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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더 스트라드
작가 : NOAHSHIN
작품등록일 : 2020.9.3

"이진우 씨, 서울시향과의 계약은 파기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죠."
관현악과 4학년, 첼리스트 이진우는 그렇게 초능력자 피아니스트 윤피에르의 손을 잡았다.

그의 곁에는 계약을 파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저명한 실력파들이 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잉그램 에반스, 클래식계의 아이돌 서정아,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올리스트의 딸, 강예빈. 그리고 신예 첼리스트 이진우까지 손에 넣은 윤피에르는 자신이 모은 이 멤버들로 실내악단을 꾸렸다. 하지만 어딘가 맞지 않고, 불협화음만이 지속되는데...

초능력과 클래식, 사랑, 그리고 불협화음, 더 스트라드의 연주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5. 자유
작성일 : 20-09-07 18:04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7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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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베르탱고(Libertango). 1974년,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작곡한 곡. ‘자유’라는 뜻의 스페인어 ‘Libertad’와 춤의 한 종류 ‘탱고’를 합한 제목으로서, 그야말로 ‘자유로운 탱고’. 클래식과 탱고를 결합해 피아졸라가 그렇게 추구하던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새로운 탱고라는 뜻과 걸맞았다. 자유롭고, 새롭다. 그래서 예빈이 참 좋아했었고, 그녀의 아버지도 좋아했었다.

 

  ‘그래... 자유롭지...’

 

  그럼 그걸 연주하는 사람도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나. 예빈은 그렇게 생각하며 교문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머리도 지끈거리는 듯 했다.

  그때, 누군가 예빈의 등을 툭 건드리면서 예빈 앞에 섰다. 아는 사람이었는지, 예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야, 예빈아, 바닥 꺼지겠어?”

 

  한예종 지휘과 과장 교수, 성지숙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차 안 가지고 오셨어요?”

 

  예빈은 두리번 거리면서 지숙에게 물었다. 평소 차를 가지고 다니던 지숙이었는데, 그녀는 교문을 걸어서 들어오고 있었다. 예빈은 그것에 의문이 들었다.

 

  “요즘 운전하기에 눈이 참 침침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팔아버렸지. 너는 왜 왔냐? 졸업도 한 주제에.”

  “그으...”

 

  예빈은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정은 아니었다.

  예빈은 다음 주에 한예종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있을 예정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연습하기에 꽤 촉박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후로부터 최근 예빈은 꽤 바빴다.

  예빈의 아버지, 강민우는 세계적인 비올리스트였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 미성년자 때부터 유명했고, 그녀가 태어났을 시기엔 외국에서 이미 알아주는 비올리스트였다. 협연과 공연, 연습, 그에게는 일상이었고 어머니가 없던 예빈에겐 그가 자신을 키워주는 것보다 비올라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 더 익숙했다.

  그가 그렇게 협연을 다니던 어느 날,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다. 연락도 안 받고, 행적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다행히 친척들과는 연락이 닿는 모양이었지만 예빈이 연락하려고만 하면 받지를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가 살아있으니 그렇게 문제가 될 건 아니지만 그가 없어진 이후로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그가 수많은 협연들을 내팽개치고 갔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는 공연이 많았다. 특히 협연, 정말 많았다. 예빈은 이번 일로 자신이 어떻게 돈 걱정 없이 자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정도로.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취소하고 위약금을 물어주면 되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렇게 협연 공연을 취소하기 위해서 예빈이 전화를 거는 순간,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대타로 예빈 씨가 하시기로 했는데. 민우 씨가 다 상의했었다고 하셨어요.”

 

  민우가 예빈에게 빅엿을 주고 떠났다는 점. 독주회나 듀오 리사이틀은 아직 티켓팅 오픈이 시작하지 않아 취소할 수 있었지만 그의 모든 협연은 예빈의 대타로 메꿔져 있었다.

  결국 예빈이 그 독박을 다 쓰고 협연을 대신 하러 다녔다. 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지금도 머리가 아프고 울리지만, 이번 한예종 협연이 마지막이어서, 그걸 위안 삼아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야, 강민우 고놈 참 웃기네.”

 

  예빈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지숙이 한바탕 웃고 난 다음 그렇게 말을 했다. 하지만 예빈은 그와 반대로 울상이었다.

 

  “아, 진짜 누구 때문에 이러는 건지...”

 

  예빈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탄했다.

 

  “확 취소해버리지 그랬니?”

  “제 평판도 안 좋아지잖아요. 부녀가 쌍으로 취소해버리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못 들었다고 하면 되지, 뭐 그렇게 어렵게 살려고 하냐.”

  “그냥 절 알릴 기회라고 생각하려고요.”

 

  예빈은 그렇게 말하고 기지개를 폈다.

 

  “그래도 이번에 여기랑 협연하고 나면 다 끝이에요! 끝! 곡도 리베르탱고 한 곡밖에 없고.”

  “잘 할 수 있겠냐?”

 

  예빈은 지숙의 말에 멈칫했다. 리베르탱고, 그녀도 좋아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도 좋아하는 곡. 바꿔 말하면 그녀도 잘하지만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그녀의 아버지도 잘한다는 말이었다. 예빈은 지숙의 말을 이해하고는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어떻게든 되겠죠?”

  “참 잘한다, 진짜. 어휴, 이 말괄량이를 어찌 할까.”

  “헤헤.”

 

  한예종 음악원 건물에 들어서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한예종 크누아 심포니 연습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예빈과 지숙은 갈림길에 들어서자, 둘은 길이 갈렸다. 예빈이 그게 이상해 다른 방향으로 가는 지숙을 붙잡았다.

 

  “어, 연습실 이쪽이잖아요.”

 

  지숙은 그런 예빈의 말에 오히려 자신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이제 크누아 심포니 안 하는데?”

  “예?”

 

  -

 

  “예, 이번부터 제가 합니다.”

 

  예빈이 연습실에 미리 도착한 지휘자에게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예빈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자기 악보를 들여다보는 데만 열중이었다.

  연습실에 미리 도착해 악보를 계속 바라만 보고 있는 그 사람. 권성용 교수, 한예종 지휘과 교수였다. 예빈은 이 학교 기악과 출신이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성용의 얼굴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하긴, 여태까지 성 교수님이 크누아 심포니 지휘를 맡았다면 권 교수님은 윈드 쪽 지휘를 맡았으니까...’

 

  한예종 크누아 윈드 오케스트라, 한예종의 취주악 콘서트 밴드. 비올라를 전공한 그녀는 그곳에 속할 일이 전혀 없으므로, 성용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뭐, 더 할 말 있습니까?”

 

  그제야 그는 예빈과 눈을 마주쳤다. 그마저도 누군가 깔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예빈은 그 눈빛을 보자마자 순간 감정이 욱 올라왔다.

 

  “...없습니다.”

  “예, 그럼 됐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성용은 다시 악보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성 교수님이 낫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예빈은 자리에 앉아 비올라를 조율했다. 성용은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더니,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닙니다.”

 

  라고 중얼거렸다. 예빈은 그 말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곧바로 학생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물어보지 못했다.

 

  ‘뭐야, 저거.’

 

  성용은 쓸쓸한 표정을 짓고는 들어오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예빈은 그런 성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아하하하!”

 

  연습이 끝나고 지숙과의 식사자리, 예빈은 경박하게 웃고 있는 지숙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국내 굴지의 예술대학의 과장 교수답지 않게 호탕한 면이 있었다. 예빈이 알고 있는 교수, 예를 들어 기악과 과장 교수는 호탕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한예종 교수진 자체가 원래 조곤조곤하고 격식을 안 차려도 되는 곳에서도 격식을 차릴만한, 지숙의 성격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한예종 안에서도 그녀의 성격이 이레귤러라고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예빈은 그런 지숙을 좋아했다. 학교 다닐 때도 그녀의 사사보다, 담당 교수보다도 친했던 사람이 지숙이었다. 호탕한 성격이 잘 맞기도 했고, 그런 성격임에도 지휘할 때는 180도 바뀌는 그녀의 모습에 반했기도 했다.

  그렇기에 예빈은 이번에 지숙이 크누아 심포니에서 빠지는 것이 굉장히 아쉬웠다. 예빈은 지숙과 얘기를 하다가도 그런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표정이 굳어졌다.

 

  “너 지휘 한 번 배워볼 테냐?”

 

  지숙은 그런 표정의 예빈을 보자, 농담 던지듯이 말했다.

 

  “갑자기 뭐에요.”

  “니 학교 다닐 때 누가 너랑 나랑 같이 있는 걸 보더니만 개인 제자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생각난 김에 물어본 거지.”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에이, 아니올시다. 저 년은 내가 가르쳐줘도 못 써먹을 년이라고 했지.”

 

  예빈과 지숙은 그 말에 크게 웃었다.

 

  “그래도 배우고 싶으면 말해.”

  “아, 됐어요. 가르쳐줘도 못 써먹는다는데.”

  “거 참, 못 본 사이에 엄청 쪼잔해졌네.”

 

  지숙은 스테이크를 크게 썰어 입으로 넣었다. 아니, 밀어 넣었다, 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래, 한예종 교수진들은 이런 지숙이 싫었을지도 모른다. 예빈은 그런 지숙이 좋았지만 다른 교수들은 싫었을 수도 있다. 여태까지 크누아 심포니를 잘 이끈 실적이 있었기에 그냥 넘어갔지만, 어느 순간 못 넘긴 순간이 생겨서, 지숙이 그만둬야할 상황까지 만들어버린 걸 수도 있다. 예빈은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표정관리를 할 수 없었다.

 

  “알았다, 어휴. 그런 표정까지 지으면 내가 뭐라도 말해야지, 어쩌겠냐.”

 

  지숙의 그런 말에 예빈은 볼을 부여잡으면서 억지로 표정관리를 하려고 했다. 지숙은 그런 예빈을 보며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와인을 쭉 들이켰다. 그러곤 와인 병을 들고 띠지에 적혀있는 글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너는 이게 뭐라고 써져 있는지 보이니?”

 

  예빈은 유심히 볼 필요도 없이, 와인 병에 적힌 프랑스어를 술술 말했다. 그러다 곧 무언가 깨달은 듯이 입을 가리고 지숙을 바라보았다. 지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눈이 점점 안보이더라. 처음엔 침침한 건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실명되어가는 중이었어.”

 

  그 말을 들은 예빈은 모든 것이 맞춰져갔다. 아까 차를 팔아버렸다고 한 것도, 성용이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 것도 다 이해가 갔다.

 

  “뭐 어쩌겠나, 늙은이는 가고 젊은 놈이 와야지.”

 

  지숙은 어쩐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예빈은 애꿎은 샐러드만 툭툭 건드리며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예빈은 집에 돌아오고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비록 사사나 담당 교수가 아닐지라도 학교를 다니면서 꽤 친했고, 자신을 아껴준 교수가 그렇게 되다니 믿을 수 없었다. 비올라를 잡아도 영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리 아파...”

 

  머리만 아픈 게 아니었다. 어지럽고, 속이 답답했다. 잠도 눈에 띄게 늘고 깨어나도 집중을 못했다. 짧은 기간 내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은 건지, 기간이 짧아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억지로 참아서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지숙의 퇴직 얘기가 그렇게나 충격이었던 건지. 예빈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갔다. 이번만 끝나면 쉴 수 있다는 걸 알아도, 전혀 힘이 나질 않았다.

 

  “예빈 씨, 준비해주세요.”

 

  힘도 안 나고 몸도 안 좋았다. 눈앞이 흐릿했다.

 

  “예빈 선배, 괜찮아요?”

 

  예빈이 학교를 다녔을 때 안면을 튼 후배가 그녀에게 물었다. 사람들 눈에 띌 정도로 몸이 안 좋았던 건가, 라고 생각하며 예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드시면 지금이라도...”

  “아냐, 진짜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예빈은 눈을 비비며 자신을 걱정하는 후배에게 대답했다. 눈을 비비고 눈을 부릅떴지만, 눈앞이 흐릿한 건 여전했다.

  혹시, 지숙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매 무대에 나갈 때 흐릿한 눈을 가지고 악보를 보면서, 귀와 육감만을 의존해 곡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그런 자신이 싫지는 않았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음악에 바친 세월이 얼마인데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너무 마음에 사무치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무니, 예빈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고통이 강해졌다.

 

  “아!”

 

  억지로 버티려면 버틸수록 극심한 고통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참을 수 없이 더 아파지기 시작했다.

 

  “아악!”

  “예빈 선배?!”

  “무슨 일이야?!”

 

  극심한 고통에 소리를 지르자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전부 예빈을 바라보았다. 다들 예빈의 주위를 둘러싸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선배, 괜찮아요?”

 

  눈앞이 점점 흐릿해지고 까맣게 변해간다. 주변 소리가 부분부분 끊기며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고통은 가시지 않았다. 극심한 고통에 예빈은 결국 주저앉았다.

  그러는 순간, 누군가 예빈에게 다가왔다. 그는 예빈을 오른팔을 잡고선 그녀가 쓰러지지 못하도록 지탱했다. 예빈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자신을 부축하는 그가 누구인지 보려고 했다.

 

  ‘...이제 와서...’

 

  예빈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에서 그를 보자마자 눈을 감았다. 그의 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예빈이 눈을 뜨자 보인 건 하얗고 낯선 천장이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고 왼팔엔 수액이 꽂혀있었다. 이곳은 응급실이겠구나, 예빈은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왜 여기 있는지 곰곰이 생각을 했다.

 

  “아, 협연...!”

 

  멍하니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협연 시작 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몇 시지, 하고 폰을 찾아보았지만 지금 예빈에겐 없었다. 혹시 대기실에 두고 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커튼을 걷고 예빈이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강민우...?”

 

  그러나 민우 혼자 온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민우가 들어온 커튼 사이로 민우보다 키 큰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예빈이 그를 자세히 보려고 하자, 민우가 커튼을 쳐버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자기 아버지를 이름으로 부르면...”

  “뭐에요? 갑자기?”

 

  민우는 수액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더니 악기 케이스를 들어 예빈에게 내밀었다. 그 반대 손에는 민우 자신의 비올라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협연, 협연은요?”

  “수액 다 맞으면 가도 된대.”

 

  민우는 예빈이 협연에 대해 물어도 오히려 다른 말을 하면서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내가 드는 거 싫지?”

  “당연한 말을.”

 

  예빈은 악기 케이스를 받아들었다. 자신의 것이 맞았다.

 

  “환자분 주사바늘 빼드릴게요.”

 

  그 때, 간호사가 커튼을 걷으며 들어왔다. 커튼이 완전히 걷히자, 응급실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보였지만 아까 민우와 같이 왔던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민우를 데려다주고 갔거나, 아니면 예빈이 잘못 본 거거나, 예빈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간호사가 주사바늘을 빼고, 가도 된다는 말을 하고 가버렸다. 원래 응급실이 이렇게 정이 없는 곳인가,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할 말 많은 거 알아.”

 

  민우가 중얼거렸다. 그래, 예빈과 민우는 풀어야 할 것이 많았다. 수많은 협연을 자기 딸에게 맡기고 홀연히 떠나버린 것부터 시작해서, 예빈이 태어났던 그 순간, 민우가 육아를 포기한 것까지. 정말 풀어야 할 것, 많았다.

 

  “가면서 얘기 하자.”

 

  민우가 예빈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예빈은 그 손을 잡지 않고 혼자 일어났다.

 

  “됐어요, 내일 얘기해요.”

 

  지금 상황에선 제대로 된 말이 오갈 것 같지 않았다. 예빈은 민우를 응급실에 내버려두고 혼자 빠져나왔다. 응급실을 향해 가는 사람들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으면서, 예빈은 자신의 악기 케이스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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