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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안의 너
작가 : 녹슨등잔
작품등록일 : 2020.8.18

과거의 악몽이 되는 3인방의 잔재를 떨치지 못한 부식이란 남자가 있다. 우연찮게 박나리라는 미스터리한 남자와 친구가 된 고독한 사람이다. 나리는 신비스런 힘의 소유자로,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객체로서 마주 보게 한다.
나리는 씻지 못한 죄를 저지른 자들로 하여금 낙인을 먹인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는 X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봉자들이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나리가 그들의 소굴로 흘러 들어간 건 순전히 우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지독한 악인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고 부식의 소용돌이 또한 거기서 소멸되어야 한다.

 
7. 살인범
작성일 : 20-08-21 04:43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6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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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신 거울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 있었다. 뼈다귀를 겨우 가릴 정도의 살가죽은 살이 있을 때와는 달리 짙은 누런색 혹은 탁한 색을 띠었다. 틈새가 말라 길어 보이는 손가락은 마치 외계의 것을 보는 듯했다. 불거져 나온 눈 뼈와 쏙 들어간 눈. 힘을 준 것도 아니지만 강렬해져 버린 눈. 그런 날이 올지는 미정이지만 훗날 건강을 찾게 된다면 이 눈도 전처럼 선해질 것이었다.

 부식은 갈비뼈를 쓰다듬었다. 실로폰을 손으로 쓰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었다. 아침이 늘 새로웠다. 자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데 항상 같은 시간이면 잠에서 깼다. 그는 알몸으로 전신 거울에 선 김에 옆으로 돌아 성기를 발기 시켜 보았다. 얼마나 굵은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서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엉덩이와 사타구니의 튼 살을 문질렀다. 날마다 범위를 넓히는 거 같기도 하고 조금은 사라진 거 같기도 했다. 엉덩이는 안대 비슷한 수준이었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없는 것과 흡사했다. 그는 축 늘어난 짝짝이 불알을 덜렁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오줌을 누는 동안 슈퍼맨처럼 양손을 옆구리에 얹고 있었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곧 살인자가 될 운명인데.

 물을 내린 그는 돌아섰다. 물 빠지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몰랐다.

 나는?

 얌전하게 욕실 문을 닫고 부엌으로 가서 하얀 식도를 살폈다. 손잡이부터 스테인리스 재질로 된 일체형이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칼 손잡이와 칼의 뿌리의 미세한 틈에 바퀴벌레 새끼 같은 게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식의 불안감 탓에 일체형을 구입했다.

 생각보다 까다롭게 느껴지는 식도였다. 손잡이가 손잡이 같지 않았다. 오늘은 거기에 테이프를 감아야 할 것이었다. 키가 제일 큰 거로 택했다. 그런 만큼 날씬했다. 흔히 사시미 칼이라고 부르는 회칼처럼 기다랗진 않았다. 그는 칼을 들고 일자로 섰다. 성공할 수 있을까 싶었다. 순간 섹스를 할 수도 있겠는 데와 같은 기분이 되었다. 어떡해서든 오늘 배 속을 단단히 채워야 했다. 평소보다 더 입맛이 없을 수밖에 없었지만.

 “기분 좋은 토요일 나는 살인을 하러 간다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흥얼댔다. 발기된 성기처럼 칼날이 하늘을 향한 채 그의 허벅지 부분에 붙어 있었다. 그는 칼 든 손에 힘을 주었다가 스르륵 풀었다. 성기인 듯 반짝 긴장했던 섬유질이 후루룩 풀려나가는 듯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날아가 버리진 않을까.

 “……나는 살인을 하러 간다네. 좆같은 토요일 나는 살인을…….”

 

 부식은 제자리서 가만있지 못하고 안절부절 했다. 얼마나 초조했으면 나오지도 않는 오줌을 누기 위해 전봇대에 숨어 지퍼만 세 번을 내렸다. 그는 팔을 덜덜 떨면서 연신 마른 입술을 핥았다. 윤재는 방금까지 용문 일행과 있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혼자서 돌아가는 중이랬다. 부식이 있는 장소가 윤재가 사는 원룸 건물이었다.

 릴렉스. 용문에게서 온 문자였다.

 부식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욕을 할 기분도 누군가를 비난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는 필로티 구조로 된 주차장에 숨어 있었다. 주차된 차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꽁꽁 싸매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누가 봐도 남자의 몸이 아니었으니. 살만 찌우면 되었다. 거식증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지만 찬바람을 맞고 있으니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는 차에 달린 블랙박스가 자신을 찍고 있다고 가정했다. 찰칵하고 셔터 음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는 두 다리를 붙인 채 몸을 흔들었다. 품속에 있는 칼도 체온에 맞게 살짝 데워져 있었다. 손잡이에만 테이프를 감았다. 칼날을 신문지로 쌀까 생각하다 그만두었었다.

 그는 기둥 너머에 펼쳐진 밤의 장막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불 꺼진 상가 건물들 위에 촘촘히 박혀 있는 별들. 틀림없이 저기에도 생명체가 살 것이었다. 행성 전체가 물로만 뒤덮여 있고 무식하게 먹어대기만 하는 괴물 물고기가 지배하는 곳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구 같은 곳도 있을 테고 도덕심으로 무장한 평화로운 세상도 있을 것이었다.

 지구와 같은 곳도 있을 것이다. 인간적이라는 말이 너무도 어울리는 썩을 놈의 파란 별. 거기엔 따뜻한 저녁과 차 그리고 마음을 녹이는 포근한 잠자리가 있을 것이었다. 눈을 감고 내일을 그리며 환상 기담 같은 꿈을 꿀 수 있는 편안한 곳…….

 마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국수 가락처럼 그는 몸을 바르르거렸다. 흡사 전기에 맞은 듯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불빛을 발견한 뒤에야 자신이 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문윤재라는 이름이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마치 토사 속의 묘석처럼. 그는 후드 재킷의 지퍼를 쓱 내리며 뒤돌아섰다.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산 건 이때를 위해서였다. 불만 겨우 붙인 채 들었다. 한 번도 빨지 않았으므로 불꽃이 시원치 않았다. 간헐천 같은 연기가 겨우 올라왔다. 그것도 착각일지도 몰랐다. 담배까진 오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입담배를 하면서 흡연자로 위장할 생각이었다. 타액이 묻은 담배는 가져가면 그만이었다. 아무튼 담배 생각을 진작해 집 근처에서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외제 차였다. 중고차일 것이다. 주차하는 데 공은 들이지 않았다. 넓적한 곳에 댔으니. 빈 공간이 많은 건 아무래도 주말이라서 그랬다. 젊은 층이 대거 사는 원룸인 듯했다. 다른 원룸 건물은 이 시간이면 만선이다. 그는 아래턱에 힘을 줘 주걱턱으로 만들면서 칼 손잡이를 꽉 쥐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움직일 생각이었다.

 안 된다. 발소리를 들어야 했다. 건물 안까지 뒤따라 들어가야 했다. 되도록 집 현관 도어락을 만지작거릴 때야 했다. 옆집 사람인 척하면서 지나가다 등부터 찌르는 것이다. 일단 찌르기만 하면 이쪽에 승산이 있었다. 엉키더라도 칼에 함부로 손을 델 수 없는 게 기정사실이다.

 칼을 찌르기 시작하면 두 번째 세 번째까지 순차적이다. 피가 빠지기 시작하면 몽롱해질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하지만 윤재의 주먹에 맞아 나가떨어지면? 부식은 새삼 자신의 몸뚱어리에 자신이 없어졌다. 멀쩡한 상태였다면 설혹 자신이 150센티의 난쟁이라도 할 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몸이라면…….

 담배에 불붙이는 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쓰읍 하고 하 하는 과장된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좆같이 춥네. 무슨 조화가 이래?”

 윤재의 목소리였다. 부식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현실 속에 있으면서도 현실에 없었다는 게 증명되었다.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머릿속에 있던 것이 엉키기 시작했다.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다. 칼을 소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누군가 와서 소지품 검사를 할 거 같았다. 칼을 버렸으면 싶었다. 자신 따위가 사람을 죽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천하의 문윤재를!

 문득 그는 윤재가 뭐로 담배에 불을 붙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습관처럼 입에 성냥을 물고 다니는 윤재였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윤재가 성냥으로 담배에 불을 올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머릿속에 남은 건 여자의 헤어 누드 스티커가 붙은 라이터를 가지고 10대 남자아이처럼 좋아하던 모습이었다.

 “어이?”

 조심스런 목소리였다.

 부식은 느낌이 왔다. 윤재는 자신을 가출 청소년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여자. 잘 곳 없으면 데리고 갈 수 있는 여자애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윤재는 그런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데 도사였다. 늘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대체 그런 재주는 어디서 났는지 어느 가게 누구를 꼭 짚기만 하면 얼마 후 녀석에게 밑구멍을 대 준 여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헤이?”

 아까보다 가까웠다.

 부식의 눈이 커졌다.

 ‘이렇게 되면 할 수밖에 없잖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대체 왜? 대체 왜 살인을 해야 한단 말인가? 용문이나 민수 따위에게 애초에 겁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싫으면 경찰에 고자질을 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비밀이라고 해봐야 그는 곁다리를 놓은 거지 실제로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시체 유기밖에.

 그는 잊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도 시체가 생각났다. 아직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것과는 상관없는…….

 나?

 영서도 생각났다.

 “날 봐.”

 윤재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제 딴엔 귀여워 보일 거라 생각했는가 보았다. 키 185에 나이 서른일곱. 보안관이라 불리는 망나니. 부식은 저런 타입과 함께 있는 여자들을 몹시도 혐오했다. 그만큼 윤재 과와 부식은 어울릴 수 없었다.

 부식은 안절부절못하며 뒤돌아설 타이밍을 잡았다. 이대로 달아나야겠다는 생각이 지배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가도 잡힌다. 저렇게 적극적인 거로 보아 분명히 그랬다. 사달을 내야 했다. 하지만 손엔 담배가 있었다. 버리는 척 호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는 일. 멀리 버린 뒤 칼빵을 놓을 수밖에.

 하지만 해피엔딩은 항상 상상의 전유물이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담그고 난 뒤 다시 돌아와 담배를 챙기는 것보다 난장을 친 후 가져가는 게 나았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쉬이 풀릴 과정이 아니었다. 실제로 만난 윤재의 압박감은 예상했던 그 이상이다. 얼마나 거대해 보이는지 마치 전봇대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이렇게 되면 증거를 남기게 될 공산이 컸다. 상대의 반항은 엄청날 것이다. 피 묻은 발자국이 얼마나 많이 찍힐 것인가. 그보단 손자국이 문제였다. 밤이라 보이지도 않았다. 원룸 건물은 뒤에도 있었다. 거기까지 소리가 들릴 것이었다. 5월이라 창문을 열어 둔 집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주말이면 일찍부터 차가 빼곡 들어차는 그런 곳이었다. 할 일들도 없는 모양이었다. 미리 친구들 좀 사귀어두지. 섹파나.

 부식보다 상대가 더 빨랐다. 윤재의 말이 들리고 나서야 그는 언제부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나 했다. 그리고 그림자, 잔영이 자신을 내리누르고 있음을 뒤늦게 인지했다. 정말 여자인 것처럼 앙증맞게 상대를 올려다보고 있을 것 같은 자신의 얼굴도 상상됐다. 서른다섯인데 말이다.

 “어? 그거 칼 아니야?”

 “이, 이건.”

 남자란 걸 들켰다. 하지만 아직 정체가 발각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줘 볼래? 나 좀 줘봐.”

 칼을 허무하게 뺏겼다. 동시에 그는 윤재의 얼굴에 시선을 뺏겼다. 왼쪽 눈 밑에 있는 마크 때문이었다.

 X.

 “진짜였네. 테이프 붙인 거야? 안 미끌리 게 감았구나? 여자도 아니었네?”

 윤재가 다정하게 말했다.

 부식은 대답을 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이야 이거 담그기 좋겠다. 칼이 길고 왠지 좋아 보여. 독일제인가 일본제가 좋은 거 많다던데. 맞나?”

 윤재는 칼을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부식은 영문도 모른 채 도리질만 했다.

 “미안한데 저리 좀 보고 있을래?”

 윤재가 말했다.

 부식은 몸을 삐죽 놀렸을 뿐 달아날 시늉도 못 했다.

 죽는다. 부식의 심장이 말하고 있었다.

 “저기 좀 봐. 보면 안 되는 게 있어서 그래.”

 부식은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꼭 봐야겠어? 어쩔 수 없네. 그럼 편하게 앉아서 봐. 내가 좋은 거 보여줄 테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말고. 알았지? 진짜 말하면 안 된다?”

 이렇게 무서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부식은 까무러칠 뻔했다. 옛날의 윤재가 아니었다. 이렇게 다정하고 사근사근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이 인조가 설명했던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의 오해였음을 알았다. 윤재가 칼을 들어 자기 몸을 쪼기 시작한 것이다.

 깊게 들어가는 것과 얕게 들어가는 걸 일일이 구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폭이 자세히 보이지도 칼로 쑤시는 소리가 크지도 않는데도. 고통의 진폭도 별로였다. 살짝 찡그리는 것이 다였다. 윤재는 마치 수건으로 몸을 닦듯 팔을 들기도 하고 사타구니를 벌리기도 했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칼이 푹 들어갔다. 온몸을 찔러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목에 일격을 가한 뒤 소리 없이 고꾸라지는 것이다.

 부식은 덜덜 떨면서 서 있었다. 한 인간이 자살하는 과정을 모조리 지켜봤지만 헛것을 본 기분이었다. 눈앞에서 피투성이 시체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지만 꿈같았다. 자신의 몸에 튄 피를 발견한 뒤에야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이유 없이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고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윤재가 죽었다. 도망을 가야 했다. 그게 살길이었다.

 

 근처의 공원 화장실이었다.

 잠들었습니다. 부식이 문자를 넣었다.

 답변은 바로 왔다. 애기 돌보느라 수고했다.

 부식은 스마트폰 화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뻔히 아는 데도 물을 내리고 칸을 나갔다. 사건 현장은 여기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었다. 세면대에는 아직 핏기가 남아 있었다. 다시 물을 틀어 씻어냈다. 몸에 피가 제법 묻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는 아니었다. 물로 닦아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밤이라 다소 쌀쌀하긴 하지만 5월이라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문을 나서면 바로 원룸 건물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으려 했다. 몇 발 가지 못하고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지만. 고요했다. 밤의 적막이 대단했다. 밤이 깊었긴 깊은 모양이었다. 공기가 제법 신산했다. 원룸 건물 쪽이 겨우 보이는 코너 쪽에서 다시 뒤돌아보았지만 역시나 조용했다. 가는 내내 순찰차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평소와 같은 기분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심장에는 얼룩이 남아 있었다. 그게 느껴져서 괴로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죽인 게 아닌 이상 아쉬울 게 없어야 하지만,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일단은 살인범의 허울을 입은 이상에야. 그런 생각에 빠지자 이 인조를 향한 분노가 샘솟았다. 치가 떨릴 정도로. 그들의 대사, 그들의 표정, 그들이 자아낼 분위기들이 상상되었다.

 그는 뛰기로 했다. 도로변을 지나 둥글게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택했다.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져 십자 형태의 비좁은 사차선이 나올 때까지. 대로변이 보이는 길로 빠졌다. 딱히 교란을 주고자 하는 행위는 아니었다. 그러고 싶었으면 이렇게 단순한 경로를 택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냥 매듭을 꼬고 싶었다.

 그만. 그만. 피곤하지 않아?

 영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대답해야 했다.

 “키스만으로 어떻게 내가 오늘 밤을 버티겠어?”

 키스만으론 버티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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