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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오늘부터 가정교사입니다
작가 : 어린비
작품등록일 : 2020.8.1

유치원 선생님 감은아.

그녀는 어느 사건으로 인해 선생님을 그만두게 되고,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취직도 안 되고,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 덕에 집까지 잃게 된 그녀.

그렇게 하루하루 걱정 속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내밀어진 구원의 손길.

"저희 조카의 가정교사가 되어주실래요?"

담임이었던 시왕의 보호자 서천이 그녀를 고용하고, 얼떨결에 은아는 시왕의 가정교사가 된다.

하지만 까칠한 애늙은이 시왕을 가르치는 일이란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어쩐지 이들이 수상하다?!

과연 은아는 제대로 된 가정교사가 될 수 있을까?

 
19화. 그들만의 세상(6)
작성일 : 20-08-20 00:23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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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가자.”

 

 동래가 반신반의하며 다준에게 손을 내밀자 다준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잡았다. 역전된 상황에 동래는 놀란 눈치였다. 이리 쉬운 거였어? 나 지금까지 뭐한 거?

 

 “… 그쪽 편하라고 그런 거 아니에요.”

 

 동래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가 서늘했다. 찌릿- 노려보는 눈길에 동래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미 그는 은아에게 찍힌 모양이었다.

 

 

 “아직 아이에요. 귀신이라도 그렇게 험악하게 굴면 당연히 무섭다고요.”

 

 찬바람이 쌩하니 부는 목소리였다. 괜히 억울해진 동래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은아는 다시 무릎을 구부려 다준과 눈을 마주쳤다. 동래를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시선이었다.

 

 

 “이제 안 무섭지? 우리 다준이 씩씩하게 갈 수 있지?”

 

 눈동자에서도, 그녀의 말에서도 다정이 뚝뚝 떨어졌다.

 

 

 “네!”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에 이미 다준은 몸이 근질근질했다. 은아가 가르쳐준 율동을 까먹지 않으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 흠흠, 그럼 이만.”

 

 동래가 멋쩍게 헛기침을 하며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다준도 순순히 그를 따라갔다.

 

 

 ‘이상한 여자.’

 

 동래가 혀를 차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들이 몇 걸음 정도 떨어지자 은아는 굽혔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녀의 눈길이 다준의 등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 도대체 어쩌다가… 저렇게 어린데…”

 

 잇새로 탄식과 같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그들이 별 탈 없이 간다 싶었을 때 동래가 흘끗 뒤를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눈치였다.

 

 

 “거기… 토끼 반 선생님.”

 

 은아가 미간을 찡그렸다. 또 무슨 볼일이 남았던가. 그녀가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냈지만 동래는 꿋꿋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째 살짝 올라간 한쪽 입 꼬리에서 집요함이 느껴졌다.

 

 

 “이름이 뭡니까?”

 

 이름? 은아의 표정에 경계심이 잔뜩 피어났다. 문득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죽는다는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굳이 제 이름은 왜요?”

 

 그러자 동래가 대수롭지 않게 다준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이 아이가 그쪽을 얼마나 찾겠습니까? 최소한 이름 정도는 알려줘야지.”

 

 아아… 경계 어렸던 표정이 풀린 게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 감은아요.”

 “감은아? 흔치 않은 성씨구만… 아무튼 알겠습니다.”

 

 동래가 다시금 홱 돌아섰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감은아… 홀로 그 이름을 몇 번이고 입안에서 굴리는 그의 표정이 갈수록 묘해졌다.

 

 

 ‘감 씨라… 익숙한데.’

 

 딱히 그녀를 어쩌고자 한 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게 꽤나 특이한 인물이다 싶어서 이름이 알고 싶어진 것뿐이었다.

 

 

 하지만 어째 이름을 듣고 나니 이 여인을 자신만 알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림 님께 보고해야겠어.’

 

 아이의 손을 쥔 손아귀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한편, 그들이 어느 정도 멀어져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을 목전에서 본 은아는 그제야 어깨가 늘어졌다. 다리 역시 힘이 풀려 살짝 비틀거렸다. 턱- 은아의 등이 간신히 복도 벽에 닿았다.

 

 

 “… 지금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잠시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었다. 솔직히 기분이 몽롱한 것이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저승차사에게 온 몸에 기를 다 빨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무언가 실수를 한 듯한 이 찝찝한 기분은 또 어떻고.

 

 

 ‘괜히 나댔나.’

 

 자신의 타고난 본능으로 그런 짓을 했지만 막상 너무 깊이 엮인 것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애잖아.”

 

 다준의 말간 눈동자를 떠올리며 은아는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 생각하기로 결론지었다. 분명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자신은 똑같은 선택을 할 게 분명했다.

 

 

 “나도 참 아이러니다, 진짜.”

 

 은아가 힘없는 손길로 이마를 짚었다. 유치원은 지긋지긋하다 그리 말했으면서… 은아의 눈가에 피곤함이 그늘졌다. 그렇게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생각난 얼굴.

 

 

 “… 시왕이!”

 

 순간 그녀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잠시 잊고 있었다.

 

 

 “얘는 도대체 화장실에서 뭐하는 거야?”

 

 설마… 닦아줘야 하는 건가? 그 나이 대 애들은 다 그런 편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아무리 애늙은이 같다고 해도 애는 애니까.

 

 

 이내 남자 화장실에 쳐들어갈 기세로 은아가 몸을 일으키다가 흠칫 놀랐다.

 

 

 “설마 들어오려고요?”

 

 언제 나온 건지 화장실 입구에 어느새 시왕이 삐딱하게 서있었다.

 

 

 “시왕아!”

 

 은아가 그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저돌적인 기세에 시왕이 쭈뼛거릴 정도였다. 정작 은아는 그의 앞에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

 

 

 “혹시… 큰 일 본 거야? 잘 닦았고?”

 “예?”

 

 시왕의 얼굴에 찰나처럼 혐오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아… 그런 거 아니야? 은아가 머쓱하게 볼을 갉작였다. 하긴… 시왕에게는 딱히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긴 했다.

 

 

 “아니… 너무 늦게 나오길래.”

 

 은아가 변명처럼 웅얼거리자 시왕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 집에 가요.”

 

 시왕은 미련 없이 등을 홱 돌려 먼저 걸어갔다. 어째 그의 낯빛에 핏기가 가셔 있었다. 이마 주위에 물기가 비치는 것이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돌아선 볼 부근이 악문 어금니 때문에 도드라졌다.

 

 

 잠깐 스쳐간 시왕의 안색이 영 좋지 않자 은아의 표정이 금세 심각해졌다.

 

 

 “시왕아?”

 

 묘하게 분위기가 가라앉은 그였다. 은아가 서둘러 뒤따라갔지만 시왕은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할 수 없이 그녀는 손을 뻗어 시왕의 팔뚝을 잡았다.

 

 

 “시왕아, 괜찮……”

 

 홱- 금세 은아의 손이 허공으로 내쳐졌다. 벙 찐 은아가 입만 벙긋거리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시왕은 잠시 그녀를 흘끗하더니 냉기서린 목소리를 내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가 다시금 걸음을 재촉했다. 은아는 황당함에 그저 멀뚱히 제자리에 서서 멀어지는 시왕을 바라보았다.

 

 

 ‘쟤 진짜 왜 저래?’

 

 보자 보자하니까 본인이 보자기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울컥. 노기는 물론 서러움까지 차오른 은아는 입술을 꾸욱 내리눌렀다. 도저히 이런 수모를 겪고 뽈뽈거리며 시왕의 뒤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 같이 가야지!”

 

 어쨌든 자신은 월급을 받으며 시왕을 전담하기로 한 그만의 가정교사였다. 빌어먹을 자본주의… 은아는 까득 가는 이를 최대한 숨기고 억지로 입 꼬리를 당겼다. 솔직히 그의 낯빛이 어딘가 힘들어보였기에 도무지 시왕을 혼자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거기다 또 이 근방에 저승차사가 또 나타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아까 다준이처럼 시왕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싶었다.

 

 

 “시왕아, 천천히 가!”

 

 자신은 돈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사명감에 굴복한 것이라 합리화하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한편, 앞서 가던 시왕은 은아가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을 재촉했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표정에 희미한 낭패가 어렸다.

 

 

 “빌어먹을…”

 

 중얼거리는 혼잣말이 날카로웠다. 시왕은 한쪽 손을 세게 말아 쥐며 밀려오는 통증을 참아내었다.

 

 

 그는 지금 오른쪽 손목이 저릿저릿했다. 소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손목에 걸린 팔찌가 고통의 원인이었다. 여느 팔찌와 다를 바 없었으나, 단단한 실로 만들어진 팔찌 가운데는 물방울 모양의 옥돌 하나가 장식되어 있었다.

 

 

 원래는 상아색이었던 듯 보이는 옥돌은 검정 반점으로 얼룩덜룩 더럽혀진 상태였다. 그 반점은 마치 뿌리를 뻗는 것처럼 은근하게 넓어져 갔다.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서천이 이 사실을 안다면 골치 아파지겠군… 몸 상태보다 그것이 더 먼저 걱정이 되었다.

 

 

 ‘부디… 조금만 더…’

 

 시왕은 뒤를 돌아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뒤에 타박타박 따라붙는 발걸음 소리에 안심이 되는 자신이 가증스러웠다. 결국 그의 입안에 쓴맛이 올라왔다.

 

 

 

 * * *

 

 소파에 앉은 은아는 아까부터 시왕이 사라진 2층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턱을 괸 그녀의 얼굴 속 미간이 주름졌다.

 

 

 “…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난 거지?”

 

 분명 그녀에게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겨울의 혹한처럼 저리 차가울 수가 없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고, 심지어 집에 와서는 바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 시왕이었다.

 

 

 “… 큰일 본 걸 너무 대놓고 물어봐서 그런가?”

 

 만약 시왕이 또래보다 성숙해 지금 사춘기가 온 것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존심이 워낙 센 아이니까.

 

 

 그때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상념에 빠져있던 은아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이내 거실로 들어선 서천이 은아를 발견했다. 어, 은아 씨!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금세 그의 눈꼬리가 둥글게 휘었다.

 

 

 “어, 잘 다녀오셨어요?”

 

 어쩜 사람이 저리 해사할 수 있을까… 은아는 그의 미소에 화답하는 것도 잊고 속으로 감탄했다. 보는 사람이 절로 미소가 나오는 자태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서천이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뭐 좋은 일 있으세요?”

 “네?”

 

 서천이 자신의 볼 부근을 검지로 가리키며 씨익 웃어보였다. 입술 사이로 보이는 치아가 그의 외모만큼이나 가지런했다.

 

 

 “엄청 예쁘게 웃고 계시길래.”

 

 화아아- 은아는 자동적으로 뺨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뜨끈해진 볼을 숨기기 위해 그녀가 서천의 시선을 어색하게 피했다. 아주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진짜…

 

 “아하하… 별로 그런 건 없는데…”

 

 은아가 시선을 방황하다가 문득 시왕의 일이 생각났다. 삼촌인 서천에게 이 일을 상담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저, 서천…”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느새 다가온 서천이 손을 은아의 이마에 올렸다. 커다란 손 바로 아래에 있는 은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이게 무슨…

 

 은아는 정말로 심장이 한 번 멈췄던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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