

 

 

 선달은 지루한 얼굴로 무릎을 올린 채 그 위로 턱을 괴고 고개를 기울였다.

 

 

 “영감, 그 거북이가 정말 선의의 표시였다 믿으십니까?”

 

 

 단조로운 목소리였다. 왕 영감은 눈살을 찌푸렸다. 몇 해 전 작은 금 거북이를 선물받은 적이 있었다. 제 아들의 장원 급제를 축하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채 한 해가 지나지 않아 도둑이 들어 금 거북이를 훔쳐 갔었다. 그 소란이 있던 밤, 자신은 연못가 너머의 기왓장을 밟고 사라지는 이의 눈빛을 잊지 못했다. 그리 큰 소란이 아니라 덮고 넘어갔지만 그는 한시도 그 눈빛을 잊은 적이 없었다. 사람이라기엔 짐승에 가까운 빛이었으니까. 그러니 그 눈빛을 한 선달을 다시 만났을 때 어찌 알아보지 못했으려고.

 

 

 “그게 무슨 소리더냐?”

 

 

 왕 영감의 질책에 선달은 기지개를 쭉 켜며 한 차례허리를 꺾은 뒤 대답했다.

 

 

 “그 한 마리의 거북이를 만들기 위해 계율현 사람들은 가진바 모든 것들을 탈탈 털어 바쳐야만 했습니다.”

 

 

 기지개를 끝낸 선달의 눈이 번뜩였다. 오히려 기백만큼은 왕 영감을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왕 영감은 차마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선달을 빤히 바라봤다. 선달의 눈을 피하지 않는 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영감께선 평양에만 계시니 모르시겠지요. 저는 이 방대한 고구려 전역을 떠도는 몸이라 잘 압니다. 이 땅의 백성들이 어찌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선달의 목소리가 점차 서늘해졌다. 잘 벼린 한 자루의 검처럼 섬뜩한 예기를 지닌 목소리였다.

 

 

 “평양에는 황궁까지 쭉 뻗은 대로가 있지요. 말들은 물론 수레 두어대는 거뜬히 지나갈 만큼 넓은 길입니다. 허나 조금만 도처로 나가더라도 수레조차 제대로 이끌기 힘들 만큼 험난한 길들 투성이입니다. 이 넓은 땅덩이에 황제라고는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를 평양에 있는 이 하나뿐인데, 백성들에게 황제가 무섭겠습니까? 아니면 당장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관찰사가 무섭겠습니까?”

 

 

 몰아치듯 말을 쏟아낸 선달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누군가는 그를 사기꾼이라 칭했고, 누군가는 그를 의적이라 불렀다. 또 누군가는 그의 목에 거액의 수배금을 걸기도 했다. 선달은 그런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쫓기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삶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적어도 그는 스스로가 믿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고, 그 신념 앞에 당당했으니까.

 

 

 “저는 제 뜻을 관철하기 위해 이리 살고 있습니다만, 영감께서는 타고난 것들에 취해 스스로의 길 같은 건 잃어버린지 오래신 것 같군요.”

 

 

 왕 영감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선달의 말이 가슴 곳곳을 후벼파며 다가왔다. 최 영감도 제게 그런 말을 했었지. 댁은 너무 많이 가져서 문제라고.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실마리가 잡히는 기분이었다. 왕 영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망할 능구렁이 같은 영감은 잘 지내고 있을는지. 내가 그깟 놈 때문에 이리 험한 고생까지 겪어야 한단 말이야. 왕 영감은 혀를 차며 미리 적어두었던 서신을 꺼내 선달의 앞으로 집어 던졌다.

 

 

 “길을 잃고 떠도는 놈은 내가 아니라 네놈이겠지.”

 

 

 선을 긋는 말에 선달은 빙긋이 웃으며 서신을 품안에 갈무리했다.

 

 

 “의뢰는 이것이 전부십니까?”

 

 

 허, 저놈 배짱 보소. 왕 영감은 기가 막힌 얼굴로 선달을 쳐다봤다. 왕 영감이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선달은 제 소매 속에서 새파랗고 작은 구슬 하나를 꺼내 왕 영감을 향해 굴렸다.

 

 

 “뭐하는 짓이냐?”

 

 “담보입니다.”

 

 “담보?”

 

 

 왕 영감의 표정에 의아한 빛이 어렸다. 역시 예사 도둑놈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책상 위를 두어 번 손으로 내리치며 입을 열었다.

 

 

 “무엇에 대한 담보란 말이더냐?”

 

 

 선달은 저잣거리의 이야기꾼들이라도 된 것인 양 익살맞은 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을 살살 비벼댔다.

 

 

 “자, 어디부터 말씀을 해드릴깝쇼?”

 

 

 왕 영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놈은 이 상황에서 장난을 칠 기분이 든단 말이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남김없이 고해야 할 것이다.”

 

 

 싸늘한 왕 영감의 목소리에도 선달은 전혀 기죽지 않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뢰를 기간 내에 완수하지 못 할 경우, 완수하지 못하였다는 말만으로는 너무 불합리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여, 저도 제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영감님께서 원하시는 기간 내에 끝내지 못하거나 혹은 실패할 경우, 그 구슬은 영감님의 것입니다.”

 

 “네놈이 또 밤중에 들어와 가져갈 수도 있는 노릇 아니더냐.”

 

 

 왕 영감은 제 앞에 굴러온 오묘한 빛깔의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까짓 게 무슨 값어치를 한다고. 게다가 도둑놈이 하는 말은 또 어찌 믿으란 말이야.

 

 

 “저도 나름 신뢰로 먹고 사는 놈입니다. 어떻게 대동강물에 대고 약조라도 할깝쇼?”

 

 

 왕 영감이 코웃음을 쳤다. 변화무쌍한 물에 대고 하는 약조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또 있으려고. 선달은 왕 영감의 손에 들린 구슬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 보여도 아주 값비싼 구슬입니다. 제가 아주 깊은 산 속, 버려진 동굴 속에서 발견한 것이니까요. 사람보다 몇 배는 더 큰 거대한 허물과 껍데기 속에 깊이 숨어있던 놈이었습니다. 무엇인진 아직 알 수 없으나 그렇기에 더욱 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왕 영감은 비웃음을 흘리며 손에서 구슬을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네놈 말을 듣기로써니 여의주라도 되는 모양이로구나?”

 

 

 가벼이 던진 말이었건만 선달은 의외로 그 말에 깊이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왕 영감은 그런 선달을 향해 혀를 찼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에 현혹될 정도로 어리숙한 이에게 놀아났던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언제까지 찾아드리면 되겠습니까?”

 

 

 선달의 말에 구슬을 던지고 받던 왕 영감의 손이 그대로 멈추었다.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한 왕 영감이 성급히 되물었다.

 

 

 “무엇을 말이냐?”

 

 

 선달은 그야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대꾸했다.

 

 

 “최 영감님 말입니다. 그분의 행방을 찾고자 저를 부르신 게 아니셨습니까?”

 

 

 왕 영감은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빼며 말했다.

 

 

 “네놈, 최 영감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단 말이더냐?”

 

 

 선달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씨익 웃으며 왕 영감을 바라봤다.

 

 

 “모릅니다. 아직은요.”

 

 

 도무지 쉬이 말하는 법이 없는 놈을 앞에 두고 있자니 왕 영감은 잠잠해진 두통이 다시 도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선달에게서 몸을 돌린 채 나가란 듯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한 달을 주마. 그 안에 최 영감에 대한 소식을 알아 온다면 은 한 냥을 내어 줄 것이고, 그 망할 영감을 내 눈 앞에 데려온다면 금 한 냥을 내어 줄 것이야.”

 

 

 알겠다고 순순히 나갈 줄 알았던 선달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 채 곰곰이 생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왕 영감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향해 다시금 축객령을 내렸다.

 

 

 “나가지 않고 무엇 하는 게야?”

 

 

 선달은 그제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왕 영감을 내려다보며 양 손가락을 쫙 펴보였다. 그러고는 당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보름. 보름 내에 최 영감을 이곳까지 모셔오지요.”

 

 

 허. 내 어이가 없어서. 왕 영감은 대놓고 비웃음을 터뜨리며 손가락 사이에서 이리저리 구슬을 굴려댔다.

 

 

 “네놈, 이 녀석이 그리 중한 것이 아닌가 보구나?”

 

 “제가 그리 자신이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으시는가 보군요? 이리 믿지 못하시는데 어찌 저를 부르셨단 말입니까? 보름 안에 최 영감님을 만나게 해 드리지요.”

 

 

 도리어 저를 힐난하는 듯한 선달의 말투에 왕 영감은 손안에서 있는 힘껏 구슬을 꽉 쥐었다. 괘씸한 놈일세. 선달은 잔뜩 일그러진 왕 영감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를 향해 웃고는 목에 걸고 있던 복면을 코끝까지 올린 뒤 문을 열었다.

 

 

 “그럼 그때까지 강녕하시길.”

 

 

 선달은 미련 없이 방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는 달빛조차 몸을 숨긴 어둠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왕 영감은 홀린 듯 열린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푸른빛의 작은 구슬만이 방금 제 방에 왔다 간 손님이 있었노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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