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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18.제2 라니냐 항구
작성일 : 16-10-22 01:26     조회 : 471     추천 : 0     분량 : 8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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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아의 배는 천천히 부두로 다가갔다. 식민지 당국이자 식민지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의 부두였다. 항구의 이름은 제2 라니냐이다. 이름이 멋없어서 사람들은 대개 그냥 당국으로 간단히 부르곤 한다.

 

  이도는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부두가 보였다. 렐리아나 항구의 부두는 나무로 되어있었지만 여기는 깔끔하게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다. 갈매기가 끼룩거리며 하늘 위를 부유하더니 이도 앞 난간에 앉아 고개를 까닥거렸다. 갈매기한테서 비릿한 물고기 냄새가 났다.

 

  “평화롭구나.”

 

  당국은 밝고 차분한 느낌의 항구도시였다. 도로는 전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있고 건물들은 전부 석재로 만들었다. 계획도시인 만큼 건물들의 형태가 전부 비슷비슷했다. 파란 독버섯 같은 지붕에 창백한 시체 같은 하얀 벽이 기본적인 모습이었다.

 

  아리아는 이도 옆에 오더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도, 비록 제2 라니냐 항구가 식민지 최대의 항구도시는 아니지만, 항구요새만큼은 최고야. 한 번 봐봐.”

 

  이도는 항구요새를 보았다. 항구요새는 부두가 늘어져있는 만의 오른쪽 끝, 도시의 오른편에 솟아오른 곶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으로 되어 서너 겹의 성벽을 지닌 그 요새는 육중한 느낌을 주었다. 방패를 듣고 굳건히 버티고 선 병사 같다.

 

  잘 보니 항구요새에서 가까운 부두들에는 군함들이 정박하고 있다. 나머지는 전부 상선들이었다. 상선들은 오랜만에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처럼 옹기종기 붙어있었다.

 

  어느새 아리아의 배는 정박을 마쳤다. 부두 건너편에서 한 초로의 남자가 배로 다가왔다. 아리아, 돌격대장, 이도는 함께 부두로 내려갔다. 선원들에게는 잠시 배 안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슈리와 루카도 남았다. 그들은 내려왔다.

 

  그 남자는 서류를 손에 들고 뭔가를 적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도림 왕국의 깃발을 건걸 보니까, 도림왕국의 상선 같은데, 제 앞에 계신 세 분은 전혀 동방사람처럼 안 보이는군요.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답 여하에 따라 법적으로 처벌당할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상당히 까다롭게 말했다. 그러자 이도가 앞으로 나서 모자를 벗고 펜던트를 드러냈다.

 

  “나는 도림 왕국의 태자이자 라니냐 제국 에드워드 황제의 대자인 이도입니다. 이 펜던트가 대자로서의 나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초로의 남자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입을 떡 벌렸다.

 

  “거짓말, 인가요?”

 

  “거짓말이 아닙니다. 감히 제국 공무원을 상대로 이런 거짓말을 누가 합니까?”

 

  초로의 남자는 담담한 소년의 눈빛을 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느낌은 전혀 없다. 게다가 펜던트.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장이었다.

 

  “제가 알기로 대자님께서는 독립파에 납치당했고, 제국 관료들이 찾는 중이었는데요.”

 

  이도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제국 관료는 코빼기도 못 봤습니다. 대신 이 무역상께서 날 구했습니다. 그들은 내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기 전까지 이 도시에서 머무를 숙소를 내어주십시오.”

 

  초로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저기 있는 요새로 가서 당국 총책임자, 즉 총독에게 가셔야합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들은 남자를 따라 요새로 발을 떼었다. 도로는 무늬의 패턴이 어그러지지 않아 담백한 균형을 이루었다. 파란 지붕과 하얀 집의 조화는 가까이서 보니 더욱 인상 깊었다. 아리아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아름답지만 역시 남쪽의 람다 항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이도가 말했다.

 

  “왜 당국이 최대의 항구가 아닌 걸까?”

 

  “당국은 지형이라든가 해류라든가 등등이 군항에 더 걸맞아. 물론 상업항 기능도 잘 수행하지만. 하지만 상업항의 조건을 완벽히 충족하는 건 람다 항구야. 당국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들이 많아. 특히 람다 항구는 검은 기름이 가장 많은 곳이야.”

 

  검은 기름. 그러고 보니 마곡은 곡식이 자라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재배할 수 있다. 하지만 건은 기름은 산출지가 따로 있고 또 흔하지도 않다. 신대륙의 검은 기름은 어디에서 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리아, 그럼 신대륙 최대의 검은 기름 생산지는 어디야?”

 

  “신대륙의 전체적인 모양이 모래시계 형태라는 건 알지?”

 

  “응.”

 

  “람다 항구는 그 모래시계에서도 오른 가장자리의 중앙에 가까워. 그리고 최대의 검은 기름 생산지는 람다 황구에서 가로로 쭉 직선을 그어서 반대편 바다에 닿으면 그곳이 검은 기름 최대 생산지야. 물론 바다에서 나는 건 아니고. 좀 더 육지 쪽이긴 하지. 이름은 포트 유전이야. 옛날 개척자들이 원주민을 학살하고 약탈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하더라고. 그 때는 쓸 데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그래서 포트 유전에서 얻고 정제한 검은 기름을 육로로 수송해 람다 항구로 가져오는 거야. 식민지 주요 도시 중에서 거기가 제일 가깝거든.”

 

  이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럼 람다 항구에 무역협회가 있어?”

 

  “응.”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초로의 남자가 이도에게 말을 걸었다.

 

  “대자님, 아리아 씨와는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된 겁니까?”

 

  “아리아를 아십니까?”

 

  아리아도 놀란 얼굴을 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깃발이 달라서 처음엔 의심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아리아 씨군요. 저희 쪽에서는 중요 인사입니다. 모를 리가 없죠. 이런 분과 바다에서 마주치시다니, 대자님은 비록 납치당하시긴 했지만 운이 좋으십니다. 무엇보다 노예의 해방자이니까요.”

 

  아리아는 난처하게 웃었다.

 

  “그런 호칭은 이제 그만 들었으면 하는데.”

 

  “아닙니다. 처음 제국이 이 신대륙 동해안의 이주민 사회의 그 영역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았을 때, 이곳의 문제는 정말 넘쳐나고도 구렸지만, 가장 심각한 건 노예였습니다. 물론 소른 대륙에도 노예는 있었지만, 물론 철폐하는 중이었지만, 여하튼 신대륙의 노예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방에서 노예를 수입해 식민지 대농장에 공급하는 노예무역이 성행했죠. 게다가 원주민을 멋대로 죽이거나 노예로 삼아대기 일쑤였죠. 학살이라.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국이 이곳을 점령하지 않았다면 이곳은 산지옥이 됐을 겁니다. 도덕이라곤 볼 수도 없는 무뢰배의 천지였죠. 그래서 제국의 통제로도 노예가 근절되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아리아를 호의어린 시선으로 봤다.

 

  “하지만 아리아 씨가 같은 처지의 노예들을 이끌고 주인을 살해한 뒤 해방 선언을 하자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노예들이 스스로 들고 일어나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죠. 당국은 그 기회를 틈타 해방을 지원했습니다. 그 덕에 이 제2 라니냐와 그 부근 도시 만큼은 노예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람다 항구를 둘러싼 남쪽 도시는 여전히 노예가 존재하죠.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미래에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이 모든 게 아리아 씨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습니다.”

 

  아리아는 어색한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수다를 떨면서 걷자 어느새 항구요새 입구에 도착했다. 병사들이 지키고 서있었다. 초로의 남자는 그들에게 대자가 왔다고 말했다. 길은 쉽게 열렸다. 초로의 남자는 더 들어가진 못 했다. 대신 그들을 배웅했다. 세 명은 함께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아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

 

  이도는 미소 지었다.

 

  “아리아는 진짜 명성 있네. 알고는 있었지만.”

 

  돌격대장도 거들었다.

 

  “그치? 그래서 어디 갈 때 누님을 옆에 끼면 어깨가 절로 위로 올라간다고! 하하하!”

 

  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젠 그만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해방 선언도, 뭐랄까, 분위기에 타서 저질러 버린 거고. 하아, 지금은 왜 했는지. 후회되네.”

 

  “왜? 널 긍정적으로 봐주는 거잖아?”

 

  “경우에 따라 다른 거야. 닭살 돋아 미칠 것 같아.”

 

  “좀 더 자신을 가져.”

 

  아리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난 그런 대단한 인간이 아냐.”

 

  “응?”

 

  “아무것도 아냐. 가자.”

 

  그들은 요새 안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병사들이 훈련용 검이나 활 등으로 각각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까 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 중 한 명이 그들 옆에 따라붙어 총책임자에게의 길을 안내했다. 병사는 그 사람을 총독이라 불렀다.

 

  드레이크 총독. 동방의 도독 비슷한 지위인가보다 하고 이도는 생각했다. 이도는 성곽 위를 올려다보았다. 곳곳마다 대포가 있었고 총을 든 감시병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이도는 안심했다. 이 정도의 요새라면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없을 것이다. 이제 안전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몸이 가벼워 진 느낌이다.

 

  그들은 어느새 총독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병사는 그들에게 목례한 뒤 물러났다. 돌격대장은 문 옆에 서 있겠다고 했다.

 

  “나도 밖에 있을까?”

 

  아리아가 말했지만 이도는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그들은 노크를 한 뒤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담백한 구성의 방이었다. 이도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집무실은 성도 라니냐의 황제의 집무실로 똑같이 생겼다. 다만 세부적인 몇몇 요소만 다를 뿐이다. 예를 들면 벽면에 사슴 머리 박제가 있다든가. 건축가는 이렇게 만든 의도를 황제의 덕을 따르듯 총독이 식민지를 다스리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누구인가?”

 

  앉아서 서류 작업을 하던 드레이크 총독이 고개를 들었다. 앞머리는 깔끔하게 옆으로 넘겼으며, 약간 야위어서 광대뼈가 도드라진 게 마치 살모사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은발의 소년을 보자 드레이크 총독은 눈살을 찌푸리며 안경을 벗었다.

 

  “혹시 황제의 대자님이십니까?”

 

  “맞아요.”

 

  드레이크 총독은 일어서서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러고는 이도와 아리아를 소파로 안내했다. 총독도 아리아를 알았다. 그는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저는 드레이크 총독이라고 합니다. 대자님이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로 오신 것도.”

 

  “그게 무슨 의미죠?”

 

  “저의 승진을 의미합니다.”

 

  이도는 “아.”하며 입을 벌렸다.

 

  “솔직하시군요. 근데 총독은 이미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것 아닌가요?”

 

  “어디냐에 따라 다릅니다.”

 

  드레이크 총독은 홍차를 세 개의 찻잔에 따랐다. 자기 것을 한 입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식민지, 아니 이주민 사회는 건달집단입니다. 간혹 아리아 님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도 나오지만, 본질이 변하지는 않지요. 지금 막 대자님을 모시고는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물론 대자님의 무사를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압니다.”

 

  “고맙습니다. 하던 말을 계속하자면, 솔직히 말해서 저는 식민지 총독 노릇에 지쳤습니다. 이주민 사회는 말을 하면 안 듣고 뇌물을 찔러주면 개같이 기어대는 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국의 신민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분명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다르다니, 신기할 노릇이죠. 대자님을 납치한 짓만 봐도 그렇습니다. 소른 대륙의 대체 어느 국가가 자기들 협상 카드로 쓰겠다고 그런 무식한 짓을 저지릅니까? 북방 야만인이라면 모를까. 아니, 이 하이에나 놈들은 그들보다 더 심해요. 북방 야만인은 그래도 주린 배를 채우면 돌아가지만, 이 놈들은 다릅니다. 먹고 토하고 또 먹죠. 불법을 저지르면서요. 그러면서도 한 치 부끄럼도 없습니다. 뭐, 좋은 본보기지요. 상인들이 사회를 주도하면 이런 꼴이 나는 거죠.”

 

  총독이 쏟아낸 말의 홍수에 이도는 잠시 당황했다.

 

  “쌓인 게 많아 보이시네요.”

 

  “많을 수밖에요. 대자님은 식민지에 오셔서 느끼신 것 없으십니까? 분명 저랑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도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대체적으로 저도 총독의 말에 동의해요.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종합하면, 신대륙의 이주민 사회는 아주 이질적이에요. 과거로부터 내려져온 정통성의 줄기 없이 오로지 욕망으로 시작된 집단이죠.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봤어요. 비록 직접 본 건 렐리아나 항구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도림이나 제국령, 또 이 당국과는 다른 무언가가 보였어요.”

 

  “무엇이죠?”

 

  “활기입니다. 비록 악랄할지라도 이 식민지에서는 맥박이 크고 빠르게 뛰고 있어요. 유서가 깊은 소른 대륙의 여러 국가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저는 이게 신생국가의 활기라고 생각해요. 이 신대륙에서 새로운, 그 전까지는 볼 수 없던 국가가 탄생하려는 것 같아요. 유독 여기에서만 수레바퀴가 빠르게 도는 거죠.”

 

  드레이크 총독은 홍차를 홀짝였다.

 

  “흥미롭군요. 하지만 황제폐하 앞에서 그런 말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식민지가 무법천지처럼 보일 순 있겠지만, 신생국가라면 다들 그런 것 아닐까요? 제국도, 도림도 그 기원이 시작된 지점에서는 도덕이란 없고 혼란뿐이겠죠. 그러다가 역사가 쌓이고 도덕이 생겨나며, 일체감이 생겨나고, 적과 대치하며 그렇게 국가를 형성해가는 거죠. 지금 식민지 사회가 제국을 매우 혐오하는 것도 국가 형성의 신호처럼 보입니다. 그와 더불어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죠. 그리고 전쟁의 기운. 확실하다고 봐요.”

 

  가방끈이 짧은 아리아는 이 까다로운 대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멋진 방을 둘러보며 말없이 감탄했다.

 

  총독은 홍차를 다 마셨다.

 

  “그렇다면 이도님은 식민지의 독립을 지지하시는 겁니까?”

 

  “아뇨! 절대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할 뿐이죠. 언젠가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만들어내는 강물의 흐름을 소금쟁이가 어쩔 수는 없는 것처럼.”

 

  “그렇다면 그 흐름을 막고자 하는 황제폐하는 소금쟁이입니까?”

 

  순간 침묵이 흘렀다. 이도는 침을 삼켰다.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총독을 큭큭 웃었다.

 

  “별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저도 대자님처럼 생각하거든요. 독립파를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나 싶죠. 다만 저는 황제의 관료일 뿐, 황제의 명령은 따를 수밖에 없죠. 그런가, 흐름에 거역하는 황제는 소금쟁이라, 재미있군요.”

 

  총독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흐름에 거역하는 제국은 뭔가?”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드레이크 총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자님, 당국에서는 안전합니다. 지금까지 쌓였을 피로를 충분히 푼 뒤에 성도로 떠나십시오. 적어도 제국의 군함 세 척이 대자님을 호위할 것입니다.”

 

  “잠깐만요. 아리아와 선원들은 제 구출의 일등공신입니다. 그들도 저를 따라 성도로 갈 겁니다. 또 그들이 머무를 때까지 합당한 숙소를 제공했으면 해요.”

 

  “물론이죠. 그런 점에서 저는 철저합니다.”

 

  총독은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맞다. 황제폐하로부터의 서신이 있습니다.”

 

  이도는 놀랐다.

 

  “서신? 내게?”

 

  “그렇습니다. 아마 대자님이 납치당하신 걸 폐하께서 아시자마자 이 당국에 대자님이 다다를 경우를 대비하여 쾌속선을 통해 보낸 것 같습니다. 쾌속선은 꽤나 빠르거든요. 자, 여기 있습니다.”

 

  총독은 서랍 안에서 황제의 편지 하나를 꺼내 건넸다. 서랍 안에는 편지가 하나 더 있었다. 이도는 서신을 받고 주머니에 넣었다. 총독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대자님, 편히 쉬십시오.”

 

  “호의에 감사합니다.”

 

  아리아와 이도는 총독의 집무실을 나왔다. 돌격대장은 지루했는지 바닥에 앉아있었다. 아리아는 씩 웃으며 이도의 옆구리를 찔렀다.

 

  “되게 어려운 얘기 하더라. 책 많이 읽었나본데?”

 

  “도림의 태자 교육은 생각 이상으로 고되거든. 하루에 한 권은 기본이지.”

 

  아리아는 혀를 내둘렀다.

 

  “난 평생 동안 한 권도 안 읽었는데.”

 

  그들은 잠시 앉아 쉬려고 벤치로 갔다.

 

  “그것보다 편지 읽어 봐봐. 뭔 내용일지 궁금해.”

 

  “별 내용 있겠어? 그냥 의례적인 안부인사 정도겠지. 걱정도 조금 포함해서.”

 

  이도는 편지의 봉인을 떼어내고 펼친 뒤 읽어 내려갔다. 대부분 그의 생각대로의 내용이었다. 그건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맨 마지막 문단이었다.

 

 

 

  네게 닥친 불행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염려한단다. 하지만 일국의 황제로서 나는 또한 나의 위엄과 제국의 안녕에 대해서도 걱정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제국은 안팎으로 어렵다. 최근 너의 나라와의 전쟁하며 북방의 위협과 계승 문제나 황제권과 의회권의 충돌 문제 등등, 이외에도 차고 넘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황제의 리더십이 필요한 순간이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는 않구나. 네가 성도로 돌아온다면 설령 네가 무사할지라도 나의 위엄은 떨어지겠지. 이 모든 불행이 황제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하겠지. 어느 때보다 좋은 소식이 필요한 때란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제국은 덕 위에 존재한단다. 그리고 덕은 칼이 아닌 말로 이루어지는 법. 그럼, 무사하길 바란다.

 

 

 

  다 읽은 이도는 한숨을 쉬었다. 아리아와 돌격대장도 내용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황제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잘 파악하지 못 했다. 둘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무슨 말이야?”

 

  이도는 멍하니 답했다.

 

  “빈손으로 돌아오지 말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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