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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 혼자 목이 없다
작가 : 알레그로
작품등록일 : 2020.8.1

목 없는 기사로 되살아난 수도사 파울의 이야기.

 
8화
작성일 : 20-08-20 15:48     조회 : 206     추천 : 0     분량 : 5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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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팀벅이 뒷짐을 지며 방안을 거닐었다.

 

  “제국 쪽이 아니라면 왕가에서 부리는 놈일 텐데, 너를 이곳에 심어 눈엣가시인 우리를 쓸어버릴 생각인가?”

 

  팀벅의 내 전신을 훑어보았다. 나의 표정과 감정을 헤아릴 수 없으니 답답한 것이다. 얼굴이 없으니 거짓을 숨기기 쉬운 장점이 있지만,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단점도 있었다.

 

  “이 자와 싸우다 자칫하면 죽을 뻔했어. 내가 왕국의 내통자라면 당연히 녹스본의 장교와는 알고 지냈겠지.”

 

  “내통자는 극비로 다루는 게 일반적이지. 직접 사주한 고위 관료가 아니면 당신을 모를 거야. 관료가 아닌, 왕이 친히 명령했을 수도 있고.”

 

  녹스본의 22대 왕은 나라를 다스리기에 아직 어렸다. 가장 영향력이 높은 대신이 국정에 깊게 관여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선택 하나하나가 왕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의 출신 가문을 알아야 했다. 섭정하는 대신의 가문이 현재 녹스본에서 득세하는 가문일 테니까.

 

  쉘터 가문이었으면 좋겠지만, 내가 원정길을 떠나기 전부터 쉘터의 그림자는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쉘터 가문 출신의 수도사가 점점 늘어나는 현실이 가문의 힘이 반감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수도원에 보내는 이유는 자신의 집안이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폴이 쉘터로 돌아가도록 이끌어야 했다. 쉘터와 접촉할 수 있는 매개는 지금 내게 폴뿐이었다. 가드의 성스러운 의무로 내 목적을 포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폴이 팀벅의 말을 곰곰이 듣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심할 만해. 그 어떤 사제가 수도원장을 죽이려고 들겠어?”

 

  폴의 마음도 돌아섰다. 내 입지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내가 수도사가 아닌 것은 인정하겠다. 암브로스를 죽이려 한 시점부터 배교의 길을 걷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내 복수는 개인적일 뿐, 일말의 유착도 없어.”

 

  “개인적인 복수라 해도 더는 눈 뜨고 볼 수가 없군. 너의 행동이 누구의 이익이 되는 줄 모르나 본데. 암브로스가 죽으면 좋아할 곳은 쉘터 수도원의 고위직들뿐이야.”

 

  두 수도원의 반목은 깊었지만, 한쪽이 완전히 무너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브리즈 수도원이 무너지면 쉘터 수도원이 서쪽과 남쪽의 질서에도 힘을 들여야 했다.

 

  메이텔의 도리깨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내려다보는 폴. 가드를 죽여서 빼앗은 거라고 짐작하는 듯했다.

 

  “도리깨는 반납하도록 하지. 생각해보니 이걸 들 자격이 없군.”

 

  폴에게 도리깨를 건네주었다. 메이텔의 하인에게서 받은 것이지, 메이텔이 준 무기가 아니었다. 죽은 메이텔은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폴은 팀벅에게 도리깨를 넘겼다. 폴은 상황 판단이 빨랐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팀벅을 아군으로 둬야 할 타이밍을 포착해낸 것이다.

 

  폴의 부하들이 기다렸다는 듯 떼거지로 올라와 나를 포위했다.

 

  “속박은 통하지 않겠지. 방심했다가 된통 당했으니까……. 대신 너에게 딱 어울리는 감옥이 있거든.”

 

  ◆

 

  우듬지에 올라와서 지상을 내려다보니, 발밑이 까마득했다. 활공하는 새의 뒷골이 보일 때마다 등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이 나무는 몇 년을 살았을까. 녹스본에 탄틸루스의 창이 유입되기 이전, 왕국이 세워지기도 전의 과거일 것이다. 나는 지금 억겁의 시간을 체감하는 중이다. 심장이 떨리고 다리가 저렸다.

 

  북쪽에 쉘터 성의 뾰족한 지붕이 보였다. 그 밑의 성채는 보이지 않았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지만 나는 나무 위에 갇혔다.

 

  나뭇가지로 촘촘히 엮은 바닥과 울타리. 건축 솜씨가 사람이 했다고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 나무를 묶는 밧줄이나 고정하는 나사조차 없었다. 나무의 하중과 배열만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레몽을 지키지 못했단 죄책감이 무거워졌다. 전생의 죄책감을 떠안고, 현생의 죄책감까지 끌어안기가 버거웠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희망이 희미해졌다.

 

  강해지지 않으면 후회가 늘어난다. 나에 대한 실망감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진다. 성유물을 소유하면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유물을 쫓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놓치게 된다.

 

  “까악! 깍!”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감옥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새들 가운데, 유독 검은 녀석이 보였다. 까마귀였다. 늪지대에서 빌린 폴의 전령.

 

  폴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입구를 못 찾고 있었다. 줄기에 부리를 쪼아댔다. 하지만 이렇게 단단한 나무껍질은 코뿔소가 들이받아도 얕은 흠집만 날 것이다.

 

  나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손뼉을 쳤다. 주변의 새들이 도망쳤지만, 까마귀가 나를 발견했다. 얼굴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니 잊지 않았을 것이다.

 

  까마귀가 감옥 위로 날아올랐다. 위에서 보았을 때는 작아 보였는데, 폴의 까마귀보다 훨씬 몸집이 컸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독수리와 맞먹었다.

 

  까마귀의 발에서 떨어진 것은, 돌돌 말린 전령과 두 자루의 칼이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한 까마귀는 주저 없이 자신이 날아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답장은 받지 않겠단 뜻이었다.

 

  ‘성유물은 우리가 회수했고, 브리즈 수도원은 무너졌다. 너의 역할은 이것으로 끝이다. 쉘터 수도원에 성유물을 안치할 생각이니 수도사의 의무는 저버려도 된다.’

 

  전령의 내용은 이것이 전부였다. 수도사라는 직분의 사면. 그리고 두 자루의 칼. 이 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헤아리고 짐작할수록 그 해석은 절망적이었다.

 

  폴이 이 전령을 받았다면 두 자루의 칼로 무엇을 했을까. 자신의 삶에 허무함을 느끼며 스스로 목을 그었을까. 아니면 제멋대로 전령을 보낸 나를 원망하며 칼끝을 내게 겨누었을까.

 

  어떤 의미든지 간에 암브로스의 의중은 확실했다. 브리즈의 사제들이 더는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배신감이 너무나도 커진 나머지 헛웃음이 나왔다.

 

  누군가 감옥으로 올라왔다. 거머리에게 끌려온 폴이었다. 아무리 팀벅의 편에 서려 해도 사제 출신이라는 딱지는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거머리들이 혐오하는 신의 족속들.

 

  “또 보는군.”

 

  “왜 네가 내 전령을 읽고 있지?”

 

  폴이 내 손에 들린 전령을 낚아채 갔다. 그의 얼굴이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보았다. 얼굴이 없이 지내다 보니, 사람의 얼굴이 점점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감정이 팔레트에 담긴 알록달록한 물감이라면, 사람의 얼굴은 물감이 뒤섞여 혼재하는 한 폭의 유화였다. 실제 유화와의 차이는 시시각각 색감이 바뀐다는 점.

 

  폴의 얼굴에 분노와 수치심, 공허감이 뒤섞이고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맺히는 내면의 굴곡.

 

  폴은 흥분을 억눌렀다. 침착한 표정이지만 흰자위에 핏줄이 곤두섰다.

 

  “무엇을 적어 보냈던 거지?”

 

  “키퍼인 네가 성유물을 되찾았는데, 가드인 내게 인질로 잡혀 있다고.”

 

  “그런 거짓말을 그가 믿는다고 생각해?”

 

  “맞아. 너무 뻔한 거짓말이지. 우리 같은 버러지가 성유물을 되찾을 가능성도 없거니와, 인질이 될 만한 가치는 더욱이나 없으니까.”

 

  폴이 칼을 주워들어 내게 들이밀었다. 암브로스가 준 칼의 용도는 자결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 어떤 결속보다 단단했던 키퍼와 가드의 유대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서로의 살을 찢어발길 기회를 마지막 선물로 준 것이다.

 

  “너나 나나 이제 수도사가 아니야. 내가 너의 심장을 찔러도 단죄할 신도, 용서할 신도 없어.”

 

  폴은 곧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분한 마음을 추스르려면 목 없는 나라도 베어야 할 것이다.

 

  “혹독한 자유를 얻었군.”

 

  앉은 채로 폴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렸다. 폴이 손에서 칼을 놓치며 넘어졌고, 그 틈을 타서 나도 다른 칼을 집어 들었다.

 

  폴은 화상 입은 팔을 쓸 수 없었다. 외팔로 몸을 지탱해 일으켰다.

 

  “칼은 처음 들었을 테고 한쪽 팔은 엉망. 정말 나와 칼을 맞댈 생각인가?”

 

  “닥쳐! 내가 키퍼만 되지 않았다면 네 놈이 목이 열 개라도 모자라.”

 

  폴이 전진하며 칼을 휘둘렀다. 형편없는 종 베기였다. 옆으로 피해 칼자루로 폴의 옆구리를 쳤다. 폴이 종잇장처럼 쓰러졌다. 폴은 숨을 몰아쉬고 다시 일어섰다.

 

  이번엔 대각선 베기. 양손으로도 버거웠을 칼을 한 손으로 휘두르니, 예상대로 자세가 많이 흐트러졌다. 폴은 자신의 공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만하는 게 어때.”

 

  “웃기지 마!”

 

  예상하지 못했다. 폴이 자신의 칼을 내게 던졌다. 날아오는 칼을 쳐냈지만, 돌진하는 폴은 막지 못했다. 칼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내 몸이 공중에 떴다.

 

  다행히 떨어지는 중에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두 팔로 체중을 버텼다. 떨어지는 칼이 나뭇가지에 부딪히는 소리가 멀어졌지만, 좀처럼 끝날 기미가 없었다.

 

  폴은 우듬지 위에 외팔로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신음을 내며 자신의 몸을 끌어올렸다. 그가 우듬지에서 나를 내려다보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이 이동했다.

 

  등 뒤를 볼 수가 없었다. 함성이 조그맣게 들리고 있었다. 무언가 오고 있었다.

 

  폴은 좋지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나는 간신히 몸을 나뭇가지 위로 끌어올렸다.

 

  숲을 내려다보았다. 소리의 근원지는 북쪽이었다. 무언가가 날아와 내 텅 빈 머리를 통과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껍질에 박힌 것은 불화살이었다.

 

  화살을 빼내 발로 밟아 불꽃을 꺼뜨렸다. 습격이었다. 어떤 군대인지 몰라도 활 솜씨가 좋은 궁수가 있었다. 머리가 달려 있었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누가 보낸 군대인지 몰라도, 혈마법사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목격자를 제거하지 못한 실수를 만회하려는 것이다. 파괴한 오브제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최악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을까.

 

  나를 포함한 목격자들의 몰살도 막아야 하지만, 까마귀의 두개골을 사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것이 유일한 증거물이었다. 혈마법사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나뭇가지를 잡고 나무를 올랐다. 고소의 공포를 억누르고 상공만 올려다보았다. 날아오는 화살도 두려웠지만 일단 두 발을 디딜 곳을 찾아야 했다.

 

  우듬지에 간신히 도착했다. 닫혀 있던 문이 열려 있었고, 폴은 감옥을 빠져나가고 없었다. 예기치 못한 습격에 모든 거머리가 전투태세를 갖춘 모양이다. 폴이 두고 간 칼을 집어 들었다.

 

  감옥문을 나가려던 찰나, 등 뒤로 짙은 그림자가 느껴졌다. 먹구름인 줄 알았지만, 암운의 그림자보다 어두웠다.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했다. 암브로스의 까마귀처럼 단순히 몸집이 큰 까마귀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종의 까마귀였다. 두 눈이 숯처럼 검었다.

 

  까마귀는 부리를 다물고 날 노려보았다. ‘울지 않는 까마귀’를 수도원의 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 이름은 ‘노크록’.

 

  모든 까마귀는 죽은 노크록의 파편이며, 까마귀들이 영원히 우는 이유는 단말마의 비명이 분산되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 숲은 녹스본의 과거를 품고 있었다. 가까운 과거와 머나먼 과거. 어쩌면 생각보다 일찍 과거의 진실에 다가설지도 모른다.

 

  나는 칼을 뒤로 숨기고 손을 내밀었다. 내가 밟고 있는 건축물은 감옥이 아니었다. 노크록의 둥지였던 것이다.

 

  처음 보는 짐승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까마귀를 기르면 나중에 눈을 파 먹힐 거라는 속설이 있지만, 까마귀가 파먹을 눈은 내게 없었다.

 

  노크록이 양쪽 날개를 활짝 폈다. 검은 깃털이 촘촘히 수놓은 날갯죽지가 둥지를 빈틈없이 감쌌다. 나는 완전한 어둠 속에 있었다.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노크록의 푸른 눈동자뿐이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격일로 꾸준히 업로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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