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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흘러내림(제4권) - 열매
작가 : 말레이
작품등록일 : 2020.8.20

이 소설 "흘러내림"은 언어의 시작 점인 창세 때부터 2040 여 년 대의 미래까지를 언어와 문자를 소재로 이어가는 소설로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언어 등의 모든 것이 오늘 우리모두에게까지 흘러 내려왔으며 이 흘러내려옴은 막힐 수 있는 강과 내처럼 수평적 흐럼이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수직적인 흘러내림이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 중의 귀한 우리의 문자(한글)와 언어(한국어)를 세계에 널리 알리며 그 배에 복된 소식도 나누어야 한다는 주제로서 제1권 - 뿌리, 제2권 - 나무, 제3권 - 가지, 제4권 - 광합성 중의 제4권이다.

 
언어 제자의 양육
작성일 : 20-08-30 19:14     조회 : 264     추천 : 0     분량 : 13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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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제자의 양육!

 

  이제까지 많은 학생들이 와서 한글과 한국어를 공부하였다. 그 중에는 공부를 해도 해도 전혀 늘지 않는 학생이 있어서 얼마만큼 한국어를 공부하러 나오다가는 막상 제풀에 지쳐 안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개중에는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한글과 한국어의 구조를 파악하고 발음도 잘하면서 쉽게 배우는 학생들이 있었다.

  또 요즈음에는 시내에서 가끔 만나는 현지의 젊은이들 중에는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스스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하는데 한국말을 상당히 잘하는 친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어를 빨리 배우는 친구에게 한글의 기초가 튼튼하도록 다시 가르치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어 자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실력으로 키우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 이후에 나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들을 세밀하게 주시하여 보았다. 그랬더니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 중에‘나나’라는 아주 예쁜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유난히 빨리 한국어를 잘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언뜻 생각에도 이런 친구를 잘 훈련시켜 놓으면 여러모로 좋은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부터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여도 일정 기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가 되어야만 가능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이 되어서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그때 그 친구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 친구의 이름은‘쌤’이라는 남자 친구였다. 이곳에 처음 와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을 즈음에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찾아온 그 친구는 상당히 똑똑할 뿐만 아니라 가끔씩 소망학교에서 자원 봉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 할 때 보면 아이들을 다루는 솜씨도 꽤 좋았고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성실하고 근면한 친구였다. 그래서 인지 샘의 한국어 실력은 나날이 늘어서 3년여의 시간을 공부하고 나서는 한국말을 제법 할 줄 알았다. 그리고 결국에는 소망학교의 정식 스태프(직원)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는 자국어는 물론 영어도 잘할 뿐만이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지도력이 있고 또 학생들도 잘 다루는 등 정말 보기 드문 친구였다. 그래서 한 해가 지나자 나는 그 친구에게 교장의 역할을 부여하고 학교를 실무적으로 운영하는 일을 맡겼다. 그랬더니 학교의 분위기도 더 좋아지고 학생들도 이 선생님을 잘 따르며 더욱더 열심히 공부에 임하였다. 그러면서 가끔은 그의 어머니가 목회를 하는 교회에 가서 함께 기도를 하기도 하고 그의 집에 가서 함께 찬양을 하며 저녁만찬을 나누기도 하였었다.

  그리고서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가 전에 주의 부총리를 지낸 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은 컨테이너가 왔는데 통관을 하라고 이 친구를 보냈더니 담당자가 이 친구에게 아버지가 전에 부총리이셨던 분이내고 묻더란다. 나는 그 친구 이름의 끝 부분만을 간단하게 불러‘쌤’이라고 불렀지만 사실‘몰리샤’의 사람들의 이름에는 성은 없고 이름 앞에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누구의 아들 혹은 딸 누구라고 부르는 것이 자녀의 이름이기 때문에 이 친구의 이름을 보고 아버지가 부총리를 지낸 분이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친구가 그렇다고 하니 자기가 전에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라면서 이 컨테이너는 무슨 컨테이너냐고 묻기에 자기가 일하는 곳이 한국의 NGO 이고 학교를 세워서 아이들을 무상으로 가르치기도 하고 후원을 받은 물품들을 가져와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일을 한다고 하니 간단하게 컨테이너를 통관시켜 주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부 총리를 지내시던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 이후에 어머니가 신학공부를 하고나서 목회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3년여를 근무하던 어느 날 어머님이 목회를 하는 교회에 일군이 없어서 어려워 하셔서 자기가 교회의 일을 도와야 함으로 부득불 사임을 하게 되었다며 한국어를 배우는 일과 더불어 학교의 교장 직을 사임을 하였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27세 이었으니 10여년이 흐른 지금은 약 37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다시 한국어를 더 배우지 않겠느냐고 다시 제안을 하고 싶어서 이전에 살던 그의 집으로 찾아가 보았더니 오랜만에 찾은 그의 집은 여전히 옛날과 변함이 없었고 다만 시간이 지나 좀 더 노후화 된 느낌이 드는 정도 이었다. 그 집에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 들였다. 오랜만에 보는 샘은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었지만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이제 연세가 드셔서 목회를 하시던 교회를 퇴임하고 지금은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의 가족과 함께 그 동안에 있었던 이런 저런 소식들을 나누고 나서 나는 그에게 잠간 앞에 있는 조용한 공원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였더니 흔쾌히 좋다고 하여 둘이 함께 집 앞에 있는 공원에 가서 앉아 그동안 어떻게 지내었는가를 물으니 그때 일을 그만두고 교회에서 어머니의 목회를 돕다가 5년 전에 어머님이 퇴임을 하셨고 자기는 바로 옛날 아버지의 동료였던 정치를 하시는 분이 자신에게도 정계로 진출을 권하여 야당인‘기독교당’에 가입을 하고 밑에서 실무를 처리하는 행동대원으로 일하면서 열심히 정치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난해에 일부의 여당 정치인들이 나라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린 사건이 있어서 그에 대하여 야당들이 대거 들고 일어나 시위를 하였는데 그 시위의 주동을 하다가 진압하는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충돌이 일어났는데 그 때 진압경찰과의 사이에 작은 사고가 있었고 그 일로 비밀경찰에게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그동안 건강이 좋지를 않았는데 그 동안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고생을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1년여를 쉬면서 이제는 건강도 많이 회복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밀경찰에서 앞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란 협박을 받은 터여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하기를 그럼 그동안에 한국어를 많이 잊었을 터인데 다시 한국어를 좀 더 공부를 하고 난 이후에 한국으로 유학을 가서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좀 더 공부를 하고 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였더니 갑작스런 제안에 좀 생각을 해 보고 또 함께 일하던 분들과도 상의를 하면서 기도를 해 보고나서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정이 되면 소식을 달라고 하고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해가 바뀌어 2010년의 새해가 밝아 왔다. 쌤에게 제안을 한지 약 3개월이 지날 즈음에 샘으로부터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언제라도 사무실로 오라고 하였더니 그가 당장에 달려왔다. 그리고는 그동안 내가 한 말을 많이 생각해 보았는데 현재 자기가 이 나라에서 어떤 일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기독교당의 인사들과 논의를 해 보아도 현재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보이지를 않아 우선은 조용히 지내며 앞으로 다가올 날을 위하여 차분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한 대로 우선은 그들에게 정치와 무관하게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다가 한국에 가서 유학을 하고 나서 기회가 되면 다시 돌아와서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일을 해 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에 대하여 나는 정말 잘 생각을 하였다고 격려를 하고 우선은 이곳에서의 정치를 잊고 열심히 한국어를 잘 배우고 그를 기초로 하여 학문에 정진을 하다보면 좋은 기회가 올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도 감사하다며 다시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보겠다며 이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바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였다. 먼저 그동안 배운 것을 얼마나 기억을 하고 있는지 확인을 해 보니 지난 10여년의 공백으로 인하여 거의 잊어버린 상태 이었다. 그래서 쌤 자신도 당황해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였지만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 처음 할 때 보다 훨씬 빨리 한국어를 익히게 될 것이라고 격려를 해 주었다. 그랬더니 쌤도 마음이 안정이 되었는지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분하게 한국어 공부에 임하기를 시작 하였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한국어 공부는 제대로 하기 위하여 원점으로 돌아가 자음과 모음을 익히는 알파벳 공부부터 다시 시작을 하였다. 처음에는 전에 알고 있던 것들을 다 잊었다는 충격에 좌절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때 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위로를 하면서 한국어를 지도해 가자 예상대로 쌤은 한국어의 기초 과정에서 이전에 배웠던 것을 떠올리며 처음에 배웠던 것 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한국어를 익히며 나아갔다. 더구나 그는 지금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쓸 수도 또 써서도 안 되는 입장이다 보니 오직 한국어를 배우는 일에만 집중을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어 공부는 6개월여 만에 한글 기초과정을 완전히 마스터를 하고 한국어 과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그 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다른 친구들과는 같은 등급 이라고 해도 너무 실력이 차이가 났다. 그래서 쌤과 나나를 분리를 하여 특별히 두 사람 만을 위하여 매일 한국어를 지도 해 주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몰리샤’의 언어를 발음 나는 대로 적어보도록 연습을 시켰고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을 더 공부하자‘몰리샤’의 말도 한글로 줄줄 적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실력에 이르렀다. 이렇게 한국어를 공부하며 중급반을 마치자 나의 한국어 실력으로서는 더 이상 그 이후의 과정을 지도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그 두 학생에게 한국으로 유학을 가서 한국어 학당에서 더 공부를 하고 그 이후에 한국에서 하고픈 학문을 더 공부를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으니 두 사람은 자기들이 그런 정도가 되느냐며 반문을 해왔다. 하지만 이 두 학생은 이미 그럴만한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충분하다고 격려를 해 주며 유학에 대한 실제를 준비해 주기 시작하였다.

  먼저 학비에 대한 걱정이 없도록 한국어 연수과정에서 만나 좋은 학생이 있으면 장학생으로 천거를 해 다라고 요청하였던‘한국대학’의 한국어학고 교수님께 연락을 하여 좋은 학생이 있으니 잘 지도해 주십사고 요청을 드리니 한번 보내 보라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생활적인 부분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내가 부교역자로 근무를 하던 강남에 있는‘신포 중앙교회’의 목사님께 연락을 드려 그간의 정황을 말씀드리고 이 두 사람이 한국에서 유학을 잘 마칠 수 있도록 교회에서 영어 예배와 영어 반을 개설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게 해 주시고 거기에서 사례로 생활비를 지급해 주실 것을 요청 드렸더니 교회에도 반드시 필요하고 유익이 되는 프로그램이라시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해 주셨다.

  그렇게 하여 한국의 유학에 대한 기초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어 두 사람을 데리고 한국으로 향하였다. 먼저‘신포 중앙교회’의 목사님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렸더니 교회에서 마련한 학사관에 이들도 함께 거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자신들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실제적인 기회를 열어 주셨다.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번에는‘한국어 대학’에 가서 한국어과 과장이신 교수님을 찾아뵙고 이들이 장학생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공부할 만한 실력이 되는지 확인을 요청 드렸더니 몇 가지의 테스트를 거친 이후에 두 사람 다 모두가 충분히 그럴만한 실력이 됨으로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며 고급과정의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시겠다고 허락을 해 주셨다. 그러자 비로소 이들의 한국 유학문제가 다 해결 되고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자 나는 현지를 더 비울수가 없어서 그들을 한국에 남겨두고 다시‘몰리샤’로 돌아와야만 하였다. 그래서 그 두 사람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잘 인내하고 한국어 공부를 잘 하여 목표한 학문을 공부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한국을 떠나 왔다. 그리고‘몰리샤’로 돌아와서도 사역 중에도 그들이 한국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유학과정도 잘 마치고 돌아와서‘몰리샤’를 위하여 큰일을 하고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좋은 지도자들로 성장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2011년 그들은 그렇게 어학연수를 시작하였고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1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은 한국어의 상위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2012년 3월부터 본과로 들어가서 늦깎이의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하나 같이 용기 있게 도전을 하여‘나나’는 한국어 교육학과에 들어갔고‘쌤’은 정치외교학과를 공부하게 되었다. 그들이 그렇게 각자의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동안에 나는 한국과‘몰리샤’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였으며 그 때마다. 그들이 한국에서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그리고 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를 물으며 여전히 그들과의 교제를 가졌고 그들은 다행히도 두 사람이 서로 의지를 하며 상호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대학교 2학년 때 쌤이 공부하는 와중에 도서관에서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을 하였다. 나는 소식을 듣고 혹시라도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여 몹시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영양실조로 쓰러진 것이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느라 힘들 텐데 제대로 먹지도 않고 너무 공부에만 열중을 한 결과고 나는 그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나를 통하여 회복될 때 까지 잘 간호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나나를 통하여 몸을 생각하면서 공부하라는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다행히 별 탈 없이 건강을 회복하고 일어나서 다시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다시 흘러 그들은 대학과정을 잘 이수하였고 2016년 1월에‘한국어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나는 졸업식에 가서 두 사람을 축하해 주면서 공부를 하느라 수고하였으니 식사를 하자며 맛있는 식당으로 안내를 하여 식사를 하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나가 식사를 하는 도중에 무언가 머뭇머뭇 하다가는 갑자기 내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이냐고 하였더니 사실은 공부하는 중에 두 사람이 이성으로 가까워지고 이상도 맞고 하여 이성적으로 교제를 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쌤이 쓰러져서 간호를 하면서 그렇게 되었다기에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쌤에게 그때 일부러 꾀병을 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며 정말 잘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오늘은 축하를 해줄 일이 많다면서 두 사람은 좋은 가정을 이룰 것이라고 덕담을 해 주었다. 그랬더니 자신들이 결혼식을 하게 되면 나에게 주례를 해 부탁하고자 아니 꼭 주례를 맡아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쌤과 나나는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면서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다시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좀 더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것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에게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이 일들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나나는 한국어에 있어서 나름대로 한국인 못지않은 전문가로 자라갔으며 쌤 역시 한국어에 있어서 그에 못지않은데다가 더 나아가 자신의 전공인 정치학에 있어서 열심히 공부를 하며 향후 조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조국인‘몰리샤’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데 헌신을 할 마음을 다지고 열심히 공부와 연구를 해 나갔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끝에 어느덧 2018년 여름이 되자 이들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학위식을 거행하는 날 나는 이들을 축하해 주기 위하여 다시 한국으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그리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이들은 같은 학교의 같은 학위수여식장에서 나란히 학위를 받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 나는 그들이 참으로 늠름하게 보였다.

  특히 나나는 한국어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예전에 내가‘몰리샤’의 말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표기해 보라고 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 대학원 연구 논문을 작성하는데 논문의 제목을“몰리샤 어의 한글표기법”이라는 제목으로 정하고 연구하여 한글로‘몰리샤’의 말을 표기하는 표기법을 정리함으로 그 내용의 특이한 독특성을 살려 당당하게 논문 심사를 통과하였다.

  현지인이 한글로 현지의 언어를 표기하는 법을 정리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인이 이 일을 하려면 그 나라의 말과 특성을 잘 알거나 혹은 심도 있게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런 준비가 된 현지어를 연구한 한국 학자가 가능 할 것이고 아니면 현지인이 그렇게 하려면 현지인이 한글에 대하여 정확하게 연구가 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이번에 이렇게 한국어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담당을 한 한국인 교수의 지도하여‘몰리샤’의 말을 한글로 표기할 수 있는 표기법을 마련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 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나는 한국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이미 약속이 된 대로‘몰리샤’로 돌아가서‘사비대학’의 교수가 되어 자국의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될 예정이고 쌤은 앞으로도 더 남아서 정치학 박사를 학위까지 마치기로 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미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이들의 결혼이 많이 늦어졌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자신들은 쌤이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이 먼저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는 설득을 시키기 위하여 이렇게 논문을 통과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기념으로 내가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하니 이제까지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으므로 오늘의 자기들이 있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자신들이 식사대접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암튼 맛있는 것을 먹으로 가자며 기쁜 마음으로 이들과 함께 한식을 잘 한다는 한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였다. 두 사람은 한식에도 맛을 들여 이제는 김치나 한식의 주요 음식들을 먹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는 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두 사람을 설득 하였다. 두 사람의 나이도 나이이니 먼저 결혼을 하고 이어서 박사학위를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여서 결국 두 사람이 그 뜻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우선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하고 신혼의 기간을 보내면서 좀 쉬었다가 다시 쌤은 박사학위를 마치기 위하여 한국으로 오고 그러는 동안 나나는 대학에서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또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지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되었다. 신부의 고향에서 결혼식을 하는 현지의 풍습에 따라 나나의 시골집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나는 약속대로 주례사를 통하여 앞으로 두 사람은 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고 모범적인 가정이 될 뿐만 아니라 나라와 이웃을 위하여 큰일을 할 뿐만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부부가 되기를 당부하였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 이틀 동안은 친척과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피로연을 즐겼다. 그런데 나나는‘몰리샤’의 시골구석에서 한국에 유학까지 하고 와서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또 신랑역시 같이 공부를 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조국으로 돌아와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는 것에 동네 사람들은 마을에 경사가 났다며 다 같이 기뻐하였다. 특히 가족들은 정말

 

 “이들이 그렇게 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파스터 리’때문이야!“

 

 라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 하였지만

 

 “이 일은 먼저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를 하셨고

 또 본인들이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니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두 사람에게 축하를 해 주어야 한다.”

 

 면서

 

 ”앞으로 두 사람이 큰일들을 하게 될 터인데

 가족 여러분들과 고향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고 하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몇 칠 신혼여행을 다녀온 두 사람이 우리의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동안의 과정들을 이야기 하면서 어려움을 잘 이긴 두 사람을 격려하여 주고 두 사람은 그 동안의 도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오는 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공부해 오면서

 깊이 있게 느낀 것이 있는데

 아시다 시피 우리‘몰리샤’에는

 언어는 있는데 문자가 없어서

 그 대안으로 영문 알파벳을 빌려다 자국어를 표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 보니

 만약에 한글로 자국어를 표기한다면

 훨씬 더 유익이 많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가

 지금 한국이 컴퓨터와 인터넷, 로봇과 인공 지능 뿐만 아니라

 각종의 문화와 패션 등

 앞으로의 첨단 산업에서 앞서가고 있는데

 한글로 자국어를 표현하게 되면 언어 표기 자체로도

 자국민들이 훨씬 더 쉽고 빠르게 언어를 익히고 표현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다양하게 표기함으로

 쉽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어 역시 좀 더 빨리 익히고 받아들이게 됨으로서

 한국의 앞선 문명과 문화를 배우고 익혀

 현실에 적용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몰리샤’도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발전을 하게 될 것이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희들이 이 일을 잘 추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말을 듣고 보니 이들이 그동안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측면까지 생각을 하였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역시 이들을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 잘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

 

 “두 사람이 참으로 잘 보았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국가 간에 더욱더 치열해 가는 경쟁 속에서

 한국에게도 또‘몰리샤’에게도 모두 유익이 되어

 상호 더욱 발전을 할 수 있게 될 것 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문화적 혁명’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혁명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죠.

 

 그‘문자개역’을 성공시키려면 큰 장애물이 있는데

 ‘몰리샤’의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이권이 상실 되거나

 이전에 사용하던 문자에 대한 장점이나 이미 익숙해진 것에서

 다시 다른 표기법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용하던 언어 표기법을 바꾸는 것에 대하여 그리 쉽지 않은

 상당한 반발이 있을 것이며 그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려면 상당한 시간을 거쳐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며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게 그런 현상이 나타나도록 문화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학술적인 측면에서 바탕을 마련해 가다가

 만약에 기회가 왔다 싶으면 강하게 추진을 해야 가능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을 한다 하여도

 초기에는 두 문자를 병행하다가 어느 시기에 이르렀을 때

 한 가지만을 사용하도록 정책을 확정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이것 때문에

 나라 안에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각자의 이권에 따라 뜻이 갈리고

 분쟁이 일어날 소지가 있으므로

 잘 추진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라며 그 상황과 의미를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 주며

 

 “나나는 학문의 현장에서 학문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기본 바탕을 마련해가고

 쌤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게 되었을 때

 그동안 나나가 쌓아놓은 문화와

 학문적 분위기를 정치와 경제적으로

 이것이 나라와 전 국민에게 더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많은 공청회와 협의를 통하여 분위기를 조성한 후

 결정적인 순간에 확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렇게 된 후 대대적인 국민 교육을 통하여

 사람들이 빨리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유치원이나 초등생들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로 나올 정도의 기간인

 15년 정도가 지나면 완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니

 그렇게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해 가면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여러 가지 면에서 지원을 하도록 노력하지요.

 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들이 돌아간 후에 그 동안 생각하였던 것이 이제 서서히 준비되는 단계로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생각한대로 이것이 실현이 된다면 우선 한국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큰 유익이 생기게 될 것이고 그 유익은 다시 향후의 첨단 기술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큰 뒷받침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명실 공히 세계의 리더 국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자와 문화를 사용하게 된‘몰리샤’역시 한국을 토대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어 대대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본 주변의 국가들 중‘몰리샤’와 같이 언어는 있는데 자신들의 문자가 없는 나라들도 앞 다투어 한글을 표기 문자로 받아들이며 바꾸어 가게 되면 한국은 더욱더 미래를 항한 큰 성장의 탄력이 될 것이며 함께 나아가는 기술과 문화의 주도국으로서 역사의 큰 획을 긋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지금 어느 정도 주변국가에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는 한류에서 이 일의 기초가 될 수 있도록 있도록 분위기가 고조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지금의 한국 드라마처럼 재미와 즐거움을 입은 문화적 코드를 만듦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며 한국 정부나 한글학교 같은 기관에서는 물질을 투자하고 문자가 없는 각국의 언어뿐만 아니라 현재 잘 나가고 있는 5대 주요 언어까지도 한글로 표기될 수 있는 표기법을 그 언어를 전공한 교수들이나 한국에 유학을 와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있는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각국의 언어가 한글로 표기될 수 있도록 각 언어별로 체계를 만들고 그것을 서서히 현실에 사용이 될 수 있도록 상대국가에 여러 가지 지원을 하면서 그렇게 되도록 유도를 하게 되어 실용화가 되어 지면 한국인이 그 나라의 말을 빨리 배우고 그 나라사람이 한국의 언어를 빨리 배우게 되는 단초가 되어 상호 정서가 가깝게 될 것이고 이렇게 국가와 국가 간에 상호 정서적 소통까지 쉽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온다면 기술과 문화에 있어서 상호 보완이 되어서 더욱 극대의 변화와 발전이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나와 많은 선교사들과 하나님의 사명에 실현시키고자 하였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열매로 나타나게 될 수 있는 중요한 기초가 되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 한국에서부터 변화가 와야 한다. 우선 한글과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부터 마음을 오픈하고 한글과 한국어가 나아가는 방향과 방법을 기존의 것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하게 연구하고 개선하여 오픈하면 머지않아서 이런 일들이 현실적으로 생겨나고 일어나게 될 것이다. 즉 한글과 한국어 담당자들과 단체들이 이런 일들에 대하여 더욱 연구하고 또 그런 단체와 국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한국의 기독교계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에 대하여 투자를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한글은 앞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그 어떤 기술과 문화들 보다 도 가장 기초적인 자산이며 현실적으로 더욱 가치가 있는 우리 모두의 절대적인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 자산을 잘 활용하고 또 투자하여 극대화 시킨다면 그 만큼 열매는 클 것이고 이것의 가치를 모르고 그냥 버려둔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대로 돼지에게 진주를 주어봤자 돼지는 그것을 단지 똥과 함께 깔고 뭉개버리는 것처럼 우리에게 아무런 쓸데없는 것 밖에 되지 못하며 그 결과 중대한 기회를 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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