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더팩과 배낭을 짊어진 건호와 소현이 앞서 걸어간다. 검은색 바탕에 빨강 패턴이 그려진 노스페이스 등산복 차림의 재욱이 캠코더를 목에 맨 채 뒤 따른다.
“ 오~~ 재욱 선배님! 히말라야라도 등정 하는 줄 알겠습니다~ “
소현이 뒤돌아보며 웃는다.
“ 난 말이야~ 실전은 연습처럼, 연습은 실전처럼… 뒷산 갈 때도 히말라야처럼, 히말라야 갈 때는 앞산처럼.. 항시 산악인의 자세를 갖추고 있지.. 하하하.. “
건호가 큰소리로 웃는 재욱을 바라본다.
“ 형! 지리산 이라도 가봤어? “
“ 지리산? 금정산도 처음 인데! 내가 말 안 했냐? 행군하기 싫어서 군대도 해군으로 갔다고. 하하하..”
“ 아~ 이럼 나가린데.. 금정산, 부산에서 제일 높은 거 알지? 짐짝 하나 늘었네..”
건호의 한숨 섞인 소리에 반응 하는 재욱.
“ 내가 또 실전에 강하잖냐! 매주 용두산 등반하는 저력을 보여주마! 하하..”
“ 대단하십니다. “
재욱의 농담에 무거운 공기가 누르는 금정산 초입이 다소 가벼워 진다.
산에 오른 지 1시간 정도 흐른 시간 바윗돌로 만든 계단을 오르는 건호와 소현, 10여미터 뒤로 폴대를 집으며 재욱이 힘겹게 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처럼 보이는 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 위쪽의 소나무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 건호야! 아직 멀었어? 헉헉…”
힘겨운 듯 이마에 땀을 닦는 재욱.
“ 음.. 조금만 더 가면 돼. 우리가 지금까지 온 만큼. “
“ 어우~ 야.. 내 체력이 급격히 바닥나고 있다. 헉..헉.. “
재욱의 힘겨워하는 목소리를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황톳빛 맨땅의 촉감이 발끝에 전해지고,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던 성곽의 형체가 점점 또렷해지는 순간 건호가 재욱을 바라본다.
“ 거의 다 왔어. 이제 북문이야! 저 위 계단을 오르면 고당봉 정상이니까 힘내! ”
건호의 말에 다시 힘을 내는 소현과 재욱. 평소 같으면 또렷이 보일 고당봉 정상이지만 구름에 둘러 쌓여 보이질 않는다.
“ 정상까지 가파른 계단이니 모두 조심해! 시계가 좋질 않아. “
고당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데크 계단과 난간 손잡이에는 비라도 온 듯 물기가 가득하다.
“ 역시 준비된 산악인의 발끝이 가볍군.. 하하.. “
재욱이 힘겹게 오르며 숨을 고르는 사이 어느덧 계단 끝에 두 눈이 맞닿으며 회색 빛의 비석 머리가 보인다.
“ 오~~ 선배님! 정상 이예요! “
소현이 신이 난 듯 뒤따라오는 재욱에게 소리 친다.
소나무들과 바위 사이로 “고당봉” 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회색 빛의 돌 비석이 물기를 가득 머금은 채 서있고 정상에서 바라본 하늘은 여전히 솜사탕처럼 하얀 구름에 둘러 쌓여 천천히 주위를 흐른다.
“ 와~~ 하나도 안 보이네. 여기선 양산 시내가 보여야 할 텐데.. “
미간을 찌푸리며 산 너머를 바라 보는 재욱.
“ 선배! 예상 했던 것 보다 바람이 약한데요! 밑에서 봤을 땐 강풍이 몰아칠 것 같았는데 이건 거의 산들 바람 이예요. “
주위를 돌아보는 소현이 한 손을 허공에 들어 보이며 바람을 느낀다.
서둘러 관측장비를 꺼내는 건호, 배낭 안으로 깊숙이 넣은 손은 박스 하나를 꺼낸다.
“ 재욱이 형! 웨더팩 좀 잡아줘. “
웨더팩을 건네 받은 재욱.
“ 이러다 번개라도 때리는 건 아니겠지? 하하.. “
“ 번개는 아무한테 때리지 않아. “
재욱의 농담 뒤로 관측 모니터를 확인 하는 건호, 소현의 손에는 WXT50이 들려있다. 2~3분이 지났을 무렵 모니터를 확인하던 건호가 WXT50을 체크 한다.
“ 웨더팩과 WXT50 모두 같은 기록으로 관측 되고 있어. 풍속, 풍향, 대기압력 대기 온도 등 어제 확인 한 세 곳과 여기 고당봉의 관측기록이 거의 일치해! "
건호의 말에 관측 모니터와 WXT50을 다시 확인 하는 재욱.
“ 어! 진짜네~ 그러니까 부산시 네 방위의 최 고도에서 관측한 기록이 평상시와 같다는 건… 태풍의 영향이 없다라는 말이잖아! “
“ 벗어난 것일 수도 있고, 태풍이 사라진 것일 수도 있지. “
“ 그런데 이 솜사탕처럼 회전 하는 구름은 뭐죠? 태풍이 사라졌다면 설명이 안되요. “
소현이 신기한 듯 묻는다.
“ 이제 그걸 알아봐야지. “
배낭에서 꺼낸 박스를 열며 말하는 건호.
“ 어! 그건 뭐야? 이야~~ 드론 이네~ 이런 건 언제 가져 온 거야? “
카메라가 달린 드론의 상태를 확인 하는 건호, 전원을 켜본다.
“ 학부생들과 산학 프로젝트로 만든 기상 관측용 드론이야. 웨더팩 같은 관측 장비 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기본적인 풍속, 풍압, 온도 정도는 확인 할 수 있어. 무엇보다 눈으로 확인 할 수 없는 곳을 카메라가 확인 시켜주거든. “
“ 세상 많이 좋아졌다. 나 때는 관측용 연 날리기 대회만 있었는데. 하하.. “
드론을 이리저리 보며 감탄하는 재욱.
“ 실시간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거야? “
“ 단일 주파수라 가능해. 문제는 지금 GPS가 안되기 때문에 수동 조종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아."
드론을 바닥에 내려 놓는 건호, 조종기에 핸드폰을 결합 한 후 서서히 공중으로 날리자 고요한 고당봉 정상에 정적을 깨는 프로펠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순간 건물 3층 높이까지 올라간 드론, 회전하는 구름 속으로 서서히 들어 간다.
“ 뭐가 좀 보여? “
궁금한 듯 건호의 어깨 너머로 조종기를 바라보는 재욱. 모니터에는 안개처럼 희뿌연 구름 속 모습만 보인다.
“ 200M 이상 날아간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
모니터를 보며 한참을 조종하는 건호, 잠시 후 옅어진 구름 뒤로 흐릿한 풍경이 보인다.
“ 오~ 뭔가 보이는데! “
신이 난 듯 모니터 가까이 다가 오는 재욱.
이윽고 모니터 안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강줄기, 그리고 멀리 산등성이들이 보인다.
“ 와! 낙동강! 낙동강이야~ 드디어 바깥 세상이 보여~~ “
흥분한 재욱이 소리치며 박수를 치 자… “ 삐! 삐! 삐! “ 순간 경고음이 울린다.
“ 조종 신호가 약해지고 있어. 회수해서 자세히 확인해야 할 것 같아. “
조종기를 움직이는 건호, 경고음은 끊기질 않고 계속 울린다.
“ 거의 다 왔어. “
순간 갑자기 모니터에 나무 가지들이 나타나고 가지에 부딪히는 드론, 화면이 어지럽게 돌더니 잠시 후 꺼져 버린다.
“ 아.. 나무에 부딪힌 것 같아. 거의 다 왔는데..”
실망한 표정의 건호.
“ 어떻게 하죠? 선배? “
소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건호를 바라본다.
“ 아무래도 찾아 와야 할 것 같아. “
배낭 속 후레쉬와 무전기를 챙기는 건호.
“ 안돼! 건호야! 10M 앞도 안 보이는데 더구나 이 아래는 절벽이라고! “
“ 선배! 너무 위험해요.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와서 찾아 봐요! “
재욱과 소현은 배낭을 둘러 매는 건호를 보며 말린다.
“ 거리상으로 50M 아래에 있어 돌아 내려가면 찾을 수 있을 거야. 무전기 챙겨가니깐 무슨 일 생기면 연락 할게. 아래 북문 앞에서 만나. “
재욱과 소현의 만류에도 후레쉬를 비치며 내려가는 건호,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 아! 저놈의 고집은 그대로네… 어이. 후배! 고생이 많겠어! “
건호가 내려간 방향을 보는 소현.
“ 고집 불통에 악덕 업주죠. 건호 선배는…”
소현의 얼굴에는 걱정스런 표정이 가득 하다.
건호는 습기로 인해 미끄러운 바윗돌을 조심이 밟아 내려가지만 여의치가 않다.
군데 군데 나 있는 소나무 가지를 잡으며 천천히 내려가 보지만 급한 마음에 발을 자주 헛 딛는다.
‘ 예상이 맞았어. 태풍은 사라진게 확실 해! '
드론에 찍힌 영상을 생각하는 건호,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인 안개보다 더 심하게 드리운 구름의 정체를 생각하며 나무 가지를 옮겨 잡는다.
순간 “ 뚜뚜 둑! “ 소리와 함께 나무 가지가 부러진다.
“ 어? 어..억~~! “
안개처럼 휩싸인 구름 속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건호,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이때 주머니 속에서 들려오는 무전기 소리.
“ 치직~ 치지직~ 선배! 들려요? 선배? “
“ 치직~ 건호야! 들려? 치직…”
잡음과 뒤섞인 소현과 재욱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는 건호,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24 / P-71
처음 보는 압도되는 광경에 잠시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의 P-71 해경경비정 차순욱 정장, 머리 위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짙은 해무 장막이 기괴한 느낌 마저 들게 한다.
“ 정장님. 현재 속도 10노트, 쥐섬 300M 전방으로 접근 중입니다. “
“좌로 5도“
“좌로 5도!“
정장의 지시에 복창 후 좌측으로 키를 돌리는 조타수.
잠시 후 “ 엔진 정지”라는 명령에 복창 한다.
“엔진 정지!”
“ 아직도 *코스넷(KOSNET)은 불능 인가? “
정장의 질문에 모니터를 확인 하는 항해장.
“신호가 없습니다.“
“ * ENG는? “
“ 촬영은 가능한데 실시간 송출은 불가능 합니다. “
항해장의 대답에 눈살을 찌푸리는 정장.
“ 완전히 눈뜬 장님에 벙어리가 됐군. “
“ VHF 연결해! “
정장의 명령에 항해장이 VHF 무전기를 들어 입에 댄다.
“ 공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 여기는 물개 하나, 물개 하나, 오륙도 오륙도 수신 감도 확인 바람. 이상! “
“ 치~직~ 여기는 오륙도, 귀국 수신감도 셋. 현재 상황 보고 바람. 이상! “
무전기를 넘겨 받는 P-71 정장.
“ 물개 하나 현재 쥐돌 300M 앞 풍속은 양호 하나 전방 해상 200M 시계 제로, 여전히 해무에 막혀 있음. 이상! “
“ CH16. 상시 오픈 하고 호출 시까지 대기 바람. 이상! “
“ 치~직~ 오륙도 접수 완료, 대기 하겠음. 이상! “
“ 홍경장. 이런 구름 본적 있나? “
쌍안경으로 전방을 살피던 정장이 항해장을 향해 묻는다.
“ 이런 건 처음 입니다. 들어 본적 도 없는 것 같습니다. “
해수면 위부터 벽처럼 올라가 있는 구름 장벽을 보며 넋을 잃은 듯 말하는 항해장.
10여분이 지난 시간 짭짤한 바다 내음과 적당히 습한 공기가 조타실 내부에 가득해 진다. 순간 레이더 스캐너를 바라보던 항해장이 소리친다.
“ 전방 1.5Km 앞 다수의 미 확인 선박 출현 입니다! “
항해장의 소리에 의자에 기대있던 정장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더 스캐너 앞으로 다가선다. 모니터에는 하얀 점 5~6개가 P-71 방향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 선박 재원 식별 가능한가? “
“ 30~50톤급 선박 5척, 10노트의 속도로 접근 중입니다. * AIS가 작동되지 않아 선박의 정확한 식별은 불가능 합니다. “
“ 태풍을 뚫고 들어 오다니… 어떻게 된 거지? “
쌍안경을 들어 전방을 주시 하는 정장,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보인다.
“ 미 식별 선박 1Km 전방에 접근 중입니다. “
항해장의 다급한 목소리 속에 여전히 시야에는 높게 펼쳐진 구름 장막 만이 보인다. 다급히 무전기를 집어 든 정장.
“ 오륙도! 오륙도! 여기는 물개 하나! 수신감도 확인 바람. 이상! “
“ 치~직~ 물개 하나 여기는 오륙도, 수신 감도 둘.. 상황 보고 바람. 이상. “
“ 10:35분 현재 쥐돌 해상 1Km 전방 미 식별 돌고래 다섯 출현, 코드3으로 대기 중 이상! “
“ 물개 하나, 여기는 오륙도, 코드3 대기 중 상황 발생시 코드 2로 전환 바람. 다시 말한다. 상황 발생시 코드2로 전환 바람. 이상. “
“ 수신 완료. 현 시간 매 눈(ENG) 작동 개시 상황 발생시 코드2로 전환 하겠음. 이상. “
무전을 마친 P-71정장은 다시 쌍안경을 들어 전방을 주시 한다.
“ ENG 키고 모든 상황을 녹화 한다. 갑판장! 전원 상황 배치. "
“ 전원 상황 배치! “
“ 전원 상황 배치! “
갑판장의 복창에 P-71 기동정 모든 대원들이 큰소리로 복명 복창 한다.
“ 그르릉~~” P-71 기동정 선미에서 들려오는 워터제트 엔진 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깬다.
“ 정장님. 가까이 접근 할 까요? “
“ 육안으로 식별 될 때까지 현 위치에서 대기 한다. “
“ 알겠습니다. 현 위치 대기! “
구름 장막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선박의 모습이 점차 형태를 갖추며 선명해져 온다.
“ 어? 저건… ! “
쌍안경으로 주시하던 항해장이 큰 소리를 낸다.
“ 정장님! 함선이나 어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옛날 판옥선처럼 보이는데 아닙니까? 정장님? “
쌍안경으로 확인 하는 정장.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한다.
“ 저건 판옥선이 아니라… 왜선.. 왜선이다!
“ 항해장! 검문 검색 준비 한다! “
심각한 표정의 정장의 모습에 긴장 하는 항해장.
“ 네 알겠습니다. ”
점차 또렷이 보이는 선박의 모습에 조타실의 모두가 놀란 듯 아무 말이 없다.
커다란 돛에 그려진 오동나무 문양과 3층 높이의 전각은 붉은 빛으로 칠해져 있는 선체를 더욱 위압적으로 보이게 한다. 붉은 목선 양 옆으로 2층 높이의 갈색의 배들 역시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왜선의 크기와 높이에 압도 당하는 P-71 승조원들,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 뒤 갑판장이 마이크를 잡는다.
“ 미 식별 선박! 미 식별 선박! 여기는 대한 민국 해경입니다! 귀선을 검문 검색 할 예정이니 바로 정선 하기 바랍니다. “
“ 미 식별 선박~ ! “
두 차례 경고 방송을 한 갑판장이 선수 갑판으로 나가 선박의 상태를 확인 한다.
“ 정장님! 아무래도 강제 승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려 조타실의 정장을 보는 갑판장.
“ 쉬익~~ “
순간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려온다.
“ 쿵! “
앞으로 고꾸라지는 갑판장. 갑작스런 상황이 파악 되질 않는 듯 승조원 모두가 선수 쪽을 쳐다 보기만 한다.
잠시 후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조타실과 갑판으로 날아 드는 은빛 물체들.
“ 쉬익~ 쉭~ 쉭~~”
“ 쨍그랑! 퍼...버벅! “
“ 아악! ~ 헉~~ “ 악! “
순식간에 날아든 화살에 갑판 위 승조원 들이 쓰러지고, 조타실 선창 마저 깨지며 날아든 화살이 무전기를 들고 있는 P-71 정장의 가슴에 꽂힌다.
* 코스넷(KOSNET) : 광역 위성 통신망
* ENG : 실시간 영상 전송 카메라
* AIS : 자동 선박 인식 시스템 (위성 데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