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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오늘부터 가정교사입니다
작가 : 어린비
작품등록일 : 2020.8.1

유치원 선생님 감은아.

그녀는 어느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을 그만두게 되고,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취직도 안 되고,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 덕에 집까지 잃게 된 그녀.

그렇게 하루하루 걱정 속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

"저희 조카의 가정교사가 되어주실래요?"

담임이었던 시왕의 보호자 서천이 그녀를 고용하고, 얼떨결에 은아는 시왕의 가정교사가 된다.

하지만 까칠한 애늙은이 시왕을 가르치는 일이란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어쩐지 이들이 수상하다?!

과연 은아는 제대로 된 가정교사가 될 수 있을까?

 
20화. 그들만의 세상(7)
작성일 : 20-08-20 00:25     조회 : 194     추천 : 0     분량 : 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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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서천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졌다.

 

 

 뻣뻣하게 굳은 은아의 얼굴은 좀 전보다 훨씬 더 붉어져 있었다. 까딱하다간 머리 위로 김이 날 것 같았다. 이런 자연스러운 스킨십에 은아는 내성이 없었다.

 

 

 “서… 서천 씨…?”

 

 삐걱거리는 그녀의 손짓이 서천의 손과 애매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한쪽 손으론 은아의 이마를, 다른 손으로는 본인의 이마를 짚은 서천은 그제야 그녀를 향해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아, 혹 열이 나는 건가 해서요.”

 

 마치 진찰을 하는 의사처럼 그의 표정에선 일종의 직업의식 같은 게 느껴졌다. 은아는 저 혼자 딴 마음을 먹은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떨어졌다. 동시에 그의 손이 이마에서 떨어졌다.

 

 

 “저… 열 안 나니까 굳이 안 재도…”

 

 하지만 서천은 개의치 않고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걱정 많이 했어요. 아까 많이 놀랐잖아요. 지금은 그래도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조용한 그의 말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이내 서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직한 한 마디를 한숨처럼 내뱉었다.

 

 

 “… 미안해요.”

 

 네? 갑작스런 사과에 은아는 깜짝 놀라 그를 향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너무 안일했어요.”

 

 서천은 무언가 더 말을 하려는 가 싶더니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입 안에서 맴도는 말들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시왕의 책망어린 눈길과 겁에 잔뜩 질린 은아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서천이 무엇을 망설이는지 은아는 알 것 같았다. 그의 사과를 들은 은아가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을 떠올렸으니까…

 

 ‘상점에 왔던 여자 손님의 정체가 뭔가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아 등골이 쭈뼛했다. 저승차사를 만나고 나니 이질적인 존재를 의식하게 된 터였다. 분명 그녀도 사람이 아닐 것 같았다.

 

 

 은아는 바짝 마른 입안을 침으로 축였다. 이윽고 질문을 위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려했을 때였다.

 

 

 “음…?”

 

 그녀가 고민하는 사이 서천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낯빛에 희미한 경계심이 스쳐간 건 순식간이었다.

 

 

 “은아 씨.”

 “네, 네?”

 

 상념에 빠져있던 은아가 필요 이상으로 몸을 들썩였다. 까… 깜짝이야… 서천을 올려다보자 그의 얼굴이 진지했다.

 

 

 잠시 망설이던 서천은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은아 씨 몸에서 향냄새가 나요.”

 

 그의 말에 은아의 눈이 커졌다. 향냄새라 함은… 장례식장에 있는 그거? 그 순간 아까 만났던 저승차사의 얼굴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시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단숨에 바뀐 공기의 흐름이 팽팽하게 그들 사이를 메꿨다.

 

 

 “… 누구를 만났군요.”

 

 서천의 날카로운 눈빛이 은아의 생각을 단번에 읽어냈다. 어째 잘못을 한 사람마냥 은아의 손안에 진땀이 버적버적 고이기 시작했다.

 

 

 “아… 저…”

 

 말을 해도 되는 걸까… 혹시 괜히 엮이게 해서 피해주는 거 아닐까… 은아가 주저하며 쭈뼛거리자 서천이 양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망울이 호수처럼 잔잔했다.

 

 

 보는 이까지 안심시켜주는 차분함이었다.

 

 

 “괜찮아요.”

 

 그의 말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이 기분 좋은 안정감. 그래서 은아는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사실… 아까 서점에서요…”

 

 그렇게 운을 띄운 말은 시왕이가 화장실을 간 시점부터 시작해 다준이를 만난 일, 저승차사 동래를 만난 일을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히 풀어냈다.

 

 

 말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은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모든 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점을 다시 자각하자 그녀의 살갗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그래서… 향냄새가 났군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본 서천은 어깨를 쥔 손에 은근히 힘을 주었다. 자신이 여기에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는 것처럼 보였다.

 

 

 “… 마지막으로 제 이름을 알려주긴 했는데… 혹시 잘못한 건가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그녀는 문득 걱정이 들었다. 아… 아무래도 은아의 걱정이 쓸데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서천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곧 그는 싱긋 미소 지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저승차사는 명부에 있는 망자들만 데려갈 수 있으니까… 다만 굳이 은아 씨의 이름을 물어봤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네요.”

 “역시… 가르쳐주면 안 됐던 거였네요.”

 

 은아가 시무룩하게 추욱 늘어졌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그가 토닥거렸다.

 

 

 “이곳에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 저와 시왕이가 있는 이상.”

 

 어딘지 확신에 찬 말이었다. 은아는 아까부터 대화에서 느껴지던 미묘한 이질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서천 씨는 이쪽 분야에 대해 되게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서천의 속눈썹이 움찔했다. 확실히 그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늘 그랬던 것처럼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딱히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관심은 있어서요.”

 

 은아의 어깨에서 뗀 서천의 손가락이 차가워졌다는 건 그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어 그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돌렸다.

 

 

 “은아 씨는 원래도 그런 것들을 잘 보는 편이었나요?”

 “저요? 전혀요. 이번이 진짜 처음이에요.”

 

 은아가 질색하며 몸을 부르르 털었다. 평소에도 그랬다면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이렇게 잠깐 본 것만으로도 오싹해지는데.

 

 

 “처음이라… 갑자기 그런 일을 겪어서 많이 무서웠겠네요.”

 

 우쭈쭈를 해주듯, 서천이 짐짓 눈썹을 휘었다.

 

 

 “지금은 좀 그래도 생각보다 그 당시엔 그렇게까지 무서운 건 아니었는데… 예전에는 그토록 바라던 일이기도 했고…”

 

 말을 흐리는 은아의 입가에 씁쓸함이 걸렸다. 과거에는 죽은 가족들이 귀신이라도 돼서 나타나길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었다.

 

 

 “어… 음…”

 

 서천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눈을 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의 입술이 갈피를 잃었다.

 

 

 아… 은아 역시 본인이 내뱉은 말을 깨닫고 당황했다. 저번 미역국 사건 때처럼 또 멜랑꼴리한 분위기가 반복됐다. 간혹 의도치 않게 흘러나온 말들이 상황을 얼어붙게 만드는 걸 그동안 많이 겪어왔던 그녀였다.

 

 

 ‘무슨 사정이 있다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향한 조소를 지었다. 꼭 나 좀 신경 써 달라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 스스로가 비참했다.

 

 

 “은아 씨…?”

 

 가라앉은 그녀가 걱정돼 서천이 이름을 부르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은아가 정신을 차리고 평소대로 돌아왔다.

 

 

 “아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천 씨는 그런 경험이 많으신가요? 귀신을 본다던지 하는…”

 “저요?”

 “네. 꼭 말씀하시는 게 그런 존재를 많이 봤다는 느낌이 드네요.”

 

 정곡을 찔린 건지, 아니면 그녀의 말이 틀린 건지 서천이 씨익 웃기만 했다. 그래서 은아는 좀 더 그를 떠보기로 했다.

 

 

 “하긴… 아까 가게에서도 그렇고… 보통 사람과는 다른 손님들이 가게를 많이 찾으시나 봐요?”

 “흐음- 초반에 모든 걸 다 알면 재미가 없잖아요.”

 

 서천이 코끝을 찡긋했다.

 

 

 “전 은아 씨와 함께 있을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거든요. 오늘 말하지 못한 이야기는 제 사심을 채울 미끼로 쓰죠.”

 

 누가 들어도 이건 작업 멘트였다. 그래서 은아는 더 이상 그에게 캐묻지 못하고 얼떨떨해졌다. 슬금슬금 그녀의 볼이 붉어졌다.

 

 

 “굳이… 저랑 왜…”

 “왜겠어요?”

 

 푸스스- 흩어지는 웃음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오늘 하루 할당량이라도 채우는 거야, 뭐야…! 그의 말과 행동에 심쿵하느라 심장이 피로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을 겪으면 저한테 꼭 말해줘요. 제 나름대로 방법을 연구해볼 테니까.”

 

 그는 이어 그녀의 머리를 톡톡- 두어 번 쓰다듬더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은아에게서 등을 진 서천의 표정이 단숨에 심각해졌다.

 

 

 ‘기어코 엮이게 되어버렸군.’

 

 저벅- 저벅-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는 그의 발걸음이 짐짓 조급해보였다.

 

 

 ‘설마… 시왕이와 마주친 건 아니겠지.’

 

 걸음마다 걱정이 뚝뚝 떨어졌다. 이어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시왕의 방문 앞이었다.

 

 

 ‘정말… 너무 안일했어.’

 

 찌푸린 미간에 스스로를 향한 자책이 고였다. 노크를 하기 위해 올린 손이 천근만근이었다.

 

 

 ‘대책이 필요해.’

 

 * * *

 

 “아이고, 아이고… 되다…”

 

 동래가 어느 주택 옥상 위에 걸터앉으며 곡소리를 내었다. 태양이 세상 뒤로 숨어 땅이 어둠에 잠길락 말락 한 시간이었다. 잠깐 쉬는 타이밍인지 난간에 서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던 강림은 그런 그를 흘깃 내려다보았다.

 

 

 “망자 김다준은 잘 인도 했나?”

 “말도 마세요,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제가 먼저 골로 갈 뻔했습니다. 설마 일부러 저한테 배정하신 건 아니죠?”

 

 피식. 강림의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가 긍정의 답으로 보였다. 그 표정을 놓치지 않은 동래는 입을 비죽거렸다.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요새 이상한 망자들만 장부에 있더라니.”

 “망자에 이상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일이 힘들면 다 능력 부족인 탓이지.”

 

 이어 언제 웃었냐는 듯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온 그를 보며 동래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속으로 신나게 투덜거렸다.

 

 

 하여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작자라니까.

 

 

 “아직 인도해야할 망자가 절반이나 남았다. 오늘따라 사고가 많이 벌어지는군.”

 

 강림이 장부를 탁- 덮으며 동래를 내려다봤다. 딱딱한 말씨너머 서늘한 얼굴에 온기라곤 없었다. 과연 모든 이가 혀를 내두를 만한 냉정함이었다.

 

 

 어쩐지 그만 쉬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동래는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다준을 인도할 때 만났던 은아가 떠올랐다.

 

 

 “참, 오늘 아주 신기한 여인을 만났지 뭡니까. 그 김다준이라는 망자를 데리고 갈 때 말이죠.”

 

 하지만 강림은 별다른 관심이 없는지 다음 목적지를 가늠하며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저 그의 얼굴엔 귀찮음이 서려있을 뿐이었다. 그간 동래가 실없는 수다로 강림을 꽤나 귀찮게 했기 때문이다.

 

 

 “안 궁금하세요? 에이, 궁금하실텐데?”

 

 결국 그냥 무시하려던 강림의 이마에 빠직 핏줄이 섰다.

 

 

 “시끄럽다. 쓸데없는 수다는 집어치우고 어서 일…”

 “그 여인, 제가 보였습니다. 그 다준이라는 아이도요.”

 

 말을 멈춘 강림이 서서히 동래를 돌아보았다. 뭐… 딱히 놀란 건 아니었다. 감이 좋은 인간들을 그간 못 본 것도 아니었고… 그냥 무료한 일상에 작은 이벤트 하나정도랄까.

 

 

 하지만 동래의 다음 말은 강림을 그대로 굳어버리게 만들었다.

 

 

 “그 여인의 이름이 감은아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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