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심장 밀렵꾼 : 비존재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20.8.20

타인의 심장을 갈취하여 생계를 이어나가는 심장 밀렵꾼 준명. 그리고 그런 그의 심장을 원하는 한 여신. 그 애증 섞인 관계는 이윽고 서울을 한바탕 뒤흔들게 되는데....
아노미의 끝자락, 혹은 타락한 도시의 말로. '심장 밀렵꾼 : 비존재' 많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비존재_ 05
작성일 : 20-08-24 15:24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998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숨이 턱 막혀올 정도로 빼곡이 들어선 빌딩들이 햇빛을 반사시킨다.

 전부 똑같이 생긴, 온통 유리로 외장 마감된 빌딩들을 보고 있으면 일종의 현기증 같은 것이 발생하기까지 한다. 그곳은 6000세대에 달하는 인구를 수용하고 있음에도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단지 내를 나다니는 사람들의 수보다 설치된 조각 예술품의 수가 더 많을 정도였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이 아파트 단지는 특유의 컨셉 탓에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폐쇄적이기 짝이 없는 그 분위기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정확히 파고들어서, 비는 세대가 나오면 과거 유명 콘서트의 티켓 발권과 같은 속도로 입주 및 분양이 마무리되곤 한다. 자리를 비우기 위해 살인이나 심장 탈취마저 빈번하게 일어나니 이곳의 인기에 대해서는 두말하면 입만 아플 정도다. 때문에 녀석들의 아지트가이곳일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설마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숲 속의 고인 물가처럼, 방치된 구역이 있었다.

 뼈대와 플로어만 세워진 채 벽체는 증설되지 않은 한 빌딩.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 도중에 공사가 중단 되었으리라. 이곳이 마린의 심장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의 아지트였다.

 [야 저 자식 잡어!]

 [몇 층인데?!]

 [17!]

 [심장은?]

 [못 빼냈어 일단 그냥 죽여!]

 유리벽 밖에서 직원 놈들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덕분에 반대편 빌딩의 창문이 하나 둘 열리는 모습이 보였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슬며시 다시 닫힐 뿐이었다. 심지어 그 중 절반은 드론 배송을 받는 이들이고, 눈앞에 벌어진 살육전에는 이렇다 할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투가 한창인 창밖을 바라보며 머금었던 전자담배의 수증기를 뱉을 때였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뒤져봤는데, 백금발의 여자는 없더랩니다 이사님.”

 이곳은 단체의 수장으로 여겨지는 여자의 거처. 기껏 용써서 잠입했건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는 모양이다.

 “어째 너무 수월하다 싶었다. 애들 데리고 출장이라도 갔나?”

 “그런가 봅니다.”

 전투보다는 소탕에 가까울 정도로 손쉽게 진행되던 작전이 어쩐지 맘에 걸렸는데, 역시 뭔가 결함이 있었나. 예상 병력의 20%도 안 되는 적의 규모를 봤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거늘. 뒤돌아서 그에게 물었다.

 “마린 심장은?”

 “그것도...”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가뜩이나 3일 밤낮 모든 의뢰를 끊고 수사에 전념했는데, 마린의 심장마저 수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손해가 너무도 뼈저리다. 정체된 일정만큼 쌓이고 있을 천문학적 금액의 적자를 생각하니 골이 아파왔다. 직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강행한 일인 것까지 합하면 경영적인 부분에서 손해는 실로 막대하다.

 “후... 친구 한 놈 잘못 둬서 엄청 고생하네 진짜”

 전자담배를 안주머니에 넣으며 마지막으로 머금었던 수증기를 뱉었다. 한숨 대신 내뱉는 하얀 연기와 함께 내가 푸념하자

 “그래도-“ 또 다른 직원 녀석이 어디선가 가지고 온 기다란 어항을 아일랜드 식탁에 쿵하고 내려 두며 말했다. “뜻밖의 이득이 있습니다.”

 직육면체 형태의 긴 어항 속에는 세 개의 심장이 들어 있었다. 칸막이로 구분된 공간마다 하나씩 잠겨 있는 심장. 그 주위로 실제 관상용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먹이를 주는 줄로만 알고 수면 위로 모여들어 뻐끔뻐끔 입을 내밀었다.

 ‘상당히 매니악한 취미네...’

 그래도 품질만은 최상급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모두 질 좋은 이채를 발하고 있었다.

 “품질이 좋은 것도 좋은 거지만, 문제는-...”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미심쩍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어항 앞에 붙어 있는 세 개의 네임텍 모두, 최근 연이어 실종됐던 교황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뭐라고....?”

 그의 말을 듣고 어항의 전면을 보자, 각 칸의 전면에 정말로 전대 교황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역시 감정 해봐야 알겠지만, 만약 진짜라면-”

  세 명 모두 마린에 준하는 심장 가격을 내걸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근 6개월 안에 3명이 연이어 실종되었지만, 신의 존재가 자명한 시점에서 교황은 꽤나 영향력 있는 직책이었다. 이것들이라면 3일간의 공백을 메우고도 남으리라. 절로 입이 찢어질 만큼의 호사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이 있다면, 국가 단위의 호위가 따라붙는 교황을 어떻게, 그리고 또 어째서 교황들의 심장들만 모아둔 것일까. 이것이 전부 진짜라면 예상보다 조직의 규모가 배는 큰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심장들은 없어?”
 “여기 말고 전장 꼭대기에 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큰 금고가 하나 있긴 한데요.....”

 “가져가기가 애매하겠지.”

 “네. 지금으로서는.”

 “알았다. 일단 철수하자. 밖에 상황은?”

 “거의 다 정리됐다고 합니다.”

 “그래.”

 부하 직원에게 교황들의 심장만 챙기라고 말해 두고, 나는 현관으로 향했다. 문은 이미 뜯어낸 상태여서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옆에 걸려있는 전신 거울을 보며 코트의 깃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복도는 부드러운 카펫 재질이었다. 덕분에 발소리가 크게 나지 않았다. 이것도 사람들 간의 물리적 교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설계인 걸까. 적어도 매우 뜸한 간격으로 벽에 박혀 있는 현관들은 그것을 위한 것임에 분명했다. 한 층이 250평에 가깝지만 각 층 당 3세대밖에 들여놓지 않았을 정도다.

 벽면은 검붉은 색의 패널로 깔끔하게 덧대어져 있었다. 간간히 걸려있는 대중 미술품들마저 단색에 가까운 것으로 대충 이쁘장한 무언가를 그리려 하고 있었다.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모난 곳 없이 혼란을 포장하려는 행태, 혹은 본질을 가장하는 장식품. 다만 한결같이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려 애쓰는 데에서, 요즘 세대가 지향하는 목적지가 어느 곳인지는 대충 예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미술보다는 디자인이 강세다. 장식은 죽고 실용이 살아났으며, 가식은 죽어서 본질을 남겼다. 사람에서 가식을 덜어내면 짐승이다. 고로 짐승이 본질에 더 가깝고, 본질은 야생에 수렴한다. 따라서 사람보다 짐승이 살기 좋은 이곳 서울은, 이미 야생에 한없이 가깝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아니 십중팔구 야생일 테지만, 아직은 문명의 성터를 허물 생각이 없어서. 그래서 헷갈리는 것일 뿐이겠지.

 .....뭐, 야생으로 돌아가 살 수 있는 물건이 없어도 나라는 인간은 돈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렇게 확고한 줄 알았던 것이 고작 친구 한 놈 때문에 무너질 줄이야. 스스로도 믿기 힘든 일이었다.

 “끙....”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헝클어뜨릴 수 없는 머릿속을 대신하여 윗머리를 털어내듯 정리했다. 그렇게 복도를 걷던 도중.

 터벅 터벅 터벅. 꺾어진 복도 너머에서 카펫 탓에 무뎌진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서두르지 않는 박자로 말미암아 상황을 전하러 온 직원이거나 이 층의 거주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루미늄 재질의 소방전을 보니 경비원 복장의 다리가 비쳐 보이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잠입한다고 했지만 역시 신고가 들어갔나. 밖의 싸움판에는 퍽도 관대하면서 거리가 가까운 위협에는 한없이 예민하신 주민들이다.

 “죽일까요?”

 등 뒤에서 따라오는 직원들의 물음에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코트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속도를 보아하니 이대로 걸어가면 정확히 코너에서 맞닥뜨리겠지. 발을 멈추지 않으며 총을 장전했다.

 예상대로 모퉁이를 돌자마자 키가 작은 그의 안면이 내 가슴팍에 부딪혔다. 놀라긴 했지만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으리라. 그런 경비원의 머리를 총을 든 오른손으로 헤드락 걸듯이 감싸 안았다. 자연스레 그의 오른 귀 옆에 위치한 권총.

 “웁! 웁!” 경비원이 내 등을 두드렸다. 사내놈의 입김이란 역시 기분이 더럽구나.

 왼손으로 내 귀를 막고, 탕-. 총알이 애꿎은 천장에 틀어박혔다.

 “우우웁-!” 총성에 소스라친 경비원이 외마디 비명을 남겨두고 언링크 상태가 되었다.

 왼손으로 심장을 빼내고, 투명한 육체는 옆으로 버려두었다. 따라오던 직원들에게 받으라는 의도로 심장을 등 뒤로 던지고, 다시 한 번 장전한 다음 투명한 육체를 향해 발포했다. 그대로 걸어가서 엘리베이터 하강 버튼을 눌렀다.

 뒤에서 작게 감탄하는 목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처음 몇 번 들었을 때야 좋지만, 그 속에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이야, 하다하다 1인용 엘레베이터도 생겼네.”

 화제를 돌리고자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생긴 지 꽤 됐습니다 형님.”

 “그래?”

 다행히도 화답이 돌아왔다. 타인과의 관계를 꺼려하는 이 시국에, 이사님이라고 부르라고 몇 번을 말해도 끝까지 형님이라는 호칭을 고수하는 별난 녀석이다. 그 녀석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다인승 엘레베이터의 층수를 알리는 전자 숫자가 19를 넘어설 무렵.

 치지직. 무전기에서 전파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ㅅ, 이사님!] 치직 [갑자기 전황이 역전됐...!]

 갑작스러운 전언. 나는 무전기를 입 앞에 대고 말했다.

 “차분하게 말해.”

 [형체가 없는 녀석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일단 후퇴해야 할...크악!]

 지직거리는 소리도 더해져서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나는 등 뒤의 직원들에게 대기하라 명령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모퉁이를 돌아 복도 끝의 유리벽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이건 또 뭐야”

 모든 플로어에 포진해 있던 직원들이 모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르다가 자빠지거나, 발포한 총알이 허공을 가로질러 같은 편을 오인사격하기도 했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연장이 내리 찍히자 직원들의 몸이 꺾이거나 튀어 오른다.

 “젠장할.” 형체가 없는 적이란 게 이런 거였나.

 복귀하기 위해 황급히 뒤로 돌아섰을 때.

 “크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모퉁이 너머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뻗어 나오는 하나의 손. 그 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 나와, 그는 얼굴을 내밀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의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도망치십시오, 형님...!”

 “뭣, 너...!” 숨이 말려 들어갔다.

 기습이라고? 어떻게? 눌러둔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건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감각이었다. 채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땅바닥에 짓눌렸다. 그를 밟고 넘어선 듯한 형체 없는 적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눈코 뜰 새 없이 발포했다.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의 카펫이 눌렸다. 쓰러진 모양이다. 하지만-.

 ‘한 명이 아니야...?!’

 보이지 않지만, 광범위로 움푹움푹 들어가는 카펫이 그 사실을 일러주었다.

 떼로 몰려드는 광경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금방이라도 삼켜질 듯한 압도적인 질량.

 “X발 진짜...!”

 이곳은 막다른 길이다. 물론 뒤로 돌아 창문을 깨고 넘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유리 폭포의 아찔한 대공동 뿐. 매달린 채 아래층으로 향한다는 영화적인 전개는 기대하지 않는다. 주연을 맡기에는, 너무도 틀어져버린 내 인생이므로. 치졸한 악역답게 별 의미 없이 추락해버리고 말겠지.

 하지만 그래서 더욱이. 나는 여기서 간단히 죽을 수 없다.

 총을 장전했다.

 ‘조연이면 조연 나름대로, 해야할 일이란 게 있지.’

 총구를 전방에 향한 뒤, 한 발 발포.

 또 한 명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 코트를 벗은 다음 펼쳐 던졌다. 시야를 덮친 코트 탓에 전열이 무너졌다.

 발치에 미끄러져 온 연장을 들고

 나는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흐음. 흐으음.

 괘씸하네. 역시 방심할 수 없는 남자였구나. 내가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이 이런 일을 벌여 놓다니, 하마터면 내 교황 콜렉션을 몽땅 빼앗길 뻔했잖아!

 머릿수가 부족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밀리고 있을 줄이야. 역시 형체가 있는 오롯한 인간 따위는 별로 쓸모가 없구나. 이 참에 투명한 것들로 싹 다 갈아 치워야지. 절박하지 않은 인간만큼 무른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자, 밟고 서있던 수직 철근이 ‘댕-‘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누가 싸우다가 실수로 내리친 모양이다.

 “우, 우와앗.” 나는 휘청거리며 중심을 고쳐 잡았다.

 누구야! 추락할 뻔했잖아!

 완공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고층 빌딩의 정상 부근이다. 떨어지면 토마토 마냥 터져버리겠지. 혼자 농땡이 피우다가 전장 한복판에 낙사한 보스라니, 체면이 말이 아닐 뻔했다.

  철근에 묶여있는 추락주의 표지판이 바람에 날려 옆의 철근을 댕그랑댕그랑 때려댔다. 꼭 나더러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것 같았다. 그래, 말이 씨가 되기 전에 서둘러 앉아야지. 철근에 가로로 걸려 있는 기다란 철판에 걸터앉았다. 엉덩이가 시리다.

 “..........”

 역시 인간의 몸이란 여러모로 불편하다니까. 특히나 감각이. 저번에 한 번 지상에 놀러 왔을 때도 이것에 호되게 당한 이력이 있다. 아직도 손바닥이 시큰시큰 아려온단 말이다! 예끼, 고얀 인간 놈들 같으니라고.

 “으으~.” 생생하게 떠오르는 당시의 기억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끔찍한 기억은 계속 떠올려봐야 좋을 것이 없다. 싸움구경이나 해야지.

 정면의 빌딩을 바라보았다.

 유리 벽 너머에서 영화 올드보이 뺨치는 육탄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오, 멋있는걸. 장도리를 들고 있는 것까지 똑 닮았다. 오랜 수감생활 끝에 풀려난 오대수가 복도에서 적들과 조우하는 그 장면 말이다. 철저하게 생존을 위한 싸움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씬이다. 다만 이쪽은 조금 엉망진창이랄까 인간적이랄까, 여기저기 두드려 맞으면서 허공에 망치질을 하는 것이 나름 귀여워 보이기는 했다. 그래도 어찌저찌 탈출에 성공했는지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특유의 뱀 같은 눈동자가 마음에 드는 남자였는데...

 “아무리 봐도 이번 일에 개입할 것 같단 말이지.”

 그렇다면 죽일 수밖에 없잖아? 아쉽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심장이라도 빼내어 가져야지. 어항에 담가두고 사랑해줄 자신이 있다. 아이 행복해라. 상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올라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보았다. 보통 이렇게들 하더라고. 그 다음 손가락을 찔끔 벌리고, 그 사이로 여기저기 살피는 것이 인간사의 덕목이렸다.

 그렇게 이런저런 자세를 연습하고 있던 중,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드렸다.

 “흐잇-?!” 솟구친 창피함에 이상한 비명이 목구멍을 타고 나왔다.

 나는 증오 어린 눈으로 흘겨보았지만, 이윽고 그 정체를 깨닫자 절로 화색이 돋았다.

 뒤로 한 데 묶은 분홍빛 머리에, 세상 귀엽게 생긴 얼굴의 소녀.

 “앗, 마린!”

 에헤헤. 내가 제일로 아끼는 인간이다. 쌍수 들고 환영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어째선지 표정이 안 좋은걸? 말도 하지 않는다. 심장을 빼낸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거기까지 소멸이 진행된 건가?

 “나한테는 모습도 보이고 소리도 다 들리니까, 말해도 된대도.”

 내 쪽에서 친절하게 말을 걸어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서있는 그녀를 올려다보느라 뒷목이 뻐근하게 아프다. 태양도 눈이 부시고 여러모로 불편한 포지션이었다.

 어쩔 수 없지. 한 수 접고 들어가줄까.

 “알았어 알았어. 그럼 잠깐 심장 돌려줄게.”

 사실 안주머니같은 건 없지만, 코트 안쪽을 뒤적거리는 척 해보았다.

 ”원래 간당간당할 때까지 안 빌려주는데, 마린이니까 특별히 해주는 거다? -자, 여기. 심장이야.”

 품에서 꺼낸 심장을 들고 그녀의 앞에 내밀었다.

 먹다 만 사과라도 내미는 듯한 포즈지만 뭐 어때.

 자그마하고 따뜻한 심장이 손 안에서 꿈틀댄다.

 “얼른 링크 시켰다가 돌려줘. 다른 친구들은 직접 금고까지 가서 쓰고 다시 되돌려 놔야 된다고? 네 심장이니까 특별히 내가 가지고 다니는 거야. 애착의 증표랄까?”

 응응. 그렇고말고.

 괴롭혀주고 싶을 만큼, 아끼고 있다고.

 그러니-.......응?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내 고개가 돌아가 있고, 뺨이 얼얼하게 아프다.

 선의로 내어준 심장은 그대로 내 손에 들려 있다.

 나, 뺨 맞은 거 맞지?

 고개를 되돌리자 그녀의 진한 눈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준명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뭐야, 말 할 수 있잖아.

 “무슨 짓이라니?”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시치미 떼지 마. 나를 서울 밖으로 보내놓고, 그 사이에 준명이와 접촉했다며”

 “아, 며칠 전에 잠깐 얼굴 본 걸 말하는 거야? 그거라면 걱정 마. 그냥 가볍게 얘기만 나누고 왔....”

 “그와는 접촉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으익. 못 본 새 많이 사나워졌는걸.

 대드는 아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녀는 계속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것 때문에, 지금껏 참아왔어.”

 아프겠다 싶을 정도로 그녀의 자그마한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죽도록 만나고 싶어도, 위로해주고 싶어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왔단 말이야!”

 손에 들린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쌔액쌔액. 그런 숨소리를 내며, 그녀의 긴 속눈썹이 약간 젖은 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뭐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게 나오면 이쪽도 할 말이 꽤나 있다고?

 “그러는 너야말로 누구한테 들은 건데?”

 “뭐....?”

 “나는 낚시꾼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더군다나 서울 밖에 있었을 너에게는 더욱이 그 소식이 닿을 리 없잖아.”

 “그, 그건....!”

 마린도 참. 동요가 눈에 빤히 보인다니까.

 누가 커플 아니랄까봐, 아주 빼다 박았어.

 “2년 동안 거의 매일, 리퀘스트가 끝나고 남는 시간을 모두 바쳐서 그를 노심초사 지켜본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윽.....!”

 으음~ 좋아 좋아. 분해하면서도 당황하는 저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항상 엔돌핀이 솟구친단 말이지.

 ‘하찮고 귀엽다.’ 역대 인터넷 밈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 두 단어를 택하리라. 인류 역사상 가장 역겹고, 동시에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나 할까.

 너무 하찮고 귀여워서, 울먹이는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뒤에선 병풍이 된 유리 빌딩이 햇빛 받은 강물처럼 반짝거리고 전장은 부산스레 떠오르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아이에게 베풀어줄 온정은 없어.”

 “나쁜 년.” 독기가 잔뜩 서린 목소리였다.

 “오호. 면전에서 들으니 또 신선한걸. 하지만 칭송이건 욕설이건 가리지 않고 받아온 지 벌써 2000년도 더 됐어. 이제 와서 그런 가벼운 욕설 따위에.....어?”

 심장을 들고 있던 손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장이 사라진 후였다.

 낚아 채이는 듯한 감각이 들었는데, 마린이 가져간 건가?

 물론 가져가라고 내어준 게 맞다. 맞으니까, 상관없지. 상관없긴 한데.

 “뭐하는 짓거리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심장을 집어 던지려던 그녀의 손목을 서둘러 낚아챘다. 이곳은 20층 높이의 공터다. 분명 터트릴 의도로 던지려 했겠지.

 “그러라고 준 심장이 아닐 텐데?”

 “이딴 심장 필요 없어!”

 그녀의 묶은 머리가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마린.”

 “어쩌피 경매에 내놓는다며. 너한텐 돈도 의미 없으니까, 지금 터져버려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진심이야?”

 그게 터지면 너, 물리적으로는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고?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세상을 떠돈다는 거.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느새 내 손아귀에도 힘이 들어가서 그녀의 손목에 손톱자국을 내고 있었다. 아플 만도 한데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가느다랗게 떨리지만 갈피를 잃지 않는 동공. 곧이어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도 그것과 닮아서, 위태하게 흘러나와 지독하게 스며들었다.

 “당연하지. 나는 너랑은 달라서, 애써 관심을 벌어놓고 책임도 못 지는 주책 덩어리가 아니거든. 애같이 굴지 않아. -아이돌(Idol), 우상이니까.”

 가뜩이나 방금 전까지 질질 짜다가 태도를 바꾼 것도 귀염성이 없는데, 주책이라......

 조금은 화가 나는걸.

 “벌써 네 최후를 잊어버린 거야? 관심에 책임을 못 지었던 건 내가 아니라-“

 “그건 놀랐던 것뿐이지. 그때 네게 심장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분명 회복할 수 있었어. 너처럼 수백 년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말할 것도 없지. 어린 건 나도, 준명이도 아니라, 바로 너야.”

 ..........하하.

 말 한 번 참 예쁘게 하는걸.

 부들부들 떨리는 이 가시 같은 팔은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질 것만 같은데.

 이 건방진 어린 양을, 나는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그 끝에.

 “선택해.”

 -그렇게 말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뭐?”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되묻자 그녀가 답했다.

  “이 자리에서 내 심장을 잃거나, 준명이의 심장을 가져가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거나.”

 “뭐라....”

 “둘 중 하나야.”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심장을 꽉 움켜쥐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다.

 응. 그런 모양이다.

 얘는 진심으로 나를 이겨 먹으려고 드는구나.

 진심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내가, 누구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누구들 때문에, 몇 백 년 간 잠을 설쳐왔는데

 누구들 때문에....!

  

 “아~, 아하하! 마린, 너 정말-!”

  

 정말.

  

 아아, 정말로

 얘를 어떡하면 좋지?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 비존재_ 10 (END) 2020 / 9 / 1 251 0 10331   
9 비존재_ 09 2020 / 8 / 31 259 0 10289   
8 비존재_ 08 2020 / 8 / 31 264 0 7612   
7 비존재_ 07 2020 / 8 / 28 271 0 7889   
6 비존재_ 06 2020 / 8 / 25 271 0 8213   
5 비존재_ 05 2020 / 8 / 24 273 0 9982   
4 비존재_ 04 2020 / 8 / 23 277 0 12644   
3 비존재_ 03 2020 / 8 / 21 277 0 5436   
2 비존재_ 02 2020 / 8 / 20 285 0 12123   
1 비존재_ 01 2020 / 8 / 20 427 0 154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Guernica for the city
날개이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