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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절망을 씹고 멸망을 뱉다.
작가 : 백익
작품등록일 : 2020.6.30

멸망의 길로 향하는 세상. 생존자들로 이루어진 유일국 '일티니어' 에서 발버둥 치다가 끝내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멸망시킨 존재의 이야기.

 
3.희생
작성일 : 20-08-26 06:11     조회 : 171     추천 : 0     분량 : 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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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겨라! 다시 나에게 몸을 넘겨!

 

  거대한 의지가 나의 숨통을 조르고 정신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머리속에서 울려퍼지는 강렬한 의지는 무방비한 내 육체를 빼앗고 나의 정신을 집어삼키기 위해 소름돋는 기운을 퍼트렸지만 나는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이 인간. 아무리 단련해도 쉽게 부러지고 무너지는 허약한 몸뚱아리를 가진 생물... 거대한 의지에 몸을 맏기고 간신히 떠올랐던 나약한 인간의 정신은 다시 거대한 의지 속으로 침식되어갔다.

 

  "허, 억! 커... 으윽! 하아, 여기는? 그건 꿈?"

 

  잠에서 깨어나 막혔던 숨을 격하게 내쉬며 내 몸을 연신 더듬었다. 인간이 아닌 육체. 잠든 사이에 내면 속에서 올라와 나의 정신을 집어삼킬 내부의 적.

 

  불쾌한 기분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와중에도 정신은 시릴 정도로 맑아졌다.

 

  "정신 차려야 한다. 불필요한 잡생각은 비우고 머리를 맑게 하면 지배당하지 않을거야."

 

  방금전에 겪었던 폭주한 그로걸링 공생체의 공격은 인간의 의지로 저항할 수 없는 힘이었지만 저항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불안했던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아직 어두운걸 보니 너무 일찍 일어난건가.'

 

  방금전의 일이 생각나 다시 잠들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나 버렸다. 잠 잘 수가 없어 어제 할아범들과 나눴던 대화를 회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석상에 봉인되어있던 괴물이 그로걸링들을 학살했는데 우리의 무기로 그 괴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걸링들이 공격해도 상처하나 없는걸로 봐서 그 괴물도 인류의 무기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놈은 무언가 목적을 갖고 깨어났고 그동안 숨겨져 있던 건축물로 향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그로걸링들은 시설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진원지로 향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판단해서 끼어들지 말지를 결정해야해.'

 

  "말이 쉽지. 무슨수로 끼어들어? 애초에 상대도 안되는데."

 

  애시당초 게임이 안되는 싸움이었다. 인류는 무력했고 밀려난 인류를 대신해 강력한 괴물들이 이 땅의 지배자 자리를 놓고 겨루는 전쟁터였다.

 

  '놈들의 싸움에 우리가 낄 자리는 없다.'

 

  냉정한 말 이지만 현실이었고 사실이었다.

 

 

 

 

  "방법이 있다."

 

  "머크러비! 이 노망난 새끼가!!!"

 

  날이 밝자마자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는데 시작한지 10분도 되지않아 싸움판으로 변해버렸다.

 

  "이봐 한. 이 방법밖에 없어. 자, 이 손은 놓고 지성인답게 대화로 풀어보자고."

 

  "미친놈이! 그딴걸 해결책이라고 내놓은거냐?! 뭐? 리오의 그로걸링 공생체를 활성화시켜 다시 폭주하게 만들어서 다른 그로걸링들을 흡수해 힘을 키우고 괴물을 상대한다고? 이거 개 또라이 아니야?"

 

  한 아저씨가 소리치며 머크러비 박사의 멱살을 다잡고 흔들었다.

 

  "박사님 진정하세요."

 

  보다못한 아이샤가 아저씨를 말렸고 힘에서 밀린 아저씨가 떨어졌고 분에 못이겨 주변 물건들을 머크러비 박사에게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지금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놓여있다. 새들을 먹고 변형된 신종 그로걸링들은 행성의 외기권에 자리잡아서 해마다 위성들을 떨어뜨리고 있지. 우리는 우주로도 도망갈 수 없어! 우리는 그로걸링들이 점령하다가 남긴 땅과 하늘만 가지고 비루하게 살다가 놈들의 발에 짖밟힐 미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어. 그로걸링들을 학살하는 새로운 괴물이 나타났고 그로걸링들을 흡수할 새로운 존재가 나타난거다! 이 천금같은 기회를 살릴 생각을 해야지 인권이니 뭐니하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망칠 생각을 하고있어!"

 

  한 아저씨가 던진 물건에 맞아 이마에 피가 흐는 상황인데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소리친 머크러비 박사가 주변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기 있는 모두 다 말해봐라! 자네들은 방법이 있음에도 눈을 돌리고 얌전히 멸망을 받아들일 수 있나?! 없지? 왜냐, 희망이 생겼으니까! 희망이 없었다면 멸망을 담담하게 받아들였겠지! 하지만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생겼다! 성공하면 그로걸링과 그 괴물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이 행성에 인류가 평화롭게 살아갈 터전을 만들 가능성이 생겼단 말이다!"

 

  "개소리 하지마라! 지금 네가 하는 말은 인류에게 생긴 희망의 불을 스스로 꺼버리는 행위다! 더 좋은 방법을 짜낼 생각이 없는건가!"

 

  "프흐흐흐. 우리한테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 석상의 괴물은 몇일 전부터 무언가를 시도하기 시작했고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그로걸링들은 괴물과 전투를 이어가고있다. 괴물은 시설을 방어하면서 그로걸링들을 막아내고있지. 그리고 아린 리오! 자기 몸상태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겠지?"

 

  "......"

 

  나는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엔 우리가 너무 늦었다. 괴물의 행동으로 봤을때 저 정체모를 시설은 그로걸링들을 전부 지워버릴 미지의 무기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성을 잃었던 리오처럼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우리를 지나야하는 그로걸링들도 수만마리가 넘지. 게다가 리오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성을 잃고 날뛸 위험이 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여유롭게 내가 내민 해결책이 아닌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나?"

 

  머크러비 박사의 주장에 반론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현실이 그러했고 틀린말이 아니었다. 시간은 없었고 리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게다가 새롭게 등장한 지능있는 괴물이 준비하는 무언가도 두렵다.

 

  이 극한의 상황속에서 사람들의 머리속에 떠오른 단어는 '희생' 이었다.

 

  이미 인간의 몸이 아닌 아린 리오가 희생해 준다면?

 

  실패할 수 있지만 성공한다면 현재와 미래에 밝은 희망이 될 수 있었다.

 

  "꿀꺽."

 

  사람들의 시선이 천천히 나에게 향했다. 오직 아이샤와 한 아저씨만이 흔들림없는 표정으로 머크러비 박사를 바라보았다.

 

  툭.

 

  "대장님."

 

  그녀가 속삭였다. 더 말하지는 않았지만 뒷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후."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회의실 안을 가득 채운 이상한 분위기를 풀기위해 몸을 움직였다.

 

  내가 움직이자 잠시 멍하니 있었던 병사들이 총구를 내게 겨누며 멈추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머크러비 박사에게 다가갔다.

 

  "박사. 내가 어떤말을 할지 잘 알고 있겠지?"

 

  "잘 알고있지."

 

  참 얄미운 노인내다. 언제나 잔인할 정도로 불가능한 임무를 내게 부여하면서도 반드시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거라고 확신한다.

 

  "잘 알고 있겠지만 내 그로걸링 공생체는 온전한 그로걸링들을 흡수할 수 없다."

 

  "그건 이미 해결책을 마련했다. 여태껏 얻을 수 없었던 완전한 그로걸링의 시체. 공생체는 시체를 흡수해 힘을 쌓게 될거다. 계속해서 흡수한다면 온전한 그로걸링도 흡수할 수 있겠지."

 

  말은 참 쉽게 한다. 티끌같은 그로걸링 공생체 몇개를 흡수한 것 만으로도 의식을 뺏기고 폭주했는데 온전한 그로걸링의 시체를 흡수하면 폭주를 안할까? 이 할아범은 나를 믿는건지 아니면 그냥 막무가내로 써먹는건지 전혀 모르겠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로걸링 시체를 전부 흡수해 완전히 정신을 뺏긴다 해도 이후 살아있는 그로걸링들을 흡수해서 석상의 괴물을 막을 가능성이 생기는 거니까. 이런 몸뚱이, 살아남아도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두려움만 안겨주게 될 테니 이렇게 써먹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잠시 시간을 주시겠어요? 8시간. 딱 8시간동안만 주인님과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요."

 

  "... 좋다. 그럼 6시 30분... 아니. 저녁 8시에 다시 돌아와라."

 

  노인내가 순순히 아이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내가 도망가지 않을거란 믿음이 있어서인가.

 

  아이샤는 머크러비 박사의 말을 듣고 고개만 한번 끄덕인 체 나의 거대한 새끼손가락을 잡고 회의 밖으로 나섰다.

 

  복도를 걸어 기지 밖으로 나가는 동안 나와 아이샤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거지?'

 

  그녀는 분명 나에게 도망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신호를 무시하고 머크러비 박사의 실험에 참가하기로 결정했고.

 

  '어째서 도망가지 않는거냐고 물어라도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주변이 시끄러웠다.

 

  기지를 나오고 얼마 걷지 않아 일반인들이 돌아다니는 거리가 나타났다. 그 길목위로 거대한 그로걸링 괴물이 나타났으니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부 시민들이 급히 어디론가로 전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군대나 경찰에게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와 아이샤의 발길을 막는 군인들이나 경찰은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군인들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고 경찰들은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을테니 막을리가 없지.

 

  "대장님."

 

  한참을 걷다가 작은 공원에 도착한 아이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장님은 항상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하잖아요. 마치 영웅처럼요."

 

  그녀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자신도 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거 싫었어요. 항상 위험한 전장에서 앞장서고, 대장님만 크게 다치시고... 팀원들이 폭주했을때도 먼저 나서서 막고. 그러다가 자아를 잃고 일티니어에서 버려지고. 그렇게 희생만 하니까 이번에도 사람들이 대장님만 바라보고 희생하라 하는거잖아요. 저는 싫어요. 싫은데, 대장님은 제 말 안들으실 거잖아요? 영웅처럼 또 희생하실거니까... 그러니까 안말릴거예요."

 

  조곤조곤 얘기하는 아이샤의 두눈에 눈물이 맻혀 있었다.

 

  스윽.

 

  "나는 딱히 영웅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부터 그로걸링 한테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사람들을 많이 봤고, 나도 그렇게 두분을 떠나보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런 슬픔,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 결과 자연스럽게 남들 앞에 나서서 그로걸링들을 상대했고 지키게 된거다. 딱히 튀고 싶어서 또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한게 아니야."

 

  손가락에 휴지를 끼우고 아이샤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요즘 세상에 그로걸링한테 가족이나 친척들이 죽지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싶지만 은근히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나와같은 고통을 겪지 않고 무사히 삶을 누렸으면 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평화를 온전히 누리기를 바랬다.

 

  그건 내가 몸 담고있었던 팀의 대원들 전부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머크러비 박사의 무리한 임무도 아무말 없이 소화했고 대원들의 희생을 최소화 했으며 모든 대원들이 전사했을때도 카메라 앞에 나서서 희망을 입에 담았다.

 

  "이제 11시다. 저녁 8시까지 너랑 시간을 보낼려면 하루를 다써도 부족해. 이럴 시간이 없지? 자, 어서 돌아다니자. 그동안 못해준걸 전부 해줄려면 시간이 빠듯하니까."

 

  스윽.

 

  아이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내 얼굴과 내민 손을 보더니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그녀가 나를 이끌었듯이 나도 그녀를 끌고 시간을 보냈다.

 

  인생에 다시 없을 귀하고도 짧은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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