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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수박
작가 : 강원산
작품등록일 : 20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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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고유의 무예 수박.
그 전설의 완성을 위해 뫼문의 제자 북수산이 중원에 발을 딛었다.

 
제 1 화
작성일 : 16-07-13 09:13     조회 : 884     추천 : 0     분량 : 9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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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수박(手搏)은 예로부터 한민족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의 무예로서 전신(全身)을 이용한 타격기(打擊技)라 불리웠다.

 

 

 

 

 

 

 

 서(序) 북수산(北水山)과 백산(白山)

 

 

 

 

 “일어나라.”

 너무도 냉담한 말이었다. 차가운 시신이 되어 누워 있는 어미를 보고도 소년의 아비는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아비의 시중을 들기 위해 전장을 따라 나섰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근 백여 일 만에 돌아와 보니 어미가 죽어 있었다. 이미 죽은지 수일은 지난 듯 방 안에는 시체가 썩는 듯한 악취로 가득했다.

 소년의 어미가 죽은 이유는 배고픔 때문이었다. 사인을 조사하러 들른 의원은 배고픔에 의한 아사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소년은 어미가 굶어 죽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어머니! 흐흑…….”

 소년은 오열했다. 누워 있는 어미의 몸 위에 포개지듯 엎드려 울부짖었다. 대장군가의 작은 안주인이 굶어 죽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문이며 창문에 새겨진 손톱자국. 소년은 어미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 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 배고픔에 몸부림치며 죽어 갔을 어미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최 씨! 그녀가 한 짓이야! 방 안에 가둬 놓고 어머니를 굶겨 죽인 거야!’

 여덟 살 소년의 두 손이 불끈 쥐어졌다.

 “일어나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소년의 아비가 소리쳤다.

 소년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아비의 등 뒤에서 힐끔거리는 한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당신이지! 어머니를 죽게 만든 건 당신이야!”

 소년은 여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악다구니를 썼다.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입술 사이로 피가 흐를 정도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퍼억!

 아비인 이의민의 투박한 손이 소년의 오른쪽 볼을 후려갈겼다.

 “악!”

 우당탕!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처럼 날아가 구석에 쑤셔 박힌 소년.

 이제 여덟 살의 어린 나이인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힘이었다.

 “왜… 왜 절 때리십니까! 어머니가 죽었단 말입니다! 저 여자가, 저 악랄한 여자가 어머니를 굶겨 죽인 겁니다!”

 소년이 소리칠 때마다 입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강하게 얻어맞은 이지문의 오른쪽 볼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벌겋게 부풀어 올랐고 입 안쪽은 터져 있었다.

 휙!

 그때 누군가 방 안으로 난입하며 소년을 향해 발을 날렸다.

 뻐억!

 “아악!”

 정확히 복부를 가격당한 이지문이 새우처럼 몸을 굽히며 비명을 질렀다.

 “기생의 자식이 어디서 큰 소리야! 더러운 년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내 어머니를 욕보여! 어머니가 저년을 굶겨 죽였다는 증거 있어? 증거도 없으면서 그딴 헛소리는 집어치우라고!”

 잘생긴 청년 하나가 소년의 허리를 마구 짓밟았다.

 “지영아, 그만 해라.”

 “퉤! 더러운 녀석!”

 이의민의 제지에 이지영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물러서기 직전에 소년의 얼굴을 향해 침 뱉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부인, 화영의 시신을 잘 묻어 주시오. 주상께서 날 찾으신다 하니 뒷수습은 부인이 해 주시구려.”

 “흑… 화영이 죽다니… 제가 죽일 년이에요. 아무리 절 미워했어도 끝까지 챙겼어야 했는데, 흑흑… 문이며 창문을 모두 잠가 버렸을 때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눈물까지 흘리며 슬퍼하는 최 씨의 표정은 도저히 가식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진실된 것이었다.

 최 씨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이의민은 이지문을 차갑게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지문! 네가 강해지면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한다. 몸도 마음도 모두 강해져라. 그리고… 화영의 죽음은 지금 바로 잊어라! 네 어미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야.”

 감정의 기복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

 이의민은 차갑게 말하고 방을 나섰다. 그 뒤를 최 씨와 이지영이 따랐고 방 안에는 화영의 시체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는 소년만 남겨졌다.

 “끄으으… 크흐흑…….”

 온갖 아픔과 슬픔이 소년을 휘감고 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소년은 화영의 시신 옆으로 기어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입에서 흘러내리는 찐득한 핏물.

 소년의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웠다.

 “어머니… 어머니! 으으으…….”

 어미가 기생이었기에 소년은 크나큰 고통을 받아야 했다. 고려의 대장군인 이의민의 아들이면서도 천대와 멸시를 받아야 했고 하인들이나 하는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소년은 종이나 다름없었다. 어디에 나가 이의민의 아들 행세도 할 수 없었으며 배다른 형들이 이유 없이 때리고 짓밟아도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미인 화영이 있기에,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는 어미가 있었기에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미가 죽었다. 유일하게 소년을 사랑해 주던 어미가 죽은 것이다.

 “어머니… 불쌍한 내 어머니… 크흑…….”

 소년의 흐느낌은 멈추지 않았다.

 너무도 초라한 봉분.

 이제 갓 만들어진 작은 봉분 앞에 한 소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명창(明唱) 오 년. 이의민지첩(李義旼之妾) 화영지묘(花英之墓)]

 소년은 목비(木碑)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소년의 눈동자는 목비에 쓰인 ‘이의민’이라는 글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어머니의 묘비에 그 이름은 필요 없어.”

 소년이 적개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순간이었다.

 쉭!

 소년의 오른발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퍼걱!

 단 한 번의 충격에 목비가 부러져 나갔다. 이제 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의 발차기라 하기엔 너무도 강력한 일격.

 소년은 목비가 반으로 부러져 버리자 남아 있는 밑동마저 힘차게 뽑아냈다. 그리고 한쪽에 놓여 있던, 엉성한 솜씨로 만들어진 목비를 들어 그 자리에 꽂았다.

 [명창(明唱) 오 년. 이지문지모(李智文之母) 화영지묘(花英之墓)]

 소년은 아비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목비를 꽂아 넣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만든 목비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머니! 지문이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사내가 될 거예요. 여자를 아껴줄 줄 알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거라고요. 그리고 복수하겠어요. 반드시 복수할 거예요!”

 이지문은 어미의 무덤 앞에서 평생 잊지 않을 결심을 했다. 어린 아이치고는 사뭇 당당한 모습이었다.

 눈에서는 끊임없이 맑은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세상 어느 누가 어미의 죽음 앞에서 담담할 수 있을까?

 이지문은 눈물을 훔치며 어미의 무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고려의 대장군(大將軍) 지위를 가진 이의민 장군의 애첩이자 이지문의 어머니인 화영의 무덤.

 대장군가의 작은 안주인이었건만 무덤은 너무도 작고 볼품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실이 아닌 첩실이라 해도, 대갓집 규수가 아닌 천한 신분의 기생이라고는 해도 너무나 보잘것없는 대우였다.

 작금의 고려 시대에는 본처와 후처의 차별이 그리 크지 않았고 후처의 자식들도 그리 박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지문은 그렇지 못했다.

 어미인 화영은 출신이 비천하다는 이유로 대장군의 애첩이면서도 갖은 멸시와 조롱을 받아야 했고 그녀의 아들인 이지문은 노비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지문을 화나게 하는 건 이의민의 본처인 최 씨였다.

 질투의 화신인 최 씨. 그녀는 화영을 철저하게 경계했고 천대하였으며 괴롭혀 왔다. 화영과 이지문이 비천한 대우를 받게 된 원인이 모두 최 씨에게 있었던 것이다.

 대장군 이의민,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잘 알면서도 화영과 이지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인 양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지문은 무정한 아비와 악독한 최 씨를 생각하며, 아직은 작고 여리기만 한 주먹을 꼭 쥐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아비에게 얻어맞은 얼굴과 이지영에게 맞은 허리에서 고통이 이어졌다.

 자박… 자박.

 꼭 쥔 두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이지문의 귓가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나 보구나?”

 어느새 이지문의 옆으로 다가선 십육 세 정도의 소년이 차분한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버린 얼굴로 옆을 돌아본 이지문의 눈에 하얀 무명옷을 입고 있는 준미한 용모의 소년이 비쳐졌다.

 “누구…?”

 이지문이 되물었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야. 네가 너무 슬퍼보여서 말벗이나 되어 주려고.”

 “난 벗 따위는 필요 없어.”

 이지문은 차갑게 말을 내뱉고는 다시 어미의 묘비를 바라봤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거니?”

 무명옷의 소년은 이지문의 반응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계속 말을 걸었다.

 “상관하지 마!”

 억울이라는 단어에 감정이 북받친 이지문이 고개를 획 돌리며 으르렁 댔다.

 “분노가 크구나. 복수하고 싶어?”

 대뜸 복수를 원하냐는 질문을 하는 무명옷의 소년의 얼굴은 꽤나 진지해 보였다.

 “형은 뭐 하는 사람인데?”

 이지문도 진지한 소년의 표정을 알고는 화를 누그러뜨렸다.

 “배우는 사람.”

 “무엇을 배우는데?”

 “수박(手搏).”

 지금까지 이지문이 보아 온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용모의 소년이 짧게 대답했다.

 그러나 수박이라는 말에 이지문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고 말았다.

 고려의 병사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으며 특별할 게 없는 그저 그런 맨손의 무예인 수박.

 이미 어깨너머로 약간의 수박을 배운 경험이 있던 이지문으로서는 흥미로울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지문의 고개가 다시 목비로 돌려졌다. 그리고 옷소매로 얼굴 가득 묻어 있는 눈물과 콧물을 닦아 냈다.

 “복수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어?”

 “하고 싶어. 하지만 난 약해.”

 “강해지면 되지.”

 “어떻게 강해져? 수박으로는 강해질 수 없잖아.”

 “강해질 수 있어.”

 무명옷의 소년은 당연한 진리를 말하듯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당당함이 이지문은 마음에 들었다.

 “정말? 정말 수박으로 강해질 수 있어?”

 “물론이야.”

 짧고 강한 대답에 이지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 눈빛을 마주한 소년이 이지문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렸다.

 “강해지고 싶니?”

 “응.”

 “복수를 위해서?”

 “…….”

 이지문은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복수를 하기 위해 강해지고 싶은 게 아니었어?”

 “모르겠어….”

 이지문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분명 복수를 하고 싶지만 강해지고 싶은 건 비단 복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미를 죽게 만든 최 씨와 이지영에 대한 복수심도 컸지만 만백성에게서 칭송받는 아비 이의민을 넘어서고 싶다는 욕구도 만만치 않았다.

 단순한 말 한마디임에도 그저 복수를 위해 강해지고 싶다는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어미 화영에게 너무도 미안했기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런 이지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무명옷의 소년이 눈물을 살짝 훔쳐 주었다.

 “솔직한 아이구나. 하지만 어미한테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네 마음은 이미 충분히 전해졌단다.”

 그 말이 애써 참고 있던 이지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지문은 무너지듯 소년의 품에 쓰러져 안겼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엄마를 부르며 목청껏 우는 이지문을 소년은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이지문의 울음이 잦아들자 소년이 나직이 말했다.

 “꼬마야,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소년은 눈물범벅이 된 이지문을 똑바로 바라봤다. 마음껏 울고 나서인지 이지문은 완전히 진정이 되어 있었다.

 “형이랑 같이?”

 “그래, 같이…….”

 무명옷의 소년이 하는 말에 이지문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어디로?”

 “북수백산(北水白山).”

 “북수백산? 거기에 뭐가 있는데?”

 “뫼문. 그곳에는 ‘뫼문’이라 불리는 곳이 있어. 거기서 나랑 같이 쌈수박을 배우자. 그리고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되는 거야.”

 소년은 더 이상 복수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이지문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더 이상은 복수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다.

 “쌈수박? 수박희(手搏嬉)가 아니고?”

 쌈수박이라는 말에 이지문이 흥미를 느꼈다.

 쌈은 싸움이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이지문은 쌈수박이라는 이름에서 왠지 강한 사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쌈수박은 수박희보다 훨씬 무섭고 강해. 어때, 함께 배우지 않을래?”

 “무섭고 강한 무예… 쌈수박이 그렇게 강해?”

 이지문이 눈을 빛내며 묻는 순간, 소년의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

 강하면서도 따뜻하고,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증유의 힘!

 쿠우웅!

 소년의 오른발이 땅을 찍어 내리자 땅이 진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진동은 고스란히 이지문의 발을 타고 전해져 심장을 뒤흔들었다.

 “강해. 그 무엇보다도…….”

 무명옷의 소년이 살짝 미소 지으며 입을 열자 주변으로 퍼져 나가던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두근, 두근, 두근!

 이지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강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강함이 느껴졌다. 온몸으로 퍼지는 전율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쌈수박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소년이 보여 준 한 수가 이지문의 피를 끓게 했다.

 함께 가고 싶었다. 그리고 강한 무예를 배워 아들 취급도 하지 않는 아비 앞에서 당당히 어깨를 펴고 싶었다.

 하지만 어미의 ‘제(祭)’조차 제대로 지내지도 않은 채 떠나는 건 불효였다.

 “지금 당장 가야 해?”

 “응……. 지금. 이제 북수백산으로 돌아갈 시간이거든.”

 무명옷의 소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지금 바로 떠나자고 하자 이지문의 눈에 깊은 고심의 빛이 떠올랐다.

 지금 떠나면 다시는 대장군가의 자식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어차피 대장군가의 자식다운 대접을 받은 적이 없으니 아쉬울 것 역시 없었다.

 다만 어미가 땅에 묻힌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았기에 떠날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물론 언젠가는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이 오늘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매정한 아비의 얼굴과 독사 같은 최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난 이지영의 얼굴도 그 위에 겹쳐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사하게 웃는 어미, 화영의 얼굴이 이지문의 눈에 담겨졌다.

 ‘지문아… 이젠 떠날 때란다. 이 어미는 잊고 네 꿈을 펼쳐 보렴.’

 어미가 웃는다. 이지문을 향해 떠나라고 말하며 아름답게 웃는다.

 이지문은 이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멍하니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던 이지문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갈게…….”

 “후훗, 잘 생각했어.”

 이지문은 무명옷의 소년을 따라 북수백산이라는 곳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눈앞의 형을 따라가야 했다. 강해지기 위해서, 복수를 하기 위해서 지금 떠나야 했다.

 마음을 굳힌 이지문은 옷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무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어미에 대한 마지막 인사였다.

 지금 떠난다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랐다. 불효를 각오하고 결심하긴 했지만 막상 떠날 생각을 하자 어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지문의 시선이 다시 무명옷의 소년을 향했다.

 “그런데 왜 날 데려가려는 거야?”

 “마음에 들어서…….”

 “마음에 들어? 뭐가?”

 “발차기. 좀 전에 목비를 부순 발차기가 정말 멋졌거든.”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발차기?”

 “그래, 발차기.”

 “수박에 발차기도 있어? 손기술만 있다고 들었는데.”

 “물론 발차기도 있어. 쌈수박에는 그 외에도 많은 기술이 존재해. 온몸을 이용한 전신무예. 그게 진정한 수박이니까.”

 처음 만났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소년과 아이는 스스럼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 이름은 뭐야?”

 “북수산(北水山). 너는?”

 “지문(知文).”

 “성은?”

 “없어. 그따위 성은 없는 것이 나아. 이름도 두 번 다시는 쓰고 싶지 않아.”

 주먹을 불끈 쥐는 이지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소년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이름 대신 다른 호칭을 하나 지어 줄까?”

 “다른 호칭?”

 “응. 방금 떠오른 건데 아주 괜찮은 이름이 있어.”

 소년은 자신이 생각해 낸 이름에 만족한 듯 더욱 환하게 웃었다. 이지문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채근하듯 물었다.

 “어떤 이름이야?”

 “백산(白山).”

 “백산? 에이… 호칭이 뭐 그래? 좀 더 멋진 거 없어?”

 “내 생각에는 정말 멋진데? 나는 북수산, 너는 백산. 우리가 갈 곳은 북수백산이고.”

 “북수산… 백산… 아! 합치면 북수백산이 되는구나?”

 “맞아, 후훗!”

 이지문, 아니, 이제는 백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이지문은 어느새 앞서 걷기 시작한 북수산을 쫓아가서는 손을 꼭 쥐었다.

 딸랑! 딸랑!

 이지문이 잡은 북수산의 손에서 맑은 방울소리가 났다.

 “어? 이건 뭐야?”

 이지문의 물음에 북수산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거? 방울.”

 “음… 두 개니까 나 하나 주면 안 돼?”

 북수산은 어느새 슬픔을 지우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지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훗! 좋아. 널 만난 기념으로 하나 줄게.”

 왼팔의 손목에 채워진 두 개의 은색 방울 팔찌 중 하나를 이지문에게 건네준 북수산. 그의 입가에는 동생을 향한 형의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이거 잃어버리면 안 돼. 나중에… 이것과 똑같은 방울을 가지고 있는 내 여동생을 찾으면 너랑 맺어줄 거니까.”

 “나랑 맺어준다고? 우리 어머니만큼 예쁘지 않으면 싫어.”

 “예뻐. 그건 걱정 마.”

 “형 동생은 몇 살인데?”

 “너는?”

 “여덟 살.”

 “어리구나. 내 동생은 올해 열 살이야.”

 북수산의 여동생이 자신에게 누나라는 것을 확인한 이지문은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쳇! 난 누나는 싫은데…….”

 “싫으면 그 방울 다시 줘.”

 “아, 알았어. 누나를 좋아해 볼게.”

 “그 약속… 꼭 지켜!”

 “응, 지킬게. 그런데 동생이랑 왜 헤어졌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묻는 이지문.

 북수산은 그 물음에 잠시 말이 없었다. 말없이 몇 걸음을 더 옮기던 북수산은 이지문을 향해 그윽한 시선을 던지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쟁이 있었어. 육 년 전에… 그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거든. 하지만 내 동생은 살아 있어. 난 그걸 알아.”

 “그랬구나. 만약 살아 있다면 내가 나중에 꼭 찾아 줄게.”

 북수산의 얼굴에 그늘이 지자 이지문이 그의 손을 꽉 쥐며 호언장담했다.

 “네가?”

 “응, 내가 꼭 찾아 줄게. 형이 처음이니까…….”

 “처음이라니?”

 “나한테 잘해 준 사람은 어머니 빼고 형이 처음이야.”

 “처음이라… 이거 고마운데?”

 북수산과 이지문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화영의 무덤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이지문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본다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고 아쉬움이 남는다면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이지문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자 노력했다.

 두 사람은 걷고 또 걸었다. 십여 개의 산을 넘고, 여러 개의 강을 건넜다. 북으로, 그리고 또 북으로… 그들이 향하는 곳은 고려 북단에 위치한 북계(北界)의 북수백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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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 9 화 2016 / 7 / 13 557 0 8219   
8 제 8 화 2016 / 7 / 13 560 0 6471   
7 제 7 화 2016 / 7 / 13 691 0 7704   
6 제 6 화 2016 / 7 / 13 666 0 7929   
5 제 5 화 2016 / 7 / 13 565 0 7273   
4 제 4 화 2016 / 7 / 13 558 0 7071   
3 제 3 화 2016 / 7 / 13 645 0 9059   
2 제 2 화 2016 / 7 / 13 594 0 7825   
1 제 1 화 2016 / 7 / 13 885 0 9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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