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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맨싱 사가 : 백발마녀전
작가 : 백발마녀
작품등록일 : 2020.8.23

똥싸개, 스토커, 시너테러범을 상대로 성장하는 쌍둥이 남매와 친구들의 이야기.

 
25화 ~28화
작성일 : 20-09-01 10:55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24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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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남은 똥을 싸 내야만 한다.

 

 집으로 가는 길, 오거리에서 오른쪽 여대가 있는 방향.

 그쪽으로 희주가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고등학생들의 숫자가 점점 적어지는 공간. 여대 앞에서 특히 나 같은 남고생은 걸어 다니기만 해도, 시선을 끌었다. ‘혹시 누나가 여기 대학교 다니나?’의 눈빛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안쪽 좁은 골목, 드문드문 담배를 피우는 누나들이 한두 명씩은 꼭 있었고, 비싼 외제 차들이 학교 근처 프랜차이즈 커피숍 앞에 전시되어 있듯 세워져 있었다. 수입차 주인인 듯, 훤칠하게 생긴 성인 남성들이, 대학생이 직장인인 척하는 것인지, 직장인이 대학생인 척하는 것인지 모를 복장으로, 여대 누나들과 얘기 중이거나, 여대 누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같은 ‘쩌리’ 남고생이 존재할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오거리에서 여대 방향으로 불과 10분 정도만 들어 왔음에도 말이다.

 

 희주가 자연스럽게 어떤 흰색 스포츠카 차량 보조석 문 앞에 섰다. 예전에 아랑이가 가져온 자동차 잡지에서 본 적 있는 스포츠카였다. 일명 ‘두부 배달하는 차’

 

 희주가 창에 노크하자, 반대편 운전석에서 그 남자가 내렸다.

 얼굴을 봐야 하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차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바로 옆 골목 틈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때, 하필 건물 틈 사잇길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던 대학생 누나가 침을 뱉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내 바짓단에 묻었다.

 

 “크윽 퉤”

 “으윽…!”

 “어머!”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아줌마, 하아~ 씨….” 내가 황당해서 바짓단을 보고, 그리고 그녀 얼굴을 쳐다봤다.

 “뭐?! 하아~ 나 참. 얘, 아줌마라니, 나 참 어이없네, 니가 갑자기 사람 앞으로 그렇게 훅 들어와서 맞은 거 아냐~” 그렇게 말하더니, 옆에 친구를 보며, “얘 웃긴다, 진짜” 하며 동조를 구한다.

 

 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내밀어, 다시 희주가 있을 차량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희주와 그 남자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불과 1초 앞! 단지 희주가 그놈 얼굴을 보고 있을 뿐!

 

 “야, 너 어디 보니!” 침 뱉은 누나가 어깨를 손으로 툭 쳐서 민다.

 

 ‘오오!~~~ 쉣!!!” 내가 화들짝 놀라, 다시 고개를 돌려, 침 뱉은 누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몸을 90도로 숙여 깍듯이 인사했다. 목소리는 내지 않고.

 그리고 뒤에서 희주가 지나간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다시 침 뱉은 누나를 쳐다봤다. 그녀가 허세 가득 피다만 장초를 땅에 버리며, 말했다.

 

 “얘 뭐니, 갑자기?” 1초

 “미안해요, 누나! 너무 갑작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2초

 “그래…, 네가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 내가 뭐 네 바지에 침을 뱉고 싶어서 뱉었니?! 네가 갑자기 들어와서…. ” 3초

 “죄송합니다.” 4초

 

 그리고, 고개를 빼끔 내밀어 희주가 오거리 중앙 교차로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봤다. ‘따라가야 한다.’

 다시 침 뱉은 누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래간만에 험한 말이 나왔다.

 

 “야, 이 X가리 X은 X아, 남의 바지에 침을 뱉었으면 사과부터 해야지, 어디서 사람을 툭 툭 쳐, 그러니까 입에서 똥내가 나는 거 아냐~”

 

 갑작스러운 내 험한 말투에, 아니 어쩌면 나의 생기다만 얼굴에 당황한 것인지, 매우 놀란 그녀. 토끼 눈을 한 두 여대생을 뒤로 한 채 다시 희주와 그 남자가 가는 방향을 쳐다봤다. 마침 그때, 그 둘이 오른쪽 길 건너 독서실이 있는 건물의 1층 커피숍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저 남자의 얼굴을 먼저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

 

 커피숍 안에 들어갈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희주가 창가 쪽을 등지고 먼저 앉은 걸 보니, 커피숍 길 건너편에 서면 저 남성이 희주 맞은편에 앉은 후 보일 것 같았다. 건너편 2층에 마침 계단 창문이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재빨리 맞은편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계단을 뛰어올라 2층 창문 앞에 도착해서, 첩보원처럼 몸을 낮췄다.

 

 동생 뒤나 밟고 있는 내가 한심했지만, 동시에 너무 궁금했다. 저 남자 새끼가,

 진짜 모텔에서 영양쌤과 나온 그 새끼인지!,

 커피숍 아저씨가 말하는 그 새끼가 맞는지!!,

 영양쌤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놈만 좋아하는 패도 범인지!!!

 희주가 아무것도 모른 채 저놈에게 혹시라도 유린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참을 숨을 고르다, 천천히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리고 건너편 희주가 앉았던 자리를 쳐다보았다.

 

 ‘젠장!’ 하반신 밖에 안 보인다.

 

 하지만, 그가 남자친구인 건 맞다. ‘저 범상치 않은 다리털!’

 

 ‘일 층에 서 있으면, 바로 들키는데 어떡하지?!’

 

 ‘기다리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삼십 분도 넘게 기다렸는데, 안 나온다. 뭔 얘기가 그렇게 긴지.

 ……

 

 한참 후, 그가 갑자기 일어섰다. 따라서 희주도 의자를 뒤로 밀며 벌떡.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한껏 움츠렸다. 그런데, 희주가 갑자기 길을 건너서 내가 있는 건물 쪽으로 왔다. 양옆 도로도 확인하지 않고, 마치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성큼성큼.

 

 뒤이어 남자가 따라 나왔다. 맞다. 저 얼굴! 내가 모텔에서 본 새끼!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희주가 내가 숨은 건물 일 층에 들어왔다. 건물 안쪽 계단 앞에서 뒤로 돌면, 계단 2층에 내가 숨어있는데 딱! 걸리는 상황. 3층까지 계단이 개방형으로 주욱 연결된 구조라, 3층으로 피할 수는 없다!!

 

 ‘쉣!!!!!’

 

 희주가 1층에서 계단 방향으로 몸을 휙 돌리는 걸 보자마자, 미친놈처럼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다행인 건, 그 남자도 지금 막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

 

 쿵!!

 

 “꺄악!!” 길을 걷던 사람들이 소리 질렀다. 그중에는, 아까 담배 피우다 나에게 침을 뱉은 두 여성도 있었다. 옆 가게 앞에서 귀걸이라도 구경하는 것 같았다.

 

 건물 안 다리털 남자도 뒤를 돌아보면, 나를 쳐다볼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희주가 내 사진을 보여줬다면 나를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침 뱉은 두 여성을 보며, 큰 목소리로 아주아주 반갑게 인사했다.

 

 “어머, 누나!! 여기 있었네!? 진짜~~ 오랜만이다!!”

 

 그리고 다가가서 손을 잡았다.

 

 그녀는 아까 건물 틈에서의 나의 말투 때문인지, 내가 2층에서 뛰어내려서인지,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래!? 아이그 아이그!”

 “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미안 나, 갑자기 똥이…. 으윽….” 그렇게 말하며, 인파 속으로 몸을 숨겼다. 몇몇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지만, 어서 몸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위에서, 희주 목소리가 들렸다.

 

 “정희준!”

 

 “...!....”

 

 잠시 내 뇌파에 정적이 흘렀다. 주변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멀어져 갔다. 침 뱉은 누나도 미친놈 피하듯 뒷걸음질 치며, 자리를 피했다.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2층에는 희주가, 1층에서는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마주해야 한다.

 

 남을 똥을 싸 내야만 한다.

 

 ---

 

 여대 근처에서 좁은 골목길을 여러 갈래 지나, 멀리 고가 위 고속도로 차 소리만 들리는 그런 곳에 서서, 셋이 얘기를 나눴다.

 

 내 애초의 생각과 달리, 놀라운 사실은 희주가 그 남자를… 보기에 따라서는, 따라다니는 것 같다는 것. 그게 놀라운 이유는 영양쌤의 말대로라면 그 남자가 오히려 ‘젊고, 어린’ 여자들을 좋아해서 희주에게 마수를 뻗은 것이어야 했는데, 그렇지는 않아 보였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있었다, 둘이 사귄다는 것! 그리고 모텔에서 그가 영양쌤과 나왔다는 것!

 

 “그래서 뭐!!” 희주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아니, 이 사람이 영양쌤하고 잤다니까,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다고! 넌 그게 안 이상해?!”

 

 “아니, 미안한데, 그건 학생이 잘 못 본 거야. 너희 영양사 선생님하고는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야.”

 “아니! 내가 정확히 봤어, 당신 머리! 얼굴! 다!” 내가 그 남자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희주가 이놈을 일견 감싸는 것처럼 보이는 게 화가 났다. 주먹으로 그놈 얼굴을 냅다 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희주를 설득할 수 없었다.

 

 “좀, 자면 어때! 이 오빠가 그 여선생이랑 자면 어때!? 그래서 미행했니? 이 시간에 중간고사 끝나고?”

 “자면 어떠냐니, 희주야, 니가 남자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이 학교 여선생하고 잠을 잤다고, 그게 안 이상해?!”

 “아니, 학생, 다시 말하지만, 안 잤어. 희주야, 너희 영양사 선생이랑 안 잤어.” 그가 또 끼어들었다.

 

 “X발. 아저씨, 한 번만 더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걸 아니라고 우기면, 나도 가만히 안 있어…” 내가 두 분을 부라리며 쳐다봤다. 물론, 그는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잘생겨서 그런지, 전혀 동요하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정희준! 넌 네 할 일이나 잘해. 공부는 하니? 고2인데 중간고사 그 성적으로 ‘인서울’ 대학갈 수 있겠어?”

 “여기서 공부 얘기가 왜 나와?!” 내가 반발했다.

 “학원도 끊겼는데, 인강은 제대로 듣니? 아빠한테 학원 안 보내 줘서 성적 떨어졌다고 하게?”

 “무슨 소리야?!”

 “난 이 오빠가 공부 다 가르쳐줘. 이번 중간고사? 난 지금까지 잘 봤어. 넌 어때? 어제도 뭐 싸우고 왔다고 현주가 그러던데, 맞아?”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지금! 이 사람이 다른 여자 만나면서 너 만난다고!! 그 얘기 중이라고!!!”

 “그게 왜 상관이 없어. 니가 그런 식이니까, 어릴 때부터 쌍둥이 병신 오빠라는 소릴 듣는 거 아냐! 그런 소리 안 들으려면 공부라도 잘해야 할 거 아냐! 내 말이 틀려?!”

 “...그건…”내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희주가 이어갔다.

 “엄마 없이 자란 애들이라서 아빠가 대기업 다녀도 애들이 대학도 못 갔다는 소리를 들어야겠어?”

 “어떤 새끼들이…, 누가 그딴 소리를 해!? 내 몸이 떨렸다.

 “다! 전부다! 우리 들리지 않게, 아빠한테 다 해! 너만 몰라!”

 

 예전에도 아빠가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걸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단지, 그렇다고 내가 잘되지 않는 공부를, 갑자기 잘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며 자위하고 말았을 뿐.

 

 “그래서, 이 아저씨가 너 공부 가르쳐 주니까, 그냥 괜찮다고? 다른 여자랑 막 자고 다녀도 나보고 간섭하지 말라고? 나는 공부도 못하는 X미 뒤진 쌍둥이 병신 오빠니까?” 내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학생, 나 진짜 너희 영양 선생님이랑 안 잤고…, 후우. 희주야, 아무래도 내가 나눌 얘기보다는 너희끼리 얘기가 더 많은 것 같다. 오빤 먼저 가볼게. 내일 시험…. 그래도 잘 보고….” 그가 세상 느끼한 목소리로 희주에게 말을 하고는, 희주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걸어갔다.

 

 내가 그 행동에 발끈, 움찔하자, 희주가 내 앞을 가로막듯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 슬픈 눈을 하며 말했다.

 “네가 너무 순진한 거야. 오빠야.”

 “...”

 

 희주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며,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는 거야. 세상이 그런 거야.” 그녀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직 ‘다리털 대딩’이 충분히 멀어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거기서 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양다리건 말건, 과외 값이라 이거야?’ 따위의 말은 뱉을 수 없었다. 그런 말은, 마치 내가 희주의 행동을 헐값에 매기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론, 가장 아끼는 사람이 오히려 가장 상처 줄 수 있으므로,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눈물을 흘리는 희주를 쳐다봤다. 어릴 때부터 아빠 걱정, 내 걱정을 그렇게도 하며, 뭐 하나 부족하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버텨온 여자애가 서 있었다.

 문득, ‘너무 희주 혼자만 고민하게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 혼자만 고민한다고 착각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내가 몰랐어….” 내가 말했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고 한심했다.

 

 “내가 시험 끝나면 다 얘기해준다고 했잖아…. 흑흑” 희주가 자포자기하듯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엉엉 우는 소리가 고가도로 차 소리에 묻혀, 마치 저 멀리 딴 세상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렇게 그녀 혼자 잠시 울 수 있게 두고 먼저 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6화. 영양쌤 III

 

 중간고사 셋째 날. 1교시는 자습이었고, 2교시 지구과학 시험만 있는 날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매우 일찍 준비하고 아빠보다도 먼저 집을 나섰다. 5월의 이른 아침 햇살이 갓구운 빵처럼 따뜻하게 그 온기를 전하고 있었다.

 

 교실에 들려서 가방을 놔두지도 않고 즉시 조리실 2층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부터 배달 트럭에서 원자재만이 조리실 냉장창고로 옮겨지고 있었고, 이를 감독하시는 몇몇 어른들을 제외하고는 학교는 조용했다.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렸다. 그리고, 아침 7시 반이 되자, 영양사 선생님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 끝 계단을 쳐다봤다.

 

 또각, 또각, 또각…

 

 시야에 들어오는 선생님의 무릎 그리고 다리.

 

 ‘하이힐에 검스….'

 

 '...아냐! 이런 걸 쳐다보려고 온 게 아니야!!’ 스스로 혼내듯, 주먹으로 머리를 내려쳤다.

 

 “희준이니?” 눈앞에 영양쌤이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녀도 당황한 듯 보였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 굳이 조리실로 - 학생이 왔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법.’ 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테니 말이다.

 

 “안으로 들어갈까?”

 “...” 내가 말없이 그녀 뒤를 따랐다.

 

 ‘탐스러운 사과….'

 

 '아냐!! 아냐!! 정희준 정신 차려!!’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니, 희준아?” 그녀가 나를 보고 진심으로 걱정하듯 말했다. 고개를 들고 그녀 뒤로 창밖을 바라봤다. 본관 2층 창문도 열려 있었다.

 

 별관 창문을 지나 햇살 가득 찬 공기, 그 너머 본관 2층 창문을 지나 눈에 들어오는 우리 반 교실 뒷문.

 

 그리고 오전 자습이라서 그런지 중간고사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듯 떠들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틈으로 희주가 보였다. 앉아서 매우 집중하는 모습.

 

 ‘어제 나 때문에 공부가 잘 안 됐나 보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희준아. 물이나…, 아니면 뭐 우유 같은 거라도 줄까?’ 그녀가 겸연쩍게 웃었다. ‘우유라니…. 무슨 애들도 아니고.’

 “아뇨, 괜찮습니다.” 차분해졌다.

 

 “그래…. 무슨 일이야, 곧 시험일 텐데?”

 “오늘은 2교시에 지구과학 하나밖에 없어요. 1교시는 자습이고요.”

 

 “응, 그래. 거기 앉아.” 알았다는 듯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는 재킷을 벗고, 커피포트의 물을 끓였다.

 

 “...지난번 월요일 밤에 얘기해주신 것 때문에, 왔어요….” 내가 자리에 앉으며, 용기를 내서 말했다.

 

 “응? 아 그래, 그럴 것 같았어. 희주랑 얘기했니?”

 “네, 그리고 그 사람도요. 선생님하고 같이 있으셨던 그 남자…”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포트에 물이 끓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하이웨이스트 갈색계통의 체크 바지에 옅은 초록색 슬리브가 매우 짧은 블라우스를 바지 안에 깊숙이 넣어 몸매가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라인. 그녀가 커피포트를 바라보며, 트레이에 놓인 검은색 고무끈을 하나 집어 들더니, 머리를 쫑긋 동여매자, 치켜 들은 팔꿈치 사이로 그녀의 겨드랑이 살이 눈에 들어왔다. 겨드랑이 페티쉬도 아니고 그 냄새가 상상됐다.

 

 ‘오 신이시여, 나는 어쩌자고 이곳을 다시 들어왔나이까.’

 

 내가 말을 이어가지 않자 그녀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커피에 물을 붓고는 물었다.

 

 “그래서, 다 잘 해결됐어? 희주도 그 사람하고 헤어진 데?”

 “...아뇨, 그게…."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좀 생각해보니까,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녀가 의아하단 듯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가지고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하고, 그 사람이 모텔을 갔어도, 꼭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 거고, 그 남자도 그렇게 얘기했고요. 그리고 이제는 희주랑 사귀니까… 희주도 다 알고, 그래도 괜찮다고 했고, 저도 괜찮고, 그 남자도 뭐 괜찮은 것 같아요.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잤어.” 그녀가 테이블 위, 내 손위에 그녀의 손을 올리며 들릴 듯 말듯, 하지만 정확히 입 모양을 만들어 말했다. ‘잤.다.’고.

 

 “....”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래도 괜찮잖아요. 예전 일이고 이제는 헤어지셨고 희주도 그 사람 좋아하고, 그 사람도…”

 

 “어제도.”

 

 이번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입 모양은 더욱 천천히, 과장되게. ‘어.제.도.’ 마지막 ‘도’라고 말할 땐, 달콤한 체리 향의 따뜻한 바람이 내 콧구멍에 스며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각오를 다진 후, 소리쳤다.

 

 “거짓말!! 어제 그 사람은 나랑 희주랑 있었어!”

 “그래, 오후에. 그러고 나서 저녁에는?”

 “...”

 “저녁에는 나랑 있었어.”

 

 “그게 무슨…. 왜요? 선생님은 희주가 그 사람한테 막 이용당하는 게 싫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근데 왜 그 사람을 다시 만나요?” 내가 혼란스러웠다.

 

 “그래, 맞아. 그래서 그랬어. 희주가 그런 놈한테 이용당하면 안 되니까. 너도 그게 싫잖아.” 그러면서 그녀의 오른손이 내 얼굴로 올라왔다. 왼손으로는 테이블 위에 내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내 볼을 쓰다듬으며 얼굴을 점점 가까이했다.

 

 내가 모텔에서 나오는 걸 직접 봤는데도, 어제 그 남자는 영양쌤이 그냥 친구일 뿐 같이 성관계를 하지는 않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어제도 관계를 했다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완벽하게 분명해졌다.

 

 어제 그 남자랑 잤다는 사람이 지금 이렇게 나에게 입이라도 맞출 듯 의자에서 엉덩이를 띄우고 다가오고 있다니!

 

 희주가 걱정돼서, 그 남자랑 헤어져야 한다고 불과 며칠 전에 얘기해놓고는 당장 어제도 그 사람이랑 관계를 했다니! 그리고 이 아침에 시험을 앞둔 학생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 놓는다는 게... 도대체 선생이란 작자가!

 

 “그만 하세요!! 선생님….” 내가 소리쳤다. 다음 말이 너무 뱉고 싶었지만, 뱉었다가는 그 방을 못 나올까 봐 두려워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 쪽으로 뒷걸음쳤다. 그리고는, 당황해서 어정쩡한 자세를 펴지 못한 영양쌤 눈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 쇼타충, 미친X아!”

 

 극복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녀의 헛웃음 소리가 들렸던 것 같지만, 이번에는 뒤돌아보지도 힐끔거리지도 않았다. 저승에서 생환하려다 뒤를 돌아봐서 아내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오르페우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점심 급식은 당연히 거르고, 집으로 뛰어갔다. 아랑이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아직은 전부 얘기해줄 수 없었다. 하루 바짝 한다고 성적이 뭐 오르겠느냐마는,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 나는 공부를 먼저 해야만 했다. 왠지 그래야만 당당하게 희주를 보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금요일은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현주는 점점 우리 자리에 자주 놀러 왔다.

 

 “오늘이면, 끝이다. 너흰 끝나고 뭐해?” 현주가 물었다.

 “우린…, 피방?” 아랑이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척하다가, 현주 소리를 듣고 말했다.

 “으… 난 안돼 오늘.” 내가 몸을 늘어뜨리며 답했다.

 

 “얘 왜 이래?” 현주와 아랑이 나를 두고 대화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희주를 쳐다봤다.

 

 “현주야, 넌 오늘 희주랑 뭐 안 해? 아니면 너희들끼리 모임 같은 거 안 하냐?”

 “아니?” 현주가 마치 되묻듯 나의 질문에 답했다,

 “희주 오늘 바로 집에 가야 한다던데, 너랑 뭐 하는 거 아니고?”

 “...아니….”

 

 현주는, 생각에 잠긴 나를 두고, 다시 아랑과 대화를 이어갔다. 얼마 전 공립 애들과의 싸움 이후로 사뭇 친해져 보이는 둘이었다. 단지,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을 뿐.

 

 ----

 

 시험을 드디어 모두 마쳤다. ‘겨우’라는 말이 맞겠다.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조용히 혼자 교실을 빠져나가는 희주를 보고, 뒤따랐다. 그리곤, 이렇게 ‘뒤따르는 게’ 괜히 또 미행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어색한 침묵을 깨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정희주!”

 “어.”

 

 희주가 뒤도 보지 않고 담담히 답했다. 뛰어 따라잡아서 희주 옆에 섰다.

 

 “시험은?”

 “잘 봤어. 다행히.”

 “오~ 다행이네. 아빠 좋아하시겠네. 자랑스러운 딸! 하시면서” 내가 너스레를 떨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뭐래.”

 “오, 모르나 본데 아빠가 너 더 좋아해.”

 “꺼져.”

 “오, 안 믿네? 야 이거 봐봐.” 그러면서 내가 지난주 목요일 아빠가 희주에게 보내려다 나에게 잘못 보낸 문자를 보여줬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딸,

 아빠한테 서운한 게 많을 텐데,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준 우리 딸.

 맨날 야근하는 아빠 도와준다고, 집 안 청소며 설거지도 다 해주고,

 희준이가 오빠인데도 누나처럼 밥까지 챙겨주고. 우리 희주, 공부도 더 잘하고 싶은데,

 돈 걱정해서 학원도 안 다닌다고 그러고. 아빠가 너무 미안한 게 많네.

 

 어릴 적부터 누가 희준이 괴롭히면, 뒤도 안 보고 뛰쳐나가던 우리 딸.

 집에 여자가 혼자라서 외로울 때가 많았을 텐데, 한 번도 엄마 보고 싶다고 하지 않은 우리 딸.

 그래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야. 좀 투정도 부리고, 집안일도 하기 싫고, 공부도 과외받으며 편하게 하고 싶고, 아빠는 하나도 이해 못 한다고 성질도 부려보고 싶고, 그래도 괜찮은데 말이야.

 

 요새 남자친구도 생긴 것 같던데, 희주가 마음을 굳히면 아빠한테도 소개해줄 수 있을까? 희주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엄청 멋진 사람이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빠가 희주한테 일등 남자였으면 좋겠다. 그건 이제는 무리인가? 하하. 아빠는 희주가 좋다는 사람이면 다 좋아. 진심이야. 중간고사가 곧 시작할 텐데, 아빠가 회사 핑계로 옆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우리 딸. 그리고 사랑한다, 우리 딸.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딸]

 

 문자를 읽은 희주의 두 눈이, 마치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각오라도 다지는 듯 '빡!'하고 힘이 들어갔지만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빨갛게 붉어졌다.

 

 “봤지? 내가 아빠한테 이거 받고 너 칭찬만 하는 거 짜증 나서, 너한테 안 보여주려다가 진짜, 오늘 시험 잘 봤다고 하니까 보여주는 거다~.”

 

 “...근데, 이거 왜 아빠가 나한테 다시 안 보냈지?”

 “그날 술 많이 드셨잖아”

 “...”

 “..야, 뭐 그럼 술도 안 취하셨는데, 대놓고 ‘아들 열 받아 봐라, 난 딸이 최고다’ 하시면서 나한테 네 칭찬 문자를 보내셨겠냐?”

 “난 또 그런 줄 알았지.” 희주 표정이 좀 더 밝아졌다.

 “지랄.”

 

 날씨도 좋겠다, 집까지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나와 희주는, 교문을 빠져나와, 자연스레 조금 더 멀리 돌아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고가를 지나 좀 더 걷자, 오른쪽 비포장도로길 너머로, 며칠 전 공립학교 애들과 (아랑이가) 싸웠던 장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침묵 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저께는 내가 진짜 미안.”

 “됐어.”

 “...”

 “그 사람한테 물리, 수학, 범위까지 중요한 건 이미 다 배웠어. 언제 찰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됐지 뭐.”

 “...”

 “그날도 자꾸 모텔가자고 그래서 내가 커피숍에서 뛰쳐나와서 독서실 가려던 게 널 본 거야.”

 “..아… 그래서 잤어?”

 “자긴 뭘 자! 내가 미쳤냐! 그렇게 다리털 많은 늙다리랑?” 희주가 화를 내듯 소리쳤다.

 “...근데 그날 콘돔은 그럼 왜….”

 “..그건, 그냥…. 야, 이씨 넌 뭐 그런 거까지…!”

 

 그렇게 희주가 소리치는데, 갑자기 뒤에서 차가 한 대 우리 쪽 옆으로 섰다. 그저께 본 그 흰색 일제 스포츠카, 토요타 86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그 남자였다.

 

 도로 옆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리더니 희주 팔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희주야. 얘기 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문자 했잖아요.”

 “아니, 끝낼 때 끝내더라도 성숙한 성인이면,이렇게 문자로,” 그의 말을 끊고 희주가 답했다.

 “전 성인이 아니잖아요.”

 

 황당하다는 듯, 그 남자가 잠시 팔짱을 낀 채 하늘을 쳐다보더니 핸드폰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건 뭔데? 니가 불과 일주일 전에 보낸 문자. 읽어줘?

 [오빠, 나도 이제 곧 성인이고, 누굴 만날 것인지는 제가 정해요. 난 오빠가 좋아요.]

 어?! 이건 뭔데?! 또 읽어줘?

 [졸업하면, 같이 인사드려요. 우리 아빠도 오빠 좋아하실 거야. 난 준비 됐어, 이제.]

 그리고, 또 읽어줘? 겨우 일주일 전이야!”

 

 “지난주 초니까, 거의 2주 전이죠!”

 겨우 그 정도 대꾸만 할 수 있었던 듯, 희주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내가 있어서 더 부끄러웠을 것이었다.

 

 “가서 얘기 좀 하자, 나 너 사랑해.” 그 사람이 희주 손을 낚아채며 말했다.

 

 “사랑? 그래서 우리 학교 영양 선생님하고 잤어요? 나하고 만나면서?”

 

 “...그, 그건 아니야…. 누가 그런…, 소리를….” 그가 부정하며 나를 쳐다봤다.

 

 “제가 들었….” 내가 다시 사실을 정확히 짚으려고 하자 희주가 손을 내밀어 나를 막았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을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독서실에서 공부 가르쳐주다가 전화 받고 나가서 한 시간 만에 샤워까지 하고 오면, 뻔한 거 아냐? 그러면서, 다시 자리에 돌아와서는 날이 더워졌다고 호들갑 떨면서, 반바지 차림에 다리털 잔뜩 있는 혐오스러운 다리를 내 다리에 붙이고 앉아서…. 봄날 밤이 아직 10도 이한데, 반바지가 웬 말이니?!”

 

 “...!”

 

 “그래! 문자 내가 보냈어, 그렇게! 그래도, 설마설마하며, 너 좋다고 보냈다고. 근데, 시험 전날도 영양쌤하고 만났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이건 진짜 아니다 싶더라고. 그래서 버렸어! 쓰레기통에. 그 더러운 생각. 그게 다야.”

 

 말을 저렇게 차갑게 해도, 희주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온갖 힘을 쥐어짜고 있었다. 여기서 떨구는 눈물 한 방울이 그가 다가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거기 서 있던 우리 셋 모두.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결국, 10대 소녀가 감당하기엔 어려운 복합적인 감성이 응축된 눈물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어허…. 억…” 동시에 그녀의 참아온 응어리가 괴이한 한숨 소리와 함께 토해져 나왔다. 마치, 절대 울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때를 놓치기 않겠다는 듯, 그가 한 발짝 다가오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27화. 중간고사도 끝나고, 첫사랑도 끝나고..

 

 빵!!!!!~~~~~~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비포장도로로 갓길. 이 남자의 스포츠카가 도로를 막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뒤에서 자동차 경적이 크게 울렸다.

 

 모두 고개를 돌려 그 자동차를 보았다. 바로 어제 아침, 내가 ‘미친X’이라고 소리친, 영양사 선생님이었다.

 

 '젠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눈에는 내가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자동차 문을 허겁지겁 열더니, 희주와 그 남자 사이에 들어가서는 남자를 밀치며, 소리쳤다.

 

 “고등학생 여자애 데리고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너야말로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설마 날 미행한 거야? 학교에서부터?” 남자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뭔진 몰라도, 두 사람의 관계는 복잡해 보였다.

 

 “너.야.말.로, 도대체 저 어린애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녀가 희주를 손으로 가리키며 남자를 향해 물었다.

 

 “...꺼져.” 남자가 허공에 휘저으며 말했다.

 “뭐? 야, 다시 말해봐. 뭐라고?”

 “...꺼지라고 쫌! 우리 헤어진 거 몰라? 뭘 얼마만큼 더 해줘야 날 좀 놔줄래? 어!?”

 

 “...누가 헤어져? 너는 헤어진 여자한테, 위로해 달라고 밤마다 찾아가고 그러니?”

 “조용히 해” 그가 이를 물고 읊조렸다.

 “쟤는 아니? 니가 몇 달째 어린 몸뚱이 그거 좀 안아보겠다고 스토킹하고 다니는 거?”

 “조용히 하랬다!” 그가 그녀의 턱을, 아니 입을 손으로 막듯, 움켜쥐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손에 바둥바둥 매달리며 무섭지 않다는 듯이 쏘아봤다.

 

 “저 남자애! 저 남자애 이름이 희준이야, 알어? 저 여자애 오빠고.” 그녀가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막은 손가락 사이로, 말했다, “네가 저 여자애 어떻게 해본다고 그 집 근처에서 숨어있다가 걸릴뻔했을 때, 그때 그걸 본 애가 쟤야. 네가 오줌 묻어서 냄새나는 신발 우리 집에 들러서 갈아신고 간 그날. 나한테 안겨서 질질 짜고 울던 그 날!”

 

 “야이, 미친X아!”

 

 짝!

 

 남자가 영양쌤 말을 막으려고 그녀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땅에 철퍼덕 널브러져서도 광기를 잃지 않고, 그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뭐? 미친X?!”

 

 “그래 이 미친X아. 네 집착 때문에 몇 번이나 헤어져도 들러붙고. 이제는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하니까, 그걸 말리려고, 저 남자애한테까지 찝쩍대고. 네가 그러고도 선생이야? 학생한테 성추행하고 그러는 게 선생이야? 너야말로 진짜 미친X이야 알어?”

 

 거기까지 말하고, 그는 희주를 바라보며, 무슨 연극이라도 하듯이, 갑자기 애잔한 목소리로, “오빠는 너 진짜 진짜 사랑했었다?” 이 지랄을 하고 있었다.

 

 상황을 정리해 보자면, 대충 저놈이 희주 공부를 도와주는 척하며 섹슈얼하게 어떻게 해보고 싶어서 집 근처에서 스토킹까지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나를 보고 도망친 거고, 양양쌤은 저놈하고 헤어지고도 몸사랑은 지속하는 복잡한 관계 속에 나를 이용해서 희주를 떼어내려고 했었다가 나한테 ‘쇼타충’ 같은 얘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지금 저놈은 희주를 보며 ‘진짜, 진짜 사랑했었다?’ 이러고 있고, 영양쌤은 버림받은 여자처럼 울고 있었다.

 

 “야이, 개또…!” 내가 쌍욕을 하려고 나서는데 희주가 나를 막아섰다. 그리고 차분히 말했다.

 

 “나는 네가 인사드리고 싶다고 했던 우리 아빠한테 전화를 걸 거고 여기 우리 오빠는 여고생 스토킹하고 선생이 남학생 성추행한 거로 경찰을 부를 거야. 누가 먼저 올지 모르지만 우리 아빠가 먼저 도착하면, 넌 어쩌면 경찰은 만나보지도 못할지도 몰라.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경찰이 먼저 오길 바라던가, 아니면 빨리 꺼져! 이 더러운 스토커 새끼야. 그리고 변태 선생 당신도.” 희주가 남자를 먼저 보고 이어서 영양쌤을 보며 말했다.

 

 나는 자연스레 핸드폰을 들고는 경찰에 전화했다.

 

 "네. 네. 여기 오거리 인근 고가도로 아래 비포장도로 가길 쪽이요. 네."

 

 그 소리까지 듣고서야 비록 꾸무럭거리기는 했지만 '스토커 남자'와 '변태 선생'은 각자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희주가 나보고 다시 전화해서, 경찰보고 오지 말라고 얘기하라고 했다. 잘못 신고한 거로 얘기하라고.

 

 “왜?”라고 물었지만 희주 얼굴에 슬픔이 가득한 거로 봐서, 희주는 어쩌면 저 남자를 정말 좋아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날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희주를 보고, 아빠는 걱정하셨지만 아무런 말씀을 안 하셨다.

 

 묵묵히 부추를 다듬으시고는 부침개를 부치셨다. 마치 희주가 먼저 나오나, 온 집안이 부침개로 가득 차나 시합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참을 부치시더니, 밖이 캄캄해지자, 나보고 거실에서 재밌는 영화나 한 편 보자고 하셨다.

 

 “뭐 볼까?” 내가 물었다.

 “아빠가 보고 싶은 거 봐도 돼?”

 “홍콩영화 빼고”

 “헉!” 아빠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맨날 그렇게 오래된 영화만 볼 거야? 또 뭐 ‘월광보합’이나 ‘동성서취’ 이런 거지?”

 “아냐 아냐, 이번엔 로맨스야.” 아빠가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뭔데?”

 

 “백발마녀전”

 “그건 또 뭐야?” 내가 시큰둥하게 답하며, 리모컨으로 TV 프로그램에서 영화를 찾았다.

 

 무려, [1993년 작].

 

 “헉! 아바마마 농담이시지요? 소자 오늘 시험을 끝냈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아빠가 배꼽을 잡으시며 웃으시는데, 희주가 어느새 방에서 나와 소리쳤다.

 “아빠 나 배고파.”

 

 “오~ 우리 공주님! 일어나셨습니까! 저녁도 안 먹고 말이야. 중간고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들어오자마자 뻗어서 이제 일어났을까요~.” 아빠는 희주가 밥 달라는 소리가 뭐가 그리 기쁜지 덩실덩실 춤추며 일어서서 부침개를 다시 데웠다.

 

 “그냥 먹을게. 간장만 줘” 희주가 식탁 앞에 앉아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요, 우리 공주님~ 부침개가 열 장도 넘습니다요~.” 그 말에 희주가 피식 웃었다.

 

 “아빠, 나 그냥 최신영화 중에 하나 틀게요~.”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희주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손에 든 리모컨을 낚아채며, 말했다. “넌 시험공부도 제대로 안 했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최신영화를 보냐? 아빠는 맨날 야근하는데.”

 

 그러면서 플레이 버튼을 눌러서 아빠가 원하셨던 ‘백발마녀전’을 틀었다.

 

 아빠가 웃으시며 나를 쳐다보고는, “아참. 아빠는 원래 못갈지도 모른다고는 했었는데 너희 시험도 잘 끝나서 말야, 내일 오후에 출발해서, 1박 2일 산행을 아마 회사 임원들하고 가게 될 거 같아. 올해 승진도 해야 하고, 그래야 너희들 고3까지 무사히, 또….” 아빠가 맺을 말을 차고 계실 때, 내가 물었다.

 

 “아빠 이번에 승진하면 상무 아니에요? 임원?”

 “..으, 응. 그치, 임원. 근데 뭐 별로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아. 아직 50도 안 됐는데 뭐”

 “오오. 등산 가세요. 술 많이 드시지는 마시고요.”

 “허허. 그래 알았다.”

 

 밤이 깊어가며 영화 중간에 아빠만 신이 나서 흥얼거리던 주제가가 나올 때까지 희주는 부침개를 계속 먹었다.

 

 ---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이었었다. 따스한 햇볕이 내 방 창문을 두드렸고, 며칠간 복잡했던 많은 일이 모두 해결된 듯, 마음이 편안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푹 늦잠을 주무셨고, 희주는 어젯밤 늦게까지 부침개를 먹어서 그런 것인지 아직도 자고 있었다.

 

 ‘오후에는 아랑이랑 피방이나 갈까, 어제 같이 놀지도 못했는데. 음….’

 

 거실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 나를 깨우며, 아빠가 나와서 물었다.

 

 “오늘 요리하기도 귀찮은데, 아점으로 중국집 시켜 먹을까?”

 

 ‘그래, 중국집.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지.’

 

 “정희준 씨. 잠 안 깼어? 중국집 싫어?” 아빠가 딴생각에 잠긴 나를 부르며 물었다.

 

 “좋긴 한데… 저 희주랑 따로 좀 다녀올 때가 있어요.”

 

 “둘이? 밥도 안 먹고? 흠~. 그래 뭐, 시험도 끝났겠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와. 그럼 아빠는 시켜 먹을게. 뭘 먹을까나~”

 

 “그 집은 무조건 고추 잡채밥이 맛있어요. 제가 보장해요.” 내가 단호히 말했다.

 

 “....?” 나의 말투가 이상하다는 듯이 아빠는 나를 쳐다보시고는, 이내 그러려니 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

 

 아빠가 씻으시는 동안 희주 방에 가서 희주를 깨웠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이불을 전부 빼앗으며.

 

 “아, 내가 왜 가야 하는데?”

 “내가 우리 집 앞에 똥 싼 놈을 잡았다니까.”

 “그럼 경찰서에 가~~”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경찰서에 가. 생각을 좀 해라.” 베게 속에 얼굴을 묻은 희주 귀에 대고 소리쳤다.

 

 “증거가 없는데, 그 아저씨네 집을 왜 가!”

 “그 아저씨가 범인이니까.”

 

 “...너 미친 거 아냐? 우리 집 앞에 똥 싼 놈이랑, 너한테 오줌싼 놈이랑 같은 놈이라며?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 때문에 같은 놈이라며?”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옥상 빌라 아저씨는, 그놈이 오줌쌀 때 그걸 목격한 사람이라며?”

 “그렇지.” 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 말은 그 아저씨가 네 앞에서 오줌을 싸고, 미친 듯이 빨리 건너편 빌라 옥상까지 네 동태눈을 피해 올라가서, 그 위에서 너를 다시 바라보며, 뒤에 변태 새끼가 있다고 알려준 거라고?”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희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야, 너가 어제 그 영양사 선생님하고 나한테 말할 수 없는 섹슈얼한 뭔가 있어서 지금 제정신이 아닌가 본데...”

 

 “그 아저씨가 오정훈이 아빠야.”

 

 “..? 미안한데 난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한 번에 천천히 설명해봐 아니면 그냥 좀 나가라. 나 좀 더 자게. 시험도 끝났는데.”

 “육상부 오정훈. 우리 초등학교 때, 소각장에서, 네가 고추 먹은 날. 기억 안 나?”

 

 그렇게 말하며, 내가 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3주 전 집 앞에서 똥을 싼 놈 발목에서 나던 소리, 그 뒤 내가 빌라 틈에 숨어있던 날 그놈이 오줌쌀 때 또 들린 소리, 그리고 커피숍 아저씨네 주차장 카메라에 찍힌 모습, 그 후 똥 싸고 도망치던 현장을 나에게 직접 걸려서 고속도로까지 이어진 추격전, 그놈이 떨어뜨린 발찌, 그 후에 중국집에 맡기게 된 발찌가 다시 그놈 발에 채워져서, 공립 애들하고 싸우던 날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전부 다 말이다. 그리고 아빠 회사의 어익후 전무라는 사람이 중국집 사장님을 가리켜 ‘오 사장’이라고 말하는 것을 내가 똑똑히 들었다는 것도 물론.

 

 “아하~! 그럼 진짜... 오정훈이 똥을 싼거고. 그 양복 입고 고추 말리던 아저씨가 걔 아빠네!” 희주가 다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알겠어?”

 “아니. 증거라고 들이밀게 없는 거까진 알겠는데, 여전히 말이야, 거길 내가 왜 가냐?”

 

 “야, 하아 참. 이게 내 집이야? 너 여기 안 살아? 여기다 똥을 싸고 갔는데 지금.”

 “그거 치웠잖아. 그리고 오줌은 우리 집에 싼 건 아니고, 너한테 쌌지.”

 “야이씨…. 걔가 그렇게 똥을 싸 재끼는 게 6학년 때 너 그렇게 막 변하는 거 보고, 관장이 조절이 안 돼서 그러는 건지 어떻게 알어? 엉? 만약에 그런 거면, 큰일 아냐! 니가 같이 가야지~!”

 

 “그건 진짜 개똥 같은 논리다. 쯧, 하지만 알았다. 가주마. 잔뜩 쫄은 오빠를 위해서 내가 그 정도는 해주마, 진짜.” 희주가 더는 잠을 이어갈 수 없다는 듯이 일어나서는 옷 가져오라는 듯 손짓했다.

 

 “오케이. 알았어. 야, 어서 나와. 밖에 있을게.”

 

 “...근데 막상 나도 따라가려니 좀 쫄리네. 고추라도 냉장고에서 따로 챙겨갈까?”

 

 “...아빠가 다시는 먹지 말라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고추 같은 거 쓸 일도 없겠지만. 내가 알아서 잘 설명하면 돼.”

 

 “그래, 나도 사실 먹기 싫어. 어서 나가자.”

 

 그렇게 희주랑 나와서 옥상에 고추를 말리던 그 빌라 위로 올라갔다. 3층 철문에서 벨을 누르자, 마치 누군지 안다는 듯이 안에서 낡은 전자버튼 소음과 함께 문을 열었다.

 

 옥상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며, 코끝을 찌르는 고추 냄새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탁 트인 전경. 아저씨는 양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으신 채로, 옥상 난간에 서 계셨고, 옥상 전체에는 크고 실한 홍고추가 뜨거운 햇살 아래 잘 마르고 있었다.

 

 

 

 

 

 28화. 빌라 옥상: 정훈의 사정

 

 “아들이 운동에 참 소질이 많았어.” 그가 등을 돌린 채로 입을 열었다.

 

 “어릴 적엔 같이 자주 있어 주지 못했지. 직업 군인으로 아프간에 다녀오고 그 후유증 때문에, 어릴 적엔 옆에 있지 못했고 그 후엔 사업을 한답시고 또 혼자 두었지.”

 

 “그런 것 치고는 공부도 아주 잘했지.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반장도 했었으니. 운동부였으면서도 말이야.”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옥상계단 입구에 서 있는 나와 희주를 쳐다봤다.

 

 “근데, 그맘때쯤부터였어. 어느 날인가 동공이 풀린 채로 집에 와서는 밤에 자다가 배변을 하는 거야. 그리고는, 종종 이곳저곳에서 배뇨하기 시작했지. 첨엔 그냥 사내애들 아무 데나 노상 방뇨하며 노는 장난인 줄 알았지.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어. 근데, 조금 다르더라고.”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한번은, 저 빌라길 안쪽 끝쪽에 있는 공터에서 말이야. 아파트인지 뭔지 들어선다고 땅 파놓고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는 탁 트인 공터.”

 

 “거기서, 똥을 싸더라고.” 그가 잠시 멈춰서는, 몸을 숙여 옥상 바닥에 말리던 홍고추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상하지 않아? 탁 트인 공간에서, 똥을 싼다는 게? 사람이, 무슨 개새끼도 아니고 말이야.”

 

 쪼물딱. 쪼물딱.

 

 “그리고 병원에 데려가서 알게 되었지. 뭔, 정신병 같은 거라고 하더군. PTSD에 기인한 Encopresis, 라고 하더군. 트라우마성 유분증.”

 

 나와 희주는 고추를 조물딱 거리며 다가오는 그를 보며 숨을 멈췄다.

 

 “아무 데나 막 싸는 거야, 이게. 다시 말해서, 뭔가 조절이 안 되는 거지. 충동적으로 막 싸고 싶은 건 거야. 그래도 중학교 들어가면서 많이, 아주 많이 좋아져서 점점 극복하는 줄 알았어. 뭐 나쁜 친구들도 있었지만,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이제 그가 우리 눈앞까지 왔다.

 

 “근데 어젯밤에, 아들이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은 것인지 얼굴이 잔뜩 부어서 집에 와서는, 밤에 또 똥오줌을 막 싸는 거야. 마치 초등학교 6학년 그때처럼 말이야.”

 

 거기까지 말하고는 그는 고추를 들고 있던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두꺼운 손 사이로 홍고추만큼이나 빨갛게 붉어진 그의 눈시울이 보였다.

 

 “난 학생들이 오늘 여기 왜 왔는지는 몰라. 하지만, 며칠 전에 우리 정훈이가 찬 발찌를 중국집으로 들고 온 것 하며, 또…, 그래 지난번에 맞은편 건물에서 학생이 건물 틈에 있을 때, 정훈이가 그 옆에서 배뇨한 것만 봐도 어제 우리 정훈이가 그렇게 된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이 아저씨한테 들려줄 수 있을까?”

 

 깊게 팬 그의 두 눈이 애처롭게 보였다. 장애가 있는 아들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애초부터 우리를 질타할 생각이 없는듯해 보였다.

 

 그보다는 당신의 아들이 도대체 왜 저렇게 힘들어하는지, 그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아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거면 족하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얘기부터. 다만, 희주가 고추를 먹어서 이질적으로 변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믿으실 리도 없지만, 그렇게 얘기했다가, 고추를 정성스레 말리는 스스로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오해까지 하실까 봐, 다른 말로 둘러댔다.

 

 신라초 소각장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많았고, 아무도 안 믿었지만, 그날 정훈이가 크게 놀라 하던데 혹시 그런 거였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우리 집 앞을 포함해서 동네 ‘빌라길’에서 대소변 사건이 있었고, 다시 만나게 된 건, 우연히도, 학교에서 공립 쪽 학생들과 사립 쪽 학생 간 싸움이 있었을 때, 정훈이가 나타났고, 내가 알아봤다고. 어쩌면 나를 보고, 또 귀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아저씨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지만, 당신 아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며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일전에 소변을 본 사람이 누군지 봤냐고 물었을 때 알려주지 않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도 말했다.

 

 “발찌를 보고 내가 정훈이와 무슨 관계인지 궁금했을 텐데 미리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그렇지만 학생들이 괜찮다면, 일을 더 크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래 줄 수 있을까? 정훈이는 내가 잘 얘기하겠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이 빛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솔직하게 다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 나도, 희주도 미안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애틋하게 미소 짓는 아저씨를 뒤로 한 채 계단 아래로 몸을 돌렸다. 발을 내딛는데, 희주가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대신, 저희 수정궁 가면 맛있는 거 많이 주세요!”

 “...” 그가 웃었다.

 

 “아, 고추는 말고요. 얘가 고추를 먹으면 안 돼서…, 헉!”

 

 희주가 팔꿈치로 내 배를 찔러서 말문이 턱 막혔다. 다행히 아저씨는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

 

 빌라 건물을 나오는데, 햇살이 나와 희주 눈에 내리쬐었다.

 “아빠 벌써 등산 출발하셨을까? 내가 물었다.

 “아니, 이따 오후 4시에 가신다는 거 같던데?” 희주가 커피숍 쪽으로 몸을 돌리며 답했다.

 

 “근데 넌 어디가?”

 “커피 사서 아빠 가져다드리려고.”

 “오 기특한걸? 같이 가자. 근데 저녁에 그러면 집에 아빠도 없는데 애들 불러서 같이 놀까? 어제 시험 끝났는데 같이 뭐 하고 놀지도 못했는데.” 내가 물었다.

 

 “...그래. 그럼 현주랑 다른 여자애들도 부를게. 네가 아랑이, 뭐 재곤이 그리고 영진이 부르던가.”

 “아냐 아랑이만 부를게. 너도 현주만 불러”

 “왜? 걔 둘이 뭐 있어?” 희주가 커피숍 문을 열며 불었다.

 “없어 없어” 내가 씨익 웃으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오~ 희준이 희주~ 오래간만이야~” 커피숍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해주셨다.

 “안녕하세요.”

 “아빠 커피?”

 “네.”

 “오케이! 특별히 맛있게 주문받았습니다.” 이유 모를 에너지를 뿜으며 아저씨가 드립 커피를 준비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아, 희주는 연애사업은 잘되어가?” 여전히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은 아저씨였다.

 “아….”

 

 “나도 다 알아~ 그 키 크고 시인같이 생긴 멋진 대학생 같던데, 맞지?”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셨다.

 

 “아뇨, 헤어졌어요. 아니 사실 만난 것도 아니에요. 그냥 공부 가르쳐 주던 아저씨예요.” 희주가 답했다.

 

 “아 그래?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럼? 손잡고 가길래….” 아저씨가 더 말을 하기 전에 내가 말을 잘랐다.

 

 “잘못 보신 거예요. 어디 우리 희주가 그런 기생오라비 같은 노땅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아, 노땅. 흑.” 아저씨가 쓸데없는 제스쳐를 취하고는, 드립 커피용 케멕스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립이 한방울 한방울 채워지는 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다음에 누구든 좋은 사람 만나면, 꼭 데려와. 희준이도 희주도. 아저씨가 커피 맛있게 내려줄 테니까.” 그러면서 커피가 다 내려지자 이를 종이컵에 따라 담기 시작했다.

 

 “네” 우리가 웃으며 답하고는 커피잔을 받자, “공짜”라고 아저씨가 웃으며 답했다. 아마 아빠가 회사 분들이랑 자주 오셔서, 뭔가 따로 정산을 하시는 것 같았지만, 우리 일이 아니라서, 감사하다고 인사만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

 

 오후 4시가 되자, 아빠는 어제 얘기하신 대로 회사 임원분들과 1박 2일 산행을 가기 위해 채비를 마치시고, 집을 나서셨다. 저녁에 친구들과 집에서 같이 놀겠다고 얘기를 드리니, 우리만 두고 가는 게 미안하셨었는지 오히려 좋아하셨다.

 

 “그래도 조심하고. 특히 불. 알지? 문 꼭 잠그고.”

 “아랑이가 있는데, 뭐 도둑 따위야 큭큭.” 내가 너스레를 떨자, 아빠가 더 진중하게 말씀하셨다.

 

 “그럴수록 조심해야지.”

 “네. 헤헤.”

 

 끼익~ 탁. 문이 열리고 아빠가 나가시고 문이 닫혔다. 조금 있자 밖에서 차가 도착해서 아빠가 차를 타고 가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가셨나 보다. 현주는 언제 온대?” 내가 물었다.

 “한…, 8시? 8시 반?” 희주가 소파에 드러누우며 답했다.

 

 “8시? 뭐 이렇게 늦게 오냐. 나는 아랑이 보고 그냥 오라고 했는데.”

 “지금 와서 뭐하게?”

 

 “음, 그런가? 에이. 그럼 나는 아랑이랑 피시방에서 좀 놀다 올게, 이따 집에서 다 봅시다.”

 

 “응~.” 희주가 피곤한 듯 눈을 감으며, 손을 휘이휘이 저었다.

 

 ---

 

 오거리에 서서, 아랑을 기다렸다.

 

 5월의 세 번째 날. 후줄근한 동네 분위기 속에도, 그 나름의 운치 같은 게 있었다.

 

 큰 대자로 보이는 오거리, 그 한 코너에는 가장 오래된 3층 건물을 통으로 쓰는 안경원이 터줏대감처럼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핸드폰 가게와 떡볶이 가게, 곱창집 그리고 편의점이 시계방향으로 각각의 코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일어난 많은 일이 마치 만화책에서 본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야 뭐하냐” 아랑이 생각에 잠긴 내 등을 툭 치며 나타났다.

 “중간고사도 다 끝났고, 똥 싼 놈도 잡고, 희주 일 그리고 내 일까지 다 잘 끝난 것 같아서….”

 “그래서 네 인생은 언제 끝나냐?”

 “...너보단 오래 살 거다.” 내가 아랑의 엉덩이를 툭 걷어차며 그렇게 말하고는 피시방 쪽으로 달렸다.

 

 오래간만에 걱정 없이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다 보니 이미 8시를 넘겼지만, 어차피 현주가 집에 8시쯤에는 도착한다고 했기에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고 있었다.

 

 9시가 다 되어서야 더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피시방을 나오는데, 인근 파출소에서 경찰들의 어수선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무슨 일 있나?”

 “가보자~. 그 눈썹에 흉터 있는 경찰형도 있으면, 너희 집 똥 싼 놈도 다 잘 잡았다고 자랑도 하고 흐흐.” 나의 질문에 아랑이 답했다.

 

 파출소 안은 소란스러웠다.

 삐리, 삐릭.

 

 “네, 지금 출동합니다. 네 경위님. 오거리에서 합류하겠습니다.” 눈썹에 흉터 있는 김원효 순경이 다급히 무선연락을 받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무슨 일이지…?’

 

 토요일 밤이라, 원래대로라면 그리 많은 경찰관이 있지 않고, 그마저도 대부분 순찰을 나갔을 터였는데, 오늘은 김순경을 포함하여 동네에서 얼굴 낯이 익지 않은 경찰관들이 꽤 많이 파출소를 왔다 갔다 했다. 우리가 경찰서 상황의 진중함을 모르고 문 앞을 막고 서 있자, 눈썹 흉터 김원효 순경이 매섭게 소리쳤다.

 

 “너희들 중요한 거 아니면, 지금 바쁘니까, 문에서 좀 비켜 서 있어라.”

 “빨리 가 김순경!” 뒤에서 예전에 뵌 적이 있는 경위님이 소리쳤다.

 “넵!”

 

 우리는 재빨리 문에서 비켜서면서, “죄송합니다” 인사를 했다. 하지만 김순경은 인사 따위를 받을 정신이 없는듯했다.

 

 그제야 뒤에서 또 다른 김순경, 혹은 ‘띨순경’이, 우리 옆으로 살짝 다가와서 말했다.

 

 “니네 또 뭣 때문에 왔어? 지난번에 그 똥 싼 거 어떻게 됐나 또 물어보려고?”

 

 “아뇨, 그거 범인 누군지 알아서…. 잘 해결되었다고 말씀드리려고…. 근데…”

 

 내가 답을 하고, 이어서 아랑이 물었다. “근데,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지금?”

 

 띨순경이 더 가까이 바짝 다가와 마치 지나가는 바람처럼 두 번 얘기하지 않겠다는 듯이, 재빨리 속삭였다.

 

 “지난번에 시너 테러범 못 잡고 놓쳤는데, 지금 다시 오거리 쪽 출몰했다는 제보. 난리다.”

 

 “헉. 그 만화방 건물 공용 화장실에서 어떤 사람 눈에다가 시너 뿌렸다는 그놈이요!?”

 

 “야, 김두원 순경!” 뒤에서 아까 소리친 경위님이 날카롭게 목소리를 올렸다.

 

 “네, 넵…! 야 나도 가봐야겠다. 어여가.”

 

 쉬. 쉬. 그가 손을 재빨리 저으며, 목소리 낮추고 어서 가라는 듯이 제스처를 취했다.

 

 “아네, 그럼 저흰 가볼게요. 힘내세요.” 우리가 동시에 쥐죽은 듯이 조용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고 파출소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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