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에르노
작품등록일 : 2016.10.5

누군가 그를 미친듯이 원한다! 영문도 모른 채 쫒기는 소년, 그는 어째서 납치당하는가?
벗어날수록 옭아매오는 그물, 그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치명적인 음모가 정체를 드러낸다!

강대한 라니냐 제국의 볼모가 되어버린 도림 왕국의 태자, 상냥하고 친절하나 실은 비성숙한 자아에 고통받는 그는 제국을 적대하는 식민지 독립파에 의해 납치당하고 만다. 탈출을 시도하고 흉악한 적들과 추격전을 벌이며 이색적인 해적과 조우한다. 스릴 넘치는 모험과 풋풋한 사랑을 통해 자아의 성장을 일궈나가는 다크판타지.



표지는 핀터레스트 펌입니다.

 
16.고양이 울음소리
작성일 : 16-10-19 22:22     조회 : 647     추천 : 0     분량 : 1401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바다가 망자의 혼을 거둘 수 없어 성이 난 사신처럼 분노를 토해냈다. 이리저리 휘고, 꺾이고, 솟아오르는 바다는 마치 그 자체가 하나의 크라켄이었다. 파도가 처얼써억, 하며 배 때리는 소리가 울린다. 먹구름은 열성적인 제사장이 팔을 흔들 듯 하늘을 뒤흔들며 비를 내려주어 요란스러움을 더했다. 타닥타닥 비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비로 흠뻑 젖어버린 선체는 달빛에 비춰져 그 윤곽선만이 섬뜩하게 빛났다. 이도는 타 앞 쪽에 있는 난간을 붙잡은 채 튕겨나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못 나와 있겠네.”

 

  안에만 입는 게 답답해서 나왔다가 비만 덮어썼다. 이도는 타 옆의 계단을 내려간 뒤 선장실로 들어갔다. 아리아와 돌격대장이 책상을 둘러싼 채 얘기 중이었다. 적이 오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것이다. 책상 위에는 아리아의 상자식 전장 소형권총이 놓여있었다. 고풍스러운 무늬로 장식되어있다.

 

  아리아는 이도를 보고 반겼다.

 

  “어때, 밖은?”

 

  “도저히 잦아들 기미가 안 보여. 한치 앞도 잘 안 보이고. 놈들이 우릴 추격하진 못 할 것 같아.”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어두워보인다.

 

  “평소라면 그렇겠지.”

 

  “무슨 말이야?”

 

  “신기술이 변수야. 독립파나 무역협회에 소속된 마법연구자들이 어떤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지 우린 몰라. 물론 그들도 우리의 레시피를 모르지. 하지만 물밑 소문에 따르면 놈들은 비에도 꺼지지 않는 발화물질 레시피를 얻은 것 같아. 게다가 지속성도 엄청나다 하더라고. 만일 그걸 이용한다면 충분히 밤에도 우릴 추격할 수 있어. 밝기도 엄청 나대.”

 

  이도는 의자에 앉으며 혀를 내둘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목 아래 동화세계에 들어온 기분인데.”

 

  “옛날 고대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문명을 본다면 마법세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맞는 말이야.”

 

  이도는 물었다.

 

  “아리아,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이도는 쭉 의문을 품고 있었다. 어째서 식민지 독립파는 그렇게나 독립을 열망하는 걸까? 제국이 딱히 그들을 박대하는 것도 아니다. 박대 받는 이들은 오히려 원주민이지 이주민들이 아니다. 독립 이유 중에 관세도 핑계도, 자생(사실 자생은 원주민이 아닌가?)한 사회도 핑계라면 이유는 오로지 밀수의 자유 때문인가? 그게 그렇게 소중한 것일까?

 

  “왜 독립파는 황제의 대자를 납치할 정도로 독립을 열망하는 거야? 그냥 서로서로 좋게 양보할 순 없는 거야?”

 

  아리아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 표면적인 이유는 밀수에 방해된다는 거긴 하지. 하지만 더 있어. 밀수를 통해 큰 부를 얻은 자들은 자연스럽게 권력도 얻었어. 그렇게 해서 식민지 사회의 상류층이 되었지. 하지만 그들은 귀족이 아냐. 불안정한 기득권이지. 그래서 그들은 일부러 제국의 비도덕과 악행을 강조하며 주민들을 선동하고 적대감을 키웠어. 그렇게 해서 식민지 사회의 결속력을 높이고, 그들은 증오스러운 적인 제국과의 투쟁의 전선에 섬으로써 자신들을 영웅화시켰지.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탄탄하게 다지는 거야. 그리고 초점을 선량한 식민지와 악랄한 제국과의 투쟁에 두어 원주민을 향한 이주민의 토지 강탈 등등의 문제는 덮어버렸지.”

 

  이도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도는 눈살을 찌푸렸다.

 

  “더러운 놈들.”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나도 밀수를 함으로써 그들의 계획에 의도치 않게 도움을 주는 셈이지.”

 

  “너는 달라.”

 

  아리아는 미소 지었다.

 

  “고마워.”

 

  이도는 생각에 잠겼다. 제국과 식민지 이주민 기득권층 사이의 갈등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동방에서는 민감한 문제가 터지면 전쟁보다는 회담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도림 왕국이 동방의 패권을 잡고 질서를 유지하니 그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로 해결할 수는 없는 걸까? 역시 말의 힘보다는 칼의 힘이 우위인걸까. 말의 힘을 믿는 내가 아직 순진한 걸까...... 어른의 세계란 원래 피비린내 나는 것인가.

 

  전쟁, 이유 없이 사람들만 죽어나가는 전쟁. 혐오스러웠다. 이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멈추고 싶었다. 아니, 멈춰야 한다. ‘그 장소’, ‘그 소녀’가 여전히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다. 더 나은 선택을 강요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더 나은 선택.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 날의 열기가 느껴져 온다.

 

 

  하지만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어떻게 알 수 있고,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갇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유리상자 안에 갇힌 것처럼......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아리아가 문득 생각난다는 듯 말했다.

 

  “뭔데?”

  “이건 뭐랄까, 음, 조금 관념적인 주장이야. 그래도 제법 흥미로워.”

 

  이도는 듣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민지 이주민 사회의 학식 있는 문필가들은 제국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야. 그 이유는 제국이 자연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래.”

  “자연 법칙?”

 

  “그래. 꽃이 피었다가 다시 지고, 생명이 탄생했다가 죽고, 해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고, 바람이 불다가 안 불다가 하고 비가 내리다가 안 내리다가 하고. 이러한 순환이랄까, 자연의 수레바퀴? 흐름? 여하튼 그런 것에 제국이 위배된다는 거지.”

  이도는 머리를 긁적였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그들이 말하길, 제국은 절대 멸망하지 않는 게 자연 법칙에 위배된다는 거야. 모든 나라는 전성기가 있고, 위기가 있다가, 결국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잖아? 잘 대처해서 위기를 넘겨 중흥을 이룩해도 나중에는 결국 또 다른 위기에 버티지 못하지. 그렇게 순환하는 거야. 그러나 제국에는 위기와 중흥만 있고 멸망이 없어. 생각해봐. 그 먼 옛날의 고대왕국이 제국이 되고나서 이천년이 흘렀어. 이천년! 과연 이게 정상적인 걸까?”

 

  확실히 이천년에 이르는 제국의 존속은 놀랍다. 물론 동방에도 천년왕국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왕국이고 규모도 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국은 그만큼의 덩치를 가지고 이천년을 존속했다. 확실히 이상하긴 이상했다. 하지만 의심할 게 있나? 엄연히 제국은 존재했다. 그만큼 제국이 위기를 잘 넘긴 걸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걸까?

  아리아는 계속 말했다.

 

 

  “그들은 제국이 번영하는 이유를 그들의 신에게 찾아.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제국 수뇌부가 모여 신에게 제사를 지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을 얻어내는 건 모두가 알지. 댓가가 따른다는 것도 모두 알고. 물론 확실한 건 아냐. 만일 그게 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라면, 분명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존재겠지. 여하튼 식민지의 문필가들은 이런 뒤꽁무니가 구린 제국을 싫어해. 그런 사상이 독립운동의 바탕이기도 하겠지.”

  신이라. 확실히 제국의 속담에는 ‘우리의 신은 실재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방금 이야기가 사실이면 미신과 국가의 신정적 요소가 다른 나라 대부분에는 이천년 전에 이미 사라졌는데 제국에는 아직도 황제가 일종의 제사장 기능을 수행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게 사실이라면, 제국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역하고 있는 거구나.”

 

  한 선원이 외쳤다.

 

  “선장님! 정체를 알 수 없는 쾌속선 네다섯 채가 저희 배에 따라붙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한 점은 밝게 빛나고 있단 겁니다! 아무래도 신기술인 것 같습니다!”

  신기술. 아리아는 주먹을 꽉 쥐며 일어났다.

 

  “전원 전투 채비를 갖추라고 해. 놈들이 옆에 오기 전에 대포로 격추해야 한다. 지금 당장 발사하라고 해!”

  “네!”

 

  선원은 부랴부랴 나갔다. 행동대장은 칼을 뽑고 전투원을 준비시키기 위해 같이 나갔다. 선화는 책상 위에 놓인 권총을 들고 점검했다. 약실, 총탄, 방아쇠의 눌림, 모두 문제없었다. 아리아는 이도의 빈손을 보고는 입을 살짝 벌렸다.

  “아하. 너 권총 없구나?”

 

  “응. 사실 보는 것도 서방에 와서가 처음이야. 어쩔 수 없이 동방이 제국에 비해 기술력이 밀리거든.”

  “그래?”

 

  아리아는 책상 밑의 서랍을 열고 그녀의 것과 똑같이 생긴 권총을 하나 들어 건넸다.

 

  “받아.”

  “난 쏠 줄 모르는데.”

 

  “그냥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돼. 화약 장전하는 건 대포 공부하면서 배웠잖아?”

 

  “비 오면 의미 없잖아.”

  아리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내 정신 좀 봐라. 그냥 가자.”

 

 

  아리아는 이도와 함께 선상으로 갔다. 대포 뒤에 옹기종기 모인 선원들은 대포를 쏘는 중이었다. 그러나 비가 내려 잘 안 되는 듯했다. 간신히 불을 붙이고 손으로 비를 가려 간신히 발사해도 비 때문에 탄도각도 계산이 어려웠다. 베테랑도 번번이 엉뚱한 곳에 쏘곤 했다. 신기술을 이용한 등불을 잔뜩 달아 쾌속선이 밝게 잘 보여도 이 모양이다.

 

  “돌격대장, 총 몇 선이야?”

  아리아가 물었다. 돌격대장은 대기하고 있는 전투원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다가 아리아를 보았다.

 

  “총 다섯 척입니다. 지금 네 척이 빠르게 붙고 있고, 한 척은 좀 떨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대장선인 것 같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공격할 수 없어요. 육탄전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쾌속선은 한 척 당 이삼십 명 정도가 탈 수 있지. 우리는 약 백 명 넘게 있고. 머릿수는 우리가 딸려. 하지만 우리 배는 쾌속선보다 훨씬 커. 지형적으론 유리해. 화약무기를 잘 쓸 수 없는 건 마찬가지고. 좋아. 해볼 만한 싸움이야.”

 

  아리아는 소형 망원경을 꺼내 따라붙는 네 척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오른 측에 두 척, 후미에 한 척, 왼 측에 한 척. 아리아는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했다. 동시에 재빨리 전투 계획을 세웠다. 또 확인할 게 있다. 아리아는 바다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파도의 출렁거림을 느끼며 해류의 흐름을 감지했다. 정면보다는 약간 오른쪽 방향이다. 좋아.

 

  “돌격대장. 정면과 왼 측면의 사수들에게 포탄 대신 사슬 탄을 준비시켜. 오른 측면과 후미의 사수는 화약이 젖지 않게 잘 불이 붙도록 도와주도록 하고. 나머지는 아무거나 꽉 잡으라고 해. 알겠어?”

  “네! 자, 다들 들었지? 어서 준비해!”

 

  아리아는 이도와 함께 후미의 타로 갔다. 지금까지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는 선장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너는 후미에 붙은 배를 감시해. 거리는 볼 줄 알지? 한 삼백 미터 정도 남기고 붙었다 싶으면 말해. 그리고 아무거나 꽉 잡고 있어. 이도! 너도.”

  이도는 난간을 팔로 아예 붙들어 맸다. 후방을 감시하던 조타수가 아리아를 향해 외쳤다. 적당한 거리가 되었다.

 

  “선장님!”

  “좋아!”

  아리아는 키를 꽉 붙잡고 외쳤다. 얼굴에서 전의가 흘러넘쳤다.

 

  “모두들 꽉 잡아라!”

  그리고 키를 왼쪽으로 빙빙 돌렸다. 위험천만한 급선회였다. 거기에 해류의 흐름이 합쳐져 배가 넘어질 정도로 왼쪽으로 급속히 돌았다. 거의 U턴이었다.

 

  “사슬포, 발사!”

 

  아리아의 호령이 떨어졌다. 전방과 왼측의 대포 중 절반 정도가 화약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따라주었다. 강렬한 소리와 함께 사슬들은 빗발치는 해상을 갈랐다. 그렇게 후미에 따라붙었던 쾌속선을 덮쳤다. 한 놈은 사슬에 맞아 몸이 으스러졌고, 누구는 바다 너머로 날라 갔으며, 마스트를 갉아버리고 선체를 부수고 돛을 뚫고 키를 날려버렸다. 성공적인 공격이다. 빠르게 움직이던 쾌속선이 멈춰버렸다.

 

  “충파에 대비해라!”

  아리아는 키가 움직이지 않도록 꽉 잡고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후미로부터 쏟아지듯이 배를 때리는 해류에 힘입어 배 자체에 엄청난 속도가 붙었다. 급선회를 했음에도 해류를 잘 타서 속도를 많이 잃지 않은 덕이다. 배는 위로 크게 솟아올랐다가, 바다의 언덕을 내려가며 더욱더 속도가 붙었다. 쾌속선은 멈춰버린 탓에 아리아의 배를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충돌했다. 놋쇠 충각은 쾌속선의 하부를 아주 꿰뚫어버렸다. 큰 배가 주는 충격의 힘 때문에 쾌속선의 전방은 두 조각이 나버렸다. 파편과 파도가 하늘 위로 솟았다가 아리아의 배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이 쾌속선은 이제 회복불능이다. 그러나 아리아의 배도 피해가 있었다. 충격 때문에 선원들이 미끄러지고 날아가고, 대포들도 비에 젖은 바닥에 미끄러져 여기저기 흩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대비해서 큰 부상자는 없었다.

  아리아는 키를 다시 조타수에게 맡기고 칼을 빼들며 선원들을 향해 달려갔다.

 

  “신속히 움직여라! 적들과 구태여 싸우려고 하지 마! 너희들의 목적은 저 쾌속선에 달린 등불이다!”

 

  대기하고 있던 전투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직접 위에서 뛰어내리거나 밧줄을 통해 적의 배 위로 올라갔다. 적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다. 아니, 그 이전에 싸우려 들지를 않았다. 망했다는 걸 알고 무기를 버린 채 항복했다. 덕분에 등불을 얻는 게 수월했다.

 

  소니아는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등불을 하나 얻고 감격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아! 뜻밖의 수확은 언제나 기뻐. 이제 이걸 잘만 연구하면 새로운 레시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비에도 젖지 않는 발화물질이라, 멋져! 이걸로 무기 연구를 할 수도 있겠어! 하아아, 아름답구나.”

  소니아는 황홀한 표정으로 등불에다 뺨을 비벼댔다가 “앗, 뜨거!”하며 진저리를 쳤다.

 

  어느새 등불을 전부 강탈했다. 이 등불을 이용하면 대포 쏘는 것도 수월할 것이다.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화승총도 사용할 수 있다.

 

  이도는 등불을 하나 들어 올려 살펴보았다.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쇠로 된 통 안에 불이 빛나고 있다. 언뜻 보면 양초 같았다. 하지만 검은색이었다. 아무래도 고체로 된 발화물질인 듯하다. 이도는 살며시 꺼내 불이 비를 맞게 했다. 비를 맞으면 발에 밟히는 갈대처럼 누웠지만 결코 꺼지진 않았다.

  “신기하네.”

 

  이도는 일단 그 검은 양초를 다시 통 안에 넣었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배의 파편 중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통 안에 집어넣어 불을 붙여보았다. 젖었을 텐데도 잘 붙었다. 그리고 밖으로 꺼냈다. 파편에 붙었던 불은 금방 꺼져버렸다.

  “흐음. 검은 양초 옆에 있어야 하는 건가? 원리를 잘 모르겠어.”

 

  잘만 간수하면 배를 안 태워먹고 항해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간 배가 크게 요동쳤다. 큰 파도가 배를 덮친 것이다. 아리아는 선원들은 향해 외쳤다.

 

  “사수들은 전부 측면의 대포에 집중해! 사슬탄 말고 포탄을 써라! 우리의 다음 목표는 오른쪽에 있는 적이다! 등불을 이용해서 포탄을 퍼부어!”

 

  아리아의 배는 조각난 쾌속선을 뒤로 하고 새로운 적을 향해 갔다. 일정 거리가 되자 쾌속선으로부터 대포알이 날아왔다. 하지만 잘 맞지 않았다. 악천우로 인한 패널티는 동등하다. 실력은 아리아의 선원이 더 낫다.

  “발사해!”

 

  아리아의 명령이 떨어지자 오른측의 사수들이 대포를 쐈다. 대부분 속절없이 바다로 떨어졌다. 그러나 두세 알 정도는 쾌속선을 스쳐 지나갔다. 그 정도만 해도 쾌속선에겐 충분한 위협이었다. 적들은 아리아가 과감한 충각전술로 한 쾌속선을 항복시키고 등불을 얻어 자기들이 쓸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당황했는지 아리아의 배와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원래 적의 계획은 양 측면과 후미에게 다 같이 파상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일대일로 싸우게 되면 상대가 안 된다. 그들의 쾌속선은 브릭선 정도의 수준밖에 안 된다. 하지만 아리아의 배는 특별 제작을 하여 프리깃과 전열함 사이 정도 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협공을 노린 거였는데 계획이 꼬였다.

 

  다행히 아리아의 배 오른 측의 쾌속선은 거리를 조절하며 잘 버텼다. 그래서 왼 측의 쾌속선 두 척이 따라붙을 시간을 벌어주었다. 하지만 아리아의 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등불의 힘을 얻어 양측 합해 72문의 대포에서 꾸준히 불길이 터져 나왔다. 결국 왼 측의 한 쾌속선은 기관실을 당하는 바람에 그대로 멈춰버렸다. 아리아는 영리하게 그 쾌속선과 자신의 배 사이에 따라붙는 적이 자리하도록 선체를 돌렸다. 그래서 그 배는 완전히 전투불능이 되었다.

 

  그러나 전황이 아리아에게 유리하게만은 흐르지 않았다. 쾌속선에서 쏜 대포알에 후미가 타격을 입어 속도가 느려지고 만 것이다. 그 틈을 타 두 쾌속선은 양측으로 빠르게 붙었다. 그리고 작살을 단 밧줄과 사슬을 단 밧줄을 던져대어 아리아의 배와 자신들의 배를 고정시켰다. 선상전투의 시작이다.

 

  등불을 가지고는 화승총을 잘 쏠 수 없었다. 그래서 총으로 올라오는 적을 견제할 수 없다. 대신 작살로 찔러버리거나 밀어내는 식으로 대응했다. 사수들도 대포에서 벗어나 칼을 들고 백병전을 벌였다. 베테랑인 전투원들은 빗속에서도 잘 싸웠다. 육십 명 대 백 명이면 이 쪽이 우월하다. 하지만 적도 만만치 않았다. 엄선한 전투원인 듯 아리아의 선원 상대로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아리아 측의 승리가 확실해보였다.

  “뭔가 이상해.”

 

  이도는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분투하는 아리아와 행동대장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아른거렸다. 이상한 느낌이다. 뭔가가 잘못되어 간다는 불길한 직감이 그를 관통했다. 이도는 갑자기 다가온 적의 칼을 넘기고 손을 자른 뒤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런 순간에도 불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맞다!”

 

  이도는 후미를 보았다.

 

  “젠장.”

  멀찍이 떨어져있던 대장선이 어느새 꽤나 근접해있었다. 이정도 속도면 금방 따라붙을 것이다. 이도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소형 망원경을 꺼내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장선의 충각이 특이했다. 다른 쾌속선과는 틀렸다. 악마의 삼지창처럼 무시무시하게 솟아나온 충각이었다.

  아! 이도는 적의 계략을 간파했다. 네 척의 쾌속선을 이용해 아리아의 배를 묶어놓고, 백병전에 정신이 팔린 사이 빠르게 후미로 돌진해 충파로 공격할 심산이었구나. 확실히 저 정도 충각이라면 들이박은 배가 무사할 수 없어 보인다.

  이도는 아리아를 찾아 갔다.

 

  “아리아! 대장선이 뒤로 접근하고 있어! 화약통을 이용해서 견제해야 되니까 실력 좋은 저격수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

  아리아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꽁지머리를 한 선원을 가리켰다.

  “저 놈을 데려가! 지금 너무 난장판이니까 조심하고!”

 

  이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꽁지머리 선원을 데리러 갔다. 그는 비를 피해 상자 안에 감춰두었던 화승총을 수포로 덮은 채 이도를 따라 후미로 갔다. 대장선은 어느새 더욱 근접했다. 시간이 없다. 이도와 꽁지머리 선원은 바닥에 눕혀둔 화약통을 같이 들어서 바다 밖으로 던졌다. 그렇게 총 세 개를 던졌다.

 

  “이 정도면 돼. 하나만 제대로 맞추면 다 같이 터지니까, 그 정도 화력이면 충분해.”

 

  꽁지머리 선원은 수포로 몸과 총을 가린 채 화약통을 조준했다. 화약통 세 개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며 착실히 대장선과 가까워졌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도는 초조하게 화약통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선을 올렸다. 젠장, 대장선 전면의 함수포 하나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숙여요!”

 

  이도와 꽁지머리 선원이 머리를 숙이자 그 위로 사슬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이도는 행동을 개시했다. 우선 충파로 인해 뒤로 밀려났던 함수포를 전방으로 밀었다. 상당히 무거웠지만 다행히 바닥이 젖어 있어 그럭저럭 움직였다. 그는 함수포를 포구에 고정시킨 뒤, 수포로 덮고 포탄을 장전했다. 그리고 등불을 이용하여 발사했다. 성공이다. 적의 함수포에 명중한 것이다.

 

  “좋아, 지금 쏜다.”

 

  꽁지머리 선원은 등불을 이용해 화승총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신중하게 대장선 밑에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화약통을 조준했다. 쐈다! 그러나 바다에 착탄했다. “칫!” 그는 혀를 차며 다시 장전했다. 수포를 덮은 채라서 매우 번거로웠다.

 

  “다시 해요!”

  이도는 외쳤다가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다. 적 한 놈이 이곳을 향해 온다. 계획에 방해 된다는 거로군. 이도는 검을 빼들고 자세를 취한다. 놈은 성급하게 치고 들어온다. 이도는 놈의 칼의 하부를 쳐올린다. 동요한 놈은 물러난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기회를 탐색한다. 이번엔 이도의 차례다. 돌진! 그러나 놈의 방어 자세는 견고하다. 이번 공격은 실패라고 이도가 속으로 생각할 때, 선체가 요동친다. 이도는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빌어먹을!”

  이도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른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놈은 대응하지 못한다. 결국 속절없이 발이 잘리고 만다. 둘이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한 사람만 비명을 지른다. 이도는 잽싸게 일어나 아직 쓰러진 놈의 목에 검을 꽂는다. 피가 솟구친다. 이도는 진저리치며 뒤를 돌아본다.

  “아직 멀었습니까?”

 

  “지금 쏜다!”

  다시 한 번 총알이 날아갔다. 그러나 이번엔 선체에 박혔다. 꽁지머리 선원은 수포를 벗어던지며 욕을 내뱉었다.

 

  “이레선 안 돼. 더는 시간이 없어!”

  너무 가까워졌다.

  “이 검은 양초는 물에도 안 꺼진다며?”

 

  그는 등불 통에서 검은 양초를 꺼냈다. 그리고 화약통을 향해 그냥 던져버렸다. 바다에 떨어진 검은 양초는 불이 꺼지지 않은 채 해류를 따라 흘러갔다. 정확히 던진 덕분에 얼마 안 가 화약통 근처에 닿았다. 나무판의 틈새를 파고들어 작은 불과 화약더미가 만났다. 불은 해일처럼 치올랐다. 빗소리가 순간 저 멀리 날아 가버릴 정도로 폭음을 내며 화약통 세 개가 폭발했다. 대장선의 머리 부분이 놀란 고양이의 등이 불쑥 올라오듯 치솟아 올랐다. 하얀 포말과 함께. 그 모습은 어딘가 장엄했다.

 

  이도는 끔찍한 직감을 느꼈다.

  이 녀석들, 마치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공격해오고 있어.

 

  아니야, 아니겠지. 내 착각 일거야.

 

  이도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의 대상을 바꿨다.

  적의 계획은 실패했다. 적들도 패배를 직감했다. 덕분에 전투가 눈에 띄게 수월해졌다. 이도도 검을 빼들고 백병전에 합류했다. 빗발치고 요동치는 바다에서의 전투는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냐아아옹.

 

  이도는 귀를 의심했다. 웬 고양이 울음소리? 아리아의 배는 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다. 이도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소리의 근원을 찾아냈다. 이도는 순간 그 형체에 매혹되었다. 그 검은 실루엣은 고양이가 좁은 벽 위에 앉듯 난간 위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진짜 고양이처럼 팔을 핥아댔다.

  “냐앙? 이제 내가 나갈 차례인 거냥?”

 

  그 때 번개가 대나무 쪼개지듯 하늘을 쩍 가르며 바다로 꽂혔다. 그 섬광은 지금까지 검은 실루엣이던 것을 비추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나, 독립파의 일원이며 이 전투의 지휘자이다. 이리저리 뻗쳐서 정갈하지 못한 노란색 장발을 했다. 안광은 초록빛으로 빛났고 시꺼먼 눈동자는 아래위로 쭉 찢어져 있었다. 송곳니가 귀엽게 삐져나와있다. 리나는 혀를 내밀어 다시 팔을 핥아댔다. 두 팔에는 각각 단검을 쥐고 있다.

 

  리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의 앞에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놀란 얼굴에 은발에 하얀 피부. 게다가 미소년. 리나는 미소 지었다.

 

  “네가 대자냥?”

 

  리나의 머리 위에 솟아나온 빨간 색의 고양이 귀가 깜찍하게 접혔다. 이도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대답을 못 했다.

 

  “접수하겠어!”

 

  리나는 난간을 박차며 이도를 향해 돌진한다. 윽! 이도는 당황한다. 대처가 한 발 느리다. 그래도 검을 들어 올려 쇄도해오던 단검 두 개를 막아낸다. 그러나 리나의 힘이 엄청나다. 이도가 뒤로 밀린다.

  “쳇!”

 

  이도는 단검을 뿌리치며 일단 뒤로 물러난다. 리나는 씩 미소 지으며 다시 돌진한다. 이도는 그럭저럭 대응을 했지만 전혀 공격할 수 없다. 틈이 없다. 젠장! 이 녀석은 대체 뭐지? 동물이야, 사람이야? 이것도 신기술의 일환인가? 식민지의 신기술 발전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이야? 알 수 없지만 그 누구의 상상조차 뛰어넘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도는 옆을 바라보며 외친다.

 

  “도와줘!”

 

  돌격대장은 미처 듣지 못하고 계속 다른 놈들과 싸운다. 그래도 아리아는 귀신처럼 이도의 말을 듣는다. 그러고는 부리나케 달려온다. 잠시 적의 외양을 보고 당황했지만 곧 합세한다. 아리아의 검이 더해지자 할 만 해진다. 리나는 아리아를 향해 혀를 쭉 내밀어 조롱한다.

  “애송이는 꺼져라냥!”

 

  그러고는 아리아의 칼과 함께 그녀를 발로 확 밀어버린다. 힘이 너무 세다. 아리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리나는 아리아를 향해 단검을 내리꽂는다. 그러나 이도가 그 공격을 쳐올린다. 리나는 눈을 부라리며 이도를 본다.

  “방해된다냥.”

 

  리나는 이도를 맹렬하게 공격한다. 1초에 한 번 꼴로 공격이 들어간다. 이런 빠른 공격은 처음이다. 이도는 막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젠장! 이도는 이를 악물며 공격해 들어간다. 목을 향한 찌르기. 그러나 리나는 단검의 몸체를 이용해 막아낸다. 이럴 수가! 리나는 무릎으로 이도의 하복부를 가격한다.

  “커헉!”

 

 

  이도는 고통에 놀라 배를 부여잡는다. 그 틈을 타 리나가 단검을 놀린다. 그러나 이번엔 아리아가 단검을 쳐올린다. 리나는 혀를 찬다.

  “쳇!”

  슈리와 루카도 거들기 시작한다.

  슈리는 쿠쿠쿡 하며 웃는다.

 

  “오랜만에 강한 상대군요!”

 

  슈리는 단검 세 개를 동시에 던진다. 섬광처럼 날아간다. 리나는 단검으로 춤을 추듯 한 개씩 차분하게 막는다. 단검이 튕겨서 날아오른다. 바닥에 꽂힌다. 슈리는 숨겨두었던 도끼를 꺼내든다. 슈리는 무게를 실어 리나를 공격한다. 육중한 공격은 아무리 리나라도 단검으로 막기 버겁다.

 

  하지만 리나는 보통이 아니다. 리나가 슈리의 손목을 살짝 긋는다. 다가오지 못 하게. 그러고는 밑으로 파고들어 발을 찬다. 단검으로 찍으려 했으나, 루카가 방해한다. 루카는 신묘한 검 솜씨로 리나를 압박한다. 사 면에서 들어오는 찌르기는 버겁다.

 

  “젠장.”

 

  리나는 사대일의 상황에 놓였다.

  “역시 이건 버겁다냥.”

 

  리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졌다. 남은 병사들만이라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아직 두 척은 멀쩡하니까. 하지만 소득도 없이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리나의 눈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웬 10살 정도 되는 꼬마 여자아이가 머리를 감싸고 허리를 숙인 채 문에서 뛰쳐나오는 게 아닌가. 리나는 직감적으로 저 꼬마가 유명한 마법연구자인 소니아임을 알아봤다. 저렇게 무방비하게 있어주다니, 행운이 따른다.

  “너희 둘은 이제 흥미없다냥!”

 

  리나는 소니아를 향해 쇄도했다. 소니아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이한 형체에 놀랐다. 아리아는 언니를 향해 외쳤다.

  “언니! 위험해!”

  그러나 소리로 리나의 단검을 막을 순 없었다.

 

  액체가 소니아의 피부 위로 흘렀다.

 

 

  “흥.”

 

  소니아는 씩 웃으며 리나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리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호위견의 실력이 이것밖에 안 돼?”

 

  소니아는 리나의 두 단검을 막았다. 그러나 칼로 막은 게 아니었다. 손수건으로 막았다. 소니아가 양 손에 쥔 손수건이 단검을 감싸 쥐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냥? 말도 안 된다냥!”

 

  그러나 그 손수건은 평범한 손수건이 아니었다. 산화 레시피 혼합물을 덕지덕지 바른 손수건이다. 손수건과 단검이 맞붙었을 때의 충격으로 스파크가 튀었고, 마법이 발동되었다. 리나는 두 단검을 거두었다.

  “아니?”

 

  두 단검은 오물을 흡수하는 종이 마냥 검게 파직파직 타들어가고 있었다. 단단한 철이 낙엽 마냥 후두두둑 떨어져나갔다. 머지않아 전부 그 꼴이 났다. 리나는 분노를 토해내며 단검 손잡이를 던져버렸다.

  “망할!”

 

  리나는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퇴각이다냥!”

 

  리나는 고양이처럼 잽싼 몸놀림으로 도망쳤다. 아직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리나는 몇 명의 선원과 함께 왼측 쾌속선을 타고 재빨리 달아났다. 덕분에 아직 남아있던 적들은 항복했다. 전부 포로로 잡았다.

  “흐아아.”

 

  이도는 지친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앉아버렸다.

  피로가 물처럼 짙게 내려앉았다.

  “아리아, 방금 그 놈은 대체 뭐야? 그것도 마법의 산물이야?”

 

  아리아도 피곤함을 느끼며 앉았다.

  “아마도. 근데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놈이야.”

  “실력이 엄청났어. 나 혼자였다면 죽었을 거야.”

 

  “나도.”

  슈리는 분하다는 듯이 상처 입은 손목을 움켜쥐었다.

 

  “젠장! 다음엔 무조건 소녀가 그 년의 대가리를 쪼개겠어요!”

  루카는 깔깔 웃었다.

 

  “쪼개는 건 너무 더러~ 자르는 게 깔끔행!”

  슈리와 루카는 또 티격태격 싸웠다.

  소니아는 손수건을 바다 위로 던져버리고 아리아에게 다가왔다.

 

  “그런 애송이 하나 물리치지 못해?”

  아리아는 입을 삐죽였다.

 

  “언니는 우연히 얻어걸린 거잖아. 그래도 위험해! 밖으로 나오다니.”

 

  “미안, 미안. 밑에 숨어있는데 가방을 보니까 병 하나가 없는 거야. 배 위에 떨어뜨렸나 싶어서 나와 봤지.”

  “나중에 찾으면 되잖아?”

  “배 위에 있다가 바다 위로 떨어지면 어떡해?”

 

  아리아는 못 말린 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제 됐어. 이도, 이제 안전해. 식민지 당국까지 무사히 갈 수 있어. 반나절 정도만 더 가면 금방이야.”

 

  이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 그곳에 가면 이도는 비로소 안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불안했다. 방금 대치했던 리나는 강했다. 두 번 다시 싸우고 싶지 않다. 그러나 또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도는 이제 안전해졌다.

 

  이도가 안전해지면 안전해 질수록 전쟁이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전쟁. 덫에 걸린 것처럼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더 나은 선택.

  빌어먹을!

  지금은 그저 평화를 만끽하고 싶었다.

 

  눈이 저절로 감겨왔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9 28."끝이 시작되고 있었다." (4) 2016 / 10 / 31 684 0 2362   
28 27.참으로 오래 걸린 2016 / 10 / 30 444 0 5375   
27 26.바다를 건너며 2016 / 10 / 29 802 0 12560   
26 25.신의 가호가 있기를 2016 / 10 / 28 597 0 12539   
25 24.어둡고 바람 부는 밤이었다 2016 / 10 / 27 743 0 10914   
24 23.결점과 결심 2016 / 10 / 26 507 0 8218   
23 22.왜 하필 지금 2016 / 10 / 25 701 0 9485   
22 21.아리아와 함께 춤을 2016 / 10 / 24 675 0 13792   
21 20.협상의 행방 2016 / 10 / 23 999 0 12721   
20 19.물놀이를 즐겨요 2016 / 10 / 22 568 0 19416   
19 18.제2 라니냐 항구 2016 / 10 / 22 472 0 8046   
18 17.엘리자의 회초리 2016 / 10 / 20 466 0 2376   
17 16.고양이 울음소리 2016 / 10 / 19 648 0 14015   
16 15.루비가 박힌 단검 2016 / 10 / 18 401 0 8352   
15 14.항구를 떠나다 2016 / 10 / 17 403 0 4106   
14 13.도처에 놓인 그물망 2016 / 10 / 16 703 0 8793   
13 12.소니아를 보다 2016 / 10 / 15 594 0 9697   
12 11.그 날 2016 / 10 / 14 831 0 12356   
11 10.루카를 위하여 2016 / 10 / 13 537 0 7296   
10 09.다시 찾아온 2016 / 10 / 12 1260 0 16436   
9 08.선화의 짖궂음 2016 / 10 / 11 520 0 6245   
8 07.선상의 파티 2016 / 10 / 11 612 0 5057   
7 06.가녀린 손 (1) 2016 / 10 / 10 699 1 7374   
6 05.헬라와 욕조 2016 / 10 / 9 538 0 6228   
5 04.선화와 황제의 문답 2016 / 10 / 8 460 1 9336   
4 03.이도의 펜던트 2016 / 10 / 8 686 1 5708   
3 02.납치선에서 (2) 2016 / 10 / 7 611 1 6595   
2 01.고장난 마차바퀴 2016 / 10 / 6 534 1 8418   
1 00.라벤더와 라즈베리 향 2016 / 10 / 6 710 2 141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드래곤 플래닛
에르노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