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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심장 밀렵꾼 : 비존재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20.8.20

타인의 심장을 갈취하여 생계를 이어나가는 심장 밀렵꾼 준명. 그리고 그런 그의 심장을 원하는 한 여신. 그 애증 섞인 관계는 이윽고 서울을 한바탕 뒤흔들게 되는데....
아노미의 끝자락, 혹은 타락한 도시의 말로. '심장 밀렵꾼 : 비존재'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비존재_ 09
작성일 : 20-08-31 20:40     조회 : 258     추천 : 0     분량 : 10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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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유려한 골조를 조명을 통해 부각시키는, 높다란 빌딩들의 협곡. 그곳에서는 흡사 마라톤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백 개의 카메라들이 촬영 사실을 숨길 생각 없이 찰칵거리고, 또 수백 개의 열린 창문으로부터 대로를 향한 시선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실제로 비가 내리고 있기도 했다. 어느새 준명은 무리의 전열에 섞이어 달리고 있었다.

 “예린아!”

 아까부터 달리는 마린의 등에 대고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돌아보기는 커녕 움찔거리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내달릴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되돌아본다고 해도 준명에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충동적으로 발을 굴리는 주변의 이들과 준명은 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아.’

 이를 악 문 준명의 시야에 마침 물웅덩이를 가르며 다가오는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왔다. 다른 이들에게 잠시 추월당하는 것도 고사하고 준명은 경로에서 이탈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급히 경로를 틀며 넘어지는 운전자를 몸을 던져 받아낸 다음, 그대로 바닥에 내려두고 내버려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웠다.

 “뭐, 뭐야 저 자식?!”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지만, 준명은 개의치 않고 엑셀을 밟았다. 돌아서 추월할 요량으로 옆 블럭의 대로를 질주했다. 맞바람에 날아가버릴 듯한 몸을 손잡이를 붙잡은 악력으로 버티며 나아갔다. 이윽고 코너를 돌자, 사이드미러에 비친 한색과 난색의 불빛들이 섞이어 곡선으로 휘어졌다.

 ‘저기 있다....!’

 마린을 발견한 준명은 그 옆으로 따라붙어 그녀와 동일한 속도로 달렸다. 그 뒤의 일행과는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예린아, 서예린!!”

 준명은 전방과 그녀의 옆얼굴을 번갈아 확인하며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고 이를 악 문 채 달릴 뿐이었다. 준명을 외면한다기보다, 애초에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정면을 주시한 그녀의 어깨가 뜀박질에 들썩였다.

 “나 준명이야, 못 알아 보겠어!?”

 그렇게 묻고 몇 초 후.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녀가 준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린.....어?”

 “윽?!”

 그러더니 놀란 그녀는 돌연 방향을 틀어 옆에 있던 상가 건물의 입구로 들어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것인지, 넋을 놓은 채 주행하던 준명은 전봇대에 오토바이의 뒷바퀴가 걸려 그대로 땅을 굴렀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에 어쩌면 골절상을 입었을 지도 모르지만, 준명에게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빌딩 입구로 물밀듯 들어가는 인파를 뒤따라 건물 내의 계단으로 들어섰다.

 계단은 매우 협소해서 같은 단을 두 명이서 공유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준명이 옆의 사람과 어깨 싸움을 벌이던, 바로 그 때였다.

 “이 이상 올라오지 마!”

 이 건물에 엘레베이터는 없다는 것을 안 선두의 남성이 칼을 꺼내 들고 뒤로 돌아 외쳤다. 그 사이에 최상층인 6층에 도달한 그녀는 옆의 점포로 꺾어 들어갔다.

 “난 밀렵꾼이야. 칼을 많이 다뤄봤다고. 무슨 말인지 알지?”

 광란에 빠져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의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딱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만큼만 뒤로 계단을 오르며, 그 남자는 칼날을 아래쪽으로 들이밀었다. 하지만 정체되어 있던 것도 잠시 뿐. 한 여성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 남자를 밀어 넘어뜨린 것을 시작으로 완전한 아수라장이 시작되었다. 평소에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던 이들은 그것을 꺼내 들어 주변을 위협하고, 맨몸인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투쟁하며 건물을 올랐다. 건물의 숨통을 조이듯이 꾸역꾸역 인파가 차올랐다.

 “젠장...!”

 ‘어째서 돌아보지 않는 거야, 서예린!’

 준명은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벽을 짚으며 상층으로 향했다. 몇 명의 심장이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비명을 횡사하며 최후를 맞이해도 준명은 개의치 않고 묵묵히 그곳을 오를 뿐이었다. 서로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들을 비집고 6층 점포의 입구에 다다라서, 문턱을 부여잡은 그 순간.

 준명은 자신의 어깨 근육을 날붙이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격통이 찾아온 것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끄으으윽...!!!”

 준명은 자신의 어깨에서 뽑아낸 날붙이를 다시 내리 찍으려던 남자의 손목을 필사적으로 잡고 버티었다. 그러자 남자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시간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번에는 준명이 그의 소매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거 놔 이 자식아!!”

 하지만 남자가 칼을 재차 휘두르는 탓에 준명은 그 손목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준명은 서둘러 몸을 일으켜 그를 뒤쫒으려 했지만, 어느새 그의 발목 또한 뒷사람들에게 꽉 붙잡혀 있었다. 그 탓에 준명은 나아가지 못하고 계단에 그대로 엎어졌다.

 ‘젠장. 젠장젠장젠장젠장!!’

 수축한 성대를 기어이 비집고 나오는 숨소리와, 힘을 쥐어짜내느라 내뱉는 최소한의 신음. 그것들이 사방에서 난무하는 것을 들으며 준명은 사정없이 짓밟혔다. 그저 뒤의 사람들에게 한 쪽 발목을 단단히 붙들린 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최후의 방어선으로 여겨지는 점포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속절없이 점포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몇 번이고 떼어내려 했지만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누군가의 손. 그 두 개의 상황을 한 번 씩 쳐다본 준명은-

 “크윽...!!”

 -허리춤에 묶어 두었던 다마스커스를, 창졸간에 뽑아 들었다. 칼자루가 허공에서 주춤거리며 망설임이 가득 묻어나는 궤적을 그렸다.

 ‘어쩔 수 없잖아.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으니까....!’

 이 모든 건, 마린을 위해서.

 -촤악!! 준명은 자신의 발목에 붙은 손들을 향해 그 영롱한 단도를 휘둘렀다.

 뒤섞인 인파 속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준명의 발목이 풀려났다. 준명은 귓속을 파고드는 그것을 억지로 잘라내듯이 등을 돌려 계단을 기어올랐다.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난 잘못한 게 없어. 발뿐만 아니라 손조차 헛디딜 정도의 동요를 드러내며 계단을 오른 준명은, 점포의 입구를 돌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주인 없는 점포에 들어서자마자, 준명은 우뚝 발을 멈추었다. 희미하게 벌어진 그의 입술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서예린....너 지금, 뭐하는...?”

 커다랗게 뚫린 창문을 등지고, 그녀는 손에 칼을 든 채 한 여성의 목을 팔로 압박하고 있었다. 마치 인질극이라도 벌이듯 그녀와 앞의 사람들을 향해 칼끝을 겨누며 위협했다.

 “가, 가, 가, 가까이 오지 마!!”

 명백하게 떨리는 칼끝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미 누군가를 베어낸 것이다.

 창가로 들어온 달빛이 그녀의 추악한 표정과 검신을 비췄다. 인질을 내버린 그녀가 그 창가를 향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더 이상 가까이 오면, 이대로 몸을 던질 거야.”

 하지만 그녀의 자살 위협은 오히려 사람들의 조바심을 자극하고 말았다. 한 남자가 달려들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쟁탈전의 형태가 된 몸싸움이 그녀를 이리 저리 휘두르다가.

 “아, 안 돼! 이거 놔, 이거 놔!! 다시는 없을 소생의 기회란 말이야! 이거 놔아아!!”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휘청이던 그녀는,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순식간에 창밖으로 내떨어졌다.

 아슬하게 걸친 채 중심을 잡으려다 결국 떨어진 사람들까지 합하여, 대략 열댓 명. 창가에는 보름달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정적이 찾아왔다.

 주인 없는 카페의 카운터가 버석거리며 바스러지고

 줄에 매달린 전등은 깨진 채 진자 운동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방에 들어선 이들은 차츰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으며, 계단에서는 아직 작은 투쟁의 소음이 들려왔다. 밸브를 막 잠근 수도꼭지처럼, 역류해 올라오는 이들에게 등을 떠밀린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몇 발자국 안으로 내딛었다.

 “............”

 “............”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낙하의 가장 큰 원흉이 되었던 남자에게 주변의 책망의 눈길이 쏟아진 것을 시작으로, 멈춰 있던 상황이 삐걱거리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윽. 왜, 왜 나야. 니들도 다 똑같았잖아!”

 그러자 흠칫 몸을 떤 남자는 슬쩍 뒷걸음질 치며 몸을 추스르다가....

 “어....?” 자신의 심장이 언링크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장을 확인한 그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되돌렸을 때, 그에게 쏟아지는 시선의 의미는 달라져 있었다.

 “어, 어어....?! 으아악!!”

 표적으로 몰린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눈앞에 마린을 두고 놓쳤다는 것에 대한 ‘분노’.

 자신을 방해한 이들에 대한 ‘책망’.

 팬이었던 이들의 ‘안타까움’이나

 집단의 광기에 몸을 맡겨버린 일에 대한 ‘회의’.

 상처에서 비롯된 단순한 ‘고통’과

 타인에게 구겨진 것에 대한 ‘굴욕감’ 혹은

 타인을 제압했다는 데에서 비롯된 ‘희열’.

 그리고 보다 원초적으로, 눈앞에 널브러져 있는 서로의 심장에 대한, 근원적인 ‘소유욕’.

 은폐되어 있던 그 감정들은 혼란 속 빨간 표피를 드러냈다. 이윽고 그 6층 건물을 가득 채운 복잡한 관계의 감정들은, 하나 둘 충돌하다가, 연쇄작용처럼 그 스케일이 점점 커지며 결국에는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아노미[anomie] : 사회적 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에 의하여 일어나는,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의 무규제 상태.

  

 피 냄새가 건물 내부에 진동했다.

 날붙이의 금속성이나 무언가의 충돌음. 쏟아지는 비명 속에서.

 준명의 풀려버린 동공은 정주할 곳을 찾아 공간을 더듬었다. 하지만 어느 곳을 보더라도 끔찍한 것들뿐이어서, 하염없이 방황하며 눈꺼풀을 깜빡일 뿐이었다.

 피 묻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고, 또 몇 초 뒤에나 입가가 피범벅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팔로 재차 입가를 문질렀다. 손에는 역수로 쥔 단도가 붙들려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돌연 자신 쪽으로 넘어진 남자에 의해, 준명은 종잇장 마냥 멀리로 튕겨나갔다.

  

  

 XXX

  

  

 신은 커다란 정육면체 금고 위에 걸터앉았다.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보며 지석이 물었다.

 “어째 그 중요한 현장을 앞두고 여기까지 직접 행차하셨대?”

 “......애초에 나를 이곳으로 불러낼 목적이었으면서, 엄청 뻔뻔하구나? 너. -나만큼이나.”

 그녀는 태연한 어조로 답했다.

 그곳은 앙상한 골조의 탑, 그 최정상층. 신이 아지트로서 이용하고 있던 그곳에서 지석과 신은 대치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이에는 7M가량의 틈이 있었다. ‘ㄷ’자로 이루어진 플로어의 양 끝자락에 서서 마주보고 있는 그들 사이에는 허공만이 존재했다.

 “이제 너희들은 철수해.”

 지석은 자신의 곁에 서있던 5인의 무리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온갖 공구가 들어있는 가방이나 복잡한 기폭장치를 들고 있는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밑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금고 내부를 폭파시킬 목적으로 편성된 특별반이었다.

 지석의 피 묻은 백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바지 안에 넣어 두었던 와이셔츠 자락이 빠져나온 채 펄럭이고 있었지만 지석은 그것을 정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쉽게 됐어. 모아둔 심장들이 모두 터졌을 때의 네 표정을 좀 보고 싶었는데. 불안했는지 교황들 것까지 안에 넣어둔 모양이더라?”

 지석은 직원에게 건네받았던 담배를 입에 문 채 불을 붙였다. 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점화까지 성공했지만, 거센 바람 탓에 그 길던 담배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담배연기가 노도처럼 흘러갔다.

 “시간을 버는 거야? 안타깝지만 놀아줄 시간은 없는데.”

 차디찬 대답이 돌아왔다.

 “기왕 불러냈으면 빨리 용건만 말하지 그래?”

 “용건?”
 “목적이 있어서 불러낸 거 아냐?”

 “뭐 그렇지.”

 도화선 마냥 타들어 가는 담배. 몇 번 입에 대지도 못한 그것이 몽당이 되어버렸을 무렵. 지석은 그것을 바닥에 내버리고는, 뒷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1초도 걸리지 않아 장전 후 신을 향해 발포. 하지만 총성만이 메아리가 되어 단지 내에 울릴 뿐, 총알은 그 중간에 속도가 멎더니 수직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네.”

 지석은 들고 있던 총을 발치의 나락으로 내버렸다. 눈앞의 여자를 상대로는 그것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신이 말했다.

 “보아하니 내 정체를 아는 것 같은데, 그럼 그딴 총알이 나에게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야?”

 “그렇지. 정확히는 방금 보고 판단했어.”

 “뭘 보고?”

 “네 발목에 있는 멍.”

 “.........음.”

 신은 침묵했다. 그의 말에는 하나 틀린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현재 인간의 몸을 본 따고 있는 상태다. 그러니 회복 속도도 물리적인 경도도 인간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완전히 인간으로서 있기로 한 건 아니었나 보네. 공간 이동에 염력에, 아주 쓸 거 다 쓰잖아.”

 “뭐, 난 신이니까.”

 신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기울이자, 백금발이 그 어깨를 쓸어 내렸다.

 “그럼 신으로서 있던가. 그렇게 어중간하게 사용할 거면 왜 인간의 모습을 빌린 거야?”

 “빌리다니 말이 조금 거슬리는걸. 너희들을 창조한 건 나라고?”

 “창조한 거지 네가 인간인 건 아니잖아. 그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너는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어.”

 “.......애초에 인간이 될 생각 따위는 없단다.”

 물 흐르듯 이어지던 공방, 아니, 사실은 지석이 일방적으로 유도하던 대화에 생겨난 약간의 틈. 신의 포커페이스를 잠시나마 무너뜨린 그 무언가를, 지석은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물고 늘어졌다.

 “그래? 그럼 이 되도 않는 소꿉놀이가 설명이 되질 않는데.”

 “무슨 소릴까?”

 “지금의 너 말이야. 세상을 이 꼬라지로 만들어놓고, 너도 같이 놀고 있잖아. 인간 마냥. 이게 소꿉놀이가 아니면 뭐겠어? 나는 아무리 봐도 너가 이런 식으로 인간사에 개입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알려줘? 그 이유.”

 “그럼. 듣고 싶어.”

 지석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신은 그런 그를 가만히 마주보았다.

 주변을 둘러싼 우주같은 칠흑 속, 직사각형의 빛들이 그곳을 둘러싼 채 꿈쩍 않고 빛나고 있었다. 개중 몇몇은 이곳을 쳐다보는 건지 까맣게 타오른 인간들의 형체가 보여서 그 모든 창문들이 그와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실이 신경 쓰인 것이었을까, 신은 금고에서 살포시 내려와 지석처럼 플로어의 끝에 발끝을 맞췄다. 그리고 금고를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로서 그 둘은 7M의 공터를 사이에 두고 명백하게 대치했다.

 나부끼는 백금발과 백발.

 바람에 사무쳐 사라질 듯 초연한 그 공간에서

 신은 말했다.

 “멸종할 때가 됐거든, 너희 인간들은. 그래서야. 그래서 직접 내려와서, 내 손으로 인류를 정리하는 중이었지.”

 “...........”

 지석이 대꾸하지 않자, 그녀는 손에 기다란 칼을 현상 시켰다.

 “어때, 좀 속이 후련해? 이제 죽여도 될까?”

 “아니.”

 “.....오호.” 예상치 못한 단호한 대답에 신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방금 그거 개그야?”

 “아니 진심이야. 그도 그럴게, 납득이 가질 않잖아.”

 “또 뭐가.”

 “왜 그런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을 쓰냐고. 운석이라도 떨어트리는 게 가장 빠른 방법 아니야?”

 다시 한 번의 공백.

 신은 대꾸했다.

 “나는 인류를 멸종시키고 싶은 거지, 지구를 다치게 하고픈 게 아냐.”

 “그럼 그냥 감염병을 유행시켰으면 될 일이지. 아무리 갖다 붙여봐야 그건 그냥 변명일 뿐이잖아. 네가 지금 이 웃기지도 않는 심장 모으기를 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

 “.........”

 “하아......”

 한숨을 내쉰 것을 기점으로, 신은 더 이상 미소를 유지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지석을 쏘아보며 손에 쥔 칼을 어깨에 걸쳐 두었다. 신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너도 사실은 누군가의 관심을 벌고 싶었던 거 아니야?”

 “.............”

 신의 눈동자가 살기를 담은 호박색 광채를 발했지만, 준명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게 가능한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었을 테고, 그래서 너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애증을 떨치지 못하는 거야. 비록 강압적이고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모두의 감정을 모으고, 누군가에게 존재로서 남고 싶어 하는 거지.”

 길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만한 사실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각 종마다 특성을 내어주었지만, 신을 공양하기 시작한 것은 지성이 발달한 인간뿐이었을 테니까. 수억 년을 혼자 떠돈 신에게 관심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종인 것이다.

 “......그럼 내가 그 관심 하나 벌자고 이 짓을 벌렸다고 말하려는 거야?”

 “물론 그거 하나 때문은 아니지. 말했잖아, 애증이라고.”

 지석 쪽으로부터 신에게로 향하는 바람이 불어왔다. 그 서늘한 바람이 지석의 말을 싣고 신에게로 흘렀다.

 “사랑해 마지않고, 모든 애정을 끌어다 주었지만, 결국에는 너를 배신한 인간들에 대한 애증.”

 까드득. 지석이 말을 마친 것과 동시에, 이빨이 부서질 듯 갈리는 그 적나라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너무 인간을 편애했어. 그리고 과신했지.”

 “그런 적 없어. 억측해 놓고 잘난 듯이 말하는 게 짜증나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서야 깨달은 거지.”

 “그 입 안 다물어?!”

 “발포해.”

 “뭐?”

 “너한테 한 말이 아니야.”

 한껏 일그러진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신을 향해, 3층 밑의 플로어에서 총알 하나가 날아왔다. 특별반에 섞여, 철수한 척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스나이퍼의 기습. 그가 발포한 총알이 권총과는 격이 다른 속도로 ‘언링크’ 상태인 신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제 아무리 신이라도 포격 사실을 사전에 깨닫지 못하면 방어하지 못하리라. 방어하지 못하고, 회복할 찰나의 시간조차 주지 않고 즉살하는 방법. 지석은 애초부터 모든 희망을 그것에 걸었다.

 총알이 심장을 관통하고, 구멍 난 표피에서 순식간에 피가 빠져나갔다.

 지석은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그곳을 주시했다.

 거죽만 남은 심장이 바닥에 널브러지자, 그의 예상대로 더 이상 반대편의 플로어에선 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찾아볼 수 없었고, 그와 동시에.

 “....밑에 있는 녀석 찢어 죽이는 놈에게, 심장을 평생 되돌려 줄게.”

 지석은 어디선가 울리는 그 섬뜩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어지는 끔찍한 비명.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를 숨기고 있었던 투명한 인간들이 내려가 저격수를 처단한 것이다.

 “젠장....!”

 위협을 느낀 지석이 서둘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준비해 두었던 수류탄으로 동반 자살을 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석이 안전핀을 뽑기도 전에-.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의 눈앞에 돌연 신이 나타난 것을 기점으로, 지석은 더 이상 폭탄을 터트릴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단지 내에 울려 퍼진 끔찍한 비명에 속속들이 창문이 열렸다.

 “크으, 아윽...!”

 뒤로 기어가다 못해 콘크리트 기둥에 등을 부딪힌 지석의 앞으로, 신은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게 왜 감당 못할 일을 벌렸어.”

 지석은 고통을 무마하려는 듯 입가의 모든 근육을 쥐어짜내 웃었다.

 “어쩌피, 흐, 이렇게 끝날 인생이었다 임마.”

 뒤의 기둥에 뒤통수를 짓누르듯이 기댄 지석의 성대에서 그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은 그런 그를 표정 변화 한 번 없이 냉철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 그대로 입만을 움직여, 신이 재차 물었다.

 “낚시꾼을 구해보겠다고 벌린 일이야?”

 “그래 뭐 그렇지. 근데 또, 돈 없이 사람을 맘처럼 움직이는 게 쉽지가 않더라. 그래서 이 꼴 났지 뭐. 하여간 말도 더럽게 안 들어 처먹어요.”

 “징그럽네. 남자끼리.”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말을 끝으로 그 둘은 살벌한 실소를 몇 번 주고받았다. 그러다 신과 눈이 마주친 지석은, 무언가 알아차린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보다 너, 흐흐, .....늙었네?”

 지석의 말에 신은 자각하지 못했다는 듯이 자신의 볼을 꼬집듯이 만져보았다. 확실히 전보다 탄력의 떨어진, 30대 후반 여자의 피부였다. 그녀의 미간이 움찔 움직였다.

 “이준명한테 접근했을 때도 한 번 떨어지고 나서 늙었다더니만. 뭐 한 번 죽으면 늙는 이상한 룰이라도 적용한 거야? 어지간히도 인간 흉내를 내고 싶었나봐? 흐흐....-흐윽?!”

 신은 그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도록 지석의 배를 짓밟았다. 하지만 광기에 가까운 악을 품은 지석은 핏대 세운 목에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끌어내었다.

 “세상을 이따위로 굴려 놓고 책임은 어떻게 지려나 했더니, 결국 인간 코스프레나 하다가 늙어 죽겠다는 심보 아니야. 못난 년.”

 피가 자작하게 베인 지석의 입술이 가로로 찢어진 채 조소를 내비쳤다.

 “이래서 너는 절대 마린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는 거야.”

 칼자루가 삐걱거리며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자코 그를 내려다보던 신이 물었다.

 “.....할 말은 끝났어?”

 “남은 말이야 많지.”

 지석은 서서히 풀려가는 동공으로, 신의 두 눈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너한테 버림받은 이후로, 푸념 한 번 안 하고, 지금껏 참아왔으니까.”

 “......난 버린 적 없어.”

 “버린 적이 왜 없어. 빚 갚으라고 쳐맞으면서, 도와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댄 게 몇 년인데.”

 “.......”

 바람에 눈꺼풀이 수동적으로 떨릴 만큼, 지석은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몰랐으면 이 참에 알아 둬. ........나같은 새끼도, 세상 어딘가는 있는 법이니까.”

 서서히 굳어가며

 지석은 말했다.

 -모두를 사랑하고 있다는 자의식은 지독한 오만이야.

 그러니 네가 억울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거지.

  

 이후. 칼이 수직으로 내리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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