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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더 스트라드
작가 : NOAHSHIN
작품등록일 : 2020.9.3

"이진우 씨, 서울시향과의 계약은 파기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죠."
관현악과 4학년, 첼리스트 이진우는 그렇게 초능력자 피아니스트 윤피에르의 손을 잡았다.

그의 곁에는 계약을 파기할만한 가치가 있는 저명한 실력파들이 있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잉그램 에반스, 클래식계의 아이돌 서정아,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올리스트의 딸, 강예빈. 그리고 신예 첼리스트 이진우까지 손에 넣은 윤피에르는 자신이 모은 이 멤버들로 실내악단을 꾸렸다. 하지만 어딘가 맞지 않고, 불협화음만이 지속되는데...

초능력과 클래식, 사랑, 그리고 불협화음, 더 스트라드의 연주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3. 끊어진 현
작성일 : 20-09-07 01:36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7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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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아트홀, 여의도공원을 지나 빌딩숲을 헤쳐가다 보면 보이는 곳. 국내 전문 연주홀 중에서는 최초로 오스트리아 리거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던 그 곳이었다. 하지만 잉그램이 이번에 협연을 할 곡은 파이프 오르간을 쓰지 않았다.

 

  ‘비발디, 사계.’

 

  사계 중 겨울. 이번에 연주를 할 ‘아리 실내관현악단’은 이번 비발디의 사계를 계절 별로 각각 다른 협연자를 구했다. 봄에는 김한음, 여름에는 박예준, 가을에는 조다정, 겨울에는 잉그램 에반스. 잉그램 에반스는 다 처음 보는 연주자들이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나만 초능력자네.’

 

  그런 생각을 한 잉그램은 심드렁하게 같은 협연자 대기실을 쓰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김한음과 조다정은 같은 학교 출신인건지, 자기들끼리만 시시덕거렸고, 박예준은 자신의 악기를 가지고 계속 연습을 하고 있었다. 듣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중간 중간에 있는 미스터치는 듣는 사람을 거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건 연습이 부족한 거지.’

 

  자신의 독주가 아닌 협연이라도. 애초에 협연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인데 저렇게 연습을 안 해오는 건 연주자가 지녀야 할 자질이 부족한 거다. 잉그램은 그렇게 생각했다.

 

  “곧 리허설이니까 준비해주세요.”

 

  한 스태프가 문을 열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만 하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대기실에 있던 모두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잉그램 빼고. 잉그램은 별 개의치 않고 천천히 일어나서 매니저가 캐비닛에 넣어놨던 바이올린 케이스를 꺼냈다. 매니저는 잉그램이 꺼내는 걸 보고 그제야 자기가 하겠다면서 잉그램의 케이스를 받아들었다.

 

  “어?”

 

  케이스를 열자 매니저는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잉그램의 눈치도 보고, 대기실에 분주히 준비하던 스태프의 눈치도 보았다. 잉그램은 그런 매니저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고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봤다.

 

  “현이...”

 

  4현, 모두 끊어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가장 얇은 E현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가장 두꺼운 G현마저 끊어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잉그램이 이걸 보자마자 매니저는 분명 멀쩡한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케이스 째로 캐비닛에 넣었다며 이럴 리가 없다며 잉그램에게 호소했다. 잉그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자신들의 준비로 한창 바빠 보였다. 잉그램은 그런 어지러운 상황에서 가벼운 두통을 느꼈으나, 이내 정신 차리고 매니저에게 말했다.

 

  “당장 스태프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홀에 여분의 악기가 있는지 알아와.”

  “하지만 그냥 현을 갈면...”

  “얼른.”

 

  매니저는 그런 잉그램의 모습에 할 수 없다는 듯이 복도로 뛰쳐나갔다. 잉그램은 빨리 현을 갈기 위해서 케이스 내부의 여분의 현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케이스 어디에도 현은 없었다.

 

  ‘일부러...’

 

  만약 매니저가 잘못 건드려서 줄이 끊어진 거라면, 여분의 현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없는 걸로 보아, 누군가 일부러 줄을 끊고 여분의 현마저 가져간 모양이었다. 잉그램은 대기실의 쓰레기통을 모두 찾아봤지만 전부 비어있었다. 범인은 여분의 현을 찾아서 갈아 끼울 가능성까지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잉그램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대기실 위에 CCTV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저 CCTV에 누군가가 끊어놨다는 것이 찍혀 있을 것이다.

  그 때, 공연의 주요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매니저도 그 뒤를 따라와 잉그램의 끊어진 바이올린을 보여주었다.

 

  “여분의 현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누군가 망가뜨리고 그대로 가져간 모양입니다.”

  “여기, 혹시 현 남으신 분, 계십니까?”

 

  한 스태프가 말하자, 그제야 분주했던 걸음들이 멈췄다.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당황하는 와중에 그 누구도 여분의 현을 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없으십니까?”

  “야, 꺼내지 마...”

 

  누군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스태프들과 매니저는 못 들은 것 같지만, 잉그램은 확실히 들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보니, 조다정이 여분의 현을 꺼내려는 김한음을 막으려 하는 소리였다. 그녀는 김한음이 들고 있던 현을 그대로 김한음의 케이스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아무도 자원하는 사람이 없자, 스태프는 한숨을 푹 쉬고는 잉그램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희도 현이 남아있지 않아요.”

  “바이올린 하는 사람이, 여분의 현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쪽도 현 없어서 이러는 건 피차일반이잖습니까.”

 

  주최 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잉그램은 이건 누군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말했지만 스태프들은 오히려 답답하다는 표정만 지었다.

 

  “그럼 홀에 남아있는 현악기 있습니까?”

 

  잉그램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한 스태프는 폰을 들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다른 스태프들은 일단 리허설을 진행하고 홀 담당자와 말을 해보고 알려주겠다면서 잉그램을 두고 속행하려고 했다.

 

  “아니, 제가 홀 담당자와 연락하겠습니다. 바꿔주시죠.”

 

  그 말에 전화를 하던 스태프는 담당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담당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잉그램에게 건네주라고 손짓했다. 스태프의 폰을 전달받은 잉그램은 홀의 악기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홀에 여분의 현악기가 있느냐고 물었고,

 

  “구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네, 저희는 피아노, 오르간, 타악기만 있고, 지금 당장 필요하신 현악기는 구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마저도 사전에 신청서를 작성하시고 사용료를 정산하셔야 사용이 가능하세요. 지금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는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담당자는 말을 했다. 잉그램은 좀 골똘히 생각을 해보더니, 담당자의 전화를 끊지 않고 자신이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그럼 대기실의 CCTV는 볼 수 있는 겁니까?”

  “확인을 원하신다면 저희가...”

  “에반스, 지금 CCTV 확인 할 시간은 없어요.”

 

  매니저가 다급하게 잉그램에게 말했다. 매니저에게는 누가 현을 어디에 버렸는지 보다 지금 당장 연주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잉그램은 일단 알겠다며, 폰을 스태프에게 돌려주었다.

  일단 주최 측에서 현을 구해보겠다고 잉그램에게 말하고 리허설을 위해 나갔다. 잉그램 또한 자신도 방법을 강구해보겠다고 말하고 나가는 스태프들을 바라보았다.

 

  “지가 개눈이라서 아무도 안 빌려주는 거 아니야...”

 

  한 스태프가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잉그램이 그걸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따지려고 했으나, 이미 그 스태프는 나가고 난 후였다. 매니저는 듣지 못 했는지 잉그램이 벌떡 일어난 것을 보고 의아해 했다. 잉그램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참아보았지만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잉그램은 털썩 주저앉았다. 협연자 모두 리허설을 위해, 매니저는 바이올린 현을 파는 가게를 찾아 나갔고, 잉그램만이 혼자 대기실에 있었다.

  잉그램은 방금 들었던 스태프의 말이 생각났다. 그 스태프는 분명, 잉그램이 한국어를 못 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그와 한국어로 대화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모를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개눈? 하!”

 

  잉그램은 그가 했던 ‘개눈’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열이 뻗쳐오르기 시작했다. 잉그램을 비롯한 초능력자에게 얼마나 무례한 단어인지, 비능력자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초능력자들이 초능력을 쓸 때, 눈에서 푸른빛이 난다. 초능력을 강하게 쓸수록 빛이 강해지며 점점 하얗게 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초능력자들에게 그 정도의 초능력을 쓸 일이 거의 없으므로, 비능력자들이 보는 그들의 눈은 원래 색과는 다른, 파란 눈으로 보이게 된다.

  개눈, 의안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었다. 어느 샌가 비능력자들은 그런 푸른빛이 나는 그 눈이 마치 의안 같다고 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잉그램이 살아가는 현대의 한국에서는 초능력자의 멸칭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 말에, 잉그램이 저렇게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범인을 찾아서 죽여야지.’

 

  잉그램은 본인을 이렇게 만든 그 범인을 생각하며 이를 빠득 갈았다. 그 스태프의 언행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무력하게 만든 바이올린을 망가뜨린 그 범인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잉그램은 다시 망가진 바이올린을 바라보았다. 지옥 같은 재활을 끝내고 에드윈이 선물한 바이올린. 잉그램은 바이올린을 들어 다른 부분도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브릿지 등 다른 부품들은 괜찮았다. 만약 범인이 다른 부분을 건드렸다면 연주고 뭐고 당장 뒤엎었을 것이다. 잉그램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이올린을 내려놓았다.

  때마침, 대기실에 누군가 들어왔다. 사계 중 봄을 연주할 협연자, 김한음이었다. 방금 리허설을 끝내고 오는 길 같았다.

 

  “마침 계셨네요.”

 

  김한음은 자신의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아까 전해주지 못한 여분의 현을 잉그램에게 건네주었다.

 

  “비밀이에요. 제 친구가 초능력자를 싫어해서.”

 

  잉그램은 아까 조다정이 여분의 현을 김한음의 케이스에 억지로 넣었던 것을 떠올리고 김한음의 현을 받아들었다. 도미넌트, 제일 무난하게 쓰이는 현이었지만 잉그램이 쓰고 있던 현은 아니었다.

 

  ‘지금 따질 상황이 아니지.’

 

  잉그램은 김한음에게 고맙다고 하고, 바로 현을 갈아 끼우기 시작했다. 방금 받을 땐 몰랐지만 도미넌트 E현은 없고, 다른 회사의 E현이 있었다. 참 친절하기도 하지, 잉그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현을 마저 갈아 끼웠다.

  다 갈아 끼우자마자 잉그램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아직 여름을 맡은 협연자가 들어오지 않은 걸로 보아, 잉그램의 차례까지는 시간이 넉넉해보였다.

 

  “고마워. 하지만 도미넌트보다는 올리브 같은 걸 쓰면 좋겠어.”

 

  잉그램이 감사 인사를 하며 그렇게 말을 하자, 김한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하지만 김한음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계속 잉그램을 힐끗 보는 게, 잉그램도 바로 눈치 챌 정도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 거라면 말해도 좋아.”

 

  잉그램은 자신의 바이올린을 조율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김한음은 조금 뜸을 들이며 조금씩 입을 떼었다.

 

  “범인을 알고 있어요.”

 

  바이올린을 망가뜨린 범인이요, 김한음은 덧붙였다. 잉그램은 그 말에 바이올린을 조율하는 것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잉그램이 보기엔,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 보이진 않았다.

 

  잉그램이 대기실을 나가 무대 뒤편으로 들어서자, 아직 사계 중 가을을 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잉그램의 차례였다. 잉그램은 무대 리허설을 보며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는 스태프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는 분명 현을 사러 갔어야 할 매니저도 섞여있었다.

  잉그램은 굳이 찾아가서 현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김한음이 빌려준 현으로 바이올린 문제는 해결이 됐으니 굳이 가서 물어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매니저는 잉그램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하며 잉그램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죄송해요. 영등포까지 갔는데도 바이올린 현을 파는 곳이...”

  “괜찮아. 현 찾았어.”

 

  매니저는 그 말에 놀라워했다. 아니, 어찌 보면 당황해 하는 것도 같다.

 

  “어, 어디서요?”

  “글쎄. 어디일까.”

  “에반스 씨, 준비 되셨습니까?”

 

  매니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스태프가 다가와 잉그램에게 말했다. 잉그램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때마침 가을의 협연자, 조다정이 내려왔다. 조다정은 잉그램을 보자마자 무언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마냥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 표정을 본 잉그램은 아까 김한음이 했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의 말에, 잉그램은 무대 위로 올라섰다. 무대의 정중앙에 선 잉그램은 바이올린을 받치고, 지휘자의 지시만을 기다렸다. 지휘자의 지시가 시작되자, 잉그램은 서서히 활을 켰다. 잉그램이 자주 쓰던 그 현이 아니라서, 연습할 때의 그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소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거슬려...’

 

  하지만 잉그램의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익숙한 현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현이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잉그램은 소리보단 현을 짚는 손이 거슬렸다. 연주를 끝낸 그 순간까지도.

 

  ‘젠장.’

 

  익숙한 현이 아님에도 미스터치는 없었다. 손이 거슬릴 지언정 박자, 음정 하나 틀린 것이 없다. 그래서 듣는 이들은 괜찮았을 지도 모른다. 스태프 모두 박수를 쳤고, 지휘자마저도 연주가 대단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 곳, 이 무대에 있는 이들 중 유일하게 잉그램만이 자신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만 아니었어도.’

 

  아마 현만 망가지지 않았어도,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잉그램은 자신의 바이올린을 들고 혼자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매니저는 그의 곁에 없었다.

  공연이 끝난 후, 홀의 관계자의 협조를 받아 대기실의 CCTV를 보게 되었다. 매니저는 빨리 집에 가자고 CCTV를 보는 것을 말렸지만, 잉그램은 그런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CCTV에 찍힌 대기실에는 매니저가 케이스를 들고 캐비닛에 넣고 있었다. 넣은 후 매니저가 나가자 꽤 많은 사람들이 대기실을 오갔다. 하지만 대기실에 온 그 누구도 캐비닛에 손을 대지 않았다. 설마, 습도 때문에 현이 끊어진 건가? 아니면 줄이 너무 팽팽하게 되어있어서 저절로 끊어진 건가? 그렇다면 잃어버린 여분의 현은 어떻게 설명할거지? 정말로 단순히 집에 두고 온 건가?

  잉그램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질 때쯤, 누군가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캐비닛에서 잉그램의 케이스를 꺼내 마치 제 것인 마냥 바이올린을 꺼내들었다. 잉그램은 그 누군가를 자세히 보았다. 아는 사람이었다.

  화면 속의 매니저는 바이올린 페그를 끝까지 돌려 일부러 줄을 끊어놓았다. 팽, 하고 끊어지면서 줄이 매니저의 손목을 쳤다. 매니저는 다 끊자마자 여분의 현을 챙긴 후, 다시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넣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유유히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미안해요, 에반스.”

 

  CCTV를 같이 보던 매니저는 잉그램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잉그램은 왜 그랬냐고 물었지만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난 너때문에 제대로 된 연주 하나 못 했는데!!”

 

  잉그램은 들고 있던 폰을 매니저에게 던졌다. 매니저의 이마에 부딪히자 요란하게 떨어지면서 액정이 깨져버렸다. 이해할 수 없다고, 잉그램은 매니저에게 따졌지만 매니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잉그램이 알 수 있는 것은 매니저의 표정이 그렇게 미안한 사람의 것은 아니었던 것뿐이었다.

  잉그램은 그대로 홀을 빠져나왔다. 그가 나오면서, 붙잡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쩐지, 아까 스태프가 했던 말이 계속 잉그램의 귓가에 맴돌았다. 개눈이라서. 초능력자라서. 잉그램은 케이스를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젠장, 젠장, 젠장.

  택시가 그 근처를 돌고 있었다. 잉그램은 택시를 잡고 집주소를 부른 뒤, 뒷좌석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택시는 그가 사는 마포구를 향하기 위해 한강의 다리에 올라섰다.

  잉그램은 그 택시 안에서 폰을 꺼내들었다. 액정이 깨져버렸지만 아직 터치는 먹혔다. 이마저도 안 되기 전에, 잉그램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상대는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받았다.

 

  “나야, 저번에 거절한 거 말인데.”

 

  상대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도록 하지.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

 

  상대는 잉그램의 말이 흥미롭다는 듯이 되물었다. 잉그램은 아까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았다.

  사실 잉그램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다. 그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에 잠시 있었을 때도, 재활을 하고 있었을 때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그 사건 때도, 아니, 그가 태어났을 때도. 초능력자라서 무시당하거나 차별받았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고, 익숙한 일이라고 상처를 안 받는 건 아니다.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 부르면서도 뒤에선 성격이 안 좋은 개눈이라고 말하는 건 수도 없이 봤고, 그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지쳤다. 그의 양부모가 원하던 대로 비능력자들 사이에서 초능력자들의 우상이 되는 것은 그런 일을 수도 없이 겪어야 하는 것이었고 잉그램은 오늘자 일로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마저 그런 짓을 하는데 그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매니저의 처리, 소속사와의 계약 파기, 오버그라운드 엔터테인먼트로 이적. 이 정도.”

 

  더 이상 비능력자와의 연주는 질렸다. 그렇다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최선이겠지.

  초능력자 연주자만 모인 ‘더 스트라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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