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방으로 뛰어든 혁은 신랑을 단숨에 제압하고, 그를 앞세워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어? 새신랑이 신부는 어쩌고? 아직 안왔는데..”
“같이 술판 벌인 거 아냐?”
두어 명 집에 갔더니, 없었다.
“다들 거기 있나봐.”
“거기?”
“모여서 무예 연습하는 본부.”
“첨부터 거길 갔어야지!!! 얼른 앞장 서!!”
신혼 첫날밤에 혁한테 끌려나온 신랑의 발걸음은 자꾸 느려졌고, 혁은 그럴 때마다 신랑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아 아퍼. 그만 좀 차.”
“빨리 안가?”
“가고 있잖아!”
“강이한테 무슨 일만 생겼어봐, 가만 안둬, 니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러게 잘난 척을 누구하래?”
잘난 척 하려는 게 아니었다. 강이에 대한 자기 마음을 알아보려고 그들을 찾은 거뿐이었다. 혁의 잘못이 있다면, 그들이 자기 때문에 열등감 느끼는 걸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너처럼 무예 잘하고 싶다. 한수 가르쳐줘봐.”
그들이 먼저 가르쳐달라 했었다.
“내가 누굴 가르치는 건...”
“그러지 말고... 우리도 스승님 눈에 차는 제자가 되고 싶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강이를 가르칠 때보다 더 열정을 다해 가르쳤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그들을 화나게 만들고, 이 지경까지 오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강이가....’
가는 내내 혁은 눈물이 쏟아지는 걸 참고 있었다. 산적한테 미영이가 납치당했을 때, 열한 살의 나이에 산적들과 대적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던 혁이었다. 하지만, 자기 때문에 강이가 위험에 처하자,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강이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가고 있어!’
점점 산속 깊이 들어갈수록, 깜깜해져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말 여기 맞아? 이상한데 가는 거 아니지?”
“맞아. 근데 여기부턴, 말이 올라가기 힘들어.”
혁은 말을 나무에 묶어놓고, 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이 데리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
둘은 가파른 경사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 *
혁과 신랑은 그들이 일컫는 ‘본부’에 도착했다. 본부는 아주 큰 바위 앞에 막사가 하나 쳐져있고, 그 앞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본부 마당에는 환하게 횃불이 켜져 있고, 강이가 앉은 채 나무에 묶여 있었다.
“강이야!”
단숨에 혁이 달려갔다. 강이는 지쳐 힘이 없어 보였다.
“괜찮아?”
“혁아...”
“다친 덴 없어?”
혁이 묶인 밧줄을 풀어내며 강이를 부축하는데,
“아아!!!”
강이가 고통을 호소하며 소리를 질렀다.
“팔이!”
“팔?”
혁이 강이의 팔을 만지는데, 축 늘어졌다. 느낌으로 팔이 빠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동생 미영이가 어려서부터 팔이 자주 빠졌기에, 혁은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여덟 살 때였나? 도균이 없을 때 미영이 팔이 빠졌는데, 그때 처음으로 팔을 맞춰줬었다. 그 이후 자주 해봐서 도가 텄을 정도다.
“팔이 빠졌나봐. 맞춰줄게. 조금 아플 거야. 이 꽉 물어.”
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혁은 동생한테 하던대로 팔을 끼워 맞췄다.
“아악!!!!”
고통스러워하는 강이를 보자, 혁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아.”
혁은 쏟아지는 눈물을 얼른 훔치며 훌쩍댔다.
“혁이 너 울어?”
“아니~~”
“뭐 이까지 거로 울어. 사내가, 기,”
‘기지배처럼’이란 말을 하려다 강이는 멈췄다.
“미안해, 나 때문에.”
“아니야. 내가 저애들 화나게 해서 그래.”
“가자, 집에. 일어날 수 있겠어?”
“응”
혁이 강이를 부축해서 일으키는데,
“아악!!!”
강이가 또다시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뭐야, 왜그래?”
혁이 강이 다리를 보니, 오른쪽 정강이 부분 옷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었다.
“피?? 다쳤어?”
혁이 얼른 바지를 걷어 올리자 어둠 속에서도 시커멓게 부어오른 강이 다리가 보였다.
“내 이 새끼들을!!”
고통스러워하는 강이를 보자, 혁은 화가 치솟았다.
“괜찮아. 참을만 해.”
그때, 무리들이 막사에서 뛰쳐나왔다. 혁이 무리들을 쏘아봤다.
무리들 중에는 부상당한 녀석들이 반 정도 됐다. 사실, 혁도 강이가 마냥 당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했다.
* * * * *
사실 그랬다.
낭떠러지 끝에 서 있던 강이는 점점 좁혀오는 무리들 때문에 두려웠다. 사부와 혁 외에는 칼을 겨뤄본 적이 없던 터러, 저 애들을 해치울 수 있을지, 겁도 났다.
“뭘 기다려, 상대방을 제압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선제공격이야!”
평소 혁이 외치던 말이었다.
“어정쩡하게 있다가 한 대 맞느니, 내가 먼저 공격하는 게 낫지!”
혁은 늘 선제공격을 외쳤었다.
‘그래, 더 이상 도망갈 데도 없어.’
목검을 탁탁 치던 한 놈이 ‘넌 죽었어~’ 능글거리는 듯한 웃음으로 다가왔다. 강이는 그놈 눈을 매섭게 노려봤다.
‘얍!!’
목검이 날아오기 반박자 빠르게 강이의 발이 그놈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고,
“윽!”
대차게 얼굴을 강타당한 놈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대자로 뻗었다. 그놈이 놓친 목검을 강이가 잽싸게 집어들었다.
“자, 어떤 놈부터 올래?”
순식간에, 빛의 속도로 벌어진 일에 무리들은 흠칫 놀랐다.
“후회하지 말고 순순히 사과하시지”
그들은 목검을 휘두르며 고함을 쳐댔지만, 정작 강이한테 쉽게 다가오진 못했다.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한꺼번에 달려드는 거야!”
“알았어!”
“하나, 둘, 셋!”
어떤 놈은 가만있고, 어떤 놈은 달려가다 멈칫 섰고, 어떤 놈은 달려들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해볼만하겠는 걸!’
검을 몇 번 부딪쳐본 강이는, 오늘의 싸움이 수월하게 느껴졌다. 사부나 혁한테는 매번 지는 싸움이었지만, 이놈들의 실력은 그에 비하면 피라미 수준이었다. 거의 반 정도는 거뜬하게 제압했다.
“이러다 우리가 당하겠어. 너두 나가봐!”
한 놈이 다른 놈을 강이 쪽으로 밀어내자, 그놈은 다른 놈과 싸우고 있는 강이 쪽으로 다가가더니, 뒤에서 목검을!!! 다른 놈도 달려들어 뒤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윽!”
치사하게!!!
뒤에서 공격당한 강이는 결국 무릎 꿇게 되었고, 본부까지 끌려가고 있었다.
“다신 그 입 나불대지 않게 해주지!”
“무과 시험도 못보게 하자.”
“맞아. 그래야 우리가 유리해.”
“다리라도 부러뜨려야 하는 거 아니야?”
끌려가는 강이는 빠르게 주변을 돌아봤다. 앞에 나무를 스쳐지나가자, 강이는 나무를 발판 삼아 구르며, 한 바퀴 빙~~ 공중제비를 돌았다.
공중제비를 돌면서 왼쪽의 녀석을 먼저 쓰러뜨렸으나, 오른쪽 녀석이 강이를 세게 잡고 있는 바람에 그대로 강이의 팔 한쪽이 비틀어지면서 탈골되었다.
‘그동안 연습했을 땐 안됐던 공중제비가 여기서 되다니!’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오른 쪽 어깨 탈골로 통증이 심했다.
“윽!!”
통증에 강이가 주저앉자 녀석들이 달려들어 강이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강이는 얼굴을 맞지 않으려고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묶어 둬.”
분풀이가 끝난 녀석들은 강이를 나무에 묶었다.
“얜 두고, 들어가자.”
모두 막사로 들어가는데, 강이한테 발차기로 대차게 뻗었던 녀석이 큰 돌을 들고 와 강이의 정강이를 향해 던졌다.
“아악!”
강이는 통증에 소리를 질렀다. 그놈은 또다시 강이 배를 발로 확 차버렸다.
“으윽~”
그들의 목적은 혁을 혼내주는 거였는데, 엉뚱하게 강이가 걸려든 것이다. 이젠 강이를 어떻게 해야할 지, 의논할 차례였다.
“동네 어귀에 데려다놓을까?”
“어두워졌는데, 낼 다시 와서 다시 생각할까?”
“굶어죽음 어떡해.”
“한 끼 굶는다고 죽냐? 멍청아!”
“누구보고 멍청이래!”
무리들이 티격태격 하고 있는데, 신랑이 막사로 뛰어들었다.
“얘들아!”
“야, 신부는 어쩌고?”
“혁한테 잡혀서....”
“뭐어?”
혁이란 소리에, 모두들 목검을 들고 우르르르 쫓아나왔던 것이다.
“비열한 새끼들, 아무 잘못 없는 강이한테...”
'니들 다 죽었어!' 이글이글타는 혁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 무리들은 몸이 쪼그라들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이거 보이냐?"
서른형님이 칼을 번쩍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날카로운 칼날이 빛났다.
“진짜 칼을 보면, 혁도 놀랄 걸!”
“그래, 당황할 때 우리가 한꺼번에 달려드는 거야!”
사실 그들도 혁하고 일대일 대응은 어렵다 생각했었다.
“그래, 앞에서 싸우고, 뒤에서 덮치면...!”
“아무리 잘한다 해도 뒤에서 날아드는 칼을 어찌 막겠어?”
“맞아, 한 대 맞고 쓰러지면, 우르르 달려들어 개패 듯 혼내주자!”
그들은 혁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다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이미 강이를 혼내줬기에 혁한테도 당연히 먹힐 거라 확신했다. 서른형님은 칼을 들고 혁을 노려봤다.
“진짜 칼이야. 더 가까이 오면, 휘두른다. 다치기 싫음 순순히 항복해.”
“휘둘러보시지.”
서른형님은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떠냐, 진짜 칼 휘두르는 형님 솜씨가.”
그나마 서른형님의 칼솜씨는 봐줄만 했다. 웬만한 사내라면 칼 휘두르는 모습에 겁먹고 오줌 지릴 정도는 됐다.
“아이고 무서워라. 무서워 벌벌 떨며 오줌이라도 지릴 줄 알았냐?”
하지만, 혁이 누구던가? 지금 혁의 심리상태가 어떻던가? 강이가 저 지경으로 당한 것을 본 혁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누구 하나 걸리면, 최소한 다리 한쪽은 단숨에 부숴버릴 정도였다.
“내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 잘못 아니다. 니들이 자처한 짓이야.”
혁은 경고를 날리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차. 다신 스승님 앞에 얼씬도 못하게, 까불지 못하게 만들어주지. 칼맛좀 봐라”
칼을 휘두르며 서른형님이 달려들었지만, 혁은 그 어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혁의 매서운 눈빛을 본 서른형님은 밀려오는 두려움에 칼을 마구마구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후~~ 심호흡 한 혁이 한발 떼었다. 혁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그 어느 때보다 날렵했다. 먹잇감을 집어삼킬 듯 매섭게 달려드는 굶주린 하이에나가 따로 없었다.
“하압!”
단숨에 혁은 서른형님을 제압하고 칼을 빼앗았다. 이제 칼은 혁의 손에 쥐어졌다.
“내 그동안 친구라고 살살 엉덩이 긁듯 대해줬는데, 오늘은 칼맛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 비겁한 놈들, 다 덤벼!!”
혁의 고함에 무리들은 두려움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니가 나가!’
‘너부터 나가!’
‘아씨 먼저 나가!’
눈짓으로 서로 먼저 나가라는, 소리 없는 외침이 계속되자, 보다 못한 혁이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이정도 배포도 없이 감히, 이런 짓을 벌였어? 날 혼내주는 게 목적이었잖아. 시작해봐! 덤벼보라구!!”
에이, 죽기 아니면 까물어 치기지! 칼을 뺏겨 자존심 구긴 서른형님이 무리들을 향해 소리쳤다.
“계획대로 하자. 시작해!”
서른형님의 말에 그들은 하나 둘씩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혁을 가운데 놓고 둥그렇게 원을 짜기 시작했다. 혁 주변을 동그랗게 에워싼 그들은 혁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고, 혁은 점점 무리들에 의해 조여지기 시작했다.
“지금!”
서른형님의 소리에
와~~~
한꺼번에 달려드는 무리들, 점점 혁을 독안에 든 쥐 꼴로 만들어가고 있었다.