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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나 혼자 목이 없다
작가 : 알레그로
작품등록일 : 2020.8.1

목 없는 기사로 되살아난 수도사 파울의 이야기.

 
6화
작성일 : 20-08-16 12:23     조회 : 217     추천 : 0     분량 : 5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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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아나콘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팀벅이 뱀의 허리를 붙잡았지만, 머리와 꼬리가 온 힘을 다해 발악했다. 육중한 뱀의 꼬리에 벌써 다섯이 나가떨어졌다.

 

  “어서! 일어나!”

 

  폴은 내 말이 들리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이명이 온 것이다. 덜덜 떠는 두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 주었다.

 

  빨간 가면은 어느새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었다. 그가 갖고 있던 도리깨를 회수하고 장막을 빠져나왔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부축까지 해야 한다니.

 

  장막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늪지대가 끊기고 풀숲이 이어졌다. 부서진 신전의 바위들이 간헐적으로 보였다.

 

  나무에 매달린 시체의 형체가 문드러졌던 이유는 바로 아나콘다의 위액 때문이었다. 이곳을 방문한 외지인은 아나콘다의 뱃속에서 천천히 죽어 갔을 것이다. 나도 그런 신세가 될 수는 없었다.

 

  아나콘다는 어느새 장막을 빠져나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독침이 깊게 들어간 모양이다. 아무리 아나콘다여도 입속에 꽂힌 독침은 치명적일 것이다.

 

  좀 전에 멀리서 보았던 신전에 이르렀다. 기둥과 바위에 풀이 웃자랐다. 돌바닥에 거대한 문양이 음각돼 있었지만, 바위가 대부분 부서지거나 유실되었다.

 

  절반의 퍼즐 조각이 사라진 그림.

 

  이상했다. 종교적인 문양인 줄 알았는데 마법진에 가까웠다. 마법진이 이렇게 거대한 데다가 전체가 홈으로 패여 있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마법진의 홈은 무언가를 담기 위한 용도.

 

  좀 더 살펴보고 싶었지만, 신전의 중앙에 기웃거릴 여유는 없었다. 신전 맨 끝에 제단이 보였다. 사람 한 명이 드러눕기 딱 좋은 너비였다.

 

  제단을 엄폐물 삼아 폴을 기대 눕혔다. 나도 제단 뒤에 숨었다. 신전은 신성한 곳이니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살육을 벌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외부의 소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폴이 불안해하는 사이, 제단 밑에 궤짝 하나를 발견했다. 깨진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정체불명의 상자를 꺼냈다. 입바람을 불자 하얀 돌 먼지가 피어올랐다.

 

  머리통만 한 궤짝이었다. 틈새도 없고, 잠금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몰라도 시도는 해봐야 했다. 나는 상자를 가만히 들고 눈을 감았다.

 

  상자 위에 소형 마법진이 번뜩였다. 맞물려 있었던 두 원이 분리되더니, 각자가 그려졌던 순서의 반대로 지워지기 시작했다.

 

  또다시 발현되는 해제능력. 이번엔 단순한 잠금장치가 아니라, 정교한 봉인마법을 풀어내고 있었다. 봉인이 강력하고 복잡할수록 내 힘이 비례해서 차오름을 느꼈다.

 

  하지만 레몽의 수갑만은 풀지 못했다. 내가 풀지 못하는 마법도 있는 걸까. 레몽은 내가 무엇을 열 수 있고, 무엇을 열지 못하는지 알고 있는지 모른다.

 

  드디어 궤짝이 열렸다. 내가 기대한 내용물은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마법 도구라도 들어 있길 바랐지만, 그것은 그저 내 바람일 뿐이었다.

 

  거대한 까마귀의 두개골. 피눈물이 눈구멍에서 흘러내리는 채로 검게 굳었다. 머리 위에는 수정이 덕지덕지 박혀 있었다.

 

  서쪽에서는 본 적 없는 검은 광석. 영롱하게 반짝이는 칠흑의 물질. 굉장히 희귀한 물질일지 모른다. 혹은 위험한 물질.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기둥에 작살이 박혀 흔들거렸다.

 

  “천천히 죽는 방법은 많아. 용기를 높게 사서 선택권은 줄게.”

 

  팀벅의 목소리였다. 폴은 귀를 틀어막고 자꾸 혼잣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고즈넉한 신전 안에서는 꽤 큰 소리였다.

 

  “이거 꽤나 중요한 물건처럼 보이는데.”

 

  제단에서 일어나 까마귀 두개골을 들어 보였다. 이 물건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좀체 가늠할 순 없지만, 적어도 거머리에게 협상할 만큼은 되지 않을까.

 

  내게는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어디서 주워 온 거냐. 네가 잃어버린 머리를 이제야 찾았나 본데.”

 

  팀벅과 부하들이 비웃었다. 예상이 빗나갔다. 신전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돌무더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그들이 상주하기 이전에 누군가 발을 들였다는 뜻이 된다. 도대체 왜 이곳에 이런 신전을 지었을까.

 

  “가드, 뒤에…….”

 

  폴이 뒷걸음치며 내 뒤를 가리켰다. 돌아보기도 전이었다. 손아귀에서 까마귀의 두개골이 사라졌다. 손바닥이 잠시 스쳤을 뿐인데 데일 듯이 아팠다.

 

  붉은 로브를 걸친 남자가 까마귀의 두개골을 단숨에 으그러뜨렸다. 뼛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손에는 역오망성이 그려진 마법진이 일렁였다.

 

  분명했다. 그는 혈마법사였다.

 

  “거기 너, 이걸 어떻게 열었지?”

 

  “마법사가……이곳에 왜?”

 

  마법진에 핏물이 차오르며 번뜩였다. 어깨 뒤에서 폴의 비명이 들렸다. 그의 손바닥이 불길에 휩싸였다.

 

  “내게 질문하지 마라. 네가 궁금하지 않았다면 이미 재가 되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 마른침을 삼킬 수도 없었다.

 

  “언제부턴가, 잠긴 것을 열 수 있게 되었어. 그뿐이야. 왜 그런지는 몰라.”

 

  무표정한 얼굴. 미동도 없는 눈동자.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잿더미가 될 각오를 해야만 했다.

 

  “넌 누구냐?”

 

  팀벅이 혈마법사에게 소리쳤다. 마지막 동아줄을 당기고 형세가 역전되긴 했지만, 폴과 나의 형세는 갈수록 나빠졌다. 시간이 지체되기 전에 폴에게 옮겨붙은 불길을 꺼뜨려야 했다.

 

  “눈들이 너무 많군.”

 

  혈마법사가 돌바닥에 손을 얹었다. 신전 주위가 불길로 둘러싸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팀벅과 부하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돌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의 모양을 따라 불길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거대한 마법진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위험하단 사실은 분명했다. 막아야 했다.

 

  “불가능해.”

 

  불길을 제압한 것은 또 다른 불길이었다. 내 몸에서 발산되는 푸른 불길.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재생의 불꽃.

 

  푸른 불길이 온몸을 뒤덮었다. 허리의 상처가 아물어 들었다. 나는 타들어 가는 폴의 팔을 붙잡았다. 청염이 닿기도 무섭게 홍염이 진화되었다.

 

  혈마법사의 불꽃은 내 불꽃과 섞이며 잦아들었다. 그는 소진하는 불꽃을 계속 충당했지만 그만큼 피의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혈마법사도 한계를 보였다.

 

  일개 사제가 마법사를 이길 순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가능할지 모른다. 적어도 대치 상황까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도리깨를 휘둘렀다. 청염이 옮아붙은 갈고리가 혈마법사를 포박했다. 푸른 불꽃이 사슬의 고리를 따라 타올랐다. 마법진 위로 타오르던 불꽃이 수그러들었다.

 

  “이 불꽃. 이승의 것이 아니군.”

 

  혈마법사는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미지의 힘에 대해 광기와 호기심을 내비쳤다. 표정 변화가 없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만면했다.

 

  “목이 없지만, 널 알 것만 같아.”

 

  “내가 누군지 아나?”

 

  “이름은 몰라도 얼굴이 떠오르는군.”

 

  나의 얼굴? 나도 모르는 내 얼굴을 처음 만난 혈마법사가 어떻게. 내 목에 현상금이 붙었을 리도 만무했다. 되살아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마법사의 말은 모호하거나 의문스러워도 진실을 담고 있었다. 죽음과 환생의 비밀에 관해 알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나?”

 

  “질문은 너 자신에게 던져. 날 죽이려는 자에게 지름길을 알려줄 순 없지.”

 

  그의 손에 마법진이 선명해졌다. 갈고리에 맺힌 핏방울이 팔을 타고 흘러 마법진에 맺혔다. 혈마법사의 가장 큰 무서움. 그들은 피를 흘릴수록 강해졌다.

 

  “이 신전을 전이할 수 없다면, 너희들과 함께 파묻어야겠다. 목 없는 넌 죽지 않을 테니 또 보자.”

 

  도리깨에 묶여 있던 마법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혈석 알갱이와 약간의 핏방울만 남아 있었다.

 

  마법사를 붙잡았다는 사실에 너무 기고만장해진 탓이다. 마법 캐스팅을 헤아리지 못했다. 공격 마법은 이미 발동되었다.

 

  주황빛을 머금은 먹구름. 무언가가 안개를 뚫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네 개의 소형 운석이 차례로 떨어져 내렸다.

 

  신전은 이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전 옆에서 살았던 거머리들. 제단에서 나온 까마귀 가면. 중요한 증인과 증거들은 지킬 수 있었다.

 

  나는 가면 조각들을 쓸어 담아 궤짝에 다시 집어넣었다. 폴을 잡아당겨 제단을 빠져나왔다. 신전을 둘러싼 불길을 통과하려 하자, 청염이 타오르며 둥근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이곳으로!”

 

  팀벅과 부하들이 뒤쫓아왔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절대적인 강자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이치는 것뿐.

 

  하지만 운석은 너무도 빨리 하강했고 불의 통로를 다 통과하기 전에 첫 운석이 떨어졌다. 신전의 기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여럿이 쓰러지는 돌 더미에 깔렸다.

 

  두 번째 운석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신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내달렸다. 비명소리가 멀어져 갔다.

 

  ◆

 

  이번엔 운석을 피했겠지만, 다음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혈마법사가 나를 알아보았다. 내가 되살아난 이유를 아는 것이다.

 

  이미 내 존재가 그들에게 방해 요소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내가 성유물을 쫓고 있을 때, 그들은 나를 쫓을 것이다.

 

  숲 주변이 붉게 물들었다. 메테오가 떨어진 곳에는 여전히 불기운이 뭉근했다. 신전은 제 모습을 완전히 잃었을 것이다. 또다시 한 장소가 폐허로 변했다.

 

  폴이 나무에 기대 숨을 골랐다. 미지의 힘이 없었다면 폴은 불타 죽었을 것이다. 화상 자국이 팔꿈치 밑에서 끊겼다. 치료가 필요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당신들은 저기서 시체가 되었을 거야.”

 

  팀벅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지만 애써 침착한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아. 네 놈이 신전에서 알짱거리지만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야.”

 

  팀벅의 부하는 절반이 넘게 줄어들었다. 그의 높은 콧대가 꺾일 만도 했지만, 여전히 굽힐 줄을 몰랐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나? 이 신전이 왜 지어졌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팀벅의 부하들이 가면을 쓴 채로 속닥거렸다. 뭔가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았다. 외지인에게 숨기는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관심 없어. 저 신전에 관심을 가지는 자들이야 많았지. 전부 목적은 같았어. 신전의 붕괴. 신전에 가기 위해 우릴 공격했지. 우린 정당방위로 응징했을 뿐.”

 

  “저 신전을 왜 파괴하고 싶은지 궁금하지는 않았나?”

 

  “내가 알 바 아니야. 고루한 돌무더기 따윈 관심 없어.”

 

  팀벅이 시선을 피했다.

 

  “물론 그 노인네 빼곤.”

 

  “누굴 말하는 거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분이야. 우린 그분을 저버렸지만, 살뜰히 모시고는 있지.”

 

  “그분과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

 

  좀 전에 챙긴 궤짝을 꺼내 보였다. 팀벅은 미심쩍었는지 부하를 시켜 상자를 열게 했다.

 

  “부서졌군. 이게 도대체 뭐지?”

 

  “나도 잘 몰라. 방금 파괴된 신전의 비밀이 이 안에 담겨 있을 거야.”

 

  팀벅이 뼛조각을 몇 개 집어 보더니 코에 가져다 대고 킁킁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인상을 구겼다.

 

  “익숙한 냄새야. 썩어서 굳은 핏물 냄새.”

 

  좀 전 상황을 상기해 본다. 궤짝을 열자마자 혈마법사가 나타났다. 누군가가 그것을 여는 순간 감지하고 이동해 온 것이다. 혈마법사는 발견자를 제거하고 신전을 봉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생존자가 너무 많았다. 나와 폴을 포함해 눈앞에 있는 거머리들까지. 혈마법사는 머지않아 다시 한번 우리를 죽이러 올 것이다. 그땐 한 명이 아닐 것이다.

 

  몰살당하기 전에 그들이 무슨 일을 암모했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의 비밀을 역이용할 수 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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