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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우연일까? 시작일까?
작가 : 해르
작품등록일 : 2020.7.31

어린 시절부터 줄곧 함께한 우연과 제노
곁에 있으면 투닥거리 바쁘고 곁에 없으면 허전한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서서히 형태가 변해가는데
과연 두 사람은 지금의 이 친구관계를 청산할 수 있을까?

 
10화-판도라의 상자(2)
작성일 : 20-08-25 16:00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8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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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들은 재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마음속에선 분노가 타오르는데 정확히 어떤 대상에게 지금의 이 분노를 쏟아내야 하는지를 몰라서였다. 선우연과 가족들에게는 얘기하지 않고 멋대로 기사를 써낸 그 기자 놈? 아니면 남의 가정사를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그 학교 관계자? 둘 중 무엇이 먼저인지를 모르겠네.

 그렇기에 재원은 아무 말 못하고 애꿏은 머리만 계속해서 헝클였다. 예진이 그런 재원의 모습을 보고는 설핏 웃으며 말했다.

 

 “야, 그거 가지고 벌써 그렇게 화내면 뒤에는 어떡할라고?”

 “뭐? 아직 더 남았어?”

 “어. 큰 거 한방 더.”

 “하아아아.”

 

 재원의 입에서 기다렸다는 듯 깊은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이내 잠깐 숨을 고르며 가파른 호흡을 진정시킨 그가 예진에게 고갯짓을 해보였다. 자기는 들을 준비가 다 됐으니 말해보라는 뜻으로.

 

 “솔직히 말하면 그 이후가 더 가관이었어. 우연이의 가족사가 순식간에 인터넷에 공개된 거잖아?”

 “그렇지.”

 “기사를 통해 우연이의 가족사를 알게 된 학부모님들이 무조건적으로 우연이와 우재 오빠를 불쌍하게 여기고 동정하기 시작했었어. 거기다 우연이는 별로 친하지 않은 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부모님들한테까지.”

 “...뭐?”

 “그 부모님들이 자기 아이한테 그랬대. 불쌍한 친구니까 잘해주라고.”

 “...뭐야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음... 물론 정말 우연이네를 안타깝게 여기고서 그렇게 행동하신 어머님들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질투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질투...?”

 

 재원이 묻는 말에 예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서 특히 우리 학년에 자기자녀에게 교육열이 심한 어머니들이 유독 많았거든. 왜 그런거 있잖아... 자기 자식은 언제 어디에서 1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원에 과외에 이것저것 잔뜩 시키는 부모님들.”

 “아 그래! 뭔지 알겠다.”

 “그래 그런 부모님들.”

 “근데 그거랑 질투가 무슨 상관인데?”

 “뻔하지 뭐. 자기아이는 비싼 학원 비싼 과외선생님 들여가면서 공부시키는데 연이는 그런 거 하나 없이 매번 1등하니까 얼마나 속이 뒤틀리겠어. 그런데 그렇게 완벽한 줄 알았던 아이한테 그런 가정사가 있다는데 그게 그 사람들한테 얼마나 솔깃한 얘기겠어?”

 “그 말은... 자기 자신도 어린아이한테 대놓고 질투 하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일부러 동정하면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거야? 그것이 뭐가 됐든 간에 질투보다는 더 나으니까?”

 “빙고!”

 “하 참!”

 

  정답을 맞혔는데도 이렇게 언짢은 기분이 드는 건 또 처음이네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맞아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재원의 입에서 어이없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아무리 그런 생각이 들었어도 티는 내지 말아야지. 아직 어린아이라고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배려할 생각조차 없었던 건지. 자꾸 반찬들이나 음식들 하나씩 챙겨주면서 부모님 없이 사니까 이런 음식 못해먹지 않냐는 말을 굳이 꼭 하시더라.”

 “뭐?? 미쳤어? 그게 대놓고 불쌍하다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

 “내말이 그 말이다.

 “그래서 선우연은 거기에 대고 뭐라 했는데? 화 안냈어?”

 “그게 참... 화내기도 뭐한게... 솔직히 그 상황이 화내기가 참 애매한 상황이기도 하잖아... 어쨌든 우연이네 먹으라고 반찬들도 다해왔으니 거기서 그걸 거절하고 화내면 우연이네만 이상한 사람취급 받을 거 아냐 그 사람들의 속내는 결코 좋은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참... 많이 약았지...”

 “......”

 

 재원은 가만히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세게 꽉 쥐며 말없이 분노를 삼키었다. 여기서 진정하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다 끝나기 전에 자신의 입에서 온갖 욕이 다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예진도 그런 재원의 분노를 이해하고 그의 분노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고마워. 이제 다시 말해봐.”

 “그리고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어. 기사를 통해 우연의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우연이를 후원해주자 어쩌자면서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거든. 처음에는 정말 소수의 인원뿐이었는데 그 기사에 실린 우연이 사진을 자기들 멋대로 여기저기에 퍼 나르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지.”

 “잠깐만... 그럼 설마? 그 사람들도 기사 내용이 아닌 선우연 얼굴만 보고 후원해주자 뭐 그런 건 아니지?”

 

 예진은 대답 없이 마른 웃음만 지어보였다. 그러자 재원은 곧바로 소리쳤다.

 

 “미쳤어 진짜!!!”

 “그래 미쳤지. 물론 그 사람들 중에서는 순수한 호의로 연이를 후원해주자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그 다음엔?”

 “그런 일이 인터넷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빠들이 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선 바로 조치에 취했지. 네가 보기에도 연이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후원받을 정도로 형편이 안 좋은 건 아니잖아?”

 “응 확실히.”

 

 확실히 그랬다. 재원이 보기에도 우연은 형편이 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또 반대로 형편이 안 좋은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가정으로 보였다.

 

 “그래 걔네 집은 형편이 안 좋은 게 절대 아니야. 형제 수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좋은 편이지.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인 데다가 우준 오빠가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으로 제테크를 정말 잘했거든. 또 도와주시는 친가 쪽 친척들도 많이 계시고.”

 “제테크...?”

 “응 주식이라거나 부동산 제테크라거나...”

 

 그 말을 들은 재원은 멍해진 정신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선우연네 오빠인 우재형만 봐도 평범한 형제들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는데 어쩌면 걔네 형제들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미지의 존재들이 아닐까?

 

 “일단 오빠들은 인터넷에 먼저 글을 올렸어. 우리 가족들은 기사에 나오는 내용처럼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부족하지만 형제끼리 똘똘 뭉쳐서 열심히 지내고 있다. 그러니 후원은 필요 없다. 마음만 받겠다고.”

 “그건 형들이 대처를 잘 하셨는데?”

 “그치? 그런데 그렇게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어딜 가나 꼭 있잖아? 어떻게 알았는지 오빠들 전화번호 찾아내서 전화하고 메일 주소로 계속 메일 보내고. 그래도 계속 거절하니까 이제는 우리 학교 앞까지 찾아왔더라고.”

 “학교 앞에?”

 

 재원은 경악했다. 당사자가 후원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가 있나? 그가 소리쳤다.

 

 “한가하게 남의 학교 앞에 찾아올 시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나 후원해주라고 해. 아니 이게 무슨.”

 “황당하지?”

 “황당하기만 하냐? 어이도 없다.”

 

 벤치의 등받이에 몸을 털썩 기댄 채 연신 ‘미친 거 아니야 진짜’만 중얼거리는 재원을 보고 예진도 그를 따라 같이 ‘맞지 미쳤지.’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자 재원이 다시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더는 안 되겠다 싶어진 오빠들이 더욱더 강력하게 조치를 했지 바로 고소미. 특히 처음 이 사건의 발단이었던 그 기자랑 그 기자한테 말했던 학교 관계자까지 샅샅이 찾아내서 모두 고소미를 먹여줬지. 그 관계자가 집까지 찾아와 울면서 사과하던 꼴이 아직도 내 눈에 생생하다.”

 “처음부터 잘할 것이지. 그래서 그 관계자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됐냐?”

 “학교에서 잘리고 다른 학교로 갔는데 이미 전 학교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그 학교로 오게 됐는지 소문이 퍼져서 말이야. 그러니 그 학교에서도 학교 이미지 망친다고 잘리고 다른 학교에서도 거절당하니까 결국 일자리 못 구하고 저기 어디 지방으로 내려갔다는데 모르겠다, 나도.”

 “쌤통이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줄곧 화난 표정과 경악하는 표정, 놀란 표정을 상황에 맞게 번갈아 보여주던 재원이 그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웃어 보였다.

 

 “근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어. 그 뒤에도 사람들이 보여주는 동정이라고 해야 할지 호의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행동들에 우연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그러던 차에 한 애가 시비를 걸어왔거든. 아, 참고로 걔는 원래부터 우연이한테 한결같이 시비를 걸었던 애인데 그때마다 우연이가 아주 간단하게... 알지?”

 “아주 잘 알지 그럼.”

 “평소였다면 지나치고 말았을 일이었을 텐데 앞선 사건들로 걔도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었던 거야. 그동안 참고 있던 것이 한 번에 터지고 말았지. 아주 심하게 그 애를 때렸어. 그때도 태권도 다니고 있었던 때였거든.”

 

 그 말을 하는 예진의 표정에 점차 그늘이 드리워지자 재원의 표정도 같이 어두워졌다.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그 애 부모님이 아주 난리가 났지. 깡패 아니냐, 애 얼굴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냐 하면서.”

 “선우연은 어떻게 했어?”

 “그 어머님께 그랬지.

 

 ‘호석이가 먼저 나한테 와서 너랑 너희 오빠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게 다른 사람들한테서 더 동정 받고 큰돈을 챙기려고 그렇게 한 거라고 어쩌면 그 기사도 우리 오빠들이 기자에게 부탁한 것 일 수도 있다고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하더라. 라면서 저한테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그랬더니?”

 “단번에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그쪽에서...”

 

 ‘어머, 나는 그런 말 한 적이 없어. 어디서 거짓말을 하니. 이래서 부모님이 없으면 안 되는 거라니까. 애들 수준하고는 어쩜 그렇게 얌전하고 예쁜 얼굴을 하고서는 하는 행동은 딴판이니?“

 

 “으아아아!!”

  재원이 별안간 벌떡 일어나 이미 오래전에 다 마셔 빈 컵이 되어버린 투명 컵을 쓰레기통에 힘껏 던지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마음속의 화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소리쳤다.

  예진은 재원이 외치는 고함을 들으며 잠시 마음을 다스렸다. 그때의 그 기억을 더듬는 것은 솔직히 예진에게도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당시에 느꼈던 마음속의 분노가 또 한 번 들끓어 올라 좀처럼 잠재우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자신들 나름의 방법으로 지금의 이 분노를 잠재우기위해 잠시 동안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서늘한 바람이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고 나자 예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우연이가 친구를 때리는 일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어. 그 전에도 몇 번 이런 일이 있었거든.”

 

 그러자 재원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몇 번?”

 “응 너도 제노 보면 알다시피 유독 우연이랑 제노한테 가족사로 시비 거는 애들이 예전부터 많았거든. 그런데 지금이랑은 달리 어렸을 때의 우연이는 절대 안 참았었어. 제노한테 시비 거는 애들도 자기가 대신 나설 정도였으니까.”

 “와...”

 

  선우연이 그랬다고? 예진의 말을 들은 재원은 너무 놀라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예진에게 들은 우연의 옛날모습이 자신이 알고 있는 현재의 우연의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선우연은 언제나 그런 식을 시비를 걸어오는 아이들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보는 사람이 다 신기할 정도로 차분하게 대응해서 되려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고는 했는데 말이야... 이런 생각에 잠겨 재원이 또 한번 말이 없어지는 것을 본 예진이 그를 보고 픽 웃으며 물었다.

 

 “많이 놀랐어?”

 “어...”

 “지금이랑 완전 달라서?”

 “어...”

 “그럼 더 들어봐. 그럴만한 이유가 이 다음에 나오거든.”

 “그러냐? 오케이 알겠어. 계속 말해봐.”

 “그러니까 호석이 아줌마가 그렇게 말을 하니 우연이한테 맞은 적이 있는 친구들의 어머님들과 그렇지 않은 어머님들 모두 하나둘씩 호석이 어머니를 거들기 시작했지.”

 

 ‘확실히 우연이는 외모랑은 다르게 행동이 너무 폭력적이긴해요. 역시 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맞아요. 우리 애도 맞은 적 있어요. 역시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긴 한가봐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렇게 상황은 또다시 역전되어 버렸어. 호석이 어머님이 우리 학교 학부모 모임 회장이신 데다가 아버님이 유명한 시의원이시거든. 아무도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님이 한 잘못들을 꾸짖지 않았어. 어느새 모든 잘못은 우연이와 오빠들의 잘못이 되어 버린 거지.”

 “......”

 

 그렇다. 이 사건의 잘잘못을 따지자면 시작은 호석이와 그의 어머니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학교 안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가 유명한 시의원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한 일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상대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우연과 그 가족들에게 모든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재원은 그 사실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 이렇게 화가 나는데 당사자인 우연은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열 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이는 얼마나 화가 났을까 그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조차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우연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우재 오빠가 대신 사과함으로써 그 일은 겨우 끝낼 수 있었어.”

 “아오 씨”

 “나중에 교무실을 나가고 나서 우재 오빠가 우연이 안고서 사과하더라.

 

 ‘미안해 연아 네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오빠가 사과함으로써 너를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어. 하지만 연아 이거 하나만은 오빠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 연이 넌 잘못하지 않았어... 그래서 오빠가 너무 미안해, 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오빠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게.’

 

 “하... 사람들 진짜.”

 “그 이후에 우연이는 많이 달라졌어. 전처럼 다른 아이들이 시비 걸어와도 지금처럼 철저히 무시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로 이겨왔지. 제 나름대로 오빠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을 방법을 찾아 낸거야. 이게 바로 내가 아까 말했던 그이유고.”

 “......”

 

 예진의 말을 마치자 그들이 앉아 있는 벤치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재원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스토리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어느새 해는 져물어져 가며 주위는 주황색 노을빛으로 가득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예진은 노을빛을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핸드폰 속 시간은 5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은재원 이놈... 분위기가 너무 너무 어두운거 아냐? 이 분위기 먼저 풀어놓지 않으면 집에 가는 길 내내 조용하겠네. 조심스레 재원의 상태를 살피던 예진이 집에 갈 채비를 마친 듯 가방을 매며 밝게 외쳤다.

 

 “자 오늘 이야기는 이렇게 끝!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짝짝짝!”

 “......”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일부러 과장스럽게 박수까지 쳐가며 말하는 예진이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재원의 주위에 드리운 어두컴컴한 기운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예진은 그런 재원의 어깨를 툭 쳤다.

 

 “야, 표정 풀어라. 이미 다 지난 일이잖아.”

 “...뭐라 얘기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 내가 과연 이런 얘기를 들어도 되는 건지. 괜히 옛날 얘기를 들쑤신 건 아닌지... 하 미치겠네. 내일 학교에서 걔 얼굴을 어떻게 보냐?”

 

 재원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쉬자 예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뭘 어떻게 봐 그냥 보는 거지 잊었어? 이 얘기해줘도 괜찮다고 먼저 말한 건 우연이었어.”

 “그치만.”

 “정 신경 쓰이면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 그게 걔를 위한 거야.”

 “...알았다. 그렇게 할게.”

 “그럼 이제 일어나자. 슬슬 해지겠다.”

 “어.”

 

 예진의 말에 대답한 재원이 그녀보다 먼저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예진은 이미 모든 준비를 다 마치었기에 앉은 채로 그가 윗옷을 챙기고 가방을 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옛 기억에 잠시 멍해지고 말았으나 이윽고 모든 준비를 마친 재원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었다.

 

 “안가?”

 “어? 어 가.”

 

 재빨리 정신을 차린 예진이 재원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주위를 감싸던 노을빛은 점차 그 색을 더 진하게 밝히었다. 그 짙어진 주황색 노을빛이 어느새 재원은 완전히 뒤덮였고 그런 재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예진은 기억 저편에 있는 아까의 기억을 다시 한번 회상했다. 사실 그 뒤에는 재원에게 말하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었다.

 

 ‘왜 오빠가 나한테 사과해? 내가 잘못 한 게 없으면 오빠도 나한테 잘 못 한 거 없잖아? 근데 왜 우리는 서로한테 사과하고 미안해야 해?’

 

 자신을 꼭 안아주며 사과하는 우진에게 우연은 그렇게 말했다. 이후 우진은 자신들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우연은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더니 책상 연필꽂이에 꽂혀있던 문구용 가위를 꺼내 대뜸 자신의 긴 머리를 싹 뚝 잘라버려는 돌발행동을 보여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제노는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며 바라보기만 하다 예진이 재빨리 저지하자 그도 예진을 따라 우연을 말렸다. 다행히 우연에게서 무사히 가위를 빼앗으며 그녀의 돌발 행동을 말릴 수 있던 둘이었으나 우연의 돌발행동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남자아이 마냥 짧게 잘라버린 그녀가 별안간 책상에 앉더니 미친 듯이 문제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놀란 예진이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며 물었던 질문에 그녀가 들려주었던 대답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야..’

 ‘뭐?’

 “나는 지금 그 어떠한 걸로도 내가 받은 상처와 분노를 돌려줄 수가 없어. 이것 말고는..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열이 받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더 화가 나!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맞서는 거야. 애초에 이일의 시작도 사실은 내가 공부를 잘해서 그걸 질투하는 사람들한테서 비롯된 것이었잖아? 안 그래?‘

 

 그러나 예진은 도저히 이 이야기까지 재원에게 말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우연이 자신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말 했어도. 또한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이야기한 적 없는 오직 제노와 우연 그리고 예진 세 명이서만 간직하고 있는 뒷이야기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재원에게 꺼낸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닌 우연 본인이여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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