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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맨싱 사가 : 백발마녀전
작가 : 백발마녀
작품등록일 : 2020.8.23

똥싸개, 스토커, 시너테러범을 상대로 성장하는 쌍둥이 남매와 친구들의 이야기.

 
17화 ~ 20화
작성일 : 20-08-30 09:13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2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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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누가 또 똥 쌌어?

 

 토요일 아침. 희주는 아침 일찍 간단히 식사 준비를 하더니 독서실로 향했고, 나는 따라가고 싶었지만, 며칠 전 커피숍 아저씨가 얘기하신 CCTV가 궁금해져서, 좀 더 침대에서 뭉그적거렸다.

 

 “밥, 차려 놨으니까, 아빠 일어나셔서 식사하시면 네가 설거지 다 해놔. 계속 아빠가 하게 두지 말고.” 희주가 내 방문을 열어 둔 채 2층으로 걸어 내려가면서 지시하듯 말했다.

 “넌 어디 가냐?” 아침이라 목소리가 더 갈라졌다.

 

 내려가던 계단에 멈춰서서 희주가 되물었다.

 “넌 공부 안 하냐? 다음 주 화요일부터 중간고산데?”

 “아, 잠깐만. 올라와 봐. 나 궁금한 거 있어.” 내가 대뜸 뒤집어쓴 이불을 젖히며 물었다.

 “...뭔데, 또 남자친구 이런 얘기할 거면 나 그냥 간다.” 그녀가 계단을 다시 오르며, 내 방문 앞에 섰다.

 

 “아니, 그것도 궁금하지만, 그거 말고. 너….”

 “뭐?”

 “너가 왼손잡이라서,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거야. 내가 어제 오른손을 다쳤어." 어제 영양쌤 방 테이블 의자밑 나사에 베인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새벽에 똥을 싸는데, 뒤를 못 닦겠는 거야.”

 “뭐!?”

 

 “너는 근데 똥을 어떻게 왼손으로도 닦는 거야? 아니, 왼손잡이들은 원래 똥 닦을 땐 왼손만 쓰나? 이게 실제로 해보려고 하면, 생각보다 진짜 진짜 힘들더라구. 옆에 화장실 벽이 있으니까 각도가……. 엉덩이에 묻고….”

 

 “이 개…! 내가 바쁘다고 했어, 안 했어?!”

 

 “!!”

 

 그녀가 방문 앞에서 뛰어올라 내 방 침대까지 단번에 순간 이동했다.

 

 “아침부터! 밥하고! 공부하러! 가는! 동생한테! 그게! 할! 소리냐!? 엉!?” 그러면서 그녀는, 내가 뒤집어쓴 이불 위로 발차기를 날렸다. 박자와 타격감은, 이제는 고인이 되신 최고의 캐릭터 ‘김갑환’의 그것에 비견될 속도였다.

 

 “니가 양손잡이잖아, 으윽! 그냥 물어본 거야!” 내가 이불속에서 발차기를 막아가며 소리쳤다.

 “그래서! 왼손으로 똥 닦는 게 궁금했니? 오늘은 특별히 왼손으로 맞자. 맞다 보면 알 거야. 어떤 컨트롤인지.”

 

 “잠깐! 잠깐!” 내가 이불을 젖히며 눈을 당당히 마주치고 말했다, “아빠 깨시니까, 방문은 닫고 때려라.”

 

 그녀가 나의 능글맞은 여유에 눈알을 희번득 굴리더니, 지난 며칠간 그녀에게서 볼 수 없었던 살의를 표출했다.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다 ‘살의의 파동’에 눈을 뜬 ‘고우키’의 ‘순옥살’이 시전되기 직전이었다.

 

 “너희, 오늘따라 사이가 좋구나, 허허허. 남매가 한 침대에서. 어릴 땐 그렇게 잘 놀았는데. 하암” 아빠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시며 열린 방문 사이로 우리를 보고 말했다.

 

 “아빠!!!”

 

 내가 소리쳤지만, 아빠는 웃으시면 ‘하던 거 마저 해’라는 듯 방문을 닫았다.

 

 ---

 

 한참을 쳐맞은 후, 희주가 나가고 나서야, 아빠에게 물었다. 마치 조금 전 소요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아빠, 요 앞에 커피숍 아저씨 말이에요”

 “응….” 우적우적 아빠가 희주가 차려놓은 샌드위치를 커피와 드시며 답했다.

 

 “그 아저씨가 그러는데, CCTV가 있다네요. 그 주차장 찍으려고 일 층 외벽에…. 그 필로티 안쪽에….”

 “응, 그래? 맞아, 그런 거 같네. 근데?”

 “아니, 그때 지지난 주엔가 그 옆에 만화방 시너 사건 났을 때, 거기에 뭐가 찍히진 않았을까 싶어서…”

 진짜 궁금한 건, 그 사건보다, 내가 빌라 틈에 숨었다가 오줌이 잔뜩 묻었던 그 날, 8시 전후로 빌라길 입구 쪽을 지나갔던, 나와 건물 코너 벽 하나를 두고, 오줌을 쌌던, 바로 그 사람이 궁금했던 것이지만 말이다.

 

 “그걸 네가 왜 궁금해하냐, 경찰이 가져갔을 텐데 영상 증거물이든 뭐든.”

 “그래도…. 동네에 그렇게 무서운 일이 일어났는데, 혹시 해서요.”

 

 “...음. 중간고사지, 다음 주 화요일부터?” 아빠가 다시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네, 흐흐.”

 

 내가 멋쩍은 듯 웃음 짓자, 아빠가 고개를 까딱하시며 가보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굳이 번역해보자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공부나 해라’ 였을 것이다.

 

 “너 중간고사 끝나면, 사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아빠가 알아봐서 알려줄게. 그날 우리 집도 도둑 들었었기에, 지구대에서 어차피 몇 번 전화도 왔었고.”

 

 아빠는 여지없이 내가 그 사건’만’을 궁금해하셨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

 

 “오늘은 회사 안 가시나 봐요?” 내가 나갈 준비를 하며 아빠에게 물었다.

 

 “응, 오늘은 쉰다. 이따가, 잠깐 뭐 좀 사러 서울 갔다 올 건데, 그거 말고 그냥 집에 있을 거니까, 나갈 거면 밥때는 들어와. 희주도 근처면 와서 먹고 다시 나가라고, 그렇게 얘기해주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오거리 자동차 조심하고.”

 

 집을 나서서 우선 커피숍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CCTV를 볼 수 없다면, 파출소에 가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중간고사 공부는 머리 뒤편에 처박아두고, 걸어가는데, 잠시 잊고 있던 그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최민수' 잘 다려진 양복, 깊게 팬 눈, 손에는 여지없이 마른 홍고추를 쪼물딱 쪼물딱 거리며.

 

 해가 중천. 저 멀리 대로 쪽에는 사람도 몇 걸어 다닌다. 뒤편, 뛰면 1분도 안 걸릴 거리, 집에는 아빠도 있다. 해보진 않았지만, 옆쪽 빌라 틈 사이로 뛰면 3층 정도 높이의 - ‘낭떠러지’ 까진 아니어도 매우 위험하지만 뛸 수 있는 - 탈출구가 있다.

 

 “무슨 일이시죠?” 내가 물었다.

 “‘안녕하세요,’부터 안 하네? 난 내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고등학생을 집안까지 들이고, 물어본 질문에 답까지 했는데?” 그가 답했다. 아차 싶었다.

 

 “아.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착하네. 바로 사과도 하고 요새 학생들 같지 않게.”

 “...”

 “어디가?” 그가 물었다. 여전히 묘하게 길을 막은듯한 위치에서.

 

 “아, 파출소…. 파출소요.”

 “그날, 있었던 사람들 찍혔을까 해서?” 그가 고추로 빌라 틈을 가리키며 내 의도를 확인했다.

 “네…. 그리고 그 전날 저기 만화방 건물에서 시너 테러 사건도 혹시 싶어서요.”

 계속 답만 하다가는, 여길 지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화두를 바꾸었다.

 

 “근데, 아저씨, 그 고추는 직접 따서, 말리시는 건가요?”

 “아 이 고추? 맛있지? 생각나지?” 다행이다. 그가 내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네. 그래서 혹시 어디서 구하셨나 해서…. 물론 직접 말리시는 거니까 살 수는 없겠지만.”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그가 피식 웃더니, 답했다.

 

 “중식, 좋아해?”

 “네?”

 “나 본 적 없나 보네. 하긴…. 그때 올라왔을 때도 모르는 거 같긴 했지만…. 뭐 내가 항상 가게에 있진 않으니.”

 

 그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아저씨, 저기 오거리 중국집 ‘수정궁’ 사장이야. 가게에 매니저랑 주방장은 따로 있지만, 이렇게 원자재는 내가 따로 공장이 있으니 거기도 유통하고.”

 

 “아~! 중국집~.” 내가 진심 놀래 하자, 그는 마치 숨바꼭질에서 걸리지 않고 꼭꼭 숨어있다 나오는 사람처럼 피식하고 웃었다. 하지만, 이제 이해가 되었다. 그가 사장이라 양복을 차려입고 있다는 것과 왜 고추를 저렇게 잔뜩 말리고 있고, 집안에 그 외 식자재가 있었고, 또 빌라 옥상을 다 쓰는 거로 봐서, 어쩌면 이 빌라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것까지도.

 

 “고추가 먹고 싶으면, 놀러와. 그때 그 당찬 여자애랑 같이.”

 “아, 희주요. 동생이에요. 쌍둥이 동생…”

 

 동네 식당 주인이라는 말에 경계가 풀려서, 나도 희주 얘기를 뱉었다.

 

 “그래…. 뭐가 되었던. 파출소 가는 길이었다고? 가봐.” 그제야 그가 길을 비켜주듯,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네, 그…. 담에 식당 갈게요.” 왠지 어색해서,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내달려 갔다.

 

 원래 집을 나왔을 때의 계획대로 커피숍으로 들어가면, 뒤에서 나를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파출소를 간다는 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될까 봐, 그가 여전히 뒤에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 설사 보고 있다 한들,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도 - 그대로 뛰어서 커피숍을 끼고 코너를 돌아 파출소 방향, 오거리 쪽으로 내달렸다.

 

 ----

 

 “안녕하십니까.”

 

 파출소로 들어가면서 마치 중요한 용건이라도 있는 듯 목소리에 힘을 줘서 인사했다. 하지만 대부분 스윽 쳐다보고는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고, 다시 각자 책상 위 모니터 혹은 핸드폰을 보느라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띨순경’ 한 명만 빼고.

 

 “어? 지난주에 왔던 학생이지?” 띨순경이 웃으며 나를 알아봐 줬다.

 

 “아, 네.” 자연스레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주변을 어리둥절 쳐다보며.

 

 “뭘 그리 두리번거려?”

 

 “아뇨, 지난주엔 별로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은 평일도 아닌데 많으셔서.”

 

 실제로 그랬다. 지난주엔 대여섯도 안되는 것 같았는데. 이래서는 내가 ‘커피숍 CCTV 좀 확인하자고’ 동생처럼 비벼볼 여지가 없었다.

 

 “주말이니까. 그렇지, 원래는 이 정돈 아닌데.”

 

 뒤에서 띠링, 하고 파출소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한 덩치 하시는 눈썹에 흉터 있는 김순경, ‘김원효’ 순경이 들어오고 있었다. 내 옆까지 와서는, 띨순경 앞에서더니,

 

 “주소 확인했데. 땡큐.” 하며 뭔가 해결된 듯 인사했다.

 

 “뭐가요” 내가 옆에서 그를 보며 물었다. 그가 모자를 벗으며 “다녀왔습니다.” 하고 크게 파출소 내 다른 경찰관분들한테 인사하다가, 바로 옆에서 내 목소리를 듣더니, ‘얜 뭐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눈썹에 흉터는 여전히 그를 경찰처럼 안 보이게 했다.

 

 “저, 벌써 3번째인데 여기. 저기 ‘빌라길’…. 똥.”

 

 “아, 그래…허~.” 알아보더니, 뭔가 대단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날렸다.

 

 띨순경이 김원효 순경을 보고 물었다.

 

 “잡은 거야, 그럼?”

 

 김원효 순경은 여전히 나를 보며, 띨순경의 말에 답했다.

 

 “아니. 근데 뭐 이제 잡기만 하면 되겠지. 지구대에서 처리하겠지. 난 확인해 줬으니까.”

 

 내가 그의 눈썹 때문에, 살짝 긴장한 것도 사실이지만, 대화의 내용이 왠지 나하고 관련이 있는 사건 같아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듣고만 서 있었다.

 

 “가서 보고 드려.” 띨순경이 김원효 순경을 쳐다보며 말했다.

 “응.” 김원효 순경이 그렇게 답하고는 나를 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누가 또 똥 쌌어?” 하고 물었다.

 “아뇨.” 괜히 그가 목소리를 낮추니, 더 긴장되었다.

 

 “그럼 학생이 학교에 있어야지, 여기 자꾸 오지 마시고.” 하고 내 어깨를 툭툭치고는 안쪽 높은 경찰관 쪽 자리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띨순경이 속삭이듯 나에게 귀띔했다.

 

 “곧 잡힐 건가 봐. 그 만화방 시너 테러용의자.”

 

 지나가던 김원효 순경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떡하냐는 듯이.

 

 ‘역시! 띨순경!!’

 

 나도 모르게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18화. CCTV에 찍힌 두 남자

 

 물론,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눈썹 흉터’ 김원효 순경이 알려주지 않은 상황을, ‘띨순경’이 알려주었기에, 궁금증이 해소돼서, 막연히 기분 좋게 파출소를 나왔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시너 테러범’이 아니었다.

 

 시너 테러범 얘기를 하다가, 커피숍 CCTV 얘기를 꺼내려고 했고, 그래서 커피숍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혹은 빌미를 만들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물론, 꼭 잘되었을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 어떡하지…’

 

 그러다 불현듯 방법이 떠올랐다. 커피숍 아저씨에게 시너 테러범 용의자가 특정되었다는 얘기를 해드리자. 호기심을 자극한 후, 지난 금요일 녹화된 영상을 찾아보시게 하면서, 동시에 토요일 오후 8시경, 내 앞(?)에서 오줌을 싸고 간 그놈을 확인해 보는 거다. 그리고 어쩌면 내 뒤에 숨어있던 그놈까지 확인할 수 있을지도!

 

 ---

 

 ‘아저씨!’

 

 가게 문을 활짝 열며 외쳤다. 맨날 원치 않을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커피숍 아저씨였지만, 오늘은 내가 필요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어? 희준 학생? 웬일이야? 아빠 커피 심부름?” 커피숍 아저씨가 물었다.

 “아, 그건 아니고요…. 혹시 바쁘세요?

 

 “보다시피? 토요일은 원래 다들 서울 가니까.” 그가 손님 하나 없는 조용한 커피숍 안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록 지방 도시 외곽 작은 빌라지만 그래도 건물주답게 위풍당당이 웃으며 답했다. 오거리 반대쪽 끝 '파터' 방향이나 여대 쪽 방향에는 사람이 주말에도 미어터진다는 것을 모르는듯했다.

 

 “저기…, 옆에 만화방 시너 테러한 사람, 그 사람 잡혔다고 하네요. 아니, 아직 잡은 것은 아닌데, 이제 잡을 건가 봐요. 용의자가 누군지는 확인했다고 경찰서에서 조금 전에 들었어요.” 어른이랑 단둘이 이런 범죄 진행 상황을 얘기하는 게 낯설었다.

 

 “그래?! 그거 잘됐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장사가 안되어서, 동네 면사무소에다 손해배상 청구라도 해야 하나 했는데 말이야.”

 

 “아, 그러셨어요? 다행이네요. 용의자가 특정되었으니, 곧 잡히겠죠.”

 

 “응 그래. 근데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야?”

 

 “음…. 그것도 그렇지만, 혹시 지난번에 말씀하신 CCTV 있잖아요, 그걸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걸 네가 봐서 뭐 하려고?” 아저씨 얼굴이 금세 수비적으로 변했다.

 

 “아, 그게 지금 방금 경찰서 다녀왔는데, 거기 김순경 님 있잖아요, 그분이 특정된 용의자 얼굴 사진을 보여줬는데, 제가 여기 동네길에서 아는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진짜 맞는 건가 궁금해서요… 말씀하신 CCTV에 찍혔으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동네 아는 사람?! 이라고?!” 옳다커니, 아저씨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누구??” 그의 눈이 커졌다. 이제 아무나 대충 절대 알 수 없는 외모를 하나 특정해서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게, 몇 번 본 정돈데…, 키가 저보다 크고, 하얀 피부에, 곱상하게 생겨서, 근데 또 어깨는 되게 넓고, 뭐 어떤 사람은 잘생겼다고 할 수도 있는데, 제가 보기엔 막 그렇게 엄청나게 잘생긴 것까진 아닌 거 같고요. 머리도 약간 길고, 약간 재수 없는 뭐랄까 시인 같은 느낌이에요…. 여하튼 보면 제가 딱 알 수 있거든요.”

 

 그렇다. 그냥 아무 얼굴이나 둘러댄다는 게, 지난 주말 영양사 선생님과 모텔에서 걸어 나오던 남자의 외모를 대충 둘러댄 것이었다. 어차피 동네에서 종종 보이던 남자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그래? 시인? 음….” 커피숍 사장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요?”

 “아니…. 내가 본 적이 있는 사람 생김새하고도 비슷하게 설명을 해서 말이야.” 그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설마요. 아닐 거예요, 사장님이 아시는 분은. 제가 딱 화면에서 보면 알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하며 내가 카운터 뒤편에 컴퓨터 모니터 내 CCTV 영상을 턱으로 그리고 다시 손가락으로 재차 가리켰다. 빨리 좀 보여 달라는 듯이.

 

 “...그래, 일루 와봐. 이쪽으로 와서, 보지 뭐.” 커피숍 사장님이 가게 유리문 쪽을 힐끔 보시더니 아무도 올 것 같지 않은지, 나에게 넘어오라 말했다.

 

 ‘오케이!’

 

 “며칠이었지, 그게? 4월 셋째 주…. 자 보자…” 그가 마우스 휠을 드르륵드르륵 긁어가며, 녹화된 영상 파일이 있는 폴더를 찾았다.

 

 “여기 있네…. 뭐 다 볼 것도 없고, 사람이 너무 많이 지나다니니까.”

 

 그가 촬영된 영상 시간을 Cursor키로 연타하며 변경하는 동안,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에만 벌써 수십, 수백 명의 인물이 화면에 찍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빠른 화면 전환 속에, 일부는 아예 같은 자리에서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인지, 사라졌다 옷만 바뀌어서 다시 나타나기를 몇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만화방 안에서도 금연이다 보니, 바로 옆 커피숍 빌라 주차장 앞에서, 혹은 아예 주차장 안에서, 한두 시간마다 담배만 피우러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아저씨가 Cursor키를 천천히 누르기 시작했다.

 

 “어~ 그래. 이 사람! 여기 화면에 이 사람 보여? 희준이 학생이 얘기한 게 이 사람은 아니지?”

 

 멈춰진 화면에서 그가 정확히 ‘시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만약 카메라에 일부분만 찍혔어도 못 알아봤을 텐데, 정확히 얼굴, 머리 스타일 그리고 표정까지, 지난주 내가 본 그 잘생긴…, 아니 아니, ‘재수 없는’ 얼굴이었다.

 

 “....” 당혹감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대충 둘러대려고 말한 사람인데, 이렇게 정확히 찾아내시다니. “아, 아뇨. 이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아니긴 한데, 아저씨는 이 자식을 어떻게… 아니 이분을 어떻게 아시는 거죠?”

 

 “이 사람이 희주 남자친구잖아! 아니야?” 그가 반대로 더 당황한 듯 물었다.

 

 어서 수습해야 했다. 내가 괜히 너무 자세히 외모 설명을 했구나, 젠장.

 

 “아, 예. 이분이 남자친구…가 맞는 거 같네요. 근데 저는 잘…, 아주 잘 본 적은 없어서…. 근데 사장님께서는 도대체 어떻게 이분을 그렇게 바로 알아보실 수 있으신 거죠?”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잖아. 자주 본다고.”

 

 “지난번에요?”

 

 “그래, 수요일인가? 밤늦게 희주 저기 오거리로 뛰어가고, 희준 학생 멍하니 서 있던 날 말이야.”

 

 ‘아, 맞다. 그날 말씀하셨었던 것 같다. 젠장. 이걸 왜…, 아니 하필 그게 저 사람이라니….”

 

 “근데, 이 사람 얘기한 거는 그러니까 아닌 거네, 희준 학생이 말하는 ‘특정된 용의자’는?” 사장님이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아, 아니죠…. 예 그럴 리가요. 전 또, 사장님이 너무 한 번에 제가 설명한 사람이라고 마치 같이 본 사람처럼 탁! 찾으시길래, 진짜 그게 가능한가 그랬죠. 하하…. 깜짝 놀랐네요, 진짜. 하하…” 내가 세상 제일 어색한 연기로 상황을 탈피해보려 했다. ‘CCTV로 오줌싼 놈을 보려고 왔던건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희주 남자친구가 저 사람이라니. 저 사람은 영양사 선생님, 바로 그 요염한 영양사 선생님과 모텔에서 나온 그놈인데…. 하아.’

 

 “그럼 희준 학생은 누구 얘기한 거지? 이 긴 자료를 하나 하나 다 볼 수도 없고?” 커피숍 사장님이 마치 퀴즈를 못 풀어서 아쉽다는 듯이 스페이스 바를 툭 하니 눌러서 멈춰진 영상이 다시 재생되었다.

 

 나도 멍하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플레이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백지화 된 것 같았다. 그때, 화면 위로 갑자기 아는 얼굴이 지나갔다.

 

 “어!? 잠깐만요.”

 “에이, 뭐 있는 척, ‘잠깐만요’ 그런 거 하지 말고.” 사장님이 스페이스 바를 다시 눌러 화면을 멈췄다.

 “조금만 뒤로요. 뭐 본 거 같아서…”

 

 “에이, 다들 그르더라, CCTV만 보면, 마치 뭐가 갑자기 탁 보였다는 듯이~?” 그가 가소롭다는 듯이 화면을 뒤로 돌려주었다.

 

 “저 사람….” 내가 화면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급히 내 핸드폰 사진으로 모니터 화면 내 그의 모습을 찍었다.

 

 커피숍 사장님이, 내 눈빛을 보고는 다시 화면을 집중해서 보더니, “에엥?~~ 이 사람?!~ 이 사람이 어딜 봐서…”

 

 그가 처음엔 가당치도 않다는 듯 눈을 흘기다가, 다시 화면을 집중해서 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러네…. 이 사람도 머리가 길고, 얼굴이 곱상하니…. 근데 남자라고 그러지 않았어? 이 사람은 여자 아닌가? 아니 그냥 곱상하게 생긴 학생인가?”

 

 ‘아니다. 그는 남자다. 저 작은 모니터 화면에서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건, 실제로 그의 얼굴을 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야? 이 사람이 희준 학생이 경찰한테 들었던 그 ‘시너 테러범’이야?”

 

 “우리가 찾은 거야? 맞아?” 사장님의 목소리가 한껏 고조됐다.

 

 “아, 잘 모르겠어요.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뭐야. 사진 봤다며 좀 전에 파출소에서?”

 “근데 갑자기 생각이 잘 안 나네요. 머리가 길다고 한 것인지, 얼굴에 여드름이 있다고 한 것인지…. 여자였나?”

 

 나의 말도 안 되는 횡설수설에, 커피숍 사장님 얼굴이 마치 팬티에 똥 싼 사람처럼 차갑게, 자포자기한 표정이 되었다.

 

 마치 갑자기 아껴둔 야구 동영상이 사라져서,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요새 뭐 힘든 일 있니?”

 

 “아뇨…”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저씨는 이제 내가 CCTV 화면을 보든 말든 관심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애꿎은 카운터 위를 손바닥으로 탁, 탁 짧게 내리쳤다.

 

 “커피 줄 테니까, 가서 아빠 드려~” 그는 '고삐리'한테 휘둘린 감정의 똥을 치우러 들어가려 했다. 어디로든 말이다. 나만 사라지면.

 

 “네…” 나도 어차피 생각이 많아졌기에, 더는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대화는 단조로운 동네 어른과 아이의 대화로 급선회해서는, 내가 커피를 들고 나가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으로 끝났다.

 

 ---

 

 커피를 들고 다시 오거리 중앙 상가 쪽으로 갈 수도 없었기에, 빌라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집으로 가서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었다.

 

 조금 전, 커피숍에서 본 단발머리의 곱상한 얼굴은, 정훈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를 붙잡고 시비를 걸었던 그 정훈이였다.

 

 나에게 ‘장애인 손가락 병신’이라고 놀리던…’아 그건 그 옆에 쫄따구가… 했구나.’

 

 여하튼 날 놀리고 밀치고 때리던, 그 정훈이었다. 머리가 되게 길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모범생에 반장까지 했던 아니었는데, 단지 ‘쫄따구’들 분위기에 휩쓸려 나를 괴롭히긴 했지만, 희주가 고추 먹는 모습을 본 몇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억에서 단번에 매치가 되었다.

 

 ‘저렇게 변했구나, 4년 만에.’

 

 금요일 영상기록 말고, 토요일 기록까지 봤으면 좋았겠지만, 아니 애초에 그게 더 궁금했었는데, 이미 희주의 남자친구 얘기로도 내 머리는 충분히 용량 초과인 상황이었다.

 

 '희주가 만나는 남자가 영양쌤의 그 남자라니' 다시 생각을 곱씹었다.

 

 그렇게 집 앞에 도착했다.

 

 

 

 

 

 

 

 

 

 

 

 

 

 

 

 

 

 

 

 

 

 

 

 

 

 

 19화. 희주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 소환. 저녁 먹고 다시 나가래]

 

 내가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너가 만나는 새끼, 혹시 이렇게 저렇게 재수 없게 생긴 그 새끼야?’ 하며 물어보고 싶었지만, 요 며칠 희주가 살짝 예민한 느낌을 받았기에, 쉽게 물었다간 ‘아닌데? 꺼져 미친놈아’라는 소리만 듣고, 아무런 확인도, 해결도 못 하고 끝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아빠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빠라면 희주의 말을 침착하게 들을 것이고 그리고는 나에게, ‘그래서 너는 이 사람을 어디서 처음 봤다고? 근데, 왜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하지?'

 

 '뭐라고?! 이 사람이 모텔에서 여자랑 나오는 걸 몰래(?) 봤는데, 너가 그 여자에게 섹슈얼한 판타지를 가지고 접근 중이라고?! 근데 그 여자가 너희 학교 영양사 선생님이라고? 이런 변태 같은 녀석을 봤나! 넌 앞으로 내 자식이 아니다!’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아빠가 마지막에 ‘내 자식이 아니다.’ 같은 말은 하지 않으시겠지만... 여하튼 나는 밝힐 수 없다. 그것이 그녀의 남자친구이든, 영양쌤과 관련된 일이든 간에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이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게 모든 일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 똥을 싼다고 꼭 배가 안 아파지는 건 아니다.

 

 “너 공부 안 하고 뭐 하냐?” 도대체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 갑자기 희주가 내 방문을 벌컥 열었다.

 

 “헉! 언제 들어왔어!?”

 

 “...낼모레가 중간고사인 건 알고는 있니? 왜 멍을 때리고 있냐, 이런 중요한 시국에?”

 

 물론, 그래도 똥을 싸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건 별개의 이슈니까. 계속 참으면 변비가 되니까. 내 똥을 마주해야 한다.

 

 “공부 중이었어. 아주 잠깐 눈감은 거야.”

 “지랄…. 아빠~! 화요일부터 시험인데, 희준이 공부 안 하고 앉아서 자요~!”

 

 “...희주야.”

 

 상황을 직시해야만 한다. 그래야,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드러난다.

 

 “뭐?”

 

 “네 남자친구, 내가 아는 사람 같아.” 장난기를 빼고, 조용히, 그리고 차분히 희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희주의 동공이 커졌다. 하지만 그 외 어떤한 제스쳐도 취하지 않는다.

 

 “....”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희주는, 곧이어 방문을 닫고 나갔다.

 

 솔직함. 그것을 똥을 싸는 것과 같다. 다만, 아무리 급해도 똥은 변기에 싸야 한다. 아무 데나 싸면, 아무 때나 싸면, 어디서건 언제서건, 똥이 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문제를 확인할 수는 있는 건 똑같지만, 아무 데나, 아무 때나 싸지른 똥은 치우기가 황이다.

 

 희주는, 그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요일)---

 

 일요일 아침, 아빠는 원래대로라면 일찍부터 시작하는 등산 모임에 나가셨어야 했었다. 복장은 등산 복장으로 다 차려입은 채로, 등산화까지 꺼내 놓으시고는, ‘어디냐고’, ‘아직도 집이냐고’ 물어오는 직장 동료들의 전화에 연신 ‘금방 갑니다. 죄송합니다’ 대답을 하더니, 수화기를 내려놓으셨다. 그리고는, 냉장고 문을 열어 고구마를 꺼내더니, 아침부터 고구마를 찌셨다.

 

 “아빠, 고구마 먹고 싶어?” 내가 분위기를 살펴보려 물었지만, 아빠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식탁에 앉아서 세상 잃어버린 표정으로 가스레인지 위, 찜발이를 넣은 냄비 속에서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고구마가 쪄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계셨다. 그리곤, ‘저 찜기 속 물이 혹시 이미 다 증발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희주가 들어왔다.

 

 “아빠?” 희주가 소파에 앉은 나를 아주 잠깐 보더니, 다시 식탁에 앉아 계신 아빠를 보며 태연히 말을 건넸다.

 “...어, 희주 왔구나” 내가 물을 땐 대답도 안 하더니, 희주가 물으니까, ‘방긋’, 하지만 애잔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응…. 뭐해?”

 “아, 등산. 안 가고 싶은데, 아빠 회사 전무님이, 아 참, 희주, 어 전무님 알지? 그때 집에 한 번 오셨던…, 어익후 전무님. 그분이 추진하신 거라, 가야 해서. 다들 사모님들이 뭐 나눠 먹을 것들 싸 오는데, 나만 빈손으로 가기가 좀 그러네? 흐흐.” 아빠는 나이답지 않게 ‘흐흐’ 웃으시며 말했다. 진짜 묻고 싶으신 건 마치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아빠 힘들겠다. 주말에도 회사 사람들 만나야 해서… 나 올라갈게. 다음 주 시험이라, 밤새웠어.” 희주가 목소리가 잠긴 듯 꾸역꾸역 말하며 발을 계단 위로 옮겼다. 나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래. 공부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아빠도 젊을 때, 엄청나게 공부 잘될 때는, 막 밤새고 그랬어.” 여기까지 말하는데, 희주가 3층에서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밖에서, 독서실에서 자기도 하고, 말이야.” 아빠의 말이 희주에게 닿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았다. 마치 소리 없는 방귀처럼 형태 없이 냄새만을 지독히 풍겼다.

 

 그리고서야, 이미 검게 그을려 타기 시작하는 찜발이가 들은 냄비 겉면을 보시고는, 가스레인지로 뛰어가셨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정신없이 맨손으로 냄비를 잡으려고 하시다가,

 

 “아이쿠, 고구마! 앗, 뜨, 뜨으~, 앗 뜨거!” 소리치셨다.

 

 쾅!

 

 달궈진 냄비를 손으로 옆에 싱크대에 떨어뜨려, 큰 소리가 났다. 희주가 3층 방문을 살짝 열었다. 나도 2층 거실 소파 위에 앉아 있어서 희주가 보인 것은 아니지만, 문이 열리는 소리로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냄비와 찜발이에 고인 물을 틀어놓았다.

 

 마음이 복잡한 순간에는 왜 그렇게들 물을 틀어놓는지. 드라마에서 샤워기 아래에서 ‘폼’ 잡는 사람들이 오버랩되었다. 친구 집 화장실에서 똥을 쌀 때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사람들의 모습도 오버랩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물소리는, 그 일정한 물줄기는, 소리 없는 방귀가 뿌려대는 나쁜 냄새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만들어내는 번뇌의 부스러기를, 어떤 식으로든 가라앉혀 준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정신을 차리신 듯, 서랍에서 두꺼운 락앤락 포장 용기를 꺼내시더니, 고구마를 몇 개 담고, 성큼성큼 현관 앞 신발장으로 걸어갔다.

 

 “희준아, 저 냄비 다 식은 거 같으면, 찬물 끄고, 옆에 접시에 담아놓은 고구마는 물 닿아서, 멀쩡한 건 몇 개 안 남았으니까, 먹기 전에 잘 보고…. 이따 희주랑 같이 먹고, 아빠는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시험인데 공부 열심히 하고.”

 

 목 높은 등산화에 마치 운동화 신을 때처럼 발을 욱여넣어 신으시더니, 가방 속에 좀 전에 찐 고구마를 담은 락앤락 포장 용기를 넣었다.

 

 그리고, 서둘러 나갈 것처럼, 현관문을 열더니, 잠시 주춤하시다가, 뒤를 돌아보고 현관 앞까지 마주 나온 나를 보며 비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희준아. 동생이 미안해서 그런 거야. 니가 알아야 해. 아빠는 너를 믿는다.” 아빠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엄마 없이 혼자서 우리 남매를 키우면서, 아빠는 이미 희주가 아빠를 너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본인의 행동이 정말로 공부만 하다가 왔더라도, 아니 (말도 안 되지만) 자식으로서 너무 잘해줘서 행여 주변에서 모두 희주 칭찬만 하더라도, 아빠는 걱정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희주가 알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항상 포지티브한 에너지로만 발현되진 않겠지만,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 온 게 아닐지도 모르는 날에는, 특히 미안했을 것이었다, 희주는 아빠에게. 그리고 아빠도 희주에게.

 

 똥을 싼다고 꼭 배가 안 아파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똥을 싸야만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계속 참으면 변비가 되니까. 소리 없이 냄새가 독한 방귀만 나오게 되면 안 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변기에 싸야 한다.

 

 내가 희주를 걱정한답시고, 솔직히 얘기해 보자고, 갑자기 남자친구 얘기를 꺼낸 것은, 어쩌면 내가 똥을 변기에다 싼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만이 알려줄 뿐이었다.

 

 아직 식탁 위엔 갓 찐 고구마가 몇 개 남아 있었다.

 

 ---

 

 남은 고구마 중 물에 거의 젖지 않은 것은 따로 접시에 담아두었다. 아빠가 찬물을 틀어놓으신 바람에 많이 젖은 고구마를 집어 들고 꾸역꾸역 먹다 보니, 사이다가 필요했다.

 

 내 방에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나갈 준비를 하면서, 살짝 희주 방문에 귀를 가져다 대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자나…?’

 

 그렇다고, 깨울 수는 없는 일. 오늘은 혼자 두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며시 까치발로 걸어 나와서, 현관문을 조용히 열고, 또다시 조용히 닫았다. 열쇠로 살며시 잠그고, 벌건 대낮에 마치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외부 계단을 따라 빌라 1층 현관까지 내려왔다.

 

 방안에서 거기까지 가는 데만 수분은 걸린 것처럼 느리게, 살금살금 말이다. 그리고 ‘빌라길’을 따라 커피숍 쪽으로 두어 발자국 내밀어 나아갈 때, 그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달그락.

 

 “....!!!!”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어디서나 들을법한 길거리 소음일 수도 있었겠다. 딱, 특정해서 이게 플라스틱 통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열쇠고리 장식이 ‘타닥’하고 부딪히는 소리인지, 사람마다 다르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

 

 달그락달그락. 또 들렸다.

 그리고 나오는 신발 끄는 소리.

 

 지이~익.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

 

 “끄으응~~ 흥”

 

 내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단번에 움직이지 못했다. ‘이렇게 밝은 일요일 낮에…, 설마! 말도 안 돼!!’

 

 그리고 또 들렸다.

 

 이번엔 훨씬 짧게, “끄흥.”

 

 ‘분명하다! 똥이다! 어떤 새끼가 똥을 싸는 중이다! 지금 이곳, 내가 서 있는 이곳, 바로 지척에서! 지금 똥을 싸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치 쿰쿰한 냄새까지 어디선가 피어나는 듯했다.

 

 ‘어쩌면 이놈이 아닐 수도…. 아니다. 의심은 필요 없다. 바로 이놈이다.! 확신한다.! 이놈이 우리 집 앞에 똥을 싸고 도망친 그놈이고, 바로 그날 내 몸을 오줌으로 더럽힌 그놈이다!’ 내 눈동자에 이례적으로 강력한 불빛이 번뜩였다.

 

 물론 겁은 났지만, 이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두 번째 신음으로 보건대, 그는 이미 똥을 다 쌌는지도 모른다. 잡아야 한다.

 

 모든 집중력은 오로지 귀에 담았다.

 

 그리고 내가 몸을 움직이려는 그 찰나, 내 등 뒤에서, 우리 집 빌라 문이 ‘타앙~’ 하고 열렸다. 희주가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듯 서둘러 문을 열고 나오다가, 얇은 철재 문이 계단 난간에 부딪혀 울리는 소리였다. 내 고개가 급히 돌아가고, 희주가 나오면서 나와 눈이 마주쳐 잠시 그대로 정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빌라길 방향, 내 앞쪽 세 번째와 네 번째 왼편 빌라 건물 틈 사이, 나와의 거리는 불과 30m? 아니 아무리 멀어도 40m.

 

 건강한 청소년에겐 언뜻 보기에 뛰쳐나가 손을 내밀면 금세 닿을듯한 거리. 거기서 딱 봐도 늘씬한 ‘기럭지’를 가졌을 것 같은, 발목이 튀어 나왔다.

 

 발찌.

 

 플라스틱, 나무, 그리고 알루미늄 혹은 그 비슷한 재료 무엇. 정사각형 모양의 비즈를 검은색 와이어에 이어 연결한 발찌.

 

 달그락 소리의 정체.

 

 온 세상에 ‘슬로우’ 마법이라도 걸린 듯, 그 발찌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매끈한 종아리가, 그리고 말아 올려진 바짓단에 반쯤 덮인 무릎이, 이어서 45도 각도로 이미 몸을 틀고 가속을 받기 시작한 오른쪽 궁둥이가 보였다. 탄탄하게 근육이 응집된 허벅지 뒤 근육이, 마치 오른발의 돋움과 동시에 튀어 오를 듯 힘이 응집된 캥거루의 허벅지처럼, 꿈틀댔다.

 

 몸이 빌라 틈에서 튀어나오면서 드러나는 하얀 티셔츠, 거기에 쫙 달라붙은 긴 척추 라인, 마치 어깨뼈를 탈골이라도 시킨 듯, 기형적으로 길어 보이는 팔을 휘저으며, 이제야 눈에 드러나는 그의 긴 머리. 어느새 방향을 틀어 나에겐 완전히 뒷모습만 보이기 바로 직전, 왠지 흩날리던 그의 긴 머리 사이로 보인 듯 안보인 듯 스쳐 간 그의 웃는 표정.

 

 만약 내가 본 게 맞다면, 정말 정신이 나간 미친놈만이 지을 수 있는 그런 웃음. 너무도 짧은 순간이어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미소였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내 눈에 들어왔다.

 

 

 

 

 

 

 

 

 

 

 

 

 

 

 

 

 20화. 추격전

 

 ‘희주는 아빠에게 얘기도 없이 밤을 밖에서 세고 들어와서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어딜 이렇게 서둘러 나가려는 거지? 마치 내가 집을 비우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라는 우려가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지금은 빌라 틈에서 캥거루처럼 튀어나온 저 멀어져가는 존재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이끌었다.

 

 “너랑은 이따 얘기하자.” 우선 희주에게 손을 흔들고 빌라길 방향으로 뛰기 시작. 좀 전에 저놈이 튀어나온 바로 그 빌라 틈을 힐끗.

 

 ‘...역시!’

 

 ‘똥이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라왔다.

 

 “이 X발 새끼….”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오면서, 뛰기 시작했다.

 

 ‘이미 나와의 거리는 거의 50m, 아니 어쩌면 그 이상.’

 

 ‘나의 백 미터는 빠를 땐 13초 컷. 대략 7초 정도 차이의 거리.’

 

 ‘7 초안에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수 있는 곳은? 없다.’

 

 ‘빌라 틈 2층 높이를 비호처럼 날아서 내려갈 수 있지 않은 한, 없다.’

 

 ‘그리고 나의 진정한 특기는 오래달리기. 괜히 오전 등교 버스를 놓쳐도 매일 거의 정시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저놈의 ’기럭지‘다. 매끈한 종아리, 캥거루 같은 허벅지, 그리고 기형적으로 길어 보이던 팔….’

 

 “거기 서!” 촌스러운 대사를 뱉으며 뛰었다.

 

 그는 조금 있으면 만화방 건물, 그리고 이어지는 커피숍을 지나칠 것이었다. 커피숍에서 ‘빌라길’은 끝나고,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오르막길 비포장, 왼쪽으로는 완만한 내리막길 좁은 2차선 대로, 그리고 그 끝에 이어지는 이 동네의 가장 번화가 오거리 중심가.

 

 그는 빌라 틈 사이로 뛰어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그는 커피숍에서 왼쪽으로밖에 방향을 틀 수 없다.

 

 커피숍 아저씨가 갑자기 코너에 보인다.

 

 “아저씨~!!!” 내가 크게 소리친다.

 

 “왜!” 아저씨가 바보처럼 크게 대답한다.

 

 그가 아저씨를 부딪칠 듯 스쳐지나 왼쪽으로 선회한다.

 

 아저씨가 ‘어이쿠~’ 하며 벽에 ‘쿵’ 부딪혀 튀어나와서는 내 앞길에 쓰러진다.

 

 ‘젠장.’ “아~ 쫌!” 내가 소리친다.

 

 코너를 돌자, 그는 이미 하굣길 버스 정거장을 지나쳐 내리막 가속이 붙었다.

 

 “졸라 빠르네, 똥싸개 새끼.” 오래간만에 끊었던 욕설들이 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는 빨랐다.

 

 하지만, 나도 이 바닥 10년 차다. ‘네가 설사 육상부라 할지라도, 규칙 없는 움직임이 난무하는 오거리에서 나를 완전히 제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순간이다. 그가 오거리에 다다라서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그는 감속하고, 난 더욱 가속하며, 우리 사이는 이제 불과 4초!

 

 예상해본다. ‘최소한의 감속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거리의 왼쪽 첫 번째길 여대 쪽! 찻길을 건너지 않아도 되는, 왼쪽 여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뒤에서 그를 따라오는 나도 내리막길의 오른쪽으로 미리 살짝 이동해서, 최소한의 감속으로 좌회전 코너를 노려본다!!’

 

 그가 멈춰서 고개를 두리번. 우리 사이, 이제 불과 2초!

 

 그가 방향을 정하고 다시 스퍼트!

 

 그리곤 찻길을 가로질러 무단횡단!

 내 예상과 달리 그가 뛰어간 방향은 왼쪽 두 번째길! 학교 통학 버스가 지나가는 대로변, '파터'와 모텔촌이 함께 있던 곳. 좀 더 나아가면 상가가 끝나고 고속도로. 고가 도로만이 즐비한 황무지 같은 곳.

 

 ‘그곳은 오픈 필드라, 네가 도망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섣불리 속으로 승리를 예감했다.

 

 끼익!

 

 그가 찻길을 거의 건넜을 때 뒤늦게 옆에서 들어오던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그는 놀랍도록 뛰어난 점프로, 펄쩍 튀어 올라 가로수 기둥을 붙잡고, 다리를 든 채 봉춤 추듯 회전! 그리고 기계체조 선수처럼 다시 튀어 나가듯 도약.

 

 멈춰선 차 때문에 내 앞길이 막혀서, 예상외로 나도 급브레이크!

 

 기사 아저씨가 운전석을 나와서 차를 돌아 뛰어가는 나를 보며, ‘야 이, 미친 새끼들아’를 시전.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나도 다시 스퍼트!!

 

 우리 사이, 다시 4초, 아니 5초.

 

 ‘포기하지 않는다. 잡는다, 너.’

 

 내가 각오를 다지고, 달리기 호흡이 흔들리지 않도록 페이스를 잡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곧 있으면 모텔촌 상가길도 끝이다. 그 뒤로는 자동차 도로만 있고, 어디 몸을 숨길만 한 변변한 건물조차 없는 곳, 고속도로와 고가 도로만 있는 로터리다!’

 

 그는, '파터' 건물도 지나, 중간중간 위치한 모텔 건물 샛길 틈바구니로도 몸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오로지 직진이었다.

 

 벌써 거의 10분 넘게 뛰었다.

 

 이제 대로변 양옆으로 상가는 없었다. ‘너 내가 잡았어!’ 하고 생각하며 마지막 힘을 다했다.

 

 그때, 그가 너무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갑자기 점프하더니 눈앞에 놓인 고속도로 고가의 담을 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을 고가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였다 이 고속도로를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가 '아래로' 계속 직진해서 로터리에서 고속도로 진입로 방향으로만 '차로 운전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고속도로 양옆에는 가드레일과 함께, 횡렬로 철제 뼈대에 탁한 색깔의 플라스틱 보호 창이 붙어있는 ‘담’이 설치되어있었다.

 

 그런데, 그가 그 담을 부여잡고 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건 반칙이잖아!” 그의 턱밑까지 쫓아왔는데, 완벽한 달리기로 거의 다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한탄 섞인 표현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물론 나도 따라서 올라 갈 수야 있겠지만,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를 들으면,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특히 저 플라스틱 보호 창 색깔이 너무 탁해서, 그 너머 반대편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이 공포감을 가중시켰다. 뛰어 넘어가면 바로 차에 치일 수 있기 때문에, 아니 얼마나 사고가 크게 날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기에, 나는 할 수 없었다. 그가 저러고 있는 것도 멈춰야만 했다.

 

 “야! 안 따라갈 테니까, 그냥 내려와 이 병신아! 거기 진짜 위험해! 너 그러다 죽어!!”

 

 내가 이제야 거의 다 따라와서, 고속도로 고가 담 밑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뒤 한번 쳐다보지 않고, 펄쩍 뛰어내렸다. 담 뒤편으로. 실로 대범하게.

 

 저 뒤편에, 차량이 지나가지 않는 도보가 별도로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땅에 ‘쿵’하고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빠르게 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5분은 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멍해졌다. ‘똥 몇 번 싼 거 가지고, 저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남의 집 앞에 몇 번씩이나 저렇게 똥오줌을 쌀 정도로 미친놈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는데, 그의 발찌가 담벼락 밑에서 보였다.

 

 아마 반바지 채로 담을 급히 넘다가 걸렸으리라 싶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발찌 따위는 경찰서에 가지고 가도, 아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발찌를 주머니에 넣고, 나는 다시 오거리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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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 잡채밥 하나 주세요”

 오거리 인근 중국집 수정궁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주문했다.

 

 “혼자?” 깨끗하지만 빈티 나는 마스크의 홀 매니저 아저씨가 나를 보고 묻더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방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마치 자기가 여기 대장이라는 마냥.

 

 “고추 하나!”

 그리고는 나를 보며 친근감 있게 물었다.

 “근데, 우리 고추 맛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아 그게, 저기 여기 혹시 사장님 지금 계시나요? 아니면 혹시 언제 들리실지라도….”

 “사장? 난데?” 홀 매니저 아저씨 얼굴에 친근감이 사라졌다.

 

 “아, 그런가요?”

 “뭐가 ‘그런가요’ 야. 누구 찾아왔는데?” 이젠 적대감마저 느껴진다.

 

 “그게. 여기 고추 납품하시는 분이 사장님이시라고. 지난번에, 저기 오거리 위쪽, 빌라길 쪽에서…”

 

 “...아, 오 사장? 그래, 그래 여기 이거저거 납품하시고?”

 “네….”

 “아 그거 듣고, 고추 잡채 시킨 거구나? 그 태양초, 그거?”

 

 “...아. 네….” 이 사람은, 아무리 봐도 한 가게의 사장님의 포스가 없어 보였다.

 

 “그래…. 뭐 그 형님하고, 나하고 거의, 아주 거의 같이 시작을 했지, 그러니까, 뭐 둘 다 사장님 같은 거야.” 그가 연신 나와 눈을 마주치며, 내 동의를 구하듯 말을 이었다.

 

 “봐봐, 지금도 그렇고, 거의 언제나 내가 여기 있지. 사장님처럼.” 그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마치 자신의 자태를 훑어보라는 듯이 제스처를 취했다. 내가 다시 보니, 홀 매니저급도 안되어 보였지만,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빌라 옥상’의 ‘양복 고추맨’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마치 우리가 오늘 만났어야 하는 운명인 것처럼. 손에는 예의 그놈의 마른 홍고추를 조몰락거리면서 말이다.

 

 ---

 

 “어? 사장님, 웬일로 가게에…” 홀 매니저도 놀랜듯했다. 하지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폼이, 역시 그는 이 가게 사장님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 어느 가게 사장님도 아닐지도.

 

 “방에 손님들 계시지?” 양복 고추맨이 홀 매니저 아저씨를 보며 물었다.

 “네, 저기 ‘고추방’에 .”홀 매니저 아저씨는 제일 큰 방을 가리킨 후, 고개를 갸우뚱했다.

 

 양복 고추맨, 그러니까 진짜 이 중국집 수정궁의 사장님이, 그 답을 듣자, 양복 상의 끝단을 한번 탁 잡아 펴듯 당기고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제일 큰 방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정궁 가게는 제일 큰방 이름을 ‘고추방’이라고 붙였고, 그 옆에 ‘마늘방’, ‘생강방’ 그리고 ‘양파방’ 이라고 이름을 적어 붙인 ‘룸’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인사를 건넸다. 모양새가 지금 아니면, 말도 못 걸게 될 것 같았다. 내 질문은 간단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저씨.”

 

 사레라도 걸린 듯한 나의 갈라지는 목소리.

 

 그가 주춤하더니, 내 얼굴을 쳐다봤다. 바로 못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알아봤는데 그다음 질문까지 생각하시는 것인지 모르지만, 내 눈을 또렷이 쳐다봤다. 내가 다음 말을 먼저 꺼내야만 할 것처럼.

 

 내가 잠시,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우선 뱉고 보자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죄송한데요. 지난번 밤에, 고추 말리실 때, 저 보셨던 날요. 그날, 저 말고 다른 누구라도 얼굴 보신 적 있으세요?”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겨우 그런 거로 지금 앞길을 막았냐는 듯한 표정.

 

 “아니.”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후, “밥 먹으러 왔니? 잘했네, 고추 잡채밥 먹어”라고 말하며 다시 발을 옮기려 했다.

 

 “그럼 혹시, 이 사람은 못 보셨나요?” 내가 핸드폰에 찍어둔 정훈이 사진을 보여줬다. “CCTV에 찍힌 모습을, 모니터를 또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거라, 사진이 좀 흐리긴 하지만…”

 

 그가 자꾸 그의 볼일을 막는 나의 행동에 신경이 매우 거슬려 보였지만, 길에서 만난 것도 아니고 그의 가게에 찾아온 손님이어서 그런지, 말투는 덤덤히, 하지만 행동은 매섭게, 핸드폰을 내 손에서 건네받아 들고는, 사진을 뚫어지라 봤다.

 

 “모르는 사람.”

 “진짜요? 그날 못 보셨어요? 이런 발찌 차고, 제가 숨었던 빌라 틈에서 커피숍 있는 차도까지는 거리가 좀 되었는데…”

 

 내가 고속도로 담에 떨어졌던 발찌를 손에 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관심이 없었다.

 

 “학생 뒤에 있던 사람 말곤, 나도 고추 말리다 뒤늦게 봐서 말이지. 그래서 뒤에 있던 사람 알려준 거잖아, 바로 내가. 어찌 되었든, 학생 큰일 날 뻔했던 것을 내가 구해준 거 아닌가?”

 

 ‘그게 무슨…’ 궁금증을 해결하러 왔다가, 대뜸 빚이라도 갚으라는 소리를 듣게 생긴 건가 싶었던 그때.

 

 벌컥.

 

 ‘고추방’ 방문이 열리고, 그의 말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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