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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심장 밀렵꾼 : 비존재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20.8.20

타인의 심장을 갈취하여 생계를 이어나가는 심장 밀렵꾼 준명. 그리고 그런 그의 심장을 원하는 한 여신. 그 애증 섞인 관계는 이윽고 서울을 한바탕 뒤흔들게 되는데....
아노미의 끝자락, 혹은 타락한 도시의 말로. '심장 밀렵꾼 : 비존재'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비존재_ 08
작성일 : 20-08-31 00:16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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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소리 후 소리샘 퀵포인트로....’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벌써 다섯 번째였다. 입만 벙긋거리는 동안 매가리 없는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끊기는 꼴을 보기 싫어서 일찌감치 통화 종료 버튼을 연타했다. 가라앉지 않는 울분에 앞에 있는 의류함에 내다 던지려다가, 이내 이성을 되찾고 치켜들었던 팔에서 힘을 풀었다.

 “하아....”

 차갑고 얇은 물방울들이 휘날리며 피부를 때려대고, 골목길을 타고 흐르는 냉기와 비의 내음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애초에 나에게는 화를 내야만 할 이유도, 낼 수 있는 명분도 없다.

 모두 멋대로 진행한 일이었으니까. 준명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순수한 채로 머물러 있기를 강요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준명이 전화를 받지 않는 한, 이제는 현실적으로 그를 말릴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도 말릴 수 없다면, 어떻게든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겠지. 정말 내키지 않지만 이제는 그 방법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복병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마린의 심장,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준명의 심장을 노리는 신.

 전자는 준명이 어떻게든 탈취한다고 치더라도 후자에 대해서는 도저히 그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후자에 대해서 내 쪽에서 조치를 취해줄 수만 있다면. 마린의 심장을 가져온다는 목표를 이룬 준명이 다시 일상으로 접어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핸드폰의 화면을 열고 주소록에 들어가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사님?”

 “아, 응. 부탁 하나만 하자.”

 “무슨 부탁 말씀이십니까?”

 “많게는 아니고, 사람 너덧 명 정도만 좀 보내줘.”

 내가 그렇게 말하자,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고 잠시 동안 숨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끝까지 도와 주시기로 한 겁니까.”

 ‘끝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니 지금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현식이 놈한테 들었습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해서 당부하더군요. 회사는 이미 대쪽 났고, 아무래도 형님은 혼자서라도 이 일에 끝을 보실 생각인 것 같으니까 저보고 좀 도와달라고. 뭐, 이사님께서 먼저 전화하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미안하다.”

 정말로 그 말밖에 돌려줄 것이 없었다.

 “저는 괜찮지만, 왜 그렇게까지 해서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네. 동갑내기한테 이게 뭔 징그러운 짓인지 모르겠다 진짜로.”

 직원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편성해서 보내드리면 될까요?”

 “문자로 정리해서 보내 줄게. 고맙다.”

 직원의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오고, 이후 전화가 끊어졌다.

 계획을 정리한 문자를 써 보낸 다음, 몸을 추스를 새도 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밟았다.

 골목길의 모양대로 잘린 밤하늘은 거리감이 없었다. 마치 뚜껑을 덮어놓은 듯 가까워 보였다. 가로등에 비친 실같은 물방울들이 산만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터덜터덜 걸어가며, 나는 생각했다.

 방금 직원의 물음대로, 어째서 나는 이렇게까지 헌신하여 준명을 돕고 있는가.

 어쩌면 그것은

 우정이나 의리 같은, 그런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할 수 없을

 자기만족에 가까운 감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XXX

  

  

 인간은 타인의 반응을 통해서만이 무언가의 가치를 산정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머릿속에 무엇이 들었다고 한들, 그 옳고 그름조차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애초에 옳고 그름이란 허상이지만

 때문에 세상 그 어떠한 것도 결국 판단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인간은 더욱이 무언가의 존재의의를 증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자신조차 증명할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기에 이런 독특한 소비 행태가 성립되는 것이겠지.

 마린의 심장이라는 값비싼 보석을 사들이려 광장에 모인 인파를 바라보며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너를 만나러 어려운 발걸음을 한 사람들이야. 준비됐지?“

 핑크빛 머리를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괜히 그렇게 읊어보았다.

 후훗.

  

  

 XXX

  

  

 광장 양 옆으로는 4차선이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 거대한 빌딩들이 내뻗어 자리를 지키고, 그 끝의 시야에는 경복궁이 근엄한 자태를 자랑했다. 그 뒤의 북한산은 밤의 어둠에 지워져 그 윤곽을 확실히 드러내지 않았다. 비는 잠시 멎었지만 먹구름은 걷히지 않아 달빛 또한 어슴푸레 뭉개져 있었다. 그 대신 밤하늘을 밝히는 것은 차도와 성벽을 따라 줄을 선 스포트라이트들이었다. 서서히 고개를 움직이며 먹구름 사이를 헤집는다. 어딘가에 설치된 앰프에서는 마린의 대표곡인 ‘Unrealistic Lov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준명은 후드의 모자를 뒤집어 쓴 채 앞을 바라보았다.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광장 한가운데 박힌 이순신 장군 동상을 기준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군중을 모아두는 펜스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리라. 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정승처럼 박힌 채 제각기 경매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

 마린의 심장을 얻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는 건가. 아마 온라인 경매라면 이 수백 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참가 신청을 했으리라.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이는 오프라인 경매임에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온 사람들로만 이 만큼의 인파였다.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준명이 마른 침을 삼킨 것과 동시에-.

 “자자~ 여러분!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며, 어느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성기를 사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온 도시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의 외침. 건물들 사이의 협곡을 그 새된 목소리가 가로질러 뻗어나갔다.

 준명은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휘둘렀다. 몇몇 사람들이 알아차린 듯 고개를 드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준명은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은 광장 한 가운데의, 원래라면 이순신 장군님이 서있어야 했을 좌대.

 하지만 지금 그곳에 동상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한 백금발의 여성이 두 다리를 내뻗고 서있을 뿐이었다. 덩치에 비해 너무 커다란 좌대 위에서 그녀는 관심을 받으려는 듯 두 팔을 위로 뻗은 채 흔들었다. 그것이 모종의 사인이었는지 밤하늘을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비췄다. 자신에게 빛이 집중되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인 그녀는 군중을 향해 뒷짐을 진 채 조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번 경매사를 맡은 마린의 심장 주인입니다.”

 흘러내린 백금발을 귀 뒤로 넘기며, 그녀가 인사를 마치자 군중이 어수선하게 떠올랐다.

 “이 날씨에 장소를 따로 마련해 놓지도 않고, 하물며 심장 주인이 직접 경매사를 맡는다고?”

 “그럼 아무래도 공신력이 떨어지잖아.....”

 마린의 심장이라는 거물을 두고 중고거래라도 하는 듯한 이 상황에 사람들은 불만과 의구심을 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경매에 참가한 이들도 있겠지만, 이곳에 참가한 이들 대부분은 수십 억 이상의 심장을 빛을 져서라도 구해보겠다고 온 이들이다. 이렇게 대충 차려놓은 경매식이 그들에게 달갑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의구심을 품은 것은 준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투덜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신을 바라보고 있던 찰나. 신은 마치 준명이 어디에 있는지 훤히 꿰고 있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군중 사이를 헤집고 정확히 준명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윽.”

 준명은 잠시 놀란 듯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진정하고 그녀를 빤히 마주보았다. 아마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리라. 그녀에게 있어 이번 경매의 목적은 자신의 심장을 갈취하는 것일 테니까. 마린의 심장을 탈취하는 일은 경매가 완료된 다음 그 사람을 쫒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링크 상태에 다다르지 않도록 유념하면서 마린의 심장을 가지고 돌아가기만 하면 돼.’

 준명과 신의 의지는 같은 상황을 공유하지만, 결코 정면으로 충돌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준명은 그렇게 생각했다.

 시선을 피하려 지그시 눈을 감는 준명에게서 신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런 신의 입가에는 수상쩍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 이윽고 신은 깍지를 끼고 목을 기울이는, 인조적이고 애교 어린 자세를 취하더니.....

 “그런데 말이죠, 안타깝게도 제가 경매를 볼 줄을 몰라서요~”

 천연역덕스럽기 그지없는 말투로, 군중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뭐라고?” “무슨...” “....허.”

 그 어이 없는 행동거지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한 짧은 감탄사 수백 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준명은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뜬 채로 그녀를 주시했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지?’

 준명으로서는, 아니 그 자리에 있는 어떤 이도 그 뒷말이 무엇일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 군중의 의문을 즐기듯 슬쩍 미소 지은 신은, 품에 손을 넣더니 심장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그마한 혈육이 신의 손 안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을 든 채, 신은 말했다.

 “그러니까 이거, 선착순으로 드리도록 할게요.”

 “어....?” 준명의 눈이 커다랗게 찢어졌다.

 공식 발표였다면 혈안이 되어 달려들었을 파격적인 제안에 그 진의를 파악하려 애쓰며 여기저기서 움찔거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수룩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과 너무도 비약이 심한 이야기 탓에 광장은 팽팽하게 멈춰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발을 박차기 직전, 이를 붙잡아두고 있는 최소한의 의심. 그 중 한 명이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서, 선착순이고 뭐고! 그게 마린의 심장이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지?! 감정사의 증명서라도 내보이지 않는 이상 나는 당신을 신용하지 못해!!”

 그 목소리를 필두로 여러 노성이 신을 향해 쏟아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좀비 떼로부터 도망치다 못해 고지대에 고립된 생존자 같았다. 하지만 그런 피치 못한 마녀 사냥의 현장조차 그녀의 평정에는 조금의 흠집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시끄럽게 굴지 좀 마세요. 다 터트려 버리기 전에.”

 그 한 마디로 광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숨통을 조였다. 확성기를 쓰지도 않았지만 두통을 일으킬 만큼 날카로운 발성. 마치 두개골 속에 대고 말하는 듯한 그 감각에 군중의 소란이 일순 잦아들었다. 이내 바람소리만 남자, 신은 만족스러운 듯이 활짝 웃어 보였다.

  “뭐 그럼, 의심 한 번 더럽게 많으신 우리 손님들을 위해서-.....“

 그녀는 좌대의 중앙에서 한 걸음 비켜나더니 들고 있던 심장을 자신의 왼편 허공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심장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멀리서 내떨어진 벼락에 광장이 번쩍 물들어 신이 강행하는 그 알 수 없는 행위에 불안감을 더했다.

 그 자세를 지속하며, 신은 말했다.

 “증명해 보이도록 할까요?”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저 여자.’

 고공에서 발상한 그 붉은 빛에 준명은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도 이 상황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심장이 빛을 발하는 것은 언링크 상태일 때와 분리되었던 심장이 다시 육체로 돌아왔을 때뿐이다. 마린이 소멸한 지는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어째서...?

  준명이 그런 의문을 품는 동안, 좌대 위에서는 어떠한 형체가 생겨나고 있었다. 심장을 중심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며 그 형체는 점차 어떠한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려한 선을 가진 흉부와, 잘록하게 들어간 목과 허리.

 뒤로 한 데 묶은 핑크빛 머리카락에

 그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진한 눈매까지.

 “마린....?”

 군중은 믿기지 않는 듯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서, 예린....? 네가 어떻게.....!”

 준명은 신음을 하듯 그 이름을 입술 새로 흘렸다.

 심장의 빛이 가라앉자, 두 손이 수갑으로 결박되어 있는 마린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뒤늦은 천둥소리가 광장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자 인사~”

 신이 심장을 잡은 채로 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그녀는 심장이 몸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보호하려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숙였다. 신이 그것을 이용하여 그녀를 인사시킨 다음 그녀의 심장에서 손을 떼어내자 군중이 다시금 목청을 터트렸다.

 “마린....! 마린이다!!”

 “뭐? 진짜 마린이라고?! 그녀는 몇 년 전에 죽었잖아?!”

 “그렇긴 한 데 저 모습을 봐, 어떻게 안 믿을 수가 있겠냐고!”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달아오른 광장 속 어딘가. 창백하게 질린 준명은 넋이 완전히 나가버린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멀리 있어 이목구비가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서예린의 모습이었다. 준명의 머릿속에서 다른 모든 소음과 시각 정보는 모두 배제되고, 오직 그녀만이 그의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왜? 어째서? 어떻게?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의문들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솟구치는 감정은 이성이 그것들에 대한 답을 내리도록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 세상이 탁하게 물들어갈 무렵.

 “예린아...., 예린-...!”

 신음처럼 흘러나오는 준명의 목소리를 가로막으며

 나직하고 표독스러운, 신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다들 뭐해요? 선착순이라니까요? 지금 마린을 먼저 잡아 가져가시면, 그녀의 심장은 물론 소멸 직전까지 그녀의 육체를 가질 수도 있어요.”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하나 둘 좌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상설 매대에 놓인 하나뿐인 다이아몬드를 쟁취하려는 인파와도 같이. 점점 세기를 더해가는 빗발 따위 그들의 기세를 식혀 놓지 못했다. 더욱 커진 ‘Unrealistic Love’의 곡조를 뚫고 올라, 사람들의 비명과 외침이 낮게 내려앉은 먹구름에 닿았다.

 “비켜 이 자식아!”

 “싫어 네가 비켜!!”

 “잠깐 여기 사람이 넘어졌....크악!”

 비키라며 앞의 사람을 밀치고, 넘어진 사람은 그대로 짓밟혀 심장을 떨군다. 그렇게 떨군 심장 또한 짓밟혀 무참히 터졌을 무렵. 좌대 위에서 연막탄이 터졌다. 빗발로 인해 순식간에 연기가 사라졌지만 이미 그 자리에 마린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 대신 직원들이버티고 선 경계 너머, 그녀는 등을 보인 채 도시 어딘가로 있는 힘껏 달리고 있었다.
 준명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비키라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에게 떠밀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큭....!” 준명 또한 발을 박찼다.

 시간을 벌려는 듯 온 몸으로 군중을 밀어 버티던 신의 부하들이 나자빠지자 그야말로 급류가 쏟아지듯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뒤를 쫒았다. 도시에 찾아온 간만의 소란. 차조차 얼마 지나다니지 않는 대로를 따라 달리는 그 엄청난 인파를, 도시의 곳곳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보았다.

 “흐음....”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다니까 인간들이. 아주 징그러워.”

 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썰물처럼 인파가 빠져나간 광장은 인구밀도가 확연히 낮아져 있었다. 잔류하는 인원은 삼백 명 가량. 대략 1/3 정도가 광장에 얼이 빠진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현장을 찍어대는 플래쉬가 여러군데에서 터졌다. 아마 달려간 인파 중에도 1/10 정도는 기자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한 바퀴 둘러본 신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좌대에서 내려가기 위해 사다리에 발을 내딛었다.

 “그럼 슬슬 나도 밑밥을 치러 가볼까.....”

 “보스!”

 초월자의 면모 따위 없이 조심조심 내려오던 신을 직원 한 명이 불러 세웠다.

 “응? 으악?!”

 그의 갑작스런 부름에 발을 헛디딘 그녀가 1m 가량의 높이에서 그대로 추락했다. 미끄러진 사다리가 굉음을 내며 바닥에 부딪히고, 그녀는 고통을 호소하며 발목을 부여잡았다.

 “아윽... 왜?”

 신은 약간 눈물이 고인 눈으로 자신의 부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부하는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에 잠시 당황하면서도 하려던 말을 계속 이었다.

 “지금 아지트에, 전지석이 도착해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주저앉은 채로, 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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