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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맨싱 사가 : 백발마녀전
작가 : 백발마녀
작품등록일 : 2020.8.23

똥싸개, 스토커, 시너테러범을 상대로 성장하는 쌍둥이 남매와 친구들의 이야기.

 
1화 ~ 4화
작성일 : 20-08-23 14:47     조회 : 442     추천 : 0     분량 : 22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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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여기 고추 있어!

 

 “시나야~ 일어나야 병시나야~ ”

 

 애초에 깨울 생각이 없다는 듯, 들릴 듯 말듯 소곤거리는 여자 목소리.

 

 “건들지 마라”

 

 굳이 답하는 남자 목소리. 목에 먼지라도 낀 듯 갈라지는 소리였다. 이불 뭉치에 얼굴을 묻고 대답해서 그런지 텁텁하게까지 들렸다. 내 목소리다.

 

 “뭐야, 깼냐? 근데 왜 목소리는 깔고 지랄이야. 누워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 밥 처먹고 준비해. 설거지는 네가 하고. 나 간다.”

 

 소곤거릴 의미가 없어지니, 여자애가 부산스레 움직인다. 그리고, 1분도 안 돼서, 현관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다시 또 ‘쾅’ 하고 닫힌다.

 

 “하암”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일어나서 씻고 주방을 슬쩍 봤다. 싱크대에 밥그릇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고 식탁에는 김치와 다 식은 계란찜 그리고 ‘소세지 야채 볶음’이 놓여있었다.

 

 밥은 또 아침에 새로 하셔서, 밥솥에 불과 몇 시간 되지 않은 채로 따뜻하게 보온 되고 있을 터였다.

 

 아빠가 출근하시기 전에 다 해놓으신 거다. 엄마가 무슨 이유에선지 핏덩이 같은 우릴 놓고 나간 지 15년째, 갓 요리한 음식만 차려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5년째, 아빠는 몇 개 할 줄 모르는 메뉴로라도 어떻게든 아침밥을 먹여야 그것이 부모라고 - 아니 아빠라고 - 믿는 '요새 쫌 핫한 40대중반 싱글대디'이다.

 

 그리고 좀 전에 나간 저 녀석은 나의 동생. 하지만 좀 전에도 분명 나를 깨울 생각이 없음에도 나중에 아빠한테는 깨웠다고 말할 수 있으려고, 시늉만 하는 녀석. 여러모로 아주 요망한 녀석이다.

 

 별명이라도 붙여보려고 ‘요녀’, 혹은 ‘마녀’를 생각해 봤는데 아직 딱히 입에 붙지는 않는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직 또래들처럼 비속어’만’을 쓸 때여서, 대 놓고 ‘XX’이라고 불러도 봤지만, 아빠에게 들켜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처맞은 이후로는 적당히 아무렇게나 부르기로 했다.

 

 아침을 후딱 먹고, 내 그릇만 설거지한 후, 반찬들을 냉장고에 대충 넣어두고

 [아빠 소세지 짱!]

 이라고 쪽지를 써두고 학교로 향했다.

 

 --

 

 “왔냐?” 아랑이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녀석이다.

 

 아랑이네 집은, 우리 아빠가 다니는 회사에 반도체 설비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신다. 중소기업이지만, 듣기로는 ‘사장님’이라서 대기업 임원보다 잘 나간다고 한다.

 

 여하튼, 잘생기고 돈도 많고 싸움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녀석이다. 하지만 소설에서처럼 그런 친구가 내 동생을 좋아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여러모로, 괜찮은 녀석이다.

 

 “희주는?”

 “네 동생? 저기.” 그가 턱으로 현주 쪽 자리를 가리켰다.

 

 내가 게임을 할 때 집중하듯 미간을 좁히고 희주를 쳐다봤다. 마치 이 교실에 나를 암살하려는 적군 스파이가 있고, 내가 이제 그녀를 찾아냈다는 그런 눈빛으로 말이다.

 

 그 에너지를 느꼈는지, 희주가 자기만큼 못되게 생긴 친구, 현주와 도란도란 떠들다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같잖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여지없이 잔소리를 뱉어냈다.

 

 “야, 설거지하고 왔지?”

 “뭐래, 네 설거지를 내가 왜 하고 와”

 

 “...너 밥 먹고 설거지하고 오랬잖아!”

 “응? 언제? 난 못 들었는데?”

 

 “야!!”

 희주가 책상을 탁!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비디오게임 속 격투사의 필살기처럼, 그녀의 목소리에서 풍압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물론 내 머릿속 상상일 뿐이지만, 나도 모르게 옆으로 몸을 살짝 움츠리며 피하는 자세를 취했다.

 

 “...너 뭐하냐?”

 

 옆에서 앉아있던 아랑이 나를 올려다보며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희주를 쳐다보고는 대꾸했다.

 

 “나 밥 안 먹고 바로 왔어! 네가 먹은 걸 내가 왜 설거지해~!”

 

 밥을 먹었지만, 먹고 나서 내가 먹은 것만 치웠다고 하면 나중에 아빠에게 혼날 것이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하지만 이내 내가 남긴 쪽지가 생각났다.

 

 ‘젠장! 쪽지를….’ 괜히 흔적을 남겼단 생각마저 들었다.

 

 “어제같이 먹을 때는 내가 다 했잖아! 오늘은 네가 늦게 일어나서 내 것만 먹고 왔으니까…. 어휴~. 됐다, 저거도 오빠라고 내가 뭘 시킨 게 잘못이지.”

 

 희주가 스스로 화를 다스리듯, 자조 섞인 목소리로 톤을 바꾸어 말했다.

 

 ‘후유’ 나도 모르게 살며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한 대 칠 줄 알았는데, 학교라서 참나 보군. 우헤헤.’

 

 물론 쪽지는 먼저 집에 가서 없애버려야 했다. 아빠에게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해도 되니.

 

 희주는 다시 현주량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전운이 사라진 걸 느끼며 이내 자리에 앉았다. 짐짓 내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머문 것을 아랑이가 눈치챘다.

 

 “...너, 왜 웃냐?”

 “..!”

 “하아~, 이 또라이 새끼, 너는 학교에 와서 아침부터 네 쌍둥이 동생이랑 싸우는 게 지겹지도 않냐? 집에서도 맨날 싸울 텐데, 어떻게 오자마자 싸우냐? 그리고 좋다고 혼자 쪼개고.”

 

 “아닌데? 집에서 안 싸우는데?”

 “뭘 안 싸워. 여기서 이럴 정도면, 집에선 오죽하겠냐 너희 아버지가….”

 

 그가 말을 이어가는 찰나, 교실 앞 미닫이문이 열렸다.

 

 드르륵, 쾅…! 쾅…! 쾅!!

 

 영어 선생님이었다. 성인 한 명이 지나가기에 충분히 열렸음에도, 문이 맨 끝까지 안 밀리자, 온 힘을 다해 문을 계속 밀다 보니, 턱에 걸려서 ‘쾅’, ‘쾅’ 소리가 계속 났다. 아니 문이 너덜너덜해지면서 오히려 소리가 더 커졌다.

 

 “에이 씨…. 이거 왜 이래?! 야, 이거 누가 이랬어!?”

 

 ‘지가 그래놓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말을 아꼈다.

 

 하지만, 아랑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조용히 소곤댔다. 선생님이 출근하자마자 저런 상태인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야, 너희 아버지가 너랑 희주 싸우는 거 보면 속이 얼마나…”

 “조용히 좀 해주라. 수업 시작한다. 걸리면 나만 조X~”

 

 아랑의 말을 끊고, 복화술이라도 하듯 조용히 면박을 줬다. 아마 이 교실에서 아랑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나뿐이 아닐까 싶다. 키가 워낙 크다 보니 대부분은 그 앞에서 위축되기 마련이다.

 

 아랑의 눈이 커지며 다음 말을 뱉으려고 할 때, 영어 선생님이 나를 보며 소리쳤다.

 

 “야, 조용히 해! 떠들 거면 나가!”

 

 고개를 돌려 희주가 있는 쪽을 슬쩍 보니, 희주가 나를 쳐다보며 입 모양을 벙긋한다.

 

 “병신”

 

 책상 위 주먹을 살며시 움켜쥐었지만, 조금 더 했다가는 선생님의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올 것 같아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아침을 너무 빨리 먹고 나와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점심시간이 되자, 눈이 핑 돌면서, 공복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수업 종이 울리고, 다들 삼삼오오 모여 교내 식당 ‘카페테리아’로 이동하는데, 나는 아랑이에게 “으악! 배고파서 죽을 것 같아!”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혼자서 미친놈처럼 식당으로 뛰어갔다.

 

 아빠는 혼자서 나와 희주, 이렇게 애 둘을 키우시면서도 신기하게도 잘리지도 않고 큰 회사에 잘 다니고 계셔서, 회사에서 추첨제로 제공하는 사립 고등학교에 우리를 입학시키셨다.

 

 소위 말하는 ‘명문’ 사립학교는 아니지만, 유리 지갑 봉급쟁이들 다니는 회사 중에서 이쪽 지방에서는 가장 큰 회사여서, 식사나 체육시설 같은 시스템은 빠짐없이 갖춰진 학교였다. 지방 소도시 외곽에 있는 민사고의 최하위 버전이랄까. 그리고, 이곳은 학생들이 각자 교실이 아닌, 별도의 교내 식당에 모여 배식을 받고 밥을 먹는 시스템이었다.

 

 “야 너 밥 안 처먹고 뭐 하냐” 아랑이가 내 옆자리에 식판을 놓으며 물었다.

 “...”

 “뭘 보는 거야?”

 “이거…. 고추 아니냐?” 내가 젓가락으로 들고 있던 고추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옆에 앉은 그를 슬쩍 보고 물었다. 물론, 아니길 바랐다.

 

 “그럼 이게 고추지, 뭐, 네 그거냐?! 응?!” 아랑이 재미도 없는 농담을 던졌다.

 “…” 그가 떠들든 말든,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게 뭔데 이렇게 쌉진지?”

 “오늘 급식메뉴에 고추 들어가는 날 아닌데….”

 

 김칫국에 배춧잎 몇 장이랑 콩나물 몇 가락 보이는 게 다였는데, 휘적이다 보니 커다란 고추 하나가 눈에 띄어 집어 들었던 것이었다.

 

 “국물 내는데 칼칼하게 하려고 넣으셨나 보지” 아랑이가 묻지도 않았는데 답하듯 말했다.

 “...국물만 내고 버려야지 그럼, 이게 왜 같이…” 내가 조리 전반을 총괄하시는 영양사 선생님을 휙 쳐다봤다.

 

 “아 먹기 싫으면 옆에 놔, 뭐 벌점 땜에 그래?”

 “아니…. 그게 아니고…”

 “그거 고추 하나 남긴 거 가지고 뭘 그렇게 걱정을…”

 “야 희주 봤어?” 내가 그의 말을 끊고, 식당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멀리 식당 끝, 체육관 입구 계단 바로 앞 테이블 자리에서 그녀가 배식받은 식판을 놓고 자리에 앉고 있었다. 현주를 포함해서 엇비슷하게 ‘사납게’ 생긴 여자애들끼리 모여있었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깔깔대고 있었다.

 

 ‘설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희주만 쳐다봤다. 희주의 눈은 그들과 떠드느라 미처 그녀 앞에 놓인 국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수저를 들고 슬쩍 식판 위치만 확인하더니 밥을 먼저 한 숟가락.

 

 ‘...알아서 먹겠지.’ 애써 태연한 척 해보려고 했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희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희주가 왼손으로 젓가락을 사용해서 계란말이를 집었다. 아직도 국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듯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입을 우물우물했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김칫국물에 담갔다.

 

 차오르는 불안감에, 목이 점점 칼칼해지는 느낌이 편도선을 타고 올라왔다.

 ‘국그릇을 봐야지, 쟤 뭐 하는 거야!’

 

 이내 불안감이 긴장감으로, 그리고 긴장감이 다급함으로 변했다.

 

 희주는 국물을 뜬 숟갈을 입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있었다. 시선은 여전히 친구들 얼굴에 놓인 채.

 

 ‘알려줘야겠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흘러넘쳐 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목구멍 끝에서부터 차오르던 다급함이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린 내 망상을 만났다.

 

 “야 정희주!!!”

 

 코카콜라에 멘토스를 집어넣었을 때처럼,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순간, 식당 내 모든 소음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데시벨이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고, 몇몇은 희주를 쳐다보았다.

 

 멀리 식당 끝, 희주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주변을 의식한 듯, 내가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여전히 식당 내 침묵을 날카롭게 관통하는 나의 목소리. 이미 조용해진 식당에선 내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여기! 고추 있어!”

 

 조용한 식당, 배식 입구 끝에서 나의 목소리가, 반대편 퇴식구 끝까지, 물결처럼. 늦은 여름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파도치듯, 울려 퍼졌다.

 

 ---

 

 “찐! 뭐냐. 얘 왜 이렇게 관종이 된 거야?”

 “Everybody loves large chests…”

 “...그게 뭔데, 이 10덕아?”

 “모두 큰 상자를 좋아해, 라고 쓰고, 모두 왕 가슴을 좋아해, 라고 해석하니…”

 “... 어쩌라고??”

 “... 지켜보자고, 뭔 소리를 하는지…”

 

 아랑이 맞은편에 앉은 친구들과 바보 같은 소리를 나눴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시선은 온전히 희주가 먹는 국그릇에 있었다.

 

 

 

 

 2화 나도 고추 봤어!

 

 “야, 정희주!!!” 나의 목소리가 식당 내 울려 퍼졌다.

 

 “여기! 고추 있어!”

 

 ---

 

 ‘저이, 미친 새끼가 진짜….’ 희주의 입 모양은 정확히 그렇게 읽혔다. 눈을 아래위로 부라리면서 말이다.

 

 “정희준 학생!!”

 

 식당을 감독하시느라 출입구 쪽에 서 계셨던 대머리 교감 선생님이 내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배식구 쪽 서 계셨던 영양사 선생님은 입을 크게 벌린 채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처음 내 목소리가 너무 컸기에, 아이들도 아직은 웃지 않고 있었다.

 

 “아…” 잠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희주를 쳐다봤다. 눈알을 요리조리.

 

 “뭐?!” 그녀가 입 모양만으로 멀리서 나를 보고 말했다.

 

 “여기 국에, 고~추~있~어~” 내가 손가락으로 국을 가리키며 그녀를 보고 다급한 눈빛 담아 입 모양을 전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학교에서, 어?!!” 대머리 교감이 그사이 내 앞자리까지 와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아 그게… 선생님, 여기 국에 고추가 있어서…”

 “그게 뭐?!”

 “아니요, 저게…, 고추를…, 아니 동생이 고추를 먹으면 안 돼서, 그래서…, 제가,” 다급해서 말을 버벅댔다.

 

 “조용히 해.” 교감이 소리쳤다. 아마 내가 장난이라도 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아뇨 그게 아니라…”

 

 옆자리 아랑이를 구원을 요하는 눈길로 쳐다봤지만, 아랑이는 모르는 사람인 척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딱히 그의 잘못은 없지만 괜히 얄미워서 그의 머리를 눌러 식판에 처박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아빠 귀에까지 들어갈지도 모르겠기에, 그를 쳐다보던 빙구같은 눈길을 거뒀다.

 

 “...너는 밥만 먹고 교무실로 와.” 교감이 나를 보고 마지막 경고인 듯 말했다.

 “네…”

 “밥 다 먹고!”

 

 ‘아차.’ 변명하기 전에, ‘소리를 질러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어야 했나 싶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왜 희주가 고추라고 말한 것을 듣고도 태연했는지 궁금해서,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교감이 자리를 비켜주자, 아랑이가 나에게 바로 말을 걸려고 몸을 기울였다. 이를 개의치 않고, 먼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희주가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마치 축지법을 쓰듯, 스르륵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아이들이 키득거렸지만, 교감도, 내가 분명 희주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는 취지는 이해해서인지,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야! 고추 있다니까!?” 내가 희주 앞에 가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아까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로. 뒤늦게나마.

 

 “에휴~ 너는, 주변머리가 그렇게 없니? 지금 여기 와서 나한테 그 얘길 해야겠어?!” 희주가 한심한 듯 쳐다봤다.

 “그게 중요하냐?! 여기 고추가 있는데?!”

 

 “봤어, 봤어, 봤어! 나도 고추 봤어! 아 짜증 나.” 희주가 수저를 식판에 던지듯 놓고, 현주를 보며 말했다.

 “야 나 간다.” 던져진 숟가락에, 내 얼굴에 국물이 튀었다.

 

 그녀가 일어나서 식판을 치우려고 할 때, 현주가 나에게 물었다.

 “희주, 고추 먹으면 안 돼?”

 “야!” 희주가 뒤돌아 소리쳤다.

 “응, 아냐… 갈게.”

 

 현주가 다른 나머지 '사납게' 생긴 애들에게 가자고 신호를 보내고, 다들 아직 밥 한 숟가락도 뜨지 않았는데 일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밥을 남기면 벌점이라는 규정이 있어도, 희주와의 의리, 뭐 그런 것 같았다. 본인들은 스스로가 이쁘고 똑똑하다고 착각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약간 못되게 생긴 별다를 것 없는 애들끼리의 의리쯤 되시겠다.

 

 “야, 어쨌든, 희주 너 내가 고추 얘기해줘서 피한 거다!” 내가 긴장을 풀고, 멀어져 가는 희주를 보며 소리쳤다.

 

 '아차!'

 

 “정희준!!” 뒤에서 교감쌤이 소리치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번엔 밥도 먹지 말고 당장 따라오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아빠 귀에 들어가지 않으면 좋겠지만, 여하튼 희주가 고추를 먹는 건 멈췄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

 

 그런 나와 달리, 희주는 점심도 못 먹어서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후 수업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짜증 기운은 점점 내 자리 쪽으로 먹구름처럼 드리워졌다. ‘아차,’ 하면 마치 뇌우라도 뿌려댈 기세였다.

 

 고추가 뭐가 문제냐고, 아랑이가 몇 번 현주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대충 ‘알레르기’라고 답하고 말았다. 그는, 겨우 알레르기 때문에 그렇게 소리를 치느냐고 했지만, “하긴, 땅콩이나 복숭아털 때문에 기도가 부어서 급사하는 사람들이 있지…외국에선 특히 말이지”라고 혼잣말처럼 말하더니, 이해하는 듯 넘어갔다. 똑똑해서 속는다는 게 그런 것인가 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나 먼저 간다.”라고 아랑이에게 말을 뱉고는 교실을 뛰쳐나왔다.

 

 보통 교내 통학 버스 정거장에서 학교 버스를 타고, 집 근처 길목까지 가지만, 그날은 걸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복잡한 고속도로 고가 길들과 그 너머 오거리 상가 지역이 한 번 있는 것을 빼면, 아스팔트만 깔려있을 뿐 - 그마저도 갓길은 비포장에 잡초만 무성한 - 별다른 건물도, 자연환경도 없이 개발 계획만 세우다 망한 도시 같은 느낌의 변방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학교 버스를 탔으면 세 번째 정거장인 오거리 상가 지역의 제일 안쪽 끝부분에서 멈췄기에, 그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쪽 길 제일 끝에 있는 코너, 커피 가게에서 사장님이 나오셔서 나를 보고 물었다.

 

 “희준이, 집에 안 가고 뭐 해?”

 “아 네, 희주 기다려요. 안녕하세요.”

 “응 그래. 아직 춥다. 들어와서 기다려. 바람 차네”

 “아녜요. 곧 올 거라서….”

 “아버진 회사 가시고?”

 “네.”

 “둘이 힘들겠네”

 

 밑도 끝도 없이, ‘힘들겠네’, 라고 말하는 게 뜬금없지만, 한두 번도 아니라서 그러려니 웃어넘겼다. 애초에, ‘둘이 아니고, 셋인데’ 말이다. 그리고 ‘뭐가 힘들다는 건지, 나 참…’ 생각을 하다 보니 묘한 짜증이 올라오려고 하는데, 저 멀리서 학교 버스가 보였다.

 

 “아 버스 오네요” 내가 말했다.

 “어 그래. 그래 아버지 안부 전해드리고.”

 “네.” 내가 꾸벅 인사했다. 동네 분인데, 내가 예민해서 아무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다. 물론, 누군가 한번은 좀 알려줬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 잘 지낸다고. 그러니까 뭐 힘들 것 같다는 둥, 그런 말 안 건네어도 된다고. 물론, 나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저 아저씨가 이상한 것일 수도.

 

 버스에서 희주가 내렸다.

 “야 이 등신아!” 그녀의 첫마디였다.

 "쓰읍! 등신이 뭐야, 등신이. 오빠한테. 너 자꾸 그러면!”

 “뭐, 뭐! 자꾸 그러면 뭐!”

 

 그녀가 고개를 아래위로 치켜들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아, 무섭게 못생겼다.'

 

 “...너 코구멍 커.”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희주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너 학교에서 네가 왜 안 맞고 다니는지 아냐?”

 “때리면 네가 잘릴 수 있기 때문이지, 후후” 내가 다시 여유를 찾고 장난스레 팔짱을 괴며 말했다.

 

 “아니, 나 말고, 그냥 너 같은 씹찐따가 왜 학교에서 애들이 충분히 때릴 이유가 많은데도 안 때라는 이유. 그거 몰라?”

 “...?”

 “바로 내가 있기 때문에. 이 몸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빠가 회사에서 일을 잘해서 인정받으니까. 알겠어? 너는 그걸 잊으면 안 돼.” 그녀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허세 가득 말했다.

 

 “진짜? 그런~거였어?” 내가 눈을 크게 뜨며 과장되게 물었다.

 “몰랐어? 그래서 내가 오빠라고 안 하는 거야. 어디서 감히…!”

 

 “헐. 아빠는 항상 네가 그렇게 잘난 체하다가 어디서 분명 큰 코 다친다고, 나보고 잘 지켜보라던데. 쯧쯧쯧.” 내가 장난 섞인 톤으로 희주의 말을 되받아쳤다. 희주의 코 평수가 한껏 더 넓어졌다.

 

 “야이씨…! 이리와! 야!”

 

 희주가 소리치며 달려왔고, 나는 재빨리 뒤로 돌아 커피숍 코너를 끼고 빌라길 안쪽, 집 방향으로 도망쳤다.

 

  “오빠라고 부르는 습관을 좀 들여, 너 자꾸 반말하면 더 못생겨진다~?!”

 

 ---

 

 고개가 뒤로 젖혀질 만큼 전속력으로 도망가는 길 양옆으로 30채 정도의 3층짜리 작은 빌라들이 똑같은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길’이었다.

 

 그중 한 건물 옥상에서 고추를 햇볕에 말리던 사내가 시끄러운 소리 때문인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나와 희주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희주가 어느새 손만 뻗으면 내 머리채라도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왔기에.

 

 ---

 

 “아빠!” 아직 오후 5시밖에 안 되었는데 아빠가 집에 돌아오셨다.

 “어, 희주야.”

 “어떻게 벌써 오셨어요? 칼퇴하신거예요?” 내가 물었다.

 “야 아빠가 넌 줄 아냐? 수업 종 치자마자 도망 나오게?” 희주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너희는 야자 없어? 오늘 학원 가는 날인가?”

 “오늘은 야자도 없고, 학원은…. 안 다니기로 했잖아요. 요샌 인강만 해도…” 내가 답했다.

 “아…. 중간고사인데 곧 있으면…. 너희들 진짜 학원을 그만 다니는 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네…. 흠….”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희주가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

 “아냐, 잠깐 땡땡이. 다시 들어가 봐야 해. 나온 김에 너희들 저녁이나 차려줄까 했지 큭큭” 아빠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웃으며 대답하셨다.

 

 “됐어요. 저녁은 뭐. 저희끼리”

 “어?! 이건 뭐야?” 아빠가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내가 오전에 넣어둔 쪽지를 보셨다.

 

 ‘아차!’

 

 “뭐야 이건. ‘아빠, 소세지 짜앙~’?!” 희주가 쪽지에 고개를 가져다 대며 읽었다.

 

 그녀 안에서, 다시 그 ‘아쿠마’ 캐릭터가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아침 먹어놓고, 지금 네 것만 꼴랑 설거지해놓고, 내 건 일부로 안 해놓은 거였어?!”

 

 “아…. 아…. 아냐 이건, 내가 아침 안 먹었는데, 그냥 아빠 아침 차리고 출근하셨으니까 힘드셨을까 봐….” 내가 다급히 변명을 둘러댔다. 하지만, 말이 잘못 나왔다. 이런.

 

 이번엔 아빠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아침을, 안 먹고, 나갔다고?! 내가 바쁜 아침에도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아뇨…. 그게 아니라, 아침을 먹으려고 차렸는데…. 먹다가, 입에서 다시 나와서…그러니까….”

 

 “야! 정희준! 너 일루와 이 씨….” 희주가 다시 고개를 아래위로 천천히 치켜들며, 느린 동작처럼, 눈을 희번덕거렸다.

 

 정말이지, 일순간 희주의 코 평수가 두 배는 커진 것 같았고, 콧구멍에서는 코털이 휘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를 쳐다봤지만, 이번에는 말려주실 생각이 없어 보이는, 바로 그때!

 

 뷀레레레레. 뷀레레레레.

 

 전화가 울렸다. ‘딱 그녀다운 벨 소리다. 광인들이나 쓸 것 같은 벨 소리.’

 

 접시에 반사된 부엌 조명 빛 때문인지, 마치 보랏빛처럼 보인 희주의 눈빛이, 광인의 그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하더니, 희주는 냅다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휴~’

 

 닫혀가는 문틈 사이로 그녀의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에 나찰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세상에서 가장 얌전한 소녀의 목소리로, 그렇게 전화를 받는소리가 났다.

 

 “어머, 옵~ 하~ ?”

 

 뭔가 그 뒤로 문이 닫히고도 쫑알쫑알 ‘하이톤’의 목소리가 나더니, 1분도 안 되어서, 그녀가 다시 문을 벌컥 열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아빠, 나 요 앞에 커피숍 좀 잠깐 다녀올게.” 신발을 고르는 폼이 ‘또 누구를 속이러 가는 거지’ 싶었지만, 희주는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회사 다시 들어가시기 전까지 좀 쉬세요. 밥은 희준이 시키시고요.” 그리고는, 거의 떼인 돈 받으러 가듯 뛰쳐나갔다.

 

 “어디…?” 희주를 향한 아빠의 물음이 답 없이 허공에 붕 뜨였다.

 “이상한데요…” 내가 대신 답했다.

 

 “너는 밥이나 해라. 아침에 동생 설거지 안 하고 내뺀 거 같으니.” 아빠는 고2 여고생 행동이 다 그렇지라는 듯,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표정을 지으셨다.

 

 무딘 아빠는 동생을 너무 믿으시는 경향이 있다. 내 촉은 다르다.

 

 ‘전화기를 굳이 진동으로 안 해둔 걸 보니 전화를 기다렸던 게 분명하다.’ ‘뷀레레레레’ 라니, 개그맨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오버랩 ’되었다.

 

 ---

 

 카레를 준비하며, 감자를 썰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빠,”

 “왜?”

 

 아빠는 식탁에서 내가 감자를 써는 걸 지켜보며 양파껍질을 까고 있었다. 일하다 말고, 들어오신 게 진짜로 단지 밥을 해주려고 였다니, 뭔가 대단히 ‘우리 아빠’ 다웠다.

 

 “희주, 고추 있잖아요.”

 “희주가 고추가 어딨어 인마. 여동생인데. 흐흐흐”

 “오 마이 갓…. 아, 진짜 안 웃겨…아재 개그. 맨날 그래”

 “흐흐흐 네가 먼저 그랬잖아. 희주 고추 있다고…. 흐흐흐”

 “아 진짜. 됐어.”

 “알았어. 얘기해. 뭔데?”

 “...”

 “얘기해, 인마. 알았어 안 할게”

 

 잠시 주저했다. 물어도 되는 건지.

 

 “희주가 먹으면 안 되는 고추에…. 혹시, 남자의… 그거도 포함되는 건 아니겠죠?”

 

 “...뭐?!”

 

 외마디와 함께, 아빠 손에서 양파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렸다.

 

 

 

 

 

 

 

 

 

 3화. 그럼 고추만 먹고 살아!

 

 “희주가 먹으면 안 되는 고추에… 혹시, 남자의… 그거도 포함되는 건 아니겠죠?”

 

 “...뭐?!”

 

 외마디와 함께, 아빠 손에서 양파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렸다.

 

 “아니…. 내 말은…” 내가 설명을 이어가려고 하자, 아빠가 말을 끊었다.

 

 “너는 희주를 그렇게 모르냐?” 한심하다는 듯 웃으신다.

 

 “아니, 혹시…. 이제 우리도 좀 있으면 성인이고, 희주가 좀 전에 전화 온 게 왠지 남자 같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감자나 썰어, 인마. 아빠 7시에는 다시 회사 들어가 봐야 해. 그래야 티가 안 나.”

 

 “아빠 진짜로 땡땡이 친거야? 회사에서 집이 너무 가까운 거 아냐?!”

 

 스윽.

 

 아빠가 양파를 만진 손으로 내 콧대를 스윽 문질렀다.

 

 “큭큭큭, 뭐가 인마.”

 

 “아 진짜. 눈 매워진단 말이야!” 내가 호들갑을 떨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

 

 처음, 희주가 고추를 먹었을 때를 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빠 설명에 따르면, ‘통’으로 된 고추를 먹을 때만 발현하는 것 같았다. ‘통’이라 함은, 요리에 넣으려고 채를 썰었거나, 혹은 반으로 가르지 않고 온전히 그 고추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형태를 말한다.

 

 매운맛이 본질인가 싶어서 양파나 마늘, 카레 등을 시도해봤는데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좀 더 세분화해서 알아보려고, 고추씨만 먹여본 적도, 그리고 반대로 고추씨만 발려놓고 껍질만 남긴 채로도 먹여봤는데, 이상 증상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내가 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빠 설명에 따르면, 홍고추, 풋고추, 꽈리고추, 청양고추까지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류는 다 조금씩 시험해 봤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통’으로 먹을 때, '발현'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희주가 처음으로 고추를 먹을 때의 모습은, 초등학교 때, 희주랑 처음으로 같은 반을 하지 않았던 6학년 때였다.

 

 쌍둥이는 보통 학교 측에 같은 반 배정을 요청할 수 있는데, 그때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말씀드려서 오히려 다른 반으로 배정을 받았던 때였다.

 

 희주 반에, 희주가 혼자 좋아하는 남자애가 내가 희주의 오빠인 줄 모르고, 나를 소위 ‘왕따’로 보고 시비를 걸었던 그 날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얻어터지면서,

 “야 이, 병신 새끼야!”라는 소리를 들을 때였다.

 

 ---

 (회상)

 

 “야, 너 뭐해 여기서?”

 

 희주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방과 후 너덧 명의 아이들이 학교 뒤편 소각장에서 옹기종기 몰려있으니 희주가 지나가다 힐끔 쳐다봤는데, 내가 땅에 엎어져 있고, 어떤 남자애가 “야 이, 병신 새끼야”라고 소리치는 순간이었다.

 

 ‘쪽팔리게 맞고 있는데, 여기서 뭐하냐니…’

 

 참고로, 그녀의 목소리는 이런 폭력적인 장면 속으로 들어오면서도 전혀 긴장하는 말투가 아녔다. 아주 천연덕스럽게, ‘저 오빠 새끼 저기서 왜 엎어져 있는 거지?’를 궁금해하는 듯한 ‘너 뭐해?’ 였다.

 

 가까이 다가오더니 잠시 나를 내려다보고는, 이내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켰다.

 “꺼져” 창피함에 내가 소리치며 희주 손을 뿌리쳤다.

 

 “뭘 꺼져 병신아.” 희주가 침착하게 대답하며 나를 부축했다.

 

 그리고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지만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화가 났을 때의 희주 얼굴. 깊어진 호흡, 눈빛 그리고 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치켜드는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목이 뒤로 젖혀질 만큼 고개를 들더니, 날 때린 남자애 방향을 쳐다보며, “어떤 새끼가 우리 오빠를…” 이라고 말을 뱉다가…

 

 남자애 얼굴을 알아보고는, 곧 말을 멈췄다.

 

 희주가 짝사랑하는, 희주 내 반 짝꿍이자, 반장인 육상부 정훈이였다.

 

 “정훈이…”

 

 희주가 나지막이 혼잣말처럼 이름을 불렀다….

 

 “뭐야. 너…. 네가 얘 동생이야?”

 

 정훈이도 다분히 당황한 모습이었다.

 

 같은 학년인데 남매라는 것이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는 듯 보였다.

 

 눈치로 보건대, 희주와 정훈이라는 녀석이 딱히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관계도 아니었던 것 같았다. 오히려 둘 사이에는 약간의 친근감 비슷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다. 나는 바보처럼 희주가 좋아하던 놈한테 맞고 있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둘 사이, 가운데서 바보처럼 두들겨 맞은 나만 못난 놈같이 보일 것 같았다. 애초에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 내가 맞고 있지만 않았어도, 이 둘은 괜찮은 관계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제 희주는 내 편을 들어야 할 것이고, 저놈은 눈치를 보니 약간 이 상황을 후회하는 느낌이었다.

 

 “쟤네 이란성 쌍둥이야…. 몰랐어?”

 

 정훈이 옆에서 같이 나를 향해 윽박지르던 육상부 쫄따구1이 정훈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야이 씨… 야이 똘뱅아, 그걸 왜 이제 말해’라는 듯이 정훈이가 쫄따구1은 노려봤다.

 

 희주가 주먹을 움켜줬다. 뭔가 고민을 하는 듯했다.

 

 “비켜봐. 내가 이겨” 자존심이 상한 내가 혼잣말하듯 중얼댔다. 그렇지만 코메디처럼 아무도 내 말은 듣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우리 가도 돼?”

 

 희주가 호흡을 가다듬고, 정훈이를 쳐다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정훈이가 대답을 못 하고 어찌할 줄 몰라고 하는데, 쫄따구2가 소리쳤다.

 

 “어딜 도망쳐, 이 장애인 새끼야! 여동생 뒤에 숨는 거야?”

 “뭐?” 희주가 시선을 그 녀석에게로 돌렸다. “무슨 뜻이야?”

 

 “뭘 무슨 뜻이야. 저 새끼 장애인 맞잖아~. 손가락 장애인 괴물 병신 새끼, 히히히” 그가 히히히 거리며 깐족거렸다.

 

 '유치하게 참, 욕도 길다...'하고 생각하며 희주 얼굴을 쳐다보는데, 나와 달리 희주는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쌍둥이여서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나는 가끔 시골 친척 할아버지들로부터 마치 그것 때문에 외모가 약간 이상하다는 소리를 문 너머로 들은 적이 있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 손가락 때문이었다.

 

 희주와 달리 나는 새끼손가락이 조금 짧았다. 마치 태어나면서 약지 손가락 마디 하나를 엄마 뱃속에 놓고 나온 아이처럼 말이다.

 

 사실, 쌍둥이지만, 이란성이라, 유전적으로도 그렇고, 어찌 보면 단순히 같은 날 태어난 남매라고 보는 게 맞았다. 아빠도 실제로 우리가 아주 다르다고 했었다. 다른 쌍둥이에 비해서 말이다.

 

 하지만 희주는 나의 이런 손가락이 마치 본인 잘못인 것처럼 미안해했다.

 

 내가 말이 아주 조금 어눌했던 건 사실이지만, 외모는 거울로 봐도 손가락 외에는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었는데, 아빠는 어르신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부엌에서 요리하실 때 칼질부터 그 소리가 아주 매서워졌었다. 마치 나무로 된 도마를 다져버릴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면 희주는 아빠에게 다가가 뒤를 꼭 끌어안고는, 방에 계신 친척 어르신들 들으시라는 듯이 “저분들 왜 아직도 안가? 우리가 엄마가 없어서 말랐다고 맨날 말은 그러면서, 정작 집에서는 본인들이 할머니들한테 밥 못 얻어먹는 거 아니야?”라고 중얼거리고는 했다. 그러면 아빠는 “집에서 밥을 안 주나 보지 큭큭큭” 그러며 웃어넘기곤 했다.

 

 나는 내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희주는 그런 소리에 좀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런 비슷한 소리만 나와도, 목소리가 한껏 사나워졌었다.

 

 특히, 내 손가락을 직접 대놓고 비하하는 얘기에는, 어떤 값을 치러서라도 본때를 보여줄 것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을 때도 많았다. 아직은 어린 나이여서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걸 모르는 쫄따구2가 나를 ‘장애인 손가락 괴물 병신’이라고 말한 순간, 희주는 나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바람에 나는 균형을 잃고 다시 땅에 넘어졌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너 다시 말해봐”

 “뭘 다시 말해, XX아! 눈 안 깔아? 왜, 너도 손가락 병신 만들어 줘!?”

 “야, 하지 마….”

 

 수위가 높아지자, 옆에서 정훈이 그를 말렸다. 하지만 쫄따구2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쌍둥이니까 너도 하나 잘라야겠네”

 

 희주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움켜쥐었다.

 

 “똑같이 병신 하면 되겠네! 그렇게 만들어 줘!?”

 

 그리곤 그것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것은, 고추였다.

 

 “뭐… 뭐야, 이 미친X…. 갑자기 고추를 왜 먹어?”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 또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갑자기, 주머니에서 고추를 꺼내더니 깨물다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하지만, 이내 아빠가 평소에 하신 말씀을 천천히 생각해 봤다.

 

 “희주는 고추를 먹으면 안 된다. 특히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희준이 네가 희주를 꼭 진정시키고, 어서 그 자리를 피해서, 멀리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데려와야 한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한입 베어 물은 빨간 홍고추가 반 토막 정도만 남은 채, 그렇게 희주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매운맛이 올라오는 것이었는지, 처음에는 희주의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열기가 더해지는지, 땀을 흘리면서도, 동시에 땀이 증발하듯, 희주의 어깨 위로 수증기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머리칼 사이 사이에 검고, 짙은 회색의 기운이 차올랐다. 머리카락 안쪽에서부터, 검은 느낌의 안개 혹은 구름 같은 기운이 피어오르듯 말이다. 지척에서 봐도, 그 색깔은 이질적이었다.

 

 풍성해진 듯 부풀어 오른 머리칼은, 마치 쇳물을 녹여 부어서 두껍게 코팅이라도 한 듯 반들반들하기도 하고, 햇볕 때문인지 어떤 각도에서는 반짝이기도 하였다.

 

 내가 땅에 엎어진 채로 뒤로 기어서 물러가는데, 잿빛 먹구름의 기운이 이제는 먹물처럼 희주의 어깨부터, 가슴, 그리고 손목, 허리, 엉덩이를 타고 내려와서, 발등까지, 그렇게 피부에 코팅을 입히듯, 내려앉았다.

 

 나도, 정훈이도, 그리고 함부로 입을 놀리던 쫄따구2도 그저 멍하니 이 초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하늘거리던 머리카락은 이제 좀 차분히 내려앉으면서, 좀 더 밀도 있게 단단해진 느낌의 은색 빛깔을 드러냈다. 불과 1초 혹은 2초 정도 만에 일어난 일인듯하면서도, 마치 세상 전체가 슬로우가 걸린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거기까지 보자마자, 문득, 여기서 더 무언가를 보여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주도 처음 고추를 먹을 때 와는 달리, 왠지 제정신이 아닌 듯했기에, 나는 벌떡 일어나서 희주의 손목을 잡아채며, 정훈이를 향해 소리쳤다.

 

  “야, 그만하자. 내가 미안. 우리 갈게. 안녕. 빠이” 그리고는 희주 손을 세게 잡아당겼다. 어서 현실로 돌아오라는 듯.

 

 “어?! 어…” 믿기 어려운 장면 앞에 어리둥절 해있던 정훈이 대답했다.

 

 나머지 애들은 동공만 커져서 아무 말 못 하고 서 있었다. 쫄따구 2는 바지에 오줌까지 싼 것 같았다.

 

 희주는 잠시 쫄따구2를 노려보더니, 이내 못 이긴 척 내 손에 이끌려 학교 뒷문으로 따라 나왔다. 집에 가는 순간까지 뒤를 돌아보지 못했고, 집 앞에 와서야, 희주가 ‘오빠 손 아파’라고 해서, 땀이 흠뻑 젖은 손을 놓고, ‘들어가자’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기억인데, 그 후로는 한 번도 희주가 고추를 먹는 것을 보지 못했다. 희주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나조차도 그런 희주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날 희주는 아빠한테 엄청나게 혼났더랬다. 그러고 나서도 좀 더 혼내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빠는 근처 마트에서 고추를 한 봉지 사 오시더니, 희주 앞에 던지면서,

 

 “그렇게 말 안 들을 거면 앞으로 그럼 고추만 먹고 살아!!”라고 하셨었다.

 

 모녀가 추하게 대성통곡을 한 그날 이후, 희주는 다시는 주머니에 고추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고, 나도 아빠를 통해서만 대충 ‘증상’을 알고 넘어갔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희주가 고추를 먹으면 먹을수록 엄청나게 ‘세진다’(?)라는 얘길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 많이 먹으면 다시는 원래 희주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

 (현재)

 

 [야, 너 안 들어오냐?] 내가 희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는?] 희주가 답했다.

 

 [너 들어오면 죽었다, 이제. 10시 넘었어.]

 [뭐래니. 시나야~. 나 독서실이야.]

 

 [아빠 네 방에서 완전히 화나 있어] 물론 거짓말이었다. 사실 아빠는 아까 저녁 7시에 사무실에 가셔서는 밤12시는 되어야 오신다고 하셨었다.

 

 [나 아까 나와서 잠깐 누구 만나고, 바로 독서실 와서 저녁도 안 먹고 공부 중이야. 어디서 약을 팔아]

 [뭐야 왜 이리 혓바닥이 길어? 거짓말 같은데?]

 [휘달리냐?]

 [후훗. 쫄리면 뒤지시던지]

 

 [오냐 들어가면 너는 죽었다고 복창해라.]

 [후후후, 그래서 언제 들어오냐?]

 [지금 간다.]

 [쫄았네ㅋㅋㅋ 아빠한텐 내가 잘 말해줄게~]

 

 내가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서둘러 방이며 거실이며 집안의 모든 불을 껐다. 그 후로 희주는 답장이 없었지만, 오거리 상가 건물들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 대충 15분이면 올 테니, 장난을 치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었다.

 

 집 앞에 가로등 불 하나 안 들어오는 노후화된 빌라 구조상, 이렇게 실내등을 다 끄면, 우리가 쓰는 2층 3층은 마치 어디선가 도둑이라도 튀어나올 듯 캄캄한 공간이었다.

 

 10분이 좀 더 지나자, 2층 현관문 앞에 발자국 소리가 났다.

 

 

 

 

 4화. 똥물에 튀겨 죽일...!

 

 희주를 놀라게 할 생각에 웃음이 차올라 왔지만, 꾹 참고, 문이 열리길 3층에서 내려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3층 창문에서 집 앞이 보이지는 않는 구조였지만, 희주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두리번거릴 때, 위층에서 살며시 걷기라도 하면 삐거덕 소리가 아주 음산한 게 겁주기 딱 좋은 환경이었기에.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는 이제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이 역으로 장난을 치나?’ 생각도 들었지만, 맘속에선 사실

 ‘설마 진짜 도둑인가, 혹시?’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가만히 기다렸다.

 

 거의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5분도 넘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내 겁이 더 커져서, 핸드폰을 꺼내 희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 와?]

 [가. 나오면서 혼자 먹을까 하다가 너 배고플까 봐 떡볶이 사느라]

 

 희주의 문자였다.

 

 ‘... 그럼 지금 밖에 있는 새끼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위화감에 가슴이 뛰었다. 우선 불을 다시 켜야 했다. 3층에서 거실 스위치를 올렸다.

 

 팟! 형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그 순간, 밖에선 부스럭부스럭 달그락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더니, 2층 현관 앞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 불만 켠 채로 잔뜩 얼어서,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집안 모든 불을 켰다. 그리고 고민했다. 경찰에 연락할 것인가, 아빠한테 전화할 것인가…

 

 ‘아차! 이제 집으로 들어오는 희주와 이 정체 모를 인물, 도둑인지 강도인지를 그녀가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는 고민할 것 없이 실내계단을 뛰어 내려가 신발을 급히 신고, 현관문에 손을 올렸다.

 

 ‘아차! 무기!’

 

 다시 3층 내방으로 뛰어가서 만만한 야구방망이를 들고 내려왔다. 그리고, 현관문을 황급히 열어젖혔다. 문 앞에 무엇이 있을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냄새가 고약했다. ‘동물의 사체인가?’

 

 현관 앞 2미터쯤 위치, 1층 빌라 정문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 달빛에 그림자가 져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커먼 무언가 뭉크러니 놓여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봐선, 아직 따뜻해 보였다. 한편으론 음식물 쓰레기 같아 보였다.

 

 내가, 마치 바퀴벌레라도 잡듯이, 상체를 완전히 뒤로 젖혀서 한 다리만 길게 앞으로 내밀고 균형을 잡아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확인했다.

 

 그것은… 똥이었다. 사람의 똥이었다.

 

 반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상상했었지만, ‘설마 누가 남의 집 앞에, 그것도 불과 10분 전까지 불이 켜져 있던 사람 집 앞에 와서, 신선한 똥을 싸고 간단 말인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똥을 쳐다보고 있을 때, 희주가 걸어오면서 나를 보고 물었다.

 

 “야 병신아, 거기서 뭐 해?!”

 “...”

 “뭐 하냐니까?” 그녀가 1층 대문 앞에 왔다.

 

 희주가 말을 걸지 않았으면 거기서 그 자세로 몇 시간이나 서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 몰랑, 네가 치워”

 “뭔 소리야, 뭘 치워 병신아…, 악!!!”

 

 희주가 이제서야 똥을 보고 소리질렀지만, 나는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창문을 빼꼼히 열고, 말했다.

 

 “야 네가 늦게 왔으니까 네가 치워.”

 “야 이거 뭐야! 너 여기다 똥 쌌어?!”

 

 내가 겨우 몇 분 더 먼저 봤다고 그녀보다는 내가 제정신이었다. 마치 쌍둥이가 몇 초, 혹은 몇 분 차이로 세상을 먼저 보고 오빠 소리 듣는 것처럼 말이다. 쌍둥이 중, 둘째는 두 번째로 꺼내어 지면서 첫째를 보고 ‘어라, 저 똥 덩어리는 뭐지?’ 하진 않았을까?

 

 “야 나 집에 어떻게 들어가!” 그녀가 밖에서 어찌할 줄 모르면서 소리쳤다. 물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파란색 양동이 통과 고무장갑, 비닐봉지 10장 정도를 챙겨서 나왔다. 두 번째로 보니, 더 더러웠지만, 이제 무섭지는 않았다. 희주에게 고무장갑과 비닐봉지 묶음을 던져주며 말했다.

 

 “고무장갑 끼고, 비닐봉지에 담아.”

 “뭐 이 새끼야?!” 그녀가 일 초 만에 답했다.

 

 “올라오지 마! 거기 그 똥만 있는 게 아니야. 분명 오줌도 쌌을 거야”

 “누가?!”

 “몰라 나도. 시끄러우니까 밤에 떠들지 말고, 빨리.”

 “빨리 뭐. 나보고 이 똥 치우라고?!”

 “내가 여기서 여기 양동이 통에 물 담아서 살살 흘릴 테니까, 짤 떼.어.서. 담아. 그리고 나면 내가 다시 수압으로 쫙 뿌릴게. 그렇게 해야지 뭐 방법 있어?!”

 “있지!”

 “뭐! 이것이 왜 자꾸 야밤에 소리를 질러!”

 “네가 해, 병신아!” 그녀가 고무장갑을 내 쪽으로 다시 던졌다.

 “...하아~ 씨, 그럼 내가 고무장갑 끼고 밀 테니까, 네가 그… 계단 밑에서 비닐봉지 10장 잘 이렇게 겹겹이, 해서 받아.”

 “...뭘 받아…! 나보고 이 똥 받으라고?!”

 “그럼 어떻게. 내 똥 아냐 나도. 아빠 올 때까지 기다려 그럼?!” 희주가 아빠를 힘들게 하는 일은 싫어한다는 것을 알기에,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뱉어 보았다.

 

 “...하아~ 미치겠다, 진짜…. 내가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오빠라는 인간 배고플까 봐 떡볶이까지 사서 왔더니, 남의 똥을 비닐봉지에 담으라고 하고, 진짜….” 그녀는 진정 현타가 온듯했다.

 

 “야, 이게 내 잘못도 아니잖아…. 떡볶이 잘 먹을게…. 우선, 이…, 으으” 다시 똥을 보자 오만상이 다 찌푸려졌다.

 “우리가 너무 곱게 자랐나 봐…. 으윽…” 희주가 떡볶이 봉지를 현관 앞쪽으로 던지더니, 봉지를 겹겹이 쌓아 손을 모았다.

 

 “자! 내가 이걸 들어서든 밀어서든 넣는다? 봉지 잘 받쳐!” 내가 말하고 허리를 숙였다.

 “내 손에 묻히면 아주 뒤진다, 너! 오빠고 뭐고 없어!”

 “으으~~~” 내가 똥을 밀어서 봉지에 깔끔하게 넣었다.

 

 “자 비켜 물뿌리게” 내가 말했고, 희주는 봉지에 똥을 든 채로 물벼락을 맞을까 옆으로 비켜섰다.

 “아 잠깐잠깐, 나 물 안 맞게..~~!!”

 

 촤악! 촤악!

 

 “야잇!…! 똥물에 튀겨 죽일 놈의 새끼야!!!”

 

 물이 튀었다.

 

 “오~~~ 마이 갓…미안 미안,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실수라고?!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녀의 얼굴에, 작지만, 검은 갈색 똥물이 한 방울 맺혀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

 

 솔직히 무슨 변명을 해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어려운 실수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생기는 ‘용기’ 같은 게 있었다.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앞에는 반대로 당당해지는 ‘어쩌라고~식’의 대범함.

 

 “너…, 넌 늦게 왔으니까, 거기서 똥 좀 더 들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냉큼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나를 쳐다 보던, 희주의 두 눈알이 토끼똥처럼 커졌다.

 

 “이 미친새…, 야 너 들어가면 죽었어! 진짜!” 희주는 잔뜩 화가 치밀었지만, 딱히 들고 있는 똥을 버릴 곳이 없었다.

 

 내가 창문을 열고,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던져주었다.

 “거기다 넣어서 꽉 조여 매서 집 앞 쓰레기통 옆에 둬. 안 가져가면, 아빠한테 물어야지 그땐”

 

 “...와…. 하하하. 너 진짜 미쳤구나?” 희주가 넋이 나간 듯 웃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창문을 닫았다.

 

 희주는 들어와서 신경질적으로 샤워를 한 시간은 했고, 나는 짐짓 왜 화가 났는지 모르는 척 떡볶이만 반 정도 먹고 먼저 방에 들어가 누웠다.

 

 “아이, 미친 새끼 이거 진짜 찐이네! 떡볶이를 혼자 처먹고 이렇게 두면 어쩌라는 거야 진짜!”라는 소리가 거실에서 들렸지만, 방에까지 쳐들어오진 않았다. 난 ‘키득키득’ 웃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 맑은 햇살…’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려 햇빛을 최대한 차단해도 느껴지는 햇살.

 

 ‘아…. 근데 왜 이렇게 춥지?’

 

 이불속에서 버틸 만큼 버티다, 뭔가 이상해서, 고개를 ‘빼끔’ 내밀고,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을 봤다.

 

 창문이 열려 있다.

 

 ‘아직 4월이지만 밤사이 냉기는 여전했을 텐데…. 왜 창문이 열려 있지?!’

 ‘설마 똥 쌌던 그놈이?!’

 

 하지만 그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시계를 보고, 기겁했다. 늦잠을 잔 것이었다. 희주랑 달리 나의 경우, 늦잠이야 원래 맨날 자는 거지만, 이미 시곗바늘은 오전 8시 35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등교 시간은 당연히 놓쳤고, 첫 교시 수업도 겨우 맞출까 말까 하는 시간이었다.

 

 ‘아 젠장…’

 

 서둘러 대충 널브러진 교복 바지에 다리를 집어넣으며 방 문턱을 넘다가 넘어질 뻔했다. 식탁 위엔 아빠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셨을 정성 가득한 음식…이 아니고, 대신 쪽지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혹시 시간이 없으셔서, 돈을 남겨두신 건가?’ 싶었지만, 쪽지에 가까이 갈수록 익숙한 글자체.

 

 [너 아침 안 먹고 학교 오는 거 같아서, 아빠가 해둔 순두부찌개 그냥 냉장고에 넣어뒀다. 고맙지?]

 

 “젠장!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빠표 순두부찌개를!”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소리 내 말했다. 하지만 희주의 얄미운 쪽지에 대한 분노도 잠시, 나는 서둘러 발을 신발에 욱여넣고, 현관문을 나섰다.

 

 집 앞에 똥 봉지는 사라져 있었다. 쓰레기 수거하실 때 가져가셨겠지 싶었다.

 

 서둘러 굽어진 내리막 골목길을 내달려 갔다.

 

 아주 잠시 양옆으로 세워진 빌라들 사이 건물 틈으로 누군가 서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뭐 숨어서 담배 피우는 고등학생이나, 인근 여대생들이 마스크 끼고 숨어서 담배 피우는 거겠지 생각하며 지나쳤다. 멈추기에는, 1교시가…, ‘오늘도 영어! 괴랄 맞은 그 영어 선생!!’ 이였다.

 

 ---

 

 “죄송합니다. 허억허억”

 

 9시 교실 뒷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야 영어 아직 안 왔어. 넌 맨날 늦냐” 아랑이다.

 

 “허억허억…. 저기 저…, 못된 것….”

 

 내가 숨을 헐떡이며 교실 안쪽 희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미 9시가 넘어서 애들은 평소보다 덜 웅성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영어가 문을 또 쾅 쾅 열면서 들어올 수 있었기에 말이다.

 

 징~~~ 지잉~~~

 

 문자가 왔다. 희주다.

 [야, 창문 닫고 왔지?]

 

 ‘헉! 안 닫고 왔다…! 근데, 잠깐…, 이 나쁜…!’

 

 [야, 네가 창문 열었어!? 아침에 졸라 추웠거든!]

 [어쩌라고, 빙구아]

 

 ‘....근데 창문은, 혹시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지…? 음…. 가져갈 것도 없는데, 뭐 별일 있겠어?’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찰나, 여지없이 그가 등장했다.

 

 쾅. 쾅. 쾅!!

 

 “에이 씨, 이거 문 왜 이래? 야!, 누가이랬어!?” 괴랄 맞은 영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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