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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첫사랑의 아이돌
작가 : 별바람
작품등록일 : 2020.8.19

잊지 못했던 나의 첫사랑이 비밀 아이돌로 데뷔?
게다가 다른 멤버가 말하길 그의 첫사랑이 나라고?
좌충우돌 결, 초, 보은의 얽히고 설킨 첫사랑 로맨스.

 
제 2화: 치료 목적입니다만?
작성일 : 20-08-21 14:06     조회 : 168     추천 : 0     분량 : 7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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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야. 마셔, 마셔. 그딴 꿈이 대수야.”

 

 보은은 10년 지기 친구 연화의 말에 씁쓸한 표정으로 맥주잔을 부딪친다. 연화는 보은과 학창시절에 만나 줄곧 절친으로 함께했기에, 보은의 속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 누구보다도 그녀를 달래는 방법을 잘 알았다.

 

 “너 이제 나이 겨우 스물넷이야. 명문대도 졸업해서 대기업 다니는 창창한 니가 뭐가 아까워서 없는 사람 붙잡아? 내가 소개팅 해줄까? 해 달라는 사람 널렸어.”

 

 이것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연화는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연락처를 내 줄 듯 휴대폰을 뒤적거린다.

 

 “아냐. 됐어. 너랑 술 한 잔 하는 그게 내 낙 아니겠냐.”

 

 한 마디 던지며, 다시금 얼음이 띄워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다.

 

 “내일 토요일이니까 너네 집에서 자고 가도 되지?”

 

 보은의 집은 지하철로 30분 거리. 술을 충분히 마시고 헤어져도 막차를 탈 수 있는 거리지만, 연화의 집 앞에서 만나 연화의 자취방에서 자고 간다며 엄포를 놓는 것은 ‘오늘은 끝까지 마셔보자.’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언젠 뭐 허락 받고 자러왔어? 짠-!”

 

 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면서 보은의 마음도 한결 편해진다. 그렇게 얼음이 채 녹아내리기도 전에 맥주잔은 빠르게 비워지고, 안주는 계속 가벼워진다.

 

 .

 .

 .

 

 「띠리링-」

 

 도어락 소리가 조용한 새벽 복도에 울려 퍼졌지만, 두 여자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휘청거리며 연화는 침대로 곧장 걸어가고, 보은은 옷을 훌러덩 벗고 샤워를 준비한다. 보은의 주사 아닌 주사는 목욕재계. 평소에도 좋은 향기를 즐기거나, 온천욕을 좋아 하는 보은은 취하면 취할수록 위생에 집착한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술 마시고 샤워하다 뇌진탕으로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했지만, 쉽사리 고쳐지면 그게 어디 주사인가.

 

 “아, 너도 씻어! 우리 고기 먹었다구. 냄새 풀풀 풍기는 머리로 베개 베냐.”

 

 자신만 씻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도 씻기를 강요하는 보은이지만, 연화에게 실효성은 없다. 이미 곯아떨어진 연화는 베개에 고기 냄새만 묻히는 게 아니라, 침까지 흘리고 있다.

 

 “그래. 니 베갠데 내가 어쩌겠냐.”

 

 한 마디 던지고 욕실로 기어 들어간다.

 

 .

 .

 .

 

 굿 모닝- 빠빠빠 빠빠 빠빠빠 빠빠빠-

 

 아침을 울리는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깬 연화의 두통은 더 심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냄새나는 베개를 침대 밑에서 퍼질러져 자고 있는 보은에게 던지며 평소에는 안 내는 신경질을 낸다.

 

 “아, 진짜. 빨리 꺼.”

 

 보은은 어물쩍거리며 두 팔로 머리맡을 휘젓다, 폰을 잡아채 알람을 끈다.

 

 “너 진짜 취향 독특해. 굳이 그 옛날 알람을 다운받아 쓰는 이유가 뭐냐.”

 

 베게 없이 허전한 침대에 다시 누우면서 투덜거리는 연화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보은은 슬쩍 몸을 일으킨다.

 

 “뭐야. 벌써 가게? 더 자고 해장하고 가.”

 

 바닥에 덩그러니 앉아 억지로 잠을 깨고 있는 보은을 연화는 꼬셔보지만 보은에게 그런 달콤한 말은 어림없다.

 

 “아냐. 나 도서관 가 봐야해.”

 

 보은은 누군가 찾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투잡을 뛰는 것도 아닌데 토요일에는 꼭 도서관 개관시간에 맞춰 얼굴도장을 찍는다. 어렸을 적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솔직히 술 마신 다음 날까지 예외는 없다니. 연화는 보은의 대단한 정신력에 감탄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독종.”

 

 「띠리링-」

 

 부지런한 보은은 떠났지만, 보통 사람인 연화는 침대에 벌러덩 다시 드러눕는다. 그러면서 그러니 쟤가 대학을 잘 갔지-하며 생각한다. 그때 팔에 툭 치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연화의 베게다.

 

 ‘베개도 다시 돌려주고. 센스 좋은 녀석.’

 

 연화는 베개를 다시 베고 잠을 청한다. 그때 코를 쿡 찌르는 그것.

 

 “아, 냄새.”

 

 .

 .

 .

 

 술을 진탕 마셔서 몸은 좀 무겁지만, 일주일 만에 도서관으로 향하는 보은의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며 도서관으로 향하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즐겁다.

 

 보은은 책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예전에는 이것저것 사 모았지만, 중학교 3학년 무렵 책이 3천권이 넘어가 집 거실 벽장을 한 가득 채우는 순간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느꼈다. 그때 이후로 가지고 있던 책들을 조금씩 처분하고, 매주 도서관에 나와 책을 빌려 보고 있는 것이다. 보은의 어머니는 그 결정을 무척 경제적인 선택이라며 기뻐했고, 거실 벽은 책장 대신 어머니가 좋아하는 앤티크 액자가 대신 걸리게 되었다.

 

 ‘오랜만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어볼까.’

 

 수십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보은의 가장 사랑하는 단편소설, 「변신」. 보은은 프란츠 카프카 특유의 난해함과 우울감을 사랑한다. 오죽했으면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돌 때, 체코에서 열린 프란츠 카프카 전시회를 세 번이나 방문했을 정도다. 카프카의 소설을 생각하니 갑자기 더욱 발걸음에 활기가 차, 어느새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고 있었다.

 

 ‘「변신」……. 「변신」이…….’

 

 빠르게 책을 훑는 손이 한두 번 찾아본 솜씨가 아니다. 어느새 그녀의 손끝은 딱 한 권 남아있는 프란츠 카프카 단편소설모음집에 다다라있었다.

 

 ‘여기있……. 어?’

 

 보은의 손가락 옆에 까무잡잡하고 두꺼운 손가락이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어느 덩치 크고 검게 태운 운동선수 같은 남자가 책을 향해 손을 뻗고 서 있었다. 얼굴은 날렵하면서도 부드러웠고, 누가 봐도 ‘훤칠하다’는 생각을 할 것 같은 몸매였다.

 

 저번 주부터 나타난 책이랑은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 이 청년은 도서관에서 연신 쭈뼛거리며 서 있거나, 두리번거리며 어설프게 책을 찾거나, 하물며 큰 덩치로 그 가벼운 책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고 떨어트려 우당탕거리는 소리를 내, 보은이 재밌게 생각했던 남자였다.

 

 지금 뻣뻣하게 팔을 뻗은 모습을 보아니, 이제야 읽을 책을 찾았다고 기뻐하며 책을 집으려 했지만 누군가에게 선수를 빼앗겨 보물을 잃고, 망연자실하면서도 멋쩍어하는 모습인 것 같다. 초짜배기 도서관 후배의 책을 쏙 빼서 들고 갈 만큼 보은이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이거, 읽으시게요?”

 

 보은은 먼저 가로챈 카프카 단편소설집을 흔들어 보였다.

 

 “네. 아, 아뇨. 괜찮습니다. 먼저 읽으세요.”

 

 크고 두꺼운 덩치에 맞지 않게 당황한 남자의 표정과, 그 어리숙한 모습에 반대되는 굵직하고 낮은 목소리의 대비가 꽤나 재밌다.

 

 “아니에요. 먼저 빌려가세요.”

 

 보은은 그 남자의 손에 책을 양보하고, 뒤 돌아선다. ‘카프카만 생각하고 도서관에 온 거였는데.’하며 살짝 아쉬워했지만 이내 ‘새로운 책을 빌리면 되니까.’하는 마음으로 걸어간다.

 

 “아, 저기. 진짜 전 괜찮아요. 먼저 집으셨잖아요. 빌려가세요.”

 

 도서관은 정숙해야 한다는 규칙을 아는지 최대한 그 남자는 조용히 목소리를 냈지만, 워낙 굵고 낮은 목소리라 숨길수록 더욱 더 선명하게 들렸다. 보은은 양보를 양보하는 그의 모습에 ‘예의바른 후배군.’이라 생각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저 그 책 수십 번은 더 읽었어요. 외울 정도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빌려가세요. 전 저보다 그 책을 몰랐던 사람이 그 책을 읽어준다면 더 기쁠 것 같아요.”

 

 ‘수십 번’이라고 내뱉은 보은의 말에 살짝 당황한 듯 이리저리 동공이 흔들리더니, 그가 다시 쭈뼛거리며 말을 꺼낸다. 아까보다는 더 큰 소리로.

 

 “저기……. 이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신 이유가 뭔가요?”

 

 카프카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너무나도 많지만, 신입에게 사설까지 붙여가며 머리 아프게 설명했다간, 도망가 다시는 도서관에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보은은 아주 간단명료하게, 또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이유를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울하고 또 기괴해서요. 그렇지만 책을 덮었을 때, 나의 우울과 괴로움들이 모두 그 책에 흡수되어 저는 개운해짐을 느끼거든요.”

 

 난해한 보은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예우를 갖춰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의 눈빛에는 선배에 대한 신뢰감으로 가득하다.

 

 “저, 혹시 죄송한데요. 그런 책 몇 권 더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3초간의 정적. 예상하지 못했던 추천 의뢰가 들어오자 보은은 그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 그 남자도 보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보은은 참 신기함을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난해하고, 우울하며, 또 괴이한 소설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했을 때, 이를 전적으로 이해해주는 이는 없었다. 어른들은 보은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혀를 내둘렀고, 친구들은 뒤에서 음침하다며 뒷담화를 했다. 그래서 교복을 입은 이후로 이런 종류의 소설들을 좋아한다고 남들에게 내비친 적 없었다.

 

 그래서 오늘 처음 만난 이 남자에게 솔직하게 이유를 내뱉어 버렸을 때, 보은은 스스로 적잖이 놀랐다. 술이 덜 깬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없던 용기가 생겼던 걸까? 게다가 그런 보은의 해괴망측한 이유를 신뢰하며 들어주고, 거기다 더 보태 책을 추천해 달라니. 좋은 후배를 만난 것 같아서 살짝 신이 났다.

 

 “카프카 소설은 다 좋아요.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하는 「변신」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거구요, 「단식 광대」나 「유형지에서」도 좋죠. 카프카 말고 다른 작가의 소설을 추천한다면…….”

 

 뚫린 입이라고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주절주절 잘도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꾹 참고 눌러왔던 취향에 대한 열망을 토로하는 것이라 그런지 멈출 수가 없다.

 

 “에른스트 호프만의 「모래사나이」. 주인공 나타나엘이 서서히 파멸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어요. 이 분은 「모래사나이」 말고는 추천드릴 작품이 딱히 없네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 알려지진 않았어요. 음, 또…….”

 

 남자는 도서관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설명과 함께 책을 재빠르게 찾아내는 보은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 많은 책들을 연체하지 않고 제시간에 다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책에 대해 많이 아는 보은이 추천해주는 좋은 책들이니 스스로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남자의 손에는 다섯 권의 책이 들려있었다.

 

 “이렇게 다섯 권 어때요? 이 도서관은 다섯 권까지만 대여 가능해서. 하하…….”

 

 모든 걸 쏟아내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보은이 멋쩍게 웃는다. 뭔가 빨리 도망가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책을 추천해 달랬다고 혼자 신나서 이리저리 남자를 끌고 다녔다니. 보은은 얼른 옆에 있는 아무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말했다.

 

 “아……. 전 이 책 빌리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후다닥 사라지는 보은의 뒷모습을 향해, 남자가 도서관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소리쳐 붙잡는다.

 

 “저기요!”

 

 “……?”

 

 “다음 주에도 추천해 주십시오. 아, 전 ‘초’입니다. ‘한 초’.”

 

 갑자기 통성명을 하는 남자가 당황스럽지만, 상대방이 이름을 밝히면 이쪽도 이름을 말해 주는 것이 예의 아닌가.

 

 “전 이보은입니다. 그럼…….”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사라지는 보은을 보면서 슬며시 웃는 남자의 입꼬리를 끝으로, 그는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되새기고 있었다.

 

 “이보은.”

 

 .

 .

 .

 

 “형, 무슨 책 읽어?”

 

 한 살 어린 초의 동생이 책 읽는 초의 모습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질문했다.

 

 “모래사나이.”

 

 짧고 굵은 초의 답변과 책에 썩 집중해 있는 그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형 원래 책 안 읽잖아.”

 

 “이제부터 읽으려고.”

 

 “왜?”

 

 동생은 갑자기 변한 형이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이유를 묻는다.

 

 “심리 치료 목적.”

 

 나무 냄새가 난다며 싫어해 평소 담 쌓아놓고 살았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하는 형이 걱정된다. 진짜 형의 뇌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닌지? 이럴 땐 그냥 슬쩍 빠져주자는 생각으로 동생은 초의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간다.

 

 나타나엘. 어린 시절 나타나엘은 ‘모래사나이’가 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의 눈을 빼내간다는 이야기를 유모에게 전해 듣고 공포를 느낀다. 그러다 집 안을 슬픔으로 물들이는 늙은 변호사 코펠리우스가 아버지를 만나러 오는 일이 잦아지면 질수록, 나타나엘은 그가 모래사나이임을 확신하게 된다. 결국 실험 폭발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도망가는 코펠리우스를 보며 정신을 잃으며 그 후 모래사나이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얻는다. 어른이 된 후, 나타나엘은 모래사나이를 다시 만나고, 결국 공포감에서 발생한 그의 광기가 그를 잡아먹어, 탑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미쳐가고 파멸해가는 나타나엘의 모습이 소설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모래사나이에 빠져들면 들수록, 초는 자신과 나타나엘이 동일시됨을 느꼈다. 나타나엘이 무서워하는 장면에서는 초도 숨을 죽였으며, 나타나엘이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에서 그의 미간도 움틀거렸다. 그렇게 점점 초는 자신의 이름 대신 나타나엘이라는 글자에 더 반응하게 될 만큼 책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1시간을 읽어내려가다, 나타나엘이 탑에서 떨어지기 전 광기에 휩싸여 외치는 마지막 장면에 다다랐다.

 

 “불의 동그라미여, 돌아라! 불의 동그라미여, 돌아라!”

 

 나타나엘이 자살하기 전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외치는 비명이, 마치 초의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했다.

 

 "헉! "

 

  초는 그 순간 심한 가슴 통증을 느끼고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동공이 풀리고, 중심을 잡지 못해 의자에서 떨어졌다. 갑자기 그에게 불현 듯 떠오르는 장면.

 

 .

 .

 .

 

 「불이야- 불!」

 

 「모두 도망가!」

 

  “……. 여기가 어디지? 뜨거워.”

 

 「내 아들! 초가 없어요. 제발. 안으로 들여보내 줘요, 제발.」

 

 「숲 전체에 불이 붙었어요. 안됩니다! 위험해요!」

 

  “살려주세요.”

 

 .

 .

 .

 

 “형! 형, 괜찮아? 정신 차려봐. 형!”

 

 의자에서 초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동생이 미친 듯이 초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흐릿해진 초의 동공이 점차 초점을 찾기 시작하고, 떨리던 손도 진동을 멈춰간다.

 

 “이 식은 땀 좀 봐. 안 읽던 책을 읽으니 그렇지, 내가 못 살아.”

 

 형의 땀을 손으로 훑으면서 걱정 어린 목소리를 내지만, 초는 동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듣지 못한 채 급히 숨을 고르고 있다.

 

 “괜찮아?”

 

 “어? 어. 이제 됐어. 고마워.”

 

 이제 됐다며 동생을 방 밖으로 내쫓는 손짓을 하자, 동생도 자리를 피해준다. 형으로서 당황하고 정신없는 모습을 동생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느낄 테니까.

 

 “휴-.”

 

 숨 고르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큰 숨을 내몰아 쉰다. 다시 의자에 앉은 초는 예전에 있었던 괴로운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 책을 움켜쥔다. 누구든 이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초가 그 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거나 아니면 최소한 딱딱한 벽으로 던져버릴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은 아주 의외였다.

 

 책 「모래사나이」를 소중하게 가슴으로 끌어와 안는 것이 아닌가.

 

 “정말, 한결 가벼워졌어.”

 

 어느새 초의 굵은 손은 보은이 추천해 준 다른 책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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