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폭군과의 산책
작가 : 호랑이손
작품등록일 : 2020.7.31

재계 1위 제국그룹 신입사원 소요진.
연수중이던 그녀에게 그룹의 유일한 황태자 조대환 총괄사장이 찾아온다.
"자넨 내 전생의 원수야. 소요진씨."
대환의 입에서 나온 뜻 밖의 한 마디.

그러나 그건 모두 사실이었다.

 
폭군과의 산책 15
작성일 : 20-08-20 19:10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7929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빚이 6천이라 했나?”

 

 “아...뭐.”

 

 방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레슬러 건달이 두 눈을 끔뻑였다.

 환의 시선은 쓰러진 요진에게 닿고 있었다.

 

 “흥! 푼돈 가지고 잘도 패악을 부리는 구나. 이놈들.”

 

 대환의 시선이 불량배들에게로 돌아갔다.

 성난 시선에 그제야 정신 든 거구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테이블에 박힌 칼에 손을 내밀었다.

 

 “허! 어서 이런 미친놈이. 아그야, 너 이걸루 면상 한 번 그서줄까나? 엉?”

 

 “카드 되나?”

 

 “뭐?”

 

 대환의 갑작스런 질문에 레슬러가 놀랐다.

 

 “그 빚 6천이라며? 카드 되는가 물었어.”

 

 “허! 카드.”

 

 레슬러가 여전히 알쏭달쏭 표정인 빡빡이를 향해 히죽 거렸다.

 그러곤 절레절레 고갤 흔들곤, 다시 대환을 봤다.

 

 “뭐여? 니 시방 연장 쪼까 보고 쫄아 버린겨? 대신 돈을 갚겠다고라?”

 

 “되는가만 말하게.”

 

 대환은 더러운 똥이라도 보는 것처럼 찡그리며 말했다.

 

 “뭐, 당장 뽑아오면 되시것재? 안 그냐 막둥아?”

 

 “그렇습니다. 형님.”

 

 빡빡이가 답했다.

 

 “들었재? 갚을라만 싸게싸게 갚드라고. 오늘 중으로.”

 

 “그러지.”

 

 대환이 품안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무심히 화려한 플라스틱 조각 하나를 긁어냈다.

 

 “자.”

 

 말로만 듣던 한도 무제한 블랙 플레티넘 카드였다.

 카드를 본 불량배 두 놈도 눈이 휘둥그래 변했다.

 

 “형님! 블랙 플레티넘! 한도 무제한! 와, 진짜!”

 

 “이게 뭔일이다냐? 혹시 그짝...어?”

 

 프로레슬러가 손을 내민 순간.

 대환이 톡! 카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누가 봐도 일부러였다.

 명함 크기의 새까만 플라스틱이 나풀거리며 바닥에 달라붙었다.

 

 "이, 쌍!"

 

 그 행동에 프로레슬러 아이유가 벌컥 성을 냈다.

 

 “이거 잡거시...뭐하는 짓이여? 시방? 죽고 잡냐?”

 

 “카드는 쓰고 나서 버리게. 새로 발급 받을 터이니.”

 

 “뭐시라?”

 

 거구는 어이가 없단 듯 고개를 휘휘 돌리곤, 덥썩 대환의 멱살을 쥐었다.

 대환의 시선이 쓰러진 요진에게로 향해 있을 때였다.

 

 “느 시방 미친겨?”

 

 "허!"

 

 대환이 충격 먹은 얼굴로 변했다.

 감히 태어나 한 번도 당한 적 없는 멱살잡이를 당하다니.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분노대신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허... 차암... 이거 못 놓겠느냐?”

 

 “어. 놓기 싫어. 여튼 댁이 얼마나 돈이 많은 줄 모르나, 솔찬히 궁금해지네.”

 

 “두 번째 경고다. 놓거라.”

 

 “놓긴 뭘 자꾸. 그짝 뭔대? 이 아가씨 기둥서방이야?”

 

 “반은 맞다.”

 

 “반?”

 

 반이란 소리에 프로레슬러 뇌세포가 추리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보통 사람 같으면 진작 얼음장처럼 부들거렸을 터.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 떨기는커녕 오히려 뭔가 부글거리는 것이 느껴질 뿐이다.

 마치 저 밑 지하 깊숙한 곳, 끓고 있는 마그마 같은.

 

 “반이 맞어야? 그럼 서방이여? 기냥 서방?”

 

 “기둥이다.”

 

 “뭐?”

 

 오늘 프로레슬러 아이유는 상대가 나빴다. 그것도 태어나 가장.

 대환이 거구를 똑바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거구를 압도했다.

 

 “응. 기둥. 하늘과 땅과 인간을 잇는 가장 크고 굵은 기둥. 근데 이거 정말 안 놓느냐?”

 

 “뭐라는 겨?”

 

 아이유가 어떻게든 상대의 기를 누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대환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벌이다.”

 

 “뭐?”

 

 “착해지거라.”

 

 [쩍!]

 너무 빨라 아무리 부릅떠도 볼 수 없는 따귀 한 방!

 그 한 방에 키 189, 체중 107 킬로그램의 거구가 벽 끝까지 쭉 날아가 박혔다.

 

 [쿵!]

 

 건물이 휘청 거릴 정도의 충격이 이어졌다.

 머리통이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그랬음에도 한쪽 턱이 함몰된 사내는 입에 거품을 문채 눈알이 돌아가 있었다.

 두터운 다리 사이는 흘러내린 소변으로 축축했다.

 

 “...”

 

 뺨을 후려친 대환의 손이 무심히 왼쪽 이마께로 올라가 있었다.

 죽일 걸 그랬나? 하는 사소한 고민이 담긴 표정으로다가.

 사람들 눈에 보인 건 그게 다였다.

 

 “혀, 형님! 이 새X가!”

 

 문신투성이 빡빡머리가 욕설과 함께 아까 꽂아 둔 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칼 손잡이에 닿을 찰나.

 칼은 어느새 대환의 손에 낚아채어져 번쩍! 치켜 올라가 있었다.

 

 “헉!”

 

 그 뾰족한 칼끝이 빡빡머리 동공에 묻어 상이 맺힐 때 쯤.

 

 [꽝!]

 

 문신 사내의 팔뚝 위로 칼끝이 처박혔다.

 

 “으악!”

 

 팔뚝이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굉음이었다.

 

 “으...어..어어.”

 

 빡빡머리 역시 자기도 모르게 소변을 지르고야 말았다.

 바짓단이 축축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어..어.."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피는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환이 꽂은 칼날은 남자의 살점엔 한 치도 닿지 않은 채, 소매를 꿰곤, 그들이 내밀었던 근로계약서, 그 아래에 있던 김밥 도마와 또 그 아래 스텐레스 테이블까지 한 번에 꿰뚫었기 때문이다.

 

 "훗! 재밌군. 21세기에..."

 

 “이익!”

 

 박제된 빡빡머리가 반사적으로 팔을 잡아 뺐다.

 그러나 워낙 단단히 박힌 탓에 꼼짝하지 않았다.

 그 사이 대환이 스윽 다가왔다.

 

 “늘 궁금했어.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여전히 칼을 쓰는지. 자네 혹시?”

 

 대환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칼로 사람 죽여 봤나?”

 

 “어...어...”

 

 청년은 파랗게 질렸다.

 대환이 코웃음 쳤다.

 

 “못 죽여 봤군. 소심하긴.”

 

 턱!

 

 대환이 빡빡머리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얹었다.

 짧은 머리칼이 까슬거렸다.

 

 “난 많이 죽였지. 아주 많이. 자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 무슨...”

 

 그 기세에 눌린 청년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생존 본능이랄까?

 뭐 그런게 작동한 듯 뱀을 본 개구리처럼 온 몸이 굳은 채, 혀만 간신히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후후. 그때가 그립군.”

 

 “사, 살려줘...”

 

 빡빡머리는 급기야 자기도 모르게 목숨을 빌고 있었다.

 

 "살려줘?"

 

 대환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다.

 

 “살려주세요. 해야지. 살려줘가 아니라... 발칙한 놈.”

 

 문득 예전일이 떠올랐다.

 3천 년 전, 적의 포위망에 둘러 싸였을 때였다. 그때도 이런 말을 했었는데, 하며.

 

 “착해지거라.”

 

 [꽈악!]

 

 대환이 쭉 뻗은 다섯 손가락을 오므렸다.

 풍백만큼은 아니지만, 자갈쯤은 모래로 으스러뜨릴 괴력이 뻗어나갔다.

 

 [투둑! 투둑!]

 

 순식간에 대환의 다섯 손가락이 우두둑 두개골을 파고들었다.

 당하는 입장에선 까만 케이크 같은 두개골을 맨 손으로 쥐어짜는 느낌이었으리라.

 빡빡머리가 사지를 버둥거렸다.

 

 “끄으아악! 살려주세요...! 제바알...사장님! 악! 사장니임... 살려 주우...으..”

 

 [투둑! 투둑! 으드득]

 

 꼬르륵.

 사내는 미처 문장도 완성시키지 못한 채 그대로 혼절했다.

 두개골로 향하는 혈류가 꽉 틀어 막힌 탓이다.

 

 “흠. 머리통이 말랑한 걸 보니, 너 아직 애로구나. 빨리 착해졌는데? 그렇다면 상을 주지.”

 

 대환이 손을 놓았다.

 

 “살려주마. 소원대로.”

 

 두 눈이 뒤로 돌아간 청년이 한 팔을 테이블에 올린 채 쿵! 하며 자빠졌다.

 

 “흠, 됐고.”

 

 대환이 등을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밖에 세워진 건달들의 세단 한 대가 보였다.

 새까만 선팅 덕에 내부는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매의 시력에 필적하는 천손의 눈엔 훤했다.

 뒷좌석에 앉은 사내 하나가 덜덜 떨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흥! 이놈."

 

 대환이 세단의 뒷좌석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 진작 알고 있었다. 항장 요추안타.”

 

 [꽈릉!]

 

 사방이 환해졌다.

 순식간에 또 다시 3천 년 전 대쥬신 황제 환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미소김밥’ 글자가 붙은 유리창 앞에서 환이 중얼거렸다.

 

 “네 녀석의 항복소식에 난 너의 가족 모두와 네 전생, 전전생, 그 전전생. 모조리 찾아내 목을 베었어.”

 

 환이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훗! 그런데 이번 생엔 고작 이런 조무래기 두목이라니. 가소롭구나.”

 

 

 *

 

 [찰칵! 찰칵!]

 

 미소김밥에서 족히 수십 미턴 떨어진 시민 숲 공원.

 공원 속 수풀 가운데 기다란 대포 렌즈가 반사되고 있었다.

 렌즈의 반대편, 우의 차림 사내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낮에 대환에게 쓴소리 들은 기자였다.

 그의 카메라 화면엔 김밥집에 서 있는 대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런 것도 기자 회견이라고? 건방진 자식!"

 

 기자는 조금 전 찍은 파일들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대환이 자신보다 2배는 두꺼운 체격의 사내를 후려갈기는 장면이 드러났다.

 

 "됐어! 넌 이제 죽었어."

 

 기자의 얼굴에 초승달 미소가 걸렸다.

 

 “돈 좀 있다고 사람을 패? 조대환, 너 잘 걸렸어.”

 

 기자가 분노와 기쁨이 섞인 중얼거림을 이어나갔다.

 

 *

 

 잠시 유리밖을 향하던 대환의 시선이 다시 가게 안으로 향했다.

 바닥에 얌전히 무너진 요진이 보였다.

 

 “쯧쯧. 모자란 것. 쯧쯧.”

 

 대환이 성큼성큼 다가가 그대로 덜렁 들어 올렸다.

 프로필 상 신장 167에 체중 57인 그녀였지만, 대환이 들었을 땐 깃털처럼 가볍게 들렸다.

 한 때 고대 임금에서 지금은 재벌 후계자로 환생한 남자가 여자를 가만히 내려 보았다.

 그러곤 슬며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이그! 이 고약한 역적의 환생. 죽일 수도 없고.”

 

 가볍게 콩! 쥐어박았다.

 요진의 고개가 힘없이 푹 수그러들었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파소를 호출했다.

 뚜루룩 신호가 날아갔다.

 

 - 예. 폐하. 찾으셨습니까?

 

 “와서 뒷정리 좀 하거라.”

 

 - 금방 가겠사옵니다.

 

 전직 제국 대장군이 답했다.

 

 “카드를 놓고 가니, 이 아이의 궁핍도 해결하거라. 예나 지금이나 천하게 태어나 궁핍하게 사는 건 똑같구나.”

 

 - 그리하겠사옵니다. 폐하.

 

 전화를 끊은 대환이 잠시 홀을 둘러봤다.

 그야말로 엉망진창.

 파소와 그가 이끄는 비서실 사람들이 고생 좀 할 것이다.

 

 “쯧쯧. 천박한 것들 같으니라고.”

 

 밖은 어느 새 비가 잦아들었다.

 급작스런 폭우에 고장 난 가로등이 나목인양 황량하게 서 있었다.

 요진을 안은 채 나무로 된 계단을 지나, 도로에 나온 대환은 까맣게 창을 올린 세단 앞에 우뚝 섰다.

 불량배들이 타고 온 차였다.

 

 “요추안타.”

 

 대환이 말했다.

 안에선 아무 인기척도 없다.

 그래봤자, 대환에겐 다 보였다.

 

 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 거구의 사내가.

 

 “이번 생엔 조용히 살거라. 알겠느냐?”

 

 세단 안.

 푹신한 뒷좌석에 있던 국선이파 두목 김국선이 파들파들 떨었다.

 까맣게 썬팅 된 차창 밖에 하얀 용포 차림의 환이 서 있기 때문이었다.

 

 “며, 명심하겠사옵니다...폐, 폐하!”

 

 국선이 답했다.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왜 밖에 선 남자가 고대 황제 복장인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본능이란 말 밖에. 몸속 깊이 각인된 생존 본능이었다.

 

 “허, 허억!”

 

 갑자기 국선의 머릿속으로 전생의 일들이 스쳤다.

 목구멍에 화살을 정통으로 맞은 채 죽어가던 몽골 기마 장수.

 바다에 빠진 채 조선 수군 낫에 목이 잘리는 왜군 장수.

 미얀마 정글 나뭇가지 트랩에 걸려 꼼짝 못하던 일본군 장교.

 

 "어..어째서..갑자기?"

 

 그 모든 죽음은 자신의 얼굴이었고, 그 앞엔 지금 밖에 보이는 한 사내가 있었다.

 성벽 위에서 활을 든 고려군 장수.

 커다란 거북선을 등 뒤로 목이 잘리는 광경을 지켜보던 조선 수군 군관.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눈 독립군 특수부대 장교.

 그 모든 시대, 모든 배경의 중심에 있던 남자.

 바로 밖에 있는 제국 황제 환이다.

 

 “내 생각엔 네 놈 죄는 아직 충분히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차창 밖의 황제 환이 조용히 말했다.

 어느 새 깔끔한 수트 차림의 대환으로 돌아와 있었다.

 말을 마친 대환이 요진과 함께 멀어졌다.

 

 “어, 어째서?”

 

 국선이 부들거리는 양 손을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한 건 그의 머리는 잊었지만, 그의 몸은 기억하고 있단 사실이었다.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대환은 기절한 여인을 가볍게 안은 채 멀어지고 있었다.

 

 *

 

 같은 시각.

 파소는 서울 서 벗어난 한적한 외곽 도로에 서 있었다.

 아스팔트에서 비포장 도로로 이어지는 길목엔 태권도장 승합차 하나가 옆구리를 하늘로 향한 채 자빠져 있었다.

 활짝 갈라진 차 옆구리 사이로 새까맣게 그을린 사내들이 보였다.

 그들을 뒤로 한 채 미소김밥 대표 전소운 여사가 옷가질 탈탈 털며 걸어 나왔다.

 

 “에이그, 미친 것들. 돈도 안 주고.”

 

 승용차를 등진 파소가 그런 소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저벅저벅]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졌다.

 파소가 뚫어져라 소운을 봤으나, 소운은 그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날씨는 또 왜 이래? 비가 왔다가 안 왔다가.”

 

 “흐음.”

 

 소운이 그대로 지나치자, 파소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말을 붙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때였다.

 

 “으...거기..서! 아줌마!”

 

 넘어진 봉고 차 안에서 청년 하나가 기어 나왔다.

 청년은 정상이 아니었다.

 사고 때문인 듯 이마 주변은 찢어져 선혈이 낭자했고, 걸음걸이는 술 취한 듯 비틀거렸다.

 그럼에도 한 손엔 하얗게 날 선 칼이 들려 있었다.

 

 “서라고...! 썅!”

 

 소운이 우뚝 멈췄다.

 그러곤 뒤로 돌아봤다.

 

 “얘, 너 그럼 못써! 음식을 시켰으면 돈을 내야지! 왜 납치를 해? 그렇게 돈 내기 싫었니?”

 

 자세히 보니, 처음 김밥을 주문한 태권도장 사범이었다.

 팔뚝에 있던 색칠 안 된 용은 피딱지 앉은 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줌마..너..너...가면..안 돼.”

 

 “왜?”

 

 “나...조직으로... 돌아갈 수 없단 말이닷!”

 

 마지막 말과 함께 청년이 소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음.”

 

 파소는 도와줄까 하다가 그저 눈으로만 좆았다.

 

 “하이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소운이 그런 파소를 향해 못마땅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나야.”

 

 [쩍!]

 

 눈 깜짝 할 사이 굵은 벼락 한 줄이 내리꽂혔다.

 벼락은 화려했던 조폭 복귀를 꿈꾸던 청년의 정수리를 뚫고 지나갔다.

 

 “커억”

 

 드러난 피부가 새까맣게 변했다.

 조금 더 강한 벼락이었다면 머리통쯤 수박처럼 쪼개졌을 것이었다.

 

 털썩!

 청년이 쓰러졌다.

 쓰러진 주위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팔뚝에 새겨진 문신이 민둥민둥한 백룡에서 적룡을 거쳐 마지막으로 흑룡이 됐다.

 살 익는 냄새가 역겨웠다.

 

 파소가 손으로 연기를 휘휘 저으며 다가왔다.

 

 “제국 대장군 을미파소, 감히 쥬신의 어른이신 우사공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옵니다. 상공.”

 

 다가온 파소가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곤, 깊이 고개 숙였다.

 

 “못 본 척 해줄 순 없겠어? 다신 왕검과 엮이고 싶지 않은데.”

 

 요진의 모친 소운이 씁쓸히 말했다.

 

 [꽈릉!]

 

 뒤늦은 천둥이 전직 대장군 파소와 전직 제국 재상이자 미소김밥 사장 전소운 여사를 감쌌다.

 

 “왕검을 내외하는 3사라뇨. 있을 수 없사옵니다.”

 

 파소가 소운을 보며 답했다.

 

 "그럴 순 없단 말이네."

 

 둘의 시선이 날카롭게 교차했다.

 

 “넌 질리지도 않니? 그 철딱서니 없는 임금? 그렇게 모셔놓고도.”

 

 “......”

 

 파소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요의 기억을 지웠더군요. 검은 왜 감추시려는 겁니까?”

 

 파소가 물었다.

 그러자 우르릉! 먼 하늘에 전광이 얼룩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알고 있는 건 자네 뿐이지?”

 

 소운이 오른손이 지지직! 전기로 끓어올랐다.

 파소가 스르륵 굽혔던 무릎을 세웠다.

 

 "아마도..."

 

 “난 환 왕검 걔랑 맞지 않아. 3천 년 전이나, 환생한 후나. 앞으로도 계속.”

 

 "왕검께서 지금 요를 데리고 계십니다."

 

 "너 지금 굉장히 큰 실수 하는 거다. 파소야."

 

 [찌지직!]

 

 소운의 손에서 전기로 된 빛줄기 가락이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빛의 가락은 어른 팔 길이 쯤에서 멈추더니, 빛을 잃었다.

 하나의 검이 만들어졌다.

 

 "글쎄요. 하늘이 금한 천손의 얼자를 낳고, 버리신 분이 하실 말씀이 아닌 듯 한데..."

 

 "난 네가 인간의 삶을 택할 줄 알았어!"

 

 [촥!]

 

 소운이 검을 뻗었다.

 적지 않은 거리였으나, 하늘의 검법 답게 검은 공간을 무시한 채 파소의 목줄기로 향했다.

 

 불과 수 센티.

 파소가 검끝을 가볍게 피했다.

 그러나 검 끝은 연달아 비내리듯 수십 가닥으로 변해 남자를 쫓았다.

 

 [촤촤촤촥!]

 

 남자는 바닥에 그림자만 남긴 채 모든 칼 끝을 비꼈다.

 무예에선 하늘과 땅 그 어느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전직 쥬신 대장군 을미파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스텝이 이어졌다.

 

 "그만 하시죠. 어머님."

 

 파소는 조금의 호흡도 흩어지지 않은 채, 소운에게 말했다.

 

 "넌 그때 죽었어야 했어!"

 

 소운이 검을 비껴 그으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파소가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오른손 주먹으로 검의 면을 후려쳤다.

 시간으로 치면 찰나.

 10의 마이너스 18승의 1초에 해당하는 시간.

 소운의 검이 쪼개졌다.

 

 "!"

 

 그녀가 놀랄 사이도 없이, 검이 쪼개진 틈으로 수만가닥 벼락이 뻗어나갔다.

 갑작스런 전기 폭풍이 몰아닥쳐, 그 일대 수만 가호가 일시 정전에 빠져들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5 폭군과의 산책 15 2020 / 8 / 20 201 0 7929   
14 폭군과의 산책 14 2020 / 8 / 19 189 0 6544   
13 폭군과의 산책 13 2020 / 8 / 18 193 0 5258   
12 폭군과의 산책 12 2020 / 8 / 15 186 0 6053   
11 폭군과의 산책 11 2020 / 8 / 12 200 0 6340   
10 폭군과의 산책 10 2020 / 8 / 10 201 0 5689   
9 폭군과의 산책 09 2020 / 8 / 9 196 0 6897   
8 폭군과의 산책 08 2020 / 8 / 8 192 0 6043   
7 폭군과의 산책 07 2020 / 8 / 7 197 0 6646   
6 폭군과의 산책 06 2020 / 8 / 6 203 0 7330   
5 폭군과의 산책 05 2020 / 8 / 5 185 0 6718   
4 폭군과의 산책 04 2020 / 8 / 4 189 0 6849   
3 폭군과의 산책 03 2020 / 8 / 2 208 0 5403   
2 폭군과의 산책 02 2020 / 8 / 1 194 0 7864   
1 폭군과의 산책 01 2020 / 7 / 31 335 0 759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