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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검의 성녀는 검에게 사랑받는다
작가 : 강이레
작품등록일 : 2020.8.28

몰락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하게 위기에 빠진 백작 집안의 장녀 레이오나는 선조를 본받아 기사의 길을 걸으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검을 잡아보지만, 그 순간 놀랍게도 하늘에서 내려온 화려한 조명이 그녀를 감싸는데...?
"내가 검의 성녀라고?"
하루 아침에 성녀가 된 소녀의 로맨스 판타지가 시작된다!

 
프롤로그 - 천년 전
작성일 : 20-08-28 20:59     조회 : 377     추천 : 0     분량 : 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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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명의 죽어가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시체와 피 웅덩이 한가운데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사실 그건 검이라 하기엔 너무나 컸다. 크고, 두껍고, 무거웠다. 다만 조잡하지는 않았다. 검에는 도신에서부터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무늬가 세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래봤자 잘 꾸민 철퇴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평가도 아닌 검의 주인인 그녀 자신의 평가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서 철퇴는 검이 되었다. 그 누구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여자의 주위에 쌓여있는 시체더미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모두가 반으로 갈라 죽은 시체이면서 깔끔한 절단면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검과 그녀가 해낸 업적이었다.

  여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먹구름 같은 검은 연기만이 가득했다. 숲이 불타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숲이 불타고 있다면 지금 당장 뛰어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일 텐데 여자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싸우는 와중에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몸에 붙어 있는 게 용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여자의 부상은 심각했다.

  그러니 그녀에게 남은 일은 불꽃의 형태로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몹시 지루한 일이기 때문에 여자는 심심해하다가 문득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황에 무슨 짓이냐고 잔소리할 사람도 근처에 없었다. 그들은 이미 숲을 무사히 빠져나간 이후였다. 그들은 모두 애타는 심정으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디 그녀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하고 있었다.

  여자는 노래를 불렀다. 성가를 부를 때 같이 젠체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소녀 시절의 소박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요정의 소풍 바구니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은으로 된 식기와 황금 사과가 들어있지요.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요정이 사과를 먹고 씨앗을 뱉은 자리에

  사과나무가 자라고 황금 사과가 열렸어요.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가장 예쁜 사과 하나를 따서 보자기에 싸

  집에 돌아가니 너무 예쁜 아기천사가 됐어요.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여자가 부른 노래는 동요였다. 그녀가 어린 시절에 자주 부르던 것이었다.

  정말로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곁에 없는 어머니를 느끼고 싶을 때마다 부르던 노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부른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부른 것이 벌써 몇 년 전이었다. 그럼에도 가사를 헷갈리는 일 없이 완창할 수 있었다. 그만큼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노래였다.

  후렴구까지 부르고 여자는 만족했다. 마지막에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무의 그늘 밑에서 기다려준 남자에게 감사했다.

  “고마워.”

  여자의 말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여자처럼 손에 검을 들고 있었고, 피 웅덩이 속의 여자 못지않게 온 몸이 피로 물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특징들보다 먼저 여자의 눈에 띄는 것은 얼굴이었다. 이제 와서 나타날 사람은 단 한명 뿐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혹시나 아니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눈앞의 남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였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었다. 자신이 불꽃 따위가 아닌 그에게 죽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불운을 저주하는 것 같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상황에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거야.”

  고맙다는 말은 물론 노래를 끝까지 다부를 수 있게 기다려 준 것에 대한 감사였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마주보게 된 지금에 와서는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겸하게 되었다.

  하지만 죽여주러 와줘서 고맙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노래에 대한 것만 말했다.

  “끝까지 다 부를 때까지 기다려줬잖아.”

  남자는 여자의 말에 탄식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평소와 같이 태연한 그녀의 모습이 남자를 몹시 아프게 만들었다. 여자는 남자가 탄식하는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말했다.

  “왜 그런 얼굴을 해…….”

  마치 달래주는 듯한 여자의 말에 남자는 눈을 부릅떴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이 순간 그가 느끼는 감정은 한 두 마디로 표현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자는 어떻게든 진정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무리였다. 그는 결국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이걸로 만족해!?”

  남자의 말에 여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는 뜻이었다. 남자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그러지 말아달라는 듯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는 이런 결말을 맞아도 될 인간이 아니야. 이건 몹시 부조리하고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그러니 만족한다고 말하지 마. 네가 그러면 이 사태가 마치 일어나야만 했던 일인 것 마냥 정당화되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되면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세상이라는 것이 발칵 뒤집혀 버리니까! 구더기만도 못한 쓰레기 같은 게 되어버리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네가 살아주길 바라니까……!

  남자가 말로 표현 못한 진심이 애절한 질문 하나에 전부 축약되어 여자에게 전해졌다.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차마 밖으로 내뱉지는 못한 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었다.

  각오했다고 생각했었다. 언젠가 자신이 최후를 맞을 때 누군가가 곁에 있어줄 수도 있다고,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 슬퍼해주고 분노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느낄 감정을 가늠하기도 했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대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보기 전에 상황을 헤아려보려 한 것 자체가 오만이었다. 실제로 생각했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이 그녀를 최후에 무너트리려 했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마지막에 가서 후회하는 것 같이 울어버리는 것이야말로 꼴사나운 짓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떳떳하다면 결코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남자가 자신의 진심을 질문에 축약했던 것처럼 여자가 지금까지 어떤 각오로 살아왔는지를 대답으로 나타냈다.

  “이 결말이 그때의 선택에서부터 약속된 필연이니까.”

  “……!”

  남자는 여자의 말에 숨을 삼켰다. 속에서 치밀어 오른 격정에 목이 메었다. 그러나 반드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겨우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 너는…… 매 순간 오늘을 기다렸어? 한 순간도 잊지 않으며 살았어? 웃는 순간에 조차?”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 침묵은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남자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웃으면서 오열했다. 그러다가 분을 못 이겨 발치의 돌을 걷어차며 울부짖었다.

  “아아아아악!”

  걷어차인 돌은 몇 개의 나무를 지나치며 날아가다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불꽃이 점차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나이젤.”

  여자의 부름에 나이젤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어느새 눈물이 뺨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부탁할게.”

  나이젤은 이를 악물었다. 마음과 같아서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싶었다. 다가오는 불꽃에 몸을 맡겨 분사하는 것도 매력적인 선택지로 느껴졌다. 최소한 지금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의무라는 것은 빌어먹을 왕이 내린 것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누구보다 눈앞의 그녀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이젤은 검을 들고 여자에게 다가갔다. 검으로 목을 내리치기 좋은 위치에 섰다. 살아있는 그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순간, 그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

  그 어느 때보다도, 여자는 강하게 부정의 의사를 담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후회는커녕, 무엇보다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

  나이젤은 검을 들어올렸다. 검을 쥔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이런 근거리에서 검이 빗나갈 일은 없었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진심도, 각오도 모두 서로에게 전해졌다. 남은 것은 비극을 완성하는 일 뿐이었다.

  다가온 불꽃이 끝내 널브러진 시체 하나를 태우는 순간, 검이 내리쳐졌다.

  그러나 검의 은광이 여자의 목에 내리꽂히기 직전, 나이젤의 목소리가 여자의 귀에 먼저 닿았다.

  “―나한테도 행운이었어.”

  그 순간 여자는 지금까지의 모든 삶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나의 인생은 의미가 있었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천 년 동안 깨지지 않을 믿음과, 천 년 동안 이어질 후회가 시작된 날이었다.

 
작가의 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작품 소개랑 프롤로그의 분위기가 너무 다르지만, 곧 가벼워집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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