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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강철팔의 늑대 : 속성의 잔재
작가 : 질럿M늑대의칼바람
작품등록일 : 2020.8.3

원한과 원한이 물리고 복수와 복수가 물린다.
16년 전 몬스터대란 당시, 칼자르트는 오른 팔을 잃고 생체병기와 마족기사단을 궤멸시켰다.
하지만 작중 시점, 생체병기와 마족기사단이 원한을 품고 나타나 칼자르트를 노린다. 그역시 복수의 애환을 끊지 못하고 다시 복수 하고자 역추적에 나서는데...
끝나지 않은 질기고 질긴 악연과 원한.
그 끝을 향한 늑대의 일대기그린 다크 판타지.
<어떻게 너희 생체병기가 나타난 건지 묻지 않겠다. 다시 사냥해 주마! 크르르르르르...!!>

 
11화
작성일 : 20-08-20 22:20     조회 : 248     추천 : 1     분량 : 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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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의 시선 끝에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일었다.

 

 -쿠릉! 쿵!

 

  번개가 숲 속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천둥이 공기를 가르고 비바람이 거세져 폭풍을 알렸다.

  하늘에서 검은 덩어리가 소용돌이치며 각각 다섯 갈래로 찢어졌다. 그 속에서 나오는 오오라가 공터에 흘러내려 엘프들 사이를 누볐다.

  위화감이 공간 전체를 휘감았다. 엘프들은 겁먹은 얼굴로 웅성거렸다.

 

  “요란스럽군….”

 

  길건은 굳은 표정으로 검은 덩어리를 지켜보았다.

  소용돌이가 커지고, 엘프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 주문을 외웠다.

  길건 역시 팔로 눈을 가리며 압도감을 직접적으로 느꼈다. 마치 무거운 물체로 내리누르는 듯 한 느낌이다.

 

  “그분을 직접…보…보시게.”

 

  늙은 엘프가 바닥에 엎드려 덜덜 떨었다. 압도적인 기운에 두려움이 한층 강하게 느낀 것이다.

  반면 길건은 황당한 듯 코웃음을 친다. 그의 눈에는 상황이 요란스럽다 못해 난잡했다.

 

  “허…거참….”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던지 길건이 실소를 터뜨렸다. 어떤 곳인지 묻기만 했을 뿐인데 엘프들이 알아서 정체까지 밝혀주니 되레 허탈감이 들었다.

 

  “엘프 녀석들 이렇게 생각이 없었던가?”

 

  상식적으로 침입자가 뭘 원하던 숨기는 게 정상적이지만, 이 상황은 그 틀을 부셔 예상을 뒤엎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잘됐어.”

 

  어차피 라프 숲의 생체병기에 대해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인 제공자가 드러난다 하니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소용돌이에서 강풍이 일었다. 로브가 풍압에 나부끼고, 숲 속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길건은 덩어리를 주시하며 눈매를 움찔거렸다.

 

  “이제 시작인 거 같은데.”

 

 -쾅!!

 

  고막 터질 듯 한 굉음이 터지고 번개가 정령수를 향해 내리꽂혔다. 번뜩이는 빛 가운데 거대한 그림자가 몸을 일으켰다.

  낫의 날 부분이 소용돌이에서 나왔다. 그 주위에 엄청난 전격이 몰아치면서 공간이 흐트러진다. 그 속에 붉은 안광이 일렁이고, 낫자루를 잡은 뼈가 나왔다.

 

 -크르르르르.

 

  낮은 울음이 들리고, 해골이 고개를 저으며 나타났다. 이어 찢긴 날개를 펼치고, 길게 이어진 척추를 꺼냈다.

  해골은 낫을 허공에 휘둘러 검은 기운을 숲 속에 뿌렸다.

 

 -쿠에에에엑!!!

 

  해골의 포효가 천둥과 맞물려 위압감이 사방에 퍼졌다.

  다른 소용돌이에서 푸른 안광의 해골이 똑같이 모습을 드러내, 붉은 안광의 해골과 마주 보았다. 해골은 각자 낫을 들어 서로의 몸을 겨누어 교차시켰다.

  낫이 맞물린 가운데에 번갯불이 내리꽂혀 불꽃을 피웠다.

  길건은 해골들 사이에서 펄럭이는 물체에 눈길을 보냈다. 낫보다도 작은 크기에 빛을 등진 채, 가라앉고 있었다.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시는군.”

 

  넓게 퍼진 검은 드레스가 바람에 펄럭였다. 어두운 복장에 스민 오오라가 하얀 우윳빛 피부를 휘감았다.

  작은 체구를 가진 어느 소녀가 번갯불을 등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붉은 눈을 내리깔며 공터를 노려보았다.

  소녀 등 뒤에서 본 드래곤 두 마리가 튀어나와 허공을 휘젓고 다녔다. 그중 한 마리가 그녀에게 등을 내줬다.

  길건이 눈썹을 움찔거리며 혀를 끌끌 찼다.

 

  “새로운 애가 저런 꼬마였을 줄이야.”

 

  두 해골이 공터에 내려오자, 소녀를 태운 본드래곤이 빠르게 강하했다.

  소녀는 부유하는 상태로 등에서 내렸다. 사뿐히 유리구에 착지하고 발을 가지런히 모았다. 그녀는 길건을 보더니 가볍게 목례했다.

 

  “새로운 손님이 오셨군요.”

 

  마법진에서 검은 기운이 치솟아 엘프들을 삼켰다. 죽음의 기운인 걸 안 길건이 난감한 기색을 보이자 소녀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팔과 다리는 가녀리고, 반쯤 감긴 눈은 초점이 없었다. 한눈에 봐도 연약해 보이는 겉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한테 오는 중압감은 더 강해졌다.

  길건은 바로 소녀의 정체를 간파했다.

 

  “죽음의 정령왕 대리.”

  “잘 아시는군요.”

  “내가 정령을 조금 알지. 재수 없긴 하지만 친구 먹은 놈도 한 놈 있고.”

  “제 이름은 데스페라도스 트리프릭스라고 합니다.”

 

  소녀를 감싼 오오라는 죽음의 향이 났다. 검은 덩어리와 유리구에서 나온 기운과 똑같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매달린 소녀를 데스페라도스가 흡수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법진 발동될 때부터 죽음의 기운 전 방위로 퍼져있었군.”

 

  그는 역겨운지 한쪽 이를 드러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시가를 물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해 주겠나?”

  “그럴 상황이 아니신 것 같은데. 자만이신가요? 아님 무모함이신가요?”

  “미안하지만 둘 다 아니야.”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그래서 대답하기 싫다고?”

  “그렇다면 어쩌실 겁니까?”

  “행동이 달라지겠지.”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으로 들리는군요.”

  “듣는 눈치는 있군.”

  “눈치가 뭔지 모르겠지만 어떤 걸 듣고 싶은지요?”

  “여기 있었던 일 모두.”

 

  시가에 불이 붙었다. 길건은 시가 향을 맡으며 십자가를 쳐다봤다.

  십자가에 매달린 소녀들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몸에 구멍이 난 듯 죽음의 기운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데스페라도스역시 십자가 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반쯤 감긴 눈매에서 하찮게 보는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그녀는 길건을 보며 비소를 품었다.

 

  “너무 많은 걸 알면 다치게 된답니다.”

  “그래서 말하기 싫다?”

  “말이 통하시는 분은 아니신 것 같군요. 협조를 구하신다면 방법부터 달리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협조를 구하는 게 아니지. 내가 원하는 건 여기 생체병기에 엮인 모든 걸 불라는 거다.”

 

  길건은 날개를 치켜세웠다. 칼날만큼이나 매서운 돌기가 드러난다. 그는 손톱을 세우고 싸움태세를 갖췄다.

 

  “어쩔 수 없군요.”

 

  데스페라도스가 한숨을 쉬었다. 옅은 숨소리가 끊기자 정적이 흘렀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길건이 공터를 둘러봤다. 비바람 소리는 어느새 고요함으로 바뀌고, 그의 귓가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공간에 있던 모든 소리가 막혔다. 유일하게 들리는 건 길건, 자신 목소리와 데스페라도스의 목소리뿐이었다.

 

  “죽음을 접할 때는 가장 늦게 꺼지는 감각이 소리를 담당하는 청각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생에서의 이야기.”

 

  길건은 손바닥을 움직였다. 감각은 느껴졌지만 이내 뭔가 알아챈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빗방울이….”

 

  그가 주변을 보자 공간이 초록색으로 물들어 움직임을 멈췄다. 빗방울이 허공에서 멈췄고, 거칠게 몰아치던 바람 역시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상태가 그대로 얼어버린 듯했다.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자체도 그대로 멈춰 버렸다.

  길건이 주위를 이리저리 훑었다.

 

  “이건….”

  “가벼운 장난이지요.”

 

  데스페라도스는 유리구에서 살짝 내려와 길건과 얼굴을 맞댔다. 눈가에 그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이자, 싱긋 웃음을 보였다.

 

  “생의 시간은 가면 죽음의 시간이 오지요. 그와 반대라면 생의 시간이 오는 거지요. 이건 세상의 이치.”

  “그래서?”

  “죽음에 있되 생의 공간에 있는 것이지요. 생의 공간이 멈추면 죽음에 속한 공간이 흘러가지요. 역시 이와 반대라면 생의 공간이 흐르지요.”

  “잡다한 소리 집어치우고 네 능력인가 보군?”

  “이건 빙산의 일각입니다. 당신을 말려 죽이기 위한.”

  “눈물 나게 고맙군. 그런데 난 성질이 급해서 이런 건 못 참거든?”

  “너무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이런 것도 있으니깐요.”

 

  갑자기 길건에게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죽음의 기운이 불처럼 타올라 전신을 두들긴다. 비늘이 떨어지고 살갗이 찢겨나갔다.

 

  “크악!”

 

  예상치도 못한 일격에 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충격으로 인해 몸이 뒤로 밀려 무릎이 접혔다.

  길건은 고개를 들자 그녀에게서 경멸감을 받았다. 벌레 보는 듯 한 눈초리와 비소가 그를 향했다.

 

  “우습군요. 아까의 자만은 다 어디로 간 거죠?”

  “크윽.”

  “죽음의 공간에 갇혀있는 자들은 죽음의 시간에 영향을 받습니다. 전 죽음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존재. 결국, 그대는 제 손아귀 안에 있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예상 못 했겠는데?”

 

  길건은 몸에 붙은 죽음의 기운을 먼지 털 듯 떨쳐냈다. 바닥에 떨어진 기운은 완전히 사그라졌다.

  잠시 동안의 정적이 일더니 그가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럼 내 능력을 보여줄 차례지?”

 

  길건이 손톱을 세우고 바닥을 박차, 데스페라도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해골들이 급히 낫을 휘두르지만 간발의 차로 비꼈다. 잔영은 순식간에 그녀를 스쳐 지나쳤다.

  그는 어느새 바닥을 구르고 그녀의 등 뒤에 있었다. 손을 털어 검은 오오라를 제거하고 몸을 돌렸다.

  이때 검은 그림자가 길건을 덮쳤다.

 

  “엇?!”

 

  본드래곤이었다.

  한 마리가 앞발로 내리치고 다른 한 마리가 꼬리로 후려쳤다.

  짧은 비명이 터졌다.

 

  “큭!”

 

  그는 피할 겨를도 없이 날아가 정령수에 부딪쳤다. 몸이 기둥에 박혔다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으윽.”

 

  해골이 낫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그 끝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검은 폭압이 터졌다.

  금세 정령수 밑동은 죽음의 기운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길건은 맹격을 몸을 굴려 피했지만, 죽음의 기운을 막는 건 역부족이었다. 온몸에 기운이 달라붙어 치솟았다.

  이것을 털어내기도 전에 본드래곤이 보랏빛의 브레스를 뿜었다.

 

  “쉴 틈을 주지를 않는군!”

 

  브레스는 안개와 매우 흡사했다. 죽음의 기운과 닿자마자, 오염된 어둠이 근방에 퍼졌다.

  땅이 썩고 데드 버그 떼가 기어 나와 악취를 쏟아냈다.

  길건은 오염된 어둠을 뜯어내고 날개를 펼쳤다. 그는 데스페라도스를 쏘아봤다.

  그녀는 냉랭한 표정으로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그녀를 직접 노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뺏기다간 죽음의 기운에 중독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빨리 끝내야겠군.”

 

  길건은 무릎을 꿇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이내 본드래곤이 앞발로 덮치자, 높이 도약했다.

  몸이 허공에 뜨자 해골의 자비 없는 낫질이 시작됐다. 가로로 긋는 섬광이 아슬아슬하게 비꼈다. 거의 천운이라 봐도 좋을 정도다.

  그는 바닥에 착지하자 해골과 본드래곤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린다. 직접 몸으로 덤벼보라는 것이다.

  단순한 도발이었지만 의외로 쉽게 먹혔다.

  해골과 본드래곤이 격앙되어 그에게 돌진한 것이다.

 

 -크아아앙!!

 

  검은 기운이 먼지처럼 흩날리고 뒤엉킨 포효가 터졌다. 그 속에서 길건이 고개를 까닥거리며 모습을 보였다.

  기운이 가라앉자, 본드래곤과 해골이 서로 뒤엉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포효는 괴로운 신음으로 바뀌어 그를 향해 질렀다.

  데스페라도스가 믿기 힘든 듯 크게 놀랐다. 시종일관 반쯤 감겼던 눈도 이때만큼은 크게 떴다.

 

  “말도 안 돼.”

  “설마 저것들만 믿고 시 건방 떤 건 아니겠지?”

 

  길건이 비소를 보내자 그녀는 갑자기 차갑게 정색했다.

 

  “좋습니다. 직접 맞서드리지요.”

  “그렇게 나와야지.”

 

  데스페라도스 등 뒤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흡사 블랙홀과 유사했다.

 

  “당신이 죽음을 만질 수 있다 해도 그건 한낱 알량한 능력에 지나지 않지요.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신과 나의….”

 

  데스페라도스가 말이 갑자기 끊겼다.

  그녀를 보던 길건이 어디서 묻은 것인지 죽음의 기운을 털어냈다. 그는 상당히 따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언제까지 나불거릴래?”

 

  데스페라도스가 자신의 옆구리를 만져보았다. 옷이 찢겨 검은 기운이 쏟아진다. 몸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녀는 금세 패닉에 빠져 전의를 잃었다. 자연스럽게 뒷걸음질 쳐보지만 몸은 점점 경직됐다.

  그 모습을 본 길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벌써 끝났군.”

  “어…어떻게?”

  “싸움에서 말 많은 것들은 살아남기가 힘들어 명심해두라고.”

  “당신 정체가 뭡니까?”

  “사정이 좀 복잡하니 그냥 이런 능력이 있다고만 생각해둬.”

 

  데스페라도스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차가운 얼굴에 두려움으로 덧씌워졌다.

 

  “날 어떻게 할 생각이신 거죠?”

  “내가 알고 있던 죽음의 정령왕은 3년 전 이미 소멸했지. 너가 어떻게 죽음의 정령왕 대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너무 미숙해. 그런데 내가 어찌해야 할까?”

  “당신이 날 어떻게 안다고!”

  “질 행동만 골라서 하잖나? 딱 봐도 경험이 없어 보이는데?”

 

  데스페라도스는 길건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전투경험에 나오는 연륜의 차이는 극복하기가 힘들었던 탓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자라온 그와 그녀의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했다.

  길건이 못마땅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강할 줄 알았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그저 앞에 있는 정령은 그저 멘탈 약한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 데스페라도스는 두고 보자는 듯 눈빛에 독기를 품었다.

 

  “뭘 원하는 거죠?”

 

  그녀의 눈빛을 보자 길건은 그제야 맘에 들었는지 실소를 지었다.

 

  “이제 말이 좀 통하는군.”

 

  그는 시가에 불을 붙인다. 연기가 나오는 그대로 정지되는 걸 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일단 생인지 죽음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것부터 풀고 시작하지.”

 

  데스페라도스는 땅바닥을 짚더니 죽음의 기운이 한곳에 뭉쳐 작게 압축되었다. 초록색 배경에 금이 가면서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멈췄던 공간은 유리처럼 깨지고 엄청난 빛이 사방에 쏟아져 내렸다.

  강한 빛에 길건이 눈을 가렸다. 잠시 경직된 순간 바람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꼈다. 빗방울이 촉촉이 내리고 숲 속의 느낌이 와 닿았다.

  빛이 잦아들자 아까와 똑같은 상태로 되어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길건 자신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데스페라도스가 보이지 않자 그는 아쉬운 듯 읊조렸다.

 

  “쳇. 정령년 튀었군.”

 

  그때,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제가 순순히 물러나지만, 다음엔 당신을 이길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길건은 코웃음 치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왠지 한 방 먹은 기분이라 묘한 느낌을 받았다.

  생체병기에 대한 정보는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그는 엎드린 이들을 훑어보더니 날개를 접었다. 숲에 숨은 궁수대 한명 한명씩 쳐다보더니 늙은 엘프에게 말했다.

 

  “엘프 영감. 상황 끝났어.”

 

  늙은 엘프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보…보았는가?”

 

  길건은 유리구를 쏘아보며 이를 깨물었다.

 

  “그래. 그럼 내가 뭘 하려 할지도 알겠군.”

  “뭘 하려는 겐가!”

 

  그가 유리구 쪽으로 향하자 늙은 엘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급한 외침에 로브를 쓴 다른 엘프들도 고개를 들거나 일어섰다.

 

  “설마?!”

 

  상황을 보던 이들에게 불길한 느낌이 전달되어 긴장도가 높아졌다.

 

  “이거지.”

 

 -칼날의 춤사위

 

  짧고 굵은 대답과 함께 날개의 칼날이 유리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섬광이 일면서 칼바람이 몰아친다. 참격이 일어 유리구를 마구잡이로 베었다.

  갈라진 파편이 반짝거리면서 튀었다. 쪼개고 남은 큰 덩어리는 손톱으로 잘게 부쉈다.

  결국, 유리구는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분해되었다. 삽시간에 벌어진 상황에 엘프들은 넋이 나갔다. 그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혹스러운 표정만 드러낼 뿐이었다.

 

  “그…그그…만!!! 안 돼!!”

 

  늙은 엘프가 처절하게 외쳤다. 그의 절규에 그제야 엘프들은 어떤 상황이 터졌는지 파악했다.

 

  “궁수대!!”

 

  늙은 엘프는 급한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곧이어 화살비가 쏟아지면서 다른 엘프가 급히 그를 끌어안았다.

 

  “피하셔야 해요!”

 

  끌려가다시피 안기는 와중에도 늙은 엘프는 길건을 향해 소리쳤다.

 

  “저놈은 붙잡아라! 붙잡아야 한다!!”

 

  길건이 날개로 화살을 후려치면서 십자가를 쳐다보았다. 그사이 로브를 쓴 이들이 그를 포위했다.

 

 -스릉.

 

  쇳소리가 울리고 엘프들이 일제히 로브를 벗어던졌다. 그들에게 뱀처럼 구불거리는 검신과 한 손으로 겨누는 검세가 나왔다.

  엘프가 적을 상대할 때 쓰는 특유의 자세다.

  엘프 검사들은 격한 표정으로 길건을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흐…흐….”

 

  화살비가 잦아들고 길건이 무릎을 꿇었다. 화살을 전부 다 쳐내지 못해 박힌 것만 열댓 개가 넘었다.

 

  “후하….”

 

  그는 심호흡하며 팔뚝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자 손으로 부여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엘프 검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그에게 칼을 들이댔다.

 

  “우리의 신성한 의식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서 유리구까지 박살내다니 그래놓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지?”

  “죽여 보던가.”

  “이놈이!!”

 

  길건이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격분한 엘프 검사가 칼을 높이 짓쳐 들고 내리쳤다.

  그어지는 호선에서 섬짓한 섬광이 발하고 검압이 일었다.

  칼날이 목 근처에 도달하자.

 

  “잠깐!”

 

  다른 엘프의 목소리에 멈췄다.

  목에 칼이 들어왔음에도 길건은 무덤덤했다. 되레 그에게 위압감이 감지한 엘프가 검을 든 손을 떨었다.

  칼날이 살짝 목에 닿자 길건은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

 

  “따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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