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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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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20 03:01     조회 : 539     추천 : 3     분량 : 5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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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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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한 병을 더 시킨 여자를 말리진 않았다. 어른들은 이런 날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좋겠다 싶었다. 여자가 먹고 싶은 건 뭐든지 시키라기에 눈치를 보다가 한 번도 못 먹어본 꼼장어구이를 시켰다. 술이 더 들어간 여자는 세상에 그런 엄마가 어디 있느냐고, 그런 년은 엄마가 아니라 썅년이라며, 그런 년은 엄마가 못 되게 국가 차원에서 미리 성격 검사를 해서 보지를 막아버려야 한다고 주절댔다. 생전 처음 ‘보지’란 단어가 사람 입에서 나오는 걸 목격한 나는 조금은 웃겼고, 여자의 진지한 표정에서 실제로 보지를 막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조금은 징그럽고 얼굴이 화끈댔다. 꼼장어를 다 먹고 서툰 솜씨로 닭발 뼈를 발라 먹다가 “그럼 자식 두고 자기 목숨 끊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했더니 여자가 그런 년도 보지를 꿰매버려야 한다고 떠들어대다가 내 눈에 고인 눈물을 보고 멈췄다.

 

 내 눈이 항상 슬픈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는 여자가 나를 부여안았다. 여자의 큰 가슴이 내 작은 가슴에 부딪혔다. 아이씨. 에이즈 덩어리. 동정하지 마. 여자를 살짝 밀었을 뿐인데 붕 떠밀려 뒤로 자빠졌다가 순식간에 원상태로 복귀했다. 역방향으로 재생된 비디오처럼 자연스러운 여자의 몸놀림 덕에 일부러 보인 퍼포먼스 같아 보였다. “괜찮아. 괜찮아. 아줌마 여기 소주 하나 더.” 아무도 안 보는 사이 여자의 술잔에 있는 술을 내 물 잔에 부어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쓰다. 한 모금 더 음미해보니 쓰면서도 향긋하니 살짝 달기도 했다. 어른들은 이런 걸 뭔 맛으로 먹는가 했더니 맛있으니까 먹는구나. 여자가 내 엄마를 욕한 걸 사과했다. 난 어른스러운 척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긴 해요.” 했다.

 

 여자는 평생 엄마를 죽이고 싶었는데 알아서 뒈져 잘됐다고 입을 놀리며 자꾸 눈물을 찍어댔다. 난 엄만 뒈지려면 나랑 같이 뒈지던가 아니면 아예 날 낳질 말든가 해야 했다고, 엄마가 나 초등학교 사 학년 때 뱃속에서 죽여 버린 내 동생이 제일 부럽다고 말했다. 여자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자식 죽이는 게 쉬운 건 줄 아느냐고, 뒈지는 건 쉬운 건 줄 아느냐고 했다. 자기도 뒈지려고 마음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 정도는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 그렇다고 내가 아이고 어머니 잘 뒈지셨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이러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인 데다가, 그렇게 따지면 자식 팔아먹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또박또박 대꾸했더니 여자는 의외로 쉽게 수긍했다.

 

 자그마치 오만구천 원어치의 술과 음식을 소비하며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인생은 좆같다는 거였고 이 좆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서 나도 여자도 꼭 살아야 한다고는 말을 못했다. 여자는 엄마가 없는 내가 ‘여자 교육’을 못 받을 테니 일러준다면서 몸 팔지 말고, 내 몸만 좋아하는 사람한테 속지 말고, 술, 도박, 여자 잘하는 놈하곤 상종을 말라고 했다. 내가 건성으로 듣는 티가 났는지 여자가 재차 내 눈을 보며 알아들었느냐고 했다. “뭔 말인진 알겠는데, 아줌마도 몸 팔면서 나보고 몸 팔지 말라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잖아요. 자긴 죽으면서 나보고 잘살라는 거랑 뭐가 달라.” 여자가 자기는 자기 엄마한테 여자 교육을 못 받아서 그렇다며 방정맞게 웃어댔다.

 

 며칠 뒤, 여자가 나에게 돈 오만 원을 쥐여주며 배곯지 말라 했을 때, 난 여자가 어디론가 떠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묻지 않았고, 여자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인상이 고약한 남자들 서넛이 여자가 묵던 방을 뒤지고 부수며 난리가 났다. 그는 깡패들이 들어왔다고 숨을 죽이고 다리를 후들거려 댔다. 난 애써 그를 못 본 척하며 방문에 귀를 대고 남자들의 말을 훔쳐 들었다. 여자가 남자들 중 한 명의 물건을 가지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물건 주인의 부하로 보이는 남자는 여자가 물건을 팔 능력이 못 된다며 어디서 먹고 뒈지려는 게 아니냐고 했다. 난 여자가 뒈지러 가진 않았다고 확신했다. 여자가 돈을 줄 때 본 두툼한 지갑과 여자의 마지막 눈빛이 그렇게 말해줬다.

 

 엄마와 내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아파트였는데 엄마만 빼고 그와 나만 아파트 방 한 칸으로 월세를 얻어갈 줄은 몰랐다. 여관에서 깡패들과 창녀들에게 질린 그가 어렵게 마련한 방이었다. 방 세 칸, 화장실 두 개짜리 40평형 아파트의 주인은 오십 대의 과부였다. 과부의 죽은 남편은 주식 일을 했는데 돈은 많이 벌었지만 과로사하고 말았다. 과부의 딸은 미국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과부는 그림 그리기가 취미라고, 그래서 방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방으로 쓰고, 또 하나는 잠자는 데 쓰고, 그럼 방 하나가 남아 세를 놓는다고 했다. “내가 적적하고 혼자 살기가 싫어서.” 과부의 목소리는 엄마나 내 목소리보다 두 옥타브는 높았고 울림이 커 마이크를 달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큰 입속의 금색 어금니를 보이며 환히 웃는 과부의 첫인상은 조금은 괴기스러웠고, 그 얼굴이 너무 밝아 거부감이 들었지만, 난 애써 따라 웃어 보였다. 덕분에 인지 과부는 원래 혼자 사는 사람에게 세를 놓으려 했는데, 내가 하도 착하게 생겨서 우리를 택하겠다고 했다. 일 년의 반은 딸을 돌보러 미국에 간다며, 그럴 땐 집을 자유롭게 써도 된다는 과부의 말을 들어보니, 왜 부동산을 하는 그의 친구 송 씨 아저씨가 계약을 서두르라 했는지 이해가 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본 아파트는 무서웠다. 19층 거실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던 베란다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4층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느꼈던 오금 저림은 아이들 장난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 느낌 때문에 방에서도 창문 밖은 절대로 내다보지 않았다. 맘씨 좋은 과부는 친절하게도 자기 딸이 쓰던 작은 침대를 방에 놓아주었는데 바닥에서 고작 50센티도 되지 않던 그 높이가 무서워서 극구 사양하는 그에게 억지로 떠넘겼다.

 

 어디서 자던 잠만 자면 한없이 추락하는 꿈을 꿨다. 벼랑 끝, 산꼭대기, 절벽부터 한 번도 타 본 적 없는 비행기나 케이블카 등 높은 곳은 어디든 꿈의 장소로 등장했다. 가장 무서운 곳은 아파트 옥상이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엄마와 함께 떨어지는 꿈은 너무 많이 꿨지만 꿀 때마다 현실과 꿈이 구분이 안 됐고, 꿀 때마다 똑같이 두렵고 무서웠다. 특히나 그 추락 도중, 심장이 근질근질하면서도 아파져 올 때 은근슬쩍 느껴지는 희열이 싫었다. 그 희열과 함께 느껴지는 머릿속의 목소리가 “할 수 있어. 옥상으로 올라가.” 할 때마다 괴성과 쌍욕을 내뱉으며 잠에서 깼다. 그때마다 그는 뭔 일이냐고 물었고 내가 “떨어지는 꿈.” 하면 내 심장보다도 더 빨리 뛰던 자신의 심장을 쓸어내리며 “키 크는 꿈이네.” 했다. 키 크기는 멈춘 지 오래인 걸 알면서도 난 “그러게.” 하며 그를 달랬다.

 

 엘리베이터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사방이 막힌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위에 있는지 못 느끼는 것 같은데, 나는 공중에 홀연히 떠 있는 양 발밑 보기가 두려웠고, 내 다리에 힘을 빼면 떨어질까 봐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줘 쥐가 났다. 빨간 불빛으로 만들어지는 숫자가 바뀌는 걸 보면서 머릿속으론 끊임없이 옥상에 매달려 있는 줄 하나에 의지해 올라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상상이 됐다. 엘리베이터가 실제로 그렇게 운행되는지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난 엘리베이터를 끌어 올리는 줄이 끊어지는 상상을 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자유낙하를 준비하곤 했다. 엘리베이터가 아무 일 없이 19층에 멎고 기계음이 “십구 층입니다.” 하면 마음속으로 그 기계음에다 대고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그 숨 막히는 공간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 밖 콘크리트 땅을 밟으면서도 ‘안 무너진다. 여태까지도 안 무너졌고 앞으로도 안 무너질 거다.’ 하며 내 과대망상을 끊임없이 나무라야 제대로 걸어졌다.

 

 그나마 그 아파트가 좋았던 건 과부의 친화력과 큰 손이었다. 과부가 집에 있을 때는 종종 과부의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갈비, 보쌈, 닭튀김 같은 고기류부터 따끈따끈한 빵, 쿠키까지 쉽게 만들어지는 과부의 주방엔 엄마는 평생 가져보지 못한 오븐, 튀김기, 제빵기 따위가 즐비했다. 그릇들도 색깔별로 종류별로 다 구비되어있었다. 내가 닭 한 마리를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과부 덕이었고, 그런 나를 처음으로 칭찬해준 것도 과부였다. 과부는 자기가 혼자 있으면 귀찮아서 끼니를 거를 텐데 나와 그가 있어서 요리할 맛이 난다고 좋아했다. 난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을 목구멍까지 꽉 채울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먹는 게 그렇게 보기 좋음 닭 두 마리도 세 마리도 먹을 수 있다고 못 하는 농담까지 하며 과부의 비위를 맞춰줬다.

 

 맛있는 걸 먹을 때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이런 음식 좋아할 텐데. 엄마도 이거 만들 줄 알았을까?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돈만 있었으면 엄마도 이거보다 더 맛있는 거 많이 만들 줄 알았을 텐데. 엄마의 손맛이 과부보다는 낫다고 확신했던 게 과부의 김치는 굴과 갈치, 난생처음 들어본 청각이란 것까지 들어갔는데도 엄마 김치만 못했다. 과부의 깍두기도, 총각무 김치도 비싼 재료만 들어갔지, 엄마가 소금에 제일 싼 멸치 액젓만 가지고 만든 것보다 아삭함과 갚은 맛이 덜했고, 김치의 기본인 붉고 침 고이게 하는 때깔도 못 냈다. 나물 무침 하나만 봐도 엄마는 간장 무침, 된장 무침, 고추장 무침 등 각종 나물의 향과 식감에 맞게 제대로 무쳐냈는데, 과부는 그런 감각 없이 소금으로만 무쳤고, 엄마는 정말 아껴 쓰던 참기름을 너무 과하게 써 나물 고유의 향을 확 죽여 버렸다.

 

 봄이 되자 엄마 생각이 더 났다. 전엔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엄마의 밥상에서 봄을 먼저 느꼈었다. 엄마는 봄이 되면 집 주변의 산으로 들로 다니며 쑥, 냉이, 이름도 모를 각종 봄나물들을 산더미처럼 뜯어왔었다. 지천으로 먹을 게 널려서 캐가는 사람이 임자인데 안 가져가면은 바보라고 했다. 나도 따라가 봤지만 난 손이 느리고 굼떠서 큰 도움이 못됐다. 쑥에 밀가루나 쌀가루를 묻혀 쪄내면 맛있는 쑥버무리가 됐고, 콩가루를 묻혀 끓이면 쑥국이 됐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엄마가 직접 만든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였다. 엄마 말로는 자기가 촌년이라서 쑥과 냉이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서울서 난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가 만든 쑥과 냉이를 듬뿍 담은 된장찌개보다 맛있는 건 못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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