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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맨싱 사가 : 백발마녀전
작가 : 백발마녀
작품등록일 : 2020.8.23

똥싸개, 스토커, 시너테러범을 상대로 성장하는 쌍둥이 남매와 친구들의 이야기.

 
9화 ~ 12화
작성일 : 20-08-26 01:21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2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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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코와붕가

 

 [우리 공부하러 독서실 간다. 연락하지 마라.]

 

 ‘이럴 수가….’ 마치 눈앞에서 범인들을 놓친 심정이었다.

 

 ‘심심한데…’ 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맞은편 모텔의 건물 주차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리만 보이는 모텔 특유의 주차장 입구.

 

 ‘어? 누가 나오나? 이 시간에?’

 

 곧이어, 젊은 남녀가 스윽 걸어 나왔다.

 

 ‘아 부럽다~ 벌건 대낮부터…, 설마 이 시간부터 코와붕가를…?!’ 혼자 멍하니 생각했다.

 

 그러다, 여자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이런! 우리 학교 영양사 선생님이 아니던가! 아니, ‘무슨 학교 선생님이 학교가 지척인 곳에서, 학생들이 보면 어쩌려고. 모텔에서!’

 

 사실 자기 돈을 내고, 어디 불법 도박장을 간 것도 아니고, 평일도 아니고 주말인데, 뭐가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분명히 ‘꼰대’들이 보면, 혈기왕성한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안 좋은 영향을 간접적으로나마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다시 말해서, 그만큼, 나의 호기심은 자극되었다.

 

 첨에 영양사 선생님 얼굴만, 표정만 자세히 관찰했다. 학교에서처럼 단아하고 예쁜 인상이었지만, 진하게 화장을 하셔서 그런지, 이국적으로 요염한 색감이, 수줍은 듯한 표정과 함께,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반짝이는 눈웃음에 누구든 홀릴 듯한 모습이었다. 멀리서 보는데도 홀려서, ‘선생님!’하고 소리쳐 부를 뻔했다. 그때, 옆의 남자 얼굴에 햇볕이 내리쬐면서, 남자의 얼굴 윤곽이 드러났다.

 

 아주 세련된 시인 같은 느낌, 부드러운 눈매, 턱선, 바람에 살살거리는 머리카락은 햇볕에 틈틈이 반짝였다. 넓은 어깨와 달리, 고운 피부에 큰 키까지. 이 감정의 발로가 무엇인지, 질투인지 육감인지 모르지만, 잠깐이었지만, 아주 잘생긴 재수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눈빛을 느꼈는지, 재수 없는 놈이 길 건너에서 내 쪽을 쳐다보려는 찰나, 나는 고개를 돌리고 앞에 세워진 자동차 유리에 얼굴을 비춰보는 척했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갑자기 기분이 아주 초라해졌다.

 

 ‘나는 언제 저렇게 멋져지지.’ 차오르던 자괴감은 차창에 두고, 다시 고개를 들자, 영양사 선생님과 그 남자는 이미 오거리 중앙 상가 쪽으로 걸어가고 없었다.

 

 나도 저 방향으로 어차피 가긴 해야 하지만, 왠지 지금 출발하면, 우연히 저 남자와 다시 마주치기라도 하면, 괜히 따라온 것처럼 오해를 살까 봐, 잠시 주변은 서성거렸다.

 

 그러다, 자연스레 샛길을 지나, 파출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아직 저녁 시간으로는 좀 이르다는 생각에, 갈 곳도 딱히 없어서였을 뿐이었다.

 

 ---

 

 “안녕하세요….” 문을 빼꼼히 열면서 내가 조용히 인사했다.

 

 “무슨 일…. 이죠 ?”

 

 파출소 안에서 경찰 한 분이 앉아서 나를 향해 물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 저기…, 김순경 경찰님…, 만나 뵈러 왔는데요….”

 

 “나도 김순경인데…, 누구?”

 

 ‘띨’하게 생긴 게 내 사건에 관해 물어도 잘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눈썹에 흉터 크게 있으신…. 무서운 김순경 님이요.”

 

 “아아. 큭, 그래, 무섭지. 김원효 순경… 순찰 나갔어. 앉아 있어. 급한 거면, 나한테 얘기하면 내가 전달해주고.”

 

 “아, 기다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핸드폰을 들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토요일 늦은 오후, 한적한 파출소라 그런지 ‘띨’하게 생긴 김순경도 나를 내쫓진 않았다.

 

 30분쯤 뒤, 내가 한참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데, 김원효 순경이 들어왔다.

 

 “덥네! 벌써 낮에는. 다 어디 갔어?” 모자를 벗으며 김원효 순경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띨’하게 생긴 김순경이 먼저 “순찰” 그러곤, 턱으로 나를 가리키며, “손님”이라고 했다.

 

 “...누구…?” 내가 교복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그가 외근 후 바로 ‘손님’을 맞기가 싫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모르는체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는 나를 한 번에 못 알아보는 듯했다.

 

 “저 그저께, 집 앞에 똥 싼 놈 때문에 CCTV….”

 

 “.....아, 그래! 저쪽 커피숍 빌라길. 안 그래도 거기서 오는 길이다.”

 

 “아 왜요? 제가 신고한 거 때문에요?” 내가 호들갑스레 물었다.

 

 “아니, 거기서 어제…, 넌 그 빌라길 살면서 얘기 못 들었니?”

 

 파출소에 나를 포함해 겨우 대여섯 명뿐인데, 조심스러워 하며 김원효 순경이 말했다, “거기 어제 특수상해 사건이 있었어. 너도 밤에 일찍 일찍 다니고, 항상 조심하고.” 걱정을 해주는 건지, 협박을 하는 것인지 모를 톤이었다.

 

 “어제 눈에다 시너 부은 새끼?” ‘띨’하게 생긴 김순경이 책상 위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말했다.

 

 “응…. 여하튼, 넌 왜 왔어?” 왠지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디테일’까지 방금 ‘띨순경’이 말한 것 같았다. 역시 ‘띨순경’이었다.

 

 “아, 그 우리 집 똥 싼 놈… 사건 접수한 다음에 어떻게 되었나 해서요.”

 

 “야…, 아니 학생 이름이 뭐라고 했지?”

 

 “정희준이요”

 

 “그래 희준 학생, 내가 ‘야’라고 해서 미안하고, 그때 먼저 나한테 ‘경찰 형, 경찰 형’ 하니까 나도 모르게 편하게 대하게 되었네, 그건 희준 학생이 이해하고, 그 너가 얘기하는 똥 싼 사건은, 지금 강도상해 사건도 CCTV가 없어서 못 잡고 있는데, 지금 희준 학생 집 앞에 똥 싼 놈을 어떻게 잡겠어…, 그렇지 않아요?” 반말 존댓말 섞었지만, 무엇보다 저 눈썹의 흉터 때문에 함부로 말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럼, 그냥 기다리기만 하나요?”

 

 “우선은. 만약에 누가 또 똥을 싸면 그때 와요. 그땐, 똥개들이 왔다 갔다 한 거로 치부하지 않을 테니까.”

 

 딱히 반박하기 어려웠다. 아랑이라도 있었으면, 뭔가 근사한 말투를 또 흉내 내며, 설득했을 텐데.

 

 “네…. 알겠습니다. 근데, 지난번 경위님은 안 보이시네요?” 내가 화두를 바꿔보려 했지만, 그가 손을 내저으며, “궁금한 거 해결되었으며, 이제 가요. 여기 파출소도 서류 일이 많으니까.”라고 말하며, 가라고 했다.

 

 그 위세에, 떠밀려 파출소를 나와서,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5시 30분이 다 되어 갔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셨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

 

 “아빠!” 3층 빌라 창문에 쇠창살을 다시 점검하시는 아빠를 보고 불렀다.

 

 “어, 희준아. 근데, 희주는?”

 

 “독서실. 거기서 뭐 해요, 위험하게?” 3층 난간 바깥쪽에 서서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다른 손으로 내 방 창문에 덜렁덜렁 거리는 쇠창살을 만져보고 계셨다.

 

 “어, 지금, 사람 불렀어. 이거 보안 설치하는 거, 창문에 창살 제대로 설치하려고.”

 

 “네, 저 들어가요. 조심하세요.”

 

 잠시 뒤, 밖에 방범창 설치기사가 와서 한참 시끄럽더니, 일이 끝났는지 아빠가 들어오셨다.

 

 “근데 아빠.”

 

 “응?”

 

 “저기 골목 앞에 누가 다친 거예요? 어젯밤에?”

 

 “...글쎄? 몰라? 왜?”

 

 “아니, 아까 파출소 갔었는데, 여기 ‘빌라길’에 누가 눈에 시너를 부어서 실명했다고…. 뭐 자세히는 모르고요. 누구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해서…”

 

 “...그 얘긴 누구한테 들었어? 파출소 누구? 아닌 거긴 왜 갔어?”

 

 내가 그냥 덤덤히 얘기한 것에 대한 반응치고는 아빠 말투는 걱정과 우려가 서려 있었다.

 

 “아뇨…. 그게 여기 집 앞에 며칠 전에 똥이 있었는데, 목요일인가? 여하튼, 그거 범인 잡으려고 신고한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됐나 해서….”

 

 “파출소에서 동네 집값을 다 떨어뜨리고 있구만! 그런 흉흉한 소문을. 범인은 안 잡고 말이야.”

 

 “음…. 근데 진짜예요?”

 

 “...몰라 아빠도. 뭐, 어떤 미친놈이 저기 ‘빌라길’ 끝 커피숍 옆 건물에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그랬나 봐.”

 

 “만화방 건물, 2층 공용 화장실에서요?”

 

 “그래, 너도 거기 만화방 가니?”

 

 “아뇨, 고2가 만화방은 무슨…. 근데 거기 화장실이 여기 빌라길 초입에 있고, 마지막 화장실이어서, 급할 때나 가끔 가죠. 집까지 도저히 못 참을 때…. 숨어서 담배 피우는 고딩들이나 여대 놀러 온 남자 대딩들도 엄청 많이 사용해요, 거기.”

 

 “그래 넌 가지 마라…. 어차피 지금은 막아 뒀겠지만….”

 

 “어휴. 그래도 시너를 어떻게 눈에다…” 상상해보니, 정말 끔찍할 것 같았다.

 

 “됐고, 희주 빨리 들어오라고 해라.”

 

 그렇게 얘기하고, 내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쓰는데, 아빠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말을 했다.

 

 “근데…. 좀 전에 똥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야?”

 

 “아, 그거요….” 손으로는 문자를 하며,

 

 [희주야, 아빠가 긴급히 찾음!]

 

 “그저께, 어떤 놈이 집 앞에다 똥을 싸놓고 갔어요. 희주 독서실에서 오기 직전이었는데, 저는 집에 있었고요. 근데 아주 잠깐 찰나 사이에, 누가 저기 현관 앞에 똥을 그냥! 어휴~”

 

 “사람 똥?”

 

 “네에, 완전히 온기도 아직 가시지 않은 그런 똥이요! 아 진짜 생각만 해도 ‘웩’이에요…. 진짜.”

 

 “진짜 ‘웩’ 이었겠다. 근데….”

 

 “왜요?”

 

 “아니, 어제 그 사건 현장에도 무슨 똥이 있었다고 들었던 거 같아서….”

 

 “네에에에?~” 내가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근데…, 원래 화장실이니까 똥이 있을 수도 있겠지, 뭐~.”

 

 “근데요?”

 

 “뭐가 또?”

 

 “‘뭐~’하시면서 말꼬리가 기셔서, 이상한 게 있나 해서요”

 

 “아니?”

 

 “...”

 

 “근데, 그런 일이 있으면 빨리 얘기를 해야지 이 녀석들아. 어떤 미친놈이 집 앞에 똥을 싼 거야?? 그래서 너희 둘이 치웠어? 어디야? 어디다 싼 거야?”

 

 징지~잉. 징지~잉.

 [저녁 이미 먹음] 희주 문자다.

 

 “희주 저녁 먹었다고 안 들어온다는데요?”

 

 “뭐?”

 

 [아빠가 ‘뭐’라고 하심. 엄청 실망하신 듯]

 

 “독서실이래요”

 

 [아빠가 왜?]

 

 “저녁 거르지 말라고 해.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고. 우리는 지난번에 만들어놓은 만두나 쪄먹자.”

 

 [너 만두 만들어 버린대]

 

 “네 큭큭큭”

 

 “뭐가 그렇게 웃겨. 희주랑 문자 하는 거야?”

 

 [아 왜. 독서실인데.]

 

 “아, 아뇨…. 큭큭큭”

 

 [진짜야?]

 

 [응응]

 

 [야! 아빠 전화 왜 안 받아]

 

 [완전히 실망하심. 토요일인데 같이 안 먹는다고]

 

 “큭큭큭큭”

 

 [개병신 집에 갔는데 구라면 뒤진다!]

 

 “큭큭큭큭. 아빠 빨리 주세요. 희주 그리고 금방 들어올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더 많이 쪄야겠네” 아빠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역시 난 좋은 오빠다. 후후.’

 

 --

 

 식사를 먼저 빠르게 마치고, 희주가 오기 전에, 밖으로 나섰다.

 

 우리 집 빌라를 나서서 왼편 ‘빌라길’이 아닌,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넓은 공터가 있었다. 뒷동산을 다 깎아서 아파트를 만든다고 하더니, 흙만 잔뜩 파놓고는 평평한 황무지로 몇 년째 방치된 땅이었다.

 

 서울 같은 도심이었으면, 이렇게 방치될 리 없었을 텐데, 마치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반대편 ‘빌라길’의 답답한 느낌과 달리 탁 트인 아주 드넓은 - 약 만평 정도의 - 공간이지만, 사유지라서 들어가지는 못하게 오래된 펜스를 듬성듬성 둘러놓았다.

 

 희주가 공터 쪽에서 올 수는 없었기에, 희주를 놀라게 해줄 심산으로, ‘빌라길’을 반만 내려가서, 집에서 예닐곱 번째쯤 떨어진 빌라 두 채 사이, 골목이라고도 볼 수 없는 아주 좁은 건물 틈새에 쭈그려 앉아서 몸을 숨겼다.

 

 저녁 8시가 조금 못 되어서, 해는 거의 졌지만, 아직 석양 노을이 구름에 반사되어 검붉은 조명을 빌라촌에 내리쬐고 있었다.

 

 빌라 벽돌이 검붉은 색이어서 그런지, 길목 전체가 전봇대부터, 똑같이 생긴 빌라 창문에 반사되어 비취는 초현실적인 색깔까지, 신이 있다면 마치 이 동네를 전부 검붉은 색깔 하나로 대충 칠해버린 것 같았다.

 

 ‘아. 뭔가 으스스하네… 근데 요 쉐끼 요거 왜 안 오지? 아까 그러고 답 없으면 오는 건데.’

 

 내가 쭈그려 앉은 지 벌써 10분이 넘어, 완전히 컴컴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또 10분이 지났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왜 안 와? 무슨 일 생겼나?’

 

 이제 막 일어나려고 하는데, 빌라길 입구 쪽 방향, 그러니까 나의 왼쪽에서 - 오른쪽은 우리 집 빌라이고 - 입구 쪽 방향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미세하게, 그리고 이어지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이제 오나?’

 

 점점 더 가까워지는 소리를 들으니, 달그락 소리 다음에 발자국 소리가 나는 게 아녔다. 발자국 소리가 나고 달그락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희주일 수도 있지만, 느낌이 아니었다. 이란성에, 성별까지 달라도, 우리는 쌍둥이였다. 보통 쌍둥이보다는 덜 닮았지만, 알 수 있다.

 

 이건 희주 발자국 소리가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 내 처지가 더 위험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여기 있는걸 들키는 건 아니겠지?’ 좀 더 몸을 움츠려 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너무 오래 쪼그려 앉아 있었다는 것을.

 

 젠장.

 

 

 

 

 10화.

 

 허벅지가 저렸다.

 

 피가 통하지 않아서인지 금세 종아리가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코에 침을 발라봤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런 방식은 도대체 누가 상상해낸 거야?’

 

 툴툴거리고 싶지만,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규칙적으로, 저벅, 저벅, 달그락.

 저벅, 저벅, 달그락….

 

 ‘고물이나 폐지 줍는 아저씬가?’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뭔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저께 똥 싸는 범인의 소리. 그때 들은 ‘달그락’ 소리. 그건 나만이 들었던 소리였다.

 

 바로 그래서, 지금 이 사람이, 그냥 이곳 ‘빌라길’ 30채도 넘는 빌라 중 하나에 사는, 토요일 오후에 늦게 퇴근하고 들어오는 평범한 주민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혼자 잡을 수 있을까?’

 

 ‘그냥 똥만 싼 건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만약 잡히고도 아니라고 잡아떼면?’

 

 ‘...아니 맞으면 더 위험한 거 아냐? 어쩌면 혹시 이 사람이 그 시너 테러범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젯밤 사건까지 생각나자, 이젠 진짜 무서워졌다.

 

 ‘도망갈까? 내가 그래도 고등학생인데, 여기서 집까지 전속력으로 뛰면 30초도 안 걸리는데….’

 

 ‘그랬다가, 그냥 걸어가는 행인이면?’

 

 ‘... 아니, 어쩌면 혹시 진짜 시너 테러범인데, 내가 도망가면 우리 집을 알려주는 거잖아?’

 

 생각이 많아지니 점점 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 희주야 넌 왜 안 오냐…’

 

 발자국 소리가 거의 내가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오 주여…. 부처님…. 희주야…….’

 

 냅다 뛰어 커피숍 코너 큰길 쪽으로 뛸 각오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제발,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때, 무엇인가 흘러서 내가 숨은 빌라 틈 사이로 들어왔다.

 

 비릿한 냄새가 지독했다.

 

 쭈르르르~~

 

 "......"

 

 오줌이 흘러오고 있었다.

 

 '방광염이야? 이 냄새 뭔데?! 으윽!!'

 

 이 사람이 지금 내 왼쪽 빌라 벽에 대고 오줌을 갈기고 있는 것이었다.

 

 노상 방뇨.

 

 독가스가 피어오르듯, 노란색 - 사실 색깔을 알 수는 없지만, 그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왠지 이건 샛노란 색일 것 같은 - 물줄기가 내 쪽으로 흘러오고 있었다.

 

 피할 길도 없이, 금세 내 왼쪽 신발에 묻고, 동그랗게 신발 바닥 타원형 모양을 그리고 두 갈래가 되었다가 다시 하나의 오줌 줄기가 되어, 내 바로 뒤편 시멘트가 살짝 파인 웅덩이 같은 곳에 일부가 고인다.

 

 끊지 않는다.

 

 계속 그렇게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듯 흘러들어온다. 오줌에서 피어오르는 악취에 아까 저녁으로 먹은 만두가 위장에서부터 올라올 것만 같았다. 허벅지가 너무 조여 다리가 전부 차가운데도, 아랫배에 묘한 진동이 느껴진다.….

 

 ‘나까지 소변이 마려워진 건가?’ 아니다, 이건 더 묵직하다.

 

 ’아까 만두가 잘못되었나?’ 하지만 동요할 수 없었다. 불과 1m 조금 넘는 곳에 서 있는 이 야인의 오줌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오래도, 싼다.’ 하고 생각이 들었을 때, 그가 돌아서는 소리가 들렸다.

 

 바지를 추켜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 달그락.

 

 걷지 않고 있는데도, 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 거 보면, 뭔가 바지에 달렸거나, 몸 어딘가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탐구생활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만약 이 사람이 자기가 싼 오줌길을 확인이라도 할라치면, 내가 쭈그려 있는 곳이 들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난 아까보다 더 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신발 바닥에는 잉크처럼 오줌까지 묻어서, 달려나간다 한들, 발자국이 적나라하게 남을 것이고, 결국 나라는 게 알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말이다.….

 

 ‘제발, 신이시여. 배에게 소리가 나지 않게 해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했다.

 

 조금 있자, 그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이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그리고 한 발짝. 멀어져 갔다.

 

 하지만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에서 나오는 광채로라도 들킬까 오만상을 찌푸린채로 숨을 멈춘채 집중했다.

 

 완벽한 부동, 정적의 상태.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달그락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방법은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는 것이지만, 그랬다가 갑자기 그가 여고괴담 귀신처럼,

 

 탁! 탁! 탁!!

 

 하고 나타날까 봐 무서워서, 그대로 부동의 상태를 유지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단지 숨어서 여동생을 놀려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무언가, 매우 위험한 존재와 빌라 건물 코너 벽 한 발자국만큼만 떨어져서, 아니 내가 그의 오줌 줄기를 밟고 있었으니, 더욱 가까이에 있었다가, 살아난 상태여서, 안도를 하기까지는 10분은 더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더는 내 다리가 내 몸뚱이를 버티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키려고 움직였다.

 

 그러자, 갑자기 배가 싸~해지더니, 엉덩이에서 똥 방귀가 크게 나오려고 했다.

 

 '젠장. 하필...'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꾸르르륵~

 

 방귀만 끼기 위해서는, 아주 미세한 힘 조절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살며시. 아주 살며시, 무게 중심을 한쪽으로….

 

 똥이 스며 나올까, 괄약근의 주름 세개 정도만 편다는게, 그만,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철퍼덕하고 넘어졌다.

 

 “어, 어! 어……!”

 

 철퍼덕.

 

 “쓰읍. 하아…. 씨…”

 

 아까 일부 오줌이 고여있던 웅덩이에 허리부터 엉덩이 윗부분을 담갔다. 금새 스며들어 옷이 다 젖었다. 땅을 짚은 오른쪽 팔꿈치에서 다 식은 축축한 오줌이 느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사람의 형체가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헉!'

 

 뿌웅~.

 

 방귀가 나왔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미 컴컴한 밤이었지만, 그의 눈동자가 괴이하게 빛나고 있었다.

 

 '누..누구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쳐갔다. 오줌 웅덩이에서 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 사람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저 두 개의 눈동자에서 총알이라도 나올 것처럼, 잔뜩 '쫄아서' 주저 앉은 채 눈을 떼지 못했다.

 

 불과 몇 초 정도였겠지만, 체감상 1분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결국 3층 위 옥상에 있는 것이니, 바로 내려와서 나를 해코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겨우 인지하고 나니, 아주 조금 침착해졌다. 그리고, 보이는 그의 윤곽에 집중했다. 손을 휘휘 내졌는 행동.

 

 ‘뭐지?! 뭐하는 거지?!’

 

 그가 저 위에서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커먼 형체 속 입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는 뭔가 뻐끔, 정말로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좀 더 눈을 찌푸리고 최대한 집중해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입으로는… ‘위…’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답답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세어 나왔다.

 

 ‘...위?!’

 

 내가 주저앉은 자세에서는 눈동자만 치켜떠도 위쪽이 보였다. 하지만, 정작 위를 쳐다봐도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그 사람을 보자, 이번엔 그 사람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내뱉었다.

 

 “뒤-.”

 

 ‘뒤?'

 

 "……! 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서 뒤를 돌아봤다. 다리가 아직 덜 풀려서, 오른쪽 다리가 휘청하고 무너져, 빌라 벽을 집고 버텨 섰다.

 

 그 찰나, 번쩍이는 눈빛의 검은 형체를 봤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그가 뒤로 재빨리 돌아서 빌라 뒤편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다.

 

 빌라길, 내가 숨었던 방향의 빌라들은 고지대에 세워져 있어서 빌라 뒤에는 3층 정도 높이의 단차가 있었다.

 

 보통은 거길 뛰어 내려갈 수 없지만, 만약 무리해서 그 3층 높이를 점프해서 뛰어 내려가면, 아주 촘촘한 구형 단층 주택들 사이 한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협소한 골목길을 지나 오거리 다섯 갈래의 길 중의 하나인 여대 쪽 방향으로 뛰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높이를, 저 검은 형체가 재빠르게 뛰어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따라가서 무엇인지 확인할 엄두도 나질 않았다.

 

 바지가 오줌에 다 젖고, 내 손끝에서 오줌 방울이 뚝뚝 떨어지는데, 도대체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조차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동생을 놀려주려고 잠시 숨었을 뿐인데, ‘달그락’ 소리에 겁이 나서 나오지 못하고, 거기서 살아났더니, 옥상에 있는 존재를 알게 되고, 그리고 갑자기 이 모든 시간, 바로 내 뒤에서 나를 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고!?

 

 아직도 빠르게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반대편 빌라 옥상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곳에 그는 없었다.

 

 귀신에 홀린 듯이 빌라 틈에서 스르륵 걸어 나왔다. 손끝에서는 여전히 오줌 방울이 천천히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왁!” 희주였다.

 

 “왁!, 깜짝이야!” 이번에도 희주였다.

 

 놀려 켜주려고 나에게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가, 내 모습을 보고 반대로 깜짝 놀라 했다.

 

 “오빠, 왜 그래? 옷…, 이거 뭐야?”

 

 희주는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오줌에 젖은 내 소매를 붙잡으며 말을 걸었다.

 

 내가 주변을 서둘러 둘러봤다. 누가 나를 본 것이든 간에, 여기서 희주까지 보게 할 순 없었다.

 

 “야, 빨리 집으로 가자. 뭔가 이상해….”

 

 “왜? 뭔데? 무섭게 왜 그래?”

 

 계속 물으면서도 나를 따라 희주도 서둘러 우리 집 앞으로 왔다. 우리 집과 옆집 사이 빌라 틈에 잠시 몸을 숨기고, 희주에게 최대한 빠르게 일어난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진짜? 어떻게 그런…, 미친 거 아냐?”

 

 희주는 날 믿으면서도 상황 자체가 황당한 듯할 말을 찾지 못했다.

 

 “빨리,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되고, 우선 아빠 걱정하시니까, 네가 먼저 들어가서, 아빠를 3층으로 모시고 가서 공부 얘길 하든, 뭘 하든 시선을 좀 끌어, 그다음에 내가 들어가서 세탁기에 옷 돌리고 난 2층에서 샤워할 테니까. 너가 이따가 갈아입을 옷만 좀 2층 화장실 앞에 가져가 줘. 알았지?” 내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말했다.

 

 “으응. 알았어…. 이따 얘기해.”

 

 희주도 아빠가 걱정하시는 것은 싫었을 것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 딸 왔엉!”

 

 현관문이 닫히고, 나는 주변 정적을 다시 한번 느끼며, 어서 희주와 아빠가 3층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길 기다렸다.

 

 

 

 

 11화. 똥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내가 생각해 봤는데, 지금 똥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

 

 희주 덕에 아빠한테 들키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와서 조용히 씻은 후, 밀린 공부를 한다고 말씀드리고 희주 방에 들어갔다.

 

 “우선 경찰에 신고 해야 하는 거 아냐?” 희주는 만두를 먹고 있었다.

 

 “아냐, 우선 그 빌라 옥상에 있던 사람… 그 사람을 잡아야 해. 어쩌면 그 사람이 나한테 뭔가를 해코지하려던 게 아니었던 것일 수 있어.”

 

 “그러네, 막 노려본 게, 사실 너 뒤에 있는 사람인지 동물인지를 본 거였고….” 계속 만두를 먹고 있다.

 

 “근데, 왜 한 번에 큰소리로 안 말하고…”

 

 “그 사람도 깜깜하니까 잘 안 보여서, 주저했나 보지…후루룩~ 쩝쩝. 그리고 위에서 널 보고…. 그러다, 네가 갑자기 오줌 밟고 동요하니까, 뒤에 또 누가 있는 거를 모르나보다, 해서…. 후후후~ 아 뜨거~ 그때서야 소리친 거 아냐?”

 

 “그게 뭔 소리야? 야, 너 만두 좀 안 먹으면서 얘기하면 안 되냐?” 대충 무슨 소린진 이해가 되었다.

 

 “응 안돼. 우선 가봐야 하나? 그 사람 찾으러. 그 빌라로?”

 

 “그런가? 같이 갈래?”

 

 “내가? 싫어…. 개무서워.”

 

 “뭐가 무서워. 아~ 씨, 넌 그래도 고추 먹으면 뭐, 막… 힘 나고 그런 거라도 있잖냐. 같이 가자”

 

 “그게 뭔지 알고. 아빠 진짜 슬퍼하신다 그런 짓 했다간. 그리고 그게 네 일 하고 상관있으면, 그러니까 너 때문에 내가 고추를 먹게 되는 거면, 너는 아빠한테 죽도록 맞아서…, 뭐냐 그…, 예전처럼 비오는 날 나타나는 ‘먼지의 신’인지 뭔지, 만나는 거고.”

 

 “그게 왜 나만의 일이야~ 똥은 누군지 우리 집 앞에 싼 거고, 빌라길 건물 화장실에서 시너 부은 새끼일지 모르는 용의자를 내가 본 것뿐인데, 그게 동네 일이지! 왜 내일이야. 난 피해자고.” 내가 억울한 듯 항변했다.

 

 “시너? 무슨 소리야? 어쨌든, 그럼 그냥 경찰서 가던가, 후후 후루룩~~쩝쩝”

 

 “...그래 넌 만두나 처먹어라. 뭔 힘인지 테스트할 땐, 아빠랑 그렇게 먹었다고 하더니, 정작 필요할 때…, 치이.” 내가 입을 샐쭉 내밀었다.

 

 “후루룩~~ 후루룩 쩝쩝. 어! 그 표정?!”

 “뭐.”

 “야 그거 딴 데 가서 하지 마라, 개 변태 같다.”

 “요망한 것” 내가 눈을 흘겼다.

 

 “그래서 내일 갈꺼? 그럼 밖에서 기다려는 줄게. 무슨 일 있으면 소리쳐. 그럼 내가 집에 가서 아빠 불러올게.” 선심 쓰듯 희주가 말했다.

 

 벌컥.

 

 아빠가 갑자기 방문을 열었다.

 

 “아 미안, 노크를 깜박했네. 다시.” 그리고는 문을 닫으시더니, 노크를 두 번.

 

 “그냥 들어와, 아빠.”

 “흐흐, 미안. 근데 희준이는 왜 계속 희주 방에 있어? 희주 공부하는 데 방해되는 거 아냐? 가끔 보면 희준이가 동생 같고 희주가 누나 같을 때가 있어~”

 

 “아 뭐예요 아빠까지….” 내가 다시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응? 나까지 뭐?”

 

 “내가 쫌 누나 같지 호호” 희주가 너스레를 부렸다.

 

 “아냐 장난. 희준이가 누구보다 오빠 같은 거 내가 잘 알지… 같이 공부하는 거야?” 아빠가 희주 만두 그릇을 챙기며 말했다.

 

 “인강요. 같이 듣느라. 끝났어요, 이제. 야, 빨리 나가. 숙녀 방에 이렇게 오래 있는 거 아냐.”

 

 “숙녀는 무슨, 아휴 이 쬐~그만 게, 너 태어날 때 인마, 나는 하늘, 땅을 다 본 사람이야, 너 이제 막, ‘어~ 어~ 뭐가 밝아지지 이렇게?’ 하고 있을 때, 나는 딱 아빠 손에 안겨서 ‘아 저 핏덩이 저거 나오네, 이제!’ 하면서, ’야 진정해, 요것아’ 이랬던 사람이라고, 알아?”

 

 “지롤. 꺼져.”

 

 “얘들아 그 말 좀 이쁘게 하면 안 되겠니?”

 

 “아, 얘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하잖아요~” 희주가 짜증 난 척 말했다.

 

 “그래 희준아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인강 다 끝났으면 네 방에 가”

 

 “갑니다. 갑니다. 아빠, 얘 남자친구 다리털 진짜 많데요.” 내가 방을 나가면서 소리쳤다.

 

 “야!!”

 

 희주가 휴지 각을 던졌지만, 난 이미 방을 나왔다.

 

 “싸우지 좀 말아라…. 어휴….” 아빠가 한숨을 쉬시며, 만두 그릇과 바닥에 던져진 휴지 각을 들고나오셨다.

 

 “아빠 먼저 주무세요 피곤하실 텐데” 내가 인사를 건네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밤늦게까지 공부할 게 많았지만, 내일 그 빌라 옥상에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숨어있던 내내 내 뒤에 있던 형체. 그건 뭐였을까. 날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잠이 들어가며, 떨쳐내지 못할 만큼.

 

 ---

 

 다음 날 아침. 날씨 맑음. 아빠가 일요일이면, 종종 회사 분들하고 조기 등산 모임이나 조기 축구회를 하셔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어슬렁어슬렁 기다렸다. 나가시는 것을 확인하고, 혹시 모르니, 움직이기 편한 - 도망쳐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뛰기 편한 - 복장을 챙겨 입고, 발에 익숙한 운동화를 꺼내어 신었다.

 

 벚꽃이 한창일 때였다. 빌라길 양옆으로 어디에도 벚꽃이 없는데, 인근 여대에서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것인지, 길 위에 벚꽃이 몇 잎 떨어져 있었다.

 

 희주를 겨우겨우 꼬셔서 어제 그 빌라 앞까지 왔다.

 

 몇몇 빌라는 원룸처럼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여대생들에게 세를 놓아서, 입구부터 전자보안키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지만, 어제 본, 이 옥상 빌라는 일 층에 그 흔한 유리문도 없었다. 다 똑같이 생긴 오래된 건물들이지만, 자세히 보니, 유난히 더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듯, 폐건물 같은 음침함을 가지고 있었다. 밝은 낮 시간대가 아니었으면 들어가 볼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또 밤이라면, 고만고만하게 생긴 빌라들뿐이라, 이 빌라의 위험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희주는 어제 얘기대로 일 층에서 기다렸고, 우선 나 혼자 올라갔다.

 

 3층에는 별도로 철제문이 있었다. ‘안 그래도 빨리 나가고 싶은 건물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을 재촉하고는 뒤로 돌려고 하는데, 아래에서 누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올라오는 거?” 매끈한 구두 소리여서 희주가 아닐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괜스레 긴장되어 그리 물어봤다.

 

 잠시 뒤, 이 층 계단 끝에서 올라오는 사람 머리가 보였다. 그리고 깊게 팬 눈. 모르는 얼굴이지만…, 분명히 마주친 적이 있는 모습이다. 주말 이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정장. 어제도 이 시간쯤, 홍고추를 들고 ‘빌라길’을 올라가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너 누구니?” 배우 최민수 같은 말투이다.

 

 철문 앞 계단 중간쯤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나를 보고 물었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사시나요?” 내가 갈라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남자 뒤로, 희주가 뒤꿈치를 든 채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올라오고 있었다.

 

 “아니, 아니. 내가 물었지, 지금. 누구냐고, 너.” '최민수'가 다시 물었다.

 

 꿀꺽.

 

 “네, 저는, 저 여기 빌라길 끝에 사는…”

 

 “안녕하세요!” 내 말을 끊고 희주가 뒤에서 폴짝 뛰어, 무서운 아저씨 옆을 지나 내 쪽으로 튀어왔다.

 

 “너희… 어제 아래 있던 애들이구나?” 그가 잠시 희주를 뚫어지게 보더니, 다시 입을 열고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는 계단 위로 올라올 듯 상체를 앞쪽으로 기울였다.

 

 그 바람에 내가 계단 턱에 걸려 털썩 주저앉았다. 희주가 눈빛으로 한심한 듯 나를 찡긋 쳐다보더나, 냉큼 내 뒤에 섰다.

 

 그가, 그 모습을 보고 주춤하더니, “따라와” 하고 말하며 우리 옆을 지나쳐 철문 앞으로 갔다. 철문은 안으로 손을 넣어 버튼 같은 걸 누르자 - 철제 잠금쇠를 누르는 특유의 무거운 소리가 나더니 - 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나는 희주를 쳐다보고는, “들어가자”, 라고 했다. 여전히 긴장되었지만, 낮이고, 희주가 옆에 있었고, 또 그가 지나쳐가며 보여준 느낌이, 왠지 지금 당장은 우리를 어떻게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철문을 지나 여러 식료품이 있는 좁은 복도인지 창고인지를 그대로 지나쳐, 반대편 끝에 있는 작은 창살 문을 열고 옥상 계단으로 올라갔다. 뭔가 양복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주거 환경이었지만, 막연히 계속 따라갔다.

 

 외부 계단을 오르자, 탁 트인 옥상 뷰가 드러났다.

 

 “와…!” 내가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가 나를 보더니 피식하고 웃었고, 뒤에 따라오던 희주는 “병신”이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왜? 우리 집도 옥상도 이렇게 보이려나?” 내가 희주에게 물었다.

 

 '민수'씨 가 말한다.

 “여기 동네가 고지대라 옥상에 올라오면 오거리까지는 아니어도, 여하튼 동네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있지. 어제 뛰어간 새끼도 저기,” 그가 손가락으로 맞은편 빌라부터 대각선으로 여대가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공중에 선을 긋듯, 주욱 그어가며. “저기까지 가는 거 같던데…. 뭐 너무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어떻게 봤다는 거지?” 내가 희주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러자, 희주가 헛소리 그만하라는 듯, 나를 툭 치고는, 바닥을 가리키며, 작지만 응집된 목소리로 말했다.

 

 “좀 조용히 좀 해… 너 저거 안 보여?”

 

 바닥에는 홍고추가 아주 넓게 퍼져 있었다. 아주 크고 실한 홍고추가 수백 개는 되어 보였다. 그 위로 검은 망이 덮여 있어서 나는 단번에 못 알아봤었다.

 

 “이건 보다시피, 고추야.”

 “아, 네….”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상대가 ‘고추야’라고 하는데, ‘어제 어디까지 보셨나요? 아니, 어디서부터 보셨나요?’ 나로서는 그렇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요새 시중에 돌아다니는 고추는 대부분 ‘화건’ 이야. 뭐, 하우스네, 저온 건조네 하지만, 제대로 된 ‘양건’은 드물지. 건조기 넣고 빠른 시간안에 말리면, 배기구를 닫고 말리든 열고 말리던, 그게 고추를 찌는 거지 어디 말리는 건가. 진정한 의미에서 이렇게 햇볕 아래 태양초로 말리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르지. 자, 먹어봐.” 그가 ‘꼰대’같은 설명을 하더니, 고추 하나를 검은 망 아래에서 집어 나에게 권했다. 검붉은 색깔에 윤기도 거의 사라져가는 자태가, ‘양건’이고 나발이고, 사실 탐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아, 저는 고추 안 좋아해서…” 내가 살짝 몸을 뒤로 빼려고 하자, 그가 희주에게 권하듯 고추든 손을 옮겼다.

 

 희주가 뒷걸음을 쳤고, 그제야 아차 싶어서, 내가 그의 행동이 더 이어지기 전에, 고추를 받아서 날름 먹었다.

 

 “헉!”

 

 그리곤 이내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맵나? 그렇지만, 달아. 우리 집 건 아주 달지. 단 고추니까. 진정한 ‘양건초’는 그런 거니까.” 펀쿨섹좌의 말투다.

 

 아주 맛이 없었다. ‘누가 말린 고추를 그냥 먹는단 말인가?’, 싶었다. 게다가 이런 환경에서. 대충 씹어서 먹으면서도, 이걸 다 먹어야 하는지, 한입 베어 물은 거로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고추도 먹었는데, 알려주세요. 어제 뭘 보신 것인지….” 옆에서 주춤해 있던 희주가 한걸음 나와 당차게 물었다.

 

 “...어제? 나도 잘 못 봤어. 보다시피 이 고추를 밤에는 아직 쌀쌀해서, 해가 지기 전에 집안에 옮겨 놓는다는 게, 좀 늦었거든. 다 옮기고 잠시 앉아 있는데, 아래 1층에서 뭐가 철퍼덕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옥상에서 몸을 살짝 기울여서 봤더니, 학생이 있더구만. 학생 맞지?” 그가 나를 가리켰다.

 

 “네.”

 

 “그리고요?” 희주가 물었다.

 

 “그리고는 뭐 그리고야. ‘쟤가 저기 빌라 틈, 사이에서 뭐 하는 거야?’ 하고 생각하는데, 그 뒤에, 뭐가 고양이 눈빛처럼 번쩍하더라고. 그래서 ‘저게 고양인가?’ 했는데…”

 

 그가 다시 오거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내가 예전에 아프간을 다녀 왔었는데, 밤에 야간 스코프를 끼고, 보초를 딱 서면 말이야…. 그 캄캄한 곳이, 초록색 고추처럼 아주 시원하게 색깔이 보인단 말이지. 근데, 하루는 내 스코프가 시가전 중에 깨졌어. 그래서 그날 하루는 스코프 없이 보초를 서게 되었는데…, 교대시간까지는 조용했어. 먼지 바람 소리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지. 그러다 그때 봤어. 구름에 별빛도 가려서 유난히 캄캄했던 밤이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는데, 조명하나 없는 황량한 모래성들 사이로 정확하게 나를 쳐다보는 반짝이는 두 개의 눈. 스코프가 없어도 말이야, 찰나였지만, 아주 작은…, 그런 것이었지만, 그게 눈이라는 건 알 수 있었지…. 그날 찜찜한 맘을 품고, 교대를 했어. 시간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내 위에 사수가 죽었어. 교대한 지 십 분도 안 되어서. 그쪽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물었다.

 

 “제 뒤에 있던 사람 눈이 그랬다는 얘기 안 건가요, 지금?”

 

 “응” 그가 답했다.

 

 “...그럼 언제부터 제 뒤에 있었는지, 혹시 보셨나요? 아니면 언제 그 사람이 거길 들어갔는지?” 내가 다급히 물었다.

 

 “아니. 말했다시피. 난 고추를 옮기느라.”

 

 내가 얼어있자, 희주가 그를 향해 목소리를 올렸다.

 

 “아저씨, 그거 너무 무서운 말인 거 알아요? 무슨 사수가 죽고 어쩌고 하면서, 그런 눈으로 누가 쳐다봤다고 하는 얘기?!” 희주도 주먹을 불끈 쥔 게 긴장하며 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 맞아. 무서운 얘기지. 무서워하란 얘기야.” 그가 답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갑자기 무슨 고추를 먹으라고 그러지 않나. 야, 가자, 신경 쓰지마, 그냥 경찰에 얘기하면 돼!” 희주가 나를 잡아끌며 옥상 계단을 내려가려고 돌아섰다. 하지만 내가 미련을 못 버리고 주저하다 다시 물었다.

 

 “...자, 잠깐만…. 혹시, 그럼 저쪽 커피숍 방향으로 누가 걸어 나간 것은 혹시 못 보셨나요?”

 

 그가 대답은 하지 않고 깊게 팬 그 두 눈으로,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도대체가 이 사람이 나에게 뭘 알려주려는 것인지, 아니면 더 헷갈리게 하려는 것인지, 범죄자인지, 평범한 동네 주민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희주가 잡아끌어서, 더는 얘기 못 하고, 빌라 계단을 내려왔다. 집 앞까지 와서야, 희주는 내 옷깃을 놓고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야, 저 집 이상해, 저렇게 양복을 차려입고 고추를 말리는 사람도 처음 봤지만, 무슨 사람 죽었다는 얘기를 처음 만난 고등학생들한테 해?!”

 

 

 

 

 

 

 12화. 혹시 제가 고추 보여드리면

 

 

 “이제 어떻게 하지?” 내가 물었다.

 “뭘 어떻게 해. 경찰에 얘기하고…근데 아빠한테는 얘기하면 걱정하시니까…” 희주가 주저했다.

 

 “반대로가 아니고? 저 사람이 우릴 어떻게 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우리가 저 사람을 찾아간 건데?”

 “....저 고추는 뭔데 그럼? 양복 입고 고추 박사처럼 말하는 저건 뭔데?”

 

 “모르지 나도. 고추 박산가 보지. 거기 있을 때, 물어봤어야지, 또 뭐 본건 없는지도. 니가 잡아끌어서, 더 못 물었잖아” 내가 아쉽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냐…. 고추 박사 같은 게 어딨어, 미친놈아! 그것보다 너 괜찮아? 모르는 사람이 주는 고추는 왜 먹은 거야? 뭐라도 들었으면 어쩌려고!” 희주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소리쳤다.

 

 “아 그건, 그냥…, 그러게, 왜 먹은거지?”

 내가 겸연쩍게 미소를 지어 보이자, 희주가 한숨을 쉬며 집으로 들어갔다.

 

 ---

 

 오후 내내 방에 틀어박혀서, 생각에 잠겼다. 아빠가 등산을 마치고 들어오셨지만, 간단히 인사만 드리고, 계속 방에 있었다. 며칠 전부터 여러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피곤했었다.

 

 우리 집 앞에 똥을 싼 놈이나 집에 든 도둑은 확실하게 경찰에게 얘기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어제 내가 본 그놈은 딱히 해결책이 없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옷차림조차도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그 늦은 밤에 그 빌라 틈에 숨어있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었다.

 

 가족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런 걸 믿어주냔 말이다. 빌라 옥상 그 놈(‘양복 고추맨’)이 증언이라도 해주면야, 경찰에 얘기해볼 수 있겠지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난 시너 테러 사건 용의자, 우리 집 계단에 똥 싼 놈, 그리고 또 다른 수상한 범죄자 한 명까지 어제 모두를 마주한 유일한 목격자일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증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엔 그 흔한 자동차 블랙박스도, CCTV도 없었다.

 

 ‘혹시 어제 신은 신발에 묻은 오줌을 국과수에 제출하면!’

 

 ---다음날---

 

 “아빠 오늘 월요일인데 아직도 출근 안 하신 거예요?” 방 밖에서 희주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생각이 많아져서, 조금만 하고 잔다는 게, 나도 모르게 게임을 새벽 2시까지 해 댄 것이었다. 아직도 눈앞에서, 온라인상 팀원들과 ‘네르기간테’를 헌팅하는 장면이 선하게 그려졌다. ‘젠장, 너무 졸리네.’

 

 “희준이는 아직도 자네?” 아빠 목소리다.

 “쟤는 원래 끝까지 자다가 나와요.”

 

 “그래? 요새 뭐 힘든 일 있나? 학교는 둘 다 괜찮고?” 아빠가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학교요? 더 좋을 수 없을 지경이죠. 희준이 성적만 빼면”

 

 “음…. 그래, 이제 고2니까, 서로 도와가면서, 성적은 네가 좀 도와주고 오빠 모르는 거 있으면….”

 

 “네, 걱정하지 마세요.”

 

 벌컥!

 

 “야, 시나야~ 아빠가 차 태워주신 데, 빨리 일어나.”

 “으으…, 나 트라우마 생겼나 봐, ‘시너’로 들린다. 야, 하지 마…”

 “어제부터 뭔 시너 타령이야, 병시나야, 빨리 일어나.”

 

 --

 

 끼이익~ 깜박깜박. (차량 깜빡이 소리)

 

 학교 앞 인근에 아빠가 차를 세우셨다.

 “다녀오겠습니다.” 대충 인사를 하고 내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희주는 내리지 않고 아빠랑 잠시 더 얘기하는 것 같길래, 그냥 혼자 교문을 지나 먼저 교실로 올라갔다.

 

 “왔냐?”

 “야, 씨…. 말도 마라. 진짜 엄청난 주말이었다.”

 

 “형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랑이 아침부터 학원 숙제를 하며 대꾸했다.

 “뭐래. 들어봐. 부르르르~” 내가 요란스레 입을 푸는 시늉을 하고, 주말에 있었던 일을 간략히 양념 섞어 얘기했다.

 

 “와~~~ 진짜? 너 근데 안 죽었네? 크흐흐.”

 “야 장난 아니었다니까, 개 무서웠어…. 너라도 쫄았을껄?”

 

 “나야 맨날 쫄아있지 근데 쫄아서 이정돈덴 넌 대범해도 키가 어떻게 고만하냐 크흐흐.”

 “야 덤벼. 넌 지금 온 세상 단신에 대한 도전장을 던진 거야. 덤벼 이쉐끼야. 슉슉 ‘이거슨 이베서 나는 소리가 아닌 거시여’ 슉슉.”

 “크흐흐흐.”

 

 오전 수업을 마치고 카페테리아 식당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우리의 장난은 계속되었다.

 

 “그보다 오늘 점심 뭐냐.”

 “주는 대로 처먹는 거지, 갑자기 점심은 왜?”

 “..그런 게 있다. 현주 덕분에 좋은 걸 봤지.”

 “뭬얏? 혹시…, 너 혹시, 현주 주먹맛을 본 게야?”

 “응? 현주 주먹맛을 왜 봐? 뭔 개솔.”

 “그럼 뭔데? 현주 좋은 게?”

 “현주가 좋은 게 아니고, 희주랑 현주랑 둘이 만나는데, 거기서 봤다는 거지.”

 

 배식 판을 들고 줄을 서서 앞쪽에 있는 수저부터 챙겼다. 아랑도 뒤에서 긴 팔을 뻗어 수저를 가져갔다.

 

 “거기서 뭘?”

 “이따 말해줄게.” 주변에 학생들도, 그리고 지난 목요일에 나에게 ‘주위’를 준 교감도 있었기에 말을 아꼈다.

 

 “뭐야, 처맞았네~. 현주 주먹맛을 제대로 본 것이구만. 쫄아서 못 말하는 거구만!? 야 형이….” 그의 말이 귓등으로 흘러 넘어가고, 내 눈엔 배식 줄 앞쪽에서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곱게 생긴 영양사 선생님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 가운을 입고 투명 보호대를 입 주변에 마스크로 두르고 머리는 까만 실로 짠 망 같은 거로 아주 단정히 머리카락 하나 삐져나오지 않게 조여 묶었다. 토요일에 본 요염한 화장은 없었지만, 하얗게 찐 달걀처럼 광이 나는 피부에 ‘그 무엇을 그린 듯 이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배식 줄을 따라 걸어가면서, 가까워지니 영양사 선생님의 얇은 입술이 연신 움직이는 게 보이고, 그 사이로 깊숙이 컴컴한 목구멍이 살짝살짝 보이는 듯했다.

 

 “오늘 카레다, 야” 아랑이 뒤에서 말했다.

 “어? 응…. 그러네….”

 “오늘 ‘고추 있어~!’ 안 하냐?”

 “닥쳐” 내가 뒤로 돌아 아랑이 배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푸훗.”

 

 ‘응? 지금 웃으신 건가?’ 고개를 돌려 영양사 선생님을 쳐다보자, 미처 미소를 지우지 못하시고 나를 곁눈질로 힐끗 보셨다. 잠시 멈추고 인사를 건네 볼까, 생각하던 찰나, 뒤에서 대머리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음식 받았으면, 뒤에 사람 배려해서 비킵시다~” 교감 선생님의 앙칼진 톤이 내 머리 뒤에서 울렸다.

 

 점심을 먹으며 힐끔힐끔 배식구 쪽을 봤지만, 어느새 영양사 선생님은 주방 안쪽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야, 너 밥 다 먹었어?” 희주가 내 자리 쪽으로 왔다.

 “응? 응. 왜?” 내가 답했다.

 “그럼 꺼져.”

 “(흐응~)?” 궁금함에 장난스레 코 평수를 벌렁벌렁 넓혔다.

 

 “아 개못생김! 어디 가서 남매인 척하지 마! 저기 어디 가서 혼자 놀던가 공부라도 좀 하던가. 그리고, 넌 현주가 얘기 좀 하재.” 희주가 먼저 나를 보고, 그리고 나선 아랑을 보고 말했다.

 “나?” 아랑이 답했다.

 “가봐, 형이 허락하마” 뭔지 알 것 같아서, 아랑에게 가라는 듯 손짓했다.

 

 식판을 치우고, 혼자 할 것도 없어서, 낮잠이나 잘까 하고, 조용한 데가 있을까 싶어서 어슬렁거렸다. 다들 운동장이나 교실에 있을 것 같은 점심시간이지만, 의외로 학교 건물 구석구석 안팎으로 사람이 없는 데가 없었다.

 

 음침하면 음침한 데로, 햇볕이 쨍하니 들면, 또 그런대로, 각자의 이유에 맞게 어디든 사람이 있었다.

 

 학교 밖으로 나와 건물 뒤편에 작은 별관처럼 되어 있는 조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식 원자재가 보관, 손질되고 대부분 요리가 만들어지는 장소여서인지, 조리실은 본관과 별도로 자리했고, 사립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무려 2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만 봐도, 지난 토요일 내가 본 모텔에서 나오시는 선생님의 단아한 그러면서도 여우 같은 모습이 상상되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혼자 생각을 하는데,

 “희준이구나?” 뒤에서 영양사 선생님이 내 등에 손을 지긋이 대며 인사했다.

 

 “헉…!” 나도 모르게 숨이 멋는 모습을, 희주에게 장난칠 때처럼, 과장되게 뱉었다. 하지만 정말로 예뻐 보였다. 아마 선생님도 눈치챘으리라. 게다가 내 이름까지 알고 계시다니.

 

 “뭐해 여기서?” 선생님이 생글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학교에서 보통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들은 이미 피곤함에 찌든 모습이 대부분인데, ‘영양쌤’은 좀 달랐다.

 

 “아, 그게…, 뭐 좀 여쭤보려고요…” 어찌할 줄을 몰라하며 핑곗거리를 생각했다. 그러다 주말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고추!’

 

 ‘뭘까?’라고 눈으로 궁금하다는 듯 표정 짓는 ‘영양쌤’을 보며, 물었다.

 

 “그게요, 혹시 제가 고추 보여드리면, 그게 어떤 품종인지 선생님께서는 아실 수 있을까요?”

 “...?!” 영양쌤 표정이 당황한 듯 보였다.

 

 “그게 토요일에 엄청 매운 홍고추 말린 거를 누가 줬는데요, 이게 그땐 몰랐는데 먹어보니까 끝 맛이 좀 달고 그래서…. 궁금해서요. 근데, 그거 준 사람한테는 물어볼 수가 없어서….” 내가 생각해도 이게 여기 별관까지 올 이유가 되나 싶었다.

 

 그렇다고 ‘토요일에 모텔에서 나오시는 거 봤어요! 엄청 이쁘셔서 밤마다 생각나서 왔어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혈기 왕성한 청소년의 상상은, 거기까지만, 이렇게 오지 않았을 때까지만,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은데 말이다!

 

 “토요일에…? 아 그래? 엄청 매우면, 품종이 그런 건가? 글쎄, 본다고 내가 알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어딨는데?”

 

 “아, 집에요. 뭐 막 태양초 어쩌고 하던데….”

 

 “그래, 뭐 태양초라서 더 엄청 맵고 꼭 그런 건 아닌데 요샌…. 근데…, 희준이 집에서 요리하니? 그래서 고추도 맛보고 그러는 건가? 매운 거 좋아해?” 영양의 눈이 반짝였다.

 

 “아, 아뇨. 그건 아니고…, 매운 거 떡볶이는 좋아하는데, 희주 때문에 집에서는…” 내가 쭈뼛대며 다시 본관 쪽으로 몸을 움직이자, 영양쌤이 웃으며 내 손을 잡고는 조용히 말했다.

 

 “쑥스러워 말고, 아무 때나 가져와, 조리실 별관 2층에 쌤 방, 알지?”

 

 “네…, 그럼 교실 들어가 볼게요.” 내가 꾸벅 인사를 하고, 조금씩 속도를 내며 본관 교실 쪽으로 후다닥 걸어갔다. 왠지 뒤에서 나를 찐하게 쳐다보는 영양쌤의 눈빛이 느껴졌다.

 

 ---

 

 “넌 혼자 어딜 다녀오냐 형 심심하게”

 “사색, 새끼야” 내가 아랑에게 답하고 교실 자리에 앉았다.

 “야한 생각이나 잔뜩 했겠지 무슨.”

 “넌 현주가 주먹맛 좀 보여주드나?”

 

 “크흑. 아니?

 “지난주에 니가 때린 애들 얘기한 거 아냐?”

 “응, 뭐 얽히지 말라고. 알았다고 했어.”

 “이미 ‘선빵’을 쳐놓고, 뭘 알어. 이제 너 학교 못 다니는 거 아니냐? 크흑.”

 

 “그 ‘선빵’ 맞은 애 죽었데.”

 “뭔 소리야.”

 “이 형의 주먹맛이 너무 매워서 아마 뒤졌을 거야 크흐흑.” 아랑이 장난 가득 호기를 부렸다.

 “근데 너는 그렇다 치고, 나는 무슨 죄냐, 나는 ‘선빵’ 날리지도 않았는데, 괜히 같이 도망쳐서.”

 

 “걱정 마라, 형이 지켜주마.”

 “됐다. 뭐 현주 말로는, 현주 친구, 수미? 여하튼 걔랑 어울리는 저쪽 공립 쪽 애들이라니까, 여기 자주 오진 않겠지. 고가도로 건너편인데 뭐 굳이.”

 “긍정적인 새끼.”

 “너 정돈 아니다 큭.”

 

 그렇게 아랑과 잡담을 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엔 좀 전에 ‘영양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모텔에서 나오실 때와 좀 전 학교에서 보여주신 모습이 다르면서도 묘하게 일치하는 느낌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근데, 그 옆에 있던 재수 없게 생긴 시인 같던 아저씨는 뭐지? 남편인가? 결혼을 하셨던가?’

 

 그때는 잘 몰랐다. 아빠가 항상 혼자셨기에. 결혼을 한 부부는 따로 모텔 같은 데를 가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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