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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맨싱 사가 : 백발마녀전
작가 : 백발마녀
작품등록일 : 2020.8.23

똥싸개, 스토커, 시너테러범을 상대로 성장하는 쌍둥이 남매와 친구들의 이야기.

 
5화 ~ 8화
작성일 : 20-08-25 05:15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2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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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내가 싼 똥이 아닌데?

 

 “Tell me what you plan to do 혹은 plan on doing for the weekend…여기서 두번째 경우에 대한 답변은 I plan on 그리고 너희가 할 것, 그걸 ing 형태로 집어 넣는 거지. 알겠지?”

 

 “...”

 

 “자 이번엔, 거기 공현주 일어나봐. TELL ME WHAT YOU PLAN…."

 

 갑자기 이름이 호명된 것이 불만인지 현주가 입을 샐쭉하고는 고개를 숙인다.

 

 "얘! 어디 보니?! 집중 안 해?”

 

 몇몇은 현주를 보고 예쁘게 생겼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주의 깊은 사람이니 속지 않는다. 저러다 샐쭉해진 입 모양을 풀면서, 배시시 웃는 표정으로 바뀌며 보조개까지 들어가면, 대부분 남자애들은 넘어가 버린다. 거기에 눈웃음까지 더해지면... 'ㅗㅜㅑ~'

 

 물론, 선생님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야. 공현주, 내 말이 웃겨? 선생님 말 안 듣니? 무슨 소린지 몰라?”

 

 애초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현주는 뻘쭘한 모습이 되어 미소를 지우고 고개를 더 푹 숙였다.

 

 영어쌤은 평소에 가르쳐 주지도 않은 내용으로 자랑질을 이어 갔다. 해외에서 무슨 유명 대학 영문과를 나와서, 여기 사립학교에 계약직으로 들어왔고, 대학 입시용 수업은 어디 ‘인강’에서 베껴서 준비하는지, 종종 저렇게 시험하고 전혀 상관없는 회화 영어를 싸 발랐다.

 

 대답하는 애들은 대부분 어디 해외에서 공부하고 왔거나, 아빠 회사의 고위 임원 자녀 중 더 좋은 학교에 못 보내고 여기에 우리 같은 일반 봉급쟁이 자녀로 같이 통학하는 애들 정도뿐이었다.

 

 툭.

 

 아랑이가 볼펜 뒷머리로 내 손등을 툭 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주 쟤는, 생긴 거 반만이라도 공부를 하면, 전교권에서 놀 텐데, 뭐 믿고 저러냐?”

 

 “넌 저게, 쟤 잘못으로 보이냐? 그리고, 저건 이쁜 게 아니야. 속지 마라. 못되게 생긴 거야.”

 

 “뭐…그래도, 너보단 잘생긴 것 같은데…?”

 

 “뭐래 이 병신아… 걸리버같이 생겨가지고.”

 

 “어, 그거 좀 전에 희주 같았어…. 큭큭… ‘모오래~ 뵹쉰아~’ 큭큭큭.”

 

 “야 수업이나 들어라, 아주 세상이 만만해 이 새끼 보면.”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어쌤은 이제 현주 옆자리 짝꿍에게 영어 실력 자랑을 하고 있었다. 현주 짝꿍은 해외에서 공부하다 아버지가 금융위기로 망해서 들어와서 그런지 영어쌤과 누가 잘하나 시합이라도 하듯이 나불대고 있었다.

 

 “야, 근데 어제 너 고추는 왜 그런 거냐?” 아랑이, 어제 식당에서 나의 돌출행동을 기억해 냈다.

 

 “뭔 고추?”

 

 “식당에서, 갑자기 너 동생보고, ‘요기 잠지 있어!~’ 그랬잖아”

 

 “뭔 개솔. 알레르기라고 그랬잖아.”

 

 “그래, 근데…. 또 생각해보니까, 고추 알레르기가 있던가? 싶더라고? 그래서 좀 찾아보니까, 없대?!”

 

 “...”

 

 “만약에 있다고 쳐도, 그러니까 있으면, 그게… 이 고춘지 아니면 저 고춘지, 작은 고춘지? 내 고춘지? 응? 큭큭큭”

 

 아랑은 물론 좋은 놈이지만, 가끔 이렇게 바보 같은 장난을 칠 때면 이게 나랑 친구여서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원래 얘도 애초부터 좀 부족한 놈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졸라 유치한 새끼” 대꾸는 하고 있었지만, 나로선 화제를 돌려야 했다. 희주가 고추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할 수 있다고 해도 얘한테 여기서 설명할 일은 아니었다.

 

 “아, 야, 어제 우리 집에 어떤 또라이 새끼가…, 하아~, 우리 집 앞에 똥 싸고 간 거 알아?!”

 

 “뭐, 똥?!”

 

 내가 어제 일을 아랑이에게 얘기했다. 영어 선생은 ‘회화 쇼’를 끝내고 다시 칠판에 진도를 뽑고 있었다.

 

 “야 그럼, 경찰에 신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경찰이 이런 것도 신고받아주냐?

 

 “도둑 든 거랑 뭐가 달라?”

 

 “도둑은 물건을 훔쳐 가는데, 이 새낀 똥을 놓고 갔으니까 다르지.”

 

 “아니, 남의 주거지에…, 오, 나 좀 있어 보인다, ‘주거지’ 이런 말 쓰니까…” 아랑이 혼자 거드름을 피우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남의 주거지에 허락 없이 침입했다는 거 자체가 범죄일걸? 그걸 경찰에 신고 안 하면 어디다 해? 너희 아빠는 뭐라셔?”

 

 “음…. 아빠한텐 얘기 안 했는데? 아니. 잠깐. 흠.” 나는 어제 떡볶이만 처먹고 잠들어서, 희주가 아빠한테 얘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희주가 신고 안 했으면, 너라도 해. 내가 같이 가줄까? 이따 야자 전에 저녁 시간에? 인근 CCTV라도 확인해 봐야지” 아랑이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너무 ‘똥’이라는 더러움이 주는 충격에 휩싸여서, 사건을 본질적으로 볼 생각을 못 했다.

 

 “알았어. 이따 오후 수업 다 끝나고 가보자.”

 

 “오케이!” 아랑이 뭔가 건수가 생겼다는 듯,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

 

 일상적인 하루가 흘러갔다. 점심 메뉴에는 어제와 달리 고추가 통으로 들어간 요리가 보이지 않았고, 희주는 현주와 또 그 무리와 잡담을 나누느라 바빠 보였다. 어쩌면 희주도 ‘집 앞에 똥’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다, 여자애들은 똥 얘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어쩌면, 어제 내가 ‘고추’ 얘기한 거로 야한 얘기나 나불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 수업이 끝나고 벨이 울렸다. 학교에서 그리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석식 급식도 제공하지만, 일부는 그냥 밖에서 사 먹거나, 아예 야자를 무시하고 집에 가서 밥을 먹고, 혼자 공부하는 무리도 있었다.

 

 “고고고!”

 

 “너 왜 신나 보이냐” 내가 아랑의 모습을 보고 물었다.

 

 “아니야, 인마. 형이 신날 게 뭐 있냐, 범인 잡는다는데”

 

 “내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넌 공분 언제 하냐?”

 

 “응? 공부? 놀 거 다~놀고, 하는 거지. 다 그런 거 아냐?”

 

 아랑이 당연한 걸 묻냐는 듯, 큰 눈을 껌벅껌벅한다. 잘생긴 소 마냥 그렇게.

 

 물론 더 대꾸하지 않았다. 뒤에서 ‘야, 같이 가’ 하며 따라오는 아랑을 뒤로하고 통학 버스를 타러 뛰어갔다.

 

 희주가 문자로 [어디가] 라고 물었지만, 버스에 타고도 답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범인을 진짜 잡을 수 있다면, 내가 해낸 거라고 허세라도 부려볼 요량이었다.

 

 오거리 교차로에 있는 두 번째 버스 정거장에 내려서, 학교에서 버스가 온 길의 왼쪽 길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동네 파출소가 있었다. 그날따라 경찰이 언뜻 봐도 거의 10명 가까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가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상황을 설명해도 아무도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입구 앞에 책상에 앉아 접수를 받고 있는 이 덩치 큰 경찰관 외에는.

 

 “그러니까, 누가 똥을 싸놓고 갔는데, 범인을 잡아야 하니까 신고하고 싶다. 그래서 여기 사건 접수하는 데다 다 썼잖아요. 그럼 된 거예요. 나중에 보고….”

 

 학교 선생님들보다도 젊어 보이는 경찰관이었다. 이미 주고받은 설명을 벌써 두 번째 정리하고, ‘그만 가라’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나중에 언제요? 이미 똥은 싸놓고 갔는데.”

 

 “그러니까. 똥은 이미 쌌고, 이미 치웠다면서.”

 

 “제가 치웠다니까요? 내가 싼 똥이 아닌데? 그럼 뭐 그 사람이 벌을 받거나, 아니면 저한테 돈을 주거나, 그런 게….” 내가 설명을 하면서도 왠지 애들 푸념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같이 온 아랑이에게 구조의 시선을 보냈다.

 

 “형사님.” 아랑이 입을 열었다.

 

 “난 형사님 아니고, 여긴 파출소고,” 담당 근무 경찰도 반복된 대화가 답답한 듯했지만, 거의 다수의 경찰 인력이 그날 다 파출소에 있으니 (더 있는지는 모르지만, 의자가 이미 꽉 찬 듯 보였기에), 게다가 이 동네 애들이라고까지 하니, 눈치가 보여서 매몰차게 내보내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럼 경찰 형아, 들어보세요. 피의자가 제 친구 집 그러니까 타인의 사유지에 무단 침입을 해서, 계단에…, 아니 계단을 포함해서, 집을 훼손하고 갔단 말이죠. 제 친구이자 선의의 피해자는, 이를 복구하고자, 동생하고 밤늦은 시간에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며, 몇 시간 동안 계단을 치우고, 수도세를 써가며 물을 쓰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고, 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범인이 다시 나타나서 이번에는 집안에 들어가서 이런 일을 벌이면 그땐, 접수가 되는 건가요? 그때가 돼서야 경찰에서 도와주시는 건가요? 이런 모든 손해에 대해 형사상 처벌이 이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설픈 부분도 있었지만, 아랑의 ‘달변’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좀 하잖아!’ 역시 학교 성적이 좋은 애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경찰 형’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말이다.

 

 “하….” 잠깐 미소를 짓더니, “형사상 주거침입이나 재물손괴가 적용될지는 따로 봐야겠지만…, 그러니까 접수서 쓰라고 했고, 학생이 손해배상 얘기하는데, 그런 건 형사가 아니고 민사상 변호사를 쓰든지 해서 하면 되는 건데. 근데 계단 다 치웠는데 도대체 무슨 손해가 있었는지 모르겠네? 아니 그리고 똥을 집에 들어와서 또 싼다고? 왜?! 뭐 아는 사람이야? 그럴만한 예후가 있어??”

 

 둘 중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아랑이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다음까지 논박을 이어갈 만큼은 법적인 부분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씨, 물 썼다니까요? 그리고 제가 땀을 엄청나게 흘렸고? 그리고 뜨거운 똥…. 그 짧은 십 분 만에 싸고 튄 거 보면, 습관성 범죄자일 가능성이 커요, 내가 볼 땐!” 내가 대신 대답했다. 아랑이 나를 보며, 지원사격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힘주며 끄덕였다.

 

 “아이씨? 라고 그랬어요, 지금? 그래서. 그 물값이랑 땀 흘린 값 받으려고 고소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럼, 여기 동네 똥개들 아니…, 애완견들 데리고 다니면서 간혹 똥 안 치우고 사라지면, 아니 뭐 오줌은 다른가? 개들이 오줌을 싸고, 주인이 안 치우면, 그 땅 주인이 파출소 와서 ‘여기 동네 CCTV 다 봅시다! 내가 수도세 몇 푼하고, 치우느라 고생한 거 민사 소송할 거니까’ 그렇게 말하면, 그게 가능하면, 뭐 파출소는 똥오줌 싼 개 주인들 찾느라 민원 받고 수사하느라, 학생들 부모님이 내신 세금으로, 파출소 참 잘 돌아가겠다, 그죠??”

 

 ‘경찰 형’이 짜증에, 땀이 나는지 모자를 벗으며 머리를 비스듬히 쓸어올렸다. 왼쪽 눈썹에 흉터가, 마치 경찰 옷이 없었으면, 동네 깡패 같은 인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마지막에 ‘그죠?’라고 말하며 눈을 치켜뜨니, 번뜩이는 눈빛이 약간 희주가 열이 받을 때와 비슷한 느낌까지 받았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죠…. 죄송함다, 경찰... 형아” 아랑이가 얼어붙은 나를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그럼, 저희 이제 어떻게 하죠?” 내가 버벅대며 물었다.

 

 “접수하셨으니까, 기다려 보세요. 저희가 순찰도 강화하고, 인근 CCTV… 나 지금 몇 번 얘기하니? 그래요 확인해 볼 테니까. 접수했으니, 가보시면 돼요. 그리고 ‘경찰 형’ 아니고, 그냥 김순경 님…” 까지 말하면서 자기 명찰을 가리키다가, 잠시 생각하고는 자포자기한 듯 말을 이었다. “됐다, 너네한테 김순경 님은 무슨…’경찰 형’ 하세요, 그냥.”

 

 “야 김순경” 옆에 더 높아 보이는 경찰관이 그를 불렀다.

 

 “네, 경위님” 김순경이 깍듯이 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면 안 돼. 다가가는 자세도 좋지만, 민원인하고 형 동생 하는 건 아니야. 접수가 다 되었으면 가시라고 말씀드려.” 옆에서 다 들리는데, 아저씨 같은 어법으로 ‘나가’라고 우리에게 전하듯 하지만, 시선은 김순경에게 고정한 채로, ‘경위님’이라는 분이 말했다.

 

 “네, 그럼 저흰 가보겠습니다. ‘경위님’” 내가 그렇게 말하며 경례 인사를 하고 파출소를 나섰다. 아랑이가, 잠시 쭈뼛대다 곧바로 따라 나왔다.

 

 “넌, 살갑지도 않은 성격이면서, 그건 깡이냐 넉살이냐 뭐냐. 저 아저씬 좀 높아 보이는데, 거기다 대고 대뜸 ‘갱우님~’ 하고 인사를 하고 나오냐 큭큭큭” 아랑이 어깨로 툭 치며 말했다.

 

 “넌, 좀 살갑더라, ‘굥찰 횽아 굥찰 횽아~’ 뷰웅~쉰 새끼”

 

 내가 그렇게 놀리듯 말하고 학교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뭐?! 이 새끼…, 너 죽었어~ 잡히기만 해봐”

 

 곧이어 아랑도 내 뒤를 따라 뛰어왔다.

 

 

 

 

 

 

 

 

 

 

 

 

 

 

 

 

 

 6화. 크고 실한 홍고추

 

 학교 교문 앞에 도착할 때쯤엔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직 봄날이라 쌀쌀한 기운이 있었는데, 땀을 잔뜩 흘려, 감기라도 걸릴까, 쉬지 않고 뛰었다. 어서 학교로 들어가고 싶었다.

 

 왼쪽으로 코너만 돌면 교문이 나오는 위치에 다다랐을 때쯤, 불량스러운 자태로 몰려다니는 몇몇 학생인지 자퇴생인지가 반소매 티만 입고 서성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에 식어가는 땀방울 느낌만으로도, 조금만 더 있으면 날씨가 엄청 추워질 것 같은데, 삐쩍 곯은 몸에 반소매 상의에, 트레이닝복 바지만 입은 모습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주변을 눈으로 훑어가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체력이 되었으면, 당연히 뛰어서 슉! 하고 스쳐 지나면 되었을 것을, 이제까지 뛰어오느라 숨이 차서, 헉헉거리며 그 앞으로 마치 ‘날 좀 보소’하듯 지나가고 있었다. 나와 아랑이가.

 

 역시나, 그때 그들 중 하나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야, 너희 둘. 잠깐 일루 와봐”

 “?”

 

 딱히 다가가진 않았고, 어차피 그들이 바로 학교 앞 코너에 있었기에,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려서 쳐다보았다. ‘저 코너만 끼고 돌면 교문이 금방인데….’

 

 아랑이 담담하게 물었다, “왜?”

 

 5명이었다. 여자애 1명, 남자애 4명인 것으로 봐서 딱히 성별을 맞춰서 데이트나 나온 모임은 아닌듯해 보였다.

 

 ‘여자애가 보스인가? 희주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왼쪽에서 ‘4번’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코웃음을 친다.

 “크흐흐… 새끼, 반말은….” 별로 웃길 일도 없었는데, 이어지는 작위적인 웃음.

 

 “너희 여기 학교 다니지?”

 “이~여얼~ 부자들이네~ 사립 다니시고~”

 “공현주 돈 많잖아. 걔 얼굴 다 고친 거잖아. 큭큭큭.”

 

 자기들끼리 만담처럼 주고받더니, 처음 말을 걸었던 4번이 다시 묻는다.

 

 “너희 여기 학교 다녀, 안 다녀?”

 

 “다니는데?” 아랑이 답했다. 현주 얘기가 나온 거 보니, 어쩌면 현주 친구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차피 현주도 '사납게' 생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왼쪽에서 3번째 여자애는 사납거나 혹은 못되게 생긴 것만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못생겼다. 어느각도에서도 이쁜 모습이 없다는 말 쯤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친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 어디 보냐? 너 사시야?” 4번이 손가락을 튕기며 내 생각을 깨웠다.

 “푸흐흐. 눈깔이 삔 거야 사시면?” 3번이 4번을 팔꿈치로 쿡 찌르면 비웃듯 말했다.

 

 “가자.”

 

 그들이 시답잖은 소리에 정신이 팔렸을 때, 아랑이 재빨리 날 코너 바깥쪽으로 세우더니 내 오른쪽 팔을 잡고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3번과 4번은 둘 다 아랑의 기민한 움직임에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눈만 커졌고, 우린 이미 코너로 향하고 있었다.

 

 코너만 돌면 10m 전방에 학교 교문이고, 그 앞엔 아빠 회사 인사팀 부장이 좀 이른 정년퇴직 해서 학교 경비로 계셨기에, ‘세이프 존’ 같은 곳이었다.

 

 “어디가 이 새끼야”

 

 그때, 5번이 3, 4번과는 달리 재빨리 앉은 채로 발을 쭈욱 뻗으며 우리 앞길을 막아서려고 했다.

 

 슈~욱! 퍽!!

 

 순식간에 내지른 주먹.

 

 앉아서 한쪽 발만 쭉 뻗은 꼴사나운 5번의 왼쪽 얼굴에 아랑이 오른손 주먹을 빠르게 날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마치 바람 빠진 축구공을 찰 때처럼, 퍽! 하고 두텁게 울렸다.

 

 5번은 ‘철퍼덕’ 하고 엎어졌고, 아랑은 허리를 돌리며 4번을 노려보고 덩치에 안 맞게 새초롬한 표정을 짓더니,

 

 “경비 아저씨한테 다 이를 거야 이 쉑뀌들아~!” 라고 촐싹대게 뱉고는 나를 붙잡고 코너를 돌아 교문을 향해 뛰었다.

 

 어차피 교내에서 통학 버스 타고 집에 가면, 학교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마주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어디서 또 마주칠 줄 알고 저렇게 당당하게 주먹을 쓰나 한편으론 놀라웠지만, 아랑은 워낙 싸움도,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다 보니, 어릴 때부터 어디서 기백이 죽는 아이는 아니었었다.

 

 ---

 

 야자에 늦어서, 복도에서 무릎 꿇고 공부하는 거로 대체 되었기에, 야자가 끝날 때까지 희주나 현주에게 좀전의 상황을 설명할 기회가 없었다.

 

 희주가 문자로,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너 오늘 아침에도 늦고, 야자에도 늦은 거]라고 했지만, 내가 오늘 해낸걸, 겪은 일을 얘기하면, 잘 둘러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답하지 않았다.

 

 밤 10시가 넘어서, 야자가 끝났고, 교내 버스 정거장에서 희주와 아랑과 같이 버스에 올라탔다. 현주는 부모님이 차로 픽업을 오신다고 하셔서 다른 방향으로 갔기에, 우선 희주에게만 학교 앞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 얘기했다. 그리고 왜 야자에 늦었는지도.

 

 “그게 뭐.” 희주가 덤덤히 물었다.

 “그래서 늦었다고, 야자. 아 그전에 경찰서도 다녀올 일이 있었고. 물론, 현주만 아니었음, 야자 늦은 거 안 걸릴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다시 설명했다.

 “그게 왜 현주 탓이냐, 그 학교 앞 못생긴 불량배…, 걔들 때문이지.” 아랑이 끼어들었다.

 “넌 왜 버스 타냐?” 말 끼어드는 아랑을 보며 내가 말했다.

 “그래서, 오거리까지 갔으면 집엔 들렸고?” 이번엔 현주가 끼어들었다.

 “아니, 경찰서 간 건데?” 내가 답했다.

 “그러니까, 경찰서까지 갔는데, 왜 집에 안 들렸냐고. 그 얘기지, 희주야?” 아랑이 또 끼어든다..

 “야, 너 왜 버스 타냐, 근데? 너희 삼촌 차 갖고 안 오신 데??” 내가 짜증이 나지 않은 척 퉁명한 말투로 아랑을 보고 말했다.

 “집에 들렀냐고 병신아!” 희주가 내 얼굴을 붙잡고 눈을 마주치며 소리쳤다.

 “아니? 나 야자…늦을까 봐….”

 “경찰선 왜 갔는데?” 희주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물었다.

 “너희 어제 똥 치웠다면서. 그래서 갔지.” 아랑이 소처럼 큰 눈을 껌벅이며 희주랑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얘기도 하냐 너희는?” 희주가 본인 ‘템포’를 놓치고, 똥 얘기에 반응했다. 나와 아랑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지만, 말의 가시는 나를 향해 돋았다.

 “너 버스 왜 타냐고! 쫌! 삼촌 차 타고 가! 맨날 그렇게 가잖아!” 내가 더는 짜증을 숨기지 못하고 아랑에게 소리쳤다.

 “삼촌보고 오거리로 오라고 했다고!!” 아랑이 더 크게 목소리 시합 장난하듯 소리쳤다.

 “근데 아까 현주 탓은 무슨 소리야?” 반대로 희주는 목소리를 깔고 나를 보고 물었다.

 “아, 걔들이, 아까 그 학교 앞에 애들이 현주 찾더라고, 근데 이새끼가 주먹으로 먼저 선빵을 친거고…, 야 너 생각해보니까, 걔들은 그냥 친절히 물었는데 너가 먼저 때린 거 같다? 너가 경찰서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어 버스 왔다.” 아랑이 내 말을 무시하고 버스로 달려갔다.

 “걔들은 왜 현주 찾는데?”

 “몰라, 나도.” 희주가 물었지만 나도 사실 그게 궁금했다.

 

 버스에서도 정신 사나울 만큼 대화가 중구난방으로 럭비공처럼 튀었지만, 희한하게도 대화는 되고 있었다. 집중력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 애들처럼, 산만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잡동사니를 잘 기억하는 혈기 왕성한 청소년들의 대화였다.

 

 아랑은 결혼 못 한 찐총각 체육관 삼촌이 맞벌이 부부이신 아랑이네 집에 얹혀살다 보니 대부분 야자가 끝난 후 데리러 오곤 하셨는데, 오늘은 아까 학교 앞 5인조를 또 마주치기 싫어서, 학교 버스를 타고 오거리까지 가서, 삼촌 차를 타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끼익. 버스가 멈춰서고, 아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가라” 아랑이 우릴 보고 손짓하며 말했다.

 “꺼져 병신아, 밤에 혼자 서있다가 이상한 사람한테 처맞지 말고.” 내가 서서 답했다.

 “뭐야 같이 기다려 주는 거야? 오~ 희주는 좀 믿음직스럽지만, 너는… 먼저 들어가 돼. 어서.”

 희주가 피식 웃으며 옆에 같이 섰다.

 

 “저기 삼촌 차 온다. 야, 나 갈게! 내일 봐!” 아랑이 큰 키에 까치발까지 하니 안 그래도 큰 덩치가 훨씬 더 커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타러 뛰쳐나가는 모습은 재빨랐다. 우리 일반 고등학생이 동네 똥개 사이즈라면, 저놈은 이름처럼 늑대 같은 사이즈였다.

 

 ‘그래서 이름이 아랑인가?’

 

 혼자 생각하는데, 희주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도 가자~"

 

 그리곤, 집이 있는 빌라길 안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그순간!

 

 갑자기 누가 훅!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튀어나왔다.

 

 “에비!”

 

 “악!” 희주는 단말마의 비명만을,

 

 “흐으읍!!” 나는 들이킨 호흡이 목에 걸렸다.

 

 “아하하하 얘들아, 장난이야 장난. 아이고 놀랐나 보네. 어떻게. 아이고~.” 커피집 아저씨였다.

 

 “아저씨…! 딸꾹.”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아직도 경기가 가시지 않았다.

 

 희주는 이미 매섭게 눈을 흘기고는 빌라길 안 집이 있는 방향으로 매몰차게 걸어 들어갔다.

 

 “아이고, 희주 학생 화났나 보다. 희준 학생, 미안해, 둘이 늦은 시간까지 힘들까 봐, 남은 머핀 가져가서 아빠랑 먹으라고 가지고 나오다 장난친다는 게…. 희주 많이 놀랐나 보네, 인사도 안 하고….” 커피집 아저씨가 머핀 박스를 들고 희주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네…. 죄송합니다…, 잘 먹을게요.” 병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고마워야 할 순간과 화내야 할 순간이 동시에 같은 대상에게 투영되어 혼란스러웠다.

 

 “뭐, 별거라고. 너희 아빠 종종 여기서 드셔. 그래서 들고 왔어. 그래 어서 들어가, 희주 혼자 가버릴라.” 커피집 아저씨가 손짓하며 가라고 했다.

 

 매번 말투도 그렇고, 이번 장난도 그렇고, 뭔가 콕 집어서 백 퍼센트 싫다고는 못하겠지만, 짜증 나는 아저씨인 건 맞는 거 같았다. ‘언젠가 갚을 날이 있겠지’

 

 “정희주 같이 가!” 내가 희주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다.

 

 뛰어가는데, 빌라들 사이, 불과 1m도 안 되는 오래된 빌라들 간극, 그 사이로 번쩍하는 눈동자를 본 것 같았다.

 

 잠깐 속도를 줄이고 고개를 돌려 보자, 모자로 가린 것인지 없어진 것인지 눈빛이 사라졌다. 좀전의 그것이 사람 눈인지, 주인 없는 고양이 눈인지, 궁금증이 일어 잠시 멈추고 빌라 사이로 걸어가다.

 

 바사삭.

 

 ‘뭐지?’ 바닥을 보니, 말린 고추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아서 조심스레 한 줌 쥐어 들어보니, 완전한 고추였다. 바싹 말린 크고 실한 홍고추, 십여 개…

 

 ‘누가 여기서 이런… 크고 실한 홍고추를….’

 

 빌라 틈을 다시 쳐다봤다. 분명 누군가, 저 안에 아직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빛은 더는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무언가 웅크리고 있는듯한 느낌. 너무 캄캄해서,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있는 무언가….

 

 “야 정희준! 빨리 와봐!!”

 

 그때, 희주가 이미 집 앞에 도착해서 나를 다급한 소리로 불렀다. 50m도 안 되는 거리였다. 빌라 틈은 제쳐두고 냉큼 희주에게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하니, 난장판이었다.

 

 아무래도 도둑이 든 것 같았다.

 

 

 

 

 

 

 

 

 

 

 

 

 

 

 

 

 

 

 

 

 

 

 

 

 

 

 

 

 

 

 

 

 

 

 7화. 콘돔

 

 삐용, 삐용, 삐용.

 

 “애들 말 들어보니, 3층 창문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큰아이 방 창문이요”

 

 “뭐 없어진 건 없으시다고요?”

 

 “네…. 인근 CCTV에라도 뭐 나온 게 있나요?”

 

 “확인하고 있습니다만, 출퇴근 시간에 성인들이 많고, 낮엔 인근 여대생들이 많이 돌아다녀서 특정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네…. 그래도 뭐라도 좀 나오면 알려주세요. 여기 ‘빌라길’에 가로수도 좀 설치하고, 여성 안심길이던가 이런 거 차려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애들도 많은 동넨데.” 아빠가 침착하게 얘기하시다가 우리 생각이 나셨는지 목소리를 올렸다.

 

 “네, 우선 상황보고, 그런 행정 부분도 구청에 신청하시면 저희 쪽도 지구대에서 얘기하겠습니다. 구청에서 연락 올 때.” 담당 형사인지 모르지만, 경찰차에서 내리신 아저씨가 공무원처럼 대답했다.

 

 삐리릭.

 

 ‘어, 김 형사, 뭐 두 명?!’ 무전이 왔는지, 경찰이 차에 다시 탑승했고, 아빠는 집 앞 현관에 서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어서 들어가. 12시가 넘었어. 내일 아침에 학교 가야지.”

 

 “집안이 저 꼴인데 어디서 자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희주가 내 옆구리를 쿡 치더니,

 

 “네 아빠, 침대만 치우고 잘게요…. 근데 원래 도둑 들면 이렇게 경찰이 많이 와요?” 하고 물었다.

 

 “아니…그게…” 아빠가 경찰차를 슬쩍 한번 보시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저쪽 커피숍 근처 빌라길 초입에서 뭔 사건이 있었나 봐. 근데 하필 우리 집까지 좀 전에 도둑까지 들었다고 하니까…

 

 “아까 언제요? 우리 열 시 반쯤 들어올 때 아무도 없었는데?” 희주가 말했다.

 

 “...으음 역시 그런 거였군” 내가 탐정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래 이 병신이. 지금 장난칠 때 아니거든?” 희주가 꼴사납다는 듯 쳐다봤다.

 

 “쓰읍… 희주야. 오빠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랬잖아.” 아빠가 퇴근 후 일어난 일들에 지치신 듯 웬일로 희주에게 짜증을 내셨다. 내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냉큼,

 

 “전 들어가서, ‘희주가 열어놓은’ 창문부터 닫고, 아빠 침대 치우고 잘게요”

 

 그렇게 얌체처럼 말하고는 안으로 휘리릭 들어가 버렸다. 뒤에서 희주가 땅이 꺼질 듯 ‘어후’ 하고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

 

 상황이 상황이었는지라 아빠에게 전날 밤 똥 치운 얘기는 하지도 못했고, 이를 내가 파출소에 신고했다는 얘기도 하지 못했다. 집에 도둑이 들었고, 인근 빌라에서 무슨 강력범죄가 일어난 거 같은데, 희주랑 내가 똥 치운 게 무슨 대수라고, 말이다.

 

 아빠 성격상, 이런 날은 다 같이 자야 한다고 하실 거라, 내가 방 가운데 아빠 침대를 기준으로 왼쪽 바닥에, 희주가 오른쪽 바닥에 누워 잘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깔았다. 희주는 아빠 방을 다 치우고 먼저 세수를 하러 들어갔는데, 희주 핸드폰이 울렸다.

 

 뷀레레레레레~

 

 시끄러워서 내가 바로 음성 소거 버튼을 눌렀다. 한 번만 울려서 그랬는지, 얼굴 세면 중이라 물소리 때문에 못 들었는지 모르지만, 희주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사이, 전화기를 슬쩍 보니, ‘다리털 대딩’이라고 적힌 번호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잠시 뒤 아무도 받지 않자, 문자가 ‘틱’ 하고 왔다.

 

 [다리털 대딩: 우리 꼬맹이, 내일은 독서실에서 볼 수 있을까?]

 

 ‘뭐지? 다리털? 대딩? 남자 같은데? 독서실??’ 내 촉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야 뭐해!” 희주가 어느새 핸드폰을 낚아챘다. 눈빛은 이미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뭐! 뭐! 아주 털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봐!”

 

 “뭐하냐니까 병신아!” 희주가 본인도 짐짓 예민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너 이거 뭐야. 이 요망한 것! 너 독서실에서 인강 듣는다고 그래놓고 이제까지 다리털 많은 남자 만난 거야? 너 그런 취향이야?!” 내가 되받아쳤다.

 

 “아니거든!”

 

 “그럼 이 사람 뭔데? 아빠한테 얘기해도 돼?”

 

 “아 쫌! 그냥 공부 배우는 거야. 됐냐!?”

 

 “고등학생이 공부를 왜 대학생한테 배워? 과외 하는 거야? 무슨 돈으로?”

 

 희주가 머리맡에 둔 책가방에서 노트를 꺼내더니 펼쳐 보이면서 말했다.

 

 “그냥… 공짜로 배우는 거야… 이 오빠가… 봐봐. 봐봐! 야, 그냥, 독서실에서 우연히 공부하는 거 보게 돼서, 도와준다고 해서, 우리 학원비도 없고, 인강은 너랑 아이디 같이 쓰고, 그러니까…, 공짜로 가르쳐 준다고 해서, 배우는 거야. 됐냐? 이제 자라. 아빠한테 괜한 걱정 끼쳐드리지 말고.”

 

 “공짜가 어딨어, 요년아!”

 

 “아 쫌! 요년이라고 하지 좀 마!

 

 “그 아저씨가, 야, 뭐 어떻게 해보려고 너한테 그러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너 막 약간 꼬리치고 그러지? 응?” 내가 좀 과장된 예시를 쓰긴 했지만, 남자 대딩이 고딩 여학생 과외를 공짜로 해줄 땐, 그것은 보통 이유는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바로 그때 희주 가방 속에서 뭔가를 봤다.

 

 “이 변태 새끼 다 너 같은 줄 알아!? 이 오빠는 그냥…, 어!? 야 뭐 하는 거야!!”

 

 내가 가방을 휙 낚아채자, 희주는 당황해 어찌할 줄 몰랐다.

 

 “어! 어! 어…! 이거 뭐야!! 이거 뭐야!!”

 

 가방 안에는 포장지가 없는 콘돔이 한 개 있었다. 실제로 본건 처음이었다. 집 앞 똥, 도둑, 강력범죄와 경찰 등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일련의 사건이 일시에 휘발될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내 동생 가방에 이미 쓴 것 같은…, 아니 썼는지는 자세히 못 봐서 모르겠지만, 여하튼 포장지가 없는 콘돔이 있다니!’

 

 “이 미친 새끼가 진짜…!” 가방을 다시 낚아채고도 그녀의 눈썹은 부르르 떨렸다. 나만큼 놀란 것 같았다.

 그때 아빠가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으시는 소리가 들렸다.

 

 “...!” 내가 아빠를 부를 듯 눈이 커져, 호흡을 들이키고 ‘아’라고 입을 떼려던 바로 그때.

 

 희주가…

 

 콘돔을 삼켜버렸다…!!!

 

 ‘....!....’

 

 ‘야동’에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이런 얘기는 남자애들끼리 호기심에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똥을 먹는 것처럼, 뭔가 먹으면 안 되는, 자연스럽게 ‘절대 먹지 않는’ 그런 것인 줄 알았었다. 방금 눈앞에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콘돔을 삼키느라 매우 버거운 듯, 그리고 나는 그 놀라운 광경을 보며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아빠’의 ‘아’자를 다시 삼키느라, 둘 다 사례에 걸린 듯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빠가 방문을 열며, ‘너희 왜 그래?’라고 물으셨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꼭 사례가 걸린 게 아니어도 말이다. ‘저걸 어떻게 먹을 수가 있지? 저것도 고추를 먹으면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하고 같은 건가?’ 아주 혼란스러웠지만, 분명한 건 절대 아빠에게 말하면 안 될 것을 본 것만은 확실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이 들지 못하고 매우 뒤척였다.

 

 ‘똥을 싸놓고 간 놈은 도대체 왜? 누구지?’

 

 ‘무슨 대학생이 독서실에서 고2 여학생, 그것도 나처럼 생긴 애를…, 과외를…? 야밤에…? 무료로? 가르치지?’

 

 ‘오늘 들은 도둑은? 다 그대로 있는데 뭘 훔친 거지? 빌라길 입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학교 앞 걔들은 현주를 왜 찾은 거지?? 아랑이는 괜찮을까?’

 

 ‘...’

 

 ‘도대체 얘는 콘돔을 왜 삼킨 거지? 아니 애초에 콘돔이 왜 있지? 사용한 건가? 그럼 사용한 거를 먹은 건가? 그럼 엄청 오래된 거 아닌가? 배탈은 안 나려나? 무슨 맛이지?’

 

 이상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다가, 신경 쓰지도 않고 있는 머릿속 기억까지 무의식적으로 건드렸다.

 

 ‘어제 빌라 골목 집 옥상에서 내려다본 놈은…, 누구지?'

 

 ‘아까, 빌라 사이에서 반 짝인 건…, 뭐였지?

 

 ‘홍고추…는? 가만있어봐, 아까 그걸 어디에다 뒀더라?’

 

 그렇게 잠이 들었다.

 

 ---

 

 아침부터 희주는 일찍 일어나서 아빠 아침을 대신 준비하느라 열심이었고, 나는 어제 치우다만 도둑의 흔적들을 걸레로 닦고 있었다. 아빠는 토요일이면 귀마개에 눈가리개까지 하고 주무시느라, 웬만하면 때가 될 때까지 깨우지 않는 게 희주와 나 사이의 암묵적인 원칙이었다. 토요일 아침이라도 회복하시라는 뜻에서 우리끼리 살면서 생긴 원칙 중 하나였다.

 

 희주는 아침 준비를 끝내자마자, 기왕 하는 김에, 점심으로 먹을 것도 미리 육수를 낼 것이라면서, 생닭을 사러 잠깐 오거리 마트에 다녀온다고 하였고, 나는 청소를 마치고 기다리다, 수학 문제지를 꺼내 들었다. 봄 햇살이 비스듬히 집 안 구석구석을 채웠다. 그 때문인지 어제 도둑이 들어온 집 치고는 생각보다 따뜻하게 보였다.

 

 “잘 잤어, 아들? 희주는?” 아빠가 배를 벅벅 긁으며, 방에서 나오셨다.

 

 “아빠 희주가 배 긁지 말랬는데…. 아저씨 같다고”

 

 “헉! 희주 있어?!” 아빠가 쌍꺼풀도 풀리지 않은 눈을 크게 뜨며 소곤댔다.

 

 “아니, 닭 사러 나갔어. 점심에 칼국수 해 먹을 거라면서….”

 

 “칼국수는 무슨…. 아이고, 얘기를 하지, 그랬으면 내가 어제 들어오면서 사서 왔을 텐데….”

 

 “어제 일하다 말고 뛰쳐 들어 와놓고는 무슨… 어제 도둑 들었다니까, 놀래서 일도 못 했을 텐데, 닭을 어디서 사와…. 아빠도 참….”

 

 “아 맞다. 어제 우리 집에 도둑 들었지? 근데 뭐 가져간 게 없냐?” 아빠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뭐지? 이 쿨찐내는? 굳이 이런 날은 같은 방에서 자야 한다고 고집을 피울 실 땐 언제고….’ 나도 모르게 그런 아빠를 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것도 안 가져갔던데? 나도, 희주도 뭐 잃어버린 것도 없고…. 아빠도, 뭐 우리 몰래 숨겨둔 금송아지 같은 거 없으면…”

 

 “금송아지? 아이고 도둑 당해도 좋으니, 한번 구경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흐흐흐 그러게…. 나두, 나두! 금송아지 좋지…”

 

 문이 열리고 희주가 들어왔다.

 

 “금송아지!? 어디? 아빠, 금송아지 있었어?!” 희주가 아닌 걸 알면서도, 농을 던졌다.

 

 “그래 우리, 금송아지 있었는데, 어제 도둑맞은 거로 하자. 경찰이나 어디 다른 데는 얘기 못 하고, 우리끼리만,” 아빠가 희주의 등장에 신이 나신 듯 두리번거리다, “그래 저 닭만 한 금송아지 있었던 거로!” 하고 흰소리를 하셨다.

 

 “이 닭만 한 거!?” 희주가 번쩍 들어 올리고,

 “오 좋아 좋아!! 하하하하” 나도 너스레를 떨어봤다.

 

 어젯밤 궁금증 따위는 다 잊고 말이다. 아빠가 있으면, 이렇게 된다.

 

 큰일도 큰일이 아닌 것처럼.

 

 

 

 

 

 

 

 

 

 

 

 

 

 

 

 

 

 

 

 

 

 

 

 

 8화. 쪼물락 쪼물락

 

 토요일이었지만, 아빠는 잠시 처리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회사로 나가셨고, 희주와 나는 문제지를 푼다고 오전을 꼬박 각자 방에서 보냈다.

 

 아니 어쩌면, 어젯밤 콘돔을 삼킨 일 때문에, 잠시 어색해서, 서로를 건드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

 

 [칼국수는? 각자 담아서 먹으면 되는 거?]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벌써 2시였다.

 

 [야 점심!] 답이 없어서 또 보냈다.

 

 “나와서 너가 보면 알 거 아니냐.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하냐?” 부엌에서 희주가 말했다.

 

 ‘언제 방문을 열고 나갔데, 소리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내 방문을 열었다.

 

 “냄새 좋구먼. 나보단 못하지만, 아마 닭 육수에 칼국수 면만 삶아서 넣었겠지 후후. 거기에 면수와 멸치 육수를 섞고, 국간장, 배추, 양파, 감자채를 썰어 넣으면 야채 육수가 흘러나와서 기가 막힌 데 넌 그런 건 모르겠지, 후후후.” 내가 허세 가득 너스레를 떨어봤다.

 

 “어, 너나 그렇게 해 먹어. 난 나가니까 집 잘 지켜라”

 

 “어? 어디가 토요일인데? 너 먹었어, 벌써?”

 

 “집 잘 지켜라.”

 

 오전 공부도 다 했겠다, 왠지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희주는 이미 나갈 채비까지 끝난 상태였다.

 

 “아 진짜…. 야 같이 좀 가.” 내가 아쉬운 듯 말했다.

 

 “뭘 같이 가, 내가 누굴 만나는 줄 알고”

 

 뷀레레레레레레~. 뷀레레레레레레~.

 

 “야, 넌 필시 진동으로 해둬라. 그 소리 졸라 짜증 난다.”

 

 희주가 나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하지만 목소리는 나긋하게 말한다.

 

 “아 여보세요? 네…. 네…. 아니요…. 빨간색으로요…. 네 이따 픽업…. 아 평일이요? 음…. 근데 그러면…”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다. 서둘러 닭칼국수를 흡입하느라, 후루룩 ‘면치기’ 소리만이 들렸고, 위장은 거의 씹히지도 않은 국수 가락을 받아드렸다.

 

 3분 정도 지난 후,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신발을 신는 희주 뒤에서 내가, 아직 면발이 식도에 걸려있는 듯 게우는 소리를 내면 말했다.

 

 “같이…, 으웩…가. 같이…, 웩…”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된 채로.

 

 “아 더러워 진짜! 꺼져!’ 희주가 나를 밀치고 뛰쳐나갔다.

 

 우적우적… 우물우물. 꿀꺽…

 

 “야! 오빠도 데리고 가!” 내가 급히 신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잠근 후 멀어져가는 희주를 따라 뛰어갔다.

 

 미처 위장까지 도달하지 못한 칼국수 면발이 올라올 것 같았지만 그 정도 고통쯤이야. 집에서 혼자 심심한 거보단 나았다.

 

 내리막길을 따라 뛰는데, 깔끔하게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빌라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아빠도 직장인이지만 토요일엔 편한 옷인데, 토요일 오후 이 동네를 걸어 다니는 복장치고는 너무 깔끔한 복장이라 눈에 띄었다.

 

 ‘누구지…?’ 그가 가까워 지면서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붉은색의 작은 막대기 같은…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해졌다. 그것은 바로, ‘크고 실한 홍고추였다!’

 

 그가 한 손은 주머니 넣고, 다른 한 손으로 홍고추를 쪼물딱 쪼물딱 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봄볕 좋은 토요일 오후, 한 손에 홍고추를 들고, 쪼물딱 쪼물딱 만지며 걸어가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저 사람이 어디를 가는 것인지 의구심이 일었지만, 속도를 줄이며 눈을 마주치기엔 ‘홍고추’ 말고는 딱히 빌미도 없을뿐더러, 지금 희주를 놓치면 오후가 매우 심심해질 것이고, 또 희주가 진짜 누굴 만나는지, 혹시 ‘콘돔맨’ 혹은 ‘다리털 대딩’을 만나러 가는 것인지도 매우 중요했고 궁금했기에, 양복 입은 아저씨와 홍고추의 거센 위화감은 뒤로하고 정신없이 뛰었다.

 

 ---오거리 프랜차이즈 버거 가게 안---

 

 “...너희 둘이 뭐 레즈 이런 거냐?” 희주가 만난 이는 현주였다.

 

 “쟨, 왜 달고 왔어?” 현주나 희주를 보고 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몰라, 더러운 게 그냥 따라왔어. 달리긴 졸라 빨라 가지고” 희주가 답했다.

 

 오거리, 우리 집이 있는 ‘빌라길’과는 반대쪽 끝 두 갈래에서 한쪽은 파출소가 끝에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이 동네 탈선, 불륜 혹은 그 외 ‘겟 어웨이’를 꿈꾸는 영혼들이 몰려있는 어둠의 상권이 몰려있는 곳이다.

 

 그래 봐야 PC방 잔뜩, 횟집, 중국집, 밤에만 여는 다방 같은 술집 몇 개, 치킨집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뻔한 가게들이 즐비하지만, 이곳에 여관 및 모텔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지나칠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길목이다.

 

 물론, 이 길을 그대로 따라 5분 정도 전속력으로 뛰면 8차선 고속도로와 인근 고가도로로 진입할 수 있는 시끄러운 교차로가 있고, 또 5분 정도 더 뛰면 우리 학교가 나오기에, 매번 지나칠 수밖에 없는 길이긴 하지만 말이다.

 

 “난 여기 싫던데. 너무 다크해…”

 “날도 화창한데, 뭐가 다크해, 미세먼지도 없구만” 현주가 답했다.

 “동네가 좀 싸 보이잖아… 모텔도 많고.”

 “그건 고속도로에서 나오면 바로 자고 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여기가 지은 거지. 너 바보냐?”

 

 “얘! 얘! 그래서 누가 따라오라디?! 집에 가~쫌!” 희주가 현주에게까지 타박받는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얘’가 뭐냐 오빠한테…그리고 ‘파터’ 버거는 이제 유행 지나지 않았냐?” 괜히 툴툴대봤다.

 

 나도 실은 여기 버거는 좋아하지만, 이 동네에서 ‘파터’는 여기에만 있어서 - 아마 조금 전 현주가 얘기한 교통의 편의성 때문이겠지만 - 자주 오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닥치고…,” 희주가 나와의 정상적인 대화를 포기한 듯 화제를 돌렸다. “기왕 따라왔으니까 너가 말해. '어제' 무슨 일 있었는지.”

 

 “어제? 혹시 똥?”

 

 “그건 그저께고 병신아!”

 

 “똥? 그건 또 무슨 얘기야?”

 

 “아!, 현주 넌 똥 몰라?”

 

 “...희주야, 너희 오빠 원래 이 정도는 아니지 않았어?”

 

 “똥 말고!”

 

 “아~ 도둑 든 거?”

 

 “너희 도둑 들었어?!” 좀 전까지 나의 똥 얘기에 빈정대던 현주도 도둑 얘기엔 깜짝 놀라 했다.

 

 “응 들었어,” 희주가 먼저 현주에게 간결히 대답 후, 나를 보며, “그거 말고, 어제 너희 야.자.늦.은.거. 얘기 말이야 바보야!”라고 말했다.

 

 “그게 똥인데? 그거 때문에 경찰서 가서 야자 늦은 거야~ 너 버스 정거장에서 아랑이랑 내가 설명하는 거 제대로 안 들었지?” 이쯤 되면 나도 그냥 희주를 놀리려고 모른 체하는 거였다. 열 받아 보라고 흐흐.

 

 “하아…. 진짜, 어제 학교 앞 현주 찾던 애들 얘기 말이야! 그거 얘기하라고~ 딴소리하지 말고! 갑자기 ‘횬주야, 떵 멀라? 멀라?’ 그러면 누가 알아 이 개 또라이야!!”

 

 “아~~~ 아랑이가 애들 때린 거?”

 

 “아랑이?”

 

 현주도 오락가락 정신이 팔렸다가 아랑이가 때렸다는 얘기까지 나오자 표정이 조금은 진지해졌다. 고등학생들의 대화는 언제나 중구난방 정신이 없다. 하지만, 언제나 결국 해야 하는 얘기를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항상 꼭 해야 되는 얘기를 피하려고, 반대로 의미 없는 대화만 계속해대는 어른들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하겠다.

 

 ---

 

 현주가 내 얘기를 다 듣고, 침착하게 궁금한 부분들을 채워주었다.

 

 어제 오후 학교 앞 5인조 중에서 3번이었던 여자애는 현주의 중학교 동창이고, 그 애 아빠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잘 못 처리해서 잘리게 되었다는 얘기. 그 후 협력업체로 하향(?) 이직해서, 그래서 회사 지원을 받는 우리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 하고, 같은 동네 살지만, 동네 공립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공립에서 5인조 중 한 명인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 아마 4번으로 추측되는 남자애 - 그 애 패거리들과 어울리다가 자기랑은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근데 왜 온 거야?” 희주와 내가 거의 동시에 물었다.

 

 “몰라, 나도” 현주도 정말 모르겠다는 듯 답했다, 그리곤, “…. 근데 아랑이는 왜 때린 거야?” 하고 물었다.

 

 “그러게. 나도 그게 잘… 지금 부를까?” 내가 되물었다.

 

 “아니 뭐 그럴 것까진 없고.” 현주가 손사래를 쳤다.

 

 볼이 발그레해지는 걸 희주가 놓치지 않고 나를 보며 물었다.

 

 “아니, 뭐 가만히 있는데 때린 건 아니잖아. 아니라며, 그날 버스 정거장에서 설명할 땐. 먼저 걔들이 시비를 걸었다면서.”

 

 “아, 그치…. 그 맨 끝에 있던 애가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다리를 이렇게 좌악~ 내밀었어. 우리가 학교 들어가려는데. 그래서 아랑이가 이렇게” 내가 계속 동작을 따라 하면서, “퍼퍽! 끊어치기로. 이렇게. 퍼퍽!’ 설명했다.

 

 “그게 때릴 일이야?” 현주가 물었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봐도 오버였어. 근데, 때리면 안 돼?” 내가 일부 수긍은 하면서도, 무슨 이유에선지 궁금해져서 되물었다. 현주가 아랑을 걱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랑을 질타하는 것인지.

 

 “아니, 걱정돼서 그러지!”

 

 ...걱정해서 질타하는 것이었다.

 

 "얽혀서 좋을 애들이 아니라서…. 아닌 거로 알아. 듣기로, 그 공립에 되게 질이 안 좋은 애들이 있다고 들어서…. 특히 한 명이 진짜 이상하데, 잔인하고….” 현주가 기억을 더듬으며 설명했다.

 

 “왜, 뭐가 어떻게 이상, 잔인한데?” 내가 물었지만, 자극적인 단어에 희주 눈도 커져 있었다.

 

 “위험한 앤가 봐. 지난번 점심시간에 그쪽 공립에서 한 명이 우리 학교 와서, 10분 만에 난리쳐놓고 간 적 있었잖아, 알지? 우리 학교 일진이라고 막 떠들던 애들. 걔들 혼자서 박살 내고 간 거. 선생님들 난리 나고. 그게 그 애 한 명이 한 거래. 나는 수미한테 들었지만.”

 

 “수미? 3번이 수미야?” 내가 물었다. 번호는 나 혼자 붙인 거라, 희주와 현주는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우리 학교 일진 흉내 내는 애들 막 피 나고, 팔 부러지고 그랬잖아. 뭐 야구 방망이 같은 것으로 내리치는 거 막다가. 근데, 그거 때린 게 공립 쪽 애들이야?” 희주가 그때 일을 기억하며,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대. 점심때 혼자 오토바이 타고 와서 10분 만에 다 쓰러뜨리고 갔데.”

 

 “와…. 무슨 무협지 같다….” 내가 말했다, “근데…, 아랑이도 어쩌면 그 정도는…아마?”

 

 “그래? 부잣집 도련님 호신술 정도 아니고?” 희주가 아랑이 실력이 그 정도냐는 듯 반문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얽혀서 좋을 것이 없는 애들이라는 거지… 더 잔인한 짓도 한다고 하니까….” 현주가 겁먹은 듯 말했다.

 

 “아랑이도, 내가 중3 때 싸우는 거 한번 봤는데, 날아다녀. 그때도 키가 180 좀 넘었는데, 뭐 괜찮겠지…. 내가 때린 건 아니니까 후후후” 내가 농담하듯 웃자, 희주와 현주가 나를 쓰레기처럼 쳐다봤다.

 

 이런저런 얘기 후, 희주와 현주를 따라가게 걸어 나오면서, “이제 뭐 할까?”라고 물으니, 희주가 갑자기 뒤로 돌아 “자리에 핸드폰을 놓고 왔다”라면서, “빨리 가져와”라고 말하며 나를 밀었다.

 

 내쳐지듯 자리로 가서 자세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문 쪽을 쳐다보자, 희주와 현주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우쒸”하며 급하게 잡아보려 밖으로 나가 봤지만, 이미 희주와 현주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오는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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