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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 혼자 목이 없다
작가 : 알레그로
작품등록일 : 2020.8.1

목 없는 기사로 되살아난 수도사 파울의 이야기.

 
7화
작성일 : 20-08-18 15:42     조회 : 236     추천 : 0     분량 : 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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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노인이 사는 곳은 거머리의 본거지와 동떨어진 숲속에 있었다. 늪지대와 멀어지자 신전의 불기운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나콘다 일은 유감이군.”

 

  “걱정하지마. 그 정도론 안 죽으니까.”

 

  “위액에 녹아내리긴 싫었거든.”

 

  “머리가 잘려도 살아 남았는데, 피부가 녹아 내린다고 어떻게 되진 않겠지.”

 

  팀벅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투구 없이 지내면 불쾌했다. 알몸이 된 기분이었다. 내 정체를 궁금해하는 시선들.

 

  “아니면 도마뱀처럼 원할 때마다 꼬리를 자를 수 있는 거 아닌가? 꼬리가 다시 자라듯이, 머리도 다시 자라는 거지.”

 

  “날 놀리는 게 재밌다면 계속해 봐.”

 

  “재밌는 게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이야. 외부인의 목을 수도 없이 그었지만 일어서서 다시 덤빈 놈은 없었거든.”

 

  팀벅이 흉측한 미소를 지었다. 한 손에 쥔 도리깨를 내려다보았다. 이 무기로는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팀벅을 손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보다 누구를 지키려면 적을 제압할 게 아니라 단번에 죽여야 했다. 수도원의 무기는 살상용이 아니었다.

 

  “쓰고 남은 무기나 빌려줘. 너 말고도 베고 벨 목이 쌔고 넘쳤거든.”

 

  “사제 나리가 살육을 즐기시겠다?”

 

  팀벅이 폴을 돌아보았다. 폴은 걷는 것도 지쳐 보였다. 화상이 남은 팔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였다.

 

  “쯧쯧.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은 딱하지만 우리가 보살펴 주진 못해.”

 

  키퍼가 가드의 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엄연히 키퍼와 가드의 역할이 다를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키퍼는 무기를 들 수 없었다. 무술을 연마할 수도 없었다. 성유물의 위험성에 물들지 않도록, 소유자 자체의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들의 무력함은 교단이 만들어 낸 것이다.

 

  교단에게 키퍼는 성유물을 담는 그릇,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좋은 그릇이 되기 위해 키퍼는 자신을 지킬 힘도 기르지 못했다.

 

  키퍼는 가드에게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 가드는 키퍼에게 대가를 바래선 안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할 뿐이다.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자세히 보니 바위가 아니라, 단단한 나무껍질이었다. 우거진 풀숲을 벗어나자 입구 위로 치솟은 거대한 나무줄기가 보였다. 쉘터 성의 망루탑보다 높았다.

 

  “원래 이곳은 녹스본에서 제일 가는 숲이었다고 해. 지금은 발길이 끊겨 숲의 이름도 잊혀졌지만.”

 

  입구로 들어가자 형광물질을 품은 식물들이 주변을 밝혔다. 녹색 야광이 어두운 나무줄기 속을 비췄다. 위를 올려다보자 계단이 나선형으로 뻗어 있었다.

  계단을 한참 오르고 나서야 노인이 있는 층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가 독침을 놓았던 아나콘다가 웅크리고 있었다. 한 노인이 뱀의 상처를 치료 중이었다.

 

  “쉬이익!”

 

  아나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머리를 치켜들었다. 매서운 눈빛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노인이 아나콘다의 머리를 쓰다듬자 살기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노인의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 마법사의 냉정한 눈빛과는 결이 달랐다. 팀벅이 노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상자를 노인에게 건넸다. 아나콘다의 목이 내 어깨를 빙 둘러쌌다. 긴장했지만 노인이 뱀을 통제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노인은 상자를 열고 미간을 찌푸렸다. 뼛조각들을 들어 탁자에 올려두었다. 조각 난 퍼즐을 임의로 맞춰 보았다. 검은 광물의 조각들은 따로 모아 두었다.

 

  “어떻게 연 겐가?”

 

  “내 꼴을 보고 있으니 잘 알겠지. 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으니까 해석 좀 해주겠어?”

 

  “해석은 내 일이 아닐세. 그리고 지금 눈 앞에 버젓이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노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십 년 동안 열지 못했네. 평범한 노인네가 마법사의 봉인을 풀 순 없지. 그것도 이중 봉인을.”

 

  “사제라 마법 같은 건 전혀 몰라.”

 

  노인은 내 말에 관심이 없는지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걸 열 때 두 개의 마법진이 보였을 텐데, 문양이 같던가?”

 

 순식간에 사라져 기억이 희미했지만 확실히 서로 문양이 달랐다. 하나는 혈마법의 역오망성,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사각형 두 개가 교차해 팔각성을 형성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 봉인마법은 두 계열의 마법사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네. 한 명은 혈마법사, 다른 한 명은 아직 모르겠네만.”

 

  흑마법사일 리는 없었다. 내가 아는 마법사는 혈마법사와 흑마법사뿐이었다. 혈마법사는 국사에 개입하는 일이 잦아 그 명성이 자자했고, 흑마법사는 도망자 신세여서 잘 알려졌다.

 

  그 외의 마법사는 소수의 인원이 연합을 형성했거나, 떠돌이로 살며 전 지역을 배회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봉인이 풀렸을 때 신전으로 찾아온 건 혈마법사 한 명이었는데.”

 

  “한 명으로 충분했거나,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랬을 것이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동맹이 이미 끊겼을 수도 있지.”

 

  마법사는 자기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 마법사의 목적이 숭고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다. 자신의 관심사에만 몰입하고, 그 과정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무엇이든 제거했다.

 

  “그럼 혈마법사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단 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민 거지?”

 

  아나콘다가 까마귀 뼛조각에 코를 들이밀었다. 이상한 악취라도 맡은 것처럼 뒤로 물러섰다. 노인은 부서진 퍼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은 마법을 신기하게 생각하지. 없던 게 생기고, 있던 게 사라지니까. 하지만 마법은 저울의 수평을 맞추는 것처럼 단순한 일이야. 동등한 값을 치르면 그만이지.”

 

  혈마법사는 피의 대가. 흑마법사는 무슨 대가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저울의 수평을 맞추기에 너무 무거운 마법도 있어. 그런 마법은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해.”

 

  만약 내가 마법사의 힘으로 되살아난 거라면, 이렇게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을 것이다. 환생 시전자는 대가를 온전히 치러냈을까. 아니면 아직 치르지 못한 걸까.

 

  “대부분의 마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하지만 저울의 수평이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마법은 불완전해지고 말아.”

 

  불완전함. 지금의 내 모습이 불완전 그 자체였다. 내 존재가 그렇듯이, 나의 능력도 완전한 저울의 수평을 무너뜨리는 힘일 것이다. 마법의 성립을 무르는 것.

 

  “날 되살린 힘도 마법일까?”

 

  노인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머리가 없는데도 정확히 내 두 눈을 보았다. 무덤에서 나오고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지금 살아 있다면 그냥 살면 되네. 아무런 이유도, 아무런 목적도 없어.”

 

  흑마법사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비록 노인과 거머리들이 외부와 단절된 사람이지만 레몽의 신변이 새어 나가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는 게 좋았다. 레몽에 대해 알아가는 것보다, 레몽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자네가 찾아준 이 물건의 목적은 느껴지네.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그 속에 악의가 들어차 있어. 그 저의를 알아내려면 이 오브제를 복구할 수밖에.”

 

  사물 안에 의지를 담는 마법은 오랜 시간과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노인은 숲의 치유력을 이용해 사물을 복구할 수는 있지만 최대한 빨리 파기해야 된다고 일러 주었다. 마법사가 아니면 파기가 어려울 수 있었다.

 

 .

 

  폴은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진정이 됐는지 호흡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투구를 벗었을 땐 환각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정말이군. 언제부터 그랬나?”

 

  “사실 난 이미 한 번 죽은 몸이야. 원정에 대한 기억은 잃었지만 누군가의 명령으로 참수 당했을거야. 이렇게 깔끔한 절단면은 사형수가 아니면 만들기 힘들거든.”

 

  폴이 양해를 구하며 내 목을 손으로 쓸었다.

 

  “내가 자네의 발목을 잡고 있군.”

 

  “사제단은 원래 서로 발목을 잡는 관계잖나.”

 

  폴이 웃었다. 웃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 번 죽은데다가 수도원도 사라진 마당에 굳이 사제의 의무를 다시 또 짊어질 필요는 없어. 내가 늪을 건널 때 자네는 선택할 수 있었어. 외면해도 됐다고.”

 

  “의무 때문에 한 일이 아니야. 죄책감 때문이지.”

 

  내가 지키지 못했던 키퍼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에게 얽힌 죄책감만 뚜렷이 남았다. 환생의 대가는 기억의 소실인지도 모른다.

 

  “팔이 타들어갈 때 자네가 한 일을 보았어. 그때 알았지. 키퍼나 지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 더는 지킬 수 없겠지. 널 만나기 전까지 난 성유물을 추적하던 중이었어. 그것을 손에 쥐면 암브로스를 죽일 심산이었거든.”

 

  폴은 팔을 움직였다. 쓰라림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렇게 되면 그림자 기사단과 다를 게 뭐지.”

 

  “암브로스는 수많은 사제를 희생시켰어. 그중에 나도 하나야. 그 어떤 사제단도 돌아오지 못했어. 그걸 알고서도 나를 버리고, 모두를 버린 거야.”

 

  “모두 자신의 원정에서는 성유물을 회수할 거라 믿지. 넌 네 자신을 너무 과신했던 거 아닐까.”

 

  “원정길을 겪지도 않은 네가 함부로 판단하지마.”

 

  그러면 안 되었지만, 나는 폴의 멱살을 잡았다. 암브로스에 대한 내 분노는 정당했다. 그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기 전에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도원이 무너졌다. 암브로스의 행방도 묘연했다.

 

  “수많은 사제는 자신의 죽음에 개의치 않았지. 수많은 가드가 키퍼를 지키다 칼에 베이고, 수많은 키퍼가 성유물을 지키다가 죽었어. 부활한 녀석이 그들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군.”

 

  죽음을 겪었기 때문에 두번째 죽음이 더 두렵다. 삶이 두 번 주어진 축복과 죽음이 두 번 주어진 저주가 공존했다.

 

  “까마귀가 돌아오면 이곳을 떠날거야. 암브로스가 살아 있다면 날 찾으러 오겠지.”

 

  “너 말마따나 사제가 도구에 지나지 않은 사람이 가드 한 명 때문에 발걸음을 돌릴까?”

 

  폴과 내가 있는 층으로 누군가 올라왔다. 팀벅이 어깨에 장정 한 명을 메고 돌아왔다. 나는 폴의 멱살을 잡던 손에 힘을 뺐다. 그가 바닥에 내려놓은 사람은 익숙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쉘터 성의 잿빛 갑옷. 흉갑이 창에 뚫려 구멍이 나 있었다.

 

  호수에서 대치했던 창그림자였다.

 

  “숲 외곽에서 발견했어. 녹스본에서 왜 이곳까지 발을 들인 거지.”

 

  “내가 만났던 사람이야. 성유물을 소유하고 있었지. 지금은 아니지만.”

 

  제국군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어쩌면 이 남자는 성유물을 지키려 한 걸 수도 있었다. 제국에게 성유물이 넘어가기 전에 창을 소유한 것이다. 자신이 죽는 것을 알고도 각오한 것이다.

 

  그에게서 정보를 캐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성유물에 눈이 멀어 눈앞의 싸움에만 집중했다. 녹스본과 제국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물었어야 했다.

 

  “평생을 키퍼로 살아온 나는 성유물에 손도 못 대 봤어.”

 

  폴이 멀쩡한 팔을 들어 흉갑을 더듬었다. 자신이 찾아 헤맸던 대상의 흔적을 한 순간이라도 놓치기 싫은 모양이다. 팀벅은 우릴 의심스럽게 노려보았다.

 

  “너희, 어디 소속이지? 정말 길 잃은 사제단이 맞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버려진 숲. 그곳에 찾아온 불청객을 마주하자 팀벅의 불안이 커졌다. 나와 폴의 출현 이후로 수많은 일이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신전이 파괴되고, 이상한 오브제가 발견되고, 성유물 이전 소유자가 시체가 되어 나타났다. 충분히 의심을 살 만했다.

 

  “만약 이 숲으로 병력이 들어온다면 너는 이번엔 목이 아니라 사지가 잘릴 거다.”

 

  “그래도 숨이 붙어 있으면 움직이는 토르소가 되겠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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