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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왈왈로맨스
작가 : 슈가팟
작품등록일 : 2020.8.20

성질 더러운 상사와 약간 맹한 부하직원의 로코

 
피아노 좀 친 게 그렇게 큰 죈가요?
작성일 : 20-08-20 01:09     조회 : 168     추천 : 1     분량 : 4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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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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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빈은 슬그머니 무대 쪽으로 다가갔다. 나이가 지긋한 서양인 남자 한 명이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로 짐노페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T호텔 클라스 봐. 피아노 퀄리티 무엇?’

 

 눈을 반쯤 내려감고 음악을 듣던 나빈의 모습을 보았는지, 한 곡 연주를 마친 남자가 그녀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 영어로 말했다.

 

  “한 곡 치겠어요?”

 

 나빈이 놀라며 영어로 대답했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사양 말고요. 저도 이 모임 손님이에요. 돌아가며 자유롭게 치는 거니 부담 갖지 말아요.”

 

 나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무대로 올라갔다. 뭐 대단한 곡을 치겠다는 생각보다, 좋은 피아노를 보니 치고 싶은 욕심이 컸다. 남자가 자리를 비켜 주었고 나빈은 피아노에 앉았다.

 

  ‘뭘 치지.’

 

 아쉽게도 이제는 완곡할 수 있는 곡이 몇 없다. 매일 연습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니까. 건반에 손을 올린 나빈은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리스트, 사랑의 꿈.

 

 처음에는 긴장해서 미세한 음이탈이 있었지만, 나빈은 곧 자신이 치는 곡에 스스로 빠져들었다. 리스트가 최초의 가곡 버전에 붙였던 가사가 떠올랐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무덤가에 서 있는 날이 오리니.’

 연주가 끝나고 고개를 들자, 홀에 있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나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도윤과 중국인 바이어도 있었다. 그것도 바로 무대 앞에서 듣고 있다.

 

  ‘이크. 혼나는 건 아니겠지.’

 

 나빈은 멋쩍게 웃으면서 무대를 내려오려고 했다. 중국인 바이어가 나빈에게 보통화로 말을 걸었다.

 

  “나빈씨?”

  “앗! 네네. 이나빈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피아니스트신가요?”

  “아! 아뇨, 아뇨. 전공하긴 했는데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에요.”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이런 일을? 특별히 생각하신 길이 있으신가보군요.”

  “그런건 아니고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앗! 그, 그, 어쩌다보니 그런 거죠.”

 

 중국인 바이어가 나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옆에 서 있는 도윤에게 무어라 귓속말을 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잠시 저쪽에 가서 이야기하시죠. 나빈씨, 실례하겠습니다.”

 

 나빈은 무대에서 가까운 벽에 기대서 먼 곳을 보며 멍을 때렸다. 좀 피곤하긴 하지만 T호텔에서 젤 큰 홀에도 들어와보고, 비싼 옷도 입고......그렇게 나쁘지 않은 거 같기도 해. 송 실장이랑 같이 있는 시간치고는 말이야.

 

  “나빈씨! 뭘 멍하니 있는 거죠? 갑시다.”

  “네? 네네!”

 

 나빈은 후다닥 도윤 뒤를 따르며 물었다.

 

  “벌써 가나요?”

  “.......”

  “실장님, 조금만 천천히.......”

  “.......”

 

 어? 뭔가 이상하다. 이 뒷모습, 이 걷는 속도, 이 침묵.......

 익숙해. 익숙하다고.

 이 사람, 열 받았어.

 도윤은 T호텔 로비에서 호텔 차를 불렀다. 올 때처럼 검은 세단을 탄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네?”

  “얌전히 있으라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제가 많은 건 바라진 않았을 텐데요.”

  “.........”

  “대체 피아노는 왜 친 겁니까?”

  “으음...피아노가 좋은 거길래...한 곡만 치려고.......”

  “콩쿨 온 겁니까? 뜬금없이 리스트라뇨?”

  나빈의 입술이 삐죽거렸다. 억울했다.

  “곡은 뭘 치든 상관없잖아요?”

  “튀지 말았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의 꿈이 튄다고? 리스트치곤 순한맛인데? 나빈은 도윤이 생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긍정적인 기분도 모두 사라졌다.

 으휴. 진상. 진상. 상진상.

 차는 어느새 나빈의 옷을 샀던 샵 앞에 섰다. 자동차 불빛을 본 샵의 직원이 살구를 데리고 나왔다.

 

  “얌전하게 잘 있던데요.”

 

 살구는 후닥닥 달려나와 나빈의 품에 안기려 했다. 나빈이 급히 말했다.

 

  “이거, 옷 돌려드려야죠. 털 묻으면 안 되니까.......” “그냥 가져요.”

  “예?”

  “공식적인 자리에 나갈만한 옷 하나도 없다면서요? 3주 동안 몇 번 있을지 모르니까 그냥 가지라고요.”

  “아...네......감사합니다.”

 

 그래. 옷은 고맙다. 이 진상아.

 살구를 안아 든 나빈은 차 안에 그대로 남아있는 도윤을 보았다. 왜 안 내리지? 집에 안 가나? 이거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는 차 아닌가? 도윤은 나빈의 의아한 눈빛을 읽었는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 차. 나빈 씨 집 앞에 있잖아요.”

  “아 참. 네.”

  “빨리 타요.”

 

 다시 출발한 차 안.

 살구가 코를 핥고 첩첩 대는 소리를 내는 것 외에, 차 안은 조용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나빈의 집에는 출발할 때보다 더 일찍 도착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좁은 골목길, 나빈에게 도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오전 계약 건은 취소입니다.”

  “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그거 잘 해보려고 한밤중에 이 난리를 친 건데.

 

  “바이어가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군요. 오늘 늦게까지 일했으니 점심시간 이후 출근해도 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시만요, 실장님.”

  “뭐죠?”

  “저기......제가 뭔가 잘못한 건가요?”

  “...다 지나서 말해 뭣합니까?”

 

 나빈은 당황했다. 딱히 예의없는 행동을 한 건 없는데. 피아노로 리스트 곡 하나 연주한 거 말고는 아예 한 게 없다시피 한데. 설마 그것 때문에?

 

  “진짜 제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건가요? 리스트 곡 연주한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 어, 어? 왜...요?”

  “.......”

 

 나빈은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이유를 머릿속에서 짜내 봤다.

 

  “리스트가 그렇게 싫대요?”

 

 어이가 없군. 도윤은 나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세상에 아무리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지만, 이런 여자를 첫눈에 맘에 들어 하는 남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뭐,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뛰어나게 예쁘다고 할 수는 없는데.

 

 도윤의 머릿속에서 방금 전 바이어와 나누었던 대화가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바이어는 나빈이 연주를 시작하자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동안 무대를 바라보던 바이어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저 분, 직원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런 질문 실례입니다만, 혹시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사이신지요.]

  [전혀 아닙니다.]

  [제가 이 호텔에 묵고 있습니다만.]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나빈 씨를 제 방으로 불러 주실 수 있습니까?]

  [.......]

 

 도윤도 남자였고, 비즈니스 바닥에서 구를 대로 구른 사람이었다. 그가 단순히 얼굴이나 보자고 호텔방에 여직원을 불러 달라고 하는 게 아니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 방면이라면, 좀 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성분들이 있습니다. 알아봐 드릴까요?]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전 나빈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도윤의 눈썹이 꿈틀댔다.

 

  [죄송합니다. 그건 어렵겠습니다.]

  [흐음.]

 

 도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바이어가 와인을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렇다면 이번 계약 건은 없던 일로 하지요.]

  [예?]

  [이번 계약에 대한 송 실장님의 진심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신용이 가질 않아요. 이번 기회에 다른 거래처를 찾아볼까 합니다.]

  [잠시만요, 저희 좀 더 이야기를.......]

  [좋은 밤 보내십시오. 송 실장님.]

 

 도윤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침침한 골목길, 개를 안은 나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그런 거예요? 리스트가 문제였어요?”

  “이 이야기는 인제 그만 하죠. 다른 계약들도 있으니.”

 

 하지만 그 계약이 이번 주에 가장 큰 건이잖아요. 나빈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설마 도윤이 이번 계약이 중요하단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

 

  “가보겠습니다.”

 

 도윤은 등을 돌려, 골목길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

 

  ‘그 바이어는 왜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을까?’

 

 침대 위에 누워 나빈은 생각했다. 어쩌면 인사할 때 표정이 너무 어두웠는지도 몰라. 긴장돼서 환하게 웃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게 바이어가 기분 나빠할 정도로 심각한 건지는 도무지 확신이 안 섰다.

 

  ‘내일 아침에 가서 한번 사과해 볼까?’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아침 브리핑 때, 도윤은 그 바이어가 T호텔에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어차피 내일은 오후 출근이니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간 김에, 칠 수 있으면 스타인웨이도 한 번 더 쳐보고.’

 

 나빈은 침대 속에서 꿈지럭거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

 

  “리웨이(李伟) 님 말씀이십니까?”

  “네, 지금 방에 계신가요?”

  “저희 내부 지침상 그런 개인정보를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어느 방에 묵으시는지도요?”

  “네, 그렇습니다.”

 

 T호텔 로비, 아침부터 호텔을 찾은 나빈은 낙담했다. 이래서야 만날 수 있을까. 속상해 하는 나빈을 본 프론트 직원이 말했다.

 

  “메모는 남겨드릴 수 있는데요. 그렇게 해드릴까요?”

  “네, 그럼 그거라도.”

 

 프론트 직원이 메모지를 건넸고 나빈은 중국어로 최대한 또박또박 글씨를 썼다.

 

  ‘리웨이 님, 어제 제가 실례했다면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가 회사의 큰 계약을 놓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부디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나빈.’

 

 메모를 남기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아직 10시가 채 안 되었다. 나빈은 호텔 로비를 이리저리 구경하고 셀카도 몇 장 찍었다. 문득 어제 쳤던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가 생각났다.

 

  ‘혹시 쳐볼 수 있으려나.’

 

 나빈은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잠겨 있네.’

 

 나빈은 실망한 채로 굳게 닫힌 홀을 기웃거렸다. 아쉬웠다.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나빈 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만났던 그 바이어, 리웨이이었다. 편안한 면 셔츠에 슬랙스 차림인 것을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젊어 보였다. 30대 중후반이나 되었을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가느다란 눈에 곧은 콧날을 가진 남자.

 

  “앗!”

  “메모 봤습니다.”

  “안녕하세요. 뵐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냥 가려고 했는데.......”

  “프론트에서 전화를 해 줘서 알았습니다. 나빈 씨가 오신 것. 그리고, 왠지 이곳에 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죠.”

  “뵙게 돼서 기뻐요.”

  “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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