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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끝없는 굴레
작가 : 차은별
작품등록일 : 2020.8.22

'살려주세요'라는 단어에는 무수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무수한 의미들 중에 공통점은 오직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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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22 22:35     조회 : 425     추천 : 1     분량 : 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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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국립암센터 과장에 수술 잘하기로 소문난 의사, 어머니는 알아주는 대학교 법학과 교수, 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뭐든 풍족했고 부모님의 머리를 닮아 공부에 교우관계까지 좋고 요리에도 재능을 보인 무남독녀 외동딸 한수연.

  난 그런 행운아다. 그런 나를 하늘이 질투한 건가?

  하루는 머리가 너무 아파 양호실에 있었지만 나아지지 않아 선생님께 말을 하고 가방도 잊어버리고 집에 갈만큼 무작정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도착을 했다.

 

 

  한발자국 떼기도 힘들어 ‘오히려 병원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아버지가 오시면 아버지가 진찰해주시겠지’하며 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데 어머니의 신발이 놓여져있었다.

  ‘어? 뭐 놓고 가셨나?’

  아프니까 어머니의 생각이 더 절실해져 기쁜 마음으로 어머니의 서재 방을 열어보았는데 없어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야릇한 소리가 들려온다. 손이 덜덜 떨릴 만큼, 잊고 있었던 머리가 다시 아플 만큼.

  “진짜 이해도 돼요? 교수님?”

  “교수님?”

  ‘교수님?’

  수연은 눈이 동그래졌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오는 말은 가관이었다.

  “괜찮다니까. 남편이란 인간은 세미나 가서 삼일 후에나 올 것 같아. 그리고 딸은 오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어. 그나저나 너 요즘 학교에서 여학생들한테 인기 엄청 많더라? 막 질투 나던데?”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스러웠던 목소리로 남자에게 투정부리는 말투는 귀에 거슬렸다.

  “걱정 마. 난 자기 뿐인 거 잊었어? 이렇게 자기네 집에서 자기 남편이랑 자는 곳에서 누워서 이러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어서 투정이야?”

  “여자의 질투는 끝도 없어.”

  뭐가 좋은지 웃음소리가 끝이지 않고 다시는 듣기 싫은 야릇한 소리가 난다.

  수연은 정신없이 집을 나왔다.

  들어가서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몸이 아파서 그랬는지 모든 게 귀찮았다. 다만 자신의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가 안쓰럽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놀이터에 앉아있는데 열이 확 오르거니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느낌이 들어 살며시 눈을 떠본다. 환한 불빛,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많이 맡았던 냄새,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

  수연이 놀라 고개를 돌려버리자 놀란 어머니는 뻥찐다.

  “수연아.”

  더럽다. 다른 사람을 만지던 손으로, 남자에게 투정부리던 목소리로 자시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가 역겹다.

  “아니, 아팠으면 병원을 왔어야지 왜 놀이터에 있었어. 병원에서 연락 와서 놀랐잖아.”

  ‘집에 왔어야지가 아니라 병원에 왔었어야지? 참. 기가 막힌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인 것 같았다.’

  “아빠 오늘 세미나 갔잖아. 그러면 병원으로…….”

  “그렇게 귀찮아? 병원에 온 게 그렇게 귀찮았으면 안 왔으면 됐잖아. 왜 와서 생색내는 건데!”

  “생색? 너 걱정돼서 이러는 거잖아. 네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집 앞 노…… 됐다. 그만하자.”

  수연은 짜증을 내면서 돌아눕는다.

  “돈만 내고 가. 집은 내가 알아서 갈게.”

  머리가 울려서 눈물이 났다.

  “수연아.”

  수연은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

  “수연아. 괜찮아?”

  “네.”

  “엄마는?”

  “내가 가라고 했어요. 근데 아버지 오늘 세미나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취소됐어.”

  수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집 앞에 왜 있었어? 경비 아저씨가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쩌려고.”

  “잠깐 찬바람 쐬고 들어가고 싶어서 잠깐 앉아있었는데.”

  “다음부터 아프면 아빠 병원으로 오거나 가까운 병원으로 가. 아빠가 갈게.”

  이렇게 따뜻하고 착한 아버지를 놔두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여보?”

  어머니의 목소리에 수연은 눈을 감는다.

  “세미나 안 갔어요?”

  “취소 되서 다시 왔어. 당신이랑 연락이 안 된다고 나한테 연락 왔었는데. 오늘 강의 없는 날 아냐?”

  “아. 일이 있었어요. 그나저나 언제 왔어요?”

  “2시 좀 넘어서.”

  “2시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시간은 수연이가 집에 왔었던, 어머니가 남자와 집에 있었던 시간.

  “뭘 그렇게 놀라.”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버지는 링거를 보더니 눈을 감고 있는 수연을 부른다.

  “수연아. 다 들어갔다. 이제 집에 가자.”

  아버지가 링거주사를 뽑고 조심스럽게 일으킨다.

  “차 빼놓고 있을게 엄마랑 같이 나와.”

  신발을 신으려고 일어나는데 살짝 어지러워 몸이 휘청거려졌다. 어머니가 얼른 잡아주는데 수연이 손을 쳐내며 침대에 앉는다.

  “한수연.”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안 갔어? 가라고 했잖아.”

  “전화가 와서 전화 받고 왔어.”

  수연은 일어나 병원을 나간다.

 

 

  차 안은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그리고 그 후로 어머니와의 갈등이 점점 심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사춘기라고 치부했다.

  “수연이. 혼내야하는 거 아니에요? 사춘기가 무슨 벼슬도 아니고.”

  “놔둬. 공부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 거겠지.”

  “공부는 혼자해요? 다 힘들지.”

  “왜 그렇게 수연이를 몰아세우려고 해.”

  “그렇게 행동하잖아요.”

  어머니 바보라고 할 정도로 어머니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요즘은 아버지 바보가 돼서 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도 안 걸고 밀어내기 바빴다. 그래서 어머니는 서운하고 미웠고 짜증이 났다.

  “근데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학교에 무슨 일 있어?”

  어머니는 핸드폰을 보며 말한다.

  “연락했어요? 집에 있어서 신경을 안 썼네. 왜 전화했어요?”

  “그냥. 수연이랑 잘 지내보라고.”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인다.

  “곁에도 못 오게 해요. 왜 저러는지. 난 예전처럼 딸하고 쇼핑도 다니고 남자친구 얘기도 듣고 싶은데.”

  “남자친구 생겼데?”

  “언젠가 생기겠죠. 아니면 생겼을 수도……. 그러지 말고 당신이 얘기해 봐요. 당신한테는 말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나 내일부터 이틀 간 학술 세미나 가는 날이고 수연이도 학교 안 가는 날이니까요.”

  아버지는 고민되는 표정을 짓는다.

  “알았어. 내가 얘기해 볼게.”

  수연은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집 안은 조용했다. 일상이다. 이렇게 조용한 집안. 부모님은 직급이 있는 만큼 세미나나 회의가 많기 때문이다.

  기지개를 피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 하루 종일 TV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퇴근하셨다.

  “아버지.”

  반갑게 아버지를 반기고 밥을 먹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 각자 일을 하는데 아버지가 노크를 하시며 들어오신다.

  “바쁘지 않으면 아빠랑 잠깐 얘기 좀 할까?”

  아버지는 수연의 침대에 앉는다.

  “공부 중이었어?”

  “네. 왜요?”

  “엄마한테 뭐 서운한 거 있어?”

  “서운? 그런 거 없는데.”

  “근데 왜 엄마랑 얘기도 안 하고 뭐 물어보면 짜증만 내?”

  “그냥…….”

  “엄마가 서운해 하는 것 같아서.”

  수연은 더 이상 말을 안 한다.

  “아빠한테도 말 안 해줄 거야?”

  “안 해주는 게 아니라 할 말이 없어요.”

  “흠. 그러 말해주고 싶을 때 말해줘. 엄마랑 아빠는 우리 수연이가 항상 행복하고 즐거운 맘을 가진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

  수연은 따뜻한 아버지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버지. 아버지는 어머니가 어디가 좋으셨어요?”

  “예뻐서. 그래서.”

  “어머니도 그거 알고 있어요?”

  “그럼. 아빠가 네 엄마 예뻐서 한번 만나보자고 했지. 너희 엄마도 아빠 좋아했어. 그래서 망설임 없이 3개월 만에 결혼했지. 수연이 너 남친 생겼어?”

  “아뇨. 그냥 어머니랑 아버지 러브스토리는 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

  “사랑하게 되면 말 안 해도 다 알게 돼있어.”

  “미워했었던 적은 없었어요?”

  “미워했었던 적? 음. 아! 최근에 있었다.”

  수연은 놀라 묻는다.

  “최근이요?”

  “응. 너 병원에 실려 갔는데 엄마랑 연락이 안 된다고 아빠한테 전화 왔을 때.”

  “아.”

  “왜?”

  “아무것도. 근데 그때 일찍 오셨었는데 병원 들렸다 오신 거예요? 취소되면 바로 집에 오시잖아요.”

  아버지는 말없이 가만히 수연을 본다.

  “…… 봤니?”

  “네?”

  “너 놀이터에 있었던 이유가 그거였어? 엄마랑 조교랑 집에서…….”

  수연은 눈을 크게 뜬다.

  ‘아버지도 본 거야? 봤던 거야?’

  “아뇨.”

  “그것 때문에 엄마랑 말 안 하는 거 아니야?”

  “못 봤다니까요.”

  “뭘 못 봤는데? 엄마랑 조교를 못 봤다는 거야, 관계하는 것을 못 봤다는 거야?”

  수연은 더 이상 얘기하기 싫다는 듯 의자를 돌려 공부해야 한다고 펜을 들었다.

  “봤구나. 미안해. 아빠가 못 나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밉지 않아요? 더럽지 않아요? 나는…… 이해 못하겠어요. 어머니 얼굴을 똑바로 못 보겠다고요. 나는 진짜 너무 싫어요.”

  “수연아.”

  “아버지는 괜찮으세요? 그걸 보셨다면…….”

  “그러지마. 엄마도 사정이.”

  “사정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사정이 생겨요? 다른 남자랑 다른 집도 아니고 어떻게 집에서…….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버지는 수연의 의자를 돌려 수연을 본다.

  “너만 싫은 거 아니야. 아빠도 싫어.”

  “아버지.”

  “그렇다고 이혼하면 너는 어떡해.”

  “왜 내 생각을 해! 아버지 의견이 중요하지.”

  “미안해, 수연아.”

  그렇게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수연은 가슴이 아팠다.

  ‘잘못한 건 어머닌데 왜 아버지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하는지. 더욱 더 어머니가 밉다.’

 

 

  그렇게 아버지와 얘기를 하고 잠을 자고 있었는데 뭔가 자신의 얼굴을 만진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아버지?”

  아버지가 수연에게 입을 맞춘다. 놀란 수연은 사고가 멈춰 가만히 있기만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더욱 대담해져서 수연의 위로 올라탄다. 아버지는 거친 숨을 내쉬는 수연을 꿀 떨어지는 눈으로 보며 머리를 쓸어 넘겨준다.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수연은 몸을 비틀어 아버지를 떨어뜨리려 하고 아버지는 수연이 거부하지 못하게 손을 잡는다.

  “아버지!”

  수연은 아버지에게 정신이 돌아오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아버지는 수연을 딸을 보는 눈이 아니라 여자로 보는 눈으로 느껴져 무서웠다.

  “아버지. 저 수연이에요. 왜 이러세요.”

  아버지는 그런 수연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다시 입을 맞추려한다. 수연은 필사적으로 입을 피한다. 아버지는 수연의 턱을 잡고 심하게 키스를 한다. 수연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때리고 발버둥을 치지만 아버지는 꿈쩍도 안 하신다.

  ‘대체 왜……. 싫어, 어머니.’

  입술을 가까스로 피한 수연은 소리를 지르며 하지 말라고 하지만 아버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더럽다고 했지? 너도 마찬가지야.”

  수연의 몸부림이 멈췄다.

  ‘무슨…….’

  “너도 나한테 당하니까 더러운 년이야. 알았어?”

  “아버지…….”

  “네 어미라는 인간이 이 집에 남자 데려온 게 한, 두 번 인 줄 알아? 나 없을 때 매일 데려왔어. 보라는 듯이 다른 남자 속옷까지 빨래 해. 처음엔 모른 척 했지. 그러니까 진짜 모르는 줄 아나 봐.”

  수연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번에도 아니, 이번에는 알까? 내가 너를 이렇게 다룬다는 것을? 알아도 네 어미는 모른 척 할 거야. 지가 저지른 일이 있으니까.”

  아버지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다.

  “내 의견이 중요하다고 했지? 그래. 지금 내 의견은 너를 잡아먹는 거야.”

  수연은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이래야 덜 억울하지.”

  “아악!”

  ‘내가 왜 이런 일을. 어머니의 잘못을 내가 왜. 자신의 억울함을 나한테 왜. 나는 본 것뿐인데. 나는 무서워서 그랬던 것뿐인데. 믿었던 사람에게 배반당한 것뿐인데. 더러워서 피한 것뿐인데.’

  자신의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에 소름이 끼치고 이 일의 원인인 어머니를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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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삼일 20-08-29 21:55
 
엄마의 바람을 핑계로 딸을...
아주 못된 아버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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