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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코 끝이 간지러울 뿐이라서
작가 : 바비수
작품등록일 : 2020.8.19

그 흔한 사랑고백도 없었다. 격렬한 포옹, 격정적인 키스도 없다!
자극적인 대사, 스킨십 한 번 없이 잔잔하고 소소한 순간들만 있었을 뿐!
그저 간지럽기만 했던 그 시절, 지우와 수현.
그 때 우린 뭐였을까? 이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2 바다는 한 계절 늦어요
작성일 : 20-09-01 21:02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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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1월이라 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았어.

 그 사람이 그러더라. 바다는 한 계절 늦어요.

 새벽부터 부산스러운 소리에 깨서 거실로 나가보면 걔가 따뜻한 물을 끓이고 다이빙 장비를 챙기고 있었어. 그럼 나도 괜히 어슬렁거리면서 거실 소파에 앉아있고.

 함께 차를 타고 바다로 갈 때는 되게 기분이 묘했어. 평온한 아침. 기분 좋은 풀 내음.

 아무 말 하지 않고 창문으로 옆에 펼쳐진 푸른 바다만 멍하니 바라봤어. 그게 되게 좋았어.

 

 다이빙을 하고 나면 시간이 오전 11시밖에 안 됐거든. 그럼 그 때부턴 계속 단둘이 밥 먹고 TV보고 그러는 거야.

 처음 만난 사이인데 며칠을 그렇게 단 둘이 지내니까 되게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졌어.

 

 다이빙을 한 번 하고 나올 때마다 휴식시간을 가졌거든.

 그 때 걔가 그러더라. 나이도 비슷한데 말 편하게 하자고. 그러면서 바로 반말을 하는 거야.

 근데 난 오빠란 말이 너무 오그라들었거든. 그래서 그냥 너라고 불렀다? 세 살이나 차이 나는데.

 걔는 어이없다는 듯 웃기만 하고 별 말 없었어.

 내가 무슨 말, 무슨 행동을 해도 절대 화내질 않았어.

 

 그리곤 그냥 시시껄렁한 대화가 오갔어. 별 영양가 없는 그런 대화들.

 걔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될 것 같았어. 뭐든 다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이었어.」

 

 “고등학생 땐, 어른이 되면 뭔가 인생이 훨씬 재미있어질 줄 알았다?

 근데 어른이 된다는 건 내 삶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거더라.”

 

 지우는 2월 생이라 학교에 빨리 들어갔다. 게다가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앞두고 조기졸업을 염두하고 있었다.

 22살에 대학교 졸업을 하는 셈이었다. 정신 없이 바쁘게 달려왔지만 정작 졸업 후가 막막했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다니고 싶은 회사도 없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경제적으로 독립을 결심한 지우는 성적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4년 내내 전액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업을 제외한 동아리나 공모전, 교외활동은 전무했다.

 전공을 살려서 취업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되자. 막연히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야무지고 똑부러져 보이지만 빈틈도 많고 치밀하지 못한 지우였다.

 

 “학교 다닐 때도 그거대로 재미있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좋은데.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잖아!”

 수현이 해맑게 말했다.

 

 “어렸을 땐 그림도 곧잘 그리고 글도 꽤 잘 썼는데. 책 읽는 것도 좋아해서 금방 한 권 뚝딱 읽고. 근데 지금은 낙서하는 것조차 어려워. 일기도 몇 줄 쓰면 더 이상 적을 말이 없고. 책은 또 조금만 읽어도 왜 이리 지루한지. 나이를 먹을수록 할 줄 아는 게 적어지더라.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된 거야.”

 

 지우는 자신이 커서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고 기대했던 어린이가 자라 결국엔 자신도 시시한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어른>이라 불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저녁에 같이 TV를 볼 때면 절대 로맨스물은 보지 않았어. 사랑 타령하는 거 딱 질색이었거든.

 매번 호러, 좀비, 공포 영화만 봤어.」

 

 지우는 회의적인 사람이었다. <사랑>을 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런 감정이 자신 안에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다.

 애정결핍이란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아야만 자신의 가치가 입증된다는 것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것이었다.

 사랑을 갈구해본 적 없었다. 사랑을 하지도,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메마른 사람인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죽어버려도 좋을 정도의 행복을 맛보진 못할지라도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고통도 모를 테니까.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지금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 말은 곧 당장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지우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람을 증오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죽을 만큼의 행복과 고통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생긴다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증오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동의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지우는 사람들이 사랑 고백을 할 때 이런 살벌한 대사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너무 무서워. 날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널 증오해>

 

 드라마 같은 인연은 없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반하고 세 번 만났을 뿐인데 결혼하리라 결심하는 그런 운명은 없다고 생각했다.

 치밀하게 재고 따지고, 밀고 당기는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확인하는 그런 연애만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열렬히 사랑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걔는 다이빙 강사 말고도 하는 일이 많았어. 점심을 먹고 나면 항상 뭔가를 하러 갔거든.

 내가 혼자서 심심할까 봐 그랬는지 꼭 같이 갈 건지 물어봤어. 하루는 목장 일을 도우러 간다는 거야. 운동화를 신고 가려고 했는데 땅이 진흙이라 장화 신어야 된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다이빙샵 사장님 딸이 초등학생이었거든? 그 애기 꺼 핫핑크 장화 신고 갔다?」

 

 코끝을 스치는 풀 내음이 좋았다. 푸른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초록이었다. 나무와 수풀, 바위덩굴, 새싹. 눈이 편안하니 마음도 평온해졌다.

 

 지우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엔 기숙사 급식 배식, 학생 조교, 교내 카페테리아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종강을 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일본, 중국, 미국, 호주, 캐나다 등등. 지우는 꽤 많은 나라를 가봤지만 그 어떤 곳보다 제주도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초록색으로 가득한 길을 달리며 지우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흑돼지가 스무 마리쯤 되었다. 진흙 위에 철푸덕 누워있거나 토실토실한 아랫배에 진흙이 잔뜩 묻어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수현이 먹이통에 사료가 충분히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돼지우리에 들어갔다. 돼지들은 수현 주위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 중 한 마리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수현이 뒤로 넘어지면서 콰당 엉덩방아를 찧었다.

 

 지우는 그런 수현의 모습에 박장대소하며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수현도 크게 웃으며 자신을 넘어트린 돼지의 토실한 양 볼을 붙잡고 “형이 그렇게 좋아?”라고 익살스럽게 말하며 뽀뽀했다. 그 바람에 지우의 카메라엔 엉덩방아를 찧은 수현이 아닌 돼지에게 뽀뽀하는 수현의 모습이 찍혔다.

 

  “바보 같아.”

 

 일어난 수현의 엉덩이엔 진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지우는 또 바보 같다고 핀잔을 주었다. 수현은 웃으며 대충 바지를 털어냈다. ”

 

 「나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딴 세상에 있는 거 같았어. 돼지랑 뽀뽀하는 사람 봤어?

 넘어졌는데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뽀뽀를 하니까.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행복했어.

 근데 동시에 난 여기 있어선 안 될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아름다운 동화 속에 존재해선 안 되는 흉물인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돼지들 사료를 주고 나선 들판에 풀어놓고 키우는 소들도 확인하러 갔었어.」

 

 트럭 같기도 자동차 같기도 한 농업용 4륜 전동차였다.

 작은 적재함이 딸린 차는 유리로 막힌 곳 하나 없이 창문이 모두 뻥 뚫려있었다.

 수현은 운전석으로 가 시동을 걸었다. 지우는 보조석에 올라탔다.

 지우와 수현은 넓은 들판 위로 수 십 마리의 소들 사이를 지나며 달렸다.

 

 “이렇게 타고 가면서 소들 상태를 체크하는 거야. 이번에 새끼를 벤 소들이 많거든.

 어미 소들 좀 봐줘. 난 태어난 송아지가 있는지 셀 거야.”

 

 수현의 말에 지우도 주변의 소들을 둘러보았다. 아랫배가 불룩하게 나온 소들이 많았다.

 한 어미 소가 양막에 갇힌 채 죽은 송아지를 연신 핥아대고 있었다.

 

 “새끼가 죽은 채로 태어났나 봐.” 수현이 말했다.

 

 살아나라. 살아나라.

 그렇게 하면 새끼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어미 소는 간절하게 쉬지 않고 핥았다.

 지우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뺨에 닿는 차가운 촉감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현은 그런 지우를 못 본 체하며 쾌활하게 말했다.

 

 “한 번 몰아볼래?”

 

 수현은 전동차를 운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지우와 수현은 서로 자리를 바꿔 탔다.

 수현이 보조석에 앉으며 “자, 출발!”하고 외치기 무섭게 지우가 엑셀을 꾸욱- 끝까지 밟았다.

 전동차가 크게 덜컹거리며 앞으로 쏟아지듯 달려나갔다. 여유를 부리던 수현은 급히 두 손으로 문틀을 붙잡았다. 지우는 곡예 부리듯 차를 전속력으로 몰다가 갑자기 핸들을 좌우로 틀기를 반복하며 차를 몰았다. 전동차는 방향을 꺾을 때마다 크게 덜컹거렸고 지우와 수현의 몸이 붕 떠올랐다. 수현은 문틀에 매달리듯 꽉 붙잡았다. 지우는 그 모습을 보고 겁쟁이라고 놀렸다. 얼굴을 때리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너른 들판을 한창 달리던 중 갑작스럽게 눈 앞에 벼랑이 보였다. 지우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 바퀴가 벼랑 끝에 반쯤 걸쳐졌을 때 차가 크게 흔들리며 멈췄다. 지우는 깜짝 놀라서 수현을 쳐다봤다. 수현은 조금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지우를 꾸짖지도 않았다. 그저 가볍게 웃으면서 이제 자기가 차를 몰겠다고 했다.

 다시 자리를 바꿔 앉아 수현이 차에 시동을 걸었지만 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떡해. 망가졌나 봐.”

 

 “가스가 다 떨어진 거야~”

 

 그렇게 말한 수현은 목장주인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SOS를 요청했다. 지우는 그가 정말 당황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괜찮은 척 연기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태연한 수현의 표정에 안심이 되었다. 지우와 수현은 전동차에 기대고 서서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들판을 바라보았다. 초록 빛깔 들판과 수십 마리의 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잡념은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저 멀리 트럭 한 대가 수현과 지우를 향해 달려왔다. 그런 트럭 뒤를 엄청난 소떼가 쫓아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경이로웠다.

 

 트럭이 멈춰 서자 수현은 적재함에 올라타 지우도 올라오는 것을 돕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지우는 그 손을 무시하고 자신의 키만큼 높은 적재함에 기어코 혼자 올라탔다. 수현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민망해진 손으로 뒤통수를 쓸어 내리는 척했다. 주인아저씨는 수현과 지우가 모두 올라탄 것을 확인하고 다시 출발했다.

 

 수현은 뒷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구석에 있던 비료 포대를 능숙하게 뜯었다. 흔들리는 트럭 끝에 균형을 잡고 서서 비료를 땅에 쏟으니 트럭이 달리는 길을 따라 소들이 몰려왔다. 지우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수현이 비료 포대를 한 개 더 뜯어주었다. 지우도 수현의 옆에 나란히 서서 소들에게 쏟아주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소떼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짜 수 십 마리의 소떼들이 나를 따라 달려오는데 너무 신기하더라. 살면서 겪기 힘든 경험이잖아. 그렇게 많은 소들을 눈 앞에서 보는 것도, 달리는 트럭 끝에 서서 비료를 뿌리는 것도. 옆에선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이 상황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어. 그 사람을 잊을 수 없다기보단 잊을 수 없는 순간마다 내 옆에 그 사람이 있었던 거 같아.」

 

 “이맘때마다 염소들 주사 맞히는데 옆에서 볼래?”

 

 지우와 수현은 주사기와 약이 든 상자를 들고 염소들이 있는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수현은 염소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우리가 넓은 것도 아니고 염소가 재빠른 편도 아닌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는 수현이 우스웠다.

 

 “해봤던 거 맞아? 내가 잡을 테니까 주사기나 준비해.”

 

 지우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자기 몸만 한 염소를 껴안듯이 잡아 수현의 앞으로 끌고 갔다.

 

 “내가 너보다 훨씬 잘 한다!”

 

 지우가 놀리자 수현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입술을 삐죽거리는 표정으로 주사를 놨다. 수현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진심인지 장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애 같은 구석이 있는 수현이라면 충분히 진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국 염소 열 마리를 모두 지우가 잡아 수현 앞으로 데려갔고 수현은 줄곧 심통 난 아이처럼 뿌루퉁한 표정으로 주사를 놓았다.

 지우는 그의 과한 표정에 저건 삐진 척 연기하는 게 맞다고 확신했다.

 

 「온갖 동물은 다 본 거 같아. 소, 돼지, 염소, 양, 말까지. 그 때 새삼 지구에 인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란 게 실감나더라. 인간들은 자기가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잖아. 근데 다른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어. 눈 앞에서 보니까 내가 얼마나 거만했는지 부끄럽더라. 경건해지는 기분이었어.」

 

 「와, 진짜 뭔가 동화 같아요.」

 

 「하루는 거실에서 같이 영화를 봤거든? 무슨 영화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 둘 다 다이빙을 하고 나서라 피곤했거든. 내가 잠이 들락말락 하는데 갑자기 어깨가 무거운 거야. 잠든 그 애 머리가 내 어깨로 떨어진 거야. 그대로 굳은 채 가만히 있었어. 살짝 고개만 숙여서 얼굴을 보는데 아주 어린 소년 같았어. 그 모습을 눈에 담으려고 애썼어. 절대 잊고 싶지 않아서. 짙은 눈썹. 새까만 속눈썹. 굵은 콧대. 여기저기 터진 입술. 원래도 입술이 두꺼웠는데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더 두껍게 보여서 입술만 동동 뜬 거처럼 보였어. 호흡기 낀 입술이 젖병을 빠는 아기 입술 같아서 웃겼어.」

 

 「성인남녀가 함께 지내면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응.」

 

 「저녁에 같이 술 마신 적도 없고? 밤에 마주친 적도 없고?」

 

 「나 아예 술 안 마시거든. 그냥 밤에 거실에서 걔 인기척이 날 때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안심이 됐어. 잠결에 기분이 좋았어. 그뿐이었어. 내가 워낙 무덤덤하고 딱딱해. 이런 성격 탓에 로맨스라곤 있을 수가 없었어. 한번은 걔가 혼자 다 해내려고 할 필요 없다고 그러더라. 스쿠버다이빙은 꼭 버디가 있어야 되는 2인 스포츠라고.」

 

 지우는 교육을 받는 동안 한 번도 수현에게 의지한 적이 없었다. 바다 속에서 부력 조절을 못해 허우적대더라도 혼자 힘으로 끙끙대며 버텼다.

 20킬로짜리 BCD와 산소통을 등에 맬 때 수현이 들어주는 것조차 자존심 상했다.

 바다에 입수하거나 출수할 때도, 바다 속에서도 한참을 앞서 가버려서 수현이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기 일쑤였다.

 

 원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을 싫어하는데다 수현에게는 더더욱 의지하기 싫었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은 나약한 것이라 생각했다. 멍청한 것이라고 믿었다.

 

 「마지막 다이빙은 문섬에서 했어. 그 날 파도가 정말 성인남자 키만큼 높아서 섬으로 가는 배에 다이빙 장비를 싣고 내리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 산소통 두 개에 웨이트, BCD같은 장비까지 합치면 한 사람당 50키로가 넘으니까.

 파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출수할 때도 파도에 밀려서 나올 수가 없었다니까. 어떻게든 살겠다고 장비를 내던지면서 나왔어.

 내가 <헨젤과 그레텔>처럼 땅에 벗어버리면 걔가 내 뒤를 따라서 내가 버린 장비들을 주웠어.

 그 땐 나도 너무 힘들어서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다이빙을 온 다른 팀이 한 열 명 정도 있었는데 섬에서 나가는 배를 같이 타서 자연스럽게 합심해서 짐을 싣게 됐어. 그 팀에서 한 아저씨가 장비들을 건네면 걔가 받아서 배에 실었어. 배에서 짐을 내릴 때보다 싣는 게 더 힘든데 심지어 장비 수도 열 개나 더 많아졌잖아. 게다가 그 팀은 산소통도 더 많고 다른 장비도 많았어. 진짜 나는 보기만 하는데도 너무 지치고 힘들더라.

 솔직히 좀 안쓰러웠어. 우린 딱 두 명이니까 우리 것만 실으면 되는 거 아닌가?

 저 쪽 팀은 열 명이나 되는데 왜 아저씨 한 명만 하시지? 이런 생각도 들고. 아무리 걔가 젊고 체력이 좋아도 거의 1톤이나 되는 짐을 옮긴 셈이잖아. 그래서 뭐 하러 네가 다 하냐고 했더니 “아, 위치선정을 잘못했어~” 이러면서 바보처럼 웃고 말더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얼굴로 웃어버리면 끝인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란 말처럼 멍청한 말은 없다고 몇 번이나 지적했다.

 그럴 때면 그는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맞아~” 하면서 그냥 웃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작가의 말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할 뿐, 털 한 올을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하지 않는다"

 양주 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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