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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13. 과거
작성일 : 20-08-24 01:58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4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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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살의 나리라고 해서 10년 후와 다르지 않았다. 26살 청년일 적과 유사한 심리 상태에 있었다. 거의 때가 묻지 않은 인간의 형태라고 하면 옳겠다. 당연지사 그런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딘가 소름 끼치는 인간 유형인 것이다. 그는 등교 시간을 지키는 때가 거의 없었고 집에도 마음대로 갔다. 그럼에도 스타 격이자 전국에서 노는 우등생이라 터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술, 담배 같은 걸 하진 않았다. 온라인 게임이나 여자에겐 관심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은 집에서 간편히 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 여자의 경우는 수시로 달려드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막상 여자의 은밀한 부위를 경험하고 나니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되도록 많이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후배를 불러 학교 화장실에서도 했다. 길에서 만난 이십대 여자와 5분 만에 골목 안에 들어가 성기를 놀린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학교생활에 흥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이혜림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쁘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학교 내에서도 수준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키가 크고 날씬했다. 조용한 편이지만 불량한 여학생들과 어울렸다. 어느 순간부터 남자들과만 어울렸는데 늘 웃고 있었다. 그녀는 불량 학생들의 공유물이었다. 그녀가 맡은 정액 양만 해도 그녀를 2미터 깊이의 어항에 넣어 익사시킬 정도일 것이었다.

 하지만 나리는 그녀를 건들지 않았다. 그녀 역시도 다른 여학생과 마찬가지로 나리에게 관심과 흥미를 보였다. 그의 경우에는 약간의 혐오감이 있었다. 속칭 걸레라는 부류를 향한 멸시가 아니었다. 웃으면서 남자들에게 치이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것에서 시작하여 옷깃만 스쳐도 심장에서 열이 나는 형태로 진화했다.

 딱히 그녀가 그에게 잘못한 건 없었다. 들어 줄 게 있으면 들어 줄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요구도 않았다. 피해 역시도 준 적 없었다. 오히려 마음과는 다르게 눈이 마주치면 사근사근 웃었다. 어딘가 아파 보이기에 담임에게 가서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누군가 장난삼아 그녀의 책상 서랍에 넣어둔 죽은 벌레를 몰래 치운 적도 있었다.

 한날은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는 멋진 사람이므로 옥상에 있는 걸 좋아했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어릴 때니까 말이다. 거기서 햇살을 받으며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옥상에서 뛰어내린다면 정말 자유로워질 터였다. 하지만 있지도 않은 천국이나 지옥과 같은 관념을 배제하면 더러움만 남는다. 피해망상에 빠질 틈도 없이 자연의 법칙에 지배되어 지면에 끌려간다.

 자석붙이처럼 날아가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다. 거기가 부서지는 이유는 구조 탓이 아니라 숨구멍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쿵 소리에 뛰어오는 녀석들은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에 빠져 꼭꼭 숨기고 있던 자존감을 분출할 것이다. 청소 도구함이나 제일 앞자리가 어울리는 내성적인 녀석들도 그때만큼은 학생회장 부럽지 않은 패기를 보인다. 얼마나 신이 났으면.

 그는 벌레들이 모여 노는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법이라도 쓸 수 있었으면 불덩어리라도 던져 줬을 텐데 못내 아쉬웠다. 인기척을 느낀 건 아니었다. 스산한 바람이 불었을 뿐인데 어떤 향을 맡은 것 같았다. 다시 코를 킁킁거렸지만 무취인 걸 보면 그런 향은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심코 어딘가를 보면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어김없이 육감이 맞아떨어졌다.

 “너……?”

 “안녕?”

 혜림이 말했다.

 “어어……. 근데 웬 인사야? 새삼스럽게.”

 그가 유머인 양 덧붙였다.

 “수업 시간도 아니잖아?”

 재밌으라고 한 소리는 맞지만 그녀가 실제로 웃자 그는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그와 몇 걸음 뒤에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했다.

 “옥상엔 왜? 담배라도 피우게?”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 담배 피우는 거 알고 있었어?”

 “아니, 미안.”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뒤로 둘의 분위기가 서먹해지기 시작했다. 딱히 둘 중 누군가의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학교에서 그런 사이였다. 만약 이런 장소가 아니었다면 나리는 형편없는 개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이기 때문에 이런 개소리를 한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좋게 받아들일 거라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기에.

 “나리 넌 좋겠다. 인기가 많아서. 선생님들이 나리 너 쳐다볼 때마다 정말 깜짝 놀란다니까. 그 눈빛이 정말…….”

 “심각한 건 난 정말 선생들이 싫어. 그딴 녀석들한테 인기가 있어 봤자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야. 학교 졸업하면 보지도 않을 인간들, 길에서 마주치면 그냥 냄새나는 아저씨들이야. 낯익은 얼굴인 줄은 알아서 눈으로 성희롱을 해대겠지. 나라면 노땅들이 아는 척을 해댈까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빠른 걸음으로 가버리겠지. 나라면.”

 그가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두 눈을 가리켰다.

 “역시 별난 애다, 너.”

 “그렇다고나 할까.”

 그가 베개로 삼 듯 두 팔을 자신의 뒤통수로 가져갔다. 순간 그의 눈에 희끄무레한 얼굴이 보였다. 그녀가 뒤돌았을 때 엉덩이에 걸려 있었다. 분명 정액이 떨어진 자국이었다. 그녀의 교복 치마는 무릎에서 훨씬 위에 올라올 정도로 짧았다. 흡사 미니스커트처럼 몸에 꽉 붙어 있어서 움직이는 게 용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녀만 그런 건 아니었다. 그는 지역에서 손꼽히는 문제아 인문고에 있었다. 그가 아무리 뺀질거려도 선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거기서 기인했다. 그는 전국 모의고사에서 항상 상위권이었다. 똥통 학교의 똥통 선생들의 똥폼 출처였다. 똥폼의 원천이 나리인데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그들은 여학생들도 사랑한다. 수업을 하는 중에 사랑스럽게 학생들을 보는 이유였다. 얼마나 눈웃음이 만발하는지 모른다. 나라에서 지정한 상황은 아니지만 짧은 치마 속이 훤히 보이도록 칠판 주변 환경이 잘 되어 있었다. 발기된 페니스는 단상으로 가리면 그만이었다. 2차 성징이 시작된 사춘기 소년처럼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다니는 게 버릇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엉덩이에 뭐가 묻었어. 얼룩 같은 게 있는데?”

 “정말? 아까 우유를 마시다가 흘린 거 같은데……! 어떡하지! 의자에다가 흘린 걸 모르고 앉았거든.”

 “그렇구나.”

 그는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리고 곧 실수를 깨달았다. 만회하기 위해 한층 밝은 톤으로 대처 방법을 얘기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게 어때? 나도 우유를 먹다가 바지에 묻힌 적이 있거든? 또라이 같은 녀석들이 같은 남자한테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이야 환장하는 줄 알았다니까! 진짜 무서운 건 선생들이야. 내가 차마 말은 못 하겠다. 분명 우리 학교에 게이들이 좀 있을 거야. 교무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어?”

 그녀가 쿡 웃었다. 그도 다행이다 싶어 주먹으로 입술을 가린 채 점잖게 웃었다.

 “고마워. 너 때문에 자살 생각 잠깐 잊었어.”

 그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뒷모습을 보이는 순간 못 듣고 지나쳤던 문장이 머릿속에서 선명해졌다. 그는 청동상처럼 가만히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철제문을 열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녀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잔인한 마음이 들었다. 한 번쯤 배려하듯 눈인사를 하지만 대게는 못 본 척 냉랭함으로 일갈했다. 옥상에서의 대화 이후 오히려 둘 사이의 간격은 벌어진 것이다. 그녀도 예전과는 달리 수줍어하는 여자애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집단강간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던 그녀였다. 그리곤 며칠도 지나지 않아 자살 소식이 돌았다.

 나리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계기였다. 그는 느닷없이 찾아오는 변성기를 느낄 새도 없이 촉매 작용을 하는 분노로 인해 변해갔다. 심안으로 인간의 죄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첫 시작은 우연치곤 잔인했다. 다짜고짜 찾아든 게 혜림을 무자비하게 강간하고 두들겨 팬 종자였다. 3학년 선배였다. 그를 통해 말살할 대상들을 파악했다. 여섯이었고 둘만 같은 학교 선배로 그녀와 친분이 있었다.

 그는 장애 연금을 받는 조부모와 살았다. 두 사람 다 몸이 편치 않았다. 만약 나리가 없다면 힘들 것이었다. 30대에 섬유 공장에서 만난 둘은 보험사기에 휘말려서 팔 하나씩이 없었다. 조부는 왼쪽 조모는 오른쪽이 없었다. 마치 서로의 부족한 곳을 채워주는 부부를 상징하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팔만 잃었지 돈은 받지 못했다.

 집에 가면 그는 벽거울을 오래도록 보는 버릇이 생겼다. 한편으론 억울했다. 이렇게 잘난 녀석이 감옥에서 평생 썩어야 한다니. 만약 16살 소년이 6명을 죽인다면 형량이 얼마나 나올까 그는 생각했다. 물어봐도 조부모는 모른다. 나중에 나리를 세상에 혼자가 되게 할 그들은 이유 없이 애걸복걸한다. 그는 서글픈 기운에 휩싸여 잠을 헤매고.

 하지만 그는 감옥에 가지 않았다. 숱한 미제 중 하나였던 집단강간 주모자의 낙인은 보지 못했다. 대신 같은 학교에 있던 다른 녀석이 넷과 골목에 있는 걸 봤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넷이 바로 옆 학교 녀석들이란 걸 깨달았다. 사복을 입고 있었으니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뭘 할 순 없었다. 속에서는 칼을 갈았다.

 “너 박나리 아니냐?”

 어떤 녀석이 말했다. 물론 친하지도 않았다. 보기에는 다 3학년 같은데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나리를 불렀다. 일대에서 유명한 나리에게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겐 오히려 웬만한 여자보다 친해지고 싶은 게 나리일 것이었다. 그때 나리는 그들의 눈에서 죄를 발견하고 하마터면 토악질을 할 뻔했다. 개를 목 달아 죽인 녀석도 있었다.

 X.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거기 있던 다섯이 죽었다. 다섯이 연달아 도로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미친 듯이 웃으면서. 즉사한 녀석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불운도 놈들은 죽을 때까지 바퀴 달린 글로벌 기업의 자객들과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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