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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세이안
작가 : 사이딘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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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사신, 카이.
만 번째 그 임무를 끝낸 후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죽음의 신,
샤이노스의 말에 소멸을 선택한다.
하지만 소멸 대신 사고로 죽은 한 인간의 몸에 들어가게 된 카이!
한심함과 모자람을 골고루 갖춘 채 배배 꼬인 과거를 가진
세이안의 삶을 대신 살아가만 하는 카이의 운명이 펼쳐진다.

 
제 4 화
작성일 : 16-07-13 11:15     조회 : 614     추천 : 0     분량 : 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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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그녀의 말에 카이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너무… 너무 슬플 것 같아…….”

 “…….”

 “이 세상에 날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잖아…….”

 지금까지 함께한 이들이 모두 인형이었다는 사실을 안 쥬시아는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걸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현실이 가슴 저미도록 슬펐다.

 “그러니… 카이 오빠라도… 날 기억해 줘…….”

 “…….”

 “너무… 큰… 부탁인가…….”

 쥬시아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카이를 보며 결국 주르륵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

 “거래는…….”

 “…….”

 카이는 그런 쥬시아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러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거래는 이루어졌습니다.”

 “……!”

 그 말에 쥬시아는 이미 흐릿해진 시야였으나 애써 눈에 힘을 주며 카이를 바라봤다. 동시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고… 마워.”

 쥬시아는 그 말을 끝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카이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쥬시아의 모습을 보며 한동안 석상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죽은 쥬시아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다 잠시 후, 카이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희미한 실처럼 가느다란 빛이 쥬시아를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그녀에게서 은은한 빛의 덩어리가 흘러나와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

 카이는 그 빛을 잡아 살며시 위로 던졌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열리며 빠르게 그 빛을 빨아들이더니, 곧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만 번째…….”

 카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곤 죽은 쥬시아의 시신을 안아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

 그녀의 침대에 그녀를 눕힌 카이.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집을 벗어났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속에 자리한 절벽이었다.

 가끔 쥬시아의 손에 이끌려 자주 왔던 장소이기도 했다.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며 함박웃음을 짓던 쥬시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카이는 조금은 아련한 눈빛으로 마을을 바라봤다.

 화르륵!

 하지만 잠시 후 카이가 가볍게 손을 내젓자 마을은 순식간에 커다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너를 위한 마을이었으니깐…….”

 그녀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었다.

 “네가 없는 이상 필요 없는 곳이지.”

 그에 이젠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는 마을이었기에 카이는 그대로 마을을 불길에 지워 버리고 있었다.

 “호오, 잘도 타는군.”

 “…….”

 그런데 그때 그의 뒤에서 낯선 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카이는 이미 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듯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불에 타 사라져 가는 마을을 계속해서 바라볼 뿐이었다.

 “신기한 일이군.”

 “…….”

 “그 아이에게 특별한 감정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런 카이의 모습을 보며 낯선 이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그를 향해 말을 건넸다.

 “…….”

 그제야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는 카이의 시선 끝에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근처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티 테이블까지 꾸며 놓고 차를 마시고 있는 남자는, 티끌 한 점 찾을 수 없는 새하얀 머리와 핏빛처럼 붉은 눈동자가 매우 인상적인 이였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금어져 있어, 보는 이까지 기분 좋게 만들고 있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카이는 그런 남자의 모습에 오히려 미간을 살며시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흐음, 아님 말고. 어쨌든 이쪽으로 와 좀 앉지.”

 “…….”

 그러다 남자의 말에 카이는 귀찮음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다, 이내 걸음을 옮겨 그의 곁으로 다가가 맞은편 자리로 가 앉았다.

 “차 한잔하겠나?”

 “됐습니다.”

 “냉정하긴.”

 “약속이나 지키시죠.”

 “약속?”

 “…설마 잊은 건 아니시겠죠.”

 “글쎄, 무슨 약속? 너와 내가 무슨 약속을 했었…….”

 와락!

 “하… 하하! 물론 기억하지. 설마 내가 그걸 잊었을까.”

 “…….”

 “…그러니 이 손 좀 치우면 안 될까.”

 남자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채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이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카이는 여전히 못마땅한 눈빛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다 잡고 있던 옷깃을 놓아주었다.

 “쳇. 그래도 내가 네 녀석의 상관인데!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언제부터 제게 버르장머리를 바라셨던 겁니까.”

 “오늘부터!”

 “말장난하러 오셨습니까.”

 “어.”

 “…….”

 “하… 하하! 서, 설마 내가 말장난이 하고 싶어 왔겠나.”

 카이의 말을 받아 주며 투덜거리던 남자는, 다시 한 번 자신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카이의 모습에 급히 분위기를 바꿔야만 했다.

 “그래, 약속을 했었지.”

 잠시 후 남자는 내려놓았던 차를 다시 마시며 오래 전 카이와 한 약속을 떠올렸다.

 “만 번째 임무가 끝났을 때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기로 했었지.”

 “샤이노스 님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입니다.”

 “그래, 나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이지.”

 죽음의 신, 샤이노스. 죽은 자들의 영혼을 인도하고 관리하는 자.

 바로 지금 카이의 눈앞에 장난스런 미소를 지은 채 앉아 있는 남자의 정체였다.

 “그리고 이젠 규칙으로 정해진 내용이기도 하지요.”

 “하… 하하!”

 샤이노스는 으드득 이를 갈며 자신을 노려보는 카이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그의 말대로 오래 전 카이가 부탁한 내용이 다른 사신들에게도 적용되면 업무의 능률도 오르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이 규칙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카이가 그 부탁을 했을 때 자신은 그를 놀리느라 한동안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었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카이는 자신에게서 허락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젠 다른 사신들은 그냥 그 소원을 쉽게 이루게 되었으니 카이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좋아, 어떤 소원인지 모르겠지만 들어주도록 하지.”

 “…….”

 “말해.”

 샤이노스는 카이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원을 말해 보라 말을 건넸다.

 어떤 소원인지는 모르겠지만 까짓것 기분 좋게 들어주겠다는 나름 너그러운 표정으로 말이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음?”

 “일 때려 치우겠다구요.”

 “…….”

 하지만 자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어지는 카이의 대답을 들으며, 샤이노스는 웃는 모습 그대로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지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거냐.”

 “네.”

 “사신의 일을 그만둔다는 건 너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거고, 그건 곧…….”

 “소멸이지요.”

 “그걸 아는 녀석이 무슨 헛소리야.”

 샤이노스는 소멸이라는 단어를 무덤덤하게 내뱉는 카이의 모습에 처음으로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며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만 번입니다.”

 “…….”

 “만 번의 죽음과 마주했습니다.”

 “…지쳤다는 거냐.”

 “네.”

 “…….”

 사신으로서 인간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일을 해 온 카이. 모든 감정이 사라진 다른 사신들과 달리 인간의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카이를 떠올리며 샤이노스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 어떤 사신들보다 냉정하고 무덤덤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혼을 인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겉모습으로 그를 판단하는 건 잘못된 일이었다.

 죽은 영혼이 소멸이 되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임무만 다하는 다른 사신들과 달리, 카이는 억울하게 죽어 사신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영혼들을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따라올 수 있도록 거래라는 방법으로 그들의 영혼을 인도했다.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어 그들이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

 하지만 그런 인간적인 감정이 그를 더욱 빠르게 지치게 했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은 샤이노스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고해 볼 생각은?”

 “없습니다.”

 “…….”

 이미 오래 전부터 결정을 내린 듯 조금의 여지도 두지 않는 카이의 모습에 샤이노스는 작게 혀를 찼다.

 그러곤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카이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좋아, 그 소원 들어주지.”

 “감사합니다.”

 그러다 잠시 후 샤이노스는 카이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고마워할 것 없어. 나중에 날 원망이나 하지 말라고.”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는 카이를 바라보며 피식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지은 샤이노스는 이내 카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중에 또 보지.”

 “…….”

 카이는 마지막으로 그런 샤이노스의 말을 들으며,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환한 빛과 함께 의식이 점점 잃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젠 소멸되면 다시는 볼 일이 없을 텐데 뭘 다시 보자는 건지 그의 말에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그런 생각조차 점점 사라지는 걸 느끼며 카이는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갔다.

 

 

 

 제2장. 새로운 시작

 

 

 

 ‘몸이… 무거워…….’

 몸이 무겁다.

 카이는 온몸이 무언가에 짓눌리고 있는 듯 갑갑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무거워?’

 그러다 이내 그런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황당해하며 카이는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모든 것이 소멸된 자신이 그런 느낌과 기분을 가지고 지금 현재 생각 자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망이 없다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지금 숨이 붙어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닥쳐라!”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카이는, 순간 곁에서 들려오는 낯선 이들의 음성에 더욱 의문을 가져야만 했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알고 상황을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에, 카이는 돌이라도 올라간 듯 무겁게 느껴지며 쉽게 떠지지 않으려는 눈에 있는 힘껏 힘을 주기 시작했다.

 “……! 세이안?”

 세이안? 그건 또 누구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듯 카이는 눈을 뜨고도 한참 동안 눈부심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점차 시력이 돌아오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 카이는 이내 다시 의아한 눈빛이 되어야만 했다.

 자신이 눈을 뜨자 굳어진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뭐지?’

 카이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눈앞에 서 있는 이들 모두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깨어나시다니!”

 그 3명 중 치료사로 보이는 노인이 멍한 표정을 짓다 이내 말을 더듬으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곤 급히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여기저기 몸을 만지며 진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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