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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흘러내림(제1권) - 뿌리
작가 : 말레이
작품등록일 : 2017.11.6

이 소설 "흘러내림"은 언어의 시작 점인 창세 때부터 2040 여 년 대의 미래까지를 언어와 문자를 소재로 이어가는 소설로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언어 등의 모든 것이 오늘 우리모두에게까지 흘러 내려왔으며 이 흘러내려옴은 막힐 수 있는 강과 내처럼 수평적 흐럼이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수직적인 흘러내림이고 그렇게 우리에게 주신 것 중의 귀한 우리의 문자(한글)와 언어(한국어)를 세계에 널리 알리며 그 배에 복된 소식도 나누어야 한다는 주제로서 제1권 - 뿌리, 제2권 - 나무, 제3권 - 가지, 제4권 - 광합성 중의 제1권이다.

 
아담과 이브의 언어
작성일 : 20-08-20 13:08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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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과 이브의 언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줘서 먹었습니다.”(창세기 3:11)

 

 하루는 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이 아담의 배필인 하와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던?”

 

 하와가 대답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래.

 우리가 죽는대.”

 

 그러자 뱀이 말하되,

 

 “너희는 결코 죽지 않아!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뿐만 아니라 선악을 알 수 있게도 된 단다!”

 

 이러한 뱀의 꾐에 그만 하와의 귀가 얇아져 그 뱀과 사단이 의도대로 선악과를 바라보니 정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열매”

 

 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렇듯 죄라고 하는 것은 인간자신의 이해사고와 주관적인 판단 속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그 이후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잘못된 판단과 생각에서의 결정 그 자체가 이미 죄의 뿌리였고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하와 자신이 그 열매를 따먹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한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같이 먹게 함으로 자신과 더불어 자신의 남편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조차 그 죄로 말미암아 그 죄의 영향아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사람의 다스림과 영향권 아래 주셨기 때문에 영향을 끼치는 그들이 죄의 영향력이 모든 후손에게 미치게 된 것이고 그들로부터 행하여지는 영향은 고스란히 모든 다스림의 대상자들인 동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죄의 결과에 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죄가 들어오게 되자 성경은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밝아짐이란? 자신들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보게 되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불순종함을 발견하는 그들이 행동을 시작하는 시작점인 사고(思考)적인 인지였고 그것은 더 나아가 결국에는 실제적으로 시각적인 눈의 활동까지에도 일종의 마비를 가져 오거나 환각의 상태에 빠져 다른 것을 보게 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그 오류의 결과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자신들이 불신과 불순종을 행하였음을 인지하는 새로운 죄와 욕망의 눈과 시각이 열려 버린 것이다.

 불순종하지 않았다면 열리지 않았을 눈이 열리자 그 시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생각이 정상적인 사고의 틀과 생각에서 벗어나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생각뿐만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가시적인 눈 역시 자신이 필요하거나 오해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자기중심의 비정상적인 인지의 방향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이 바로 자신들의 벗은 몸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에 원래부터 그들을 벗은 몸으로 보내셨고 그렇게 생활을 하는데 기후적으로나 생활 환경적으로도 아무런 제약점이나 문제가 없었으며 그렇기에 그들은 발가벗은 것에 대하여 아무른 의식이 없었던 터였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발가벗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그 발가벗음은 이전에는 그들에게 조차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문제가 죄가 들어온 이후에 그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미 모든 것을‘자기’라고 하는‘주체’를 중심으로 다른 것을 바라보는 구조의 사고로 바뀌어 버렸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특정한 모습을 흉하다고 규정을 하게 되었고 그 흉함을 그 누군가 에게라도 들어 내 놓기가 싫은 것으로 이것은 마치 죄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나타내기 싫어하는 특징과 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숲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몸을 가리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가림은 외형적이고 잠시적인 것뿐이었지만 죄악의 사고에서는 그것이 부질없는 행동임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 사고가 바로 자아중심의 이기적인 사고와 생각인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된 죄악을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하는 내면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벗은 몸이 부끄러워 나뭇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자신들을 그 속으로 감추고 가두어 버린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숲 속에 들어가 자신들을 가리기에 정신이 없었을 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아담과 하와는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이미 정상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몸과 더불어 죄를 감추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어요.”

 

 이 말은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더더욱 냉정하게 그들의 가슴을 찌르며 파고 들어오셨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알려주었느냐?”

 

 하나님의 이 음성은 죄로 인하여 쪼그라든 아담의 가슴을 깊이 찌르는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철저하게 사실 관계를 심문하셨다. 그러나 이 심문은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한 심문이 아니라

 

 “왜 그렇게 하였느냐!”

 

 라는 일종의 책망이며 나무람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의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라고 하셨고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언행에서 이미

 

 “우리가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두 사람에게는 이미 죄가 들어갔고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심문에 대하여 변명하고 남에게 그 죄의 결과를 전가하며 그 징계로부터 탈피하려고 하는 제2, 제3의 죄를 양산하게 되는 특성이 생겼는데 이것이 바로 사악하고 음흉한 사탄의 전략이고 전술이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어요.”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어요.”

 

 아담은 하와에게 그리고 하와는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였다. 하나님은 뱀을 심문하지는 않으시고 바로 그 챔임을 물으시며 아담과 하와를 징계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게 인간에게 자의적인 선택의 권한을 주셨던 차이점 이었다. 그만큼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으로 만드시고 인간에게 특별한 대우로 그 선택권을 주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선택권을 악용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서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은 먼저

 하와를 유혹한 뱀에게 벌을 주시고 이어서 그 유혹에 따라 죄를 범하고 남자에게 죄를 전염시킨 여자의 권한을 제한하는 벌을 내리신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네가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은 하와를 이렇게 징계하시고 나서 이미 심문을 마친 아담에게도 모든 것을 맡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징계를 내리신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 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죄를 스스로 인지한 그들의 눈이 자신의 죄를 보게 되자 그들의 고통은 그들 내면에 더욱 더 가중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죽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갈 수 있었던 아담과 하와는 그 날로부터 서서히 늙어감으로 죽음을 향하여 추락해 가는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게 되었다.

 원래 생명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적인 조건이나 음식 등 의 영향으로 그 수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만큼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그 앞으로 부르심을 받고 소환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와가 짐승과도 대화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죄를 지은 이후로 다시는 더 이상 짐승들과의 의사소통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그 자격까지도 박탈시켜 버리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모든 짐승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맡겨주심에 대하여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짐승에게 이용당하였던 인간의 불성실하고 무능함에 대하여 주시는 경고이기도 하셨다. 그래서 인지 그 이후 인간들은 오늘 날까지 이 땅에 존재하는 동물들을 한 종 한 종씩 멸종시켜오고 있다.

 하지만 죄의 결과에 당황한 그들은 더 나아가 서로 상대방에게 혹은 제 삼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도구가 언어가 되면서 인간들은 언어의 폐해를 점점 더 그렇게 양산해 갔다. 그들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상 가장 아름다웠고 큰 행복의 터전이며 보금자리였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고 이는 인류 전체에게 미치는 불행의 씨앗이 되어 그 후 인간들은 그 죄의 결과로 인하여 오게 된 이 세상의 불안정함을 해결해 보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과열되어 오히려 분쟁과 전쟁 등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더 큰 불안과 불행을 만들어 왔다.

 이렇듯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을 당장에 피부로 체험하며 문밖에 쫓겨나 슬피 울며 마치 어떤 억울함에 이를 가는 사람들처럼 그 폐해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 열매로 인하여 더 큰 불행과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과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도구였던 언어가 인간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가 아니라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의 도구가 되었음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오늘 현재의 삶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속에도 여전히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이웃들과의 사이에서 서로 소외되고 단절되는 아픔을 뼈마디 속 깊이깊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성냥 각처럼 쌓아놓은 높은 빌딩 속에서 갇혀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죄의 결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도 그 균형을 잃게 함으로 이 사건은 결국 그들의 후손들이 영원히 멸망하게 되는 도구를 만들어 놓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며 현 주소라는 사실을 생각하니 목이 메여오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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